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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민화의 기법과 색채
ㅡ관화官畵와 민화民畵의 이해ㅡ
관화와 민화는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능성, 상징성, 장식성 등은 서로 비슷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민화는 어느 시점부터 관화와는 전혀 다른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되었다. 이른바 관화는 궁전과 관아의 품격과 취향이 잘 반영된 ‘엄격함’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지만, 민화는 이와는 전혀 다른 자유롭거나 파격적인 ‘해학諧謔’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관화官畵
관화는 도화서나 지방 관아에 소속된 화원들과 이에 준하는 전문 화가들이 일정한 규칙과 패턴에 따라 능숙하게 그린 그림이다. 〈일월오봉산도〉, 〈십장생도〉, 〈궁모란도〉, 〈해학반도도〉, 〈군학도〉, 〈책가도〉등이 바로 관화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러한 그림들은 주로 왕실의 빈전, 혼전, 제실 등에 장엄용으로 또는 왕실의 부귀영화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가례, 길례, 흉례 등에 부적처럼 사용되었다.
한편 관화는 관아나 병영 그리고 여타의 공공 기관에서 사용된 그림으로, 처음엔 앞서 언급한 왕실풍의 장엄용이나 부적처럼 사용된 그림을 선호하여 따라 그렸지만 점차 지방 관아나 병영의 특성이나 필요성에 따라 제재가 줄여지거나 보태지면서 색 다른 독특한 조형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든 도화서나 지방 관아에 소속된 화원들은 관화를 제작할 때 대부분 밑그림(하도)에 의존하였다. 그들은 각각의 형태와 색채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화면구성을 비롯한 붓질 사용법, 물감 섞는 법과 다루는 법 등도 철저히 계산하여 제작하였다.
이외에도 관화를 제작할 때에는 물감, 종이, 비단 등까지도 엄격하게 선별해 사용하였다.
그런 철저함 때문에 관화는 형상, 구도, 선, 색채 등의 모든 조형적 요소가 잘 조화, 통일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조화, 통일된 조형적 요소는 형식화되어 인습적으로 계속해서 재생산되어 이어졌다. 이는 현대의 창작 개념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래야만 엄숙하고 심각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철저히 계산하여 제작하였다.
어떻든 위와 같은 관화의 조형적 특징은 민화의 자유분방함이나 해학 그리고 풍자 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2. 민화民畵
현재 민화는 앞선 관화와는 전혀 다른 소박, 질박, 순진, 자유분방 등이 중요한 잣대로 제시되고 있다. 물론 민화의 일부는 관화처럼 밑그림에 의존하여 일정하고 비슷하게 보여 지는 것들도 있으나 표현기법과 화폭의 크기 그리고 모양 등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민화의 표현기법은 어떠한 격식과 양식에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마음대로 썼으며 아예 우연의 효과를 보여 주는 것들도 있다.
그렇게 엄격하게 다루어졌던 관화가 서민들에 의해 자유롭게 해체되었으며 그들의 기질이나 취향에 어울리는 민화로 재탄생된 것이다.
대부분의 민화공들은 결코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서민 집 공간이나 취향에 맞게 줄이거나 보태면서 독특한 조형미를 구축해 나갔다. 그리하여 결국 민화에는 평민들의 자연관과 생활철학 그리고 미의식 등이 담겨질 수 있게 되었다.
이상에서 민화는 거의 놀이 그림에 가깝게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결코 놀이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민화에는 관화가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유토피아로 향하는 꿈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민화의 표현기법이 자유롭고, 해학적으로 표현되었어도 또 화폭의 크기와 제재가 아주 작게 줄여졌어도 화폭에 담긴 의미는 언제나 관화에 담긴 이상과 같았다.
오히려 민화는 지역과 작가 그리고 수요자의 취향에 따라 더 많은 소망을 담아내면서 독창적인 특유의 밑그림을 쏟아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민화는 관화와 다르게 사물의 형태 묘사나 공간구성이 세련되지 못하고 솜씨가 어설프게 보여 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다시 보면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요구되는 독창성이 강한 그림으로 비춰져 매우 가치 있게 받아들여진다.
