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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 순교자 시복 재판 기록
1-2. 병인 순교자 교회 재판록
1) 1921년도
<회차 9>
․증언자 : 손진도 바오로
․약 력 : 73세. 관명은 손병일이며, 7대 구교우 집안 출신, 장 주교로부터 성사 받음
․증언 대상자 : 16번 황석두 루카, 17번 장주기 요셉
<16번 황석두 루카>
[제7조목] …황 루카는 본디 경상도 사람으로 황 판서의 증손으로 3대 독자(?)이다. 서울에서 과거를 본다고 하여 부모가 인마(人馬)를 갖추어 보냈더니 가다가 주막에 들어가 잘 때, 유식한 교우 한 사람을 만나 수작하다가 성교 도리 이야기를 하니, 황 동이[이는 그 때 아직 아이더라] 들어보지 못한 도리이더라. “어느 책에 그런 말이 있느냐? 나는 못 보았소” 하자, “천주 성교 책에 있는 말이다” 하였다. “그 책 좀 얻어 볼 수 있겠는가?” 하자 “내 집에 가면 보이겠소, 갑시다” 하여, 가보니 책도 많고 전에 못 보던 책이므로 마음에 신기하게 여겨 “이 책을 내게 파시오” 하였다.
그래서 허락하니 갖가지를 다 사서 싣고 3일 만에 본집으로 돌아가니 부친이 깜짝 놀라 “너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어디 아프냐? 과거날도 지나지 않았는데, 왜 벌써 오느냐?” 하고 여러 가지로 물었다. 그러자 루카가 “과거 하였습니다” 하자, “이놈, 그게 무슨 말이냐? 과거날도 아직 멀었는데, 무슨 과거를 하였느냐?” 하니, “천당 과거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천당 과거가 무엇이냐?” 하자 “천주 성교올시다”라고 대답하였다.
자기 부친이 분하게 여겨 벼루집으로 때리니, 자기 방에 가서 문밖에 나오지 않고서 날마다 공부만 하거늘 부친이 불러내어 하는 말이 “양반 집안에 그런 사소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지금부터 말아라” 하였다. 그러자 “죽으면 죽었지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였다. “죽어도 하겠느냐?”라고 하니, “죽어도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하인을 불러 “작두를 가져오너라” 하고 “네가 죽어도 한다고 하니 작두 밑에 목을 내어라. 왜? 목 내놓으라니까! 이놈! 죽어도 천주를 공경한다고 하니 너를 죽이겠다!” 하였다. “천주 공경한다고 죽이겠습니까?”라고 말하자, 부친이 “오냐” 하니, “그러면 목을 넣겠습니다” 하였다.
하인이 차마 발로 누르지 못하고, 그 부친이 대성통곡하고 사랑으로 물러 들어가니 황 동은 자기 방에 가 공부를 더욱 착실히 하면서 말을 하지 않으니, 온 집안이 벙어리 되었다고 하고 의원을 불러 침을 주며 약을 무수히 먹였으나, 3년을 그렇게 지냈다.
그 부모가 너무 애통히 여기는 고로 한 정초에는 부친 방에 나아가 “아버지” 하고 한 마디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부친이 깜짝 놀라 “네가 말을 하느냐?” 하자, “벙어리 아닙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부친께서 엄금하셨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니, “그 도가 어떠하기에 그러하다는 말이냐? 그 책을 가져오너라. 보자” 하였다. 아버지가 보고 탄복하며 말하되 “이 도에도 선생이 있겠구나!” 하니 “있습니다” 하여 “선생 한 분 모셔 오너라. 하면 크게 하지 몰래할 것 없다. 집이 좁더냐?” 하였다. 신부 한 분을 모시고 온 집안이 귀화되어 열심 수계하였다.
부모가 죽은 후에 나중에 안 주교의 복사가 되어 여러 해 지내시다가 군난이 일어나 안 주교께서 잡히실 때에 “너는 피하여라”라고 하시자,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세상에서 같이 지내시다가 천당에는 혼자 가시고자 하십니까?” 하고 주교와 같이 잡혔나이다. 이 사정은 부친께 들었나이다.
