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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장 당신만이 지존(至尊)의 자격이 있습니다 소문(所聞)이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파문(波紋)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비천야유신의 장보도(藏寶圖)가 나타났다! 이 소문은 잠잠하던 강호에 커다란 반향(反響)을 불러 일으켰다. 그 누가 비천야유신의 장보도를 탐내지 않으랴! 군웅들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누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 마무쌍(魔無雙)이란 신비고수이다. 그는 마중지존으로 자처하는 가공할 고수이며, 칠절방의 네 방주를 휘파람 소리 하나로 발바닥이 닳도록 내빼게 만들고, 원 주인인 철면신판으로 하여금 스스로 장보도를 바치게 만든 신비의 인물이다…… 마무쌍에 대한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를 이어 꼬리를 물고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유수(有數)한 고수들이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단 일검에 반항조차 제대로 못하고 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있었다. 불과 열흘 사이에 죽음을 당한 자 칠십 일 명, 그 중에는 구파일방의 고수가 이십 이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상에 드러난 숫자일 뿐, 실제로는 더 많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고 살인사건은 계속 이 시각에도 꼬리를 물고 있었다. 공포(恐怖)와 의혹(疑惑), 그리고 터질 듯한 긴장감이 천하를 휩쓸기 시작했다. 소문은 파문을 일으키고 파문은 회오리를 몰며 풍운을 일게 했다. 풍운(風雲)…… * * * 관도(官道), 마차 두 대가 어깨를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넓이. 가을빛이 아스라한 관도에 추양(秋陽)을 받으며 백영이 걷고 있었다. 마치 산책을 하듯 천천히 걷고 있는 백영, 그러나 그를 주시해 보면 믿을 수 없는 일을 발견케 된다. 한 걸음, 그냥 옮기고 있는 단 한 걸음의 보폭(步幅)이 무려 십 장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축지성촌(縮地成寸)! 전설의 최상승 경공이 자연스레 이 백영에게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영은 전면에 한 떼의 상인들이 나타남을 발견하고 속도를 줄여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드러난 얼굴은 마무쌍의 그 절륜수준(絶倫秀俊)한 용모. 그의 입가에는 예의 담담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지난 열흘 간 신창무적에게서 알아낸 천령제궁의 첩자 팔십 구 명과 십개분단을 파괴했다. 천량마효에게 전수한 지옥음령참혼도의 제일식 음혼참이 위력을 발한 셈이지……' 마무쌍의 생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연속 살인사건이 모두 그의 걸작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했다. 단 하루만에 구류방의 총단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 마무쌍은 그들에게 무공을 전수하여 자체 방어능력을 갖추게 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우선해 천령제궁과 강호 동태를 주시하도록 명령하였다. 철면신판에게도 무공을 전수하여 구류방을 도우도록 했다. 그리고 천랑마효에게 음혼참의 일식을 전수하여 그가 알아낸 천령제궁의 첩자들을 귀신도 모르게 처치하도록 지시했다. 직업이 살인인 천랑마효에게 날개가 돋힌 격인데 실수할 리가 없었다. 천랑단은 목숨 걸고 충성하는 그의 수족이었다. '분단은 내가 모두 파괴했다. 문승은 더 이상 배후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나를 상대키 위해 나타나야 되겠지!' 그의 입가에는 자신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문승이 나타나면 천령제궁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천령대제가 아홉 분을 함정에 빠뜨린 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마무쌍의 계산은 이토록 원대(遠大)하고도 치밀했다. 그때, 그의 앞에 한 채의 상여(喪輿)가 나타났다. 마무쌍의 눈살이 미미하게 찌푸러졌다. 상여의 모습은 실로 괴이하였던 것이다. 전체가 모조리 검은색 일색이었다. 