1. 민화의 기법
민화의 기법을 크게 보면, 선線, 대칭對稱과 균형均衡, 원근법遠近法 무시, 반복성反復性, 동시성同視性, 복합성複合性(콤비네이션), 동시성同時性, 평면성平面性, 측면성側面性, 과장성誇張性, 초현실성超現實性 등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첫째, 민화는 궁중이나 관아에서 사용된 밑그림 제작 방식과는 다르게 창의적인 자기만의 방식 즉, 민화공들의 개성이 충분히 들어간 ‘밑그림’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른바 관화의 밑그림은 깃털 하나라도 똑같아야 했지만 민화의 밑그림은 그러한 틀에서 자유롭게 탈피하여 과장되거나 단순하게 변화된 것이다.
조선 후기 민화 가운데에는 밑그림 없이 제작된 것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관화는 아주 엄격한 선線이 계속 유지되었지만
민화는 결국 자유로운 선線, 파격적인 선線이 구사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두 필선이 양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한편 관화는 밑그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붓으로 그려지는 것이 원칙이었다는 것도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필요에 따라 문양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질서 있고 아주 정확성을 위해 계화법界畵法 즉, 원형이나 직선을 그을 때에는 자(尺)나 캠퍼스 따위의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찌 보면 관화는 판화와 비슷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성격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앞서도 일면 언급했지만, 관화는 손의 기술에 의해 마무리가 깨끗하고 정교하며 경쾌한 느낌이 있다. 이처럼 관화는 밑그림에 의존하는 것은 판화와 비슷하게 볼 수 있겠으나 화가의 붓놀림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거리가 있다.
둘째
관화 중에는 좌우대칭구도와 양쪽간의 균형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관화에서의 대칭과 균형은 전체적으로 화면에 사물을 꽉 채우고 있는데도 질서정연하게 보여 지며 조화로고 신비감이 느껴지게 하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일월오봉산 그림」은 좌우대칭구도로 화면의 반을 접었을 때 거의 맞물릴 수 있을 정도로 균형이 잘 맞춰 진다.
「모란 그림」역시 좌우대칭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10폭 또는 8폭의「모란 그림」이 대담하게 화면의 수직병렬식으로 전개되어 있는데 이를 반으로 접으면 모란꽃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관화/민화 중에는 소재의 大小나 원근이 무시되어 표현된 것들도 있다. 이는 조형적인 어우러짐보다는 사물의 상호비례나 원근을 자기중심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표현은 사물의 크기, 비례, 원근은 단지 자연에 있어서의 사물들의 외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에 차지하는 이른바 사물들의 중요성에 의존하여 그렸기 때문에 나타나는 아동화兒童畵 같은 것들이다.
예컨대 관화/민화에는 산 위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가 산보다도 더 크게 그려진 것이 있는데 이처럼 중요한 대상이 종속적인 대상보다 엄청나게 크게 그려져 있다. 이렇듯 관화/민화에는 대상의 대소 비례를 무시 즉, 화면에 나타나는 대상이 어느 위치에 있던지 작가의 주제에 대한 관심도에 따라 중요한 것은 크게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작게 그리기도 한다.
또한 관화/민화 가운데에는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크기가 작아지지 않고 그대로인 원근법 무시나 오히려 원근이 더 커지면서 가까이 있는 대상이 작아 보이는 역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있다. 위의「冊架圖」에서 확인되듯이, 원근법이 무시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역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서적을 싼 상자의 문양과 목공예품의 나뭇결, 서책 위에 배열된 기물 등이 비현실적인 역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관화/민화 가운데에는 주관적 사실성을 주요한 기법으로 사용한 것들이 의외로 많다.
이는 사물의 대소나 원근이 무시되어 실물 상호간에 엄밀한 비례성을 찾아볼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독특한 신비적, 환상적 도상을 연출시켜 매력이 넘친다.
넷째
관화/민화에는 똑 같은 소재를 반복적으로 나열하여 표현한 것들도 상당히 많다. 「모란 그림」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모란 그림」의 반복적 표현은 음양의 뜻을 담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조형적으로도 조화, 장식성,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있어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여진다.
한편 앞선 설명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관화/민화는, 아예 판화처럼 반복적으로 그려 사용되기도 하였다. 즉 관화/민화는 개인적인 예술 작품과는 달리 손상되면 폐기하고 반복적으로 재생산 되었다.
