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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0dFYuvy-oQ?si=AGWY1r78II8IQHpZ
16강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에 동참하기 - 11
<단락 1> 1.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예슈아는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당신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은 어느 날을 말합니까? 장막절 절기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 날을 히브리어로 ‘호샤나 라바’ 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호샤나’는 구원을 뜻하며, 히브리어 ‘라바’는 크다를 뜻합니다. 그래서 ‘호샤나 라바’의 뜻은 ‘큰 구원의 날’ 입니다. 그렇다면, 예슈아는 왜 장막절 마지막 날에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때에 맞게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려야 합니다. 이 비는 어떻게 해야 내리게 될까요? 신명기 11장 13절 ‘13.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 말씀합니다. 장막절 (가을 절기)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며, 이 비는 씨를 뿌린 뒤 싹을 틔우고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봄의 절기 가운데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하며, 이 비는 추수 직전에 곡식과 열매가 알차게 여물도록 만들어 줍니다. 따라서 장막절의 또 다른 이름은 ‘물의 절기 (수장절)’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갔을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1) 사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제사장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실로암 연못에 가서 물을 길러 예루샬라임 성전에 있는 물두멍에 채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3절에 나온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러오라’ 이 말씀에 해당되시는 분은 ‘예슈아’ 이십니다. 그래서 예루샬라임 성전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하며 노래하는 순간, 예슈아는 그들을 향하여 ‘내가 생명의 근원이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와서 마셔라, 예슈아를 믿는 자들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생수의 강되신 예슈아이시며, 우리는 그 분과 함께 흘러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육체가 강과 함께 흐르기 위해서는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의 저항을 멈춘다면, 강물이 우릴 인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의 정욕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망)과 안목의 정욕 (갖고 싶은 것에 눈과 마음이 빼앗기는 것)과 이생의 자랑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같은 걸림돌을 치워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강의 흐름을 막는 모든 둑 (견고한 진)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 ‘...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말씀합니다.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 흐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됩니다.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 흐르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온 열방 가운데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 흐르게 되면, 우리는 성령 충만함과 열정이 다시 생기게 될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 흐르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수의 강과 함께 흐르기 시작할 때에 그 흐름이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알아야 한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대게는 알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 안에 생수의 강되신 예슈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주시고 난 이후 우릴 강물이 몰고 가는 방향으로 훈련시키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린도후서 12장 말씀입니다.
(1) 고후 12:1 (새번역) 1.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을 경험하기 위해 은사와 환상과 예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고후 11:30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살다가 굶주린 인생을 살았으며, 매 맞고 옥에 갇히는 인생을 살았으며, 평생을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생수의 강되신 예슈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강의 흐름을 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셋째 하늘로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단락 2> 우리의 삶을 통하여 생수의 강이 흘러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방언 기도’ 입니다. 우리가 방언 기도할 때에 생수의 강의 흐름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2. 계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뇌성 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여 있는 성도들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많은 물소리’ 같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목소리는 생수의 강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물 소리는 ‘하늘에서 나는 소리’와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의 차원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며, 그것을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하고 또 우리 밖으로 흘러나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라기 2장 7절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 말씀합니다. 예배자의 입에는 항상 지식의 근본인 토라가 있어야 하며, 이를 지켜야 합니다. 다른 말이 우리의 입 가운데 나오지 않도록 (하나님을 향한 불평불만), 우리의 입을 파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입이 부정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이 이미 죄로 오염되어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입은 단순히 말을 하는 신체 기관을 넘어, 한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밖으로 쏟아내는 통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입술과 언어가 정결케 되려면 먼저 우리의 마음이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 가운데 가장 길들이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혀‘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방언기도로 우리의 혀를 길들이기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당신은 형상대로 우릴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의 성품을 닮아가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에 방언을 하게 되는 것은 길들이기 어려운 우리의 성품의 상징인 혀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길들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1) 잠 18:4 지혜로운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흘러 넘치는 개울과 같다
잠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을 두 가지 비유로 말씀합니다. 첫번째 비유는 지혜로운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습니다. 깊은 물은 쉽게 마르지 않으며, 가뭄과 어려움이 오더라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보았을 때에 화려한 파도의 모습은 없지만, 그 깊은 곳에는 풍성한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감정에 따라 내뱉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함과 깊은 묵상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영성과 생명력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이는 자신의 생각이 채 익기도 전에 입을 열어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두번째 비유는 지혜로운 사람의 입의 말은 흘러 넘치는 개울과 같습니다. ’개울‘의 히브리어는 ’나할‘이며, 그 뜻은 ’흘러가다‘ 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나할‘은 ’나흘라‘에서 파생되어졌으며, 그 뜻은 ’유업을 이어가다, 유업이 흘러가다‘ 입니다. 부모의 유업이 자녀에게 이어지고, 또 다음 세대에게 흘러가게 하여 받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넘어가는 재산의 전이를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1장 4절 (새 번역)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업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업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말씀합니다. 이번 달은 아브월 (아버지의 달)이며, 성경에서 아버지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자녀에게 아버지의 기업을 흘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기업은 중단되었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그 유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슈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졌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이어갈 자가 되었습니다 (갈 3:29). 이는 합법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일원으로 접붙임을 받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년왕국 시대가 시작되어지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날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역대상 28장 8절에 ‘...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만들어진 내면의 영성과 생명력 (깊은 물의 상태)이 세상을 향해 역동적으로 쏟아져 나와 영혼을 살리는 역할 (흘러 넘치는 개울)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생수의 강이 흘러가기 위해 필요한 두번 째는 ‘연합’ 입니다.
2)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제사장으로 연합의 기름부으심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헐몬의 이슬과 같은 풍부한 수분과 생명력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흘려주게 됩니다. 이처럼 예슈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가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고 동거할 때에 하나님은 아론에게 주었던 기름부으심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웃들과 함께 성령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 부인’ 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란? 육신에 종 노릇하는 나를 예슈아의 십자가에 죽인자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자아를 없앨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자아를 하나님만을 모셔드리는 빈 그릇이 되어졌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와 멀어지게 되며,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가 자신을 부인할수록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슈아는 5번이나 남편이 바뀐 사마리아 지역의 수가성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샘물을 헬라어로 보면, 단수 명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 : 페게). 영어성경에도 ‘a spring of water' 단수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세상의 헛된 우물들을 십자가 앞에 버리고,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슈아를 찾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슈아의 샘물이 내 안에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 말씀에서 생수의 강은 (헬 : 포타모이)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도 ‘rivers of living water’ 생수의 강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가 예슈아의 샘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면, 그 샘물은 서로가 연합하여 큰 강들로 변하여 우리 안에 역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우리가 함께 모였을 때에 충만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때, 우리는 형제와 자매와 함께 생수의 강 안에서 흘러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는 개인주의나 독립적인 사고를 고집할 때가 아닙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마지막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힘쓰자).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흐르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을 주저하는 모습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로 인해 우리의 초점을 흐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흘러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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