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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며 못다했던 이야기하나 올려봅니다
홀로 배낭을 메고서 낯선외국을 여행하다보면 많은 일들이 생긴다
혼자 보기에는 정말 아까운 장면이나 얘깃거리도 많지만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싶은 사건사고도 더러 있다
그럼에도 두번다시는 생각해보고 싶지않은 아주 특별한 경험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무디어지다 우연한 기회에 말문이 터지고
가슴시린 추억으로 되돌아 오기도한다
인도를 거쳐 히말라야에서 석달이나 보내고 들어온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금새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 때의 나에게 여행은 필연이었다
시간이 있는데 세상은 넓고 가고 싶은 데가 많았다
어디를 갈것인가가 문제였지 걸리는게 하나도 없었다
어디 가볍게라도 잠깐 다녀 올 데가 없을까를 궁리하던 끝에 가까운 일본이 떠올랐다
그래 일본 북알프스에 한번 가보는거야 가끔 매스컴에도 등장하는
일본 최고의 산악코스였다
한 열흘일정이면 나고야로 들어가서 교툐를 거쳐 오사카에서 배를타고 나올 수 있다
산행도 하고 유명 관광지도 곁들여 답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편도 티켓을 끊자마자 배낭를 꾸려 인천공항에 왔다
그러나 공항카운터에서 수속을 거절당했다 왕복티켓이 없으면 입국이 않된다는 것이다
이런경우가 많진 않지만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대게 그런 경우가 있었다
행여 입국해서 나가지 않고 잘사는 저희나라에서 주저 앉을까봐 걱정되서(?) 그런것인지
몇번을 망서리던 끝에 비싼 값을 주고 현장에서 리턴티켓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와서 여행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 갈 수는 없었다 시행착오는 늘 있는 것이니까
가까운 일본이라지만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다
나고야에 도착하자마자 산행이 목적이었으므로 북알프스가 있는 다테야마로 향했다
시내구경을 나섰다가 길에서 만난 일본인 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시는대로
호텔을 정하고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일찍 배낭을 간단히 꾸리고 나머지 짐은 호텔방에 두고나왔다
하룻정도만 시간을 내어 맛보기 산행으로 가볍게 갔다가
오사카 쪽으로 이동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산밑으로 가는 열차에는 이른아침이어선지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마침 한국인 등산객 한분을 만났다
부산에서 여행업을 하신다는 데 여기 북알프스가 좋아서 여러번 왔고
이번에도 휴가를 얻어 다시 왔다는 북알프스 매니아 분이었다
한데 복장을 보니 옆구리에 헬멧도 차고 준비가 남다르다
그분 말로는 일본산은 화산섬이라서 바위가 안착이 안돼있고 움직일 수있어 위험하단다
히말라야까지 혼자 다녔던 나인지라 그때는 그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었지만
나중에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우리나라 설악동처럼 생긴 공원 입구 상가에서 도시락을 하나 사고
비치돼있던 지도도 한장 챙긴다음 산으로 향했다
산 초입에는 7월의 푸르름이 여느 산이나 다름없이 등산객들을 반겨준다
산위로 점차 접어들면서 마지막산장을 지나서는 사람의 인적이 끊겼다
주변의 풍경도 확연히 달라졌다 온통 산이 만년설로 덮여있어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해발 2500m 정도는 넘었을 것이다 쌓인눈위에 하늘에선 진눈깨비까지 내린다
그때가 오후2시경 이제 그만 내려가야하는데 하면서도 발걸음은 산위로 향하고 있다
산에만 오면 중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항상 정상까지 갔다오는 산행 습관 탓이다
여기까지와서 그냥 내려가기에는 웬지 아쉽기도했다
산위의 아리가다케산장 (3180m) 까지만 갔다 오자는 생각이었다
사실 체력이 많이 들었으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얼마전에 히말라야에서 고산 적응을 한탓인지 3000m가 가까워 옴에도
