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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을 사모하여
2024년 4월 14일 / 요엘서 2:28-32(참고 행 1:6-11, 2:17, 19:6) / 찬송 : 198장
욜 2:28-32 /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 나의 비를 부어 준 다음에, 너희 모두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을 할 것이다. 너희의 늙은이들은 여러 가지 꿈을 꿀 것이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온갖 환상을 볼 것이다. 또 그날이 오면 너희의 남녀 노예들에게도 똑같이 나의 영을 부어주고, 땅과 하늘에서 이상한 상징들, 곧 피와 불과 버섯 연기들을 보여주겠다. 여호와의 그 위대하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캄캄해지고 달은 피같이 붉어질 것이다. 그날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 약속하신 것과 똑같이 시온산과 예루살렘 도성에서 구원을 받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불러내시는 자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과거에는 매주일 한 번 이상 불렀던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를 요즈음에는 교회에서 거의 부르지 않고 있으나 우리라도 가사를 생각하며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❶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후렴: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여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❷ 성령이여 강림하사 크신 권능주소서 원하옵고 원하오니 충만하게 하소서
❸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령강림 하옵소서 충만하게 하소서
❹ 정케하고 위로하사 복을 받게하소서 충만하게 하시오니 무한 감사합니다
이 찬송은 ‘찬양가, 1805,’ 146장에 처음 채택되었지만 지금 가사는 ‘찬숑가, 1908’ 208장에서 수정 채택되었다. 1879년 엘우드 스톡스(Elwood Haines Stokes, 1815~1895) 목사가 작시한 시에 존 스웨니(John Robson Sweney, 1837~1899)가 곡을 붙여 만든 찬송이다. 작시자 엘우드 스톡스 목사는 1815년 미국 뉴저지주의 메드포드에서 태어나 오션 그로브(Ocean Grove) 신앙지역사회를 설립한 사람들 중의 하나요, 오션 그로브 연합집회의 회장을 지냈으며 1895년 오션 그로브에서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뉴저지주에 있는 감리교 묘지에 묻혔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작곡자 존 스웨니는 183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체스터에서 태어나 1899년 그곳에서 62세로 세상을 마쳤다. 그는 19세기 미국의 복음찬송가 작곡가로서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소년 시절에 이미 공립학교와 주일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칠 정도였다. 19세에 독일의 유명한 바우에르(Bauer) 교수와 바릴리(Barilli) 교수에게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찬양대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22세에 교사로 취임하여 도버(Dover)와 델라웨어(Delaware)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남북전쟁 당시는 ‘제3 델라웨어연대’(3rd Delaware Regiment)의 군악대 지휘자로 군 복무를 마친 후 펜실베이니아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25년간 일했으며 거기서 음악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10년 이상을 베다니 장로교회 음악지도자, 노회 주일학교 음악지도자로도 섬겼다.
그는 수많은 여름 집회에서 찬송가를 지도했고, 1,000편 이상의 찬송곡을 작곡하였는데, 그중 대부분이 패니 제인 크로스비 여사의 작시였다. 그 작품들은 60여 편의 찬송가와 함께 주일 학교 노래집 및 기타노래집에 수록되었다. 새찬송가에는 9편이 있다.
148장 영화로운 주 예수의,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245장 저 좋은 낙원 이르니,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482장 참 즐거운 노래를, 521장 구원하는 인도하는.
오순절 성령의 대역사가 지난날의 죄악을 회개하며 애통해하는 우리 맘에도 동일하게 임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찬송이다.
우선 이 찬송가는 애통하면서 회개할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1절). 이어서 성령의 강림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내려 달라고 간구하면서(2절), 힘이 없고 약하기 때문에 더욱 성령의 충만이 필요하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3절). 무엇보다도 벌써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4절). 약한 것을 택하여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반드시 응답받으리라 믿고 감사하는 마음을 소유한 우리가 되어야 한다.