상여의 몸체도, 만장(輓章)도 모두가 검은색이었고, 더우기 괴기(怪奇)한 것은 상여군도 거기에 따르는 조객(弔客)들의 옷과 두건조차도 모조리 검은색인 것이다. 실로 들어보지도 못한 상여행렬이 아닐 수 없었다. 사방이 순식간에 괴이한 귀기(鬼氣)로 가득찼다. '사령여(邪靈與)……' 마무쌍이 내심 중얼거리는 순간에 괴이한 상여는 그의 앞 이 장여의 거리에 멎었다. 그러나 그 좌우에 따르던 흑의조객(黑衣祖客)들은 검은 물결이 밀려오듯 계속 다가왔다. 그 수효는 대충 잡아도 백 명은 넘는 것 같았다. 마무쌍은 순식간에 검은빛 속에 외로이 흰빛을 띤 존재가 되어 버렸다. 천지가 빛을 잃은 듯 하고, 괴이한 기운이 질식할 둣 사방에 가득찼다. 하지만 마무쌍의 표정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여전히 입가에는 담담한 웃음이 서려 있는데 그 웃음 때문인지 주위의 귀기도 그의 주위에는 침입하지 못한 듯 보였다. 어드덧 흑의조객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아이고……" "으흐흐흐흑……" "에이고오오……" 동시에, 흑의조객들의 입에서 구슬픈 곡성(哭聲)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위이이--- 잉! 그 순간, 마무쌍의 주변에 귀기가 넘실거리며 괴이한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강해지고 미친 듯한 귀영(鬼影)이 춤을 추며 마무쌍에게 덮쳐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무쌍의 주위 일 장 이상을 넘어오지 못했다. 마무쌍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령교의 귀곡상문대진(鬼哭喪門大陣)은 듣던대도 아름답군. 다만 제대로 먹질 못했는지 곡성에 힘이 없는 게 안타깝군! 시범을 보여주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마무쌍의 입에서 천둥같은 곡성(哭聲)이 터져나왔다. "아이고오---!"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마무쌍이 발한 단 일성의 곡성은 귀곡상문대진의 곡성의 연결 매듭을 끊어버리며 벼락을 때리듯 터진 것이다. 진세가 산산이 깨어지면서 곡성이 뚝 그치고 말았다. 흑의 조객들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알았느냐? 울 때는 그렇게 우는 거다." 마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어이가 없는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주위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으흐흐흐…… 휘파람소리 하나로 금절의 금을 끊고 피를 토하게 했다기에 믿지 않았더니 소리지르는 데는 과연이군……!" 이윽고, 음침한 음성이 상여 안에서 들려왔다. "왜? 또 한 번 듣고 싶은가?" 마무쌍이 낭랑히 웃으며 말했다. 백여 명이 넘는 군중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이토록 태연자약한 마무쌍의 태도가 의외였는지 상여 안에서는 잠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귀하가 마무쌍, 마대협이오?" 이어진 음침한 목소리는 상당히 부드러워져 있었다. "대협은 아니지만 마무쌍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마무쌍의 대꾸는 여전히 태연했다. "귀하께서 장보도 한 장을 얻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소." "들은 게 아니라 여기 있지."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마무쌍은 서슴치 않고서 품 속에서 장보도를 꺼내들었다. 그의 행동은 상궤(常軌)를 한참 벗어난지라, 말문이 막혔는지 상여 안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맞소…… 바로 그 장보도요. 대단히 미안하지만 그 장보도를 하루만 빌릴 수 있을까 하여 이렇게……" 상여 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빌릴 뿐 아니라 줄 용의도 있지!" 마무쌍이 태연히 중얼거리며 장보도를 탁! 퉁겼다. 장보도가 흰 꼬리를 끌며 상여 안으로 날아갔다. 어찌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랴. 상여 안에서는 또 말문이 막힌 듯했다. "고맙소. 한데 이곳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이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에 음침한, 그러나 심중의 격동을 억누르는 듯한 음성이 상여 안에서 들려왔다. "북망산 고루곡( ?谷)이오." "북망산 고루곡?" 마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곳이 북망산에서는 가장 명당(明堂)이오." "그…… 그게 무슨 뜻이냐?" 