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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위된 고묘 선우철의 고함소리가 멎자 대전 안은 여전히 쥐죽은 듯 고요했다. 강호 무림의 여러 고수들의 예리하고 차가운 눈빛이 날카롭게 대전 안을 둘러보았다. 감히 누가 숨어있을 만한 곳이 없을 정도이기도 했지만, 안은 역시 텅 빈 채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선우철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한 차례 냉소를 터뜨린 뒤 다시 외쳤다. “만약 체면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떳떳하게 나설 것이지 어두운 곳에 숨어 암습을 가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느냐?” 하나 대전 안은 여전히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선우철의 마음속에 치미는 분노는 극도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고 영리한 사람이므로 표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돌연 고개를 돌려 부하들에게 거칠게 명령했다. “다시 묘비를 깨뜨려라!” 말을 마치자 마자 네 명의 흑의경장 사나이들이 앞으로 나와 이미 시체가 된 네 명의 수중에서 철추 등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들은 차분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밟고 올라가 곧장 귀기가 으스스하게 감도는 대전을 향해 걸어갔다. 이들 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아주 용감했지만 그러나 마음속으로 한 가닥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장맹의 엄격한 규칙은 그들로 하여금 꼼짝없이 명을 따르게 했다. 대전 앞 돌계단 아래에 있던 강호 무림의 고수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이들 네 사람이 차분한 걸음으로 비석 앞까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안에는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두 사나이는 손에 든 철추를 높이 쳐들어 휙 소리와 함께 곧장 묘비를 향해 쳐갔다. 바로 철추가 내리치려는 전광석화와 같은 찰나 귀를 찌르는 듯한 참혹한 네 마디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비석 앞에 다다른 사나이의 몸뚱이가 곧장 밖으로 굴러 나왔다. 왁자지껄한 소동이 한 차례 일어나면서 무리를 지어있던 무림 고수들은 재빨리 양쪽으로 비켜섰다. 네 명의 경장 사나이들도 앞의 네 명과 같이 비참한 액운을 맞아 저승길로 가버렸다. 장내에 있던 강호의 무림 고수들은 이와 같은 광경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네 경장 사나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으나 장경(掌經)이 어느 방향에서 뻗쳐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장경은 바람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한순간에 네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시간과 방향 그리고 장경 등이 알맞게 조화되어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는데 있었다. 이것으로써 그 사람의 무공이 얼마나 높은지 능히 증명하고 남았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 패권을 쥐고 있는 거벽 마두들이어서 이것을 훤히 알아볼 수 있었다. 청풍검 선우철은 별안간 하나의 잔꾀가 떠올라 낭랑하게 한바탕 웃더니 말했다. “조금 전 여러 형제분께서는 현기 현청 보물을 서로 빼앗으려 했으나 지금 우리는 쟁탈할 필요 없어졌소. 이젠 어느 쪽 사람이든 저 묘비를 깨뜨리면 보물은 곧 그들의 소유가 되는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탈취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 의향은 어떤지 알 수 없구려.” 월광검 소대풍이 크게 웃었다. “고명하오, 고명하오. 선우노제의 말은 노부의 뜻에 바로 꼭 맞았소. 현기현청 보물을 장내에 있는 여러분들은 모두 먼저 얻으려고 할 것이니 대국(大局)을 유지하고 서로 간에 다투는 참화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자원해서 한 걸음 물러나겠소이다.” 