● 요엘서의 약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날에 자신의 영을 사람들에게 부어주신다는 것과 그 영이 임하시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어린이들이 예언을 할 것이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볼 것이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며, 종들이 예언을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한결같이 놀라운 현상으로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우리 안에 성령이 충만할 때 세상의 유혹은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한다. 유혹을 이길 힘을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자.
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성령의 집이며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아직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온 천지를 덮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또한 예수님과 성령을 알고 배우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배운 것을 삶의 현장에 적용해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배운 것을 실전에서 사용할 때 창조와 생산이 가능하다. 기독교는 이성이나 지성으로 깨닫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십자가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그러나 성령을 체험한 다음 그들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다.
‘조지 첸’ 할아버지의 지도자 / 1989년 7월 필리핀 마닐라 ‘로잔대회’에서 중국의 ‘조지 첸’이라는 86세 할아버지가 간증하게 되었다. 그 분은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에서 18년을 지내는 동안 무려 14년을 인분구덩이를 치우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 분은 거기서도 찬송하고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불렀고, 12억 중국 동포와 세계교회를 위해 찬양하고 기도했다. 이분이 가장 많이 불렀던 찬송이 찬송가 442장이라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복음의 기쁨은 나를 감옥에 가두지도 못했습니다. 사단은 나를 구덩이 속에 쳐 넣기 원했지만, 나는 거기서 천국동산을 맛보았습니다. 예수 안에서, 복음 가치관 안에서 성령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천국을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이 모습이 성령에 붙들린 사람의 모습이다. 성령께서 주신 비전을 붙들리고, 성령의 능력에 감동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찬양하게 된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있기를 바란다. 고난을 피하기보다 붙들려 고난 속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걸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성령의 임재가 없는 삶은 기름이 없는 자동차와 같다. 그러나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 에스겔 선지자에게 약속하신 복도 넘쳐날 것이다. 성령의 생기가 들어오면 마른 뼈와 같았던 삶에 생명력이 넘쳐난다. 마음이 상한 자가 위로를 받고 고침 받으며, 죄와 분노와 절망과 사망뿐이던 인생이 기쁨과 감사, 찬양을 노래한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으면 날마다 하나님과 대화하여 끊임없이 믿음의 고백을 한다. 그리고 다니엘처럼 마음이 확정된다. 마음이 확정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셨고,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니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행 2:17 /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 나의 비를 부어 준 다음에, 너희 모두에게 나의 영을 부어주겠다.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을 할 것이다. 너희의 늙은이들은 여러 가지 꿈을 꿀 것이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온갖 환상을 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시대에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구약성경에 94회, 신약성경에 230회 총 324회에 걸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된다.
행 1:8 / 그러나(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
지금은 악한 영과 어둠의 영들이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보고 배운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조그마한 시험에도 넘어지고, 심지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두려워 떨면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기도 했다. 그들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일꾼을 뽑을 때, 첫 조건은 성령이 충만한 자였다. 스가랴 4:6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 24:49)고 하셨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고 하셨다. 마가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권능을 받았다. 제자들이 권능을 받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을 때,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다.
행 19:6 / 바울이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은 방언과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2. 복음의 지경이 넓혀진다.
행 1:8 /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지경이 점점 넓혀졌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자기 동족인 유대와 이방인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 즉 전 세계로 복음의 지경이 넓혀진 것이다.
예수님은 온 천하를 무대로 삼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다(막 16:15). 예수님은 어떤 특정한 친분이 있는 사람이나 제한된 지역에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모든 족속’ 곧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들 즉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고, 민족의 담장을 허물고, 정치와 이념을 초월하며 신분을 불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마 28:18-20).
인간적인 편견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교회를 중심으로 나라와 민족, 전 세계로 복음 전하는 지경을 점점 넓혀가야 한다. 요한 웨슬레는 성령을 받았을 때 ‘온 세계가 나의 교구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3. 열매가 맺혀진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열매가 맺혀진다.
