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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림주차장~구조목 <03-09>~거림옛길~너럭바위~음양수샘~최고의 조망터~너럭바위~창불대~자살바위 아래 암봉~전람회길~아리왕탑 절벽아래~영신사터~지름길로 창불대~탐방로~거림주차장
▼ 창불대 아래로 곰이 이용한 비경길이 숨겨져 있다. 위성지도에 ①,②도 미답지이지만 곰길이라 추정한다.
이번에 진행한 자살바위 아래 암봉쪽은 로프가 없이는 진행이 불가하고 암봉 위로는 등반이 필요한 구간이다.
②번 구간은 나바론 좌골을 살짝 올라서서 우회하면 영신사터로 등고선 산행이 가능해 보인다.
자세한건 한번더 답사를 해야겠지만 창불대 아래로 음양수샘에서 영신대까지 곰길이 있다는게 놀랍다.
산영 형님은 당귀가 자라기 좋은 고도로 이어진 곰길은 조망이 빼어나고 이름난 곳을 두루두루 다녀 볼수있기에 코스이름을 전람회라고 부쳤다
형님이 탐사한 길은 대부분 정비를 하였고 ①,②구간을 확인만 하면 된다
▼ 겹쳐진 파란색은 1편에 탐사한 트랙이다
▼ 전람회길 예상코스인데 음양수 샘쪽의 <최고의 조망터>와 <2번째 전망대>에서도 창불대 아래를 전체적으로 볼수있다
▼ 유람록 산행때 본 암봉인데 한개로 보였는데 가서보니 두개고 올라가기 힘든곳이다<2020년 11월7일 첫번째 조망바위에서 촬영>
▼ 2017년 9월 23일 나바론골에서 촬영
<개요>
지난 <376차 산행>에서 전람회 길을 1차로 탐사를 하면서 정비하였는데 그날은 날씨가 흐려서 경치를 보지못했다
작년에 유람록 산행중에 창불대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암봉을 올라가고 싶었는데 빗길이라 욕심을 접어야만 했다
그 봉우리는 자살바위에서 대성계곡으로 이어진 나이프 릿지 중간에 높이 솟아 있으며 지형도에도 표시될만큼 오똑하게 솟아있다. 지도를 보며 진입 경로에 대해 면밀히 검토를 하였지만 현장에서 마주했을땐 상상했던 것과 달라서 좀 당황했다.
골무처럼 생긴 암봉은 손으로 잡을 나무 한그루 없는 암봉에 3~4M의 오버행 구간이 포함되어 있으며 거친 바위를 10m쯤 올라가야했다. 풍화작용으로 까칠하고 낙석의 위험도 높은 곳이지만 오르고자 하는 갈망을 막진 못했다.
로프를 허리춤에 묶고 그 끝을 향해 오른다
▼ 일요일 비소식이 있어서 산행 일정을 하루 당겼고 설연휴인데도 고속도로가 한산해 7:52분에 거림주차장에 도착했다.
산행준비를 하고 탐방로를 따라 <03-09>구조목에서 비탐으로 들어 선다(09:33)
맑은 날씨에 경치가 볼만하다
▼ 건너편에 있는 너럭바위를 거쳐서 진행할 예정이다
▼ 바위를 두어발 내려서서 낙남정맥을 담아보고
▼ 바위 사이를 내려간 형님따라 간다
▼ 계곡에서 다시 오름길로
▼ 너럭바위에서 촛대봉을 배경으로
▼ 외삼신봉 뒤로는 하동 금오산이 보이고 왼쪽에 사천 와룡산이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
▼ 촛대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계곡에 세석연못이 보인다
▼ 음양수샘 가는길에 화전을 일구면서 쌓아둔 돌무더기가 여러개 보인다. 세석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니 이곳에서 약초나 식량을 재배했을 것이다
▼ 음양수샘(10:23)
▼ 바위 정면(양지)과 좌측면(음지)의 물이 바위아래 작은 웅덩이에 모인다. 음지는 말랐지만 양지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물이 흐른다
▼ 취수를 하고 전람회 길을 한눈에 볼수있는 <최고의 조망터>에 올랐다(10:30)
▼ 너럭바위,창불대,자살바위에서 대성골로 흘러내린 릿지와 겹겹이 주능선까지 이어진 바위군들은 지리산 최고의 암능지대가 아닐까?