<17번 장주기 요셉>
장 요셉은 성품이 극히 인자하고 온후하고 애인(愛人)하여 회장 직분을 잘 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 칭찬하였다. 본디 수원에서 태어났는데, 문교하고서 일가의 조당으로 인하여 피하여 배론으로 와서 살더니 신부께서 오셔서 학교를 배설하려고 하셨다. 위험한 때이므로 집을 크게 지을 수가 없자, 자기 집이 용신(容身)할 만한 고로 신부께 바치고 그 곁에 조그마한 집으로 나와서 열심 수계하였다.
장 회장은 신부가 잡히신 후에 대원군의 말이 “양인의 주인을 잡아왔느냐?” 하자, “못 잡아 왔습니다” 하였다. “어서 가서 잡아오너라” 하자, 포졸들이 내려가서 “양인의 주인 누구냐? 어디 갔느냐?” 하면서 교우들을 때리니, 장 요셉이 산에 피하여 있다가 그 말을 듣고 교우가 매우 다치겠기에 자기가 내려왔다. 포졸의 말이 “너는 웬 사람이냐?” 하자, “내가 여기 양인의 주인하던 사람이다. 교우들을 묶어놓고 때리다가 주인이 여기 있으니 풀어놓아라” 하고 장 요셉을 잡아 묶어 집둥우리 타게 하고 홍보를 씌워서 서울로 올라갔다.
<회차 11>
․증언자 : 손여선 바오로
․약 력 : 62세로 덕산 신리 출신. 부친은 병인박해 때 서울(혹은 해미)에서 순교한 손자여 갈리스도이고, 모친은 백 카타리나. 구교우 집안으로 숙부는 성 손자선 토마스.
․증언 대상자 : 2번 다블뤼 주교, 16번 황석두 루카
[제3조목] 장 주교와 안 주교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백 신부(브르트니에르 신부)와 서 신부(볼리외 신부), 신 신부와 박 신부, 오 신부, 민 신부 등과 우(세영, 禹世英) 아릭수, 정(의배, 丁義培) 마르코, 남(종삼) 요한, 최(형, 崔炯) 베드로, 전(장운, 全長雲) 요한, 조(화서) 베드로, 이(명서) 베드로 등은 보지 못하고 말만 들었으며, 김 신부(도리 신부), 황 루카, 장 요셉, 손(선지) 베드로 등은 아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이는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말 들었다 하는 것은 모친과 외삼촌에게 들은 것을 말합니다.
장 주교는 덕산 신리에서 여러 번 보았는데, 신리는 안 주교께서 계시던 곳으로, 서로 만나보러 오실 때입니다. 안 주교와는 한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날마다 보았습니다.
…황 루카는 안 주교의 복사로 있을 때에 매일 보았습니다.
장 요셉은 신리 한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제7조목] …황 루카는 교우 자손인지 자세히 모릅니다. 안 주교의 복사요,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고 열심인 교우입니다. 장 요셉은 그때에 늙었으며, 교우의 자손인지는 모르고 회장인데, 열심인 교우였습니다.
[제8조목] 치명자들의 잡힌 사정은 안 주교와 황 루카와 나의 삼촌과 육촌 제부 외에는 모릅니다.
[제38조목] 안 주교는 잡히실 때에[나는 그 동네에 있었습니다] 목도하였고, 포교가 온다 하니 주교 말씀이 “오, 주 예수도 잠깐 피하셨으니 나도 잠깐 피하겠다”고 하시고 나뭇가지에 숨어 계셨다. 포교들이 나뭇가지를 훑으려 하니 일어나시어 말하시되 “너희가 경포냐?” 물으셨고, 경포라고 대답한 그들에게 잡혀서 서울로 올라가셨는데, 잡히실 때에 교우들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누차 전하셨습니다.
