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넓은 의미에서, 아주 넓은 틀에서 보면 인간중심적인 틀=사고(생각)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우리는 고해=쓴바다의 굴레=원죄=카르마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보기를 들어서 말해 보면 "병 주고 약 주는 틀"을 벗어나야 합니다. 병은 병든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걸린 것입니다. 그 병에 대한 치료약은 없습니다. 그 치료 방법은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살림살이를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흙-땅병의 치료약에는 흙-땅으로 돌아가서 흙-땅이 되는 것뿐입니다. 흙-땅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흙-땅 병(흙-땅에서 멀어진 병-암)에 걸립니다. 하늘병을 치료하려면 하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사람에게서 멀어지면-벗어나면 사람병(상사병)에 걸립니다. 사람병을 치료하려면 사람에게로 돌아가 사람과 한몸짓기를 해야 합니다.
인간중심적인 것은 병이고, 인간중심적인 처방-치료나 약으로는 사람중심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고치다'는 '곧이다'입니다. 곧은 똑바로=올바로입니다. 올곧다입니다. 고치다는 '곧게 하다'입니다. '병'은 '곧지 않다, 올곧지 않다'입니다. 올은 줄입니다. 줄은 날줄과 씨줄이 있는데, '병'이란 "날줄이 곧지 않다 올바르지 못하다. 씨줄도 그러하다"를 뜻합니다.
"병을 고치다, 치료하다"는 "하늘의 올, 땅흙의 올, 사람=사랑의 올=줄로 이루어진 나의 몸이 올곧게 살면 된다"를 말합니다.
'쓴바다=고해(苦海)는 병해(病海)입니다. 죄의 바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고해=쓴바다는 잘못입니다. 고해는 생명을 자라나지 못하게 합니다. 고해는 생명 못 자라게 함입니다.
병에서 벗어나려면 병을 고쳐야 합니다. '병을 고치다'는 '병'은 올바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올바르게=곧게 살아가면 병은 저절로 고쳐지게 됩니다. 하늘(뜻), 땅(꼴), 사람(사랑)의 날줄과 씨줄이 올곧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고치다는 '곧이다'입니다. 곧게=올곧게=올바르게 살면 됩니다. 올곧게는 하늘 뜻대로=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바 그대로-그냥-그처럼-그토록-그저-그답게-그되게-그렇게 살면 됩니다. 따앙의 꼴(틀)대로=사람의(사람다운 사람의 길) 길따라, 사랑함으로 텅 빈 넉넉함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하늘은 잴 수 없는 텅 빈 넉넉함 그것입니다. 텅 빈 그것의 얼과 뜻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로 마루(으뜸)가르침입니다. 사람은 그 뜻과 얼을 다 알 수없습니다.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고 깨닫고 헤아려보는 몸가짐이 바랄 만한 일이겠지요. 땅은 잴 수 없는 텅 빈 넉넉함 그것, 우주=한울 안에서, 또 밖에서 살아 움직이는 꼴=틀=몸입니다. 땅덩이-지구도, 해도, 달도, 수많은 별들도 모두 다 틀이 있고 꼴이 있어서 그것을 땅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사랑의 몸-살다와 살리다의 목숨입니다. 모든 몸, 것은 살아 숨 쉬고 있는 몸=생명체입니다. 이 생명체를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늘도 따앙도, 사람(사랑)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까지는 그것들을 인간중심적으로 알려고, 또는 안다고 해 왔습니다.
텅 빈 넉넉함으로 우주 중심의 살림살이로 우리 몸을 바꾸어 놓지 않으면 하늘을 죽이고, 따앙을 죽이고, 사랑(사람)을 죽이는 꼴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들-보이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하늘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앙의 꼴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의 살림살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의 숨결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는 "한몸으로 받다와 주다"입니다. 우주를 나의 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몸짓기는 한울모심과 한울섬김이 한몸으로 이루어짐입니다.
하늘은 나입니다. 나는 하늘입니다.
땅은 나입니다. 나는 따앙입니다.
사람은 나입니다. 나는 사람입니다.
나는 우주이고, 한울입니다. 우주는 나이고, 한울도 나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물 한 방울, 흙 알갱이 하나, 모래 한알, 숨 한결, 빛 한결, 한숨, 한숨결... 이 모든 것들이 나입니다. 말할 나위도 없는 몸인 나는 나의 그것들(몸들)로 이루어져(이룸) 있는 몸입니다. 때문에 몸은 우주=한울입니다.