월광검 소대풍이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선우노제, 그렇듯 겸손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소? 나는 본시 지주(地主)이니 마땅히 손님에게 양보를 하는 게 도리 아니겠소. 그러니 당신에게 우선권을 드리겠소.” 그들은 각 구에서 이곳에 모여 보물을 하루빨리 손에 넣으려고 노리고 있는데 어찌 남에게 양보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모두 교활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여덟 명의 사나이들이 죽는 것을 보고, 이미 묘지 안의 보물이 남에게 탈취 당했다고 추측했기에 서로 꽁무니들을 뺐다. 선우철은 매우 악랄하고 음흉했다. 그는 자기 쪽과 지령보가 같이 양립할 수 없음을 생각하자 지금 차라리 그 괴인의 힘을 빌려 그들의 한 떼를 제거한 뒤, 이어서 곧 그들 전부를 소멸하리라 생각했다. 청풍검 선우철은 자기의 속셈이 약간 눈치 채인 것 아닌가 여기며 냉랭하게 웃었다. “소대풍, 후회하지 마시오. 내가 설마 이 묘비를 부수지 못할 것 같소?” 그의 말이 막 멎자 돌연, 연거푸 참혹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대전 안에서 다시 여덟 구의 시체가 날아왔다. 그동안 그들이 말하고 있는 틈을 타 무림 사대도(四大島) 사람이 한 걸음 앞서 묘비를 격파하러 갔지만 역시 죽을 액운을 만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여러 사람들은 더욱 놀라움을 느꼈다. 이번에는 여덟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묘비에 닿기도 전에 곧 죽어 버렸고, 또한 이들 여덟 사람의 죽은 모습은 좀 전에 죽음을 당한 도장맹의 여덟 사람의 그것과 약간 달랐다. 그들의 온몸은 조금도 손상이 없으며, 입과 코 등에서 피가 흐르지 않았고 시체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비류신과 홍부용, 천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태껏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던 두 마성(魔星)도 이때는 마음 속 깊이 그 사람의 기절(奇絶)한 무공에 크게 놀랐다. 홍부용이 말했다. “비 상공, 그 기이한 장풍은 정말 무덤 안에서 뻗쳐 나온 것일까요?” 비류신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안의 보물은 이미 남에게 탈취당한 것 같소.그렇지 않고서야 천하에 이렇듯 높은 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비 상공, 당신이 지금 한 말은 무덤 앞에 있는 사람의 무공이 천하 어느 일류 고수보다 뛰어나다는 말인가요?” 비류신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 그는 변명하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지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문득 이 많은 무림 인물 가운데 소대호의 무공이 무덤 안의 사람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초도주 금환두발 진동철은 조금 전 비류신의 일장에 눌려 몇 걸음 물러나게 되자 가슴 속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게다가 지금 또 비류신의 건방진 추측을 듣자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비웃듯 말했다. “이분은 어느 측의 고인이신지… 견식이 이렇듯 깊고 넓으시다는 걸 몰라 뵈었습니다. 조금 전에는 매우 실례했소이다.” 이 말에 만화신검 홍부용은 고개를 돌려 진동철을 한 번 바라보았다. 연후에 가볍게 콧소리를 내며 냉랭하게 욕을 퍼부었다. “볏 더미를 산과 같이 쌓아 놓아도 한 마리의 쥐를 눌러 죽이지 못한다더니 멧돼지처럼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둔하기 이를 데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소… …” 금환두발 진동철은 무림을 떠들썩하게 한 일개 도주(島主)이다. 그가 어찌 홍부용의 이런 모욕과 욕설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그는 외마디 노한 울부짖음을 내고 돌연 몸을 돌려 일 장을 맹렬하게 쳐냈다. 그가 몸을 젖히며 쳐낸 장풍은 겨냥이 정확해서 한 줄기의 강경한 벽공장풍이 되어 홍부용에게 곧장 부딪쳐 갔다. 홍부용은 허공을 뚫는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듣자 이미 그 일격은 강경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곧 몸을 날려 피하려고 했다. 