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획단 여섯 번째 만남
주말을 지나고 온 월요일입니다.
월요병이라는 말도 있듯 기획단이 이틀 만에 모이는 거라 그런지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아 있습니다.
이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우선 몸을 조금 움직여 봅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논의했던 준비물 중에 복지관에 있다고 했던 것들을 찾아 나섭니다.
테이프, 비닐봉지, 책, 비석치기용 비석...
복지관 사물함을 뒤지며 하나하나 발견할 때마다 보물을 발견한 것 마냥 신나서 소리칩니다.
“테이프 여기 있어요!”
“이게 지난주에 말했던 비석인 것 같아요!”
“비닐봉지는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생각 외의 아이디어도 나옵니다.
“여기 풍선도 있는데 D-day에 우리 장소 꾸미면 좋을 것 같아요!”
떠들썩한 분위기가 월요일의 복지관을 풍성히 채웁니다.
찾은 물건들을 모두 챙겨 회의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남은 준비물도 생각해 봅니다.
집에 있다고 제일 먼저 적극적으로 말해준 규환이가 공을,
사비를 털어서라도 준비해오겠다고 할 정도로 준비에 열정인 승빈이가 마스크, 헤드셋, 뿅망치를,
따로 티 내진 않지만 묵묵히 손을 들며 맡을 준비물을 고르는 지찬이가 마스크, 헤드셋, 스케치북을,
담담하게 집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을 말하는 수빈이가 스케치북을
가져와보기로 합니다.
당일에 초청한 친구들에게 놀이 규칙을 설명할 사람도 정해봅니다.
공굴리기-승빈 / 비석치기-지찬 / 좀비게임-규환 / 고요속의 외침-수빈 / 인물퀴즈, 참참참+뿅망치 – 나은, 나윤.
아직 서준이랑 혜리, 수영이가 오늘 회의에 같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놀이는 천천히 정해보려고 합니다.
인물 퀴즈에 누구누구를 넣을지도 생각해 봅니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정말 많은 이름들이 거론됩니다.
유재석, 세종대왕, 탄지로, 이서, 피카츄, 메타몽, 안중근, 윤석열, 이봉창, 펭수, 아이유, BTS 진...
놀이에 참여하는 인원이 약 20명 정도인데 맞추기 너무 쉬우면 너도 나도 손들지 않겠냐는 저의 우려에
기획단은 아주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사진을 확대해서 조금씩 보여주면 돼요!”
역시 놀이에 관해서는 저보다 훨씬 전문가인 우리 기획단 아이들입니다.
지난주의 교훈을 되돌아보며 오늘은 비교적 떠들썩하고 장난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해 보았습니다.
확실히 놀이탐험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런 분위기가 우리 기획단에겐 훨씬 더 어울리는 듯했습니다.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기획단 아이들끼리 서로서로 웃고 떠들며
각자 적극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것이 100%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획단 아이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완벽한 놀이 프로그램을 위해 회의를 어서 진행해서 부족함 없이 준비하고픈 아이들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한편으론 진행을 더디게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로서로 장난치다 보니 감정이 격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잠시 뜨거워진 분위기를 식히고자 일부러 회의 진행을 어서 진행하자고 주의를 환기합니다.
조금은 과도한 것 같은 장난도 가끔 발견하곤 합니다.
그럴 땐 우선 당사자의 반응을 살핍니다.
제 생각엔 심한 것 같은 행동도 막상 아이들 끼린 장난치며 웃어넘깁니다.
오히려 제가 나서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이상한 것 같습니다.
물론 단순한 장난을 넘어 서로 목소리가 격앙될 때도 있었습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나서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싸우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처럼 보였던 아이들이
금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붙어서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사회사업 이상은 문제를 없애는 쪽보다 이웃과 인정을 살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 복지요결, p.31
이때 저는 복지요결의 이 ‘정붙이고 살 만한 사회’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사회사업가가 꿈꾸는 세상은 문제가 없는 세상이 아닌 미운 정 고운 정이든 정붙이고 살 만한 사회라는 것.
성인이 되고 나서 누군가와 갈등을 빚는 일이 생겨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여기에 대응하는 일은 감정 소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얘기를 해서 다시 좋은 관계가 되려고 하기보단
관계를 끊는 편이 더 수월하고 점점 더 익숙해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문제가 있더라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겪은 관계는 한층 더 성숙한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마치 얼굴 붉히더라도 금세 다시 친하게 지내는 기획단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한때 기획단 아이들이 서로서로 친하게 지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따로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아이들이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장만 준비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관계에 있어선 저보다 기획단 아이들이 훨씬 성숙한 존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첫댓글 아이들은 D-day를 준비한다는 구실로 이렇게 날마다 재미있게 놀고 있네요. 재미없으면 아이들은 이렇게 아침에 나오지 않습니다. 누가 시켜서는 나오기 힘들어요. 모처럼 어떻게 놀까, 뭐하고 놀까, 어떻게 재미있게 할까를 궁리하며 꿍꿍이를 벌이고 준비하는 이 과정이 너무 재미있을겁니다. 어떤 놀이보다도요.
"서로서로 장난치다 보니 감정이 격해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놀면서 장난도 치고, 감정이 격해지기도 합니다. 어른들처럼 적당히 선을 긋고 감정소비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고... 아이들은 그러지 않아요. 병권 선생님 이야기처럼 아이들에게 배울게 많네요. 이렇게 놀이를 통해 싸우기도 하고, 져서 속상하기도 하고, 이겨서 기쁘기도 하고...
이런 저런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며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고, 친구와 우정, 의리, 양보, 배신감 같은 감정을 알아가는데,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장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놀이탐험대 같은 활동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