갈 5:22-23 /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생활을 지배하실 때 그분은 우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진실, 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여기에는 율법에 반대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입술의 열매도 맺게 된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도 다르다.’(잠 18:21)
생명의 말씀을 전하게 되고(행 5:20), 화평의 말을 하여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잠12:20), 은혜로운 말을 하게 되고(골 4:6), 축복의 말을 하게 된다(롬 12:14).
히 13:15 / 예수의 보살핌 속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시다. 그리하여 언제나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영국의 시 중에 ‘노여운 말 한 마디가 친절한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부지중에 나온 실언이 앞날을 캄캄하게 만들고, 찌르는 가시를 일평생 남겼도다. 그러나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슬펐던 마음에 광명을 주고, 동정의 말 한 마디가 한 영혼을 살려 놓고, 기쁨의 말 한 마디가 캄캄하던 앞길을 광명하게 만든다.’는 내용이 있다. 성령을 받은 우리는 항상 친절한 말, 축복하는 말, 기쁨과 소망을 주고 위로하는 말을 해야 한다.
4.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사역에 힘이 생긴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능력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변화 받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헌신하게 되고, 인간적인 힘이나, 빽이나, 노력으로도 꿈쩍하지 않던 일들이 척척 해결되는 것이다(슥 4:6). 또한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영혼을 사랑하게 되고, 원수를 용서할 수 있고, 기도할 때 병이 물러가고, 어둠의 권세들이 다 달아나는 것이다(막 16:17-18). 그리고 마음의 평안이 가득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이 충만하고, 바쁘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힘이 들어도 쓰러지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5.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세계 선교를 힘쓰는 것이다.
먼저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로 내가 지금 살고 있고 몸담고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이다. ‘사마리아’처럼 내가 가기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땅 끝’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백성과 족속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져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셨다(마 24:14).
눅 4:18-19 / 주 여호와의 기운이 나를 휘감아 돌았다.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어 예언자로 세우시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이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일으켜 주고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너희가 이제 풀려 나간다! 모든 옥문들이 열리게 된다고 알려 주라고 나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셨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다 풀어 주시며 슬피 우는 모든 사람을 위로해 주시는 시대가 되었다고 널리 알리도록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
6.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증인’인 사람은 예수님만 자랑하고,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다. ‘증인’의 헬라어는 ‘마르투스’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순교’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진짜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충만과 성령세례 받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향해 불타는 심정을 갖게 된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움츠러들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박해가 심해져가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 있든지 장소를 불문하고 날마다 쉬지 않고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이처럼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시는 영이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증인된 삶을 살게 하신다.
최권능 목사님 / 평양 때에 최봉석이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부터는 성령께서 주신 불같은 열심히 생겨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부터 밤낮은 시간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손발이 얼어붙는 추운 겨울에도 ‘예수 천당’을 외치면서 다녔다. 나중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이 분이 바로 최권능 목사님이다. 12년 동안 만주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고 28개의 교회를 세웠다.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몽둥이와 돌맹이에 맞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다.
그 후 최권능 목사님은 평양으로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평양경찰서에 끌려가서 6년 동안 온갖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래서 감옥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의 기도로 힘을 얻고, 그의 찬송으로 기쁨을 누렸다. 그 후 병보석으로 감옥에서 나와 평안도와 황해도에 7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증인된 삶을 살게 된다.
교회는 끊임없이 전도하고, 선교하면서 계속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체되고, 힘을 잃게 된다. 우리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예수님을 만나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이 사명을 끊임없이 감당해야 한다.
7.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게 된다.
이제까지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었거나 돈과 물질, 권세, 명예, 가족, 쾌락이었던 사람(딤후 3:1-7, 마 7:21-23, 10:37-38)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된다.