이때 비류신의 대갈일성이 들렸다. “당당한 사내대장부가 연약한 여자에게 갑작스럽게 암습을 가하다니… …” 그는 이 말과 함께 왼손으로 가볍게 홍부용의 팔을 자기 옆으로 끌어들이고 두어 걸음 옆으로 디딘 뒤 오른손을 맹렬히 쳐냈다. 비류신은 소대호에게 정원(精元)을 전수받은 뒤부터 공력이 날로 증진했기 때문에 이 일장은 그야말로 교묘하고 정확하게 진동철이 쳐낸 장풍을 향해 마주쳐 갔다. 두 줄기의 강경한 경도가 서로 부딪치자 회오리바람이 격렬하게 일어났고 땅에서도 돌과 모래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금환두발 진동철은 쌀쌀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몸을 두어 번 흔든 뒤, 뒤로 세 걸음 물러섰으나 오히려 비류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있던 장내의 여러 무림 고수들은 마음속으로 대경실색했다. 조금 전 진동철이 물러난 것은 소홀함 때문이었으나 이번에는 정정당당하게 장력을 서로 겨루었다. 그가 비류신에게 진 것은 자명해졌다. 진동철은 일찍부터 강호 무림에서 웅혼(雄渾)함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그런데 비류신의 대수롭지 않은 장력에 그가 격퇴 당했으니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청풍검 선우철은 그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흰 구름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홍부용은 비류신이 자기를 보호해 주자 마음속으로 흐뭇하게 여겼다. 또한 그녀의 오른발이 그에게 이끌리자 만약 사람만 많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정말 그의 품속에 쓰러지듯 뛰어들었을 것이다. 흑도사괴의 흑도괴마 봉화염은 비류신을 매우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생각 같아서는 여러 사람들을 선동해서 비류신을 쳐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진동철이 비류신을 약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보자 싸늘하게 진동철을 한 번 바라보면서 웃음 지었다. “진형, 근래에 장력이 갈수록 더욱 강해진 것 같구려.” 이 사람은 계략에 극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눈앞의 상황을 보면서 자기대로 생각을 굴렸다. ‘지금의 군호(群豪)들은 모두 양립할 수 없는 사람들이며 비록 현기현청 비보(秘寶)에 심상치 않은 변화를 일으켰으나 한바탕의 악전은 면키 어렵다. 그렇게 될 바에 차라리 일찌감치 어떤 묘안을 생각해내 싸움의 불길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우선 남들로 하여금 서로 지 치도록 싸우게 한 뒤, 다시 힘을 모아 손을 쓴다면 승리는 뻔한 것이다.’ 금환두발 진동철은 가슴 속의 분노를 발산할 데가 없다가 봉화염의 말을 듣자 자기를 비웃는 것이라 오해를 하고 화를 버럭 냈다. “그와 나의 빚은 조금 뒤에 자연히 청산할 것이나, 봉형의 사람을 멸시하는 그 말은 참아 내기 어려우니 주저 말고 겨루는 방법을 정하시오. 내가 목숨을 걸고 받들어 줄 테니.” 월광검 소대풍은 이 흑도 두 사람의 입씨름으로 보아 머지않아 곧 싸움을 벌일 것 같아 즉시 말을 이었다. “두 분께서 목숨을 걸고 겨룬다면 정말 보기 힘든 한바탕 성대한 싸움이겠지요… …” 흑도괴마 봉화염이 빙그레 웃었다. “별말씀을! 소형은 불에 기름을 붓고 있지만 아마 가만히 앉아서 어부지리의 소원을 이루기란 어려울 것이오.” 비류신은 이 사람들의 기가 막힐 정도의 교활함을 보자 구역질이 났다. 그는 일장으로 진동철을 격퇴시킨 뒤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렸다. 청풍검 선우철이 별안간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아무런 의미 없는 싸움을 잠시 멈추시고 우선 앞의 대사를 해결한 뒤 이 은원 관계를 결말지어도 늦지 않을 것이오.” 홍부용이 앙칼지게 물었다. “선우철, 얘기해 보세요. 무엇이 큰일인지?” 그녀의 물음에 선우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홍 낭자와 비형, 당신들은 모두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의 무공이 고절(高絶)하기 이를 데 없으며, 현기현청과 양기혼원신단은 이미 탈취당한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일단 그 사람이 강호 무림에 출입하면 우리들은 즉각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게 될 것이오. 내 추측으로 그 사람은 분명 어떤 무공을 연마하고 있을 것이니, 우리는 바로 이 틈을 타 그를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야 할 것이오.” 