1948년 런던올림픽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영문으로 표기한 국가명으로 최초로 출전한 올림픽대회이다. 매일 밤잠을 설치며 열광하고 있는 2012 런던올림픽은 그 때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 64년만에 다시 맞은 런던올림픽은 1948년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오늘의 감동이 더 의미있으리라 본다.
한국은 그 당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다. 정부수립도 되기 전에 국가올림픽위원회가 IOC로부터 승인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과 체육계인사들의 열정과 부단한 설득작업, 눈물겨운 노력으로 올림픽 참가는 1947년 6월에 확정되었다.
남은 문제는 경비였다. 해방이후 정부수립 조차도 되지 못한 상황에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인지라 올림픽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 복권의 효시가 된 올림픽 후원권을 발매했다고 한다. 국민의 성원은 너무나 뜨거웠다.
그러니 선수촌 입촌식, 입장식 때 입었던 참가선수단의 단복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겨울용 두터운 천으로 만들어져 선수들이 땀이 범벅이 되어 고생이 많았다.
아이러니 하게도 2012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의 단복은 타임지가 선정한 베스트 선수단복으로 뽑혔으며 두달여 동안 국민의 응원메세지를 단복 안감에 깨알처럼 새겨 국민들의 응원을 가슴에 품은 것 또한 1948년 국민의 눈물같은 모금과 이어지는 것 같아 아련하다.
64년 만에 다시 맞은 런던의 감동
지금은 11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그 당시는 교통이 원활치 못한 때라 서울역을 기차로 출발하여 부산에서 배로 갈아타고 일본을 거쳐 홍콩에서 비행기를 타는 등 여러 경로를 거쳐야 하는 관계로 서울역을 출발한 지 20여일 여정 끝에 런던에 도착했다.
온갖 불편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단은 육상, 역도, 레슬링, 축구, 농구, 사이클, 복싱 등 7종목에 출전하여 복싱과 역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이로서 처음 공식 국제무대에 출전한 한국선수단은 총 32위를 차지하는 기적을 이루었으며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 후 64년의 긴 세월이 흘렀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1948년의 영광은 광복으로 되찾은 나라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경제적, 정치적인 약소국인 대한민국을 재건하려는 국민들과 선수들의 굳건한 의지와 열정의 결과가 아니였을까.
2012년 런던올림픽은 어느 대회보다 감동적이고 역대 최다의 금메달을 거두는 성적을 앞두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64년 올림픽사상 메달을 선물한 축구, 36년 만에 4강에 오른 여자배구, 한국사상 처음 결승진출로 도전성공한 리듬체조 손연재선수 등 많은 선수 저마다 품고 있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우리에게 짙은 감동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놀라운 힘 전 세계에 떨쳐
이번 올림픽대회 유도 금메달 김재범 선수가 한 우승 소감이 떠오른다. “‘죽기 살기’로 했다. 그 때는 졌다. ‘죽기’로 했다. 이겼다. 그게 답이다.” 또한 송대남 선수는 “도전하였더니 기회가 오더라, 그래서 꿈을 이루었다”고 했다.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양학선 선수, 세상에 없는 기술로 우승하고 다시 다음 올림픽을 위한 신기술을 준비하는 도전하는 청년, 어려운 환경에서 우뚝 선 용감한 청년이다.
이제 런던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복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그 영광이 재현되었으면 한다.
이젠 1948년,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진정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경기일보 2012. 8.13일자 오피니언 발췌)
김정행 용인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