황 루카는 주교 잡히실 때에 따라가려고 하자, 포교들이 오지 말라고 때렸으나 굳이 따라가 서울까지 갔습니다. 나와 그 때에 있던 여러 교우들이 다 보았습니다.
<회차 12>
․증언자 : 이윤오 바오로
․약 력 : 67세, 남포 서주골 출신으로, 부친은 이치문 힐라리오이고 모친은 최 아녜스. 5대째 내려오는 구교우 집안임.
․증언 대상자 : 2번 다블뤼 주교, 8번 오메트르 신부, 9번 위앵 신부, 16번 황석두 루카, 17번 장주기 요셉
[제18조목] 안 주교는 김 신부(민 신부인 듯)와 다른 신부 한 분과 복사 둘과 모두 다섯 사람이 보령 수영이라고 하는 곳에서 치명하셨다는 말은 부친에게 들었습니다. 나의 부친은 치명 터에 참석하였습니다.
치명하시기 전 임박하여 상을 차렸는데 다른 신부 두 분이 잡수시지 않으시려 하자, 안 주교께서는 권하시기를 “이런 좋은 음식을 왜 안 먹느냐? 어서 먹어라” 하셨다.
오시(午時)에는 치명할 터인데 시간이 늦어진다고 꾸짖으셨는데, 이는 희광이들이 돈을 먹으려고 지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교와 신부는 꼭 오시에 바삐 치명하시려 하여 오백여 냥을 주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19조목] 치명하신 후 며칠인지는 모르나, 며칠 후에 다섯 사람이 가서 구덩이를 파고 조약돌로 묻은 시신을 파내어 서주골(즉 서짓골)에서 장사하였습니다.
제19에서 말한 것은 주교와 신부 두 분만 서주골에서 장사지냈는데, 관속에 표하여 두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어느 편에는 신부가 있고, 어느 편에는 주교가 있는지 다 기록하여 두었습니다.
[제24조목] 장사 지낼 때에 시신 셋이 다 온전하였습니다.
[제25조목] 백 주교 때 그 명으로 부친이 강경이 있을 때 주교와 신부 두 분을 이장하였는데, 달포 간 집의 벽장에 두었습니다.
<회차 13>
․증언자 : 손경운 아우구스티노
․약 력 : 53세로 홍주 신리 출신으로 천안 광덕면 서리실에 거주함. 부친은 손여성 요한이며, 모친은 이 마리아임. 조부는 1867년 11월 29일 홍주에서 순교한 손 마르첼리노로, 안 주교의 주인으로 있었으며, 손자선 토마스, 손선지 베드로와는 9촌간임.
․증언 대상자 : 2번 다블뤼 주교
[제3조목] 장 주교, 안 주교, 손(자선) 토마스, 황 루카, 손(선지) 베드로 등은 말을 들었고, 다른 이는 말 못 들었습니다. 나의 부친에게 들었습니다. 나의 조부는 안 주교의 주인으로 있었기 때문에 아는 고로 대강 말 들었습니다.
[제8조목] 부친에게 말 듣기를 안 주교는 정월에 경포에게 잡히셨는데, 경포가 올 때에 교우들이 주교에게 포교가 온다고 여쭈니, 시간이 바빴기에 주교의 미삿짐을 교우들이 나무로 덮어 감추었습니다. 어느 교우가 동네의 동장이 되어 말하기를 “지금 포교가 저기 가깝게 오니 남녀노소는 하나도 피하지 말고 동장의 집으로 모여라”라고 하니 제반(諸般)이 다 모였는데, 경포가 들어올 때에 유다스를 데리고 왔는데 성은 박가(즉 박만억 필립보)요 이름은 모릅니다.
