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날아라
이상호
무엇인가 억지로 머리를 짜내어 생각해 내는 것(찾아야 하는 것)을 ‘기억’이라 한다면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 노래 등을 보거나 듣는 순간 저절로 떠오르는 것(찾아오는 것)은 ‘추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억보다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 것 같다.
내겐 딱지와 연이 마르지 않는 추억의 창고다. 딱지를 보거나 연 날리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적으로 되돌아 간 나를 본다.
여름에는 흔하던 대나무 우산이 자취를 감춰 집안 구석구석을 뒤진다. 그러다 마루 밑의 먼지 구덩이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배어 나온다. 엄마에게 혼날 줄 뻔히 알면서도 부엌칼로 댓살을 다듬고 이가 빠진 칼을 숨겨놓았다가 쫓겨나 집에도 못 들어가고 굴뚝 옆에서 새우잠을 자던 일, 제사 때 쓰려고 잘 모셔둔 창호지를 훔치다가 종아리를 맞던 일은 엄하시지만 늘 내편이 되어 주셨던 할아버님(지금은 돌아가심)을 정말 보고 싶게 만든다.
어디 그뿐이랴. 어느 해던가! 내가 몹시 아픈 어느 겨울날 할아버님이 손수 연을 만들어 내 머리맡에 놓아 주셨던 일, 연이 끊겨 아주 멀리까지 쫓아갔는데 그만 너무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 그 앞에서 하염없이 울던 일, 바람이 불지 않아 연만 보고 뛰다가 웅덩이에 빠져 죽을 뻔 한 일 등 사연에 사연이 꼬리를 문다.
연의 역사와 의미
연날리기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기원전 4세기 무렵 그리스 과학자 아키타스(Archytas)가 처음 고안했다고 하며 동양에서는 중국 한나라 때의 무장 한신이 연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최초라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사기에 연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신라 선덕왕 때 “별이 궁성 가까이 떨어져 왕이 패할 징조다”라는 반란군의 헛소문으로 민심이 나빠지자 김유신이 허수아비에 불을 붙여 연에 달아 띄워 “어제 저녁에 떨어진 별이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문을 퍼뜨려 민심을 수습했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밖에 고려 말엽 최영 장군이 탐라국(제주도)을평정할 때 사용했다는 기록과 임진왜란 때 이순신(충무공)이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통신수단으로 연을 이용했다고 한다. 다행히 경남 통영에는 ‘충무 비연 동우회’가 있어 임진왜란 당시 작전용으로 쓰였던 신호연을 오늘에 계승하고 있다.
연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널리 행해지는 놀이다. 인간은 누구나 땅에 발을 딛고 있기에 하늘을 나는 새가 부러웠고 이를 모방하여 자신의 대체물로 커다란 나뭇잎에 끈을 매달아 위로 띄우는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연을 뜻하는 한자어도 ‘솔개 연(鳶)’이고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칼란’(솔개를 닮은 새), ‘카담’, ‘레아’, ‘마누’도 모두 맹금류의 새를 뜻하고 있다. 이 처럼 명칭에 그 흔적이 남아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을 유영하는 모습이 새와 닮았기에 붙여진 것으로 모두 새와 연관됨을 알 수 있다.
재료도 처음에는 나뭇잎이 주재료였다가 이후에는 질긴 종이가 주재료가 된 것 같은데 요즘은 비닐, 천 등 다양한 소재가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연이 단지 하늘을 날고픈 욕망의 대체물 정도의 의미만 지녔을까? 중국에서 날리는 대형 용연(龍鳶)이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액막이연 등은 단순 모방을 넘어서 하늘로 연결된 연을 통해 나쁜 기운을 없애고 복을 빌던 인간의 바램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태국의 고대왕조인 아유타야(1351~1767년)에서는 농사와 관계된 종교적 기원을 담아서 연을 날렸다고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명종21년(1566년)에는 당시 연에 담긴 주술적인 의미가 얼마나 컸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상원(上元)에 연(鳶)을 날리는 일(곧 지연(紙鳶)이다. 세속에서, 지연이 추락된 집에는 그 해에 재앙이 있다고 함)은 예로부터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를 금할 필요가 없으나 오늘은 평소와 같지 않다. 중궁이 외궁에 나가 아직 환궁하지 않았는데 여염사람들이 멋대로 연을 날려 금중에 많이 추락되었으니 오부 관령을 추고하여 치죄하도록 하라.’
사신은 논한다. 상원에 연을 날리는 놀이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일인데 상(임금)이 의혹하여 이 명을 내린 것이다. 대저 임금의 한마디 말은 사방이 다 법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민간에 떠도는 근거 없는 말로써 아동들의 놀이를 금할 수 있겠는가.”(고전번역원에서)
연을 날려보자
몇 해 전 천안의 모 도서관에서 방학을 맞아 지역 아동에게 연 만들기 지도를 부탁 받았다. 문구점에서 파는 연을 가지고 만들었는데 고학년은 방패연, 저학년은 가오리연을 만들게 했다. 다행히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이 있어서 2시간 정도 걸려 모두 연을 만들 수 있었다.
