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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나 같은 사람도 의인이 되어야 한다
약 5:17-18 / 엘리야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18) 다시 비가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자 비가 쏟아져서 초목이 다시 푸르게 되고 들의 곡식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연약할지라도 무릎으로 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사람에게 착하다고 칭찬 받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 칭찬 들을 만한 착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무능력함을 인정하며 주님께 능력을 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시대에 감각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한 감각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무명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학식이 높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무식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부하거나 거만한 사람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겸손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똑똑하고 잘 난 사람이 아니다.
부족해도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거짓으로 점철된 부정직한 사림이 아니다.
나침반처럼 삶에 분명하며 정직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오류 가운데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리를 찾으며 진리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매순간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겉만 번지르한 사람이 아니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며 말씀에 의지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처지나 환경에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다.
환경을 딛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며 부귀영화를 찾는 사람이 아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찾으십니다.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찾아 구하는 한 사람(예레미야 5:1)을 바로 그 사람이 오늘 저와 여러분이기를 바랍니다. / <좋은 글에서>
▶ 한 사람의 중요성 / 1645년 단 한 표의 투표차(差)로 대영제국은 올리버 크롬웰에게 전(全)영국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부여했다. 1649년 영국 왕 찰스 1세는 의회에서 67:68 단 한 표 때문에 처형되었다. 1714년 군주제도가 한 표차로 가결되어 조지 1세가 왕위에 올랐다.1776년 미국은 단 한 표 차로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채택하였다. 1800년에는 토마스 제퍼슨 후보와 아론 버가 선거인단의 수가 동점이었다. 그럴 경우에는 미국의화의 하원이 투표고 대통령을 결정하게 되어 있는데 하원의 표결 결과 토마스 제퍼슨은 단 한 표차고 미국의 제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824년 4명의 대통령 후보자들이 아무도 다수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대통령 선출은 하원으로 넘어갔다. 하원의 표결결과 한 표차로 존 퀸시 아담스가 앤드류 잭슨을 누르고 제6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다. 1839년 마커스 몰톤은 단 한 표의 덕으로 미국 메사츄세츠 주의 주지사로 뽑혔다<183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뽑는 투표일. 한 중년의 남자는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자신이 투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헐레벌떡 투표소로 달려갔다. 하지만 5분 차이로 결국 그는 투표를 할 수 없었다. 개표는 시작됐고 모든 집계가 끝난 뒤 득표수가 발표되자 개표장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단 한 표 차이’로 마커스 몰튼이 현역 주지사였던 에드워드 에버렛을 누르고 새로운 주지사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몰튼의 선거사무실은 환호와 축제 분위기속에 휩싸였고, 반대로 에버렛의 사무실은 침통한 분위기속에서 가슴 아픈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특히 에버렛은 한 표 차이로 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오랫동안 자괴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5분이 늦어 투표를 하지 못한 남자가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러 다니느라 정작 자신이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1845년 텍사스 주를 미국 연방으로 가입시키는 법안이 단 한 표차로 가결되었다. 1867년 미국이 알레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하려 했을 때 미국의 의회는 단 한 표차로 그 법안으로 가결했다. 1868년 앤드류 존슨 미국 대통령은 단 한 표 때문에 탄핵 소추에서 모면되었다. 1875년 프랑스는 단 한 표 차로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뀌는 새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단 한 표 때문에 세계 역사를 바꾸어놓는 나치당을 장악하게 되었다. 지난 2015년 3월 11일 실시한 울진군 북면 농협장 선거에서는 무려 3명의 후보가 단 1표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진기한 기록이 수립되기도 했다.
1. 하나님이 쓰시는 ‘의인 한 사람’으로 인하여
1. 의인이 드리는 믿음의 기도는 기적을 불러왔다.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울 수 없는 사막과 고원지대이다. 3년 6개월 동안 가뭄은 온 국토를 사막화시켰다. 농작물이 말라죽고, 나무들이 타죽고, 강물이 메말라 땅이 갈라지고, 먹을 물은 점점 없어지고, 가뭄과 더불어 기근이 찾아오고, 이렇게 점점 심각한 국가적인 재앙을 그 누구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한 가뭄은 사르밧 과부뿐 아니라 가뭄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나자 왕궁에 있던 아합조차도 어찌 할 수가 없어 궁중대신인 오바댜에게 전국을 순회하면서 초장과 오아시스를 찾게 했던 것이다.
왕상 18:5-6 / 그래서 아합은 궁중대신 오바댜를 불러 최후의 대책을 세웠다. … 5) 아합이 그 오바댜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이제 우리가 나가서 전국에 있는 초장이나 오아시스를 찾아봅시다. 혹시 어딘가에 말과 노새들을 먹일 풀이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궁중에 있는 짐승들을 다 죽일 수밖에 없지 않겠소?' 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전국을 크게 둘로 나누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하나님의 징계로 만신창이가 된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비를 주겠다고 하셨다. ‘이제 가서 아합왕을 만나라. 내가 다시 비를 내려 주겠다.’ 그래서 아합왕을 만나 제안을 하였다.
왕상 18:17-19 / 아합 왕이 엘리야 예언자를 보자마자 이렇게 호통을 쳤다. ‘네가 바로 이 나라를 재앙에 빠뜨린 장본인이냐?’ 18) 그러나 엘리야는 정면으로 대결하였다. `이 나라를 재앙에 빠뜨린 것은 내가 아니라 임금과 임금의 가문입니다. 임금과 임금의 아버지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바알우상을 섬겼습니다. 19) 그러나 이제는 결판을 낼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온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을 갈멜산 꼭대기로 모으시오. 이세벨이 먹여 살려는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 여신의 예언자 400명도 부르시오. 내가 거기서 그들과 결판을 내겠습니다.'
아합이 이스라엘 백성과 이세벨의 예언자들을 갈멜산 꼭대기로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두 모이자 엘리야가 온 무리 앞에 서서 외쳤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이리저리 흔들릴 작정입니까? 만일 여호와가 참 신이라면 그분만을 섬겨야 할 것이요, 만일 바알이 참 신이라면 그 신만을 섬겨야 되지 않겠소?’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엘리야가 계속 외쳤다. ‘이제 여호와의 예언자들 중에서 남은 사람은 나 한사람뿐이오. 그러나 바알을 섬기는 예언자들은 지금 450명이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결판을 냅시다. 황소 두 마리를 갖다놓고 한 마리씩 제사를 지냅시다. 바알의 예언자들이 한 마리를 골라잡아서 장작 위에 놓고 제사를 드리는데 불은 붙이지 마시오. 나도 나머지 황소 한 마리를 잡아서 똑같이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엘리야가 쌓은 단에 있는 것을 모두 태웠다. 그리고 이세벨이 먹여 살려는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 여신의 예언자 400명 합 850명을 기손 시냇가로 끌고 가 거기고 처단하였다. 의인 한사람 : 거짓 선지자 850명의 싸움에서 엘리야가 승리한 것이다. 엘리야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의 기도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은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왕상 18:36-40 / 저녁 제물을 바치는 시간이 되자 엘리야가 제단 앞으로 나아가 주께 호소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께서 시키시는 대로 제가 오늘 이 모든 일을 수행한 것인 줄 이제 모든 사람이 알게 하소서. 37) 주님, 나의 호소를 들으시고 응답하소서. 주께서 하나님이심을 이 백성이 알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 올바로 길을 걷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그들이 오늘 체험하게 하소서.' 38) 바로 이때에 여호와께서 불을 내려 보내셨다. 그 불길은 제물과 장작을 모조리 태우고, 제단의 돌과 각 주위의 흙과 도랑의 물마저 모두 태웠다. 39)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광경을 보고 모두 땅에 엎드려 고백하였다. `참 하나님은 여호와이십니다. 참 하나님은 여호와이십니다.' 40) 이때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조리 붙잡아라. 한 사람도 놓치지 마라' 엘리야는 백성들이 사로 잡아온 예언자들을 산 밑의 기손 시냇가로 끌고 가 거기서 죽이게 하였다. 거룩한 갈멜산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시냇가로 끌어다가 짐승처럼 잡아 죽이고, 시냇물로 그 피를 씻어 내게 한 것이다.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엘리야의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셨다.
왕상 18:41-46 / [다시 비가 내리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제 식사하십시오. 벌써 큰 비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하고 말하였다. 아합은 바알을 위하여 그동안 금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제 아합이 바알에게서 떠나는 것을 보시고 갈멜산의 성소에서 먹고 마시게 하셨다. 42) 아합이 식사하러 성소로 올라가자 엘리야는 거의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묻고 43) 시종에게 일렀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멀리 바다끝을 보아라!’ 시종이 올라갔다가 내려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영의 눈으로 비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계속 시종을 올려 보냈다. 44) 시종이 일곱 번째 다녀와서 아뢰었다. ‘바다 끝에서 손바닥만한 구름 한 조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이렇게 시켰다. `너는 아합왕에게 가서 비가 쏟아져 길이 막히기 전에 마차를 타고 왕궁으로 돌아가시라고 일러라.’ 45) 그러나 이미 폭풍이 일고 온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면서 세찬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라엘의 왕궁으로 달려가는데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자 그는 겉옷을 허리에 동여매고 이스르엘까지 30여 킬로미터를 아합의 마차보다 더 빨리 달려갔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 ‘의인 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 하나님께서는 오합지졸 군대가 아닌, 헌신된 ‘의인 한 사람’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대부대를 일으키셔서 역사를 이끌어가지 않으시고 소수를 통해 역사를 이끌어 가셨다. 그것도 선택된 '의인 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땅을 홍수로 심판하시기 전에 누구를 세우셨는가? 노아라는 ‘의인 한 사람’을 세우셨다. 한 민족으로 하여금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가도록 하기 위해 누구를 택하셨는가?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이라는 ‘의인 한 사람’을 세우셨다.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케 하시려고 누구를 세우셨는가? 요셉 한 사람을 세우셨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누구를 세우셨는가? 모세라는 ‘의인 한 사람’을 세우셨다. 바벨론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무너져 있었던 성벽을 수축하기 위해 누구를 세우셨는가? 느헤미야라는 ‘의인 한 사람’을 세우셨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달라질 수 있다. 나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이 되면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잘 될 것이다. 반대로 나 한 사람이 잘못되면 내가 속한 공동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 다윗 한 사람으로 인하여 /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다윗이 교만하여져서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하루아침에 7만 명이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물론 그 책임은 다윗만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 . 다윗은 여기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한다.