포교가 들어와서 묻기를 “여기에 안 주교 계시지요?”라고 하자, 어느 교우가 대답하기를 “안 주교께서 여기에 계셨지만 전교하러 가셨으니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소”라고 하였습니다. 포교 말이 “내가 이 동네를 뒤지겠다”라고 하여 뒤지라고 승낙하였습니다. 동네는 70여 호로 큰 동네인데, 주교는 조그마한 집에 숨어 계시면 포교가 뒤지지 않을 줄 알고 교우들이 거기에다 모셨습니다. 포교들이 집을 뒤지는데 미삿짐 감추어둔 나뭇가지를 지팡이로 쑤셔보더니 “양인의 물건이 여기 있다”라고 하면서 집을 뒤졌고, 안 주교는 방에서 그 말을 듣고 계시다가 포교들이 전후 방문을 열려고 하니 주교가 일어나시어 “여기 있다”고 하시면서 포교들과 방에 앉으셨는데, 유다스는 무례한 행동을 하였으나 포교들은 조심하였다고 합니다.
안 주교께서 잡히신 후에 어느 교우에게 말씀하시기를 ‘새 신부 두 분이 근방에 있는데 오시라’ 하시니 오셨는데, 포교들이 새 신부 두 분 오시는 것을 보고 매우 좋아하여 손뼉을 쳤습니다. 거기에서 안 주교와 새 신부 두 분과 황 루카와 같이 서울로 올라 가셨습니다.
[제18조목] 안 주교와 신부 두 분은 잡히신 후 서울로 가셨다가 다시 고마 수영이라는 곳에서 참수 치명하였다고 부친에게 들었습니다. 황 루카는 어떻게 죽었는지 모릅니다.
<회차 16>
․증언자 : 유 루치아
․약 력 : 78세. 홍주 마수머리 출신으로, 합덕의 아들(이 회장) 집에 삼. 부친은 외교인이고, 교우인 모친에게 14세에 배워 문교함. 14세에 출가하여 15세에 남편(고 베드로)과 같이 영세하고 혼인함. 첫 번째 남편인 고 베드로는 군난 후 2년 만에 죽고, 외교인 이명운에게 개가하였고, 이명운도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함.
․증언 대상자 : 2번 다블뤼 주교, 16번 황석두 루카
[제3조목] 안 주교, 황 루카는 여러 번 보았는데, 전교 중에 많이 보았습니다.
……안 주교께 2년 동안 성사 보았습니다. 합덕에서 10리 되는 지나 덜기 공소에서 성사를 보았습니다.
[제6조목] ……안 주교 성품은 좀 엄하시나, 많이 인자하시고 대단히 열심이십니다.
또한 안 주교께 문답 찰고도 많이 하였습니다.
[제7조목] 황 루카는 신문 교우인데, 말 들으니 처음 입교할 때에 부모가 금하였기 때문에 일부러 3년 동안 벙어리 노릇을 하고 있다가 부모가 말하기를 “네가 성교하기를 원하거든 입을 열고 말하라”라고 하니 즉시 성교하기를 원하는 표로 입을 열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안 주교의 복사로 있었습니다.
[제8조목] 안 주교와 황 루카와 신부 두 분은 신리(거더리)에서 포교에게 잡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무지 그 때에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위에 말한 치명자들은 잡혀갔다는 말을 외인 김원삼에게 들었습니다.
[제18조목] 장 주교와 안 주교와 남 승지, 황 루카, 신부 두 분이 참수 치명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장 주교와 남 승지는 서울에서 치명하였고, 안 주교와 황 루카와 신부 두 분은 수영읍에서 치명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위에 말한 외인 김원삼은 안 주교와 황 루카가 서울에서 수영으로 치명하러 오실 때에 보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19조목] 안 주교와 신부 두 분과 황 루카 등은 포교들이 해변에 묻은 것을 안 주교의 마부로 있던 김백원이 찾아서 산에다 이장하였다고 내 친정 어머니께 말하였고, 나는 친정 어머니에게서 들었습니다.
2) 1922년도
<회차 34>
․증언자 : 황 마르타
․약 력 : 71세, 충주 연풍 출신으로 정읍 신성리 신부 댁에 거주함. 황석두 루카의 종손녀(從孫女). 부친은 황 안드레아로 구교우이며, 모친은 홍 마리아로 신문 교우. 남편 윤 스테파노는 죽은 지 20년이 됨.
