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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여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화교들은 소매잡화 점포와 주택을 짓고 본격적으로 상권을 넓혀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소금과 곡물을 수입, 193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20년대부터 6·25 전쟁 전까지는 청요리로 명성을 얻었는데
공화춘, 중화루, 동흥루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환 거래규제, 무역 규제, 거주자격 심사 강화 등
각종 제도적 제한으로 화교들이 떠나는 등 차이나타운의 화교사회가 위축되었으나
한중수교의 영향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적 의의가 깊은 관광명소로서
관광쇼핑, 특화점, 예술의 거리 등 권역별로 변화하고 있으며
풍미, 자금성, 태화원, 태창반점, 신승반점 등이 중국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화교 2,3세들로 구성된 약 170 가구, 약 500명이 거주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천차이나타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 서해랑길 95코스』ㅡ걷고싶지 않은 길이지만
◈언제: 2023/08/ 17(목요일)
◈소재지: 인천광역시
◈코스경로: 선학역→문학산→남향그린공원→숭의역 →자유공원입구
◈거리 : 17.19km
◈시간 :(느림 속의 여유시간)
◈교통: 자차
◈네비: 시작: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 406-9 (선학역 3번 출구)
종료: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3가 6-9 (선린문 부근)
◈누구랑 : 마눌과
◈날씨 : 맑음 33도 폭염
◈시야와 조망 상태: 불량 연 박무로 근거리만 볼 수 있다
95코스 G.P.S위성지도 ↓
산길 샘 앱으로 보는
실제로 진행한 네이버 HD지도(트랙.고도표) ↓
통계정보
거리에비해 시간이 엄청 긴 시간이었다
역시 더위 탓이겠지 그늘이 있으면 무조건 쉬어가야 한다
무려 1시간 10분을 쉬어갔다 ↓
서해랑길 95코스는
문학산숲과 차이나타운이 볼거리였다
그 나머지는 도로 속을 달리는 대형들의 굉음과 경적소리뿐
여기에 물류 항만 그리고 공단에서 나오는 악취뿐 하지만 이것도 역시
서해랑길의 일부이기에 더위와 싸우면서 진행한 것이다
이번코스는 나에게는 엄청난 추억이 있는 길이었다
약 20여 년 전에 노래방을 내가 직접 운영했던 그 건물을 지났고
어머님의 화상으로 치료하다 돌아가신 인하대병원을 지나갈 때의 슬픔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짜증과 지루함으로 다녀와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엄청난
역사의 길을 다녀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비류와 미추홀 백제 우물터
그리고 차이나타운들은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역사의 길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으니
더위와 짜증 속에 그래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고 싶다
◐서해랑길 이야기 ◑
날머리에다 자차 어렵게 주차하고 택시 타고 여기 들머리
선학역 3번 출구에서 사진으로 인증 남기고 출발한다 오늘도 폭염이라 끝나고 패잔병의 모습이겠지 ㅎㅎ
그디 방향지시화살표를 자세히 보면은 반대로 붙어있다 혼돈하지 말았으면 한다 ↓
연수둘레길과 함께 문학산까지 진행할 것이다 ↓
출발한다 음식문화거리 아치형 간판이 보이는데서 우측길로 접어들면 된다 ↓
음식문화의 거리란다 참 엄청나게 발전했다 여기도 ↓
왜 그런 말을 하냐 하면은
20년 전에 여기서 약 3년간 지냈기에 하는 말이다
투다리와 스타노래연습장 건물에서 내가 3년 넘게 기거하면서 살았기에 ㅎㅎㅎ ↓
지난 코스 선학역에서 마치고 내가 직접 운영했던 노래방을 찾아보려고