삼하 24:17 / 다윗은 전염병으로 온 백성을 쳐 죽이는 천사를 보고 여호와께 이런 기도를 드렸다. `여호와여, 죄를 지었어도 저 혼자 지었으며 어리석고 불의한 일을 저질렀어도 저 한사람이 저질렀습니다. 이 백성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이 백성들이야말로 정말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벌과 재앙은 저와 제 집안에만 내려 주십시오.'
다윗이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치며 그 나라와 그 백성을 위하여 기도드리자 여호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 땅에 퍼지던 재앙을 거두어 주셨다. 처음에는 여호와께서 분노하셨으나 결국 성전터를 주시고 자기 백성 중에 와 계시는 복을 내려 주셨다. 다윗은 이로써 아들 솔로몬에게 왕좌와 함께 하나님이 와 계시는 성전터를 상속해 주었다. 인간의 왕좌와 하나님의 보좌 중에서 어느 편이 더 귀한 유산이었겠는가? 그 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바로 이 타작마당에다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다(삼하 24:25).
▶ 한 사람의 의인 엘리사를 통해 / 아람 나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셨다(왕하 6:8-17)
왕하 6:8-12 / 아람이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국경선에 침범하던 때의 일이다. 아람 왕이 자기의 지휘관들과 의논하여 이스라엘 왕을 죽일 수 있는 장소들을 결정한 후 군대를 매복시켰다. 9)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전갈을 보내어 매복 장소를 알려 주고, `아람 군대가 숨어 있는 곳을 피하여 가시오!'하고 주의를 주었다. 10) 그래서 이스라엘 왕은 예언자가 경고한 곳으로 수색대를 파견하여 경계하고 그런 곳에서는 특별히 조심하면서 지나다녔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반복되자 11) 아람 왕은 불안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곧 지휘관 회의를 소집하고 호통을 쳤다. `우리들 가운데 틀림없이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반역자가 있다. 그게 누군지 당장 말하여라!' 12) 지휘관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일은 어떤 반역자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엘리사라는 예언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는 임금님께서 침실에서 말씀하시는 것까지도 이스라엘 왕에게 일러바치는 자입니다.'
▶ 에스더 한 사람으로 인하여 / 반면에 에스더 4장을 보면 왕비인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가서 하만의 음모를 무산시켜 수많은 동족들의 몰살을 막았다. 의인 에스더 한 사람으로 수많은 동족들이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 한 사람’을 결코 가볍게 보지 말고 ‘나 한 사람’으로 인하여 복이 임하기도 하고 저주가 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고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이든, 나라이든, 어디서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2,700년 전에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며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 한 사람’을 찾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 한 사람’을 찾으신다. 그리고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 미상의 기도문 / 거룩한 씨로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되라하신 주님! 생수에 삶의 근원을 두고 포도나무 가지로 살아가면서 믿음의 열매를 맺어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며 이 땅에 그루터기가 되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과 같이 거룩한 씨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저의 행사가 다 형통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겨울철 찬바람과 눈보라에 견기며 서 있는 나무들은 옷을 벗었지만 화려하고 찬란한 옷을 입기 위해 새 날을 준비하듯이 거룩한 모습으로 준비하며 새 하늘 새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세마포 옷을 입은 자답게 소망을 잃지 않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뿌리가 깊으면 나무가 무성하듯이 거룩한 씨는 믿음을 지키어 그루터기 인생으로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가 됨을 잊지 않고 거룩함과 겸손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거룩한 씨로 이 땅의 그루터기가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저에게 이슬과 같으오니 백합화같이 피어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내는 믿음의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거룩한 씨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로 세워진 그루터기 인생은 어떤 풍랑과 눈보라가 몰아친다해도 무너지지 않음을 체험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오늘 날에도 의인들의 기도는 기적을 일으킨다.
■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1993년 한 해에 454명이 살해될 정도로 살인도시라 불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6년 후에 워싱턴의 범죄율은 폭력범죄율이 60%까지 떨어졌고, 한 해에 454명이던 피살자수가 232명으로 줄었다. 강도는 70%나 감소되었고 강간도 40%나 줄었다. 이는 미국에서 일어난 기도운동을 일으킨 ‘미국을 위한 중보자들’과 전 세계의 지속적인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보기도 그룹이 ‘사기사건이 은폐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자 시장인 마리온 베리가 약물단속에 적발돼 구속되는 일이 일어났다. 정부와 도시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 기도운동은 1997년 연중무휴로 지속되었다. 6천여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였고, 이들은 전화번호부를 이용하여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기도명단에 올려서 기도하였다. 그리고 몇몇 국회의 크리스천 의원들도 매주 기도모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을 보면서 / 대통령이 되자 백악관에 들어가 그곳을 하나님이 함께 하는 기도의 집으로 만들었다. 링컨에 대해서 3,000명이 넘는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정말 인류 역사에 둘도 없는 큰일을 한 분이요,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링컨은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 그의 주변에 사람이 있거나, 부모가 있거나, 그 주변에 물질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실패의 조건은 많았고, 성공의 조건은 없었다. 링컨의 일생을 그린 작가는 ‘하나님은 그에게 가난과 신앙의 훌륭한 어머니만 주셨을 뿐이다’라고 했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 여사는 가난한 가정 농사를 지으면서 외딴 곳을 개간하여 늘 링컨과 함께 그곳을 거닐면서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솜씨, 능력의 솜씨, 전능하신 하나님의 만드신 만물을 잘 가르쳐 주었다. 각양각색의 식물들, 곤충들, 물고기들,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하나님의 지혜, 그 놀라움을 창조물을 통하여 늘 가르쳐 주었다. 또한 링컨은 어머니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었다. 어머님은 성경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었다. 특별히 세 믿음의 조상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노예 해방을 시킨 모세, 애굽을 살린 요셉, 목동으로, 시골 출신으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다윗 왕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링컨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로 물려받은 책을 잘 읽었다. 변호사 시절에 뇌물 유혹을 늘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십계명 때문이었다. 하나님 말씀으로 신앙의 기초를 잘 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어머니는 10살 때 1818년 10월 5일 풍토병으로 돌아갔는데, 아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 성경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러주면서 손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했다. ‘이 성경은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물려받았다. 나는 너에게 100야드의 땅보다 이 성경 말씀이 더 귀하다. 너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성경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라. 나와 약속할 수 있겠니?’ 훗날 대통령이 된 다음 ‘내가 어려서 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성경을 읽어 주셨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으셨다. 통나무집에서 읽어 주시던 성경 말씀과 기도 소리는 지금도 내 마음을 울리고 있네. 오늘 나의 희망, 나의 모든 것은 천사와 같은 나의 어머니께 물려받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세계를 움직였던 위대한 대통령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통나무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면서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이다.
그는 두 번째 어머니를 만났다. 1819년 12월 2일 아버지는 재혼을 했는데, 새로 들어온 어머니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링컨을 신앙으로 잘 지도했다. 돈은 없어 옷을 기워서 입혀 주었지만 신앙만큼은 철저히 가르쳐 주었다. 하루는 링컨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이름이 에이브라함인데,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줄 알고 있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경외한 사람이란다. 하나님께 절대 순종한 사람이란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까지도 제물로 드린 사람이란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고 큰 복을 받았단다. 너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해서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링컨은 학교 교육이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미국이 만난 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위인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함께 하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 링컨은 신앙의 기초가 든든하니까 항상 용기를 가지고 독수리처럼 힘차게 올라갔다. 선거에서 떨어져도 낙심하지 않았다. 요셉이나 다윗을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마침내 주지사를 거쳐 미국에 16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될 때까지만 잘하는 게 아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들어가서 백악관을 기도하는 집, 말씀의 집으로 만들었다. 백악관에 들어가서 열심히 기도도 했지만 기도일을 선포하여 금식기도일을 제정해서 온 국민들이 기도에 참여하도록 했다. 1863년 4월 30일 목요일을 금식기도일로 선포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지금까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링컨은 ‘우리가 남북 전쟁으로 수많은 피를 흘리며 고통을 겪는 것은 그동안 노예를 부리면서 짐승처럼 학대하고 죄를 뉘우치지 않은 결과이다.’라며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자신들을 낮추고 국가적인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여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게티즈버그 전투가 시작될 때에도 방문을 잠그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가 끝난 후 ‘나의 심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안해졌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기도를 받아주셨으며 마음에 확신이 왔다.’고 했다.
