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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당집(虛白堂集) 성현(成俔)생년1439년(세종 21)몰년1504년(연산군 10)자경숙(磬叔)호용재(慵齋), 부휴자(浮休子), 허백당(虛白堂), 국오(菊塢)본관창녕(昌寧)시호문대(文戴)
虛白堂文集卷之四 男世昌編輯 / 記 / 嚴上人碧松堂記
師。湖南人也。智嚴其名。慈舟其號。以碧松扁其堂。一日。因吾贅郞崔生。踵門求言於余。余謂師曰。大抵林林總總。盈天地間者皆物也。物之類尙多。何獨取於松乎。余則汨利名。老塵寰者也。雖有慕松之名。而所知者糟粕耳。安能盡松之至味而我爲師記之。不幾於禿者之論髢乎。師曰。然則請以松證吾之道可乎。松之心貞。猶吾道之至正無邪。松之性直。猶吾道之直指見性。松之色不變。猶吾道之不二不壞。松之深根不拔。猶吾本源不動。而衆生皆化於善。松之柯葉層層敷敷。猶吾衆生皆仰大智而得其依庇。松之始生。甲拆句萌。其形至渺。至長而可拱可把。大則三圍四圍。最大者則千圍百圍。立虛牝而上肩千仞之岫。其大無窮。而其見亦與之無窮。猶吾道之由小而大。自下而上。進退不已。終陟於大光明地也。至於林壑幽幽。猩捂注蓬藋之徑。滿堂前後者皆蒼翠也。有時大塊噫氣。則膠刁焉號謞焉。靈籟自發。醒吾心耳而塵念不起。恍然坐我淸淨之界。聽天人八部樂也。當大地凝沍之時。而守一間蘭若。篝燈於榻。獨坐飜經。晨起推戶而視之。則靑女糢糊。騰六飛瓊而擺落。當此時。掬泉煮茗。其味澹泊而無厭。恍如雪山苦行。而苦中自有樂地也。噫。何地無山。何山無松。我之所往而松之隨之。松也我也。卽是閒中友也。卽皆無盡藏也。取不竭而用無禁者也。然則我捨松何適哉。於是相視一笑。遂作碧松堂記。以爲桑門後日再期張本。己未仲秋下澣。西山老叟記。
허백당문집 제4권 / 기(記) / 엄 상인 벽송당기〔嚴上人碧松堂記〕
선사(禪師)는 호남인이다. 지엄(智嚴)은 그의 법명이고 자주(慈舟)는 그의 호인데, 벽송(碧松)으로 그 당(堂)의 편액을 삼았다. 어느 날 우리 사위 최생(崔生)의 소개로 우리 집에 와서 나에게 기문을 구하였다. 내가 선사에게 말하였다.
“대체로 형형색색 허다하게 천지간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모두 물상(物象)입니다. 물상의 종류가 참으로 많은데 어찌하여 유독 소나무에서 당호를 취하십니까. 나는 명리(名利)에 골몰하여 이 티끌세상에서 늙어 가고 있습니다. 비록 소나무를 흠모한다는 이름이 있긴 하지만 아는 것이라곤 그저 조박(糟粕)일 뿐입니다. 어찌 소나무의 지극한 맛을 다하여 내가 선사를 위해 기문을 지을 수 있단 말입니까. 머리가 다 벗어진 자가 머리털을 논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선사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소나무로 우리의 도를 증명하면 될 것입니다. 소나무의 속이 곧은 것은 우리의 도가 사악함이 없이 지극히 바른 것과 같고, 소나무의 성질이 곧은 것은 우리의 도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보아 본성을 깨닫는 것과 같고, 소나무의 색이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도가 차별을 초월하여 통일되어 있고 견고하여 파괴되지 않는 것과 같고, 소나무의 깊은 뿌리가 뽑히지 않는 것은 우리 도의 본원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중생이 모두 선에 교화되는 것과 같고, 소나무의 가지와 잎이 층층이 층을 이루어 무성히 자라는 것은 우리 중생이 모두 큰 지혜를 우러러 그 지혜에 의지하고 비호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소나무가 처음 날 때는 그 씨앗이 터지고 꼬부라진 새싹이 겨우 보이는 정도여서 그 형체가 지극히 작습니다만, 조금 자라서는 한 줌이 되기도 하고 두 손으로 잡을 만하기도 하며, 크게 자라서는 세 아름 네 아름이 되고, 가장 컸을 경우에는 수백 수천 아름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빈 골짜기에 서서 위로 천 길이나 되는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그 크기가 끝이 없고, 그 보이는 것 역시 그와 더불어 끝이 없이 솟아 아득합니다. 이는 바로 우리 도가 작은 것에서 커지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되, 끊임없이 정진해 나아가 끝내는 대광명(大光明)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거하는 골짜기가 깊고 깊어 족제비와 원숭이 같은 작은 짐승마저 쑥이나 명아주 등의 잡풀로 우거진 오솔길에 몰려드는 상황으로 말하자면, 거처하는 집의 앞과 뒤에 가득한 것은 모두 푸른 나무들뿐입니다. 때때로 대지가 숨을 내쉬어 바람이 불면 요란하게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무언가 부르짖는 소리나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바람이 절로 일어나 나의 마음을 깨울 뿐 티끌세상에 대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아 문득 내가 청정한 세계에 앉아 천인(天人)과 팔부(八部)의 음악을 듣는 것만 같습니다.
