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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1분 안에 외우는 방법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면서외우면 쉽게암송 할수있읍니다
1= 일 절하나님외에...................... 다른신을 섬기지말라
2= 이 상한..................................우상을 만들지말라
3= 삼 가 ..................하나님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말라
4= 사 업을하지마라.......................안식일을지켜라
5= 오 아버지...............................네부모를공경하라
6= 육 신을..................................살인하지마라
7= 칠 보 단장한 여인을................. 간음하지마라
8= 팔 로....................................도적질하지말라
9= 구 차한 말로...........................거짓증거하지말라
10= 십 원 이라도..........................네이웃것을탐내지말라
[본문 말씀] : 출애굽기20:3- 17절 , 신명기5:7-21절
열개의 말씀, 즉 십계명(Ten Commandments, 十誡命)은 모든 율법의 핵심이자 본질로서 단순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다(출19:5; 24:7). 즉, 십계명은 그 표면으로 볼 때는 계명이요 율법이지만(출애굽기24:12) 그 내면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구원의 언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담은 법궤를 '언약궤'(신명기31:26; 사무엘상4:5; 히브리서9:4; 요한계시록11:19), 그것을 기록한 책을 '언약서' (출애굽기24:7) 혹은 '언약책' (열왕기하23:21; 역대하34:30)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따라서 신구약은 다같이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은혜 언약임을 알 수 있다.
십계명은 5대 해석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 해석 원리는 여타 모든 율법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동기적 원리 :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음욕과 같이 간음의 동기가 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는 원리(마5:27)
대귀(對句)의 원리 : '말라'는 계명은 단순한 금지만을 명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금지 차원을 넘어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는 원리
포괄 대표의 원리 : 각 계명은 비슷한 범주에 속한 모든 것들까지 포괄하고 있는 원리. 예를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비단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남의 부모 및 여타 스승이나 어른들까지 공경하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되는 원리
연계성(連繫性)의 원리 : 전체 계명은 모든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유기적인 하나의 끈으로 엮여져 있는 원리. 따라서 하나의 계명을 어기면 전체 계명을 어기는 자가 되는 원리(야고보서2:10-11)
선후의 원리 : 제1계명은 나머지 모든 계명의 열쇠이며, 대신(對神)계명은 대인(對人)계명의 원인이되는 원리
등이다.
셋째, 십계명은 3중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만인을 위한 목적 : 십계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및 뜻을 알게 하는(로마서7:12) 동시에 인간의 무능함과 부패를 자각시켜(로마서3:20; 7:9)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갈라디아서3:21-22)
불신자를 위한 목적 : 십계명은 모든 불신자들을 율법의 저주 아래 두어(갈라디아서3:10) 최후 심판 때 그들로 하여금 핑계치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로마서1:20)
성도를 위한 목적 : 십계명은 성도가 성취할 수 없는 그것을 그리스도가 대신 성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더욱 감사와 순종의 삶을 살게끔 하기 위한 것이다(골로세서1:12-14)
결론적으로 십계명은 완전수 10과 증거의 수 '두' 돌판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과 심판의 계명이며 동시에 사랑의 언약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은 모두 613가지 이다. 이것은 "...하라"는 긍정적인 명령 248가지(사람의 뼈마디 숫자와 같음)와 "...하지말라"는 금지명령 365가지(일년 날수와 같음)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것을 요약하고 압축한 것이 십계명이다. 이 십계명은 또다시 하나님사랑(제1-4계명)과 이웃사랑(제5-10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것은 최종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랑에 대한 기준과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가는 모범적 사례도 명쾌히 밝혀주고 있다.
(1) 하나님 사랑에 대한 기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6:5)
(2) 이웃 사랑에 대한 기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위기19:18)
(3) 이 율법이 말한 온전한 사랑을 실천한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위에 오신 하나님으로서 한 가지 계명을 더 말씀하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제 1계명: 유일하신 하나님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20:3)
(신 4:35)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1.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찾는 근본적인 본능이 있습니다.