남북전쟁이 치열하게 계속되던 어느 날. 유명한 인기 배우였던 제임스 머독이 링컨의 초청으로 백악관에 머물게 되었다. 링컨과 저녁 식사를 하고 전쟁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잠이 들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포성 소리에 잠을 깨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흐느끼는 신음소리 때문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머독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가 보았다. 그의 발이 멈춘 곳은 복도 깊숙이 자리한 대통령의 집무실인데 신음하며 울부짖는 소리는 바로 링컨의 기도소리였다. ‘사랑의 하나님, 저는 부족한 종입니다.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새힘을 주시고 용기를 잃지 않게 도와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저를 지켜 주옵소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하루 빨리 전쟁이 마무리되어 통일된 나라를 이룩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전쟁에서 죽어 가는 젊은이들을 도와주옵소서.’
■ 영국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모펫(Robert Moffat)의 아프리카 탐험탐험 여행기를 읽다가, 이런 글을 보았다. “나는 지금 고원에서 마을들을 내려다본다. 사방에 마을들이 있고, 오막살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그 모든 집, 모든 마을이 아직 한 번도 예수의 구원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아! 언제 누가 저리로 갈꼬!” 이 글을 읽는 순간, 이 청년의 가슴에 불이 붙었다. 그는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 그의 가슴에는 오직 아프리카의 영혼들이 담겨져 있었다. 드디어 그는 아프리카 밀림의 한 복판으로 뛰어 들었다. 말을 배워가며 짐승에게 물리고 야만인들의 습격을 받으며, 때로는 가뭄과 비바람과 싸웠다. 그리고 오클랜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에 조금 못 미치는 11,000마일(17,600Km)을 걸어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1873년 5월 1일 그의 시체가 알라라 마을 움막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기도하는 자세였으며, 그의 일기에는 다음 동네로 여행을 계속할 계획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리빙스턴(Livingstone)이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 수많은 복음의 씨앗을 심었고, 심은 지 100년이 지난 후, 그가 심은 복음의 씨앗은 수많은 아프리카 부족들이 복음화 되는 놀라운 결실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아프리카를 위해서 리빙스턴을 들어 쓰신 것이다. 리빙스턴 한 사람을 통해서 아프리카에 귀한 역사를 일으키신 것이다.
■ 한 사람의 의인이 된 젊은 청년 / 젊은 청년의 꿈은 외국에 나가 광고 마케팅을 공부하고 크게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부모님은 남미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꿈꾸던 유학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청년은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 ‘하나님, 나에게 능력을 주십시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했잖아요. 나도 유학 가서 꿈을 이루게 해 주세요.’ 그 말씀을 벽에 붙여 놓고 새벽마다 기도했더니 기적적으로 유학 가는 길이 열렸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학 도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생활은 더 어렵게 되었다. 급기야는 밀가루 한 포대를 사놓고 4개월을 수제비만 먹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유학을 접고 귀국을 한다. 귀국했지만 오고 갈 곳이 없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신문을 덮고 자고 극장에서 점원으로 일도 하였다. 하지만 마음속의 꿈은 접지 않았다. 어려운 중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했다.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반드시 성공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극장 점원에서 연예계로 인도하셨다. 점점 유명해지고 스타가 되게 하셨다. 그 젊은 청년이 탤런트 최수종이다. 자신이 배우가 되려고 공부를 하거나 노력하지 않았다. 잘생긴 외모를 과외하던 학생의 아버지가 발탁하여 특채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새벽기도를 하는 그의 기도를 통해 그를 특별히 스카우트하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셨습니다’라고 간증을 한다. 지금도 새벽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NGO단체 대사로 어려움에 처한 세계 아이들을 결연하고 후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작년 2019년 59세의 나이에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눔, 연탄 봉사, 눈 오는 날, 상계동, 선한 영향력, 축복의 통로. 사랑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아내 하희라와 함께 있는 사진을 게재를 하기도 했다.
내 환경과 삶이 어떻든 진리를 구하면 성공한다.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정지된 하나님이 아니시다. 오늘도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능력주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도 있어야 한다.
▶ 대한수도원에서 즐겨 부르던 복음성가 한 곡이 있다. 구구절절 마음에 담아야 할 내용이다.
♬ 당나귀 턱뼈 / ❶ 보리떡과 같은 이 몸 축복하시가 하늘생명 떡이 되어 복음으로 우리 동포 먹여 살리게 말씀 내려 주옵소서 <후렴> 나는 지금 당나귀 턱뼈 같은 몸이나 주님 손에 맡기고 복종하고 가오니 주여 잡아가지고 불레셋을 치소서 영광 돌립니다 아멘
❷ 양각 나팔 불며 성을 돌고 또 돌 때 여리고성 무너졌다 주여 나를 복음나팔 만드시사 크게 불어주옵소서
❸ 지팡이가 능력있어 행함 아니요 잡은 손에 능력있네 마른 막대같은 나를 잡아주시사 역사하여 주옵소서
❹ 시냇가의 작은 돌로 골리앗 대장 쳐서 넘어뜨림같이 나와 같이 작은 돌을 취해 가지고 사탄이를 치옵소서
❺ 폐물 이용 잘 하시는 우리 하나님 지금 믿고 바칩니다 약한 자로 강한 자를 물리치시는 그 능력을 믿습니다
❻ 상한 갈대 꺾지 않는 하나님께서 생명약동 시키시며 꺼져가는 등불까지 끄지 않고서 기름쳐서 피우시네
❼ 저주받아 죽을 인생 살려주시니 아까울 것 무엇이며 무용지물 선택하사 사명주시니 안 바치고 견딜쏘냐.
3.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르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어떻게든 크게 보이려는 마음으로 한국에서는 큰 대(大)자를 잘 쓴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대(大)한민국이다. 다리이름도 그냥 다리라고 하지 않고 한강대(大)교, 성수대(大)교, 원효대(大)교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다음에 연결되는 University를 대(大)학교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대(大)통령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세상에서는 가능하면 크게 그리고 많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과 다르시다. 하나님께서는 거창한 것보다도 평범한 것들을 사용하신다. 많은 사람 대신 소수의 사람을 쓰신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로마서 5장 19절에 보면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많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많은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고 하며 한 사람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것이 한 사람의 원리, 대표성의 원리이다. 그러니까 나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잘 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나 한 사람만 잘 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중요성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 어느 공군 일병이 외출 허가를 받아 수원의 한 시내버스에 탔다가 버스 안에 떨어진 지갑 하나를 발견했다. 지갑에는 2,824달러 등 한화로 365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 병사는 버스에서 곧바로 내려 인근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알고 보니 지갑의 주인은 태국의 팩&포머사에서 일하고 있는 파키스탄인이었다. 그는 한국의 모 전자회사와 수출입 계약을 맺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린 뒤 ‘소매치기의 나라(?)’하고는 계약하고 싶지 않아 계약을 포기하고 출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출국을 하려고 하는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결국 잃어버렸던 그 지갑이 다시 그의 손에 들려지게 되었고, 그는 ‘한국인에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원래 계약을 하려고 했다가 취소했던 회사에 찾아가서 20만 달러 규모의 비디오폰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정직함에 놀랐습니다.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계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셨다.
마 5:13-16 /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다. …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15)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면 누구나 그 등불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왜 예수님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예로 드시면서 ‘너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달라’고 하셨는지에 대하여 그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2. 하나님께서 의인 한 사람을 찾으실 때
1. 제자들처럼 예수님께서 찾아오실 때에는 믿고 따르라
❶ 첫 번째 부르심은 요 1:35-51에 안드레와 요한이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그 날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안드레는 그의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했고 요한도 그의 형제 야고보를 예수님께 데려와 제자가 된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은 빌립에게 전도하셨으며, 빌립은 다시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다. 이때에 부름을 받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전도 여행에 가끔 동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자기 직업을 완전히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일에 가끔 동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❷ 두 번째는 첫 번째 부르심이 있은 지 약 1년 뒤에 있었다(마 4:18-22, 막 1:16-20 A. D. 28년 2월경). 이때에 언급된 네 제자((요 1:35-41) 베드로, 요한, 야고보, 요한은 더욱 더 확고한 예수님의 동반자가 되었다. 이 부르심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을 때에 일어났다. 이 부르심의 결과로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부친을 각각 버려두고 예수님을 좆았다. 예수님은 이때에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직업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❸ 세 번째는 두 번째 부르심이 있은 지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일어났다(눅 5:1-11). 이 부르심은 네 제자들이 조업을 마치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에 일어났다. 예수님은 이때에 베드로가 이적으로 많은 고기를 잡게 하셨다. 이때에 이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이 부르심 이후부터 그들의 직업과 소유와 가족을 모두 버리고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좆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때부터 세상의 어부로 사는 일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어부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❹ 네 번째는 마 9:9-13, 막 2:13- 17, 눅 5:27-32에 언급된 부르심으로 이 일은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마태(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사건이었다. 이 부르심은 앞에 언급된 네 제자들을 부르신 직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 부르심을 받은 마태 역시 그의 직업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다.
❺ 다섯 번째는 12제자 전체를 사도로 부르신 사건이었다(마10:1-4, 막 3:13-19, 눅 6:12-16). 예수님은 이때에 많은 사람들 중에서 12명을 제자로 선택하여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을 복음의 동역자로 삼기 위해 곁에 두시고 양육하셨다.