이 주위를 헤매었지만 20년 추억이 갑자기 생각나나? 이 근처에 있는 것만 알았지
포기하고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건물을 보니 투다리 생맥주집을 보니
아~~~ 여기구나 집사람과 환호한다 집사람도 이제야 알아본다 그때당시 노래방 간판은 곰 노래방이었는데
지금은 스타노래방으로 바뀌었구먼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때당시는 민가만 몆 채 있고 상가는 형성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변해 버렸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는데 암튼 약 천만 원쯤 손해 보고 넘겼는데
내게는 첫 사업에서 쓴맛을 느꼈구먼 지금은 자리가 아주 좋은 자리인데? ㅎㅎㅎㅎ ↓
한동안 그 건물에서 추억을 되새기고
그럼 일주일에 한 번씩 문학산을 운동으로 다녔는데 그 추억의 길도 찾아보자 했구먼
그때당시는 이렇게 공원으로 형성화 되지 않았다 지금은 공원길로 ↓
역시 산책로답게 잘 꾸며 놓았다 ↓
짧은 오름계단을 오르면 작은 봉우리가 나오고 봉우리에는 ↓
정자형식의 조망대가 나오는데 정자 모양이 희한하게 생겼네
길마산전망대인가? ↓
오늘 같은 이 시야에 조망은 기대하기 힘들고 근거리에 있는
문학경기장만이 뿌였게 조망된다 ↓
그리고 저 산줄기는
좌측 게양산에서 뻗어 나온 한남정맥 마루금이다 ↓
전망대에서 다시 둘레길로 진행하다 보면
이렇게 확 트인 공간이 보인다 좌측으로 서해와 그 넘어 시흥으로
경기둘레길과 서해랑길이 함께 이어진 길이고 우리가 이미 진행했던 길이다 ↓
문학산 정상이다 ↓
걸어왔던 길 뒤돌아보고 ↓
문학산 정상은 20년 전에는 군사지역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고
여기서 나는 되돌아간 기억이 난다 1주일에 한 번씩은 노래방 운영하면서
운동으로 다녀갔던 곳이 이곳이다 ㅎㅎ ↓
지금은 이렇게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
개폼도 잡아보고 조망해 보지만 연. 박무로 아무것도 구별할 수가 없다 ↓
이제 문학산 정상은 바로 코앞이다 ↓
지금도 통제를 관리하는 것 같다
혹시나 야간에 하시는 분들은 참고해야겠다 ↓
문학산 정상부 전경이다 굉장히 넓다 ↓
정상석이 있지만 특히 해서 여기서 인증 남긴다 ↓
조망대가 있지만 시야가 안 좋아 그래도 가본다 ↓
인천항만 겨우 보인다 ↓
그리고 영종대교만이
저 다리로 인천공항 갈 일이 앞으로 몆 번이나 있을까? ↓
문학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제 옷을 갈아입는 문학산. 힐링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제 품에 안아주며,
도심 한가운데서 계절의 풍성함을 전해주는 산이다.
원래 문학산은 인천의 고대 왕국이었던 미추홀의 진산이다.
인천의 역사와 함께 하였지만, 시민들은 오래도록 정상을 오르지 못했다.
1965년부터 50여 년간 군부대가 주둔한 때문이다. 2015년 10월 15일 개방되었다.
문학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연수구와 남구를 품고 있고, 사람들의 집과 맞닿아 있어 마실 가듯 산을 오를 수 있다.
문학산은 해발 217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대신 선학역 쪽 방향에서 오르면, 길마산전망대까지 잠시 고행을 요구한다.
그 후 문학산성까지는 어렵지 않다. 대신 바위가 많아 등산화 착용은 필수다.
문학산성 둘레로 데크길이 조성돼 있어 걷기가 수월하다.
데크 옆으로 ‘돌 먹는 나무’는 등산객의 피로를 잠시 풀어준다.
정상에 오르면 문학산 표지석과 예전 봉수대를 재현한 상징물을 만나게 된다.
연수구와 남구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 보인다.
도시 전경이 숨결처럼 산자락을 타고 오르고,
시계가 좋으면 청량산을 넘어 팔미도와 무의도까지 보인다.
남구 쪽으로는 인천시청, 서울의 북한산과 인왕산을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산 - 가볍게 느리게 어디로 올라도 좋다 (인천관광 100선, 2016. 11.)
역사관도 볼거리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이 열려있어 드가는데 제지한다
10시에 개장한단다 시방 8시인데 앞으로 2시간 후에?