고전 12:3 / 그리고 지금도 여러분은 자기가 하나님의 영에게서 받은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영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가짜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를 몰라 당황할 것입니다. 그렇거든 이 점을 잘 살피십시오. 하나님의 영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수 없고 또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눅 11:13 /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구하고 그리하여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으로 꿈을 삼아 늙어도 꿈꾸며 사는 우리 모두가 다 되기를 소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권능을 받고, 복음의 지경이 넓혀지며, 성령의 열매와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를 맺게 되고, 사역에 힘이 생기고, 세계 선교에 힘쓰며, 참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8. 실제적인 예를 보면서
위대한 지도자들은 다 성령 충만으로 / 이사야, 예례미야를 비롯한 모든 선지자들이 다 ‘여호와의 신’ 즉 성령(성신)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고, 사울이나 다윗 등 모두 훌륭한 왕들도 하나님의 신이 임한 사람들이며 모든 제사장들도 다 성령의 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2,000년 전에 오순절에 임했던 실로 신비한 현상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동일한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여전히 부어지고 있다. 그리고 성령의 부음이 있게 되면, 때로는 혼돈 가운데서도 새로운 이해력이 생기고, 때로는 서로 다양한 것들 가운데 하나됨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물론 성령의 불을 받은 후 뜨거운 체험을 하고서 삶이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들 가운데 최근에 기독교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몇 분의 예를 본다.
1. 요한 웨슬레의 체험 / 요한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 선교를 실패하고서 영국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1738년 5월 24일 그토록 유명한 올더스게이트 성령체험을 하게 된다. 런던의 올더스게이트 도로에 있는 한 모라비안 모임에서 한 사회자가 마틴 루터의 로마서 개요를 읽고 있던 중이었다. 요한 웨슬리는 그 개요 말씀을 듣고 있던 중 갑작스럽게 뜨거운 성령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의 뜨거운 체험을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모라비안 회중의 한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서 사회자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후 9시 15분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능력에 관해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강하게 느꼈고, 구원을 위해 다만 그리스도만 믿고 있음과 그 위에 주께서 나의 죄를, 아니 나의 죄까지도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 주셨음을 믿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올더스게이트 성령체험 이후 요한 웨슬레는 지난날 요한 웨슬레가 아니었다. 그의 믿음은 굳건해졌고, 그의 설교는 놀라우리라 만큼 생명력이 담겨 있었다. 그날 저녁 요한 웨슬리에게 붙었던 불은 영국과 미국 그리고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어 놓기에 이르렀다.
2. 드와트 무디의 체험 / 무디 선생(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음)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이며 능력 있는 설교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사역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무디 선생이 설교를 마치고 나면 몇 사람이 찾아와서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으니 그 성도는 ‘그것은 목사님의 설교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무디에게 도전이 되었다. 그날부터 그는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고 기도하였다. 심지어 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할 정도로 사모했다. 그때 무디 선생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을 만큼 세상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신령한 은혜를 사모했다.
어느 날 무디가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서 그날 체험했던 성령 충만에 이렇게 술회한다.
뉴욕에서의 어느 날 - 아, 그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입 밖에 내기조차도 조심스럽다. 그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하며, 나는 단지 하나님이 그의 자태를 나에게 드러내셨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나는 너무나 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여 하나님의 손길이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말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나는 전도를 계속했다. 설교는 전과 거의 같았고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진리를 표현한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다. 또 말하기를 온 세상을 다 준대도 성령 세례 받기 전으로 되돌아가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19세기 후반에 무디는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어 전 세계를 돌면서 복음을 전파했다. 미국과 유럽 어느 곳이든지 무디가 가는 곳엔 2,000-4,000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극히 흔한 일이었다. 물론 때로는 그가 복음을 전할 때 15,000-20,000명이 모여 들기도 했다. 그래서 한 때 ‘무디 열병(Moody Fever)’라는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3.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는 법률가이기 때문에 성경을 많이 읽다가 회개하고 기도생활하던 사람으로서 어느날 난로 옆에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 찰나에 강력한 성령의 세례를 받았는데 전혀 그런 기대를 가지지 못했고 또 성령 세례에 대한 말도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이 자신에게 강림하는 것을 체험했다. 마치 전기파동이 온 몸과 영혼을 꿰뚫고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숨결같고, 마치 거대한 선풍기를 자기 앞에 돌리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어 기쁨과 사랑으로 소리내어 엉엉 울었고, 너무 그 전류같은 역사가 강렬해 ‘진동이 계속되면 나는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까지 외쳤다.