▼ 올라가야할 암봉과 그 아랫쪽으로 전람회길이 한눈에 보인다. 날씨가 너무 좋아 원근감이 없고 입체감도 없어보인다. 여기가 저기 같고~~~ㅠㅠ
▼ 반야봉과 왼쪽에 뾰족한 노고단, 그 왼쪽으로 비슷한 거리에 무등산이 보인다
▼ 발아래로 대성계곡이 펼쳐진다
▼ 마지막으로 촛대봉을 보고 너럭바위로 향한다
▼ 너럭바위 앞에 암봉도 가보고 싶지만 다음 기회에...
▼ 능선 끝에 <최고의 조망터>가 보인다
▼ 너럭바위 분위기 3
▼ 너럭바위 분위기 4
▼ 너럭바위에 거북이는 어디로 가는지?
▼ 너럭바위를 지나 대피소가 보이는 바위에 올랐다. 여기선 촛대봉 뒤로 제석봉과 천왕봉이 보인다.
▼ 창불대 건너편 바위로 이동했다. 여긴 몇번 올라 보았는데 그 아랫쪽에 평평한곳은 처음 내려가본다. 윗쪽에선 대피소가 빤히 보여서 부담스러웠는데 이곳은 여유롭게 경치를 즐길수 있는 곳이다
▼ 소나무에 가린 자살바위 뒷쪽으로 내려가야할 능선이 보인다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너무 높아서 그 아래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躑躅〕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_고흥, 여수곶(麗水串), 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더 기이한 광경이었다.
해공이 여러 산골짜기가 모인 곳을 가리키면서 신흥사동(新興寺洞)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절도사(節度使) 이극균(李克均)이 호남(湖南)의 도적 장영기(張永己)와 여기에서 싸웠는데, 장영기는 개나 쥐 같은 자라서 험준한 곳을 이용했기 때문에 이공(李公) 같은 지략과 용맹으로도 그가 달아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끝내 장흥 부사(長興府使)에게로 공(功)이 돌아갔으니, 탄식할 일이다.
해공이 또 악양현(岳陽縣)의 북쪽을 가리키면서 청학사동(靑鶴寺洞)이라고 하였다. 아! 이곳이 옛날에 신선(神仙)이 산다는 곳인가. 인간의 세계와 그리 서로 멀지도 않은데, 미수(眉叟) 이인로(李仁老)는 어찌하여 이 곳을 찾다가 못 찾았던가? 그렇다면 호사가가 그 이름을 사모하여 절을 짓고서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인가?
해공이 또 그 동쪽을 가리키면서 쌍계사동(雙溪寺洞)이라고 하였다. 세속에 얽매이지 않았던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노닐었던 곳으로 각석(刻石)이 남아 있었다. 기개를 지닌데다 난세를 만났으므로, 중국에서 불우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내 고고하게 속세 밖에 은둔함으로써 깊고 그윽한 산천은 모두 그가 노닐며 거쳐간 곳이었으니, 세상에서 그를 신선이라 칭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겠다"
[원문]
暮登唱佛臺. 巉巉斗絶. 其下無底. 其上無草木. 但有躑躅數叢. 羚羊遺矢焉. 俯望荳原串,麗水串蟾津之委. 山海相重. 益爲奇也. 空指衆壑之會曰. 新興寺洞也. 李節度克均. 與湖南賊張永己戰于此. 永己. 狗鼠也. 以負險故. 李公之智勇. 而不能禁遏其奔逬. 卒爲長興守之功. 可嘆已.