2.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기적을 기억하면서 천사 가브리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눅 1:26-38 /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 되었을 때였다. 하나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리의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셔서 … 28)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이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29) 놀라고 당황한 마리아는 천사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말하였다. `마리아여, 두려워하지 맡아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놀라운 은혜를 내리셨다. 31) 너는 이제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니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는 위대한 분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33) 그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처녀인 내가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35) 천사가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도 늙은 나이에 아기를 가졌다. 사람들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 하였으나, 그가 임신한 지 이미 여섯 달이나 되었다. 3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나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사라졌다.
3. 필요하다면 기드온처럼 표적을 구할 수도 있다(사사기 6:36-40)
성경에는 기적이라고 말하는 신기한 사건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홍해가 갈라진 것이나, 여호수아가 전쟁을 할 때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 등등 현대 사회에서는 체험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일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도 현대 사회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신기한 이적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경의 기적들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보통이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에 무관심할 수 있을 것이고, 성경의 기적이란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던 그때나 있을 법한 일로 여겨버리고 지나칠 수도 있다. 즉 성경이니까 그런 사건들이 있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신기한 이적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구약에 나타난 이적은 그렇다 해도 신약의 이적은 예수님의 시대에 있었던 일이고 또 사도들이 행했던 이적이니 만큼 예수님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가지고 있다. 특히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했던 귀신을 쫓아낸다거나 불치병을 고치는 소위 권능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성경에 나타난 이적은 성경으로 끝났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일하신다면 아직도 그러한 이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과거 30여 년 전에는 한국 땅에 많은 기사와 이적이 있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찾아보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기적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기적은 성경에나 기록되고 나올 신비한 사건들이지 지금 이 시대에서는 있을 필요가 없고 있을 수도 없다는 생각은 아닌지? 혹 기적에 관심을 두게 된다면 신비사상에 빠졌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적이나 신비한 현상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해도 만약 자신이 직접 기적을 체험한다면 기적에 대한 견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평소 '기적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해서 직접 체험을 한 후에도 '기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체험은 어쩌면 성경보다 더 확실하고 실제적인 증거로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이것을 체험했다'는 것은 체험한 그에게 있어서는 확고한 신앙과 진리로 자리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적에 대한 신자의 입장은 어떤 것이 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성경에 나타난 기적이나 신비한 현상을 인간에게 직접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을까?
사사기 6:36-40에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과의 전투를 앞둔 기드온이 하나님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적을 구하는 내용이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면 그것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다(삿 6:36-37 /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었다. ‘주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스라엘을 구해 내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말입니다. 37) 주님, 보십시오. 제가 양털 한 뭉치를 가져다가 타작마당에 두겠습니다. 그래서 이 양털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고 주변 마당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가 싸워 저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겠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기드온이 하나님께 요청한 대로 되었다.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 일어나 타작마당에 두었던 그 양털뭉치를 가져다가 이슬을 짜보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게 고였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었다. ‘주님, 제가 또 여쭙는다고 해서 제발 화내지 마십시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에는 양털뭉치에는 이슬이 내리지 말게 하시고 타작마당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기드온이 요청한대로 되었다. 곧 하나님께서 양털뭉치에는 이슬을 내리지 않아 말라 있고 타작마당 여기저기에만 이슬이 내려 젖어 있었다.
이슬이란 자연현상이다. 이슬이 어느 특정 지역에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타작마당에 둔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기를 요구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자신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하신다는 것을 믿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를 들어 주셨다. 그러나 기드온은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이번에는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은 다 이슬이 있게 해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기드온의 요구를 꾸짖지 않으시고 그대로 해주셨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신비한 일을 행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 하심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신 것이었다. 기드온에게 신비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지고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지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을 인도하시는 방법으로 기드온이 요구한 신비한 일을 행하신 것이다. 아무나 기드온과 같은 요구를 한다고 해서 그대로 행하시지는 않는다. 기드온에게만 또는 하나님의 큰 뜻을 수행해야 할 선지자, 왕, 하나님의 종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들에게 특별히 행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하나님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신비한 일을 요구한다면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실까?'라는 생각을 하지마라.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해도 어쩌면 이미 그런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기드온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신비한 현상을 원했다면 나도 신비한 현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신비한 현상을 원한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은 기적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처럼 그 속 내면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인하고자 하는 열망보다는 결국 신비한 일에 마음이 끌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비한 일을 보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으로 가리고 있을 뿐이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서 구원하시려고 선택하신 사사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신기한 일을 행하신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약 기드온처럼 신기한 일을 체험을 했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는 것이 옳을까? ‘내 인생은 하나님에게 붙들린 인생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옳다. 기적을 체험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보이시면서까지 나를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두는 것이 옳은 것이다. 너무 믿음이 없으니까 기적을 보이시면서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는 사람으로 만드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신기한 일을 체험해야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는 비록 신기한 일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해도 하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죄인인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신 것을 놀라운 기적의 사건으로 볼 수 있으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죄인된 인간이 천국에 가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기적을 체험한 기적의 사람인 것이다.
기드온에게 신기한 일을 행하신 것이 기드온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이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죄악된 세상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계시하신 것이다.
마 1:21-23 / ‘그러니 마리아가 아들을 낳거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불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내실 분이다.' 22)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한 것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분명히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있다.
요 3:1-3 / 어느 날 밤이 이슥할 무렵 바리새파에 속한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 한 사람이 예수께 회견을 청해 왔다. `선생님,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선생님을 보내신 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이신 표적이 그 사실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과거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만들어 높이 들었을 때에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기적을 예로 들으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죄악으로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 3:16-21 /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보내셨다. 18) 그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어둠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인으로 판단을 받은 것이다. 19) 죄인으로 판단받았다는 것은 곧 빛이 하늘로부터 세상에 들어왔는데도 그들이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20) 그들은 어둠 속에서 죄짓기를 즐기고 하늘의 빛을 싫어한다.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서 수치를 당할까봐 빛을 멀리한다. 21) 그러나 올바른 행실을 하는 사람들은 즐겨 빛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어떤 기적이나 신기한 현상도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한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서 죄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이다.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간섭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죄를 알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죄를 알았다면 죄를 해결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까지 마음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하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말년에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서 이렇게 설교하였다.
요일 3:16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고 우리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이 말씀은 근본적으로 신구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영생을 얻게 하는 계명이었다.
이러한 계명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 11:9-13 /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된 사람으로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2) 아들이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 미디안 연합군 13만 5천명이 쳐들어오자 기드온과 함께 싸우겠다고 모여든 사람이 3만 오천 명이었다.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고 해 돌려보내니 1만 명이 남았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1만 명도 많다고 하셔서 물을 먹는 시험을 했다. 엎드려 먹는 사람이 9천 7백 명이요, 물을 손으로 떠먹은 사람이 3백 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3백 명을 용사로 택하셨다. 13만 5천명 대군 앞에 9천 7백 명과 3백 명 어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이 유리한가? 9천 7백 명이나 3백 명으로는 13만 5천명 그것도 전쟁에 능한 군사와 싸울 수 없는 숫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르치려 하신 것은 소년 다윗이 골리앗 장군 앞에서 한 말과 같은 것으로 가나안을 점령하여 살게 된 이스라엘 모두가 명심해야 할 말씀이었다.
삼상 17:43-47 / 그래서 골리앗은 다윗을 깔보며 호통을 쳤다. `네가 막대기를 가지고 어떻게 할 작정이냐? 혹시 나를 개로 여겼느냐?' 그리고 골리앗은 자기의 신들을 부르면서 다윗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44) 골리앗은 끝으로 다윗을 이렇게 조롱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네 살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들의 밥으로 주겠다!' 45)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너는 칼과 창과 투창을 들고 내 앞에 나왔지만 나는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무장하고 나왔다. 너는 만군의 여호와를 조롱하였으나 46) 여호와께서는 오늘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네가 여호와를 저주하였기 때문에 너는 그 벌로 죽게 될 것이다. 이제 여호와께서 내가 너를 쳐죽이고, 네 목을 자르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네 시체뿐만 아니라 블레셋 족속의 시체를 모조리 하늘의 새와 들짐승들의 밥으로 주겠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천하만민이 알게 될 것이다. 47) 또한 여기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도 여호와의 승리가 칼이나 창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전쟁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입증해 주셨다(삼상 17:48-51).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계획이셨다. 그런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 누구일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를 아는 사람이다. 기드온이 그런 사람이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이기니까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요구한다. 그때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 사람들이 왕이 되어 달라고 요구했을 때에 거절하신 것처럼 기드온은 단호히 ‘아니다! 나도 아니고 내 자식들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거절했다. 기드온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이다.
삿 8:22-23 / 얼마 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기드온님, 기드온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를 건져내 주셨으니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 기드온님뿐만 아니라 기드온님의 아들과 손자들까지도 내내 우리를 다스려 주셨으면 합니다.’ 23) 이 말에 기드온이 대답하였다. ‘나와 내 아들이 그대들을 다스리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그대들을 다스릴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십니다.’
4.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직접 나타나심으로 인하여 사도가 되어 복음의 증인으로 순교까지 하였다.