"나의 몸은 우주다=한울이다"가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무르익고 녹아질 때, 텅 빈 넉넉함으로 우리는 다 풀린 삶(자유함)을 살아갈 수 있으며 모자람 없는 넉넉함으로 평화로울 수 있게 됩니다.
'산다(살아간다, 살아 있다)는 것은 "하늘의 것들이 모두 나에게로 내려와서 그것을 받아서 땅의 몸을 모시고 살아가다가 도로 하늘의 몸으로 돌아가는, 그래서 하늘과 따앙과 사람이 한몸을 지어서 살아간다"를 뜻합니다.
'한몸짓기'란 바로 우주짓기이며, 한울짓기를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하루를 '산다'는 것은 빛으로, 흙으로, 사랑으로, 하늘로, 따앙으로, 사람으로, '한 몸'을 이루어내자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삶이 '한몸짓기살림살이'입니다.
'한몸짓기'는 바로 따로따로 떨어져있는 '나'가 아니라 한몸(우주로, 한울로)으로 나를 짓는-텅 빈 나를 짓는-그리하여 하늘, 땅, 사람이 '한몸-넉넉함'을 짓는 살림살이입니다.
텅 빈 넉넉함으로 한몸짓기살림살이는 그야말로 인간중심주의를 뛰어넘어서 하늘 중심, 따앙 중심, 사랑 중심의, 보편적, 우주중심적 사상이고 철학이며, 종교, 과학, 넉넉한 경제와 정치, 문화와 문명의 바탕입니다.
이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 중심적 사상-생각-올바르게
우주 중심적 철학-밝힘-환하게
우주 중심적 종교-바탕-밑받침
우주 중심적 과학-따짐-곧게
우주 중심적 경제-넉넉함-기쁘게/즐겁게
우주 중심적 정치-다살림-나눔으로
우주 중심적 문화-함께-더불어
우주 중심적 문명- 아우름-평화롭게
우주 중심적 명상-그려봄-다듬어가다
우주 중심적 묵상-되새겨봄-고요하게
우주 중심적 기도- 바람- 몸바라기
우주 중심적 노동-몸일-몸기르기
텅 빈 넉넉함으로 우주중심적인 한몸짓기살림살이는 21세기를 넘어서 인류사의 보편적 가치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한몸짓기의 사상과 철학은 몸의 신학에서 벌써 이야기된 바와 마찬가지로, 일류 구원의 바탕 원리입니다.
삶=살림살이(살다=살리다의 길)는 다른 말로 한몸짓기이며, 우주적 짝짓기입니다. 사상적, 종교적, 철학적, 문화적, 문명적으로 한몸짓기는 우주적 사랑짓기입니다. 한몸짓기는 텅 빈 넉넉함의 원리로서 하늘짓기이며, 따앙짓기이고, 사람짓기로서 하늘 따로, 따앙 따로, 사람 따로를 막고, 한몸인 우주=한울나라로 가야 한다는 한몸 지음이고, 몸길 닦기이며, 한몸짓기살림살이입니다.
우주는 한몸이고 한울나라는 한몸인 나라인 것입니다. 개인주의(자기를 지키되)를 넘어서서, 겨레(민족)주의(제 겨레를 살리되)를 넘어서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서 한몸인 살림살이를 지향하는 것이 다름 아닌 한몸짓기살림살이인 것입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는 우주의 살림살이를 따름이요, 한울의 살림살이를 지킴이고, 하늘의 뜻을 따라, 따앙의 꼴을 따라, 사람다운 사람의 사랑을 따람 함께=더불어, 다같이 아우르는 살림살이인 온누리 평화짓기입니다. 온누리 평화태학당짓기-경당짓기인 것입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는 텅 빈 넉넉함의 원리에 따라서만 아름답게, 넉넉하게, 거룩하게, 알차게 피어나고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는 살아 계시는 목숨의 살림살이입니다. 도깨비나 도깨비 방망이의 믿음을 따르지 않습니다. '우상'인 '귀신'을 믿지 않으며 우주의 운행대로 함께=한몸으로 밤은 밤같이, 낮은 낮같이, 봄은 봄같이, 여름은 여름같이, 가을은 가을같이, 겨울은 겨울같이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는 봄이 되면 내가 봄대로 피어나자는 것입니다. 새싹으로, 푸른 잎줄기로, 가지로, 꽃으로 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운행은 나의 운행이다"라는 말대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우주의 운행대로 살아감이 하늘 뜻대로 살아감이고, 따앙의 꼴대로 살아감이며, 사람다운 사람의 사랑으로 살아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음이 다름 아닌 앓이-가슴앓이, 속앓이-아픔, 병이고, 고통이고, 원죄이고, 고해에서의 방황입니다. 업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한몸짓기살림살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의 가치는 마땅히 그리해야 하는 믿음의 가치이고, 바람의 가치이며, 사람의 가치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따뜻한 혁명-녹이는 혁명, 사랑의 혁명)'이고, 텅 빈 넉넉함으로 살아가는 살림살이입니다.