상여 안의 어조가 대번에 달라졌다. 마무쌍은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상여가 가고 있으니 명당을 찾는 외에 또 무슨 장보도가 필요있소? 그곳이 가장 좋은 묘터라는 말이지." "가…… 가증한 놈! 감히 본 교주를 속이다니!" 음산한 음성이 상여 속에서 치를 떨었다. 상여가 진동하고 만장 등, 상여에 매달린 것들이 미친 듯 펄럭였다. 안에 있는 자의 공력은 대단한 것이다. 얼핏 보자면 마치 상여가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무쌍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속이다니? 그럼, 당신이 원한 게 묘터가 아니란 말이오? 난 또 상여가 가기에 그런 줄 알았지…… 그렇다면 그렇다고 진작 말할 것이지! 그래, 무슨 장보도를 원하는거요?" 마무쌍의 말은 조리정연하여 틀린 곳이 없었다. 놀림 당한 것은 확실했으나 처음에 어떤 장보도라 말을 하지 않았기에 트집잡을 데가 없는 것이다. 기가 막히는지 상여 안에서는 또 아무 말이 없었다. "크으흐흐…… 소진장의(蘇秦張儀)가 울고 갈 노릇이군! 좋다. 본 교주가 다시 말하지! 비천야유신의 장보도다!" 분노를 참는 듯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마무쌍이 소리내어 웃었다. "아! 그거…… 진작 그렇게 말했으면 되었을 것을……" 하나 다음 순간,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령신군! 너에게 과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사령신군이라니? 그렇다면 이 상여 안의 인물이 사파 사대세력의 하나인 사령교의 교주란 말인가. 과연 그러했다. 이 상여는 사령교주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사령여(邪靈與)였으며, 흑의조객들은 사령교의 정예라 할 수 있는 백 팔 사령조객(邪靈弔客)이었다. 그 힘은 사령교 전체의 반에 해당하는 가공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사령교주는 마무쌍이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음이 의외인 듯 했으나 이내 분노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아핫핫하하…… 건방진 꼬마, 본 교주에게 자격이 없으면 과연 어느 누구에게 자격이 있단 말이냐?" 스스--- 스--- 백 팔 사령조객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이한 진세가 형성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마무쌍은 시종일관 태연했다. "글쎄, 문승정도면 이야기할 상대는 되겠지…… 하지만 최소한 너 정도에게 자격이 없는건 확실하다!" "미친 놈! 감히 마중지존의 위(位)를 떠벌이고 다닌다고 하더니 정녕 미친 놈이로구나! 크흐흐…… 오늘 본 교주가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주마!" 사령신군의 음성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사령귀곡광소대진(邪靈鬼哭狂笑大陣)을 펼쳐라!" 우우우…… 사령조객들이 괴이하게 교차하며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령여가 천천히 그 원 밖으로 물러났다. 마무쌍은 그것을 보고 냉랭히 입을 열었다. "사령신군! 나는 살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발동하면 반드시 피를 본다. 이들을 데리고 물러가라." 그의 음성은 담담했으나 듣는 사람에게는 귀에 얼음을 쑤셔넣는 듯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크흐흐…… 마무쌍, 그 말은 네가 사령귀곡광소대진을 격파한 후에 해도 늦지않다!" "늦다! 그때는 이 자리에 주검 밖에는 없을테니까!" "크크크…… 끝까지 광망하군! 만약 너에게 정녕 그런 능력이 있다면 사령교가 맨 먼저 너를 마중지존으로 받들겠다!" 사령신군은 상여 안에서 자신만만한 듯 외쳤다. 백 팔 사령조객이 펼치는 사진(邪陣)은 소림의 백팔나한대진 보다 악독괴이함에 있어 더한 것이 아니던가? "사령귀곡광소대진을 발동하라!" 음산한 외침이 질타하듯이 장중을 울렸다. "으흐흐흐흐…… 흑흑……" "우하하하---" "아이고--- 아이고---" "크아핫핫---" 귀곡성(鬼哭聲)과 광소(狂笑)가 천지를 진동하기 시작했다. 백 팔 사령조객들의 신형이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오직 검은 빛만이 무섭게 마무쌍의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그 범위는 무섭게 커져 태양빛마저 차단할 정도였으며 귀곡광소는 금방이라도 마무쌍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았다. 위이이--- 웅---! 