영어로 하나님을 표기 할 때는 God로하여 G자를 대문자로 표기합니다. 잡신(귀신)을 표기할 때에는 god(s)자를 씁니다. g자로 소문자로 표기하는 것과 복수 형태를 가집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을 찾는 근본적 본능이 있습니다. 전도서 3:11에 `하나님이 모든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럼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치의 종교심이 있습니다. 어떤 민족에게도 하나님을 찾는 노력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마치 담장이 넝
쿨이 의지할 것을 찾는 것 처럼, 배고픈 인생이 음식을 찾는 것 처럼, 굶주린 영혼에게도 만족을 요구하는 깊은 욕구가 모든 인간에게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무서운 핍박을 당해도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노력을 뽑아낼 수 없었던 것이 인류역사의 이야기입니다. 네로 황제가 예수믿는 사람을 그 처럼 박해했지만, 마르무스 아델리우스황제가 예수 믿는자의 뿌리를 뽑으려고 그 처럼 노력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헛수고 였습니다.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하실때 흙으로 만드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되로 지으셨다는 것이요,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후 아담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찾아 오셔야만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범죄한 후 인간들은 여러 형태로 하나님을 만날려는 본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H. G 웰즈는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기까지는 그의 인생에 시작도 끝도 없다,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 인생은 무인생이다'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너희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이미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해결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배고픔이나 목마럼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일은 본능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굶주림과 목마름에 대한 대비책은 우리가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과 숭배는 인간의 본능적인 성품입니다. 어느 성경을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 첫장을 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출생했느지 어떤 존재인지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이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3.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참 신(神)이시다.
인간은 진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할 때 스스로 신을 만듭니다. 야만인은 야만스럽게, 문화인은 문화인 처럼 신을 만듭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소나, 뱀이나, 별이나, 자연을 신으로 삼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미신적으로 자연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돈을, 인기를, 권력을, 쾌락을, 지식을 섬김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대용품들이 많은 이 시대에 하나님께 사랑과 경외와 귀한 신뢰와 믿음, 드려야할 이것들을 다른데 허비할까 봐, 우리 인생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네 앞에 두지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 1계명을 모든 계명의 우두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창세기 1:1절이 성경 전체의 우두머리인 것 처럼 제 1계명은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도덕은 무력합니다.
4. 하나님께서 `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네(너) 앞에'라는 단수로 시작합니다. `너희들 앞에'가 아니라 `네 앞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모세, 사울'을 부르실 때 개인적으로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계명은 각 개인에게 관계되며 하나님은 각 사람이 개인적으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 들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는 방법
1.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신들은 우상이니 그리고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고전8:4)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 안에 아무것도 신성(神性)이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부터'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시도록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에게 엎드려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18:39)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있는 자 중에 여호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시89:6)라고 했습니다. 그가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며 또 그와 비교할 자가 아무도 없나는 것을 우리 마음에 믿으며, 우리 죄를 고백하며, 우리 손으로 서명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하나님이시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언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은혜니라'(사55:3)라고 우리와 언약을 맺어 주시듯이, 우리도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대하15:12)라고 함과 같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야 합니다.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은 언제나 주종관계의 언약이며 절대적인 것입니다.
3. 그에게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경배는 그에게 굽혀 절하는 것, 또는 그에게 예배하는 것에서 성립됩니다. `여호와의 이럼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니라'(시29:2)라고 했습니다.
4. 그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항시 하나님을 우리 안중에 두는 것입니다(시16:8, 25:15)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그가 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며, 그리고 재판장으로서 그의 모든 행위를 달아 보신다는 것을 상상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두러워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너무나 거룩한 경외심을 가진고로 우리가 감히 죄를 짖지 못하는 것입니다(시4:4) 악인은 범죄하고도 사람은 두려워할찌 몰라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자는 두려워하며 범죄치 않습니다(창39:9)
*`나외에는'
1. 실제로 다른 신(神)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애굽인들은 황소와 코끼리를, 그리스인들은 쥬피터를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 외에는다른 신이 없습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신이 없는 줄을 알라 명심하고'(신4:39)라고 했습니다.