비류신은 그 말을 들으며 시종 마음속으로 그의 악랄하고 잔인한 의견에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보는 모두 인연이 있는 자가 얻는 법, 기왕 보물을 남에게 탈취 당했다면 자기들은 마땅히 남의 삶을 방해해서 안 될 것인데 어찌 남의 방심을 틈타… …’ 청풍명사 청룡백호도 이 돌변에 대해 매우 놀라고 의심쩍게 여겼다. 그가 제아무리 엉큼하고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보물을 얻은 자가 누구인지 추측해낼 도리는 없었다. 그는 본래 침착하고 계략이 무궁무진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껄껄 웃어 제쳤다. “여러 친구 분들, 선우 노제의 말이 옳소. 우리들은 본래 모두 현기현청 보물 때문에 온 것인데, 이제 남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니 그 사람의 높은 무공과 악랄한 수단에 의해 후일 어느 누구의 머리 위로 위험이 떨어질지 아무도 보증할 수 없소. 지금 상황으로는 우리들이 힘을 모아 무덤 안의 사람을 쳐 죽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소.” 월광검 소대풍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청룡의 말이 지당하오. 여러분께서는 합세를 하려는지?” 흑도사괴 중 살독수 강파문이 돌연 낄낄대며 괴이하게 웃었다. “합세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아마 당신네 지령보 사람들뿐일 게요. 당신에게 솔직히 얘기하겠는데 만일 힘을 모아 이 무덤을 쳐부수지 않으면 당신들의 몫은 돌아가지 않을 것 이오.” 월광검 소대풍이 서슴지 않고 웃으며 말을 받았다. “원, 별말씀을! 지령보와 도장맹의 은원 관계는 나의 동생 소대호에게 관련된 일이지 나와 결코 상관없소. 지금 선우 소장주께서 합세를 원하신다니 그것은 역시 저희들이 원하던 바이오.” 말을 마치자 월광검 소대풍 이하 지령보 사람들은 이미 왼쪽에서 서서히 대전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선우철, 흑도사괴, 청풍명사 등 도장맹 사람들은 오른쪽에서 대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금환두발 진동철 등 사대도 제자 및 별로 관련이 없는 강호 인물들은 중간에서 대전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 순식간에 전장의 군호들은 일제히 기세를 가다듬고 발걸음을 옮겨 곧장 대전의 고묘 (古墓)를 향해 바싹 다가갔다. 그러자 국세는 긴장에 싸이기 시작했다. 단지 비류신과 홍부용만이 제자리에 선 채 꿈쩍하지 않았다. 이내 여러 사람들은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그러나 고묘와 삼장의 거리에 이르자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마음 깊이 고묘 안 괴인의 무공에 놀라고 두려워한 나머지 감히 목숨을 걸고 먼저 덤벼들 수 없었다. 선우철은 고묘 안을 향해 외쳤다. “무덤 안에 있는 사람은 정체를 밝히시오. 그리고 빨리 나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묘지를 아주 파헤쳐 버릴 것이오.” 그러나 청석 고묘 안은 여전히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선우철은 오른손을 번쩍 쳐들어 멀리서 묘비를 향해 일장을 쳐갔다. 강한 바람이 허공에서 맴돌아 우레 같은 휘파람소리와 함께 묘비를 향해 몰아쳐 갔다. 하지만 강풍이 묘비를 격중할 무렵 선우철은 갑자기 몸을 날려 뒤로 물러섰다. 이 전광석화와 같은 순간에 선우철의 뒤에 있던 두 명의 흑의경장 사나이가 두 마디 비명과 함께 각각 땅에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 대전 밖에 둘러 서있던 강호 무림의 고수들은 이런 괴이하고 놀라운 현상을 보자 떠들썩하게 수군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선우철은 고개를 돌려 두 구의 시체를 대략 훑어보다가 안색이 돌변했다. “큰일 날 뻔했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돌이켜 보니 그의 장력이 묘비를 격중할 찰나 돌연 두 줄기 예리한 강풍이 곧장 자신의 장력을 뚫고 습격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의 두 부하가 그의 죽음을 대신한 셈이 되었다. 선우철은 무덤 안 사람의 기고(奇高)한 무공에 대해 그지없이 놀라기는 하였으나 , 또한 지극히 분노하여 재빨리 몸을 날리며 다시 묘비를 향해 일장을 쳐냈다. 이번에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흑도사괴, 금환두발, 소대풍, 살음귀 마곡인 등 십여 명의 고수들이 동시에 각각 벽공장력을 쳐냈기에 커다란 묘비를 향해 무서운 장풍이 뻗쳐 갔다. 그들이 동시 습격을 가했기에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거대한 파도 같은 장풍이 휘익 하며 몰아쳐 갔다. 