사이(邪異)한 귀기가 무섭게 일어났다. 귀곡광소는 점점 커졌고 그들이 도는 속도는 무섭도록 빨라졌다. 그들은 마무쌍에게 어이없는 쓴 맛을 보았기에 발동하자마자 최고의 위력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위세는 실로 가공할 것이었다. 마무쌍조차도 기혈이 흔들림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어리석은 자들! 마무쌍이 왜 마무쌍인지 본 맛을 보여주겠다!" 마무쌍은 두 손을 단전에 가져다댔다. 그것과 함께 괴이한 마기(魔氣)가 그의 전신에서 뻗쳐나오기 시작했다. 마무쌍의 양손이 단전에서 가슴을 거쳐 천천히 쳐들러졌다. 휘이이--- 잉--- 소름이 끼치는 마기가 파도처럼 일어났다. 그의 양손이 완전히 하늘을 향해 쳐들려졌을 때, 그의 몸에서 뻗쳐나오는 마기는 사령귀곡광소대진에서 뻗어나오는 사기(邪氣) 보다 더욱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마의 덩어리! 오직 그 말만이 그것을 형용할 수 있었다. 마무쌍의 두 눈에서 무서운 마광(魔光)이 쏟아졌다. 그것은 저주(詛呪)의 서곡(序曲)이었다. "으으---으와아아아--핫핫하하하하……" 마소(魔笑)! 소뢰음사(少雷音寺) 제이의 마공인 죽음의 마소, 아수라륙혼잔백멸겁소(阿修羅戮魂殘魄滅劫笑)가 펄쳐진 것이다. "크와아하하하……!" 고막을 때리고 심금을 떨어울리는 웃음. 마무쌍, 그는 이 순간에는 마무쌍이 아니었다. 아수라(阿修羅)! 죽음의 아수라였다. 콰우우우---! 무서운 강풍( 風)이 일어나고, 곡소(哭笑) 이성(二聲)이 태풍에 휩쓸린 산들바람인 양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귀곡과 광소를 터뜨리던 사령조객들이 피를 뿜어내며 나뒹굴고 아수라륙혼잔백멸겁소에 의해 형성된 강풍( 風)에 갈가리 찢겨 나갔다. 이윽고 마소가 멎고 강풍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겁의 시간인 듯 오랜 것 같았으나 기실 일각여에 지나지 않았다. 폐허, 초토(焦土)…… 마무쌍의 주위를 그말이외에 또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는가? '지독하구나!' 눈을 뜬 마무쌍조차 속으로 신음했다. 백 팔 명의 사령조객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던 것이다. 살아남기는 커녕 시체조차 제대로 남긴 자가 없었다. 사령귀곡광소대진의 위력이 예상 밖으로 대단하자 마무쌍은 전력을 다했으며 파생범위는 오십 장이나 되었다. 백 장까지 미치는 위력이 오십 장에 집중되었으니 그 무엇도 배겨날 수가 없었다. 마무쌍의 안색도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아수라륙혼잔백멸겁소의 위력이 그토록 가공할만큼 공력의 소모도 극심한 것이었다. 그의 눈에 덩그러니 땅에 놓여 있는 사령여가 들어왔다. 스스스…… 그 순간에 또 다시 가공할 일이 벌어졌다. 사령여가 가루로 화해 그대로 흩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 안에는 흑의를 걸친 귀기어린 기색의 노인이 앉아있었다. 보기만 해도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기세를 가진 자였으나 지금 그의 온몸에는 경련이 일고 두 눈에서 쏟아지는 벽광(碧光)에는 공포와 경악, 불신이 마구 일렁이고 있었다. "이럴 수…… 가……?" 넋을 잃은 듯 사령신군은 중얼거렸다. "말하지 않았던가? 되돌아가라고. 후회할 때 남는 것은 주검 뿐이라고." 마무쌍의 말에 사령신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본 교주는 믿을 수 없다! 내 스스로 너를 시험하리라!" 분노한 외침과 함께 사령신군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마무쌍에게 덮쳐왔다. 그 기세는 마무쌍이 강호에 나온 이래 처음보는 가공한 것이었다. 마무쌍이 흠칫 하는 순간에 사령신군의 장세는 이미 마무쌍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너는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로구나!" 마무쌍은 침중히 외치며 한손을 벼락같이 긁어내렸다. 천금잔백수 중의 천금탄조(天禽彈爪)였다. 파파팍--- 파--- 앙! 귀청이 터지는 듯한 음향과 함께 매서운 경기가 일어났다. 마무쌍은 손바닥을 타고 괴이한 기운이 올라와 가슴이 찌르르함에 내심 깜짝 놀랐다. 그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한 걸음 물러나 놀란 표정으로 사령신군을 쳐다보았다. 사령신군도 한 걸음 밖에는 물러나 있지 않았다. "사대세력의 주인 중 하나라 다르긴 하군!" 마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흐…… 건방진 놈! 뭐 마중지존? 목을 내놔라!" 내심 겁을 집어 먹었던 사령신군은 평수가 되자 용기백배하여 또 다시 덮쳐들었다. 가공할 장세가 마무쌍을 뒤덮었다. "흥!" 마무쌍이 코웃음치며 벼락같이 일지를 퉁겨내었다. 