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자작나무 숲
김금자
가정에서 평생 여행의 설계자로 살아온 나의 고집과 나보다 더 뜨겁게 여행을 갈구하며 틈만 나면 떠나자고 조르는 남편은 나의 가장 오랜 동행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정서를 지닌 채, 그러나 늘 한 방향을 바라보며 인생이라는 긴 항로를 항해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장성한 아들에게서 속초 숙박권이 날아들었다. 우리 부부의 두 눈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반짝이었다. 여행은 언제나 그 설계자가 누구든 상관없이 속절없는 설렘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사실 속초는 여러 번 갔으나 겨울에는 못 가본지라 겨울 바다에 온천이나 하면서 보내고 딱히 더 가볼 것은 없었다. 속초의 겨울 바다보다 내 마음을 더 강하게 끌어당긴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인제의 하얀 자작나무 숲이었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배우 김미숙의 부드러운 음성이 안내하던 그 숲이다. 하얀 눈밭을 거닐며 은빛 가지들이 쭉쭉 뻗어있는 그들의 손짓과, 나지막한 목소리의 “나레이션”에 홀리듯 푹 빠지었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마음속 깊이 접어두었던 다짐이 있었다. 아들이 보내준 숙박권은 미루어 두었던 그 꿈을 이제 꺼내어 실행하라는 다정한 초대장처럼 느껴 지었다.
자작 나무에 대한 기억은 이미 내 가슴에 선명한 판화처럼 새겨진 적이 있다. 2017년 북유럽 여행의 마지막 나라 노르웨이 “플롬” 에서이었다. 깎아지른 절벽과 푸른 이끼, 거대한 폭포 사이로 흩어져 서 있던 자작나무들이다. 거친 대자연의 위용 속에서도 꼿꼿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그 모습은 마치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고한 선비 같았다. 차가운 기차 유리창 너머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하얀 나무들의 잔상은 그때 느끼었던 손에 닿지 않는 아쉬움과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었다. 당시의 나는 그 숲이 얼마나 깊고 차가운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아름다운 배경으로만 자작나무를 기억하였다. 열차 차창 밖에 박제된 자작나무는 내게 닿을 수 없는 “동경”이자 멈추지 않고 질주하던 “청춘의 속도”이었다. 기차라는 안락한 문명 속에서 안전하게 구경만 하던 풍경은 삶의 관객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2026년 겨울, 나는 다시 자작나무를 향하여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창밖의 구경꾼이 아니라 직접 눈길을 밟으며 숲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는 주인공의 처절한 체험이었다. 발밑에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눈의 촉감, 미끄러지지 않으려 온몸의 근육에 힘을 주어야 하는 팽팽한 긴장감, 그것은 내가 현재 통과하고 있는 “인생 후반전”이라는 단어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남들은 세 시간이면 다녀온다는 그 길을 우리는 무려 네 시간에 걸쳐 거북이처럼 걸었다. 이곳에 오기 전날 동해(군종교구)성당이 궁금하여 잠시 들렀다. 그곳에서 얼음에 미끄러지는 사고로 얻은 허리와 다리의 통증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설계된 목적을 수행하는 고집이었다. 서둘러 마련한 아이젠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에 맞지 않아 짐이 되었다. 열 발자국도 못 가 벗겨지기를 반복하는 아이젠은 마음마저 조급하여 걷다가 벗겨지곤 한다. 결국, 우리는 아이젠을 가방에 넣고 하산 때 하자고 그냥 얼음길 대면하며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온몸의 신경은 곤두섰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 고통스러운 한걸음 한걸음은 노년이라는 삶의 무게를 버티는 과정이었다. 예전 같으면 단숨에 뛰어올랐을 만만한 길조차 이제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살핀 뒤에야 발을 뗄 수 있다. 800m 고지의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는 “속도” 대신에 넘어지지 않는 “균형”을, 화려한 “성취” 대신 무사히 돌아가는 “안전”을 본능적으로 먼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나는 내 몸이 보내는 그 정직한 신호를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통의 터널 끝에서 마주한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은 노르웨이에서 보았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곳의 자작나무가 압도적인 풍경이었다면 이곳의 자작나무는 내 삶을 보듬어주는 묵직한 위로이었다. 차가운 얼음 빛이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한 은빛이었다. 이날 따라 하늘빛은 어찌 그리도 청아한 푸름을 보이던지, 쪽빛 하늘과 은빛 나뭇가지들이 사이좋게 그림을 그려놓은 수채화를 보는듯하였다.
젊은 날에는 그저 빠르게 스쳐 지나갔던 나무들이 이제는 느릿느릿 숨을 고르는 노부부의 보폭에 맞추어 묵묵히 서서 기다려주는 듯하였다. 남편은 여전히 소년처럼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무를 한번 껴안아 봐.” “기둥 뒤에 숨어 보라니까.” “웃어, 크게 웃어야지.” 마치 셔트를 누르는 것이 생의 마지막 임무인 것처럼 요구 사항이 끝이 없다. 자작나무를 보듬어 안고 돌아서니 내 검은 파카에 은빛 겨울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흰 가루의 흔적을 바라보며 우리는 동시에 웃음보를 터뜨렸다. “우리 까만 옷을 하얗게 염색하러 온 건가 봐요.” 마주 보며 터뜨린 웃음 속에서 육신의 통증도 잠시 안개처럼 흩어졌다. 사실 이번 여행은 “다음에” 가 아니라 “지금”을 선택한 무모함의 산물이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길은 더없이 미끄러웠다. 그 무모함 덕분에 나는 한가지 진실을 또렷하게 깨달았다. 이제 노인이라는 사실을 빠르게 걷지 못하고 넘어질까 발끝을 살피는 나이가 되었음을 겸허히 인정하게 된다. 비록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아프지만 포기하지 않은 채 눈길 위에 또박또박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었다. 나아가는 생의 의지가 온몸에 새겨진 타박상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여전히 꿈꾸는 여행자라는 훈장이다. 청춘의 속도를 잃었을지언정 천천히 걷는 이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숲의 세밀한 숨결을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천천히 가는 것을 두려워 말고 오직 중도에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 한다. 눈길 위에서 미끄러지고 다시 중심을 잡으며 내디딘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결국 내 남은 생을 지탱할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을 믿는다. 은빛 자작나무 숲이 내게 속삭이었다. 느려도 괜찮다고, 당신은 지금 순간에도 아름답게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