그냥 평지를 걷듯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완전 눈밭이어서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눈밭에 꽃힌 대나무에 빨간 리본이 하나 매달려 있을 뿐 표지판도 없다
눈길에 아이젠도 없이 걸으려니 미끄럽기도했는데
마침 길가에 버려진 스타킹으로 등산화를 감싸고 나니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눈에 쌓인 능선을 몇개 넘었나본데 지나온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다시 돌아 내려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산장을 찾지 못하면 안될 상황이라 계속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을까 산장은 보이지 않고 어느덧 해가 기울어져버렸다
마음은 조급해져 오는데 설상가상으로 이슬비까지 내린다
빗속에서도 몇번이나 꺼내 보았는지 모른다 빗물에 젖어버린 지도가 결국 뭉개져 버렸다
여기가 어디쯤인지도 모른채 어둠이 찾아왔지만 멈출수가 없었다
어둠속에서도 얼마나 걸었을까 그와중에도 허기가 져왔다
배낭에 도시락이 하나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어느 바위틈에 웅크리고 앉아 비를 맞으며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빗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상황이라 밥을 넘기는데 자꾸 목이 메어온다
여지껐 산에다니며 이런 극한상황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낯선 이국땅이라는게 나를 더 위축되게 만든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산장을 찾아 나섰다 이젠 산장을 찾지 못하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높은 봉우리위에 산장(3080m)이 있다는 얘기만 생각이나
눈앞에 바위가 보이면 무조건 타고 넘었다
다른 생각은 할 틈도 없이 정상에만 올라가면 산장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정신없이 산을 탔을 것이다
그렇게 어둠속에서 밤 열두시경 까지 바위를 타고 넘다보니 더이상 올라 갈데가 없는
어떤 봉우리 정상에 서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산장이나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산 정상에는 겨우내 쌓였던 엄청난 두께의 만년설이 녹으면서 크레바스처럼 벌어진 틈이 있었고
그 속에 들어가 있으니 바람은 피할 수 있었다
맨손의 투혼이라 비박장비도 하나없이 웅크리고 앉아 일단 비에 젖은 양말을 벗어 쥐어 짰다
배낭에 있던 옷들을 있는대로 꺼내 겹쳐입고 피켓위에 비옷을 우산처럼 펼쳐놓고
그 밑에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이때만해도 조난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십여년이 넘는 산행 경험으로 내 사전에 조난같은 경우는 있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었다고나 할까
내일 아침에 해만 뜨면 다 해결 될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쪼그려 앉은채로 잠깐 잠이 들었을까 세벽 네시쯤인데 서서히 어둠이 걷혀온다
재빨리 눈구덩이에서 나와보니 이게 웬일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속이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며 안개가 더 심화된 탓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봉우리 위에서 내려갈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얼마나 경황이 없었으면 어둠속에서 어제밤에 어디로 올라왔는지조차 기억이 젼혀 나질 않았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찾아 봤지만 길이 없었다
조심조심 바위를 타고 네려오는데 엄청나게 큰 바위들도 밟으면 굴러간다
화산석이라는 말이 이제 실감이 났다
그렇게 길도 없고 사람 흔적조차 없는 길을 더듬더듬 내려간다
계곡 골짜기에는 만년설이 녹으며 이삼백미터쯤 되어 보이는 빙벽으로 덮여있다
그러다 경사가 60도 넘는 빙판에 잘못 미끄러지면 몇십미터는 사정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맨몸으로 미끄럼을 타며 이제 죽었구나 싶은데 다행이도 발끝에 돌인지