알았습니다 하고 문학산에서 하산한다 ↓
내려갈 때는 이도로 군사도로로 내려간다
밑에서 차량을 통제하기 때문에 도로 따라 편하게 내려가면 된다 ↓
이런 길은 뒤로 걸어가도 종아리가 시원하다 ↓
비류와 미추홀? 처음 듣는다 무슨뜾일까?
찾아보니 내 머릿속에서 쥐가 난다 어려운 역사관이 숨어있다
백제건국 설화가 등장한다
또다시 온조와 비류가 등장한다
요약하면 비류는 물고기 잡기 좋다 하며 바닷가에 나라를 이곳 미추홀에 세웠는데
이곳 미추홀땅이 짜서 농사가 잘 지어지지 않고 백성들이 굶게 되자 죄책감으로 죽었단다
암튼 자료를 찾아보니 동명성왕 나오고 주몽 나오고 대충은 이해가 가는데
그 자료를 여기에 올려보려 했는데 분량이 넘 많아 내식으로 정리해서 올려본다 ㅎㅎㅎ
인천에 미추홀구가 있는 것 누구 아십니까? 저는 오늘 처음 알았네요 ↓
인천의 태동지 백제 비류의 발상지 이것 보면
여기가 어머어마한 역사가 있는 지역인 것 같은디 ↓
이 문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삼호현고개가 나오는데 이것 또한 재미있는 설화가 있네요 ↓
참 삼호현은 재미나는 설화가 있는 고개입니다 ↓
삼호현고개에서
이런 숲길로 계속 내려갑니다 ↓
와~~ 우 출근전쟁이 맞네요 ↓
문학산에서 내려오니 주택지역이 나오고 ↓
주택지역 엉성한 곳에 이런 ↓
백제 문화의 중심지라 불리는 인천 연수구 청학동 비류마을.
48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에는 오랫동안 주민들이 지켜온 백제우물터가 있다.
백제우물터의 기원은 비류가 세운 비류백제로 알려졌다.
비류가 문학산 주변을 근거지로 나라를 세울 때 산 정상‧중턱‧아래에 1개씩 우물을 팠다고 한다.
이후 만들어진 문학산성 안에 정상‧중턱 우물이 들어가
아래 우물은 성 밖 백성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상에 판 우물은 일제 해방 후 미군이 미군기지를 만들며 없앴고,
중턱에 판 우물은 문학터널 공사로 사라져
현재는 백성들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백제우물터만 남아있다.
이와 상관없이 우물이 깊다는 의미인 ‘백자’가 ‘백제’로 전승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백제우물 이야기는 청학동 주민들의 입을 통해 오랜 시간 전해 내려왔다.
청학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집안마다 끊임없이 이 이야기가 대물림된 것이다.
주민들이 백제우물터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
당시 청학동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백제우물터가 도로 계획에 포함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연수구 역사학자들과 주민들은 백제우물터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백제우물터 일대를 다니며 조사를 시작했고, 주민들이 이를 도왔다.
그 결과 우물 주변에서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토기, 도자기 조각, 돌화살촉, 돌그물추 등을 발견했다.
결국 구는 백제우물터를 도로 계획에서 제외시키고 보호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우물터의 모습은 2018년에 구가 백제사신길을 조성하며 새롭게 만들었다.
구는 백제사신길 관광코스에 우물터를 포함해 공원처럼 조성했다.
이때 지름 2m 정도의 강돌로 쌓은 큰 웅덩이 모양의 우물을 고증과 다르게 바꿨고 보호각도 새로 세웠다.
이로 인해 백제우물이 가진 역사성이 사라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90년대 말 학자들이 조사를 마치고 주민들과 세운 표지석도 담장 밖으로 밀려나 찾기 힘들다.
설상가상 무성하게 자란 풀들은 관리조차 되지 않은 모습이다.
우물터는 구가 상하반기마다 뽑는 공공근로자가 관리한다.