․ 대상자 : 16번 황석두 루카
[제3조목] 안 주교는 보았고, 장 주교는 말만 들었고, 김 신부(민 신부인 듯), 오 신부 등은 보았고, 안 주교와 김 신부와 오 신부는 서천 산막골에서 보았습니다. 그 때 어렸기 때문에 성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치명하신 신부들은 말만 들었습니다. 남(종삼) 승지는 치명하였다는 말을 들었으나 보지 못하였습니다. 황 루카는 나의 종조부(從祖父)입니다.
[제7조목] 황 루카는 열심한 교우인데, 자기 평생에 고생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또 철이 든 후부터는 수정을 지키기로 하여 평생에 마음을 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안 주교의 복사로 있었습니다.
[제8조목] 황 루카는 서울에서 잡혔다는 말을 들었으나, 어떻게 잡혔는지는 모릅니다.
[제9조목] 잡힌 후 서울에 갇혔다가 후에 안 주교와 여러 신부와 함께 수영에 와서 치명하였다는 말을 백부 황 예로니모에게 들었는데, 이 사람은 성교 때문에 잡혔다가 배교하고 나온 후 잡힌 자 둘을 살펴봄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제18조목] 황 루카는 참수함을 받았는데, 안 주교와 신 신부와 박 신부와 장 베드로 합 네 사람과 함께 치명하였습니다. 황 루카는 넷째로 치명하였습니다. 먼저 다섯 사람에게 상을 차려 음식을 먹게 하였는데, 황 루카가 말하기를 “천주께서 내신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는다”라고 하고서 기쁜 마음으로 먹었다고 하며, 치명할 때까지 항상 기도를 하다가 칼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나의 백부(즉 황 예로니모)가 보고 와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월(2월의 잘못) 14일에 치명하였습니다.
[제19조목] 시신은 죽은 후 며칠 동안 모래로 묻었는데, 각각 성패를 써서 놓았기 때문에 며칠 후에 나의 백부가 가서 찾아 왔고 남은 시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제23조목] 4월 16일(양력 5월 29일)에 나의 백부가 가서 시신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홍산 사피(즉 삽틔)에 묻었습니다. 지금은 자손이 없기 때문에 가더라도 찾지 못합니다. 가서 시신을 가지고 오려고 파니, 시신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고 또 목의 피는 새로 흐르는 것 같더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32조목] 황 루카가 치명한 후 흰 무지개 다섯이 다섯 시신 있는 곳에서부터 하늘까지 닿았더라고 하는 말을 백부에게 들었습니다.
<회차 35>
․증언자 : 이종순 요셉(신부)
․약 력 : 38세. 충청도 아산 소일리 출신. 1913년 5월 17일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대전 목동 본당의 초대 주임 신부. 부친은 이 안드레아이고 모친은 이 마리아.
․증언 대상자 : 2번 다블뤼 주교
[제3조목] …안 주교께 나의 부친이 성사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고, 또 여러 신부들을 뵈었다는 말까지 부친께 들었습니다. 안 주교께서 충청도 거더리에 계실 때 비밀히 통행하던 신부들인데, 성과 본명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주교 뵈올 때 나의 부친은 충청도 온양 명지거믜에 살았는데, 거더리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주교 신부들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6조목] …부모의 말씀이, 안 주교는 외모에 엄한 기색이 있으나 성사 때는 얼마나 인자하신지 매우 칭찬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 때 주교 신부들은 항상 숨어서 조선 상제복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의 부친은 주교 신부들께서 전교하는 길에 발이 상하여 피가 흐르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고 합니다. 안 주교는 충청도에서 제일 전교를 많이 하였으나, 장 주교는 어디인지 못 들었습니다.
