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을 回顧하며 정리하기에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고 하여도 차제에 지난날들을 簡略하게 整理해보는 것은 남은 삶(The rest of my life)을 무엇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對答을 어렴풋이나마 찾아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동안 한번도 自身에게 滿足한 적이 없이 彷徨하며 못 다한 꿈과 하고 싶은 일들이 아직도 눈앞에 산적해 있어도, 그나마 오늘의 내가 이만큼 健康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同僚, 先後輩들의 激勵와 友情 그리고 선생님들이 주신 지혜와 가르침 덕분으로 이 모든 분들께 먼저 感謝하지 않을 수 없다.
Cyworld 에서 나는 나의 ID로 SNSKSS의 약어를 자주 쓴다. 그 의미는 익산 삼기初等學校의 S와, 남성中學校의 N , 서울고의 S, 陸軍士官學校의 K, 美國의 스티븐스 공대의 S 그리고 독일 Stuttgart대학의 S 등 내가 다닌 학교들의 첫자를 나열한 것으로 내가 일생동안 敎育을 받은 학교의 영문 略字이다.
서울고를 졸업하면 당연히 서울대를 가는 것이 定道인데 나는 그 길에서 陸士를 택했다. 그래서 그것이 오늘 나에게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이는 Frost의 "The road not taken "의 한 부분이다.
하마터면 아주 오랫동안 쌓아둔 앨범들을 펼쳐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어떤 追憶들이 있었으며, 무슨 말을 써야 할 까하고 이것들을 뒤적여 본다. 그렇게나 渴望했던 서울고 뱃지를 얻고도 꿈을 實踐하겠다는 勇氣조차 없이 흘려버린 3년을 생각하면 오늘까지도 내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때 家庭形便이 어려워 못 다한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학교생활, 과외활동 趣味활동, 異性교제등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해본 것이 없다. 아울러 多讀,多作,多想諒을 못했으니 國語, 英語 成績은 오죽했으랴
그런 반면에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뒷줄에 가까웠던 고등학교 졸업이었지만 그 성적에도 육사를 졸업후 '82년 계절의 여왕 5월에 나는 미국의 Stevense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碩士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때 5월은 정말로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절로 이해인 修女의 5월의 시가 외워 질 만큼!
"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抒情詩를 쓰는 5 월
피곤하고 散文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祝福을 쏟아내는 5월
욕심 때문에 잃었던 視力을 찾아
빛을 향해 눈 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이 얼마나 아름다운 表現인가!
그 한참 뒤에 나는 다시 독일 Stuttgart에서 博士과정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최단기간에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었지만 이때 나는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만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Stuttgart에 거주하는 한국인 事業家는 "저 사람 학위 공부 마치고 歸國도 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 나는 곧바로 일어서서 세수하기조차 힘들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어쨌든 이제 獨逸은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바로 인접한 日本은 가보지 못했지만 그러나 독일은 매년마다 가는 셈이다.
獨逸語 하면 高校때 獨逸語 시간에 박 명석 선생님이 어렵게 獨逸語를 가르쳐주신 記憶이 난다. 오죽하면 獨逸語 試驗때 모르면 Heinlich Heine의 시 한 귀절이라도 써내면 점수를 주시겠다고 하시었겠나!
"Du bist wie eine Blume ( 그대는 꽃인양 )
So hold und schoen und rein, ( 귀엽고 맑고 아름다워라)
Ich schau' dich an, und Wehmut (내 그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
Schleicht mir ins Herz hinein. (아픔은 저절로 가슴속에 스미고 )
Mir ist, als ob ich die Haende (그대의 머리위에 내 손을 얹어)
Aufs Haupt dir legen sollt' (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라)
Betend , dass Gott dich erhalte (하나님이 그대를 지켜주시기를)
So rein und schoen und hold.( 맑고 귀엽고 아름다운 그대를 )“
Heinlich Heine는 一生동안 여자의 아름다움과 純潔을 노래한 詩人이었다.
나의 Military life의 후반부를 정리하면 이렇다. '82년에 中領을 달고 8년이 지난 '90년에야 대령이 되었다. 정말로 긴 세월이었다. 그 와는 반대로 大領에서 '96년의 將軍까지는 빠른 進級이었다. 그 동안 큰아들 鳳修는 대전 産業大學 4학년이 되었고, 막내아들 成旭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陸士에 入學하여 인제 3학년이 되었으니 벌써 한 cycle 지난 셈이다.
아버지가 군에서 못 다한 많은 꿈들을 成旭이가 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軍 생활이 全部였으니 나는 아직도 서대문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 그러나 Don't work for the money, but have money work you 라는 말은 잘 이해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博士와 將軍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조그만 成功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나 이는 주위에 초,고등학교 親舊들의 激勵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도 변함없이 항상 念慮해주고 격려해준 3학년 5반 반장 정원이, 응헌이, 상복이......등 親舊들과 병대, 호섭이, 성환이 등 초등학교 親舊들에게 항상 感謝하고 있다.
世上을 사는 동안 진정한 親舊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人生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는 여럿이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서 제일 아쉬워하는 것이 認 하지 못하고, 남을 위해 한일이 없고, 마음껏 즐겁게 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한다.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일생이다.
이런 점에서 이제부터라도 가야 할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남은 기간이라도 내가 할 수 있고 ,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못 다한 讀書도 하고, 등산도 열심히 하고, 골프도 즐기고, 旅行도 많이 해야겠지...... 언제부터인가 나는“늙은 軍人의 노래”를 즐겨부른다. 서울고 졸업후 40년의 인간 최종오의 歷史; 이 노래를 부르며 마치려 한다.
“나 태어난 이 江山에 軍人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三十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靑春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靑春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軍人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만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어라 軍人 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靑春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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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eine의 詩를 기억하며 학위에 매진했던 시절이 귀한 열매를 맺었군요.. 건강하시기를. . 독일어는 서양사를 가르치신 이인호선생님도 계셨었지요 ..
최종오 장군!
저 높고 높은 하늘나라에서 잘 있소? 자네가 홀연히 떠나간 후 해도 지나 오랜만에 이름을 부르게 되는구료. 자네 부르는 소리 잘 들리오? 대전 현충원에서 안타까이 弔辭를 낭독하는 동안에도 실로 옆에 누워 대답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던 자네.... 그 어렵고 힘들었던 군 시절을 언제 어디서나 인왕산 억센 바위처럼 꿋꿋하게 견뎌내어 성공한 모범장군으로 귀감을 보여주어 고맙고 마음에 새겨두고 있네. 두 아들도 당당한 나라의 미쁜 일꾼으로 세워놓으셨으니, 자네야말로 이승에서의 미련일랑은 떨쳐버려도 좋을걸세.
이제, 우리 종오 친구야!
조금있다가 다시 해후할 날을 기약함세.
조금있다가 말일세.
최 장군,
당신이 가고 이곳 양평이 너무 쓸쓸해졌다오.
형수님도 대전으로 이사가셔 우리 집사람이 매우 허전해하고 있고...
글쎄 아무리 친구가 좋다 해도 석호가 간 지 열흘만에 뒤따라가는 법이 어디 있나?
좋은 친구, 최 장군!
이승에서는 점잖게 남을 배려하느라고 마음 고생 많이 했는데 거기에선 최 장군 하고 싶은 대로 하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