구 관계자는 “상반기 근로자는 보통 할 일이 많이 없는 겨울에 일해
이번에 뽑지 않았다”며 “7월에 하반기 공공근로자를 뽑아 관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있기는 있는데 관리가 엉망이다 ↓
자~~ 이제부터는 시내길과
차량들 소음과 더위와의 싸움이 되겠다
횡단보도를 수없이 지나야 한다 신호시간 기다리는 시간도
합치면 약 30여분은 될 것 같다 ↓
그래도 이런 길은 그늘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고 ↓
백제사신길이라 ↓
이렇게 벽화거리로 조성해 덥지만 그래도 흥미로워 읽으면서 걸었구만 ↓
지나고 ↓
옥련시장입구를 지나는데
시장에는 먹거리들이 있을 텐데 아직은 배가 덜 고프고
하지만 이길 끝까지 편의점 보기가 힘들었고 음식점 또한 보기가 힘들었다
참고하면 될 것이고 ↓
조금 진행하다 유명빵집에서
마눌이 좋아하는 단팥빵이 이제 막 구워 나와 땃땃하더만
더위도 식히고 셋거리도 먹고 ↓
빵으로 셋거리 먹고 다시 길거리로 ↓
능허공원 앞을 지나고 자질 구질한 거리를 지나
보이는 도로 쪽으로 진행하다 보니 횡단보도를 지나야 하는데 좀처럼 신호가 안 바꿔 ↓
요걸 누르지 바로 바뀌더라 암튼 이쪽은 사람들 왕래가 거의 없다 ↓
횡단보도 걷느자마자 갯벌이 보인다
바다라면 바다이지만 지금은 이 갯벌을 보니 헛 구역질이 난다
염분냄새와 좁은 해안 갯벌을 보니 답답하고 더 더운 느낌이 든다 ↓
쩌그는 인천항 같은데 ↓
완전 땡볕에 노출되어 진행한다 ↓
그 속에 뭐 잡고 있습니까? ↓
우리보다 저분이 더 대단하십니다 그 갯벌에서 허리 숙이고
이 더위속에 건강 잘 지키세요 ↓
바닷물 유입을 차단하는 보인 듯 ↓
그리고 끝없는 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잔차생각이 간절히 난다 그래도 오늘은 그 친구 없이 우리만 두 발로 걸어야 한다
좌측은 공원이고 우측은 호수형태의 바다인데 아까 보였던 수문보에서 바닷물을 막고 있어
호수형태가 된 것 같다 2km 이상 지루하게 걸어야 한다 ↓
우찌 주위의 색과 똑같이 위장색인지
자연의 섭리가 오묘하다 그려 ↓
지루하게 일직선길을 빠져나와 좌틀로 방향전환한다 ↓
그리고 스쿨존 자질 구질한 거리를 지나
여기 하천둑방에 데크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늘이 있어
얼마나 반가운지 한참을 여기서 쉬어가고 ↓
다시 몇 번을 도로 횡단하고 결국은 육교까지 올라간다
인하대병원 교차로인 듯하고 육교 오르는데 얼마나 짜증인지 ↓
저 병원도 사연이 있는 병원으로
어머님이 저 병원에서 화상으로 사망하신병원이다
장남이 이쪽에 있으니 시골에서 이쪽으로 모셔와 치료받던 중 사망하셨다
나도 간병으로 자주 왔기에 그때의 아픔이 지금도 생각난다 ↓
지나고 ↓
지나는데 마눌이 배고프단다
주위는 식당들이 없다 찾고 찾다 포기하고 마침 이마트 건물이 보인다
이마트에는 음식점이 상주해 있어 그리 들어간다 ↓
중식과 한식이 있는데 한식은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
시원한 냉면이나 콩국수를 먹을까 했는디 비빔밥으로 배를 채운다
근디 재료 원산지를 보니 다 외굿산이다 특히 중국산이 기가 막힐 노릇이다 ↓
밥 먹고 마눌에게 제안한다
마트에서 시원하게 기다리면 어떻겠냐고
너무 더우니까 얼마 안 남았으니 나 혼자 갔다 와 자차로 당신 데리로 오겠다고 했더니
사양하고 끝까지 진행한단다 오~~ 역시 철인이셔
신포역 지나고 ↓
거리가 유난히 화려하고 깨끗해진다 왜 그럴까? ↓
건물들도 예사롭지 않다 다 이국적인 건물이다 ↓
모야? ↓
차이나타운 전으로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양식 건물들이 ↓
중구청 전에 좌측으로 방향전환하고 ↓
이 거리는 타임머신 타고 온거리인 듯 착각이 들고 ↓
이제부터 차이나타운 거리로 ↓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여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화교들은 소매잡화 점포와 주택을 짓고