대지가 추위로 얼어붙는 계절에는 한 칸의 난야(蘭若)를 지키면서 책상에 호롱불을 켜 놓고 홀로 앉아 경전을 넘기다가, 새벽에 일어나 문을 밀고 밖을 내다보면 청녀(靑女)가 눈앞에 흐릿하게 어른거리고 등륙(滕六)이 경옥(瓊玉 눈)을 날려 흩어져 떨어지게 합니다. 이러한 때 샘물을 길어다가 차를 끓이면 그 맛이 담박하여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마치 설산(雪山)에서 고행하는 것과 같지만 고행하는 가운데 절로 즐거움이 있답니다.
아, 세상 어느 곳엔들 산이 없겠으며, 어느 산엔들 소나무가 없겠습니까. 내가 가는 곳이라면 소나무가 따르기 마련이니, 소나무와 나는 바로 한적한 가운데 만난 벗이요, 소나무는 모두 무진장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취하여도 고갈되지 않고 써도 금하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소나무를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이에 서로 마주 보고 한번 웃었다. 마침내 〈벽송당기〉를 지어 상문(桑門)을 후일 다시 만날 장본(張本)으로 삼는다.
기미년(1499, 연산군5) 중추 하순에 서산노수(西山老叟)는 적는다.
[주-D001] 엄 상인 벽송당기(嚴上人碧松堂記) : 1499년(연산군5)에 승려인 지엄(智嚴)이 거처하는 곳의 당호에 대하여 써 준 기문이다. 성현과 지엄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엄 본인이 소나무를 가지고 불도를 설명한 대목이 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처럼 남의 말이나 글로 내용의 대부분을 채운 것으로 유종원의 〈수주안풍현효문명(壽州安豐縣孝門銘)〉과 소식의 〈표충관비(表忠觀碑)〉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이 지어진 때를 살펴보면, 지엄은 36세로 한창 불도에 정진하던 시기이고 성현은 61세로 필치가 원숙할 때이다. 상인(上人)은 승려에 대한 존칭이고 엄 상인은 지엄 상인(智嚴上人)을 줄여 표현한 것이다. 엄 상인(嚴上人)은 조선 초기의 유명한 고승으로, 속명은 송미대(宋彌臺, 1464~1534)이다.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야로(埜老ㆍ野老), 법명은 지엄이고, 당호는 벽송(碧松)으로, 부안(扶安) 출신이다. 성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출가하여 정심(正心)에게서 법맥을 이어받았다. 지리산에서 불법 연구에 몰두하고, 문인 영관(靈觀)ㆍ원오(圓悟)ㆍ일선(一禪) 등 60여 명에게 대승경론(大乘經論)과 선(禪)을 가르쳤다. 1520년(중종15)에 지리산에 벽송사(碧松寺)를 창건하였다. 저서로는 가송(歌頌) 50수를 엮은 《벽송집(碧松集)》 1권이 있다. 현재 경남 함양의 벽송사에 지엄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주-D002] 최생(崔生) : 성현의 셋째 사위 최수진(崔秀珍)을 말한다. 본관은 삭녕(朔寧)으로, 영의정 최항(崔恒)의 손자이다. 전첨(典籤)을 지냈는데, 아들 최흥원(崔興源, 1529~1603)이 영평부원군(寧平府院君)에 봉해지고 호성 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면서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주-D003] 끊임없이 정진해 나아가 : 대본에는 ‘進退不已’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근거하여 ‘退’를 ‘進’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주-D004] 족제비와 …… 상황 : 대본에는 ‘猩㹳注蓬藋之徑’으로 되어 있다. 이 대목은 《장자》 〈서무귀(徐无鬼)〉에 “텅빈 골짜기에 숨어 사는 사람은 명아주와 콩잎이 족제비가 다니는 좁은 길마저 막고 있는 터라, 빈 골짜기에서 홀로 걷다가 쉬다가 하노라면, 다른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화들짝 기뻐하는 것이다.〔逃空虛者, 藜藿柱乎鼪鼬之逕, 踉位其空, 聞人足音, 跫然而喜.〕”라고 한 말 중에서 ‘藜藿柱乎鼪鼬之逕’을 변용하여 쓴 듯하다. 《농암집(農巖集)》 권3 〈과일을 따다〔摘果〕〉에 “다람쥐와 족제비의 양식을 남겨 두다.〔留作鼪鼯糧〕”나 《청음집(淸陰集)》 권31 〈의흥 현감 이군 묘갈명(義興縣監李君墓碣銘)〉에 “쑥대와 명아주가 수북이 자라고 족제비와 다람쥐가 오가던 지역이 환하게 모습이 달라졌다.〔蓬藋鼪鼯之地, 煥然改觀.