성령의 체험은 이와 같이 각양각색이다. 전류와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불과 같이 임하기도 하고, 생수와 같이 체험되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것 같이 느끼기도 하고 여러 가지 형태로 임한다.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체험이 다르지만, 분명히 성령 세례를 받을 때는 분명히 체험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도 언젠가는 다 체험하고 또 받은 은혜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성령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갈급히 사모하고 기대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그리고 내 모든 전체를 내어 맡기고 항복하는 심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히는 죄가 하나도 없이 다 회개하고 자복해 버려야 한다. 그리고 간절히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간절히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난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매사에 믿어야 된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나에게도 꼭 성령 세례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특히 말세에는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하셨다. 어느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남종이나 여종, 젊은이나 늙은이 다 받게 해 주시겠다고 했으므로 누구나 사모하고, 기도하면 받을 수가 있다. 그렇다고 개나 돼지가 다 받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한 5처녀만이 다윗처럼 충만히 받을 것이다.
▶ 우리는 펜타코스탈인가?(우리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고 있는가?) / 언젠가 한 번은 유명한 작가이자 설교가이기도 했던 프레드 크래독(Fred Craddock)이 자신이 경험했던 황당한 사건을 소개한 적이 있다.
어떤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였다. 강의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한 학생이 일어서더니 이렇게 물었다.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 교수님께서 펜타코스탈한지 궁금해서 묻고 싶습니다.’ 그때 갑자기 교실 안이 써늘해졌다. 그 학생은 계속해서 모든 학생이 보는 앞에서 뚱딴지같은 질문을 계속했다. 크래독 목사는 순간적으로 움칠해지면서 이렇게 되물었다. ‘혹시 내가 은사주의 교회에 소속하고 있는지를 묻는 겁니까?’ 그 학생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닙니다. 당신이 펜타코스탈한 지를 묻는 것입니다.’ 크래독 목사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다시 되물었다. ‘혹시 내가 은사주의자인지를 묻고 있는 겁니까?’ 그러자 그 학생은 이렇게 수정해서 물었다. ‘나는 당신이 과연 펜타코스탈한 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크래독 목사는 다시 되물었다. ‘혹시 내가 방언을 하느냐를 묻는 겁니까?”’그러자 그 학생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당신이 과연 펜타코스탈한 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결국 크래독 목사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무엇을 묻는지 나는 헤아릴 수 없군요.’ 그러자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하고서 교실을 떠나갔다. ‘그렇다면 분명히 당신은 펜타코스탈(오순절·Pentecostal)하지 않군요.’
이 시간 크래독 목사에게 던져졌던 학생의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도 던져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펜타코스탈한가요?’ 즉 ‘과연 우리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고 있는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기름 부음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힘써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은 오신다. 이것은 성경의 약속이다. 이 사실을 믿고서 우리 역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힘써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
간절한 소원이 가지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있는 삶을 살기를 소원한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마가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자. 남은 연말까지 부르짖자.
■ 한 소녀가 어느 공장에 취직했다. 실만드는 방직 공장인데 수습기간을 거쳐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반장이 와서 기계 작동법을 가르쳐 주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일을 배웠지만 그래도 일하다 보면 고장이 날 때가 있을 거야. 그때마다 일을 멈추고 즉시 나에게로 달려와. 내가 도와줄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가 일하다가 어려움이 생겼다. 올이 풀리고 실이 얽혀 기계가 엉망이 되었다. 몇 시간을 낑낑거렸지만 고칠 수 없어 반장을 찾아갔다. 반장이 물었다. ‘언제부터 고장났지?’ 소녀가 말했다. ‘몇 시간전에요.’, ‘그런데 왜 이제 왔지?’ 소녀가 말했다. ‘제가 고쳐 보려고요. 그런데 잘 안되었어요.’ 반장이 말했다. ‘너의 할 일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즉시 내게로 달려오는 거야.’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려움이 생겼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안 될 때가 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이 있다. 하나님께 즉시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가는 것이다.