행 9:2-7 / 사울이 다메섹에 가서 그리스도인이면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예루살렘으로 붙잡아 올 테니 다메섹에 있는 여러 회당에 보내는 공문을 써달라고 대제사장에게 요구하였다. 3) 사울이 이 용무를 띠고 다메섹 가까이 갔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이더니 그를 내리비추었다. 4) 사울은 그만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그때 한 음성이 사울에게 들렸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5)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울이 물었다. 그러자 곧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자,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서 내 명령을 기다려라.' 7) 사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놀라서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들에게는 음성만 들려 올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메섹에는 아나니아라는 한 신도가 살고 있었다. 예수님이 신비로운 환상으로 그에게 나타나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셨다. ‘예, 주님!’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곧은 거리로 가서 유다라는 사람의 집을 찾아라. 그 집에 다소 사람 사울이 와서 지금 기도를 하고 있다. 내가 환상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와서 손을 얹으면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가서 내가 시킨 대로 하여라. 사울은 내 복음을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 그 왕들에게 전파시키고자 내가 택한 그릇이다. 그가 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일러주겠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사울을 찾아가서 그에게 손을 얹고 말하였다. ‘사울 형제여, 당신이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나타나셨던 주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당신이 충만히 성령을 받고 또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순간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3. ‘하나님이 쓰시는 의인 한 사람’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로마서 16장 / 겐그레아 출신인 교회의 열성적인 일꾼 자매 뵈뵈 부인(1절),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일해 온 나의 동역자일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나를 살려 준 사람들이었고(2-4절), 그들의 집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5절) 바울이 친구같이 여기는 아시아에서 맨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에배네도(5절), 바울의 일행을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와준 마리아(6절), 친척이며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일도 있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7절), 바울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암블리아(8절), 바울과 같이 동역자한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9절), 주님을 위해 숱한 고생을 겪은 아벨레와 아리스도불로의 가족들(10절), 바울의 친척 헤로디온(11절), 주님의 일꾼인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주님을 위해 열심으로 일한 버시(12절), ‘주께서 가려 뽑으신 루포와 그의 어머니 곧 나의 어머니’라고 까지 했던 구레네 시온의 아내(13절),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14절),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15절), ‘나의 동역자 또는 아들’이라고까지 한 디모데와 바울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21절), 바울을 대신하여 편지를 받아쓰는 더디오(22절), 가이오(23절), 시의 재정관인 에라스도와 믿음의 형제 구아도(23절).
그 이외에도 우리가 잘 알고 빌립보의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 빌립보 감옥의 간수를 비롯하여 갇혀 있던 죄수들. 그뿐 아니라 로마교회 교인들, 고린도교회 교인들, 갈라디아교회 교인들, 에베소교회 교인들, 빌립보교회 교인들, 골로새교회 교인들,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 디모데후서 4:19-22에서 바울이 열거한 모든 사람, 바울과 함께 동행했던 하나님의 일꾼들 누가, 실라, 마가, 두기고(딤후 11-12), 빌레몬도 있다.
이들 모두는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자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인들이었다.
1.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사도로 세움
4복음서가 요한복음 21장으로 마감을 짓고 사도행전으로 넘어가면서 예수님이 승천하셨고,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기들이 묵고 있던 2층 방으로 올라가서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예수의 형제들과 예수의 어머니를 비롯한 몇 사람의 여자들이 참석하였다. 이 기도회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는데 어느 날 120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베드로가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을 택하여 부활의 증인을 삼고자 하였다. 이에 바사바라고도 하고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후보자로 세우고 적임자를 뽑기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오, 모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주님,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사도로 택하여 배반자 유다 대신에 앉혀야 할지 알려 주소서. 유다는 마땅히 제 갈 곳으로 갔습니다.' 26) 그러고 나서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맛디아의 이름이 나왔다. 그래서 그는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직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사도직을 이어받게 된 맛디아는 당연히 초대교회에 일꾼이 되었지만, 경선에서 탈락한 유스도는 어찌 되었을까? 선거를 놓고 본다면, 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분명히 실패한 사람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대단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도로 선출된 맛디아의 이름은 그 후로는 성경 아무 곳에서도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그 중요한 직분에 선출되고도 사실상 그의 이름은 그 이후로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 때 낙선된 유스도의 이름은 그 후에 성경 중에서 적어도 두 번이나 소개되고 있다. 유스도의 이름이 나타나는 첫 번째의 경우가 사도행전 18:7이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주 심한 방해와 핍박을 받았는데, 그 때 그 고통을 피하여서 들어간 곳이 바로 이 유스도의 집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디도 유스도란 사람이 사도행전 1장에 등장하는 유스도와 동일한 인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동일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바울은 이 유스도의 집에서 그 후로 1년 6개월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그 동안 이 유스도와 함께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마치 지하운동을 하듯이 전도하는 사업을 펼쳐나갔다.
유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참된 신앙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을 배울 수가 있다. 그는 투표에서 패배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실패자요, 그로 인해서 심리적 고통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요즈음 식으로 본다면 그의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는 그런 지경에 있었다. 게다가 주위에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바로 이 유스도의 경우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유스도는 사도 중 한 사람이 안 되었다고 하여 낙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충실한 신앙생활을 계속하여 왔다. 많은 박해가 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박해를 피하여 멀리 피신을 하는 그러한 때에 오히려 교회 바로 옆에서 살 정도로 고린도 교회의 기둥 같은 역할을 다 하며 교회를 전심으로 섬겼다. 게다가 박해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사도 바울을 오히려 자기 집에 떳떳이 모시고, 그의 뒷바라지를 하며 복음 전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닥친 불행, 실패, 어려움에 대해 핑계를 찾으면서 살아간다. 낙심하기도 하고, 좌절하고 그래서 체면이 유지될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며, 손해가 과히 없을 정도로만 사랑을 겉으로 내 보이는 정도로 살아간다.
그러나 유스도는 오히려 더욱 겸손히, 핑계함 없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었다. 우리의 삶에는 맛디아의 경우처럼 성공하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다. 유스도의 경우처럼 떨어지는 것과 같은 어려운 환경과 시련이 우리의 삶에 있기도 하다. 아니 이런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때가 있고, 실패할 때도 있고, 좌절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 오던 하나님의 일을 중단한다는 것은 성도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반면 맛디아는 유다 대신 사도가 되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부터 승천하신 순간까지 함께 했고 그 후 마카비 시대에도 많은 하나님의 일을 했다. 특별히 유대 전승에 의하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1세기에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 중 한 전설에 의하면 맛디아가 유대 지방의 여러 고을을 설교하며 다닐 때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을 보게 하고, 나병을 고쳐 주고, 악령을 쫓아내는 등 여러 기적을 행하였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 그를 고발하였다. 그때 맛디아는 “당신들이 나를 고발한 죄에 대해서 특별히 대답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라고 하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명예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제사장이 "만약 유예 기간을 준다면 속죄할 마음이 있는가?" 하고 묻자 맛디아는 "한 번 찾은 진리를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맛디아는 율법에 매우 정통하였고 순수한 마음과 총명한 정신을 가져 성경의 해석이 예리하고 설교도 능숙하게 하여 유대 교도들이 이것을 시기하여 두 사람의 거짓 증인이 그를 고발하고 먼저 돌을 들어 던졌다. 그때에 맛디아는 위증자들에 대한 증거로서 이들이 던진 돌을 자기의 묘혈에 넣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유대 교도들은 그를 돌로 쳐서 죽이고 다시 로마식으로 도끼로 목을 잘랐다고 한다. 이때 맛디아는 양손을 벌리고 영혼을 하나님께 맡겼다고 한다.
2.‘하나님이 쓰시는 의인 한 사람’은 주 안에서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
막 3:20-22 / 예수께서 묵고 있는 집으로 돌아오시자 그 집은 다시 모여들기 시작한 군중으로 가득 차 버렸다. 그래서 예수와 그의 일행은 식사할 겨를조차 없었다. 21)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소문을 듣고 붙들어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였다.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그는 귀신이 들린거야. 그것도 귀신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귀신들이 그에게 복종하겠지' 하고 떠들어댔다.
막 3:31-34 /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와서 예수를 불러 달라고 사람을 들여보냈다. 그때 집안에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고 예수께서는 모인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32)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선생님을 찾고 계십니다.' 33)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신 뒤 34)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네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리아는 두 가지가 염려되어 예수를 찾아갔었다. 하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따라다녀서 식사할 시간도 없는 아들의 건강이 염려되어서였고 또 하나는 아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귀신이 들려 미쳤다'는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진위여부보다 마음이 아파서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였다. 아들이 밖에 나가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판국에 사람들에게 '미쳤다'라는 말까지 듣고 있으니 어머니로서 그 마음이 어떻겠는가? 여러 말의 칭찬보다 한마디의 못마땅한 말이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지금 마리아는 인기가 있는 것도 좋지만 식사도 못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는 아들의 건강이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더구나 몇몇 율법학자들이 아들에 대해 ‘귀신이 들렸다, 혹은 미쳤다’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로서 아들에 대한 염려 때문에 찾아가서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전갈을 보내었을 것이다.
그래서 32절에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선생님을 찾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의 말은 전체 분위기를 설렁하게 만드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증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뭇 진지한 분위기로 주위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예수님의 말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머뭇거리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곧 그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고 되물으셨다. 왜 이렇게 되물으신 것일까? 그 다음에 나오는 이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였다.