나뭇가지가 걸려서 멈추면 사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정말 식은땀이나는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라 온몸에 긴장감이 흐른다
한 발자국씩 발 끝에 온 신경을 다 쏟으며 걷자니 정말 쉬운일이 아니었다
새삼 자연은 위대하고 바람앞에 촛불처럼 인간은 한낱 연약한 존재였다
그렇다고 숲길은 아예 걸을수가 없었다
3000M가 넘는 고산이다 보니 무릎아래 키작은 잔솔들이 촘촘이 얽혀있어
발을 집어 넣을 틈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산을 조금 내려온것 같은데 수백길 낭떨어지가 기다리고 있다
절벽을 우회하며 내려갈 길을 찾던중 조금 턱이 있고 조그만 잔솔이 턱끝에 자라고 있는게 보였다
그 잔솔을 잡고 발디딤을하며 아래로 내려갈 찰나 비가 온탓인지
내 체중이 실리자 마자 나무가 뽑혀버렸다
머리를 아래로 둔채 수직에 가까운 경사로를 정신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순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꾸로 누운자세로 하늘을 보며 얼마나 미끄러져 내려왔을까
미끄러지는 찰나의 순간에도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수많은 환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끝날 수도 있던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는데 쿵하며 어딘가로 떨어지더니 멈춘다
이승일까 저승일까 잠간 정신을 잃었던 모양인데 순간 분간이 되질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왼쪽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간신히 일어나 앉았는데 눌러쓴 모자 사이로 뜨뜻한 게 흘러내린다
피였다 머리가 다친 모양인가
피를 보니 맥이 탁 풀리며 모자를 벗어 확인해 볼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약도 아무것도 없는 이 깊은 산속에서 확인한들 어쩔것인가
그냥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다행이도 많이 다치진 않은 듯 피가 멎었다
몸을 움직여보니 왼쪽 팔을 쓸수가 없고 무릎에도 상처가 나있다
등에맨 배낭이 나를 보호해 살린 듯 배낭끈이 떨어져있고 피켓이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
새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절벽끝에 한평도 안돼는 좁은 공간에 고립돼 있는것이다
낭떨어지 중간에 턱이 있었는데 천우신조로 그 공간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꺼내어 예비 밧데리로 갈아 끼우고 켜보니 수신 안테나가 뜨질 않는다
큰일이었다 휴대폰이 작동이 않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절벽아래로 목놓아 소리를 질렀다 사람살려, 이다이시데 구다사이, 헬프 미...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일본말 우리말에 영어까지 섞어가며 누군가 듣기를 바랬지만
해가저물어 갈 때까지 하루종일 목이 쉬도록 소리질러보아도 메아리 뿐..
사람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으니 과연 여기가 어디쯤이란 말인가
다친몸으로 마음먹은대로 움직일 수 조차 없으니 이제사 조난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절벽 끄트머리에서 어찌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셀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절벽을 탈출해 어떻게든 휴대폰을 살리는 게 최선이었다
배낭을 짊어질 힘조차 아껴야했기 때문에 내 분신과도 같던 배낭을 바위틈에 내려 놓았다
여권이랑 중요한 물건 몇가지만 챙길 때는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살아 나가서 몸이 회복되면 너를 다시 찾으러 올거야
과연 배낭을 다시 찾으러 올 수 있을 것인가
한손을 쓸 수 없어 하나밖에 없는 피켈로 찍은다음 한손으로 붙잡고 절벽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다친 몸과 성한 몸은 천지 차이였다 한손으로는 균형을 잡기가 어렵고 힘을 쓸수가 없다
온 몸을 쥐어짜는 몇시간의 사투끝에 절벽 하나를 올라섰다
올라가면서도 중간중간 휴대폰을 꺼내어 확인해본다
그렇게 터지지 않던 휴대폰이 일어나서 손을 높이 쳐들어보니
신기하게도 수신이 된다 정말 기적처럼..