2.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된다.
무엇이 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인가? 무슨 일에나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은 그것을 신으로 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곧 신이된다. 그래서 성경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엡5:5)
*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결과
1.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을 섬기는것은 왕노릇하는 것이다(servire deo est regnare) 즉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왕들로 우리를 섬기게 하는 것보다 더 명예스럽다.
2.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시56:7 잠3:17)
3.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유익하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면 여기서 큰 이익과 숨겨진 만나와 재적 평화와 그리고 장차 큰 상급을 받는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죽을 때 천국을 차지하며 면류관을 쓰게됩니다(눅12:32 벧전5:4)
▣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1계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과 내 생활속에서 적용시켜야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제 2계명: 예배의 올바른 방법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무것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라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4-6)
* 우상이란 무엇인가?`우상'이란 헬라어로 `헤이돌론'인데 `형상, 거짓신, 허무하다'는 뜻이다.
1.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
탐심은 곧 우상숭배가 됩니다(엡5:5. 골3:5) 탐심을 마음에 품게 되면 나를 지배한 강력한 나의 삶의 주인은 탐심 그 자체가 되고 하나님은 주인된 자리에서 밀려나고 탐심이 하나님을 대신하게 됩니다.
원시인들은 눈으로 보이는 유형적인 우상 신상을 둘러싸고 춤을 추었으며 20C의 지능적인 현대인들은 쾌락의 우상, 성공의 우상, 건강의 우상, 아럼다움의 우상앞에 그들의 영혼을 팔고 인생을 재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우상이란 이렇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모든 것을 뜻합니다.
2. 예배의 수단이 목적으로 변신되어 버리는 것우상이란 처음부터 우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나타내고 또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집니다. 그것은 교육적일 수도 있고 예술적일 수도 있으나 점차 그것이 경배의 목적이 되면 우상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서 불 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장대위에 불뱀을 쳐다 봄으로 다시 살아날 수가 있었습니다(민21:4-9) 그런데 열왕기하 18:4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놋뱀을 모셔놓고 그 앞에 분향하고 경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냥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놋뱀을 기념물로 보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그것이 우상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세속적인 용도를 위해 형상을 만드는 것까지 금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도 `이 형상과 이 글이 뉘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마22:20,21)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만들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술과 문화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허락하신 예술과 문화를 창조해가야 합니다.출애굽기 3:1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神) 곧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들이 예술적 자질을 가지고 종교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이런 예술적 재능과 은사를 받은 사람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 은사를 마음껏 활용해야 합니다.
3. 이기심에 뿌리박고 있는 육신적인 허상이 우상입니다.
교회에 출석은 하고 있지만 아직 자아가 깨어지지 못한 육신적인 성도는 말로는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그러나 `자기' 생각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우상을 섬긴다는 말씀입니다. 칼빈은 죽은 후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때문에 주님이 가리워질 까 두려워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20C 성도들의 탐욕은 그리스도까지 가리워져도 나만 나타나면 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 숭배자로 변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할 이유
1.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질투'란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 표현으로서 엄격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요구입니다(신6:15, 수24:19)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결코 빼앗기지 아니하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 좋은 의미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질투하십니다(스가랴1:14)
이사야 62:4에 그는 자기 백성을 `헵시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대신 할 수 없으나 곧이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라는 뜻입니다. 즉 사랑하는 연인들이 다른 것으로 기뻐하지 아니하고 오직 상대편으로만 기뻐하는 것과 같은 강한 사랑의 의지를 담은 말입니다.