능히 산악을 진동시킬 수 있는 장력은 마치 노도가 해안을 쳐서 산더미 같은 물결로 하늘을 무너뜨리듯 묘비를 격중시켰다. 순간 펑! 하는 폭음이 하늘에 진동했다. 묘비는 산산조각이 났고 돌조각은 사방으로 날렸다. 이내 그 음산한 무덤 안으로부터 처량하기 그지없는 마치 과부의 비통한 울음소리 같은, 무 협(巫峽)의 원숭이 울음소리 같은, 차마 귀로 들을 수 없는 괴소(怪笑)가 울려 나왔다. 아니 그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나 애달픈 울부짖음 같았다. 이 외마디 괴상한 외침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나게 했고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울부짖는 소리가 유유히 끊어지자 주위에는 다시 쥐죽은 듯한 고요를 회복했다. 묘비는 장력에 의해 깨어졌고 무덤 안은 온통 음산하고 어두컴컴했다. 청천백일이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묘지 안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별안간 아우성을 지르며 여러 강호 무림 고수들은 앞뒤를 다투어 곧장 깨진 묘비 구멍으로 뛰어 갔다.그 순간 매섭고 처참한 일진의 비명 소리가 청천하늘에 울려 퍼졌다. 앞장섰던 십여 명의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하나하나 쓰러져갔다. 이런 기이한 변화는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그 찰나, 공기는 이미 굳어져 버렸고 침묵과 긴장은 마치 하나의 무형 그물처럼 사방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 심한 경의에 얼굴이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청풍검 선우철은 여전히 태산같이 침착하였다. 비록 마음속으로 무덤 안의 괴이한 현상과 정심한 내공에 약간 놀라기도 했으나 하루하루 쌓은 경험과 담력에 의해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평상시와 같이 침착했다. 월광검 소대풍이 무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안에 있는 분은 어떤 고인이신지… 왜 나타나지 않고 어두운 곳에 숨어 사람을 상하게 하시오? 만약 그래도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들도 더 이상 겸손하지 않겠소.” 그러나 여전히 무덤 안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잠시 후 여러 사람들은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일제히 부르짖으며 몸을 날렸다. 수십 줄기 인영이 또 무덤 안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채 장풍을 펼쳐내기도 전에 분묘 안에서 뼈를 에이는 듯한 차가운 음풍이 불어 나왔다. 처참한 비명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리기 시작했다. 이십여 명의 사나이는 음풍이 스치자마자 모두 땅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대전 밖에서 꿋꿋하게 서 있던 비류신과 홍부용도 이때는 몹시 당황하고 놀랐다. 그 사람의 무공은 정말 금시초문의 놀라운 경지에 달해 있을 것이다. 그들 두 사람은 잔뜩 호기심이 일어 돌계단으로 뛰어올라가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다. 이미 괴인의 기이한 장풍 아래 목숨을 잃은 강호 무림의 고수들은 이미 오십여 명에 달했다. 그래서 세 방면의 인원 중 거의 반가량은 죽은 셈이었다. 돌연 분묘 안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도 인정미가 없고 음산하기가 마치 지옥에서 불어오는 음풍과 같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현기현청 보물과 양기혼원신단은 이미 이 년 전에 내가 얻었는데 너희들이 만약 더 이상 무덤을 파괴하려 한다면 한 명도 살아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무덤 안 괴인이 여자일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오만한 말투는 흑도 거두들로 하여금 대노하게 했다. 청풍검 선우철은 차갑게 쏘아 붙였다. “너는 이미 많은 사람을 살상했으니 피의 빚을 결코 쉽사리 끝맺을 수 없을 것이다. 흥! 우리는 너를 산 채로 무덤 안에다 매장시켜 버릴 것이다.” 그러나 무덤 속 괴녀가 아무 말하지 않자 주위는 다시 침묵으로 되돌아갔다. 선우철이 계속해서 쏘아 붙였다. “너는 혹시 사람 앞에 나설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나타나지 않는 것이냐? 