떨리는 손으로 24시간 운영되는 해외영사콜과 통화가 되는 순간 이젠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여기 나고야에 있는 북알프스 산속인데요 길을 잃었습니다
한국의 영사콜에서 나고야 영사관 전화번호를 보내주고
마침 휴일에 특근중이시던 김ㅇㅇ영사님이 직접 전화를 받으셨다
그때부터 영사관 직원들이 직접 공원사무소에 파견나와서 나를 찾기위한 작업을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내가있는곳이 어디쯤인지 나조차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로해서 올라갔느냐 옷은 무얼입었느냐는등 기본적인 얘기부터 처음엔 통화를 하다가
밧데리를 아끼기위해 메세지로 주고 받았다
금방 온다던 구조대는 보이지 않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이젠 조금남은 밧데리 때문에
전원을 껐다가 메세지만 확인하곤 바로 꺼놓고 했슴에도 구조대는 보이지 않는다
그자리에서 꼼짝않고 다시 하룻밤을 샜다
지금 수색대가 열심히 찾고 있으니 정신을 잃지 말라는 응원의 메세지가 계속온다
그렇게 하루를 더 보내고나니 밧데리가 희미해지고 액정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희망이자 보루였던 휴대폰마저 꺼져가니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
먹을 것도 없고 먹은 것도없어서 가만히만 있으면 괜찮은데 조금만 움직여도
달라붙은 뱃가죽이 쓰려온다
굳이 움직일 필요조차 없어 닥쳐올 운명 앞에 모든걸 내려놓았다
일단 연락이 됐으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일이다
가만이 앉아서 명상을 했다 언젠가는 구조대가 올거라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평온했다 산이 좋아서 산에 다니다 스스로 자초한일이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내자신도 하늘도 원망할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인도에서 수천년된 불교 유적지들을 찾아다니며 명상하고
네팔의 사오천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두달가까이 돌아 다니며
반복되는 고통과 희열속에서 몸과 마음이 단련되고 담금질이 되었을까
며칠 산속에 있었어도 정신만은 말짱했다
지금의 사태가 나의 욕심이라기보다는 나도 모르는 무언가에 이끌려 왔던것은 아닐까
나의 인생 최고의 정점에서 이젠 보다 겸손해져야한다는 신의 뜻인지도 모른다
이제 모든것들을 내려 놓아야만 할 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동안을 쪼그려만 있었는데 처음으로 땅바닦에 누워보았다
발을 쭉 뻗고 누워서 집중했던 정신을 내려놓고 긴장을 풀어놓으니 너무도 편했다
육체의 고통보다도 막연한 기다림속에 다가오는 절박감이 정신적으로 더 심한 고통이었다
눈만 감으면 이대로 죽는 것이 참으로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었는데 차가운 기운이 서서히 등허리를 타고 온몸에 전율이 온다
정신이 번쩍들었다 아직은 살아 있었다
그래도 사람이 죽을 때는 따뜻한 방안에서 죽어야지 이렇게 차가운 땅바닦에서
죽을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 든다
내 몸안의 뜨거운 피가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야 하고 외치는 듯했다
다시 일어나 앉아 집중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다행이도 태풍이 와서 며칠간 비가 오락가락했는데 오늘은 비도 그치고 날씨가 화창했다
산아래 멀리까지도 보인다 그럼에도 성치않은 몸으로는 아래 절벽을 타고 내려갈 자신은 없었다
죽으나사나 여기서 끝까지 기다려보는 게 최선이었다
구조대가 보내온 메세지로는 어제부터 헬기를 띄워 찾고 있다는데
좋은 소식이 올 것같은 생각이 든다
나흘을 보내고 다음날 오전 열한시쯤 저멀리 산아래에서 투타투타
헬기소리가 거짓말처럼 들려오는게 아닌가
며칠만에 들어보는 문명의 소리였다
어서 오기만 기다리는데 계곡아래로 사라져버린다 이 때의 실망감이란 말로 표현을 할수가 없다
한삼십분이나 지나서 다시 나타났다
그때쯤 가방속에 팽개쳐두었던 휴대폰에서 조그만 소리가들렸다
헬기에서 직접 송신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좀있다 저 아래에 있던 헬기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와 나있는 곳으로온다
나도모르게 판쵸우의를 흔들고 있었다 내 위치를 확인하더니 다시 다른 소방헬기가 왔다
내 머리위에서 멈추더니 젊은 소방관 한분이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살았구나 헬기 바닦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입버릇처럼 의미없이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 경계선이 종이한장차이로 순간 다가 올 수도 있지만