[제8조목] 다른 신부들은 어떻게 잡혔는지 도무지 말을 듣지 못하였고, 안 주교는 그 때 주교 댁에 식모로 있던 어느 여교우에게 잡힌 사정을 들었습니다. 식모의 성과 본명은 잊었고, 그를 만난 것은 13~4년 전에 가재에서 보았습니다. 식모의 말이 안 주교께서 잡히실 때 자기 시아버지와 남편과 여러 교우들도 함께 잡혔는데, 그 때 있던 포도주와 여러 가지 시계 등 물건과 모든 세간을 소에 싣고 가고 주교는 소를 타시고 평택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 주교는 마지막이 되는 점심 진지를 얼마 드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식모는 지금은 죽었습니다.
[제17조목] 안 주교께서 잡히시기 전에 유다스(즉 박 필립보)가 이미 주교 신부 계신 곳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교께서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잡히신 후에는 어떻게 죽을 예비를 하셨는지 모릅니다.
[제18조목] 장 주교와 신부들은 어떻게 치명하셨는지 모르나, 안 주교는 참수되셨다는 말을 부친에게도 들었습니다. 부친은 누구에게 그 말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제23조목] …안 주교는 먼저 치명하신 터에 모래로 여러 날 동안 묻었다가 나중에 이장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40조목] 더 할 말이 없으나, 그러나 한 가지 있습니다. 죽은 이 바오로 신부(이종국 신부인 듯)의 고모부에게 들은 말 하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안 주교께서 치명하실 때에 친히 본 사람입니다. 말하기를 안 주교 시신은 치명하신 터에서 모래로 묻었다가 다른 곳으로 밤에 옮겨갔다가 날이 밝자 시신은 강가 콩밭에 감추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그날 일군들이 그 밭을 매러 와서 점점 가까이 시신이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키는 사람은 시신이 탈뇌(脫腦)될까 하여 근심을 하면서 있었는데, 별안간 청명하던 날이 제성을 하며 폭우가 쏟아지니 일군들은 다 도망하여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저녁이 되니 다시 하늘이 청명하게 되어 시신을 옮겨다가 묻었다고 합니다. 이 일은 모든 이가 다 이상한 일이라고 합니다.
<회차 36>
․증언자 : 김 아가타
․약 력 : 52세. 경상도 영동 버거틔 출신으로 대전 방축리에 거주. 남편은 이 요셉으로 기해년 24년 전에 사망. 부친은 김 베드로로 3년 전에 사망하였고, 모친은 이 마리아로 이종순(요셉) 신부의 고모임.
․증언 대상자 : 2번 다블뤼 주교, 8번 오메트르 신부, 9번 위앵 신부, 16번 황석두 루카, 17번 장주기 요셉
[제3조목] 안 주교, 오 신부, 황 루카와 남 승지 등은 부친에게 치명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친은 그 때 공주 자래실에서 살았습니다. 부친은 군난을 여러 번 겪었다고 합니다.
[제8조목] 안 주교는 거더리에서 잡혔다는 말을 부친에게 들었습니다. 부친은 그 때 잡히신 주교나 신부나 황 루카 등을 이수한다는 말을 듣고 그릇 장사 모양으로 꾸미고 다니면서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제10조목] 안 주교께서 문목 받으실 때에 하신 말씀은 매우 놀랍게 잘 대답하였다는 말을 부친에게 들었는데, 지금은 그 말을 잊었습니다. 관장도 그 때 주교 말씀에 이상히 여겼다고 합니다.
[제11조목] 문목 받으실 때 한 중이 있어서 마술을 하므로 관장 말이 “네가 저것을 못하게 할 수 있느냐?”라고 물으니 주교께서 못하게 하실 수 있다고 대답하시고 천주께 기도한 후 중이 그 앞에서 마술을 못하였다는 말을 부친에게 들었습니다. 관장이 배교하라고 하였는데 말을 못 들었습니다.
[제12조목] 관장이 주교에게 교우들을 대라고 말하였으나, 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나의 부친은 그때 보고 들었다고 합니다.