팍--- 츠츠---! 태허천강지력은 여지없이 사령신군의 장세를 꿰뚫으며 사령신군의 몸에 격중되었다. "으---" 사령신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장세는 조금도 영향없이 그대로 마무쌍의 가슴을 다섯 번이나 후려갈겼다. 꽈꽈꽝---! "으--- 윽!" 마무쌍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무쌍은 아수라육혼잔백멸겁소를 사용했기에 상당한 내공의 손실은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태허천강지는 가공할 위력이 있었다. 그런데도 사령신군은 끄떡없이 마무쌍을 공격한 것이다. 난생 처음 당한 마무쌍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몸은 거의 금강신체라 기혈이 울리기는 했어도 큰 내상을 입지는 않았다. "네가 강시사령마공( 屍死靈魔功)을 수련한 것을 몰랐군……" 마무쌍이 그토록 엄청난 공세에 충격을 당하고도 끄떡 없고 오히려 자신의 손이 은은히 저려오자 사령신군은 내심 크게 놀랐다. '설마 요놈의 자식이 금강불괴란 말인가?' 생각은 찰나, 그는 이를 악물고는 다시 마무쌍을 덮쳐갔다. 고수는 절대로 한 번 잡은 승기는 놓치지 않는다. 설명은 긴 것 같으나 그 모든 것은 극히 찰나적이었다. 마무쌍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는 순간에 사령신군이 모든 힘을 쏟은 공세는 이미 마무쌍을 덮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위기였다. 마무쌍이 내공을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사령신군을 얕보고 전력을 다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게다가 사령신군도 도검을 두려워 않는다는 강시사령마공을 연성해 강철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구-천단섬광(九天斷閃光)!" 번--- 쩍---! 위기의 순간에 번갯불 같은 백광(白光)이 마무쌍에게서부터 섬광처럼 터져나왔다. 그 백광은 분명히 사령신군의 공세 보다 늦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빨랐다. 후발선지(後發先至)! 한 가닥 섬광이 여지없이 사령신군의 장세를 뚫고 그의 가슴을 갈랐다. 파--- 아! "크--- 윽!" "구천만환무(九天萬幻舞)!" 한가닥 신음이 흘러나오는 순간에 마무쌍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다시 뒤집어졌다. 마치 은하수(銀河水)가 거꾸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 변화를 어찌 다 형용할 수 있으랴! 다만 보이는 것은 수천 수만의 검광이 사령신군에게로 쏟아졌다는 것 뿐이었다. "으--- 와--- 아--- 악!" 피가 터지며 사령신군이 훌훌 날아갔다. 마무쌍은 ㅉ지 않았다. 그의 손은 허리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구천마검법을 펼친 구천신검이 이미 허리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으으……!" 그때, 삼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던 사령신군이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전신은 거의 걸레가 되다시피 했으나 살아있었다. 마무쌍의 공력이 온전했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가 강시사령마공을 연성한 신체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끈질긴 목숨이군……" 마무쌍은 담담히 말했다. "크으…… 왜…… 왜 더 손을 써 죽이지 않느냐?" 사령신군이 울부짖듯 외쳤다. 마무쌍이 그를 쳐다보았다. 마무쌍의 눈과, 원한과 공포에 불신까지가 한데 어울린 사령신군의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순간 사령신군의 두눈에 악연(愕然)한 놀람이 튀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무심한 듯, 어쩌면 차가운 얼음인 듯 그렇게 보이던 마무쌍의 눈. 그런데 막상 그 눈을 보게되자, 그는 자신이 갑자기 거대한 창해(滄海)에 홀로 버려진 듯 한없이 왜소하게 쪼그라드는 것 같음을 느꼈던 것이다. 뿐인가. 마치 전신이 그 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가이 없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보면 그러한 느낌일까, 아니면 드넓은 창공(蒼空)을 보면 그럴까. '이…… 이럴 수가! 도저히 마주보고 있을 수가 없다!' 마침내 사령신군은 외면을 하고 말았다. 그때 마무쌍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마종인(魔宗人)…… 나는 마무쌍(魔無雙)이기 때문이다." 