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일기/놀이문화
'산중에 무력일하여 철가는 줄 몰랐더니 꽃피어 춘절이요, 잎 돋아 하절이라. 오동낙엽에 추절이요, 저 건너 창송녹죽에 백설이 펄펄 휘날리니 이 아니 동절이냐~
나도 본시...'
봉산탈춤 8목중 과장에서 나오는 두번째 목중의 사설이다.
질펀한 성행위를 묘사한 초목의 뒤를 이어 '덩더쿵' 난타로 등장하여 좌중을 압도한다. 본시 한량으로서 불경을 공부하다가 염불에 뜻이 없어 풍류소리 반겨 듣고 세상에 나와 신명나게 노는 장면인 것이다.
양반과 스님과 서민의 신분이 혼재하여 정체성이 모호하다.
단지 신명나는 놀이가 존재할 뿐이다.
한국의 탈춤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민중의 애환을 담아내고,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미래지향적 가치관을 제시하는 종합예술로서 놀이문화의 정수이다.
얼쑤~
호이징어는 인류문화의 기원을 유희적 인간(호모 루덴스)에서 찾는다. 놀 줄 아는 인류의 모습에서 문화는 만들어지고 자가발전을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놀이가 문화의 하위개념이라는 틀에서 역전된 발상이었다.
그렇다.놀이는 그 자체가 문화를 횡단하는 중심축의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성장기에 동네마당이나 뒷산,냇가 등에서 해떨어지는 것도 모른 체 노는 데에 열중했다.
"○○야 밥먹어~~"
엄마나 누이의 부름도 마다하고 말이다.
말타기, 술래잡기, 오징어놀이, 대문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담방구, 꼬리잡기, 고무줄놀이...
셀 수도 없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나홀로이다.
그들에게 유희란, 놀이란 PC게임에 머물며 부모와 갈등하는 것이 현실이다.
TV에 출연한 유명 연예인이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가이가이보'라 외친다 귀를 의심했다.
놀이문화의 단절이,왜곡이 처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연실색!
이 또한 상실의 시대를 대변하는 단면인가?
아이들을 보면 무한 책임감이 앞선다.비록 생활환경과 사고의 틀이 변하고 문화상품이 바뀐 연유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하다.
조상님 대대로 면면히 이어져 온 전래놀이의 승계는 이렇게 종말을 고하는가?
물론 놀이문화가 고정불변의 정체성에 함몰 되진 않는다.
항상 변화발전하는 생명력을 갖는다.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아이들의 전래 놀이문화는 처절히 소멸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즐기는 놀이문화는 역으로 놀이를 통하여 인간이 사회구성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자리매김이 되는가에 대한 실존적 의미를 터득하는 기제인 것이다.
우리의 전래놀이를 올바르게 계승하여 연구하고 보급하는데
땀흘리는 곳이 있다.
'전래놀이학교 아자학교'이다.
아자선생은 힘주어 말한다.
"우리 전래놀이는 수백여 가지의 형태로 계승되어 오며, 함께 놀이에 참여하면서 공동체의식을 자연스레 체화할 수 있습니다.
나와너, 너와나 우리로써 함께 하여야
서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협동심도 알게 됩니다. ..."
부언할 여지가 없는 참소리이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몸으로 말하는 우분투정신일 수도 있겠다 싶다.
코로나 세상은 대면, 비대면(정말 와닿지 않는 말로 생각함)의 인간관계를 기계적으로 설정하는데 주저치 않는다.
참 무서운 세상으로 치닫는 경계선이란 걸 우리들은 별 의미없이 간과하고 있다.
사람이다,
존귀한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노릇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비롯되어 짐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