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語)로는 파스카(Pascha)라고 한다. 교회력에서 가장 오래된 축일이다. 역사적인 기원을
분명하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리스어(語)나 프랑스어(語)의 호칭은 헤브라이어(語) 유월절인 페샤(Pes嚆 h)에 기초하고 있고
영어의 이스터(Easter)와 독일어의 오스테른(Ostern)은 튜턴족(族)의 봄 여신인 에오스트레(Eostre)에서 파생된 것 같다.
초기에는 유월절에 따라 유대력(曆) 니산월(태양력의 3∼4월) 14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축하하는 교회와 그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는 교회도 있었다. 그러나 부활절을 해마다 지켜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오늘날 지키고 있는 부활절은 제1회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춘분(春分:3월 21일경) 후의 최초의 만월 다음에 오는 첫째 일요일이다. 그러므로 보통 3월 22일부터 4월
26일까지 지켜진다. 부활절에는 주로, 세례·학습, 참회자의 위로, 죄수의 석방, 가난한 자의 구제, 교역자 위안 등의 행사를 가진다. 또한
일요일과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에는 특별예배를 드린다. 동방정교회에서는 20세기까지 율리우스력(曆)을 사용하였다.
2~3세기에 부활절 날짜를 둘러싸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간에 야기된 논쟁.
초대 그리스도교(敎) 교회에서는
유대교의 과월절(過越節:逾越節)에서 유래한 부활절을 파스카(Pascha)라고 불렀다. 소(小)아시아 교회에서는 파스카를 요일에 상관없이 초봄인
유대인(人)의 태양력의 니산월 14일(보름날 밤)로 고정하여 지켰다(이들을 나중에 ‘14일 교도’라고 불렀다). 이것은 율리우스력(曆)에 따른
부활절이다.
소(小)아시아 교회에서 파스카는 예수가 죽은 날을 가리켰기 때문에, 그 날에 단식하고 저녁에는 떡을 나누어 성찬을
가졌다.
로마에서는 알렉산드리아의 태양력의 영향을 받아 BC 46년 이후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었기에 니산월 14일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일로 지켰다. 이것을 그레고리력(曆)이라고 한다.
그들은 부활의 전날인 금 ·토요일(안식일)은 “주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신 날”이라고 해서 금식을 하였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논란이 시작된 것은 폴리카르포스와 아니케투스의
회담에서였는데, 그 후 잇달아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양쪽의 역법의 차이로 부활절의 날짜가 틀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발전된 역법을 로마 교회가 받아들임으로써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에 의해 공식으로 이것이 채택되었다(525).
그런데
영국 교회는 이전의 역법을 사용했으므로 로마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와 논쟁도 있었으나 휘트비 회의(664)에서 로마측(側)의 승리로 끝났다.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역법을 고쳐(1582) 율리우스 역법을 쓰던 프로테스탄트 제국(諸國), 동방정교회 간에 차이가 있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20세기 초까지도 율리우스 역법을 사용하여 가톨릭교회와 그리스도교가 다른 날에 부활절을 지켰으나 그후 점차 통일이
이루어져 지금은 거의 그레고리력으로 통일되었다.
영국·미국에서는 이스터(Easter), 독일에서는 오스테른(Ostern)이라
하는데, 이것은 게르만민족의 빛과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er)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유대교의 유월절(逾越節) 이
그리스도교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얻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가 되고, 뒤에 게르만민족에게 전해지자 춘분제(春分祭)와 융합하여
오늘날의 부활절이 된 것이다.
축일로서 그리스도교 나라에서 지켜지게 된 것은 2세기 무렵부터이며, 그 날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의 유월절날, 서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부활한 일요일을 중시하여 유월절 무렵의 일요일, 즉 춘분 뒤의
보름달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