따뜻함은 나를 녹임이고, 나를 녹임으로써 나는 텅 비워지고, 나를 비워냄으로써 우리 모두가 새롭게 새롭게 '넉넉해져' 한몸=우주=한울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텅 빈 넉넉함'의 바탕=원리는 우주살림살이의 바탕이며 한울살림살이의 원리입니다. 한울살림살이란 사랑의 살림살이입니다. 참사람이야말로 나늘 잘살게 하고 너를 잘 살리는 삶=살림살이를 살아가게 합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는 바로 따뜻한 혁명입니다. 사랑의 혁명입니다. 인간중심주의의 살림살이에서 나의 몸을 우주 중심=한울 중심의 살림살이로 새롭게 변화=새롭게 지음=새롭게 창조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나의 몸=나를 온전히 녹여서=텅 비게하여 새로운 몸=사람(새로운 나)으로 거듭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혁명=녹이는 혁명=사랑의 혁명은 바라 텅 빈 넉넉함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새 창조사업입니다. 따뜻한 혁명의 길은 좁지만 뜻 깊은 창조 사업입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나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작업인 것입니다.
따뜻한 혁명의 힘인 사랑은 참 쉼의 가운데 자리입니다.
참 사랑이야말로 참 쉼이고 참 휴식입니다.
쉼=휴식이 사랑됨이 아니라, 쉼=휴식이 사랑의 중심이 아니라, 참사랑이야말로 참 쉼=참 휴식의 중심입니다.
참사랑은 살림의 중심이고, 살이의 중심입니다.
참사랑은 참하나님=한울입니다. 사랑은 따뜻함입니다 따뜻한 혁명은 사랑의 혁명입니다. 따뜻한 사랑은 딱딱한 모든 것을 녹이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텅 빈 넉넉함으로-한몸짓기살림살이는 따뜻한 혁명=녹이는 혁명=사랑의 혁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몸짓기살림살이-텅 빈 넉넉함으로'는 참삶의 흐름이며 우주살림살이의 길입니다. 배설작용이 그러합니다. 낳고 살다가 죽어가는 작용이 그러합니다. 텅 비움이 넉넉함의 비롯음이고, 참넉넉함이야말로 텅 비움의 출발입니다.
낳음이 넉넉한 시작이면, 죽음은 텅 비움의 출발입니다.*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한 알의 씨앗, 무릇 모든 씨앗은 하나입니다.
한 씨의 씨알, 무릇 모든 씨알은 하나입니다.
(다사함 김명식의 따뜻한 혁명, 자연수행의 길 <텅 빈 넉넉함으로> , 제3부 '따뜻한 혁명을 위하여' 중에서)
첫댓글 오늘 책 한권 깊이 읽은 듯 합니다
요즘들어 심각하기 싫어 가볍게만 살려하는데 다 맞는 말만 하시니 ㅡ
고맙게 잘읽었습니다 ^^
현실적으로 가르침을 따르기에는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읽는 시간만이라도 마음에 평안이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돌아갈 흙도 땅도 없는 나는 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네요.
개동님 자신이 흙이고 땅입니다.
걸림이 없는 삶의 자유를 위해선
우주 중심적인 텅 빈 넉넉함으로
몸과 마음속의 날줄과 씨줄을 곧게 펴고 볼 일입니다.
수고하여 옮기신 거룩한 글에 고개 숙입니다.
벌써 절반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