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찬송: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257장)
말씀: 시편 95:8
“므리바에서처럼, 맛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묵상
찬양시인 시편 95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첫 부분인 1~5절에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요청합니다. 그분이 구원의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할 때 이 반석은 사람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든든한 이미지입니다. 또한 산성이라고 하면 적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바위 틈새의 은신처 같은 이미지입니다. 하나님은 허물어져 가는 인생에게 든든한 근거가 되어주시고, 이러저러한 위험과 고통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숨기며 구원하시는 은신처가 되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청중을 향해 즐거이 외치고 즐거이 그분을 노래하자고 청합니다. 두 번째 부분인 6절과 7절 전반부에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경배와 찬양을 드리자고 권합니다. 창조주이시며 모든 신을 다스리시는 왕이요, 구원의 반석이신 그분 앞에 무릎을 꿇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청하는 이유는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시95:7a)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부분인 7절 후반부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취해야 할 삶의 태도 혹은 삶의 윤리를 노래합니다. 그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라고 훈계합니다. 여기에 쓰인 ‘완고’는 히브리 사람들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듭 거절한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파라오가 완고한 마음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자기 자신을 이집트 최고신인 ‘라’의 현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라’와 그의 대리인인 자신이 하층민의 신인 야훼와 그의 대리인인 모세보다 더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값싼 노동력을 잃기 싫어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파라오처럼 완고한 마음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보이는 무언가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강력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놓인 무언가를 하나님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이익 때문입니다. 히브리인의 노동력을 잃고 싶지 않았던 파라오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 돌아올 이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시인은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 끊임없이 하나님과 다투고 그분을 시험한 광야 세대를 언급하며 그들에게서 교훈을 얻으라고 권면합니다. 눈앞의 이익과 힘에 굴복하면 정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곧 그분의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
“우리는 허기를 채우듯 거짓 신에서 또 다른 거짓 신으로, 이 이념에서 저 이념으로… 진리라 부르는 이것에서 진리라 부르는 저것으로 지향을 바꿉니다. 이렇게 우리는 안식하지 못한 채 참된 안식처이자 진리인 그분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칩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에게로 돌이키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난을 감내하는 끈질긴 사랑으로 우리를 그분에게로 돌이키십니다. 이 순전한 은총의 활동, 이 철저한 방향의 전환을 성서는 메타노이아, 즉 회심, 회개,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더글라스 존 홀)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돌이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완고'함의 어원(용례?)이 이집트의 왕 파라오라는 것이 살짝 충격입니다.
매번 파라오왕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의 인간적인 어리석음과 지독하게 완악함을 한심해하며 의아해 하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이 바로 저 자신의 모습이었다니요......
보이는 무언가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강력하게 여김, 그리고 이익 때문에 가장 중요한 안식을 저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돌이키게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