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선수는 국내 여자 휠체어펜싱 선수 중 최초로 패럴림픽에 출전하며 역사를 새로 썼다. 도쿄 패럴림픽을 위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를 만나 올해의 목표를 들어봤다. 글 김일균
휠체어펜싱 역사를 쓰다
MBN 여성스포츠대상, 제3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MVP,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6관왕,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동메달. 모두 휠체어펜싱 김선미 선수가 이뤄낸 성과다. 2010년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되고 곧바로 광저우 아시안게임 에페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그녀는 2012 런던 패럴림픽에 국내 여성 휠체어펜싱 선수 최초로 출전했다.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모든 휠체어펜싱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그 뒤 한동안 운동을 쉬었다가 2017년 다시 시작했고, 그해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곧바로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에페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하고 MBN 9월 여성스포츠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16살에 교통사고로 왼쪽하퇴 절단 수술을 받은 후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스포츠 정신이 전혀 없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감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이라 장애를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행히 저를 예뻐해 주시고 이해해주신 선배님들 덕분에 차츰 적응할 수 있었고, 20대 초반에 들어선 후 본격적으로 운동을해보겠다는 의지를 굳혔습니다. 그래서 은사이신 유승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훈련을 지원해주셨고 덕분에 국가대표에도 뽑힐 수 있었습니다.”
김선미 선수의 주특기는 상대 선수를 속이는 것이다. 상대 선수의 공격을 계속 방어하다가 반대쪽으로 돌아들어가는 플레이가 대표적이다. 이런 선 방어 후 역습 전략은 수많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이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휠체어펜싱은 방어를 위한 수 싸움이 치열한 종목이다. 선수들이 휠체어 프레임 안에 고정된 채 플레이하는 종목 특성상 상대의 의도와 역습 타이밍을 읽어내야 한다. 김선미 선수의 피나는 노력과 경험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련을 넘어 휠체어펜싱을 널리 알리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가진 김선미 선수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선수 생활이 한창일 때 생활고로 인해 2년간 운동을 내려놓아야 했던 것이다. 2014년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전 종목 동메달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둔 직후라 더욱 아픔이 컸다. 장애를 입은 후 삶의 버팀목이 되어온 운동이었지만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서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운동을 쉬게 됐어요. 지원 없이는 전업 선수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다행히 2017년 쯤 훈련을 도와주겠다는 분이 나타났고 지금까지 전국장애인체육진흥회 온에이블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화위복일까. 다시 펜싱을 시작하게 된 데 이어 2018년에는 하나금융그룹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 장애인스포츠 선수의 모습을 대표 이미지로 내세운 것은 흔치 않은 일이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기존 모델인 국가대표 축구선수 손흥민 선수와 고등래퍼에 출연한 래퍼 김하온 등 유명 스타들에 이어 선발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금융사가 장애인 모델을 선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 없었어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 은행의 경영철학을 찾아낸 하나금융그룹의 생각에 감탄하고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덕분에 장애인스포츠와 휠체어펜싱을 비장애인들에게 알리는데 많은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해 의지, 브레이스 등 장애인용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인 오서 코리아의 홍보대사로 발탁되면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김선미 선수는 연이은 제안에 대해 자신의 열정과 노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느낌이라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선미 선수가 모델로 나선 하나금융그룹 광고
도쿄 패럴림픽의 빛나는 결실을 준비하다
현재 김선미 선수는 작년 말에 수술을 받은 후 이천훈련원에 입촌해 훈련을 하고 있다. 올해 첫 대회인 2020 헝가리 에게르 월드컵대회에 수술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몸으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김선미 선수는 이 대회를 통해 세계랭킹 12위를 유지해 16위까지 출전권이 주어지는 도쿄 패럴림픽 출전 가능성을 높였다.
“작년 성적이 너무 부진해 연말쯤 수술을 하고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로 대회에 나갔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한 덕분인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눈앞의 대회에 집중하는 김선미 선수지만 이후의 계획도 착실히 서있다. 남편과 자신을 꼭 닮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것이다. 김선미 선수는 지난해 9월에 같은 종목의 박천희 선수와 백년가약을 맺고 펜싱 커플이 됐다. 운동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서로 이해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는 동반자가 생긴 것이다.
“결혼하고 가장 좋은 점은 운동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남편이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해준다는 점이에요. 같이 살아보니 도와주고, 이해해주고, 보이지 않게 배려해줘서 감동하게 돼요. 운동하다가 힘들 때 남편과 눈이 마주치면 다시 힘이 납니다.”
김선미 선수의 요즘 바람은 함께 훈련하는 선수들과 도쿄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노력을 보상받는 것이다. 휠체어펜싱 선수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김선미 선수의 노력이 멋진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김선미 선수 수상 내역
2019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6관왕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카테고리 A 여자 개인 에페 동메달
2017 •로마 휠체어펜싱세계선수권 대회 카테고리 A 여자 개인 에페 동메달
•제3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MVP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에페 플뢰레 여자 개인·단체 동메달
2010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카테고리 A 여자 개인 에페 은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