又指岳陽縣之北曰. 靑鶴寺洞也. 噫. 此古所謂神仙之區歟. 其與人境. 不甚相遠. 李眉叟何以尋之而不得歟. 無乃好事者慕其名. 構寺而識之歟. 又指其東曰. 雙溪寺洞也. 崔孤雲嘗遊于此. 刻石在焉. 孤雲. 不羈人也. 負氣槩. 遭世亂. 非惟不偶於中國. 而又不容於東土. 遂嘉遯物外. 溪山幽闃之地. 皆其所遊歷. 世稱神仙. 無愧矣.
靈神菴(영신암)
箭筈車箱散策回 : 전괄(창불대)와 거상(대성폭)을 산책하고 돌아오니,
老禪方丈石門開 : 방장(주지승)의 노선사가 석문을 열어주네.
明朝更踏紅塵路 : 내일 아침이면 속세의 길 다시 밟으리니,
須喚山都沽酒來 : 모름지기 촌장(은둔선비)을 불러 술이나 받아오게.
영신암 주변을 산책하며 '창불대는 하늘로 통하는 석문으로 올라가고, 대성폭포는 험해서 한번 내려가면 올라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두보의 '望嶽詩망악시' [車箱入谷無歸路 箭筈通天有一門]“거상의 골짝에 들어서니 돌아갈 길이 없고 전괄로 하늘을 통하는 문 하나가 있구려"의 전괄과 거상 시어를 인용함
<유람록> 김종직_유두류록 1472년
"영신사(靈神寺)에서 묵었는데, 이 절 앞에는 창불대가 있고 뒤에는 좌고대가 있는데, 천 길이나 솟아 있어 올라가면 눈으로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원문]
(二)十四日壬子. 宿靈神. 前有唱佛臺. 後有坐高臺. 突起千仞. 登而目可及遠. 得以久留也.
<유람록> 김일손_속두류록(續頭流錄) 1489년
唱佛臺(창불대)_1543년 황준량의 기행시
靑山起層雲 : 청산에는 뭉게구름 층층이 일어나고
嵌竇瀉急瀨 : 깊은 골엔 세찬 물이 쏟아져 흐르네.
一徑入窈窕 : 오솔길 따라서 깊은 곳에 들어가니
寒翠飛晻蕩 : 비취빛 차가운 기운 자욱이 서렸네.
有臺自天成 : 태초에 절로 만들어진 대가 있는데
聳立出空外 : 허공 위로 우뚝하게 솟아 있구나.
滄溟擬盃潦 : 넓은 바다는 술잔 속에 물인 듯하고
積皺如曹鄶 : 겹겹의 산줄기는 조나 회처럼 작네.
眼盡杳不窮 : 아득히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山氣此交會 : 산의 기운은 여기에서 서로 모였네.
天王自無對 : 천왕봉은 상대할 다른 산이 없나니
萬絶靑丘最 :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우뚝하구나.
巖前千仗壁 : 바위 앞에 펼쳐진 천 길의 절벽은
水墨訝新繪 : 수묵화를 새로 그려놓았나 의아했네.
氷雪蟄花木 : 눈과 얼음 속에선 꽃나무들 꿈틀대고
嵐霧困松檜 : 운무 속에선 솔과 전나무가 고생하네.
輕風動衣袂 : 가벼운 바람이 옷소매를 흩날리는데
鶴羽時翽翽 : 학이 마침 날개 짓하며 날아오르는 듯
遺矢認羚羊 : 배설물을 보아 영양이 사는 줄 알았고
有草類書帶 : 서대초 비슷한 약초도 자생하고 있네.
登臨盪塵胸 : 산에 올라 세속의 찌든 마음 씻어내고
淸嘯起靈籟 : 맑게 읊조리니 신령한 소리 일어나네.
自慙管仲小 : 관중처럼 국량이 작아 부끄러우나
猶嫌伯夷隘 : 백이처럼 속 좁은 것도 싫어한다네.
