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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7장1~11절
제목 : 자원하여, 균등하게
민수기1~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중심으로 어떻게 진을 처야 하는 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고,
5~6장에서는 성막과 함께 있으려면 성결해야 하는데 이 성결이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7~8장은 성막 헌당식과 레위인들의 취임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간상으로 인구조사를 행하기 한 달 전 일입니다.
성막이 완성된 후,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를 성막 예물로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회막 봉사를 위한 헌물과 제단 봉헌을 위한 헌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 회막 봉사를 위한 헌물(1~9절)
1) 장막과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합니다
“[1]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제단과 그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장막(帳幕)은 출애굽 제 2년 1월 1일에 완성되었습니다(출40:17).
*출40:17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그러므로 카일(Keil)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하면 바로 그 날 이후 기름을 발라 구별하는 성막 봉헌식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본장은 그러한 기사가 언급된 레 8:10 부분에 바로 연결되어야 하나, 시내산 율법 내용이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간적으로는 모순이 되는 인구 조사(출애굽 제 2년 2월 1일 - 민 1:1)를 기록한 부분 뒤에 본성막 도유(途油=기름을 바름) 사건과 족장들에 예물 봉헌식 사건을 취급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출 40장의 성막 완공과 레 8:10 사건을 비교하여 보면 성막을 세운 바로 그날부터 성막에 기름을 발라 구별한 것이 아니라, 성막 완공 후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어느 날 그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Lange).
이런 점에서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성막 봉헌식 날을 성막이 완공되고
백성의 진영이 모두 갖추어진 날, 곧 출애굽 제 2년 2월 8일 경으로 추측합니다.
이 견해는 민 10:11의 시내산 출발 날짜(출애굽 제 2년 2월 20일)에서 족장들이 예물 드린 기일(12일)을 역산(逆算)한 시간입니다.
사실 성막에 기름을 발라 구별하는 일은 성막봉헌의 의미로서 성막 인준의 최종 단계일 뿐이지 반드시 성막이 완공된 그날 실행 되여야 했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 출발 직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공식적인 제사 행위가 본장에서처럼 장엄하게 실시된 흔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본장에 언급된 족장들의 명단이 출애굽 제 2년 2월 1일 실시된 인구 조사와,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그 족장 명단(민 1:1-15)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아울러 족장들이 바친 예물들이 광야 행군시에 긴요하게 사용되었다는 점<3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본장에 언급된바,
족장들의 예물 봉헌식은 시내산 출발 직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견해만을 고집 할 수 없는 것은, 성경 기록은 그 특성상 연대기적 사건 순서(chronological Sequence of events)를 초월하여 그 내용에 따라 구성되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총체적으로 보아,
성막 건립이 필요한 때(출애굽 제 2년 1월 1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난 때(출애굽 제 2년 2월 20일) 사이의 약 50일 동안 제사장 위임 사건, 나답과 아비후 사건, 유월절 준수 사건 등이 일어났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물론 이 사이에 레 1:1로부터 민 10:10에 나타난 각종 규례들이 모세에게 주어졌으리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 사람이나 사물들에게 기름(관유)을 바르는 것은 종교 의식상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즉 (1) 그 대상을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는 다는 의미와
(2) 그 대상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의미이다(출 40:34,35).
*출40:34,35 “[34]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35]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그러므로 한번 기름 발리워진 대상은 영원히 세장적인 일에 사용될 수 없
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성적으로 악한 자연인과 아무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사물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련시켜 그분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기름 바름'이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사와 관련된 각종 사물들, 즉 제단(10절; 출29:36)과 제단에 딸린 도구들(출 40:10), 성막(레 8:10)과 성막에 딸린 기구들 및 증거궤(출 30:26)에는 반드시 기름을 발라야 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목적에 사용되는 이 기름, 곧 관유(灌油, 출 30:22-33)는 그 의미하는 바에 따라 성령과 성령의 사역을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렘 31:14).
*렘31: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구약 시대 각종 모형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아 공식적으로 성별되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헌신하신 사실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마 3:16; 행 10:38).
*마3:16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17]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실로 성경에 제시된 각종 성물(聖物)들이 그 자체로서 신적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기름 바름'이라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준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사역과 예배와 헌신 역시 오직 성령의 감동, 감화를 통해서만 그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행 1:8; 고전 2:4-13; 요일 2:27).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 계수함을 받은 자의 감독된 자들이 헌물을 드렸습니다(2절).