“연은 만드는 것이 50%이고 날리는 것이 50%랍니다.”
풀로 붙인 댓살이 종이에 완전히 붙어 굳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연의 유래며 날리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아이들은 아무도 듣지 않고 오로지 날릴 생각에 어수선했다. 설명을 중단하고 도서관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미리 봐 둔 둔덕으로 갔다. 다행히 바람이 알맞게 불어 연이 하늘을 날았다. 30명 중에 20여명은 얼레의 실을 다 풀 정도로 잘 날렸다.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쏟아지고 하늘에는 많은 연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그런데 한 켠에서는 연이 날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아이들이 있었다. 날지 않는 대부분은 목줄(연과 얼레와 연결되는 실)과 머릿살(제일 먼저 붙여 나중에 활처럼 휘는 댓살)에 문제가 있었다. 목줄은 고쳐서 매줄 수 있어도 머릿살은 어쩔 수 없어 미리 준비해 간 연을 주어 날리게 했다.
날씨가 꽤 차가웠지만 아무도 춥다는 소리를 안 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어른들만 ‘아이 추워’를 연발한다. 거의 1시간 정도 지나 돌아간다고 실을 감으라고 했는데 다른 아이들 얼레에 있는 실까지 얻어 손바닥 정도 크기까지 높이 올라간 4명의 아이들은 집에 안 간단다. 감았다 풀었다 하는 중에 손끝으로 전해지는 떨림의 환희와 바꿀 그 어떤 것도 없는 듯했다. 결국 집에 연락해서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4명을 남겨두고 돌아오는데 나머지 아이들도 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역력했다.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정리했다.
“오늘 만든 것 집에 가져갔다가 바람 잘 부는 날 날리세요. 만드는 방법 배웠으니 망가지면 또 만들면 되고요. 특히 만들기 전에 머릿살이 활처럼 잘 휘는가를 확인하는 것 잊으면 안돼요. 저학년은 가오리연 만들었는데 방패연을 날리고 싶으면 아빠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아빠들은 어릴 때 많이 만들어 봤으니 잘 만들어 줄 꺼예요.”
아이들이 연을 가슴에 안고 들뜬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연 만들기 이상의 값진 선물을 나눠 준 것 같아 행복했다.
집에 가는 길에 아직도 남겨둔 아이들이 궁금해서 그곳에 가 보았다. 모두 돌아가고 텅 빈 둔덕에 바람만 불고 있었다. 그 바람은 내 어릴 적 느꼈던 바람이었다.
그 시절 찬바람이 불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연을 꺼냈다. 실을 더 달라고 조르고 못주겠다면 빙글빙글 아양 떨어 조금 더 주기를 반복했다. 추억 속에서 어느새 내 주위에 옛 동무들이 귀마개를 하고 코를 흘리며 모여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실을 감으며 오늘 늦게까지 남아 연을 띄우던 아이들을 떠 올려보았다. 그 아이들도 겨울날 바람이 불면 연을 날리지 않을까?
연날리기의 경우 외형상으로는 만들기와 날리기가 결합되어 있는 놀이이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기술과 창작의 재미, 잘 날기를 바라는 마음 등이 작용할 것이고 날리는 과정에서는 기술이 필요하고 바람이라는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대보름 이후 연 날리면 고리백정’이라고 놀릴 만큼 사회적으로 제어해야 할 중독성이 강한 놀이인데 이런 중독성은 어떤 부분이 가장 중심으로 작용할까? 자연의 변화 즉 바람이라는 난관이 그 어떤 난관과는 다른 변화무쌍함에 있다. 선풍기에서 나오는 기계적인 바람이 아닌 예측할 수 없는 바람과 그에 맞서는 인간, 연실을 어떻게 조종하느냐에 따라 자연의 변화라는 커다란 난관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 때의 쾌감은 다른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재미인 것이다 . (끝)
첫댓글 태어나서 가장 많이 연을 만들고 날린 것은 서울에서 충주로 내려와 남한강변에 위치한 가흥초에 근무할 때다. 3월에 연을 만들기 시작해서 날리기 시작하다가 거의 5월초까지 줄기차게 연을 날렸다. 많은 연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찢어지면 수리하면서 연의 실체를 알려고 했다. 즉 연의 왜 사람들을 홀리는지 그 까닭을 추적했다. 당시에는 연을 날리는데 급급해서 찾지 못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늘 겨울이면 날 깨우고 연을 날리라고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