이 목소리 하나에 담긴 위력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한마디 한마디가 귓전에다 만근거종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사령신군은 무릎의 힘이 풀어짐을 느꼈다.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다!" 자신의 피로 흉건한 바닥에 그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누가 믿겠는가? 천하 사도 사대세력의 주인의 하나인 사령신군이 스스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낱 홍안소년의 기세를 견디지 못하고서…… "천…… 마…… 지비의 주인이십니까?" 고개를 숙인 채 사령신군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마무쌍은 담담히 웃었다. "천마지비를 푼 자만이 마중지존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모습의 어디에도 장난기는 없었다. 오직 사람 위에서 군림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도(氣度)가 충일(充溢)할 뿐이었다. "그…… 그러했습…… 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천하에서 오직 당신만이 자격이 있습니다! 사령신군! 지…… 존을 뵈옵니다." 사령신군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며 머리를 굽혀 땅에다 대었다. 주르르---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마무쌍의 눈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의 손이 번개같이 허공을 누볐다. "윽!" 머리를 숙인 사령신군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순간에 믿을 수 없게도 사령신군의 전신에서 흐르던 피가 멎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일어나라~" "예?" "돌아가라. 차후 그대를 부르리라!" 마무쌍의 말은 항거불능의 것이었다. 사령신군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명대로 하오리다!" 깊숙이 절을 한 사령신군은 몸을 돌려 사라져 갔다. 중상을 입었으되 그의 신형은 번개같았다. 그러나 그 곳 어디에서 그가 나타날 때의 위세를 찾을 수 있는가? 그 모습이 사라지자 마무쌍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또 어느 분이 기다리고 계시오?" "아미타불……" 기다렸다는 듯이 장중한 불호소리와 경건한 목탁소리가 한데 어울려 일어났다. 뒤를 이어 마무쌍의 앞쪽 숲에서 일단의 승려들이 천천히 나타났다. 그 수효는 십여 명 가량이었는데 기이하게도 앞선 황의승려 외에는 모두가 백색승포를 걸치고 있었고 머리에 흰 띠를 동여매고 있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온건침착하여 마치 행운유수와도 같았다. '소림 백의전(白衣殿)의 호법승(護法僧)이다!' 마무쌍의 눈에 경악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백의전 호법승. 이들은 소림에서 최고의 자질을 지닌 자들로서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평생을 무학에 묻혀 지내는 승려들이었다. 오직 장로회의의 결정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그 배분도 장문인과 동배이거나 높았고, 그들의 모습은 소림사내에서 조차 잘 볼 수 없음은 물론 강호에는 나타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아미타불…… 빈승은 소림의 달마원주(達磨院主)인 고정(古鼎)이오." 앞선 황의노승이 고개를 숙이며 합장했다. '고정이라면 소림장문 다음가는 고수……' 그 순간이었다. "무량수불…… 빈도는 무당 태청관주인 운송자(雲松子)외다." 우렁찬 도호소리가 들리며 십여 명의 도사들이 다시 나타났다. 운송자라면 무당파의 장문인 다음가는 고수이며 이름높은 무당오검(武當五劒)의 일 인이다. '아직도 수십 명의 고수들이 잠복해 있다. 모두 구대문파의 인물인가?' 마무쌍은 담담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서 불원천리 이렇게 나타난 것이 모두 나 때문이오?" "아미타불…… 비천야유신의 장보도는 실로 적지않은 가치가 있오이다." 고정대사가 조용히 말했다. 그 어조는 담담하나 듣는이에게는 큰종을 울리는 듯하여 그의 공력이 절정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요?" 마무쌍이 빙그레 웃었다. '음…… 사람의 마음을 끄는 기이한 힘이 있는 미소로다!' 고정대사는 내심 흠칫 했으나 여전히 조용히 말했다. "당금 무림은 힘의 균형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고 있소이다. 