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주유천하(7)아궁이에 불 때는 즐거움(樂)
장작 훨훨 타는 모습 보면서 근심 걱정거리 불 속에 내던져
한시간쯤 불 때다 보면 따뜻한 기운 몸에 차올라
불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신(神)을 보는 것
세상을 살면서 긴장(緊張)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하게 되지만, 이완(弛緩)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 신경 쓰는 게 다 긴장이고 스트레스가 다 긴장 아닌가! 나도 처음에는 쌓인 긴장을 푸는 이완을 쉬운 걸로 알았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깜냥에 이완을 한다고 해도 결국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긴장을 풀어주는 전문가는 누구인가? 물(水)과 불(火)이다. 물은 가라앉는 성질이 있고, 불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물은 머리에 불이 타는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물을 가까이하고 호수·강·바닷가에 거처하면 재미를 본다. 필자는 물이 질퍽질퍽한 논두렁을 많이 걸었다. ‘지자요수(知者樂水)’가 이 말이다.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물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뜻이다. 고스톱 치다가 ‘열 고’ 하면 돈 잃는다. 열을 내리는 것이 관건이다. 열을 내리면 차분해지기 마련이고, 차분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물로 열을 내린다.
그렇다면 불(火)은 언제 필요한가? 이 세상에 물 대포가 있다면 불 대포도 있다. 수화쌍포(水火雙砲)를 가동시켜야 한다. 불이 필요한 경우는 우울증이다. 세상사 모든 게 시들해진다. 마음이 허(虛)하고 낙()이 없다. 가슴속에는 온갖 근심 걱정만 가득하다. 아무리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근심 걱정이 머리에 가득 차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이럴 때는 불을 봐야 한다. ‘觀火有術 必觀其亞宮(관화유술 필관기아궁)’이다.
불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는데, 아궁이에서 장작불 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아궁이 앞에다가 엉덩이를 받칠 만한 나무토막을 장만해 놓고 여기에 편히 앉아 장작불을 때는 것이야말로 신의 은총이 아닌가 싶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허벅지 두께의 장작이 아궁이에서 벌겋게 훨훨 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근심 걱정이 가슴에서 올라오면 그 걱정거리를 저 장작불에 하나씩 내던진다. 하나 던지면 걱정이 또 올라온다. 그러면 그 걱정을 또 불 속에 던진다. 걱정거리가 1000개쯤 되면 그 1000개를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오는 족족 장작불에 내던지면 된다. 한 500개쯤 던지다 보면 시커먼 걱정덩어리가 새빨간 장작불에 타는 모습이 보인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암 덩어리도 태운다. 제아무리 단단한 걱정거리도 불에 들어가면 재가 된다. 재가 되면 바람에 날아가버린다. 바람에 날아가는 재를 어떻게 손으로 잡을 수 있으며, 눈으로 추적할 수 있겠는가.
아궁이에 앉아서 한시간쯤 불을 때다 보면 아랫도리 쪽이 따끈해지다가 그다음에는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이마 쪽에도 따뜻한 기운이 충만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빵빵한 기운이 몸에 차오른다. 그다음에는 마음이 환해진다. 근심 걱정을 견딜 만한 튼튼한 방패막이가 생겼다는 느낌이 온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데 있어서도 어떤 나무를 태우느냐에 따라 기분이 다를 수 있다. 소나무를 태울 때 나는 냄새와 편백나무를 태울 때 나는 냄새가 다르다. 나무 타는 연기와 냄새에 독특한 치유효과가 있다.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면 어렸을 적에 외갓집에 가서 맡았던 냄새가 생각난다. 자신이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던 시절이 연상된다. 냄새는 강력한 회상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소나무 장작 타는 냄새가 취향에 맞는다. 그다음은 편백나무다. 내가 글을 쓸 때 거주하는 황토집인 휴휴산방(休休山房)은 전남 장성의 축령산 자락에 있는데, 이 축령산은 수백만평이 60년 가까이 조성한 편백숲 단지다. 그래서 중간에 간벌한 편백나무를 구할 수 있다. 방 두개 중에 한개는 방바닥에 편백을 깔아 놓았다. 방에 들어가 편백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상쾌해지고, 아궁이에다 편백 장작을 태우면 그 냄새가 신경을 안정시켜 준다.
인간은 원시 시절부터 밤이 되면 동굴에서 장작을 태우던 기억이 유전자에 남아 있을 것이다. 불을 피워 무서운 맹수도 쫓고 고기도 지글지글 굽고 부족이 모여 앉아 노래 부르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가 조로아스터교(敎)다. 일명 배화교(拜火敎)다. 5000년이 넘는 역사다. 조로아스터교의 발상지인 중동의 이란에 가서 조로아스터교 사원에 들어가보니까 사원 중심 건물에 신상(神像)이나 어떤 숭배의 조각도 없었다. 건물 가운데에 심플하게 화로만 하나 놓여 있었다. 가로·세로 2m, 높이 1m50㎝ 정도의 화로대(火爐臺)가 있었고, 대 위의 청동화로에서 장작불이 타는 모습을 사방에서 지켜볼 수 있는 구조였다. 밤에는 불씨를 재로 덮어 보관하고 낮에는 활활 불을 태운다. 불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신(神)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은 근심 걱정을 없애주고 우울한 마음에 활기를 준다. 은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마다 조로아스터교 신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