막 3:34-35 /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네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이 말씀 때문에 여러 사람이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먼저는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왔다’고 말을 전한 사람이 당황했을 것이고, 느닷없이 지적당한 제자들도 당황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밖에 있던 마리아나 동생들이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들었다면 당황할 정도가 아니라 크게 분노할 말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동생들을 지척에 두고서 엉뚱한 사람을 가리켜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했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예수님은 한 번도 어머니를 무시하거나 혈육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신 일이 없으셨다. 지옥의 고통이라고 하는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도 요한에게 ‘사랑하는 어머니를 부탁한다’고 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혈육인 동생 야고보를 만나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고 하셨다. 또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네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혈육을 무시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혈육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설명하고 계신 것이다. 아니 혈육보다 우선 되어져야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 부르심과 관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 즉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일 것이다.
3. 예수님께서도 하나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셨다.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협력하지 못하고, 연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모함하고, 복수하고 죽였다. 아담과 하와의 원망의 피가 아직도 우리 모두의 몸속에도 흐르고 있다. 그래서 동서가 화합하지 못하고 남북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기와 분쟁이 국회 안에서는 물론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장로교만 100개 이상으로 갈라져 있다. 영락교회에서 갈보리교회가 갈라져 나왔고, 충현교회에서 서울교회가 갈아져 나왔다. 총신에서 합신이 갈라져 나온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도 백석대신교단이 4개로 갈라져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 되게 하는 일이다. 그러면 사탄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사분오열시키는 일이다. 사탄이 하와와 아담 속에 들어가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갈라졌고, 아담과 하와가 서로 갈라졌다. 사탄이 가인 속에 들어가니까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시기질투하여 죽였고 하나님과도 갈라졌다. 사탄이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니까 예수님과 갈라졌고 다른 제자들과도 갈라졌다. 사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 들어가니까 하나님과 베드로와 성도들로부터 갈라져서 죽고 말았다.
3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셨던 예수님이 제일 신경 쓰신 부분이 하나님의 뜻과 사역에 서로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하나가 아닌 모래알처럼 ‘너는 너요, 나는 나요’라며 갈라진 것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로서 연합시키는 일을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에서와 하나가 되게 하셨고, 요셉이 그 형제들과 하나가 되게 하셨으며,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하나 되게 하셨다.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7). 예수님도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셨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엡 2:14).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도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일이었다.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17:11).
4.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은 DNA가 같다.
가족들이 왜 가족인가? 혈통이 같다. 즉 DNA가 같다는 말이다. 영적인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DNA로 한 가족이 되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DNA로 한 가족이 되었다.
롬 8:14-17 /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15) 우리는 노예처럼 아첨하거나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자녀로 영접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여 하나님을 아버지(아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16)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말씀하시며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7)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께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분의 재산을 분깃으로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그 아들의 영광을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면 그분의 고난에도 함께 동참하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셨다.
요 1:1213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는 혈통이나 인간적인 생각이나 의지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믿음을 가진 자들은 혈통이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니 또한 형제자매라 불러도 좋은 한 가족이다.
엡 2:19 /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는 낯선 나그네도 이방인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족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집안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의 정의를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육신의 부모와 형제자매와 재산을 버리고 선교의 길로 나아갔다. 새로운 가족이 된 교회 성도들과 함께 매일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떡을 떼었다. 교회는 가족의 공동체를 넘어서 더 위대한 공동체로 부름을 받았다. 한 몸으로 부름을 받았다. 가족보다 더 친밀한 공동체이다. 새롭게 형성된 가족 공동체는 민족적 경계마저 무너뜨려 버렸다.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인들에게서 이 경계가 무너졌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모두가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 교회 안에서는 인류가 한 형제 공동체였다. 주인과 노예의 경계도 없어졌다(빌레몬서 1장). 사도 바울은 주인인 빌레몬을 향하여 그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교회사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에베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성적인 차별도 무너졌다(갈 3:28).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의 피 뿌린 복음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하시고 이제 새로운 가족으로 부르셨다. 십자가에서 그분이 피를 뿌리신 덕분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 이 관계는 세상의 혈육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리고 한 입으로 한 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 분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그 분의 은혜를 함께 사모하고 있다. 왜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일까? 머릿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 죽으심과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한 형제 한자매가 되었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은 vision이 같다.
누가 진정한 가족인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원하셨던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비전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르침을 듣고 따를 때에 든든한 반석 위에 집(공동체)을 짓게 될 것이다.
빌 2:1-8 /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격려해 줄 마음가짐이 되어 있습니까? … 우리가 함께 성령을 받았고 주님 안에서 형제가 되어 있다는 참다운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 2)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마음을 열어 화합하십시오. 한 마음과 한 생각과 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여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십시오. 3) 자기 본위가 되거나 남에게 과장된 행동을 하지 말고 겸손하게 남을 존중해 주십시오. 4)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고 남에게도 눈을 돌려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자세를 본받으십시오. 6)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면서도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거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7) 오히려 그 큰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을 취하여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8) 아니, 훨씬 더 자기를 낮추어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버지께서 이런 예배를 원하시며 그런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들이 모여 예배하며 기도할 때에 그곳에 함께 하신다. 이에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교우들을 비롯하여 모든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성도의 삶을 제시하였다.
롬 12:1-18 / [그리스도 안의 새 생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실 일을 생각할 때 이것이 무리한 요구이겠습니까? 2)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가를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3) 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십시오. 4-5) 우리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에도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모두가 한데 모일 때 하나의 완전한 몸을 이룹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서로 다른 지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각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어떤 일이든 한 가지씩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 예언하는 능력을 받은 사람이 있거든 믿음의 분량대로 예언을 하십시오. 7) 만일 남을 섬기는 은사를 받았거든 성의를 다해 남을 섬기고, 남을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거든 훌륭하게 가르치십시오. 8) 설교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열과 성을 다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설교를 하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셨거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행정 능력을 주어 다른 사람들의 일을 감독하게 하셨거든 성실하게 그 책임을 다하십시오. 슬픈 자를 위로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위로하십시오. 9) 여러분은 겉치레로 남을 사랑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10) 형제를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며 마음으로 존경하십시오. 11) 여러분이 맡은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계획하고 계시는 모든 일을 기뻐하십시오. 환난 가운데서도 참고 항상 기도하십시오. 13) 하나님의 자녀들이 곤궁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고 만일 그들이 잘 곳이 없거든 집안에 재우십시오. 14)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누가 여러분을 학대하더라도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를 보살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15) 다른 사람이 행복해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들이 슬퍼할 때 함께 슬픔을 나누십시오. 16) 서로 한마음이 되어 즐겁게 일하십시오. 오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상류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려 하지 말고 보통 사람들과 즐겁게 사귀십시오. 그리고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고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 17)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누가 보더라도 여러분이 정직하다고 인정할 수 있게 행동하십시오. 18)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이러한 화합과 하나되는 일들은 로마교회뿐 아니라 에베소 교회도 그러했다. 아울러 모든 교회들도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사도 바울의 권면을 마음에 담고 힘써야 한다.
엡 4:1-6 / [일치를 위한 호소] 주님을 섬기다가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인 내가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놀라운 복을 받도록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에 합당한 생활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2)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며, 사랑으로 서로 결점을 덮어 주고 서로 참아 주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가 되도록 항상 힘쓰고 서로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4) 우리는 모두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우리는 같은 성령을 받았으며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소망도 하나입니다. 5) 우리의 주님은 한 분이며, 믿음도 하나고, 침례도 하나입니다. 6) 또 우리 모든 사람 위에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모든 지체들을 꿰뚫어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도 한 분입니다. 7)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풍성한 은사의 창고에서 알맞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 시너지라는 말을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다. 1+1=2 인데 3이 되는 이치이다. 예를 들면 100kg이나 되는 무거운 돌덩이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다. 친구가 그것을 보고 다가와서 절반을 들어주면 50kg으로 줄어듭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따뜻한 말을 하면서 함께 걸어간다면 그 짐은 훨씬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너지(synergy)'라는 말은 전체가 각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너지란 ’각자가 제 각기 일하여 얻은 결과의 합보다 둘 이상 함께 일하여 얻은 결과가 수량이 많아지거나 품질이 좋아지거나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때에 시너지가 창출되고 발생하였다‘고 한다. 왼팔은 뒷짐 지고, 오른팔로만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면 약 50kg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오른팔을 뒷짐 지고 왼팔로만 들어올리면 약 20kg을 들어올릴 수 있다. 50kg과 20kg을 합하면 70kg을 들어올릴 수 있을 것인데, 두 팔로 합하여 들어올리면 무려 110kg을 들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각각이 일하면 70kg이지만 두 팔로 들어올 때에 110kg을 들어올렸으니 40kg을 더 들어올릴 수 있다. 이것이 시너지가 발생하였다, ‘plywood’ 베니어판 - 합판을 보자. 얇은 2mm 합판에 하중을 가하면 600파운드, 두 개를 합하여 4mm이면 2배가 아니라 8배가 강해지고, 합판 세 개를 합하여 6mm가 되면 무려 15배가 강해진다고 한다. 이것이 시너지 효과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힘 있는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은 위대하다. 거룩하다. 무엇보다 강력하다. 바로 성도들의 모임이다. 성도라는 말에 있는 ‘성’자가 거룩할 성(聖) 자요, 이 거룩함이란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진 모임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그 모임 속에 계시고 주도하시는 것이다. 두나미스의 성령님, 권능의 역사로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모임 속에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모임의 사람들이 성령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바라고 있다면 말이다.
신명기 28:7에서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고 해 주셨고, 신명기 32:29-30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들이 나가서 적들과 싸울 때 한 사람이 천을 쫓고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는 역사가 일어나 승리하게 된다고 약속해 주셨다.
