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해변에서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시다
마가복음 1장 16-20절『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를 처음으로 제자로 삼으셨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는,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다섯이 있었는데, 바로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는 기술이 있다. 그들은 경험적으로 물고기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잘 안다는 말이다. 물고기들 중에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은신처를 찾거나 한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바위 근처나 바닥의 모래에 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물 한 가운데, 유영하는 물고기들은 그런 전략도 없으며, 먹이 때를 찾으려 여기 저기로 방황하면서 가끔은 떼를 지어 이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물고기들은 어부들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물고기들의 생존 전략 중에서 가장 하등한 무리가 되는 것이다.
그 당시 사람으로 말을 하면, 힘없고 능력없는 갈릴리 사람들과 비유될 수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성분별로 나누어 보면 어부 출신이 다섯명이고 농부 출신이 두명, 그리고 도마는 배를 만드는 기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롯이라는 시몬은 열심당 출신이고 그와 친했던 야고보의 아들 유다 즉 다대오와 가룟 유다 역시 열심당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리 출신의 마태나 작은 야고보는 제자들 명단에서 항상 하위에 기록되는 소외된 계층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점이다. 갈릴리는 본래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땅이었다.
이사야 9장 1절에서“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리고 B.C. 169년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 피를 뿌리며 하례를 금지하고 모진 박해를 가할 때 레위 지파와 유다 지파의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갈릴리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 지역은 저항세력인 열심당의 아지트가 되었다. 로마의 군대와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 그리고 예루살렘의 사두개파는 늘 갈릴리 사람들을 감시했고 바리새파는 저항세력을 자신들의 세력 기반으로 이용하려 했다.
예수께서는 왜 갈릴리 사람들을 그의 제자로 택한 이유는 그들이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과 같은 그런 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팔복에 대해서 설교하신 내용 중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임이요” 라는 말씀이 있다. 심령(프뉴마)이 가난한 자는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영이 가난한 자라는 것이다. 영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갇혀사는 자를 의미하며, 그것을 깨닫는 자가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복이 된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서『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자신은 거지인데, 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그는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된 것이다. 이게 가난한 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세번 부인한 것을 두고 애통해 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예수를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찾아오신다. 그리고 세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묻는다. 베드로는 주님이 아신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자기가 생각하고 만든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을 부려 먹는 것이다. 기복신앙이 대표적이다.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요청하다가 안되면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는 자가 애통하는 자가 된다.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가난한 자인 것이다. 영적 파산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애통하지 않는 다. 영적 가난 상태를 깨닫는 자가 애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자에게 찾아오시고, 천국을 세워주신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그래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탕자의 비유처럼, 죽은 것같이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개는 옛사람의 죽음이다. 옛사람이 죽어야, 하나님이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신다. 옛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이 죄의 몸 속으로 들어온 것을 깨닫고 애통하는 것이다. 왜 자신이 죄인이 되었는가를 깊히 묵상하지 않으면 애통하는 마음, 돌이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를 깨닫지 못하면 돌이키는 의미도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세리, 창녀, 귀신들린 자와 식사도 하고 친구처럼 그들을 대해 주기도 하셨다. 누가복음 5장 29-30절에서『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비난하고 다녔다. 그들은 천국에 대해서 모르는 자들인 것이다.
천국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듯이, 구원은 신도가 낚시 바늘에 걸리듯 하나님 말씀(십자가와 부활)에 낚아채이는 것이다. 낚아채이면, 천국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은 그들에게 침노당하는 것이다. 천국은 부활을 믿는 자로 부터 침노를 당한다
마태복음 11장 12절『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βιάζεται),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βιασταὶ ἁρπάζουσιν αὐτήν.)』
여기에는 두 문장으로 되어있다. 즉 앞의 것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천국)가 침노당한다는 말이다.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βιάζεται)에서 비아제타이(βιάζεται)는 강제로 끌려가는 것으로, 물고기가 강제로 낚시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즉 성도가 강제로 하나님 말씀에 낚여 천국으로 끌려간다는 말이다.
천국이라는 말은 헬라어로『헤 바실레이아 톤 오우라논』으로 읽힌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보좌의 하나님이 계시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 10절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늘은 보좌의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 나라이고,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심령 속의 천국(헤 바실레이야 톤 우라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는 말에서 “지금”이라는 말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세례요한의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라는 말로서, 천국은 침노당한다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 십자가의 죽음으로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어, 천국이 부활한 영의 몸에 의해 침노당하는 것이다. 침노당하는 것을 들림받는 것이다. 이는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에게 적용된다. 먼 장래 종말시에 육체가 변하여 휴거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현재적 부활을 믿는 성도에게 현재적 들림(영적 휴거)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심령 속의 천국을 이룬다.
두번째 문장은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βιασταὶ ἁρπάζουσιν αὐτήν.)』비아스타이(βιασταὶ)는 폭력자, 난폭한 자를 의미한다. 아르파조신(ἁρπάζουσιν)은 강제로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를 사도행전 23장 10절에서 사용되었다.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자(현재적으로 부활한 자)에게 천국은 침노당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강제로 폭력적으로 빼앗으려는 자가 있는 것이다.
누가 빼앗는가?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 등 종교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짜 복음을 내세워, 신도들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들을 한다. 가짜 복음이란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를 의미한다. 대부분 교회 안에 이런 가짜 복음이 너무나 만연한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13-15절에서『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없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교회에서는 마태복음 11장 12절의 말씀을 성도는 구원을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구원은 각자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몸부림 친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침노할 수 있는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침노하는 것인가?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에다가 무엇인가를 더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14절의 (없음) 부분은 헬라어 성경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없음으로 되어 있지만, 스테파누스 성경은 포함되어 있다. 14절을 스테파누스 성경에 따라 번역해 보면,
ουαι δε υμιν γραμματεις και φαρισαιοι υποκριται οτι κατεσθιετε τας οικιας των χηρων και προφασει μακρα προσευχομενοι δια τουτο ληψεσθε περισσοτερον κριμα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이 말은 유대지도자들이 성전의 주인처럼 힘없는 백성들을 갈취하면서 겉으로는 외식하는 자의 모습을 하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없다는 말이다. 오늘날 가짜 선지자들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는 것이다. 이들이 폭력자라는 말이다. 예수님도 폭력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다. 천국(예수님의 몸)을 이 땅에서 빼앗겼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므로,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천국을 회복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역시 천국(하나님 나라)이 되는 것이다. 성도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천국(하나님 나라)을 회복하는 것이다. 보좌의 하나님 나라와 구별되는 천국을 셋째 하늘이라는 용어로 바울은 사용한 바가 있다. 물론 셋째 하늘인 천국도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에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