“[2]이스라엘 지휘관들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요 그 지파의 지휘관으로서 그 계수함을 받은 자의 감독된 자들이 헌물을 드렸으니”
이스라엘 지휘관들. - 이스라엘 각 지파의 실질적인 지도자들로서,
인구 조사 때에 감독의 직임을 받은 자들입니다<1:4-15>.
헌물을 드렸으니. - 각 족장들은 자신과 자신의 지파를 대표해서 하나님께 봉헌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나아오는 자가 '빈 손'으로 오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결코 하나님께서 재물을 탐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구약 시대의 특성상 예물 속에 그 마음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장차 영원한 예물이 되실 그리스도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자가 그 경제적이 형편에 따라 자원하는 심정으로 당신께 예물을 정성껏 바칠 때, 하나님은 그의 그러한 심령을 기쁘게 열납하시는 것입니다신 16:16,17 “[16]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출3:21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출34:20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민6:21 “힘이 미치는 대로”,
한편 본장에 나타 난 바 족장들의 솔선수범하는 헌신을 통해,
우리는 지도자의 모범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 지도자는 섬김 받고 주어진 지위를 향유하기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위와 능력을 많은 성도들의 유익과, 특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선택된 것입니다(요 13:12-17).
*요13:12~17[제자들의 발을 씻으심]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린 헌물입니다(3절)
“[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린 헌물은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이니 지휘관 두 사람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지휘관 한 사람에 소가 한 마리씩이라 그것들을 장막 앞에 드린지라”
(1) 덮개 있는 수레 여섯과 소 열 둘.
여기서 '덮개 있는 수레'(에겔로트차브)는 70인역(LXX)에서는
'훌륭한 마차'(하막사스 람페니카스)로,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지붕이 있는 마차'(plaustra tecta)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사가(史家) 유세비우스(Eusebius, A.D.260-340)는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원문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둥근 덮개'(차브)가 있는 '소가 끄는 수레'(에겔로트)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에 사용하던 '들 것'과 같은 바퀴 없는 수레인지 아니면 바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광야라는 특수 지형과 운반해야 할 기구가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바퀴가 달린 수레'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 수레는 소 두 마리가 끄는 것이었습니다
(예물 중 수레와 소의 비율이 2:1인 점에 유의하라).
(2) 족장 둘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족장들은 각 지파와 자신의 형편에 따라 많이 또는 적게 헌상할 수도 있었겠으나, 여기서는 모두 동일한 양의 예물을 바쳤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➀ 봉헌 예물이 헌상되기 전 하나님께서는 미리 각자의 마음을 감동 감화시키사 상호 아름답게 협력하도록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인간 헌신의 근본적인 출발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무리하게 강요하거나 수탈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성된 예물을 받으시는 분이시며, 그를 통해 봉헌자의 영육을 더욱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합니다(잠11:25; 빌 4:17).
*잠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빌4: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➁ 하나님은 각 족장들에게 동일한 관심을 보이시며 동일한 헌신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모든 주의 일을 맡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공평하게 미치는 동시에 또한 각각에게 최선의 충성이 요구되는 것과 같습니다.
➂ 합심하여 드린 예물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위해 크게 사용됩니다(고후 8:1-6).
*고후8:1~6 [풍성한 연보]“[1]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2]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3]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4]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5]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6]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장막 앞에 드린지라. - 여호와의 상징적 임재 처소인 '장막' 앞, 곧 번제단 있는 곳에 예물을 가져왔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족장들이 그 헌물을 '여호와께 드린지라'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4) 그것을 받아 레위인에게 주어 각기 직임대로 회막봉사에 쓰게 합니다(4,5절).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5] 그것을 그들에게서 받아 레위인에게 주어 각기 직임대로 회막 봉사에 쓰게 할지니라”
레위인에게 주어. - 하나님께 헌상된 예물은 주로 제사장들의 생계용으로할당되었습니다(레 2:3; 7:6,8,14,15,28-34).
*레2: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레7:6,8,14,15,28~34“[6]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라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8]사람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 곧 그 제사장은 그 드린 번제물의 가죽을 자기가 가질 것이며[14]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15]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28~34][화목제물 중에서 제사장이 받을 소득][34]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제사장의 직무를 도와 성막일을 담당할 레위인들에게 배당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하나님의 자의(自意)에 의해서 사용되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제공(提供)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진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9:11-14).
*고전9:11~14 “[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각기 직임대로. - 즉 '레위인들 곧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직무대로' 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맡은 각각의 직무의 경중(輕重)을 깊이 이해하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선물을 제공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일을 맡기실 뿐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시는 분이십니다(왕상 3:6-13).