■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군이 던커크 반도에 몰린 채 독일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있을 때 영국 정부는 조지 6세가 주동이 되어 전국에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왕, 각료, 공무원, 전 국민이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농촌에서 합심하여 던커크 반도에서 멸망 직전에 있는 자국군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전 국민이 ‘주여! 던커크 반도에 갇혀 멸망 직정에 있는 영국 35만의 군대를 구원해 주옵소서’라고 매일같이 부르짖었다. 드디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35만의 영국군이 던커크 반도를 빠져나오고 있을 때 독일군이 있는 쪽에서는 엄청난 폭풍우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 폭풍우 때문에 비행기는 물론 탱크도 움직일 수 없어서 다잡은 영국군을 고스란히 놓치고 말았다. 한편 영국군 쪽에서도 기적이 일어났다. 독일군쪽과는 달리 도버해협의 물결이 어찌나 잔잔한지 수천 척의 군함들이 35만의 영국군을 무사히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이틀 후 영국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온 국민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또한 이 놀라운 사건은 세계전사에서 불가사의한 일로 기록되고 있다.
▶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두 사람이 모인 곳에는 뜻밖의 일들이 벌어졌다.
마 18:19-20 / 내가 또 진정으로 말한다. 만일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 위에서 마음을 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형제들의 연합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일들이었다.
바울과 실라도 합심하여 전도했다.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많이 때렸다. 바울과 실라는 깊은 옥에 갇혔고 발은 차꼬에 든든히 채워졌다. 이 때 실라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울 사도님, 사도님 때문에 나까지 이 고생입니다. 사도님이 마게도냐 쪽으로 오지 않고 아시아 쪽으로 계속 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이 곳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났을 때 가만 내버려두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공연히 그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서 나까지 이런 고생을 하게 하십니까?’ 그러나 사도행전 16장 25절에는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불평과 원망 대신에 합심해서 기도하고 찬송했다. 그렇게 하니까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렸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겨졌다. 간수와 그 가족이 구원 받는 일이 일어났다. 주님 뜻 안에서 합심하는 것은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을 일으키게 한다.
■ 1960년 케냐 마우마우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선교사 매트 히겐스 부부가 마침 그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그들이 마우마우 지역의 중심부를 지나고 있을 때, 차가 고장이 났다. 당시 그 지역에서는 케냐인과 선교사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밤을 지냈다. 드디어 아침이 되었고 차를 수리한 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수 주일이 지난 후에 휴가를 얻어 미국으로 가서 클레이 브랜트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최근에 무슨 위험한 일이 없었냐고 물었다. 클레이는 3월 23일 밤에 갑자기 이 선교사 부부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꾸 걱정이 되고 부담이 들어 16명을 모아서 그 부담과 걱정이 사라질 때까지 합심해서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시간에 마우마우의 한 청년이 친구들과 함께 이 선교사 부부를 죽이기 위해 차에 접근했다고 한다. 그러나 16명의 장정들이 칼을 들고 차 주변을 지키고 있어서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하였다. 16명의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지키신 것이다.
제2의 오순절역사도 모두가 함께 힘을 모을 때 일어났다 / 특별히 사도행전 4장에서 나면서 앉은뱅이를 고쳐주었던 베드로와 요한이 군중들에게 설교하고 있을 때였다.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나타나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선포하는 데 격분하여 그들을 붙잡아 끌고 갔다. 이튿날 예루살렘에는 온 유대 지도자들과 장로와 율법학자들의 의회가 소집되었다. 대제사장 안나스를 비롯하여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그 밖에 대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두 사도가 그들 앞에 끌려 나왔다. ‘당신들은 무슨 권세와 누구의 권위로 이 일을 하는 거요?’ 의회가 두 사도를 심문하였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존경하는 이 나라의 지도자와 장로 여러분, 오늘 우리가 심문받는 것이 앉은뱅이에게 선한 일을 베푼 것과 또 그가 어떻게 낫게 되었느냐 하는 일 때문이라면 나는 여러분과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구자였던 저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 메시아이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과 그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죽었던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 그분의 힘을 입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그 이름밖에 없습니다.’ … 공회원들은 두 사도를 다시 불러들여 앞으로는 예수에 대한 말을 일절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하는 수 없이 풀어 주었다. 40년 동안이나 앉은뱅이로 있던 사람을 고친 놀라운 일을 보고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풀려 나온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제자들을 찾아가서 의회원들이 한말을 들려주자 그 말을 들은 신도들은 한마음으로 다같이 기도를 드렸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님! 주께서는 아늑한 옛날 주님의 종이며 저들의 조상인 다윗의 입을 빌려 성령의 힘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들마다 어찌하여 시끄러운가? 민족들마다 어찌하여 군대를 모으고 있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왕들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권력 잡은 자들이 여호와를 거슬러 그분께 기름부음받은 이를 거스르는가?’ 바로 예언에 있는 그대로의 일이 오늘 여기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헤롯왕과 총독 빌라도 그리고 온 로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한패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종이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아들 예수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곳에 모여 저지르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권능과 뜻으로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라는 사실을 저희가 잘 압니다. 오,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 앞에 놓인 저희를 굽어 살피시고 주님의 종들이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이룰 수 있게 하여 주소서(행 4:24-30).” 기도가 끝나자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이 크게 흔들리며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제2의 오순절 역사가 일어났으며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4.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하나님께 붙들린바 된 사람이다
신약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울이라면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모세,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다윗이다. 모세는 40년간 왕궁에서 살고, 40년간 호렙산에서 양을 치고,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로 나왔다. <모세>란 책을 쓴 챨스 스윈돌은 모세의 세 시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❶ 모세는 왕궁에 있을 때 자기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❷ 그러다가 사람 죽이고 호렙산으로 피신한 후 40년간 처갓집 양을 키우며 낮아질대로 낮아졌다. ❸ 하나님이 그를 떨기나무에서 부른 이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40년 광야를 건너 가나안땅까지 인도해서 모두가 인정하는 인물이 되었다. 처음부터 모세가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바울을 위대하게 쓰신 하나님은 어떻게 모세를 위대하게 쓰셨을까?
모세가 40세의 생일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나서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못살게 굴고 있는 것을 보자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의 편을 들어 싸우다가 그만 애굽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모세는 자기야말로 이스라엘 사람을 도우라고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동족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튿날 모세는 다시 그들을 만나러 갔다가 이스라엘 사람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싸움을 말리며 ‘여보시오, 한 핏줄끼리 이렇게 싸우면 되겠소? 이게 무슨 짓들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동료를 괴롭히던 사람이 쓸데없는 간섭하지 말라고 대들며 말하였다. ‘누가 당신을 우리 지도자나 재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나를 죽일 작정이오?’ 이 말을 들은 모세는 애굽을 나와 미디안 땅에 가서 살았다. 거기서 그의 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로부터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모세가 시내산 근처 광야에 나가 있을 때였다. 한 천사가 가시나무 덤불 불길 속에 나타났다. 이 광경에 놀란 모세는 무슨 일인가 자세히 알아보려고 달려갔다. 그러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두려움으로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였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곳이다. 그러니 네 신을 벗으라. 나는 내 백성이 애굽에서 학대받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들을 구해 내려고 내려왔다. 가라.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낸다.’ 이렇게 하여 동족에게 배척받은 바로 그 모세를 애굽으로 되돌려 보내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배자요, 해방자로서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모세는 수많은 놀라운 이적을 행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 냈으며 홍해를 건넌 뒤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이끌었다(행 7:23-36).
모세의 일생의 분기점은 그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가 호렙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떨기나무에 타는 불을 보았다. 그런데 그 나무가 불에 타는 데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가까이 갔는데 음성이 들렸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너는 바로에게 가라. 가서 내 백성을 내어놓으라고 하라. 그리고 그 백성과 함께 홍해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라.’ 문제는 모세는 하나님의 이 부름이 있기 전에 자기가 먼저 움직였다. 모세가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지만 문제는 하나님은 아직 그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보다 앞서간 모세는 인간의 혈기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모세는 살인자가 되어 호렙산으로 도피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하나님의 부름받을 때까지 기나긴 고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모세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는 좋은 목적과 동기가 있어도 하나님이 부르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름이 없이 먼저 움직이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학대받는 민족의 입장에서 애굽 사람과 다퉜지만 그것도 육신적 방법이었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가 민족의식으로 불타서 저질은 일은 고작 애굽 사람 한 명을 죽인 것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부름이 없으면 결국은 실패한다. 하나님의 부름받지 않고 일하면 자기 생각대로 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부름받지 않고 일하면 자기 감정, 자기 판단, 자기 주관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챨스 스윈돌 목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세의 문제는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의 부름없이 앞서가면서 겪은 실패로부터 충분히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모세는 이 실수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척박한 호렙산으로 도피하여 40년을 보내며 온갖 고난을 받았다.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졸지에 집도 절도 없는 방랑자가 되었다. 그가 거기서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외로운 방랑자로 사막에서 살 뻔 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어느날 모세가 양을 몰고 광야를 지나는 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모세야! 모세야!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부르셨는 데 가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름없이 실패했으면 하나님이 불렀으면 ‘예’하고 가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이제는 못가겠다고 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언제는 하나님의 부름보다 먼저 가고, 막상 부르면 안가면서 여러 가지 변명까지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문하셨다.