스가랴 2:8에 `눈동자 같이 사랑하며 신랑이 신부를 사랑한 것 같이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헵시바'의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알에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내 기쁨이란 너 외에 전혀 없다'라고 하시고 `내가 너를 질투한다'고 말 하십니다.
*나쁜 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못된 여인이 나쁜 성격을 표현할 때 질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의 사랑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질투라는 나쁜 단어를 사용하시기까지 주저치 않으시는 하나님, 그 사랑을 우리는 보게됩니다
2. 축복과 저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성경에서 `나를 미워하는 자는 3,4대까지 벌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3,4대까지라니 너무 잔인하지 않으신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반면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기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수천대까지 축복을 베푸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심판날에 책임을 묻게 된다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이 내 행복과 불행뿐만 아니라 내 후손의 행복과 불행과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
죠나단. 에드워드의 후손에 대한 책이란 곳에 보면 거기에는 청교도이며 미국 프린스톤대학의 총장이였으며 유명한 문필가였던 죠나단가계(家系)의 후손들과, 그리고 같은 당대에 살았던 유명한 술주정뱅이의 후손들에 대해서 기록한 것를 볼 수 있습니다.
죠나단의 가계에서는 200년동안 부통령이 두 사람, 선교사, 목사가 70명, 상하양의원이 30명, 저명한 학자, 의사, 교수등등 뛰어난 인물들이 무수히 배출해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했는데 반하여 술주정뱅이의 훈손들에게는 깡패, 매춘부, 마약중독자, 살인자, 도둑등등의 범죄자가 전 후손의 90% 이상이나 나타나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친 사실을 흥미있게 비교를 해 준 글이 었습니다.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유다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유다왕국은 다윗의 법통을 그대로 이은 정통왕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왕국 없애기를 매우 싫어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도처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조상 다윗을 생각하사 유다왕국을 버리지 않으시고 `권면하셨더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책임지시고 고쳐 보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애쓰십니다.
▣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2계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과 내 생활속에서 적용시켜야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제 3계명: 예배의 올바른 정신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이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제 3계명은 여호와 성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라는 말은 곧 하나님 자신을 존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은 한 개인의 존재 양태를, 총체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또한 이름속에서 한 개인의 품성 및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여호와, YHWH)
하나님의 대한 여러 호칭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여호와'란 하나님의 대표적인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신 속성과 사역을 나타나 있습니다. 본래 그 뜻은 `그는 있느니라'라는 뜻인데 모세에게는 `나는 스스로 있는자'(출3:14)라고 계시(啓示)하셨습니다. 그 분은 영원자로서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분은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계시자로서 스스로 나타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언약한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약속한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축복된 계시가 하나님의 이름 속에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하나님, 그분은 너무도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분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다가 그분의 이름이 나오면 발성(發聲)치 아니하고 묵음으로 그대로 지나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 이름 대신 `아도나이(Adonai) 곧 주님이 라고 불렀습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망령되이'란 히브리 원어로 `랏사웨'로 그뜻은 `무익하게'(렘2:30), `헛되이'(렘4:30, 6:29), `허탄하다'(시24:4) `허사'(시127:1)등의 여러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그분의 이름이 공허하고 무익된 일에 의미없이 불성실하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이 계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마령되이 일컫지 말아야 한단는 부정적 명제이고, 또 하나는 긍정적 명제의 함축입니다. 이 계명의 총체적으로 교훈하신 것은 혀를 조심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혀는 길들이기 어려운 지체입니다. `혀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라고 했습니다. 혀보다도 더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몸의 치제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받아 가지게 된 것은 혀를 재갈물려 좋은 처신에 묶어두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말로 정죄함을 받으니라'(마12:36-37)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은 경우