府歎人宸卑 : 굽어보며 인간세상 비천함을 탄식하고
未信天地大 : 천지가 얼마나 큰지는 믿지 못하겠네.
逸興躡飛仙 : 호방한 흥취 일어나는 신선을 따르고
吟思濕靑靄 : 시상을 떠올리다 구름에 흠뻑 젖었네.
累號自緇流 : 누차 부르는 소리는 승려가 날 찾는 것
胡僧語荒昧 : 승려들 황당하고 어리석은 말을 하였네.
遊人幾古今 : 고금에 이곳을 찾은 이가 몇이나 되는지
懷舊愁無奈 : 옛일을 생각하니 수심을 어쩔 수 없네.
浮生足優游 : 뜬 구름 같은 인생 여유 있게 살아야지
吉凶誰卜蔡 : 길흉을 뉘라서 미리 알 수가 있겠는가.
▼ 김종직 선생은 더 맑은날 보셨는것 같다. 여수곶은 백운산 뒷쪽이다
▼ 창불대 아래 석굴로 보이는 곳인데 실재로는 굴은 없고 그림자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 창불대는 패스하고 자살바위에 올랐다
▼ 자살바위에서 바라본 천왕봉(11:16)
▼ <자살1> 전망대 가는길
▼ 가야할 암봉 윗쪽이 하얗게 보인다
▼ 영신사 방향
▼ 돌아 나오는 길에 위태롭게 걸린 바위가 보인다.
▼ <자살2>에서 영신봉 방향으로 암봉 하나더 보이다
▼ 영신사터 방향
▼ 아랫쪽으로 올라가야할 암봉의 상부가 보인다
▼ 능선은 절벽이고 우측 사면으로 곰길이 이어져 있지만 얼어서 결국 계곡으로 내려선다
▼ 눈앞에 나타난 <자살바위 아래 암봉>이 보인다. 아랫쪽에는 오버행 구간이라 올라갈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11:46)
▼ 날카로운 바위에 메달려 죽을 힘을 다해 올랐더니 양쪽손에 한군데씩 스크랫치 났다ㅠㅠ
▼ 올라온 기념으로 작은 케른 하나를 만들었다(11:56)
▼ 내려온 능선 방향
▼ 바로 옆에 또 다른 암봉이 보이지만 그림에 떡~~
▼ 형님은 아랫쪽을, 나는 윗쪽을 돌러본다
▼ 정상부에 평평한곳이 두곳있고 가운데 나무가 몇그루있는데 앞쪽은 천길 낭떠러지고 창불대골 좌,우골과 우측으로 이 봉우리와 연결된 지능선이 보인다
▼ 바위 정상에 홈이 패인 석천 네곳이 보이고 몇곳은 얼음이 보인다
▼ 정상부 중간쯤에 손잡이만 분리된 고장난 스틱이 있다. 위에서 떨어뜨린건지 아님 다른 루터로 올라온건지는 알수없다
▼ 올라왔던 곳으로 하강해서 왼쪽에 있는 석문쪽으로 진행한다(12:14)
▼ 이쪽 벽은 비스듬한게 전부 오버행 구간이다. 중간에 설박힌 돌을 떨어뜨렸더니 화약 냄새가 진동한다.
내림길에 4M정도의 직벽에 로프를 설치해서 하강해야만 했고 계곡 끝에 큰 돌은 올라 탄 채로 미끄러져 형님을 덮칠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이쪽은 바위가 안정이 안되어 있고 로프가 필요한곳이라 피하는게 좋고, 등고선으로 봐선 위성지도에 표시된 ①길을 따라 내려가는게 좋다.
