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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함께 정혜를 닦아 도솔천에 나며 성불하기 위한 결사문③
그 뿐아니라 미혹한 머리를 흔들면서 곤궁한 아이가 고향을 떠나 윤회하며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숱한 고생을 겪으며 하루밤에도 만 번이나 죽는 고통을 겪을 적에 매양 한 생각에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프며 저도 모르게 짧은 탄식과 긴 한숨이 나오니 어찌 다반사로 여겨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정을 생각하고 널리 장수하고 안락한 나라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노라.
또 옛사람이 이르기를 “취미가 다르면 얼굴을 대하고 있어도 초나라ㆍ월나라요 도가 합하면 하늘과 땅이 같은 곳이라.” 하였으니 같은 곳이기에 만상이 비록 펼쳐졌으나 공한 성품은 그대로 있고 온갖 물이 함께 흘러 들어가도 바닷물은 불지 않나니 다행히 바라건대 용맹심을 분발하여 허망하고 무상한 인생살이를 밝게 관찰해서 적멸한 법계의 성품을 깨달아 닦아서 그 견해와 아는 바를 잊어버리고 정법안장과 열반묘심을 증득할지어다.
대저 이와같이 하면 그 누가 불가능하다고 하며 누구인들 이 즐거움을 원하지 않으랴.
「인행경(因行經)」에 이르기를 “석가세존이 저 과거세에 선혜선인으로 있을 때 연등불께서 가시는 길에 머리털을 땅에 깔았으므로 백만 인천 대중이 기뻐하고 찬탄하였는데 그 인연으로 다 함께 영산회상에 모여 도를 이루었다.” 하였으며 「천불인연경」에 이르기를 “현겁천불이 과거 보등염왕여래의 상법(像法) 가운데 학당의 동자로 있을 때 삼보의 이름을 듣고 불상에 예배하며 넓은 서원을 세우고 최상의 보리심을 발하고 나서 뒤에 함께 천불이 되었다.” 하였다.
그 외에 모든 불보살이 함께 발원하고 도를 이루었다는 것이 경에 없는 데가 없으니 가까운 예전에 혜원법사가 여산(廬山)에서 결사하고 백낙천은 향산(香山)에서 결사하고 목우자는 팔공산에서 결사한 것이 모두 이러한 뜻이다.
현장법사가 이르기를 “서역(西域) 사람들은 모두들 도솔천에 나는 업을 지으니 대체로 욕계(慾界) 안에서 생리가 서로 합하여 그 행이 이루기 쉬우므로 대소승 법사들이 모두 이 법을 허락하였다.” 하였다.
미타정토는 범부가 사바세계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때문에 신ㆍ구역 경론에서 모두 이르기를 “십지 이상의 보살이 분수대로 보신 부처님 정토를 볼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하품의 범부로서 왕생을 얻겠는가.
그래서 대승에서는 허락하고 소승에서는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법사는 일생동안 항상 도솔촌에 왕생하기를 원하다가 임종시에 상생하여 미륵부처님을 친견하기를 발원하고 대중을 청하여 게송을 설하기를
미륵여래 응정등각(應正等覺)께 귀의하옵나니 바라옵건댄 모든 중생들이 속히 자비스런 모습을 뵙게 해 주소서.
미륵여래와 함께 거처하는 대중에게 귀의하옵나니 바라옵건댄 목숨을 다한 뒤에 반드시 그 가운데 왕생하여지이다.
현장법사는 법을 아는 큰스님이라 반드시 스스로 그르치거나 남을 속이지 않는다. 하물며 고금전기에 실린 도솔천에 상생한 사람을 어찌 다 기록하겠는가.
무착(無著)ㆍ천친(天親)보살 같은 이들도 또한 도솔천에 상생하기를 원하였으니 이제는 다만 법을 취할 뿐이다. 비록 그러하나 정토와 도솔이 그 수행하는 사람마다 때에 따라서 지원함이 다름이 있으나 어찌 도솔에 상생하려는 이가 미타여래를 친견하기를 원치 않으며 미타정토에 왕생하려는 이가 미륵존불을 받들어 섬기길 원하지 않으리오. 마치 백옥과 황금이 각기 참 보배이며 봄 난초와 가을 국화가 함께 맑은 향기를 풍김과 같으니 우열과 어렵고 쉬움으로써 옳으니 그르니 하여 너니 나니 하는 견해를 내어 다투지 말지니라.