출 4:2-9 /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3) ‘그것을 땅에 던져라’ 그래서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졌더니 뱀이 되었다. 모세가 무서워하며 피하자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아라.’ 모세가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자 그의 손에서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5)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이렇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인 여호와가 네게 나타났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하시고 6)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품에 넣어 보아라.’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냈더니 손에 문둥병이 생겨 눈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다. 7) 여호와께서 ‘다시 손을 품속에 넣었다가 꺼내 보아라.’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그대로 하였더니 본디 살갗으로 되돌아와 깨끗해졌다. 8)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이 너를 믿지 않고 처음 이적을 표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두번째 이적은 표징으로 믿을 것이다. 9) 그런데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않고 네 말을 듣지도 않거든 강물을 조금 떠다가 땅바닥에 쏟아라. 네가 떠다가 쏟아 부은 그 물이 땅바닥에서 피로 변하리라.’
바로 앞에서 그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니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지팡이로 하늘을 향해 쳐들었더니 우박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지팡이로 홍해를 치니 홍해가 갈라졌다. 민수기 20장에는 지팡이로 반석을 쳤더니 생수가 솟아났다. 사실 지팡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시나이광야에 흔한 쉿팀나무 가지일 뿐이다. 우리 말로 조각목으로 번역된 쉿팀나무는 튼튼하기는 하다. 물이 없는 광야에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광야의 더위와 추위에 연단되어 강하고 단단한 나무이다. 그래서 구약의 성막, 법궤, 떡상 이런 것을 쉿팀나무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가지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나뭇가지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예, 지팡입니다.’ 한 것은 모세가 하찮은 존재임을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을 때 놀라운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출 4:20 /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했듯이 이제는 그냥 지팡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했다. 지팡이가 달라진 것인가? 모세가 든 지팡이가 순간적으로 다른 지팡이가 된 것인가? 이 지팡이는 처음부터 모세가 들고 있었던 나뭇가지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부른 순간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그때부터 지팡이가 능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평범한 지팡이가 던지면 뱀이 되고, 휘두르면 우박이 내리고, 생수가 나오고, 홍해바다가 갈라졌다. 지팡이가 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팡이를 잡은 주인이 바뀌어서 그런 것이다. 모세의 지팡이일 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자 기적이 나타났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은 이런저런 것 따질 것 하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되면 능력있는 존재로 변화된다. 이것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의 특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을 떠나면 비참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내가 얼마나 똑똑한가?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능력 있느냐?’ 이런 것은 아무 소용없다. 단지 ‘하나님의 손에 들리어졌느냐?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었느냐?’는 것이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는데, 하나님의 손을 떠나니까 미치광이, 살인마, 바보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구약성경 특별히 열왕기상․하를 보면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이 나온다. 그 왕들 가운데 똑똑하다는 왕들은 다 악한 왕이다. 외교에 능하고 군사에 능하고 사람들하고 관계 잘 맺는 이런 사람들은 다 악한 왕이다. 왜냐하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처럼 외골수 같아 보이고, 잔재주도 없고, 문제가 생기면 회의도 안하고 대책도 없는 편지 한 장 들고 가서 엎드리려 ‘오직 주밖에 없사오니’하면서 엉엉 우는 사람은 다 선한 왕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았다. 여호와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의 특징은 이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붙드는 것이다.
‘내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다할 수 있다.’(빌 4:13)는 고백처럼 사도 바울은 정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기가 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평범한 노인으로 자녀 한 명 낳지 못하고 역사 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만약 다윗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목동으로 살다가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만약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갈릴리에서 고기나 낚는 어부로 살다가 소망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만약 마태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동족의 등골을 빼먹고 이기적으로 살다가 매국노로 찍혀서 돌팔매질 당하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름답고 위대하고 탁월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그들의 전심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능력 받아서 탁월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 초로의 노인이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에게 전도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노인을 피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노인에게 말을 걸어 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직도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믿으시나요?" "학생이 원한다면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대신 포도주를 물로 변화시키신 기적을 당장 보여줄 수 있겠네?" "보여 주시지요." "그러면 먼저 이 길 건너 마을에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집시 스미스'를 알고 있느냐고 물어 보게나. 그는 온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던 악명 높은 알코올중독자임을 모두가 자네에게 증명할 것이라네. 그는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시간도 술이 없이는 인생을 살수 없었던 사람이라네. 그런데 그가 지금은 술 대신 물만 마시고 살고 있다네. 물만 마시고도 그는 술이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고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네. 그가 바로 당신 앞에 서있는 나일세. 예수님이 행한 기적이라네. 그는 지금도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기도 하고 포도주를 물로도 만드시고 계시다네." 집시 스미스라는 전도자의 이야기이다.
5. 하나님께서 찾으신 의인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의인을 세우기 위해 힘쓴다.
■ 미국의 유명한 회사 가운데 IBM에 대한 일화가 있다. 이 회사는 사람을 만들어 키우는 전략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투자를 잘못해서 회사에 천만 불의 손해를 끼치는 프로젝트가 되어 실패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원은 톰 왓슨 회장 앞에 와서 자신이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더 일할 면목이 없다고 사표를 제출했다. 그때 톰 왓슨 회장은 유명한 말을 했다."이 사람아! 자네는 회사에 천만 불 손해를 끼쳤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우리 회사가 자네를 위해서 천만 불을 투자한 것이라네. 그러니 사표를 거두고 어서 맡은 일을 하게." 그 사람을 격려하고 사표를 반려했다. 이 사람은 후에 IBM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였다고 한다. 톰 왓슨의 회사경영전략은 사람을 키워놓고 일을 하는 것이다.
교회도 제자화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란 건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도나 조직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변화된다는 것은 곧 사람이 변화된다는 말이며,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변화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따라서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을 키우는데 있다.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하신 일 역시 12명의 제자를 훈련시키는 일이었다. 제자들과 함께 자고 함께 먹으면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또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7장은 죽음을 목전에 두신 예수님의 최후 기도이다. 예수님은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자들에게’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과 또 제자들이 제자화할 이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조직이나 제도나 시스템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놓고 기도하셨다. 하나님께서 찾으신 의인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의인을 세우기 위해 힘써야 한다. 영적 재생산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가 영적 재생산자였다. 아브라함은 이삭, 모세는 여호수아, 엘리야는 엘리사, 베드로는 마가 요한, 바울은 디모데, 예수님은 12제자를 재생산했다. 그리고 12사도를 통해 이어지는 이들을 ‘속사도’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 한 사람이 되면 또 다른 한 사람을 훈련시켜서 예수님의 제자로 키울 사명이 있다.
마 28:18-20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들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바울도 영적인 아들이요 제자였던 디모데에게 충성된 자를 훈련시키라고 했다.
딤후 2:1-2 / 오, 내 아들 디모데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은혜로 더욱 튼튼해지시오. 2) 그대는 내게서 들은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내게서 들은 이 위대한 진리를 그 스스로 믿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는 그런 충실한 사람들에게 가르치시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사도가 된 바울도 하나님께 세우시려는 의인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이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제자화는 계속되어져야 한다.
골 1:28-29 /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귀를 기울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을 다해서 경고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모두를 위해 베푸신 일을 생각하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기를 빌고 있습니다. 29) 이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나는 내 속에서 강한 힘으로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이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故 옥한흠 목사는 “지금 우리교회가 주일이면 만 오천 명이 모이는데, 만 오천 명 앞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7~8명 아니 10여 명의 형제들과 함께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푹 잠기는 쪽을 선택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제자훈련목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교회는 위로만 있고 치료만 있는 곳이 아니라 훈련이 있어야 한다. 결국 제자훈련이 목회의 본질이다. 제자훈련으로 우직하게 목회하면 언젠가는 비상하게 될 것이다.
결론
성경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덧붙였다. 엘리야 같은 의인이 기도하면 하늘 문도 닫히고 또 기도한 즉 열리기도 한다.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가 내려 온 국민을 살리기도 하였다. 그러면 많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이제껏 기도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내가 죄가 많아서 그랬구나! 그럼 나는 기도해봐야 소용이 없겠네. 나 같은 죄인이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귀 기울여 들으시겠어? 엘리야 같은 의인이나 기도해서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지. 우리 같은 죄인은 헛수고일 뿐이야.’
누가 의인인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는 말씀 앞에 어떤 말씀이 나오는가?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라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누가 의인일까? 죄를 하나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지었지만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죄를 하나도 안 지은 것처럼 가장하는 위선자가 아니라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의인이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어떤 죄는 사람 앞에서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죄 사함을 받고 나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응답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가야 한다. 만약 죄를 짓고 넘어지면 재빨리 회개하고 정결함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기도응답이 풍성한 삶, 하나님의 능력을 기도를 통해서 수없이 체험하는 놀라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흥의 찬미를 통하여 ‘하나님이 쓰시는 의인 한 사람’에 대단원의 설교를 마치려고 한다. 나 자신부터 ‘하나님이 쓰시는 의인 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쓰시는 의인 한 사람’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다.
부흥 /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부흥 2000 /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며 임하소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우리 가슴 정케 하소서 오소서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소서 거룩한 불꽃 하늘로서 임하사 타오르게 하소서 주 영광 위해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 땅 가득 불어와 흰옷 입은 주의 순결한 백성 주의 영광위에 이제 일어나 열방을 치유하며 행진하는 영광의 그 날을 주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 땅 가득 불어와 흰옷 입은 주의 순결한 백성 주의 영광위해 이제 일어나 열방을 치유하며 행진하는 영광의 그 날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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