1.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그리고 불손하게 말할 때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신28:58)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시50:1)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할 때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능하신 선지자이여늘'(눅24:19)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왕들의 이름을 언급할 때에는 그들에게 존귀한 명칭을 붙여 줍니다. `폐하(Excellent majesty)'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무한한 위엄에 합당한 성스러운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말하여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공언하면서도 그것과 일치하게 살지 않을 때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딛1:16)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말과 생활이 서로 모순될 때, 고백의 가면을 쓰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리고 불결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며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롬2:24)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헌하는 유대인들이 파렴치한 것은 이방인들이 보았을 때 이것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악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으나 행동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것입니다. 우리도 믿는 모습을 가지고 행동으로 하나님을 바로 나타내지 못하면 이 계명을 범하는 것이 됩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잡담에 사용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말끝마다 그의 이름을 끌어들여 `오! 주여, oh God. oh Jesus, 하나님이 내 영혼을 구원하시겠거니와'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비록 입으로는 하나님을 모셨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마귀를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하나님의 성호를 빙자하여 잡담에나, 자신을 변호하는 말은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호가 욕속에 들어 있는 경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God, Jesus, Moses등등의 말이 붙어 있는 말은 모두 욕입니다. 예배가 경홀히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업신여김을 받으니까 나중에 그 영광스러움 이름이 변하여 욕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교에 가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욕이 벌써 생겨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을 `결코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을 우리의 입으로 경배하고 마음으로 시인하지 않을 때하나님은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면'(잠23:26)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은 신앙의 주체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 마음을 세상에 빼앗길 때 우리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 났나니'(사29:13)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향하여 호세아 선지자는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호4:8)라고 하였습니다.
5.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신앙적인 맹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솔하게 맹세를 하여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마5:34)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본 의미는 경솔하고 죄스럽게 맹세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결과를 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세에 대하여 신명기 기자는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6:13)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는 사소한 맹세를 잘합니다. 정말로(faith)또는 맹세코(by the mass)같은 것입니다. 마귀는 두개의 거짓 안경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앞에 갖다 놓습니다. 하나는 작은 안경인데 이것으로 보면 죄는 너무나 작게 보여서 자기 눈에 띠지 않을 정도이며 이것을 마귀는 지금 막 죄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눈 앞에 갖다 놓습니다. 또 하나는 큰 확대경인데 이것으로 보면 죄는 너무나 크게 보여서 용서받을 수 없으며 마귀는 죄를 짓고 난 후의 사람들의 눈앞에 갖다 놓는다.
6. 악한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압살롬은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데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삼하15:7)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루겠다고 한 이런 핑계는 다만 그의 반역죄를 가리기 위함 이였습니다. 어떤 악한 행동이 신앙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도적질할 의도를 품고 성전에 들어와서 `저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렘7:10-11)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주님의 이름이 악용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 됩니다.
*경고의 말씀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십계명 중 `...하지 말라'로 금지된 계명은 8가지 계명이다. 그 중에서도 만일 어겼을 경우, 그 처벌 규정이 명시되어 있는 계명은 2가지(제 2, 3계명) 계명이다. 하나는 우상 숭배의 금지 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성호를 오용 금지 계명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 계명은 모두 인간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치 않고 무시하거나 도전할 때의 경우이다.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란 말씀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말로서 일종의 강력한 경고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들이 벌받지 않은 채로 아무런 대가 없이 살 수 있게는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신24:16)라고 하였으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말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리우스파 감독 올림피아스는 성 삼위일체를 욕하고 모독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세개의 불빛이 그를 쳐서 태워죽였습니다. 쥴리안 황제의 관리 휄릭스는 성찬식에 사용된 성기를 보고 그리스도를 조롱하여 `마리아의 아들들이 얼마나 귀중한 그릇으로 섬김을 받는가 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불손한 입으로부터 피를 토해 내기 시작하여 그로 인하여 죽었습니다.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전파하여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럼다운지요'라고 고백하였습니다.
