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장날에 아라리 축제에 정선의 장터 앞 버스정류장은 그야말로 북적거린다. 대부분의 연로하신 어른들이 줄을 안서고 버스로 우 몰려드니 난리다. 나는 멀찍이 떨어 져서 그분 들이 다 타시기를 기다린다. 줄을 서면 간단히 끝날 일인데 라고 생각하며... 그 좁은 도로에 차는 밀리고 사람들은 모여들고, 대목을 보느라 사과장수 아저씨는 제일 복판에 봉고트럭을 떡 하니 세우고 서는,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장사에 정신이 없고....하여간 가관이다.
경찰들과 모범운전자들, 해병전우회가 총 동원이 되어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해 보려고 연신 호각을 불어 대고.... 거기에 품바와 엿장수의 고성능 스피커,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하긴 1년에 한번 있는 대목인데 오죽하랴...나는 적당히 떨어져서 그 광경들을 지켜보다가 맨 마지막으로 여량행 만원 버스에 몸을 싣는다. 아마 이 버스 안에서 내가 제일 젊은듯 싶다. 다들 읍내 나들이에 이쁘게 치장들 하시고 나오셨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는 막차는 동네 입구의 정거장 마다 다 멈춘다. 나이 드신 분들이 힘들데 내리시는 동안 버스기사 양반은 느긋이 기다려 줄줄을 안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은 여전히 참 좋다. 이제 추수만 기다리는 벼들의 노란 빛깔과 깊어 질대로 깊어진 녹음의 짙푸름, 의연히 담담히 고고한 자태의 소나무들을 감상하는 동안,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그래도 앞으로는 간다. 여기서 바빠서 헐레벌떡이면 그 사람만 손해다. 느긋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흔들리며 가는 게 상책...여지 없이 할머니 한분이 묻는다. 서울 사람 이래유...어디까지 가더래유...왜 혼자 래유...이렇게 여량, 아우라지라고 부르는 면소재지에 도착한다. 객지 나갔다 집에 돌아오듯이 나는 그렇게 아주 편안함으로 옥산장을 향하여 걷는다.
옥산장의 안주인 전옥매 여사와 이제는 운영을 총괄하는 하니엄마, 며느리 지선엄마가 거의 맨발로 뒤어나와 반겨준다.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발걸음을 하셨냐...왜 집사람은 안오고 혼자 왔냐...점심은 어디서 먹었냐...배고프겠다... 빨리 저녁 하자...순간 내가 꼭 이집의 큰아들인가 싶다. 이곳은 늘 외갓집 같은 곳이다. 푸근하고 아늑하고 정겨운 곳, 어제의 그 숙소와는 정말 비교가 된다. 숙소는 비교가 안되게 정갈하고, 방은 따스히 아늑하고...이렇게 나는 아우라지에서의 1박을 시작하며 비로소 제대로된 객지에서의 하룻밤을 시작한다.
옥산장을 아시나요 !
장 남 기
흰 구름 동무 삼아
굽이 굽이 오르는 길
백봉령 넘어
푸름의 바다 속
작은 땅,
고운 땅,
여량 땅,
아우라지 휘도는 물
모두를 감싸 안고
모두를 아우르며
우리를 보듬는 곳,
그래서 여기는
아우라지, 여량 이라네.
인심은 좋았고
사는 것은 힘들었고
그래서 울었고
지금도 우는 곳,
그 땅에 자기는 울면서
자기 눈물 닦으며
남의 눈물 보듬는 사람
옥산장의 전 옥매 님 !
그대 있슴 에
객지 같지 않은 곳
타향 같지 않은 곳
그래서 가고 싶은 곳
그래서 안기고 싶은 곳,
키 넘어 옥수수
그 아래 흙 담장
키 큰 패랭이 꽃
흐드러진 우리 들꽃
저마다 사연 안고
이제야 빛을 보는
돌의 이야기
함께하는 장석 자리
우리 땅
우리 하늘
우리물이 아우르는 곳
황토방, 굴피 집
그 지붕의 흰 박꽃
정선의 여량
옥산장을 아시나요....
(1999. 8. 9 여량 떠난 다음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