우린 네가 혹시 삼두육비(三頭六臂)가 달린 인물인가 아닌가를 보아야겠다. 누구보다도 제일 음흉한 흑도괴마 봉화염은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선우 노제, 당신의 추측이 바로 맞았소. 이 여자는 어쩌면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으므로 감히 나오지 못하는지 모르오.” 여러 강호 무림 고수들은 그 말을 듣자 한 차례 껄껄 웃어 제쳤다. 금환두발 진동철은 꽹과리를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흑도괴마, 당신의 말은 정말 지독하오. 아마 그녀가 나오게 되면 먼저 당신을 찾게 될 것이오.” 봉화염이 겸연쩍은 낮을 지었다. “만약 진형의 말대로라면 나는 오히려 별 다른 맛이 있을 것 같군요.풍취를 즐기고 이렇듯 반귀반인(半鬼半人)의 여자와 놀게 되었기에 말이오.” 그녀가 무덤 안에 숨어 있어 지리적인 이점이 있기 때문에 만일 지독하고 각박한 말로 그녀를 격노시키지 않는다면 절대로 일을 성공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홍부용은 여자였기 때문에 이 몇 사람의 경박한 말을 듣자 부끄러움으로 양 뺨이 온통 붉어졌다. 비류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선우철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선우형, 이 강호 고수들의 말이 어찌 이렇듯 경박합니까? 설마 자신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테지요? 만약 더 이상 더러운 말을 꺼내면 나는 정말 그들에게 교훈을 주어야겠소.” 선우철은 속으로 웃으며 말을 받았다. “비형, 그들이 경박한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요. 그들은 단지 상대방을 이끌어내려고 꾀했을 뿐이오.” 무덤 안의 괴여인은 수양이 극히 깊은지, 그녀는 봉화염 등이 한바탕 욕지거리를 해도 여전히 대꾸도 없이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런 만큼 사람들은 감히 모험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금환두발 진동철이 비류신을 노려보았다. “이 녀석은 귀찮은 존재구나. 왜 이리 참견하는 일이 많으냐?” 흑도괴마 봉화염은 음산하게 웃었다. “진형, 우리 그를 처치해 버립시다.” 비류신이 참고 있을 수만 없다는 듯 외쳤다. “나는 참견하기 좋아하는데 당신들이 대체 웬 관섭이오?” 이렇게 말하는 도중 그는 괴이하게 몸을 날리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좌우로 펼쳤다. 그러자 팍팍 하는 소리와 동시에 두 마디의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환두발 진동철은 이미 두 번 따귀를 맞았다.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비류신에게 따귀를 두 번이나 맞았으니 평생의 커다란 치욕을 당한 셈이었다. 그는 매서운 고함과 함께 오른손으로 역벽오옥(力劈五獄) 한 수로 맹렬하게 비류신의 천령개를 향해 내리쳤다. 비류신은 냉소를 치며 오른팔을 재빨리 젖혀 금색박룡(金索博龍) 일 초로 진동철의 오른팔을 낚아채 약간 앞으로 끌어당기자 금환두발의 몸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순간 비류신의 장심(掌心)에 모인 힘이 바깥으로 내뿜어져 밖을 향해 튕기는 듯 울려나갔다. 진동철의 몸뚱이가 그 탄력을 받자 진동으로 허공으로 튕겨져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그의 무공이 정순한 덕에, 그는 단전의 진기를 들이마신 뒤 허공에서 몸을 젖혀 가볍게 땅 위에 내려섰다. 사람이 이 장이나 멀리 떨어졌지만 부상은 조금도 입지 않았다. 비류신이 일장으로 진동철을 물리친 뒤 왼손을 비스듬히 쳐내자 한 줄기 매서운 강풍이 질풍같이 흑도괴마를 향해 몰아쳐 갔다. 여러 사람들은 비류신의 이와 같은 기이한 수법을 보자 경악을 금치 못 했다.또한 비류신의 그렇듯 날뛰는 동작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놀라게 했고 무서운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홍부용은 그가 입을 열어 여러 사람들 모두에게 욕하는 것을 본 뒤부터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그가 다시 손을 써 두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보자 은근히 걱정되기까지 했다. 까딱 잘못해서 비류신을 깊이 미워하는 장내의 여러 고수들이 힘을 모아 그를 공격한다면 그가 아무리 무공이 높다 해도 여러 적을 당해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금환두발 진동철은 다시 달려들어 오른손 주먹으로 직도황룡(直搗黃龍) 일 초로 비류신의 가슴팍을 향 해 곧장 쳐갔다. 