▼ 전람회 길을 만나 계곡을 횡단하여 절벽 사이에 틈새를 돌아서 진행한다(12:30)
▼ 나바론골 우골을 횡단해서(12:42)
▼ 경치 좋은 나바론골 좌골에서 점심상을 편다(12:59)
▼ 지난번에는 이 계곡을 거슬러 올라 유람록 산행때 보았던 세번째 조망바위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이번엔 조금 아래로 내려 서서 트레버스 해보기로 했다
▼ 내려서자 마자 새끼 곰 배설물이 보인다
▼ <천국의 계단>이 있는 계곡 아래로 내려서기전 아리왕탑 부근 절벽을 볼수있다
▼ 여기선 좌고대와 추강암도 보인다
▼ 왕시루봉과 눈높이를 맞추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 눈과 미끄러운 얼음 구간은 나무를 의지하며 경계를 따라 이동한다
▼ 곧 낙석이 생길 것 같은 절벽 아래를 통과 해야한다
▼ 아랫쪽에도 떨어진 바위가 보인다
▼ 올려다본 절벽은 얼핏보니 또 다른 석가섭 처럼 보인다
▼ S자로 빙~돌아서 정자터에 올랐다(14:23)
▼ 아리왕탑 부근에선 좌고대 뒷통수만 살짝보인다
▼ 아리왕탑
▼ <천국의 계단>이 있는 신천(神川)계곡
▼ 당겨본 첫번째와 두번째 조망바위
뜰아래 작은 샘이 있는데 물이 세고 매우 맛있어서 신천(神泉)이라고 불리는데 흘러 내려가 화개천이 된다. 동쪽에 바위 봉우리가 있는데 부도(浮屠) 모양처럼 생겼다. 여기 사는 승려들은 귀사(龜社)의 주인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이 죽지 않고 여기에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유람록> 이륙_유지리산록 1463년중에
비로봉은 동쪽에 있고, 좌고대는 북쪽에 우뚝솟아 있고, 아리왕탑(阿里王塔)은 서쪽에 서 있고, 가섭대(迦葉臺)는 뒤에 있었다. 지팡이를 내려놓고 기다시피 비로봉 위로 올라갔지만 추워서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유람록> 유몽인_유두류산록 1611년
▼ 정자터에서 바라본 비로봉
▼ 아리왕탑 아래에 넓찍한 터가 방문객들이 묵는 요사채가 있던 곳이다
▼ 요사채에서 동쪽 끝에선 나무 사이로 좌고대가 보인다
▼ 형님은 마루금따라 제일 윗쪽이 첫번째 조망바위이고 눈 높이에 네번째가 있는데 그쪽으로 ②번길을 추정한다
그 동쪽 섬돌 아래에는 영계(靈溪)가 있고, 서쪽 섬돌 아래에는 옥천(玉泉)이 있는데, 물맛이 매우 좋아서 이것으로 차를 달인다면 중령(中泠), 혜산(惠山)도 아마 이보다 낫지는 못할 듯하였다. 샘의 서쪽에는 무너진 절이 우뚝하게 서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옛 영신사이다. 그 서북쪽으로 높은 봉우리에는 조그마한 탑(塔)이 있었는데, 그 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웠다. 이 또한 왜구에 의해 넘어졌던 것을 뒤에 다시 쌓고 그 중심에 철(鐵)을 꿰어놓았는데, 두어 개의 층은 유실되었다
<유람록> 김종직_유두류록 1472년중에
영신사(靈神寺)에서 묵었는데, 이 절 앞에는 창불대가 있고 뒤에는 좌고대가 있는데, 천 길이나 솟아 있어 올라가면 눈으로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동쪽에는 영계(靈溪)가 있는데, 대나무 홈통을 따라 물이 흘러들었고 서쪽에는 옥청수(玉淸水)가 있는데, 매가 마시는 물이라고 승려가 말하였다. 북쪽에는 가섭의 석상이 있었다. 당 안에는 찬(贊)이 적힌 가섭도(伽葉圖)가 있는데, 비해당의 삼절(三絶)이었다. 연기에 그을리고 비에 젖은 흔적이 있으나 이 진귀한 보물이 빈 산에 버려진 것을 안타깝게 여겨 가져가려 하였다
<유람록> 김일손_속두류록(續頭流錄) 1489년중에
이어 만 길이나 되는 푸른 절벽을 내려가 영신암(靈神菴)에 이르렀는데, 여러 봉우리가 안쪽을 향해 빙 둘러서 있는 것이 마치 서로 마주보고 읍을 하는 형상이었다. 비로봉은 동쪽에 있고, 좌고대는 북쪽에 우뚝솟아 있고, 아리왕탑(阿里王塔)은 서쪽에 서 있고, 가섭대(迦葉臺)는 뒤에 있었다.