▣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3계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과 내 생활속에서 적용시켜야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제 4 계명: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난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나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8-11)
안식일이 주일(主日)로 바뀐 일에 대하여 본래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으며 더 정확히 말하면 금요일 해질 때부터 해질 때까지 였습니다. 지금도 안식교인들은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토요일 안식일이 `주일 안식일'로 날만 바뀌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1. 안식일에 교훈과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나 율법적의식, 혹은 제도로서의 안식일은 이미 없어졌기 때문.
율법의 내면 혹은 근본 정신을 모르고 이면만을 가지고 율법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안식일에는 모든 업무를 폐하고 남녀 종들을 비롯하여 가축에 이르기까지 안식을 주고 그리고 회당에 가서 율법을 배우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써 이날을 성별한 것입니다. 이 안식일은 지금도 독실히 믿는 유대인들은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문제는 하루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제7월(우리들의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에 안식일이 있고, 제 7년 안식일이 있고, 7년 7차후 50년에 희년(기쁨의 해)이라 칭하는 대 안식년이 있습니다. 그 제 7년은 땅의 휴식년으로서 즉 땅을 삽질한 후에 파종치 않고 휴식케 할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계속되던 모든 대차 관계(貸借 關係)를 소멸케 하였던 것입니다.안식일은 `안식일'이라는 날의 개념보다 안식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2. 안식일의 주인인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기 때문.
이 날이 바뀐 것은 교회의 권위로서 되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 퍼킨스(Perins)는 `교회는 안식일을 제정할 권한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성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시고 마쳤을 때에
그 날을 기념하여 정하신 것이요, 신약의 주일은 아담 이후에 죄 가운데 있던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의 권세를 이가고 부활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천지창조의 기념 날이며, 주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천신지(新天新之)를 시작하는 기념의 날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막2:28)으로서 주의 날을 제정할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시118:24) 부활하신 주님께서 안식일 다음날인 첫날에 두번 나타나셨던 것입니다(요20:19-26)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도 자연스럽게 첫날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이날을 `주의 날'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행20:7) `주의 날에 내가 성령의 감동하여'(계1:10)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고전16:2)라고 하였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방법
1. 주일날을 `기억할 것'
`기억하다' 이 말의 뜻은 단순히 기억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기억을 되살린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기억법은 중요한 교육법의 한가지입니다.
현대처럼 분주한 세상에서 일에 쫓기다 보면 주일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주일에 교회를 빠지는 분에게 말씀을 들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꼭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기억하라는 말씀은 일주일 동안의 삶을 주일날을 위해 살라는 강한 의지가 숨어 있습니다.
2. 주일날을 `거룩히 지킬 것'`거룩히'란 `구별해서 드린다'는 뜻으로 이는 불결한 데서 빼내어 하나님께 순결하게 성스럽게 바친다는 뜻이고 신약에서는 성도(하기오스)란 단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세속된 일을 하지 말 것.
그날에는 그 집안에 있는 가족이나 종이나 심지어 유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하였고 짐승도 일을 시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1:12절 이하와 35:2절 이하에서는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줄일지니라'고 명하였으며 이 언약은 `대대의 표징'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시대 안식일에는 주님의 성전 짖는 일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성막의 직공 브사넬도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엿새동안은 일하는 것이나 제7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니라'(출31:14)고 해서 일을 하지 아니 했습니다. 주님의 성전을 짓는 일도 안했다고 했거늘 하물며 세속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필요한 일과 구령 사업은 할 수가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지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극단적으로 해석한 유대인들은 그야 말로 문자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아니했습니다. 마카비 시대에는 심지어 적의 공격을 받아도 기본 방어 조차하지 않고 몰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들은 참 의미를 알고 안식일에도 생존을 위해서는 안식일에도 싸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거나(막2:5, 마8:14), 밀 이삭을 잘라먹는 것 같은(마12:1-8)보면 안식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됩니다. 즉 이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은 쉬고 오직 거룩한 생활을 힘쓰도록 하
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3. 엿세동안 힘써 모든 일을 할 것.