본격적으로 상권을 넓혀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소금과 곡물을 수입, 193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20년대부터 6·25 전쟁 전까지는
청요리로 명성을 얻었는데 공화춘, 중화루, 동흥루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환 거래규제, 무역 규제, 거주자격 심사 강화 등
각종 제도적 제한으로 화교들이 떠나는 등 차이나타운의 화교사회가 위축되었으나
한중수교의 영향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적 의의가 깊은 관광명소로서
관광쇼핑, 특화점, 예술의 거리 등 권역별로 변화하고 있으며
풍미, 자금성, 태화원, 태창반점, 신승반점 등이 중국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화교 2,3세들로 구성된 약 170 가구, 약 500명이 거주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천차이나타운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색깔이다 ㅎㅎ ↓
황재의 계단이란다
아~참 이길로 계단 끝까지 오르는 날머리다
우회해서 가기 실은 사람들은 이 계단으로 오르면 된다 ↓
뭐 동화의 나라 거리도 지나고 ↓
자 언덕 끝에서 우측으로 드가면 되고
좌측에는 내 자차를 주차한자리다 ↓
언덕 올라와서 다시 2백 미터 더 진행해야 한다 ↓
저 끝이 날머리다
좌측의 벽화는 삼국지 벽화이다 ↓
저 문이 선린문이라는데
그 앞에 날머리 95코스종점과 96코스 시작점 종합표지판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없으면 없다고 둘레길 후기를 올리는 사람들은 써 주었으면 많은 도움이 될 텐데
그런 애기들을 다들 안 하고 여기서 마친다만 한다 모야 끝까지 안 갔나? 의구심이 들었는데 ↓
계단 앞에 종합안내판대신 인증앱이 붙어있다
여기서 인증하면 되겠고 다만 주위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종합안내판은 설치하지 않았나 보다
이런 글은 먼저 하신 분들이 써 주셔야 뒷따라 오는 사람에게 정보이고 도움일 텐데
선답자들 후기글이 아쉽기만 하다 ↓
자차주차는
보시다시피 날머리는 주차공간이 없다
주위를 돌고 돌고 해서 교회에서 개방하는 주차장이 있어 주차한 것이다
예배날짜만 아니면 개방한다는 문구도 쓰여있다 다행히 오늘은 예배일이 아니어
주차했지만 암튼 주위에 무단주차하는 차량도 많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자차회수해서 귀가하는데 역시 인천항 주위는 엄청 복잡하더구먼 어렵게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진입 비교적 평온하게 귀가한다 ↓
첫댓글 오늘에 들머리 선학역
곰바우님 지난번에도 노래방 하던곳을 찾았는데 실패
오늘은 예전 건물을 찾았다
한20년은 넘은것 같은데 ~
찾으니 예전 추억이 떠올라 되게 반가워 한다
이제 문학산을 가야 하는데 곰바우님 .. 예전에 운동하러 다녔던곳 이라 한다 ( 방가방가 )
이곳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것 같다
한참후 정상 오르니 와~~ 정상을 너무 잘해놨다
시야가 확 트이고 , 넒어 속, 이 뻥뚤린것 같다
잠시 둘러보고 세맨길 따라 하산하면 도로길
도로길따라 이어지는 미추홀 건국 이야기
백제때 이야긴데 우린 대충 보면서 걷는다
이곳이 역사적 의미가 깊은곳 으로 생각 되지만 ~
한참후 호숫길, 숭의역 근처에서 점심을 사먹구 ~
신포역 지나 이국적인 마을 지나 차이나타운 거리로 들어 선다
지난번에 이어 두번째
실은 구경거리도 많지만 날이 너무 뜨거워 가기 바뻤다
막바지 계단길 내려서면 오늘에 날머리 차이나타운
뜨거운 땡볕이지만 ~
오늘에 목적지 까지 달성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고~ 오
편한안 휴식으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곰바우님 ... 수고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