[제13조목] 다른 죄목이 있어서 잡혔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제14조목] 주교나 신부나 황 루카에게 형벌을 무수히 하였다는 말을 들었으나 낱낱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제18조목] 안 주교, 오 신부, 다른 신부 한 사람과 황 루카와 또 성은 장가라고 하는 사람 등은 서울에서 죽을 결안을 받고서 고마 수영으로 와서 치명하였는데, 먼저 양편 귀에 화살을 꽂고 칼을 받아 치명하시는 것을 나의 부친은 그 때 그 곁에서 보고 나중에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19조목] 치명하신 후 즉시 그 자리에 묻었는데, 큰 구덩이를 팔 때 나의 부친도 그 때 그릇 장사 행세를 하고 있다가 그 구덩이를 함께 파서 각각 시신을 찾아서 묻었다고 합니다. 시신을 묶을 때에 어떤 외인의 말이 그 시신을 아무렇게나 묻자고 하였으나, 어떤 사람은 서양 사람과 조선 사람 머리를 각각 잘 찾아서 묻자고 하였고, 내 부친은 그 말이 좋은 말이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제23조목] 치명하신 후 그 자리에 묻었다가 여섯 달 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데, 몇 달 전에 그 근처에 교우 한 집을 주막집으로 시켜놓고 있다가 여러 교우와 나의 부친과 함께 모여와 시신을 파 가지고 가다가 날이 밝으니 곁에 콩밭에 감추고 다른 교우들은 곤하여 이웃에 흩어져서 자고 이 바오로라고 하는 교우 혼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날 마침 그 밭에서 일군들이 와서 일하다가 점점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당도하자 지키던 사람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구름이 끼며 비가 쏟아지니 일군들이 다 흩어져 집으로 갔습니다. 저녁에 또다시 날이 좋아서 함께 교우들이 다시 모여와 지키던 사람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찾다가 마침 만나니 주교의 발을 베고 자거늘 깨워서 배에 올려 실을 때에 내 부친이 등에 시신을 지고 배에 올렸다고 합니다. 배에 실을 때 사공이 이런 시체는 못하겠다고 하자, 교우들 말이 “지금 벌써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못한다고 하여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죽어도 우리와 함께 죽자”고 하고 억지로 실은 후 선가(船價)를 후히 주었다고 합니다. 가는 동안에는 배가 많이 왕래하였으나, 시신을 실은 배 곁으로 안개가 끼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데서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제24조목] 온전한 시체로 있었다고 하는 말을 부친에게 들었습니다.
[제26조목] 가보지 않았습니다.
<회차 86>
․증언자 : 강 이사벨라
․약 력 : 69세. 홍산 내대 출신으로 논산읍에 거주. 부친은 강 시메온으로 병인년에 순교하였고, 모친은 신 아가타. 순교자 손자선 토마스의 외척으로, 증언자 강 마리아의 언니이자 강도영(라우렌시오) 신부의 누이.
․증언 대상자 : 2번 다블뤼 주교, 16번 황석두 루카
[제3조목] 장 주교, 백 신부, 서 신부, 김 신부, 박 신부, 신 신부, 오 신부 민 신부는 다 모르고, 안 주교는 알고, 황 루카도 알고, 손 토마스 자선이도 압니다. 다른 치명자들은 모릅니다. 황 루카는 홍산에서 같이 살 때에 보았고, 안 주교는 치명하러 가실 때에 보았습니다. 그 때 나는 열 한 살 쯤 되었습니다. 그 때 안 주교께서 치명하러 가실 때에 동네 사람이 남녀를 물론하고 다 구경하러 나갔습니다.
[제7조목] 황 루카도 홍산 같은 동네에 살았습니다. 황 루카는 그 때에 열심한 교우였고, 어른들로부터 수정하고 산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제18조목] 안 주교와 황 루카가 치명하러 나가실 때에 따라가 보았는데, 그 때에 고마 수영 방갓 동네에 살았습니다. 방갓 동네에서 안 주교께서 치명하시던 자리까지 5리도 안됩니다. 그때 나는 안 주교와 황 루카 치명하실 때 머리 벨 때까지 있었는데, 모인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하던 소리만 지금 겨우 생각됩니다.