그 데드라인을 직접 체험하는 경우엔 정말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헬기위에서 슬쩍 내려다본 산밑은 첩첩산중이었다
기억에도 없는 첫날 하룻밤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산을 몇개를 넘어섰다니 사람이 급하면 초인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상황에서 산장 근처 산만 수색하던 수색대를 만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헬기가 뜨지 못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어느 병원마당에 헬기가 도착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미 며칠전부터 일본 메스컴에선 대서 특필했다고한다
헬기안으로 들어온 이동침대에 누워 터지는 후렛쉬소리에 난 아예 눈을 감고있었다
영사관직원의 신원확인에 이어 옷도 벗기고 엑스레이 촬영에 응급처치까지
그와중에 대사님까지 나를 보러 병원에 들렀다
모두에게 신세를 진셈이다 영사님을 비롯 여러사람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살아 나올 수 있었다
나고야영사관 근처 호텔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다음날 아침인데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팔이며 다리가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것이다
긴장이 풀리고 완전히 기운이 빠진상태로 릴렉스가 된 모양이다
의식은 말짱한데 빈 껍데기처럼 의지대로 되질않는다
삼십분도 더 넘게 실랑이한 끝에 서서히 몸에 기운이 들어가고 조금씩 조금씩 움직임이 살아난다
육체는 정신이 지배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침대 앞 책상에 있는 전화기까지 가는데 한시간정도는 걸린셈이다
영사관에서 이미 집에 연락해 놓아서 상황을 알고 있었다
로비에있는 뷔폐식당으로 내려와 육일만에 먹어보는 음식이 진수성찬이다
오후에 영사님이 오셔서 직접 공항까지 배웅해주셨다
참으로 생명의 은인같은 고마우신분들이다
비행기안에까지 휠체어를 타고 출입국수속도 프리패스해서 가는 경우는 처음이다
열흘일정으로 갔던 일본여행이 엿새만에 산에만 있다가 돌아 오게 될줄이야 예상이나 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일에는 다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고 세상일이라는 것들이 그냥 일어나는 법은 없는 것 같다
각자 정해진 운명에 따라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는 것이다
그와중에도 정신줄을 놓지않고 생존을 위한 에너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어디쯤에 있었을까 다행스럽게 마지막 선을 넘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신이 아닌이상 알 수 없을 뿐이다
이번일로 좀더 겸손함을 배웠다
국내에 들어와 한달넘게 병원생활하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첫댓글 진짜 실감나는 조난영화 한편입니다
살아 돌아와서 두번 사는 세상이네요
두번째 삶 ~감축드립니다
여행답사기 책으로 내셔봐요
읽는 내내 너무도 스릴 넘치고 손에 땀나는 여행기가
영화 한편 본 느낌입니다
넷플릭스 영화 "식스데이즈" 한번 보셔요
거의 비슷한 생존실화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산파와같은 고뇌가 함께하는 것이라서
쉽지 않은일이지만 이세상에 단 한사람이라도 제 글을 읽겠다는 독자가있다면
언젠가는 책을 한번 내야겠지요
영화는 지금 여행중이라 볼수 없지만
저도 궁금해지네요
귀국하면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ㅎ
그야말로 존재만으로 대단하신 에테르님 이십니다..
그럼에도
베트남 여행 출국!!
안전안전히 다녀오시길..
네 마님!
존재하는 삶이 의미가있지요~
모르는 사람 이야기이지만
웃다가 울컥 눈물이 납니다.
삶과 경계... 받아들이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정작 두려운건 공포감!
잘 이겨내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네 호세님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이라는게 우리에게는
알수 없는 영원한 숙제입니다
마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싯점이어서
한번더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행복한 여행을 같이 다녀온 느낌이네요~~
깜놀님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항상 행복한 여행을 꿈꾸시길
바랄께요~
실감느껴지는 조난후기 손에 땀쥐고 걱정하며 읽었네요. 두번다시 않겪으시기를 바라며 또한번 리스펙👍👍👍
감히 이런상황은 상상도 안되네요
또다른곳에서 여행을 즐기신다하니 다행이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