이 계안에 먼저 들어온 이도 이와같은 상생의 행원이 있으며 뒤에 결사에 참가하는 이들도 또한 마음과 말이 같아야 한다. 도의 힘을 이루지 못한 이는 이러한 원력에 의지하여 도솔천 내원궁에 상생하여 미륵존불의 최상의 현묘한 법문을 들어 속히 대각을 증득하고 중생을 제도하면 어찌 유쾌하고 즐겁지 않겠는가.
원컨댄 모든 수행자들은 옛일은 중히 여기면서 지금 것은 가벼히 여기지 말고 발원하고 동참하여 좋은 인연을 깊이 맺을지어다.
그 밖의 일상생활의 조행은 경전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스승으로 삼아 본받으면 되겠기에 조목조목 분석하지 않는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만행을 갖추어 닦더라도 오직 무념으로써 종지를 삼는다.” 하였으니 수행의 요긴함이 결정코 여기에 있음이라 치우치거나 과불급의 실수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슬프다 사람의 몸을 한 번 잃으면 만겁에 다시 찾기 어렵나니 옛날의 영웅들 지금은 어디 있는가.
그래서 고덕이 스스로 경계한 게송에 이르기를 “거룩하다는 이름도 구하지 말고 재물도 구하지 말고 영화스러움도 구하지 말고 그럭저럭 인연따라 한 세상 보내리.
세치 기운 떨어지면 누가 주인이며 백 년 뒤에 이 몸은 헛된 이름뿐이로세.
옷이 해어지면 누덕누덕 기워 입고 양식이 떨어지면 그때마다 얻어먹세.
한낱 헛된 몸 며칠이나 살겠다고 쓸데없는 일 하느라고 무명만 키우는가.” 하였고 또 고덕이 세상을 탄식한 시에 이르기를
“자세히 이제와 옛일 생각하니 근심이 그지없네
귀한 이든 친한 이든 함께 한 줌 흙이로세
한무제의 옥당은 티끌에 묻혀지고
석숭의 금곡에는 물만 헛되이 흐르누나
광음은 새벽인 듯 어느새 저녁이요
초목은 봄이러니 잠깐뒤 가을일세
살았을 때 만일 털끗만한 착한 일 없으면
죽은 뒤 무엇으로 명부에 보답하랴”
하였으며 또 고덕의 수행을 권하는 글에 이르기를 “들어갔던 숨이 나오지 않으면 문득 내생이니 설령 처자식이 아무리 애석히 여겨도 그대를 잡아둘 수 없고 친척이 가득한들 누가 너를 대신하랴.
한 무더기 불더미에 태우거나 만리밖 거친 산에 묻어버리고 숲속에 부질없는 비석만 세워놓고 버들가지에 종이돈을 걸어둔다.
눈물을 뿌릴제 속절없이 적적하고 슬픈 바람 부는 곳에 찬 기운만 쓸쓸하다. 어느 곳이던지 이러함을 면하기 어렵나니 이런 지경에서 어찌 반성하지 않으리오.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어떤 말을 믿으리오. 인도(人道)에 태어나서 도를 닦지 않으면 타도(他道)에는 도를 닦기 어려우니 실로 한스럽고 애석하도다.” 하였다.
마땅히 이 결사문을 재삼 읽고 생각하여 마음에 새겨 두고 정진하여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여 이 생애를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이것을 보던지 듣던지 간절히 경계할지어다.
만일 심상히 여겨서 가려움에 신발위를 긁듯 하거나 월나라가 진나라를 보듯 하여 조금도 감동이나 발심이 없다면 병든 이가 약을 구하지 않거나 굶주림에 밥을 먹지 않음과 같으니 나도 참으로 어찌할 수 없을 뿐이로다.
만일 진실로 이 강영과 연원의 도를 행하여 도솔천 내원궁에 상생하기를 발원하는 이는 부지런히 간절하게 선지식을 찾을지어다.
글은 짧고 지혜는 옅어서 말과 뜻을 글로써 능히 다 표현하지 못하였도다.
삼가 이 수승한 인연으로 우러러 축원하노니 황제 폐하 성수만세하며 다음 발원은 해마다 풍년 들어 시절이 평화스러우며 전쟁은 영영 없어지며 정법이 유통되어 저 무궁한 법계의 중생들이 다 함께 묘각을 이루어 지이다.
결사 비구 성우 등은 귀의하옵나니 일대교주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하오며 당대 교주 미륵 부처님께 귀의하옵나니 시방삼세 항상 두루하고 항상 머무시는 불법승께 우러러 엎드려 청하옵나니 연민의 가피력으로 하여금 우리들의 소원이 헛되이 없어지지 않고 속히 성취되기를 엎드려 비나이다.
대한 광무 3년 11월 1일
결사 맹주 비구 성우 분향재배 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