<유람록> 유몽인_유두류산록 1611년중에
▼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 옥천(玉川)
▼ 옥천 위에 석탑을 처음 보았다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라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밑은 둥글게 서리었고 위는 뾰족한 데다 꼭대기에 네모난 돌이 얹혀져서 그 넓이가 겨우 한 자 정도였는데, 승려의 말에 의하면, 그 위에 올라가서 예불(禮佛)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증과(證果)를 얻는다고 한다. 이 때 종자인 옥곤(玉崑)과 염정(廉丁)은 능란히 올라가 예배를 하므로, 내가 절에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급히 사람을 보내서 꾸짖어 중지하게 하였다. 이 무리들은 매우 어리석어 거의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능히 스스로 이와 같이 목숨을 내거니, 부도(浮屠)가 백성을 잘 속일 수 있음을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겠다.
<유람록> 김종직_유두류록 1472년중에
나는 가섭전 뒤쪽에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산의 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좌고대(坐高臺)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상, 중, 하 3층이 있었는데 나는 중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는데 심신이 놀라고 두근거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대의 뒤에는 위험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좌고대보다 더 높았다. 나는 그 바위에 올라 좌고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기이한 풍경이었다. 의문은 좌고대 아래에 앉아서 두려워하면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 날 서쪽 방면은 전날보다 훨씬 청명하여, 서해와 계룡산 등의 여러 산을 두루 분별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빈발암으로 돌아 내려와 저녁밥을 먹었는데 마침 암자에서 지는 해를 보았다. 해가 지자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유람록> 남효온_지리산일과 1487년
▼ 옥천에서도 나무 사이로 좌고대가 보인다
영신사는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세조대왕)이 왕위에 올라 매양 중사(中使)를 보내서 향(香)을 내렸고,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한 동생 안평대군(청지,비해당)은 그 법당(法堂)에 있는 몽산화상(蒙山和尙)의 그림 족자에 찬(贊)을 남긴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큰 영향력이 있는 절로 보인다
비해당의 찬(贊)은 다음과 같다
頭陁第一。是爲抖擻。(두타제일 시위두수) : 마하가사파존자께서는 두타 수행인 두수를 바르게 실천하시어
外已遠塵。內已離垢。(외이원진 내이리구) : 밖으로 이미 번뇌를 떨치시고, 안으로 離垢의 경지에 오르셨네
得道居先。入滅於後。(득도거선 입멸어후) : 앞서 道(아라한과)를 깨달으시고 뒤에 적멸의 경지에 드셨으니
雪衣雞山。千秋不朽。(설의계산 천추불후) : 눈 덮인 계족산에 깃들어 천추에 사라지지 않고 길이 전하리라
(* 몽산 : 원나라 고승 몽산화상. * 贊(讚) : 다른 사람의 書畵를 기리는 글. * 匪懈堂 : 안평대군의 호, 三絶 ; 시서화. * 雞山 : 계족산 영신봉을 가리킴)
찬(贊) 번역 출처<도솔산 연소재>
▼ 영신사터
▼ 청석(돌의 결이 아주 곱고 매끄러움)과 와편들
가섭전(迦葉殿)의 북쪽 봉우리에는 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라는 것이다.