〕”라고 하는 등의 사례를 살펴보고 《장자》를 상고해 볼 때, 성성이와 원숭이를 뜻하는 ‘猩㹳’는 족제비와 다람쥐를 뜻하는 ‘鼪鼯’로 되어야 하고 ‘注’는 ‘막다〔塞〕’를 의미하는 ‘柱’가 되어야 하므로 ‘猩㹳注’ 3자를 ‘鼪鼯柱’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이 문장은 인적이 끊긴 적막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주-D005] 대지가 …… 불면 :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대지가 숨을 내쉬면 그것을 일러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온갖 구멍이 소리를 낸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呺.〕”라고 하였다.[주-D006] 요란하게 …… 하고 : 대본에는 ‘膠刁’로 되어 있다. 문맥으로 볼 때는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그대는 유독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라는 대목의 ‘調調刁刁’에서 온 말로 보아 ‘膠’는 ‘調’의 오자인 듯도 하다. 그러나 《장자》 〈천도(天道)〉의 “세상일에 집착하여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구나.〔膠膠擾擾乎〕”라는 대목에 대한 성현영(成玄英)의 주에 ‘교교(膠膠)’를 ‘요란한 모양’이라고 풀이한 것과 《허백당집》 〈석가산부(石假山賦)〉의 “산들산들 바람 소리는 나의 현악기요, 꽃과 새가 기뻐하는 건 나의 동복이네.〔風籟刁膠, 卽我之絲桐. 花鳥忻悅, 卽我之隷僮.〕”라는 대목에서 ‘조교(刁膠)’가 쓰이고 있어 이에 준하여 번역하였다.[주-D007] 천인(天人)과 팔부(八部) : 도가의 신선과 불가의 여러 귀신을 말한다. 천인은 《장자》 〈천하(天下)〉에 “천하에 도술을 추구하는 사람은 많다. …… 도의 대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천인이라 하고, 도의 정수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신인이라 하고, 도의 진수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지인이라 한다.〔天下之治方術者多矣 …… 不離於宗, 謂之天人. 不離於精, 謂之神人. 不離於眞, 謂之至人.〕”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선인(仙人), 즉 신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팔부는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장(神將)으로, 흔히 팔부중(八部衆)이라 하는데, 즉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叉)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건달바(乾闥婆)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의 팔신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서 천과 용이 으뜸이므로 특히 팔부용천(八部龍天)이라 하기도 한다.[주-D008] 난야(蘭若) : 아란야(阿蘭若)의 준말로 삼림이라는 뜻인데, 비구가 숲 속에 살았기 때문에 사원이라는 뜻으로 변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작은 절이나 암자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주-D009] 등륙(滕六) : 대본에는 ‘騰六’으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근거하여 ‘騰’을 ‘滕’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주-D010] 청녀(靑女)가 …… 합니다 :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청녀는 서리와 눈을 주관하는 전설 속의 여신으로,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가을 세 달이 되면 청녀가 나와서 서리와 눈을 내린다.” 하였다. 등륙(滕六) 역시 눈을 맡은 신이다. 《유괴록(幽怪錄)》 〈등륙강설(滕六降雪)〉에 “진주 자사(晉州刺史) 소지충(蕭至忠)이 납일(臘日)에 사냥을 나가려 하였는데, 그 전날 한 나무꾼이 곽산(霍山)에서 보니, 늙은 사슴 한 마리가 황관(黃冠)을 쓴 사람에게 애걸하자, 그가 말하기를 ‘만약 등륙을 시켜 눈을 내리게 하고 손이(巽二)를 시켜 바람을 일으키면, 소군(蕭君)이 사냥하러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였는데, 다음 날 새벽부터 종일토록 눈보라가 치자 소 자사(蕭刺史)가 사냥하러 가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주-D011] 설산(雪山) : 인도의 북부에 위치한 산인 히말라야(Himalaya, 喜瑪拉雅)를 가리키는데 ‘흰 눈으로 덮인, 신들만이 머무는 위대한 성역’이란 뜻이다.