이 일 초에는 진동철의 솜씨가 모두 담겨있는 강력한 것이었다. 주먹의 기세는 잠력이 들끓으면서 강경하게 허공을 가르며 바람소리를 일으켰다. 비류신은 몇 번씩이나 그를 물리쳤으므로 자신도 모르게 적을 얕보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쳐냈던 왼손을 거두어 들여 곧장 쳐오던 권풍(券風)을 맞받아쳤다. 비류신은 두세 번에 걸쳐 손쉽게 승리 하였으므로 속으로 이제 맞부딪친 일격이 반드시 그를 격파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서로의 내력이 부딪치려는 순간 쌍방의 내력이 크게 다른 것을 알았다. 비류신은 즉시 심상치 않다는 판단을 하고 다시 운기를 운행해서 응하려 했지만 이미 한 발 늦어 있었다. 진동철의 검풍에 맞은 그는 피가 거꾸로 용솟음치는 것 같아 뒤로 네댓 걸음 물러선 뒤에야 겨우 몸을 가누었다. 그러나 전초도주 금환두발 진동철은 비류신과 일 초를 겨룬 뒤 상대방이 아무렇게나 쳐낸 일 장 속에서 위세가 강하고 재빠르기가 이를 데 없다는 것을 느꼈다. 비류신은 진동으로 몇 발짝 물러섰지만 상대 역시 자동적으로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비류신을 응시한 채 얼굴에 의혹의 빛을 가득 드러냈다. 그는 한 청년이 조금의 경전(經傳)도 없이 이렇게 심후한 공격을 지닐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 일장에 자신의 위세를 나타내기 위해서 잔뜩 공력을 담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십 년 동안 수련으로 쌓아올린 장력이 놀랍게도 아무렇게나 뻗친 상대방의 일격에 힘을 잃었다. 상대방이 몇 걸음 물러서기는 했으나 그의 풍부한 경험과 경력에 비추어 볼 때 비류신은 결코 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단지 대수롭지 않게 상대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비류신은 얼굴에 노기를 띠며 다가서더니 냉랭하게 고함쳤다. “다시 일 초를 시험해 보아야겠소.” 그는 곧장 진동철을 향해 추산전해(推山塡海) 일 초를 맹렬하게 펼쳤다. 금환두발 진동철은 외마디 노한 부르짖음과 함께 오른팔을 젖혀 비류신의 장력을 맞받아갔다. 한 쪽에 서 있던 흑도괴마 봉화염이 나직하게 말했다. “진형, 두려워하지 마시오. 제가 돕겠습니다.” 흑도괴마는 비스듬히 몸을 돌려 영풍불류(迎風拂榴) 일 초로 질풍같이 비류신의 등심을 향해 쳐갔다. 그의 이 일 초는 뒤에서 펼친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고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흑도사괴는 어젯밤 낡은 정자 곁에서 비류신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기에 그가 절학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더 이상 시간을 끌어 그의 공력이 정진하게 된다면 녹림도의 일대 화근이 될 것을 그는 두려워했다. 그들은 악념(惡念)이 계속 머리에 서 떠나지 않았고 살기가 일어났다 그들은 본래 낡은 정자 안에서 다툴 때 선우철이 손을 써 그를 제압하리라고 생각했지 오히려 자기들이 그를 놓아 주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때 그들은 비류신과 진동철이 서로 몇 초를 겨루자 그의 공력이 놀랍게도 많이 진보한 것 같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기가 일었다. 그 사이 흑도사괴의 적면귀, 독살풍장, 살독수의 신광이 부리부리하고 흉측한 여섯 개의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비류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흑도괴마가 공격하는 것을 보자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비류신은 진동철이 자기의 장력을 받아 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쌍방의 장력이 마주치자 펑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비류신은 기세를 빌어 재빠르게 오 척 이상 날아가 뒤에서 공격해 오는 흑도괴마의 일장을 교묘하게 피했다. 이 일초의 공격은 지극히 오묘해서 보고 있던 선우철은 안색이 약간 변하기까지 했다. ‘이 사람의 나이는 나와 비슷한데 어떻게 해서 무공이 이리 심후할까? 정말 어느 선배께서 가르쳐 낸 사람인지 모르겠구나… …’ 흑도괴마 봉화염이 음산하게 외쳤다. “진형, 이 녀석은 사술(邪術)을 쓰는 것 같으니 이 세상에 남겨 놓으면 후환이 될 테니까 우리 힘을 모아… …” 그가 소리치는 가운데 진동철은 이미 손을 들더니 일 권(一券)을 허공으로 쳐갔다. 이것은 바로 금환두발이 이름을 날린 백보천양권(百步穿楊券)이었다. 순간 한 줄기 권풍이 회오리바람처럼 재빠르게 곧장 몰아쳐 갔다. 