그러므로 환경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시며(히4:15),
모든 일에 질서와 평화를 존중히 여기시는 분으로서,
초합리적 일지언정 결코 비합리적이시지 않습니다.
회막 봉사에 쓰게. - 이처럼 하나님은 회막의 완공되자 그 회막의 이동을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만남의 처소를 개설하셨고 그곳의 운용까지도 주도하셨습니다.
이는 결국 신앙생활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니 하나님이심을 시사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신앙 원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소유를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으로써 큰 죄악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 - 건강, 시간, 재산, 능력 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서(롬11:36),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되며, 항상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벧전 4:10,11).
*벧전4:10,11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5) 게르손 자손들에게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 주었습니다(7,8절)
“[6] 모세가 수레와 소를 받아 레위인에게 주었으니[7] 곧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그들의 직임대로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 주었고”
게르손 자손들. - 이들은 성막의 양장들과 덮개 등 주로 덮고 치는 장(帳) 부분을 맡았습니다(4:25,26).
*4:25,26 “[25] 곧 그들이 성막의 휘장들과 회막과 그 덮개와 그 위의 해달의 가죽 덮개와 회막 휘장 문을 메며[26] 뜰의 휘장과 성막과 제단 사방에 있는 뜰의 휘장 문과 그 줄들과 그것에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메며 이 모든 것을 이렇게 맡아 처리할 것이라”
따라서 그들은 주로 성막의 뼈대가 되는 기둥과 널판 및 받침 등의 무거운 부분을 맡았던 므라리 자손들에 비해 수레와 소들이 덜 필요했습니다(4:21-33).
따라서 그들은 여섯 대의 수레 중 2대, 열 두 마리의 소 중 4마리를 할당받았습니다.
이것은 므라리 자손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6) 므라리 자손들에게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주었습니다(7,8절)
“[8]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그들의 직임대로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주고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에게 감독하게 하였으나”
므라리 자손 - 이들은 성막 부품 중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널판, 띠, 기둥, 받침, 말뚝 등을 운반하는 직임을 맡았습니다(4:31,32).
*4:31,32 “[31] 그들이 직무를 따라 회막에서 할 모든 일 곧 그 멜 것은 이러하니 곧 장막의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32] 뜰 둘레의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그 말뚝들과 그 줄들과 그 모든 기구들과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라 너희는 그들이 맡아 멜 모든 기구의 품목을 지정하라”
이것들은 매우 무거운 부품들이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운반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족장들이 바친 예물(수레 6대. 소 12마리) 중 2/3에 해당되는 수레 4대와 소 8마리가 할당되었습니다.
이다말로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 4:28 주석 참조.
7) 고핫 자손에게는 어께로 메는 일을 하므로 주지 아니하였습니다(9절).
“[9]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 고핫 자손들은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기물, 곧 지성물을 맡았습니다(4:5-15).
그래서 그들은 성막 이동시 그 성물(聖物)을 '어깨로 메어' 운반해야 했습니다<4:18-20>.
한편, 팔레스틴 주변국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던 이스라엘 왕정 초기에 다윗은 위의 지성물 운반법을 무시한 채 법궤를 옮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적이 있습니다(심하 6:1-11).
여하튼 지성물을 책임졌던 고핫 자손에게는 '어깨' 외에 다른 수송 수단이 필요치 않았으므로 족장들이 바친 예물은 전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가장 명예롭고 거룩한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바로 그 직임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독특하고도 풍족한 은혜를 골고루 채워주십니다(고후 12:9).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2. 제단 봉헌을 위한 헌물(10~11절)
1) 제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헌물을 제단 앞에 드렸습니다(10절).
“[10] 제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지휘관들이 제단의 봉헌을 위하여 헌물을 가져다가 그 헌물을 제단 앞에 드리니라”
제단의 봉헌(奉獻). - 제단을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 바칠 때에 공식적으로 드리는 최초의 제전(祭典)을 가리킵니다.
이 제전(祭典)은 거룩한 기름, 곧 관유<출 30:22-33>와 희생의 피를 바름으로써 절정에 이릅니다(레 8:10,15).