■ 중세시대의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 / 그녀는 신앙생활의 네 단계를 말했다. ❶ 물동이로 물을 긷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힘든 단계이다.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한다. 해도 해도 한계가 있다. 기껏해야 물동이에 물을 채우는 것이다. ❷ 펌프로 물을 품는 단계이다. 이 단계도 힘든다. 그러나 물은 많이 나온다. 그러나 내가 활동을 멈추면 아무 것도 안된다. ❸ 수로에서 물이 흘러오는 단계이다. 이것은 내가 하지 않는다. 저수지에서 물이 스스로 흐른다. 쉽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가 있다. ❹ 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지는 단계이다.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 그런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그것도 소나기가 쏟아진다. 내가 할 일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위에서부터 오는 은혜의 폭포수로 나를 적신다. 이것이 신앙의 마지막 단계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는가? 하루하루 물동이를 이고 힘들게 펌프질하는 신앙으로는 힘들지 않는가? 뭔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혜를 받고 싶지 않는가? 그래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흠뻑 옷이 젖는 은혜를 받고 싶지 않는가?
누가복음 11장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귀한 말씀이다.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기도가 끝났을 때 한 제자가 와서 말하였다. ‘주님, 침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 같이 저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우리가 항상 외우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것을 더 많이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밤중에 그 친구에게 가서 ‘여보게, 떡 세 덩이만 꾸어 주게. 친구가 여행 중에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먹으라고 내놓을 것이 없어 왔네.’하고 말하면 그 친구는 침실에서 큰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제발 나를 귀찮게 하지 말게. 문은 이미 다 잠가 놓았고 우리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네. 그러니 지금은 자네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네.’ 그러나 내 말을 잘 들으라. 그가 친구라는 이유로는 일어나서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그 간곡히 조르는 것 때문에 일어나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눅 11:5-8).”
눅 11:9-13 /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된 사람으로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2) 아들이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사도행전 2:1에서 ‘오순절이 이르렀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이르렀다’는 말은 헬라어로 ‘쉼플레로오’이다. 이 말은 ‘가득 채워졌다’는 뜻이다. 가령 큰 물통에 물을 한 바가지씩 퍼담다가 어느 순간 가득 차서 물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과 같다. 그것이 ‘이르렀다’(쉼플레로오)라는 말이다. 언제 성령이 임하실까? 물통에 물이 가득차야 한다. 때가 되어야 한다. 언제 성령받고 하나님의 좋은 열매가 되는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의 양이 차야 한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차야 한다.
그때까지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영적 시내산에 올라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야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3년 동안 배웠다. 둘째, 사명으로 불이 붙어야 한다(눅 12:49). 하나님의 불인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겟세마네 동산인 마가의 바락방에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셔도 밖으로 넘쳐 많은 사람에게 미칠 것이다.
♬ 그날 /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나의 백성들 / 절망과 굶주림에 갇힌 저들은 내 마음의 오랜 슬픔 / 고통의 멍에에 매여 울고 있는 나의 자녀들 / 나는 이제 일어나 저들의 멍에를 꺾고 눈물 씻기기 원하는데 / 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 할까 누가 나를 위해 가서 나의 사랑 전할까 / 나는 이제 보기 원하네 나의 자녀들 살아나는 그날 기쁜 찬송 소리 하늘에 웃음소리 온 땅 가득한 그날
고통의 멍에에 매여 울고 있는 나의 자녀들 / 나는 이제 일어나 저들의 멍에를 꺾고 눈물 씻기기 원하는데 / 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 할까 누가 나를 위해 가서 나의 사랑 전할까 / 나는 이제 보기 원하네 나의 자녀들 살아나는 그날 / 기쁜 찬송 소리 하늘에 웃음소리 온 땅 가득한 그날 / 나는 이제 보기 원하네 나의 자녀들 살아나는 그날 / 기쁜 찬송 소리 하늘에 웃음 소리 온 땅 가득한 그날 웃음소리 온 땅 가득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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