주일은 거룩히 지키려면 `엿새 동안 힘써 내 모든 일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후 아담에게 노동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창2:15) 기독교는 노동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주님께서도 `악하고 게으른 종'(마25:26)을 책망하셨으며, 사도 바울도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3:10)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일 하루를 거룩히 바칠 수 있도록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함으로써 주일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토요일 오후부터 우리의 마음을 세상일에서 돌이키고 주일을 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는 자만이 주일을 안식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불신자 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주일을 제정하셨는가?
1. 우리 인생을 위하여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간을 가장 잘 아십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그 건물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건물을 지은 사람입니다.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사람이 일을 하다가 며칠 만에 한번 쉬는 것이 좋은 가를 여러 각도에서 조사하고 연구해서 데이타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의 결론은 `칠 일만에 한번 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불란서 혁명은 원래 무신론의 혁명입니다. 혁명이 끝난 후 혁명 주체들이 사람들의 노동량을 조절했습니다. 즉 7일만에 쉬는 것을 10일 만에 쉬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더 해서 낙후된 자기들의 산업을 발전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10일 휴일제를 실시한 후 전 국가적으로 40%나 결손을 보고 말았습니다. 7일 휴무보다 더 많은 결손을 본 후에 이들은 다시 칠일 휴무제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소련의 공산 혁명도 역시 무신론의 혁명입니다. 이들도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다 강구했습니다. 레닌이 만들어 낸 `꾀'중에 하나가 7일 동안 일하고 8일만에 쉬게 하는 것이 였습니다.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레닌은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서 하루 분의 일을 더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8일만에 한번 쉬면 일년 52주 가운데 7일만에 주일과 만나는 날이 7-8차례밖에 안됩니다. 크리스찬들이 주일에 예배드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 한 방법으로 이런 꾀를 낸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 국가적으로 생산지수가 30%나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당황한 레닌은 말
을 다시 바꾸어, `우리는 기독교보다 더 노동자 편이다. 그래서 5일 동안만 일하고 6일만에 쉬도록 하겠다'고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산성이 도무지 향상되지 않습니다. 해보다 안되니까 다시 성경이 명한 대로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쉬는 것으로 환원하고 말았습니다.사금이 캘리포니아 도처에 널려 있다는 소문이 동부에 쫙 깔렸습니다. 그래서 서부로만 가서 누구든지 말뚝만 박으면 자기 땅이 되고 그 땅에 무진장한 사금을 캘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 동부에 사는 사람들이 서부로 서부로 공활한 대평원을 가로질러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황금에 눈이 어두운 많은 사람들이 주일에 쉬는 휴식도 없이 빨리 먼 저가서 많은 땅을 차지하겠다는, 그래서 보다 많은 황금을 채취하겠다는 오직 그 한가지 생각으로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청교도 무리들도 어 있었는데 이들은 칠일만에 하루를 꼭 쉬되 `내 집안에 있는 육축마져도 쉬라'고 성경에 말씀하셨다 하고 말도 쉬고 사람도 쉬면서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까 쉬지 않고 달렸던 사람들보다 청교들이 먼저 도착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던 사람들은 무리해서 오다가 중간에서 말이 지쳐 병이 났든지 사람이 병들었든지 해서 모두 중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7일째 쉬었던 사람들은 말이나 사람이 모두 건강하고 오히려 더 생기발랄해서 먼저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일도 먼저 해서 남보다 많은 사금을 채취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2. 우리를 위한 축복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며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창세기 2:3절에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날을 엄수하는 자들에게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58:14)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알 수 있습니다.