<유람록> 김종직_유두류록 1472년중에
영신암(靈神庵)이, 암자 뒤에는 가섭전(伽葉殿)이 있었는데 세속에서 영험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그곳을 자세히 보니 한 덩이의 돌이 완연히 있을 뿐이었다.
<유람록> 남효온_지리산일과 1487년
▼ 가섭전
▼ 가섭전 와편인데 절터보다 이곳에 기와가 더 많다는걸 보면 누군가가 성한 기와를 옮겨서 작은 집을 지은건 아닐까?
▼ 가섭전에서 내려다본 영신대
▼ 사자얼굴이 보이는곳
▼ <지름1>에서 바라본 첫번째 조망바위에 명품소나무가 보인다
▼ <지름2>에선 <자살바위 아래 암봉>이 잘보인다
▼ 여기서 보아도 찌릿찌릿한 암봉
▼ 바위 좌측으로 오르면 남부능선과 만난다. 창불대와 영신사를 잇는 이 길은 김종직 선생이 지나갔던 길로 추정된다
▼ 능선을 따라 오름길에 패스한 창불대에 올랐다(15:47)
▼ 창불대 분위기 2
▼ 정규 탐방로 내려서서 한산한 등로로 하산한다(16:04)
▼ 거림 입구에 도착했다(17:34)
나는 아직 유람록 길을 잘알지 못한다. 가설을 세우고 하나씩 검증해나가는 도솔선생님과 형님을 따라 다니며 이해할려고 노력할 뿐이다.
길을 복원한다는건 글 속에서 도출된 자료를 기반으로 답사와 수정을 수~수십차례 반복해야하는 고된 일이다. 의문을 한개씩 풀릴때마다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 끊임없는 탐구심과 자기만족 없이는 할수없는 일이다.
창불대 아래는 형님의 호기심에서 접근하게 되었지만 탐사를 통해 절벽 아래로 곰이 사용하는 길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음양수샘에서 영신사까지 곰길을 따라 가는 전람회 길을 잇게 되었다.
천애의 절벽과 침봉이 보여주는 황홀한 경치와 역사속에 유람록 길이 함께 하는 명품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곰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피하는게 좋을것 같다
#토산 전람회길
#지리산 전람회길
#전람회길
#창불대
#미산대
#도솔샘
첫댓글 대단합니다!
유 대장은
아직 미답지라서
골똘히 궁리중이었는데~
이케!
先踏을 하고서
나눠줌에 고마운 맘을 적습니다~^^
곰만 즐기든 지리산 전람회길입니다.
조금더 다듬으면 명품길이 될겁니다
유목민 대장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안산 즐산하시길 바랍니다
@칠성 '설악 전람회길'은 몇 번 해봤지만서도!
<지리 전람회길>로 명명된 루트를 일궈줘서~
넘 감동적이고도
아주 끌리네요~^^
@칠성 지난번 1편보다
더 질긴 루트라고 여겨보는 걸 전해봅니다~요~^^
설명절연휴는 잘 보내신거죠.
기어이 다녀오셨구만요.
영험한 창불대 기운을 받아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전람회길을 얼었으니 시간나면 한번 가보세요~^^
전람회길
이름도 멋지게 붙여야지요
존루트 개발하셨어
아름다운 길로 거듭나길 바래요
좋은 이름 있으면 작명해주세요~~^^
전람회길 예약했습니다 ^^ 😀
맑은날 가면 정말 좋습니다
들어갈때 전체를 보고
나올때도 전체를 볼수 있는곳이랍니다
형님이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土山 전람회길로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칠성씨 !
멋진루트가 생겨내요 ㅡ
날씨좋은날 나도 한번 가볼까해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전람회길 이름도 이쁘네요
비경과 역사속 숨결을 함께 느낄수 있는 길입니다. 맑은날 가시면 좋습니다~^^
그림을보는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림에 없는좋은氣 좀보내주면조쿠요
다음엔 사진에 기를 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