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는 필경 티끌로 돌아간다. 이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영광스럽게 노래하는 존재는 시인이다.” ([불꽃 속의 싸락눈-55], 106쪽)
이형기의 시집 {절벽}은 인간의 한계상황인 종말 혹은 죽음을 노래한다. 이 시집은 한마디로 가벼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깊이 혹은 죽음을 초극하는 정신의 높이를 보여주며, 마치 폭풍 속의 우레와 같은 울림으로 경박한 우리 시의 심장을 강타하고 있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 높게 날카롭게 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
아스라한 그 정수리에선 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 냉혹함으로 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고나 아아 절벽!
[절벽] 전문
<절벽>은 고립해 있다. 그것은 <높게 날카롭게 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존재로서 그 수직적 자세부터가 매우 냉엄하다. 그 단애의 모습은 자질구레한 일상성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 단애의 끝, 정수리에 도달하면 그 다음은 <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절대자를 찾는 기도를 하거나 비상의 꿈을 상상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기도나 꿈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한계상황에서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고 자신을 고립의 정점에 아슬아슬하게 세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일 임을 자각하는데, 그러한 투신은 단적으로 자신의 종말 즉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취하는 행위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현존재의 고독하고 고립된 실존의 모습을 보며 전율한다. 그 전율은 안일한 일상에 젖어있는 우리들에게는 우레같은 충격이다. 시인은 그러한 충격을 통해서 우리가 자신의 본래성을 각성하도록 채찍하여 몰아간다.
시인은 실제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 관념이 아니라 그의 생 전체로 죽음을 체험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곤고한 자신을 돌아보며 <쫓기고 쫓겨서/ 더 이상 갈 데 없는/ 그 숲 속에/ 시체 하나 버려져 있는/ 보니 그것은 나 자신>([한 매듭], 14쪽)이라고 노래한다. 그 자신이 더 이상 갈 데 없는 곳에 <시체>로 버려져 있다는 인식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나는 멸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미래를 믿지 않는 바다], 56쪽)는 역설어법을 통해서 더 근원적인 존재에 도달하는 것임을 노래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모든 사물은 언젠가 반드시 소멸한다. 그리고 이 소멸을 통해 사물은 존재의 의의를 획득한다..... (중략) ....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근원적 조건은 소멸이라는 존재의 결락 바로 그것>(93쪽)이라며 소멸인 죽음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일상적 의미에서 죽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현존재의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아무리 회피하려고 발버둥쳐도 종말의 심연에 우리는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숙명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취해 나가며, 시인은 죽음을 <영광스럽게 노래하는 존재>([불꽃 속의 싸락눈-55], 106쪽)라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소멸이나 멸망은 오히려 시인이 노래해야할 덕목이라는 것이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영원히 지지 않는 꽃 그것은 지겨운 권태를 표상할 뿐이다. 멸망돠 소멸과 폐허를 노래하는 심리적 감수성은 이러한 의미에서 존귀한 겻이다. 그것은 시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의 하나이다.>([불꽃 속의 싸락눈-41], 102쪽)
그에게 죽음은 철저한 무이다. 아무런 세속적인 수사가 필요없다. 그리하여 그는 <내 죽거들랑 무덤을 짓지 말라>([새 발자국 고수레], 28쪽)고 말한다. 그러나 죽음은 또한 시인에게 <영광스럽게 노래>할만한 하나의 장엄한 종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해를/ 천천히 삼키고 있는 낙조>([낙조], 78쪽)처럼 장엄하며, 그 광경을 시인은 마치 <걸리버 나라의 작은 난장이>처럼 <숨을 죽이고 엎드>려서 바라본다. 시인은 늘 그러한 숨죽인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마치 <바다가 작고 딴딴한 알갱이로/ 결정되어.......(중략)..... 모가 서는 광물질>인 <소금>처럼 정신을 세우고 <밤마다/ 세계를 소금절임하는 꿈을>([소금], 74쪽) 꾼다. <소금절임>이란 그 내부에 있는 수분을 모두 빼어버리고 그 진수만 남긴 상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썩지도 않고 썩을 수도 없다. <부패를 막기 위해/ 둔중하지만 확실한 빛살로 하얗게/ 불타오>르는 그러한 <꿈>을 꾸므로 그의 자세는 <군살 하나 없이 온몸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하늘에 닿아있>으며, <밤중에도 꼿꼿하게 서서 잠잔다>([대], 72쪽) 그에게 <파멸은 처절하면 처절할수록 아름답>고, <적당한 비극은 없다>([불꽃 속의 싸락눈-93], 117쪽). 요컨대 그는 늘 <적당히>를 거부한다. 언제나 <적당히>를 거부하므로 그의 단호한 정신과 긴장감은 나태하고 안일한 일상성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그의 냉엄한 정신은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세계를 경계한다. 바로 그러한 시인의 자세가 <높게/ 날카롭게/ 완강하게 버텨> 선 이 시집 {절벽}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극한에서 소멸을 노래하는 실존의 음성이다. 그리하여 그의 노래는 존재망각의 나태한 일상성 속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들의 정수리를 강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