이처럼 보존과 수집에 가치를 두지 않고 훼손되면 폐기하고 다시 제작해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도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여진다. 사실 반복적인 제작 활동은 개성의 발휘를 억제시키는 대신 공감의 밀도를 높여준다. 즉 똑같이 반복하여 그려 냄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만족감이나 성취욕을 가져다준다. 그런 까닭에 결코 새로운 것, 낯선 것, 개성적인 것을 원치 않고 반복적으로 그려낸 측면도 있다.
‘鶴’은 오직 장수, ‘모란’은 오직 부귀라는 식의 통속적 관념을 부여 받은 상징형으로서 동물과 식물, 그리고 神像을 반복해서 그려 냈던 것이다.
어떻든 관화/민화는 닮은 것에서 안도감을 찾기 때문에 계속해서 유형화된 도상을 반복적으로 그려 냈으며 붙이는 장소와 시간까지도 일정하게 같았다.
다섯째
관화/민화 가운데에는 입체적인 표현 즉,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한 화면에 재구성되어 그려진 것들이 있다. 하나의 사물을 정면에서 본 것, 측면에서 본 것, 심지어 뒷면에서 본 것까지 동시에 그려진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관화/민화 중에는 일관된 시점을 무시 즉, 보이는 부분만 그리는 것이 아니고 저쪽 안 보이는 부분까지도 묘사하고 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그려내는 방위의 동존화 현상(synchronism)과 같은 비과학적이고 불합리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이 경우는 사물의 형상을 빠짐없이 잘 나타내어 잘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어찌 보면 관화/민화의 입체적 표현은 서양의 입체파 조형원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차이가 많이 난다.
무엇보다도 관화/민화에서 볼 수 있는 입체적 표현은 ‘나’와 ‘자연’과의 합일적 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차이가 크게 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관화/민화의 다시점 현상은 나와 자연을 하나로 일체화된 상태 즉, 주체와 객체의 미분화 의식에서 상호 교감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서양 입체파에서의 다시점 기법은 대상에 대한 철저한 논리적, 분석적 이해의 조형원리가 깔려 있다.
이렇듯 관화/민화의 관념적 이미지의 표현은 서양의 분석적 입체주의 조형원리와는 접근 자체부터 차이가 많이 난다.
어떻든 여러 각도에서 본 것을 동시에 표현한 형체는 매우 부자연스럽게 보여 지지만 묘한 회화적 느낌을 가져다준다.
특히 관화/민화의 입체적 표현은 보는 사람의 눈을 한자리에 고정시켜 투시하지 않게 하고 자유롭게 이동시켜 대상물 전체를 알 수 있게 하며 나아가 한편으로는 입체적 형상에서 오는 기괴한 느낌이 상상과 추리의 세계로 이끌고 있어 언제나 흥미롭다.
여섯째
관화/민화에는 동물과 식물의 갖가지 형상을 한 화면에 복합적(콤비네이션)으로 그려 넣은 것들이 있다. 물론 이 경우도 앞선 입체적 표현처럼 벽사, 길상의 의미를 최대한으로 높이고자 한 의도가 깔려있다.
말하자면 관화/민화의 복합성은 담아내고자 한 주제와 일치하는 도상들을 한 화면에 등장시켜 그 상징의 뜻을 더욱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혹여 소망을 들어 주는 어떤 존재가 못 볼세라 화면 구석구석에 상징과 기원, 송축의 도상들을 조합하여 깔아놓았다.
이렇게 관화/민화에는 서로 관련된 소재들을 한 폭의 그림에 조합하여 사람들을 더욱 더 빠져들게 한 것들이 의외로 많다.
화가의 개성이나 기호에 의해 선택된 특별한 사상이나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방식에 따라 제작했으며, 수요자들 역시 소재의 상징성을 알고 있었기에 너도 나도 간직하여 소원한 바를 빌었다. 사실 여러 소재가 한 화면에 배치되어 있어서 조형적으로 조금 어색하고 복잡하게 보여 지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서민들에게는 조형적으로 조금 어색하고 복잡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여러 소재의 배치는 결국 오늘날에는 또 다른 조형적 매력으로 받아들여져 계속 주목하게 된다.