비류신은 권풍이 강하고 날카로운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움찔하였다. 그는 옆으로 두어 걸음을 옮기고 일장으로 반격했다. 최근에 그의 무공은 크게 진보해 있었다. 마치 하루에 천리를 내딛는 듯해서 이미 쳐내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또한 그의 내력이 웅혼하여 아무렇게나 내뻗는 일장에도 굉장한 위세가 있었다. 진동철은 비류신의 일장을 받아낸 뒤 벽공장력이 강대하지 않음을 느껴 오른손으로 다시 백보천양권을 멀리서 쳐냈다. 비류신은 옷자락을 날리며 다시 피했다. 그리고 두 손을 치켜 올려 진동철과 흑도괴마를 향해 각각 쳐갔다. 홍부용은 비류신의 무공이 궤이(詭異)하여 비록 두 사람이 힘을 모아 공격한다 해도 결코 그를 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마음 놓고 한쪽으로 피해 다른 삼괴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다. 흑도괴마는 진동철이 비류신의 장력을 막 받아내려는 찰나 즉시 팔에 힘을 모아 한쪽에서 쳐나갔다. 비류신은 이미 한쪽으로 몸을 피했지만 일장이 허공을 향해 쳐오는 것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거꾸러져 갔다. 금환두발 진동철은 비류신의 장력을 막아낸 뒤 다시 백보천양권 일 초를 뻗쳤다. 비류신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내력을 몰래 일으킨 뒤 장풍을 휘둘러 권력(券力)을 막아냈다. 그 일 장의 힘은 매우 강맹하였다. 진동철은 팔목이 심하게 저려와 대갈일성을 지른 뒤 또 다시 백보천양권을 쳐냈다. 금환두발 진동철은 교만과 광기가 이미 습관이 돼 자신의 장력이 웅혼함을 크게 자부했다. 그는 자신이 비류신의 계략에 빠져 들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의 권풍을 비류신이 받아 내리라 여겨 그 일격에 십성의 공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비류신은 권풍을 막아내려 하지 않고 돌연 몸을 움직여 한쪽으로 피해버렸다. 이렇게 되니 그 한 줄기의 매서운 권풍은 질풍처럼 흑도괴마를 향해 비스듬히 뻗쳐갔다. 이 백보천양권은 내가의 진력이 한 줄기에 모아진 것이므로 다른 권세(權勢)와 결코 비교할 수가 없으며, 일단 쳐내고 나면 다시 거두어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비류신은 몸을 피할 무렵 왼손 다섯 손가락을 쫙 펴서 낚아채면서 끌어당겨 진동철의 권풍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달아 흑도괴마를 향해 질풍처럼 부딪쳐갔다. 흑도괴마 봉화염은 안색이 돌변하여 다급히 몸을 한쪽으로 날렸다. 그러나 권풍에 닿아 휘청거리다가 몇 자 밖으로 떨어져 갔다. 비류신은 이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흑도괴마를 깊이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는 그림자처럼 달려들어 손바닥과 손가락을 병행해 사용하면서 연속으로 공격해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오장(五掌), 육지(六指), 삼퇴(三腿)를 공격했다. 이십사 초는 매 초마다 악랄하고 번개같이 민첩할 뿐 아니라 또한 내력을 담고 있어 공세가 매섭고 날카롭기 비할 데 없었다. 흑도괴마 봉화염은 연속해서 뒤로 팔구 보를 물러선 뒤 겨우 그 십사 초를 피해 냈다. 그러나 그는 이때 그 공포의 무덤 입구와 단지 일 장정도 밖에 되지 않는 곳에까지 물러서 있었다. 극히 날카로운 장력이 산악과 같이 압박해오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 발을 약간 굽혀서 돌연 몸을 돌려 묘비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 사실 비류신은 바로 그를 묘지 안에 처넣으려고 마음먹었으므로 그가 묘비 입구에 다다르는 것을 보자 잘 됐다고 여겼다. 순간 재빠르게 왼손을 휘두르자 한 줄기의 장력이 흑도괴마를 향해 맹렬히 쳐갔다. 바로 이때였다. 무덤 안에서 별안간 소름 끼치는 그 처량하고 처참하며 귀를 찌르는 듯한 괴상한 웃음소리가 울려나왔다. 이번 웃음소리는 유난히 길어 마치 귀신의 울음이나 늑대의 울부짖음 같아 사람의 심혼(心魂)을 빼앗아갈 듯했다. 흑도괴마 봉화염은 갑자기 웃음소리를 듣자 혼비백산해서 두 발로 힘껏 박차며 비류신의 장력을 향해 곧장 마주쳐갔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비류신의 장력은 벌써 봉화염을 압박해 왔다. 그는 질식할 정도로 뼈를 깎는 듯한 경기가 그의 몸을 진동시켰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음산한 무덤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말았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