*레 8:10,15 “[10]모세가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15]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제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제단 밑에 쏟아 제단을 속하여 거룩하게 하고”
그와 더불어 배성들의 각종 자발적인 예물들이 단 앞에 바쳐짐으로써,
그 제전은 온 백성이 경하(慶賀)하는 기쁨의 의식(儀式)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봉헌(奉獻)'(하누카)이란 말 속에는 새 건축물을 '헌납하다'는 의미 외에 '신적(神的) 권위를 부여하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원어 '하누카'는 후일 수전절(修殿節)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레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한편 애굽과 같은 이방 종교 문화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사악한 세력을 축출하는 제식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봉헌은 이러한 축사적(逐邪的)인 의미는 전혀 없으며 오직
'거룩한 헌납', 곧 하나님께 그 소유권을 공식 이전하는 거룩한 의식인 것입니다. 한편 가나안 정착 이후 성전 완공 때(왕상 8:63; 대하 7:5)와 제단의 축성(대하 7:9),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 완성시(느 12:27)에 이 '봉헌'예식이 치뤄졌으며, 그때마다 전국가적인 축하 행사와 성대한 예식이 치러졌습니다.
여기서 발견 하듯이 '봉헌(奉獻)'이란 단순히 종교적인 건축물의 헌납과 구별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까지 이르는 포괄적인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자신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실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며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참 봉헌의 정신이라 할 것입니다(롬11:36).
헌물을 가져다가 그 헌물을 제단 앞에 드리니라. - 각 지파를 대표하는 12족장들은 제단을 구별하는 날 일제히 자신들의 예물을 번제단 앞으로 가져왔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각각의 예물을 실제적으로 드린 날은 11절 이후로 부터 83절까지 나타나는 바처럼 12일 동안 각자에게 할애된 날이었습니다<11절>.
2) 지휘관들은 하루 한 사람씩 제단의 봉헌물을 드리게 했습니다(11절)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지휘관들은 하루 한 사람씩 제단의 봉헌물을 드릴지니라 하셨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지휘관들은 하루 한 사람씩. - 12일 동안으 예물 헌납에 관한 내용을 지시하신 분은 하나님이이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한꺼번에 혼잡스럽게 드려지는 예물을 원치 않으셨으며,
질서 속에서 경건하고도 엄숙하게 진행되는 예식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1) 하나님의 질서를 사랑하시는 분임과(고전 14:33)
(2) 각각의 헌신을 동일하게 인정하시는 공평한 분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전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분배 될 때, 공동체는 공평함을 누리며,
화평 가운데서 효율성을 갔게 됩니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갔게 될 때에,
누군가가 그것 때문에 고통하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 하듯이 우리는 성령의 세례와 물 세례를 받은 자로써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므로 우리의 삶이 거룩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십니다(벧전1:16).
*벧전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또한 헌금을 드릴 때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며,
주님의 것을 드리는 마음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성막은 완공되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바를 때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됩니다(1절).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막이지만, 그것 자체로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장막이고 흙덩이에 지나지 않은 우리지만, 주의 영이 함께하고 주의 말씀에 이끌릴 때 거룩한 처소로, 주의 종으로 쓰임받을 것입니다.
세상이 부러워할 조건과 외형을 갖췄어도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2) 성막이 성별되는 날,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 성막 봉사에 쓰일 예물로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를 봉헌합니다(2,3절).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전에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드렸고,
지파의 크기에 상관없이 ‘균등히’바쳤습니다.
성막 성별을 기뻐하고 성막의 필요를 세심히 살펴 예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물질(物質)을 바치든 몸으로 수고하든, 주님의 몸 된 성막(교회)을 세우는 것은 받은 은혜를 헤아릴 줄 아는 감사와 감격에서 나오는 실천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일을 너무 거창히 생각하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 봅시다.
3)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는 봉헌된 예물을 레위인의 직무에 맞게 배분합니다(4~9절).
장막의 무거운 목재와 기구 등을 운반하는 므라리 자손에게 게르손 자손보다 더 많은 수레와 소를 제공하였고,
성물을 어깨에 메고 나르는 고핫 자손에게는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우열이나 서열이 아니라 직임에 따라 적절히 분배한 것입니다.
직무의 성격과 필요는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형평성이나 기계적인 균형은 도리어 공동체 안에 역차별과 불공정을 낳을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은 열두 지파 지휘관들에게 봉헌 예물을 드리게 하십니다(10,11절).
한 지파도 예외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아오게 하시고,
매번 개별적으로 그 예물을 열납 하십니다.
12일 동안의 봉헌은 모든 지파가 그 일에 한마음으로 참여했고,
그들의 헌신이 얼마나 철저하고 온전한지를 보여 줍니다.
주의 영광과 임재가 나타나는 일에, 의무를 뛰어넘는 자원함과 하나 됨이 있습니까?
각 사람의 특별한 삶의 고백과 헌신이 공동체 안에서 잘 표현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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