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지붕 두 가족
변 상 구
그림 수업이 있는 날, 일찍 일어나 준비물을 챙긴다.
준비물을 챙기는 데 중간에 카톡이 오고 문자도 들어온다.
카톡이나 문자는 나중에 확인해도 충분하다.
빠진 게 없는지 목록을 보면서 하나하나 점검한다.
외출복을 꺼내는 데 휴대폰이 울린다.
평생학습관에서 온 전화다.
옷을 꺼내다 말고 통화를 누른다.
예쁜 음성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오늘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긴급 연락이다.
여자 강사가 몸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다며 죄송하다고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아플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
섭섭하지만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재미로 익히는 그림 공부인데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마치 공부하기 싫은 학생이 학교를 안 가도 되는 것처럼.
그림 공부를 못하는 건 뒷전이고 종일 자유롭다는 생각도 든다.
이왕 준비한 복장이니 구청이나 다녀와야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삼십 년이 넘었다.
아버지의 집이었고 가족들의 보금자리였던 시골집과 땅이 유산으로 남아있다.
상속을 해야지 하면서도 지금껏 미뤄두고 살았다.
이제 나도 은퇴를 하고 백수로 살아간다.
노년은 무료하다.
도시의 노년은 문화생활을 하거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나이든 여자들은 행동반경이 넓지만 남자는 그렇지가 못하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시골집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언젠가는 태어났던 고향으로 돌아가서 흙과 함께 살아야지 하면서 남겨둔 집이다.
친구들은 대부분 문전옥답을 팔아 서울이나 다른 곳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다.
나는 처음부터 그런 욕심을 않기로 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서류나마 정리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상속 등기를 해야 하고, 한다면 일괄로 해야 한다.
동생들의 의견도 일치하고, 계속 둘 수도 없다는 판단도 동일하다.
알고 있는 여러 필지의 토지를 제외하고, 다른 게 있는가 싶어서다.
‘조상 땅 찾기’를 통해 부모의 숨겨진 땅을 찾을 수가 있다.
구청의 지적과를 통해 서비스를 받도록 되어있다.
내가 구청 지적과에 ‘조상 땅 찾기’ 신청서를 제출하고 등기부 등본 몇 통을 무인발급기로 발급을 받았다.
그 시간에 신청한 자료가 출력물로 인쇄되어 나왔다.
수수료를 물었더니 무료라고 했다.
친절한 직원에 공짜로 서비스를 받았다.
네 건의 부동산은 내가 알 고 있는 토지이며, 그 외 숨겨진 물건은 없었다.
상속 관련 업무는 등기소에서 담당 한다.
마침 구청과 가까운 곳에 등기소가 있다.
등기소를 찾았을 때 민원인 한 명과 여직원 두 명이 있었다.
내가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들은 업무가 끝났다고 했다.
내 뒤에도 두어 명이 더 들어오자 그들은 쫓아내듯 팔까지 휘저었다.
그 순간 언짢기도 했지만 어리둥절했다.
지근거리의 구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구청은 점심시간에도 직원들이 교대로 업무를 보고 있다.
막 12시에 들어오는 민원을 내쫓듯이 하는 건 예의에 맞지 않다.
공무원은 친절과 봉사로 민원인을 맞아야 한다.
거기에 친절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예의는 있어야 한다.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왔는지? 그 정도는 물어보는 게 공무원의 도리다.
나는 겨우 상속에 관한 구비서류를 찾는다는 내용으로 사정껏 종이 한 장을 받아냈다.
그곳을 쫓겨나듯 나오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아직도 국가기관의 문턱은 가파르고도 높구나.
내가 등기소를 나와서 백여 미터 떨어진 구청 앞을 지날 때, 구청직원들은 그때서야 정문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면 그 많던 등기소 직원들은 어떻게 된 건가.
결국 점심시간 전에 사무실을 나갔다는 말이 아닌가.
관공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다.
같은 세금을 받으면서 두 지붕 두 가족의 색다름을 본 듯해서 씁쓸하다.
내가 민원인인지 비렁뱅이인지 생각하게 된다.
초가을 하늘이 높다.
푸르른 햇살조차 후덥지근한 게 등에 땀이 맺힌다.
지난 해 봄, 거제 지심도 배에서 찍었습니다.
지난 해 그때, 깜짝 변신을 해봤습니다.
40대의 머리가 이랬습니다.
첫댓글 아직도 법원의 문턱은 높습니다 검찰개혁이 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그쪽이 뼛속끼지 바뀌어야 될 날은 우리 증손때나 될까요 요원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