만일 그 장보도가 악인의 손에 들어간다면 천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오. 빈승들이 미력하나 그렇게 되도록 좌시할 수는 없지 않겠소?" 좌시할 수 있는 일이라면 소림사의 호법백의승까지 출동하지 않았을터였다. 마무쌍은 크게 웃었다. "대사께서는 내가 악인이라고 생각하시오?" "……" 고정대사는 침음했다. 어찌 가볍게 말할 성질의 것인가? 자애(慈愛)한 고정대사의 눈과 마무쌍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고정대사의 평정한 눈빛에 놀람이 떠올랐다. '저런 기도가 홍안소년에게 있을 수 있다니…… 천하에 곤륜옥룡을 능가할 인재가 있음은 상상치 못한 일이다! 사령신군이 그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 이유가 있었군……' 고정대사가 침중히 입을 열었다. "빈승은 감히 추측하기 곤란하오. 소시주께서는 그것을 장차 어디에 쓰시려 하시오?" 마무쌍은 정색을 했다. "작정한 바는 없소. 하지만 내 자신의 사욕을 위해 사용치 않을 것임은 말할 수 있소!" 그의 어조는 단호했고 누구라도 믿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었다. 고정대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시주의 말을 믿겠소! 후일 시주의 그 말을 기억해주시기 바라오. 아미타불……" 고정대사는 장중히 불호를 외웠다. 뜻밖에도 고정대사는 그냥 돌아가려는 것이다. 마무쌍은 일이 이토록 쉬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소림이 근년에 이르러 최강성기를 맞고 있다더니 까닭이 있었군!' 마무쌍은 정말 감탄했다. 그때였다. "무량수불, 시주께 빈도가 한 가지 묻고 싶은데, 대답해 주실 수 있겠소?" 무당 운송자가 입을 열었다. 마무쌍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주께서는 정녕 마중지존이 되고자 하시오?" 마무쌍은 흠칫 했으나 담담히 웃었다. "내가 마중지존이 되도록 키워졌음은 사실이오. 하지만 사부께서는 마중지존 보다는 천하를 위하는 천하지존이 되라고 하셨소." "천하지존……?" 일순, 어이가 없는 듯 운송자는 고정대사와 눈길을 마주쳤다. 만약 길에서 마무쌍을 만나 이러한 말을 들었다면 미친 아이라고 웃어 넘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그의 눈으로 천하의 사령신군이 그의 일거수에 일패도지하여 꼬리를 말고 도주하는 것을 본 다음이다. 그것도 그냥 도주한 것이 아니라, 그의 발아래 스스로 무릎을 꿇지 않았던가. "실례이나 영사께서 뉘신지 알 수 있겠소이까?" "성심수명노인이라고 하시오." "성심…… 노신선?" 운송자의 음성이 떨렸다. 눈이 커졌다. "성심수명노인 어른께서 아직도 살아계십니까?" 고정대사가 급히 물었다. "앞으로도 백 년은 더 건재하실 것입니다." 마무쌍이 담담히 말했다. 운송자가 마무쌍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빈도가 보기에 시주의 일신에 지닌 무공은 매우 복잡한 듯 합니다만……" "맞습니다. 내게 무공을 전수한 분은 한두 분이 아니오." 마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분이……" "지금은 그분들의 명호를 입에 올릴 때가 아닌 것 같소!" 마무쌍은 고개를 흔들었다. "실경(失敬)했소이다. 그럼 빈도등은 이만 물러가겠소. 보중(保重)하시기 바라오." 운송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정대사 등도 모두 예를 갖추고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질서정연하고 막힘 없는 그들의 태도는 정녕 명문대파(名門大派)의 그것이었다. "과연 소림 무당 등 구대문파의 위명은 명불허전이오! 천령제궁이 가볍게 발동치 못한 이유를 알겠소." 마무쌍이 낭랑하게 외쳤다. 고정대사와 운송자가 돌아섰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 마무쌍이 전음으로 지난 일을 간추려 말했다. 몇가지 은밀한 것과 함께, 그 말을 들은 고정대사와 운송자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게 사실이오?" 마무쌍이 소매를 흔들었다. 두 가닥 흰빛이 뻗어나 고정대사와 운송자의 소매 속으로 빨려들었다. "어김없소! 확인해 보시오." 고정대사와 운송자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급히 예를 갖추었다. "우리들은 이만 실례하겠소! 다음에 다시 한 번 뵙기 바라오!" 다음 순간, 그들의 모습은 번개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방에 잠복해 있던 고수들도 떠나는 기척이 경미하게 들려왔다. "그렇군…… 내 생각 보다 정파의 세력이 강했었군!" 마무쌍은 그들의 기척을 ㅉ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