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삼간택(三揀擇) - 영조와 정순왕후의 결혼
간택은 조선 태종 때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명(明)나라의 제도를 참조해 신설한 절차이지요. 왕과 왕세자의 정실을 고르는 간택은 3단계(초간, 재간, 삼간)였으며 이보다 격이 떨어지는 후궁 간택이나, 기타 왕자의 정실, 혹은 공주나 옹주의 남편을 고르는 간택은 간단히 초간과 재간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조선 왕실의 삼간택이라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경우가 가장 드라마틱합니다. 1759년(영조 35년) 당시 66세인 영조는 15세인 신부 정순왕후를 새 왕비로 맞이합니다. 나이 차는 무려 51세나 되었어요. 영조는 고령을 이유로 재혼을 사양했지만 하루라도 국모가 계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하들의 강권에 마지못해 승낙하는 방식으로 재혼을 허락하지요.
드디어 창경궁 통명전에는 왕실의 어른들과 세 명의 후보자가 마주하였습니다. 관례에 따르면 신랑은 삼간택 절차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수왕인 영조는 왕실의 제일 웃어른 자격으로 자신의 신부를 고르는 행사에 직접 참여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나게 된 거지요.
당시 왕실에서 신부를 간택할 때 신부 아버지의 이름을 써놓은 방석을 두고 그 위에 신부가 앉게 했습니다. 모든 규수들이 아버지 이름을 찾아 방석에 앉았으나 정순왕후는 홀로 주저하고 있었다고 해요. 영조가 그 이유를 묻자 부친 이름이 적혀 있는 방석에 차마 앉을 수 없다고 대답하여 왕실의 어른들로부터 큰 호감을 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영조가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고 또 물었습니다. 다른 규수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 구름이 깊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정순왕후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다’라는 답을 함으로써 거듭 영조를 비롯한 왕실 심사관을 놀라게 했어요.
이어 꽃 중에서 무엇이 제일 예쁜지를 물었습니다. 저마다 복숭아꽃, 매화꽃, 모란꽃과 같이 자신이 좋아하고 예뻐하는 꽃의 이름을 댔지만 정순왕후의 대답은 이번에도 달랐습니다. ‘목화꽃’이라 답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목화야 말로 솜을 만들어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고 했어요.
마침 왕비를 간택한 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영조는 후보자들에게 기습 질문을 던졌지요. 통명전 지붕 기왓장이 몇 줄인지를 맞추어 보라고 하였답니다. 모두들 당황하면서 궁궐 지붕을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정순왕후만이 홀로 머리를 내리고 침묵하고 있었지요. 영조가 “너는 그 수를 알아봤느냐”고 묻자, 정순왕후는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면 그 수를 알 수 있습니다”라며 정확한 숫자를 답했습니다.
나중에 정순왕후가 된 김한구의 여식(女息)이 왕비로 간택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요즈음도 창경궁 통명전에 가면 어린 초등학생들을 대청마루에 앉혀두고서 삼간택의 체험 행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