일곱째
관화/민화에는 동시적同時的 표현 즉, 시간과 계절의 표현이 매우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들도 있다. 말하자면 관화/민화에는 일정한 시간 속의 상황만 그려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가 함께하는 동시적 표현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낮과 밤을 뜻하는 해와 달이 한 화면에 등장한다거나 사계절이 동시적으로 펼쳐져 있는 산수그림이 바로 이러한 조형특징에 해당한다.
여덟째
관화/민화의 제재 표현은 대부분 평면적이다. 즉 관화/민화는 음영의 입체감이나 그림자가 없는 납작한 모양으로 상호간의 공간감이 무시된 채 거의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평면적 배치는 화면에 진열된 사물의 속성이 잘 드러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즉 평면성은 여러 개의 이미지를 동시에 한 화면에 배치해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면적 표현은 관화/민화에서 요구하는 벽사적, 길상적 상징을 담기에도 아주 적합하다.
한편 같은 이유에서, 관화/민화에 등장하는 소재는 대부분 옆모습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눈앞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관념 속에 자리한 대상을 떠올리면서 그리기 때문에 측면의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해서, 되풀이해서 그리다보면 측면적인 처리가 보다 쉬웠기 때문에 그저 선택하여 그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 대부분의 미술에서 과장誇張이 등장하지만 관화/민화에서의 과장은 간절한 희망사항을 표현하고 있어 더욱 인상 깊게 받아들여진다.
관화/민화의 어떤 소재들은 과장을 떠나 아예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해 있어 조형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또한 관화/민화 가운데에는 초현실적 표현도 자주 확인된다. 이미 알고 있듯이 초현실성超現實性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 공상의 세계에서 모순된 물체의 배치와 형체로써 대담하게 표현한 것을 말한다.
관화/민화에는 바로 이러한 표현이 자주 등장해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다.
이쯤 되면 민화는 관화와 수묵화의 법칙들을 완전히 흔들어 놓거나 바꿔 놓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계속 언급하게 되는 것은, 관화는 엄격하며 인위적으로 자로 잰 듯이 정확하며, 수묵화 역시 화관·화론에 의한 틀에서 크게 벗아 나지 않았지만, 민화는 이와는 아주 다르게 생각지도 않았던 무의식적인 기법이 구사되어 매우 따뜻하게 느껴진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상호 비례나 원근이 무시되거나 여러 기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며 조감도처럼 보여 지기도 한다. 어떤 민화는 실물과 기물 위에 글이나 상징기호로 표현되어 있으며 실물과 기물을 아예 장식화해 배열시켜놓은 것들도 있다.
결국 관화/민화는 우리 민족의 집단적 가치 감정이 통념에 의해 고정되고 표상된 제2의 자연 또는 상징적 기호로 볼 수 있겠다.
즉 관화/민화의 선, 대칭과 균형, 상호비례나 원근법 무시, 반복성, 동시성同視性, 복합성 등은 주술적 체계와 실용적 목적 하에 유형화된 기법이라 할 수 있겠다.
2. 기타 기법
민화 제작에는 앞선 방식 외에도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법과 여러 가지 도구가 동원되었다.
불에 달군 인두로 두꺼운 종이나 대나무 껍질 또는 나무에 형상을 지지는 방식의 ‘인두 그림(낙화烙畵)’, 넓적한 가죽 붓에 원하는 물감을 묻혀 빠르게 그리는 방식의 ‘혁필 그림’이 있다.
또한 대나무나 버드나무 끝을 으깨어 먹을 찍어 붓처럼 사용하여 그린 ‘유필柳筆 그림’과 손가락이나 손톱에 먹을 묻혀 그리는 방식의 ‘지두 그림’ 그리고 종이를 다양한 모양으로 오려 붙이는 방식의 ‘전지剪紙 그림’도 있다.
그 밖에도 기름과 먹물을 떨어뜨린 물위에 종이를 덮어 그 무늬를 종이에 옮기는 ‘연리문練理紋 그림’, 먹물을 묻힌 실을 접은 종이 사이에 끼워 누르고서 실을 잡아당겨 그리는 방식의 ‘실뽑이 그림’ 등 다양한 방식으로 효과를 만들어내는 그림이 있다.