안 주교와 황 루카가 치명할 때에 어른들에게 말 듣기를 교우 한 명과 새로 나와서 조선말도 모르는 신부 두 분이 같이 치명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라버니 말이 안 주교와 황 루카가 치명하시기 전에 음식상을 차려 드렸는데, 황 루카가 안 주교께 권하여 드시게 하였다고 말 들었습니다.
[제19조목] 오라버니에게 말 듣기를 안 주교와 황 루카 치명하신 후에 베인 목을 사또에게 보이게 증거한 후에 사흘 동안이나 모래밭에 묻었다가 나중에 산에 옮겨 묻었는데 무덤까지 보았습니다. 후에 시신을 파간 무덤자리까지 보았는데 어머니께 시신 파간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제22조목] 안 주교, 황 루카가 치명하신 후 여러 번 그 자리에 가서 조개와 굴도 많이 주었는데, 치명하실 때에 차렸던 상과 그릇에 피 묻은 것을 많이 보았으나 무심히 보았고, 또 바다 조수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고로 차차 다 씻겨갔습니다.
[제23조목] 안 주교와 황 루카의 시신은 치명 후 3일 동안이나 강변에 있었는데, 그 후에 산에 묻었고 나는 그 무덤까지 보았습니다. 그 후 여러 날 후에 또 산에 갔었는데, 무덤 파간 자리가 있기에 어머니께 주교 무덤을 누가 파갔더라고 하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제26조목] 그 전에 묻었던 자리는 가 보았으나 지금 묻은 자리는 못 가보고, 안 주교 시신은 서울 명동 대성당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황 루카의 시신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제40조목] 더 할 말 없습니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오라버니에게 말 듣기를 안 주교와 황 루카가 치명할 때에 목에서 흰 물이 피보다 많이 방울방울 나오는 것을 보았다 함을 들었습니다.
<회차 87>
․증언자 : 강 마리아
․약 력 : 67세로 충청도 홍산 출신. 부친은 강 시메온으로 병인년에 순교하였고, 모친은 신 아가타. 순교자 손자선 토마스의 외척으로, 증언자 강 이사벨라의 동생이자 강도영(라우렌시오) 신부의 누이.
․증언 대상자 : 2번 다블뤼 주교, 16번 황석두 루카
[제3조목] 장 주교, 안 주교 말을 들었고, 뵌 듯도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고, 치명하신 신부들은 다 모릅니다. …황 루카는 어려서 보았습니다.
[제18조목] 안 주교와 황 루카는 서울로 잡혀갔다가 수영으로 와서 치명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안 주교께서 수영으로 치명하러 오실 때에 방갓이라는 동네에서 구경하였습니다. 치명하실 때에 사람이 많아서 다른 것은 못 보았고 다만 희광이가 칼을 들고 춤추는 것을 보았으며, 나중에 장대에 머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 주교와 황 루카가 치명할 때에 신부 두 분과 교우 하나가 같이 치명하였다는 말을 그 때 교우들에게 들었습니다. 안 주교와 황 루카가 치명한 후에 베인 머리를 그릇에 담아서 사또에게 보이는 것을 보았고, 모여 있던 사람들이 좋은 곳으로 갔다고 떠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19조목] 치명 후에 시신은 강변의 모래에 묻었다가 후에 이웃 산에 옮겨 묻었다고 어머니께 말 들었고, 또 얼마 후 그 산에서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20조목] 치명자들은 나라에서 성교한다고 죽였고, 외인들도 다른 죄가 아니고 천주학하다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제25조목] 안 주교나 황 루카의 시신은 이장하였다는 말을 들었으나 시신을 어디로 이장하였는지 모릅니다.
[제26조목] 방갓 있을 때에 안 주교 묘가 산에 있을 때 나물 뜯으러 다니다가 여러 번 보았습니다. 지금 이장한 곳은 못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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