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하기 전에 이 산에서 고행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주-D012] 소나무가 따르기 마련이니 : 대본에는 ‘而松之隨之’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근거하여 ‘松之’의 ‘之’를 ‘則’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주-D013] 취하여도 …… 말입니다 :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에 “취해도 금함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다. 이는 조물자의 무진장한 것이다.〔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라고 하였다.[주-D014] 상문(桑門) : 범어(梵語) 사문(沙門)을 음역한 말로 불교 또는 승려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승려의 뜻으로 지엄 상인을 가리킨다.[주-D015] 장본(張本) : 어떤 일에 앞선 조짐이나 원인 등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빌미나 핑계, 계기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종태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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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엄智嚴
야로(埜老), 야로(野老), 벽송(碧松)
1464년(세조 10)~1534년(중종 29)
요약조선전기 계롱산 상초암 조징의 제자로 정심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전라북도 부안 출신. 성은 송씨(宋氏). 법호는 야로(埜老, 野老), 당호는 벽송(碧松). 아버지는 복생(福生)이며, 어머니는 왕씨(王氏)이다.
생애와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문무를 모두 좋아하였고, 1491년(성종 22) 5월에 침입한 여진족을 토벌할 때 도원수 허종(許琮)의 휘하에서 종군하여 이마차(尼麻次)를 물리치고 크게 공을 세웠다. 그러나 마음을 닦지 않고 싸움터에 쫓아다니는 것이 헛된 이름만 숭상하는 것임을 깨닫고, 28세에 계룡산 상초암(上草庵)으로 출가하여 조징(祖澄)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선정(禪定)을 즐겨 닦다가, 연희(衍熙)를 찾아가서 원돈교(圓頓敎)의 뜻을 묻고 『능엄경』을 배웠다. 정심(正心)에게서 법맥을 이어받아 불법사태(佛法沙汰: 불법이 무너짐) 속에서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1508년(중종 3) 가을 금강산 묘길상암(妙吉祥庵)에 들어가서 『대혜어록(大慧語錄)』을 보다가 ‘개에게 불성이 없다[拘子無佛性]’는 화두(話頭)를 의심하여 짧은 시일 안에 깨달음을 얻었다. 또, 『고봉어록(高峯語錄)』을 보다가 양재타방(颺在他方)이라는 어구에 이르러 활연히 깨달았다.
1511년 봄 용문산(龍門山)에 들어가서 2년을 지내다가 1513년 오대산(五臺山)으로 옮겼고, 다시 백운산(白雲山)·능가산(楞伽山) 등 여러 산을 옮기면서 도를 닦았다. 1520년 지리산에 들어가 외부와의 교제를 끊고 불법연구에 더욱 몰두하였다.
그 뒤 문인 영관(靈觀)·원오(圓悟)·일선(一禪) 등 60여 명에게 대승경론(大乘經論)과 선(禪)을 가르쳤다. 또한, 『선원집(禪源集)』과 『법집별행록(法集別行錄)』으로 초학자들을 지도하여 참다운 지견(知見)을 세우게 하고, 다음 『선요(禪要)』와 『대혜서장』으로 지해(知解)의 병을 제거하고 활로를 열어 주었다. 이 네 가지 문헌은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서 사찰 강원 사집과(四集科)의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연원은 이때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1534년 지리산 수국암(壽國庵)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강하다가 방편품(方便品)의 “제법(諸法)의 적멸상(寂滅相)은 말로써 선설(宣說)할 수 없다.”는 구절까지 설명한 뒤, 제자들에게 밖에서 구하지 말고 노력하여 진중할 것을 당부하고 나이 70세, 법랍 44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가송(歌頌) 50수를 엮은 『벽송집』 1권이 있다.
참고문헌
・ 『동사열전(東師列傳)』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