이렇듯 민화 가운데에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순간의 자유로운 표현방법에 의해 제작된 것이 의외로 많다. 물론 이와 같은 그림들은 앞선 방식과는 다르게 의미나 상징을 담아내지는 않은 것도 있으나, 때로는 이처럼 행위 자체나 화지에 펼쳐지는 어떤 효과가 보기 좋아 계속 반복해 그리기도 했던 것이다.
민화의 색채
민화 제작에는 진채眞彩, 담채淡彩, 수묵水墨을 모두 사용하고 있으며 이 세 가지를 각각 독립적으로 사용하거나 상보적으로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즉 관화는 오방색에 의존하고 수묵화는 수묵이나 담채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민화는 오방색부터 수묵까지 즉, 오방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게 하거나 약간의 색을 입힌 것 그리고 그저 단순히 수묵으로 처리한 것 등 모든 색채를 다 사용하고 있다.
특히 민화는 관화와 비교했을 때 수묵으로 먹의 농담과 스며들기, 흐릿하게 번지게 한 것과 밑그림 자체가 드러나 있는 것 등 종잡을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까지 확인되어 차이가 더욱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언급해 알고 있듯이, 官에 소속된 화원들은 색채사용에 있어서 엄격하게 규칙과 틀을 따라야 했는데, 이는 이상주의적, 상징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사물의 고유색보다는 오행에 따른 색채 즉 백·적·청·흑·황의 오방색 사용을 고수하면서 뜻에 따라 조화롭게 대비시키거나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미리 정해진 흰색과의 배색, 원색끼리의 대비, 짙고 선명한 색과 탁한 색과의 대비 또는 보색 대비를 적용시켰다.
이는「일월오봉산 그림」,「십장생 그림」,「모란 그림」,「화조 그림」등을 통해 그 패턴을 쉽게 증명할 수 있겠다.
한편 민화도 관화처럼 오방색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를 선택해 사용하였지만, 어느 시점부터 민화는 그들의 개성에 맞춰 보다 자유롭게 색을 선택해 사용하게 된 것도 이내 알게 된다.
물론 민화는 이렇게 자유롭게 색을 선택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관화처럼 색 하나하나에 벽사, 길상의 소박한 기원을 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조선말기의 민화는 의미 없는 그저 자유롭게 색을 칠해 장식용으로 사용한 것도 사실이다.
민화는 이와 같은 자유 때문에 색채가 세련되지도 않으며 어떤 것은 너무 야하거나 치졸할 정도로 알록달록하여 경박한 느낌까지 드는 것도 있다. 또한 어떤 민화는 벽사적 의미를 높이기 위해 괴기스럽게 색을 칠해 어둡고 칙칙하게 보여 지는 것도 있다.
그러나 민화는 대체로 밝고 명쾌하고 신선하며 특히 민화가 담고 있는 간절한 소망 때문에 언제나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떻든 민화는 관화와 비교할 때 화려한 색채특성을 잃어버린 듯 보여 지지만, 대부분 밝고 환한 인상을 주고 따뜻하며 무엇보다도 민화의 색채 특징은 관화의 색채가 같지 못한 해방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며 현대공간에도 여전히 잘 어울린다.
결과적으로 민화의 색채표현은 아름다움이나 창의성을 생각지 않았는데도 우리 서민들의 원초적 미적 감수성에 의하여 독창적,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화의 표현형식은 관화나 수묵화와는 전혀 다른 어떤 틀이나 형식에 구속되지 않았다.
민화공들은 어떠한 격식에도 구애받지 않았으며 우스꽝스러운 변형, 재미있는 표정 등을 통해서 민간 특유의 넉넉한 감성을 한껏 드러내었다.
결과적으로 궁중이나 관아에 소속된 화원들은 어떤 정해진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 반면, 민화공들은 정형의 틀을 과감히 깨고 마음껏 자유스러운 조형세계를 구축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ㅡ글 : 김용권 문학박사ㅡ
출처 : 월간민화
[출처] 조선후기 민화의 기법과 색채|작성자 관계디자이너이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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