1) 영적인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안식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보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참 즐거움을 찾으려고 힘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자 만이 맛볼 수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노래하기를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118:2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통해서만 내면적인 위안과, 내 영혼의 큰 기쁨의 물결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일을 통해서 소모된 밧데리를 충전하는 것처럼, 풀어진 태엽을 일주일에 한번 감아 주는 것처럼 우리가 이 날 내 마음의 옷깃을 다시 여미고 긴장하고 그 마음에 귀한 은혜를 다시 충전할 때 그 다음의 일주일을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2)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네가 너를 땅에 높은 곳에 올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너를 영예로운 위치로 승진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안식일을 잘 지키는 민족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3)야곱이 받은 복을 받게 됩니다.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받은 복을 말합니다. 즉 창세기 28:13-15절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어떠한 복을 받았습니까? (1)가나안 땅을 얻는 복, 즉 육적인 복입니다. (2)후손의 번성의 복입니다. (3)야곱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아가 탄생하는 복입니다. (4)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참으로 영육의 복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4계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과 내 생활속에서 적용시켜야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모든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두 관계 속에서 삽니다. 첫째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둘째 관계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삽니다. 그래서 십계명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나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명령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5계명부터 10계명에 걸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처음 관계를 갖는 것이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잘되지 못하고는 다른 모든 인간관계가 잘 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의 가장 중심이 되며, 가장 기초적인 관계입니다.
*`공경하라'허브리 원어에 `카베드(kabhad)'는 본래 `무겁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또 명사형으로 사용될 때에는 우리의 내장 중에 가장 무거운 간장(肝臟)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간장의 중요한, 간기능의 중요함과 같은 뜻입니다. 간(肝)은 신체의 여러 장기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모를 이렇게 귀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
1. 엄숙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신5:1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주안에서 옳다'고 하셨습니다.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태도는 인간의 가장 사악한 태도입니다. 말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억하며'(딤후3:1-3)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는 열심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해서 이것을 `고르반'(막7:6-13)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내가 드렸노라' 그래서 주님은 그 사람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이여!'라고 분노하셨습니다.
2. 권위에 대한 순종을 배우는 훈련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권위가 바로 이 부모의 권위입니다. 그 다음으로 숱하게 많은 권위를 만나며 우리의 삶을 형성시켜 나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에 대한 순종을 바르게 배운 사람이 이웃과 각 사람의 권위에게도 또한 하나님께도 올바른 순종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보이는 부모를 공경치 않은 자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 할 수 있느냐?'고했습니다. 공경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3.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골로 새서 3:20절의 말씀은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요.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모 순종이나 공경은 단순히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 영적인 하나님께 대한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비'는 여러 종류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단순히 자신의 육신의 부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넓고 포괄적인 면에서 `아비' 혹은 `부모'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트 124문에 보면 `제 5계명에 있는 부모는 누구를 뜻하는가?' 제 5 계명에 있는 부모는 혈육의 부모뿐 아니라 연령, 은사의 모든 윗사람과 특히 하나님의 규례에 의하여 가정, 교회, 국가를 막론하고 우리 위에 권위의 자리에 있는 자들을 뜻한다'라고 했습니다.
1)위에 있는 권세자들도 행정장관입니다.
그 나라의 권세자들은 그의 나라의 아비입니다. 성경은 왕들을 `아비들'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사49:23)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사회와 국가에 있어서 관리들입니다. 동리에서 동장, 면장,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등을 의미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2)연륜으로 보아서 윗사람들입니다.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레19:32)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이웃의 있는 연령자는 부모와 같이 공경하여야 합니다.
3)교회에 있는 성직자들입니다.
이들은 영적 아비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후4:15)라고 하였습니다.토마스 왓스는 성직자들이 존경과 공경을 받아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둘기처럼 감람나무 가지를 입에 물고 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공경하는 것입니까?
1)가장 귀히 여길 것(살전5:12,13) 2)옹호자가 됨으로써 성직자에게 부당하게 닥쳐오는 비방을 씻어 줌으로써(딤전5:19) 3)그들의 교훈에 순종함으로써(살전2:19, 고후3:1)
4) 자연적인 육신의 아비들입니다(히12:9)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
육신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공경을 받도록 행동하여야 합니다. 자녀들의 모든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경을 받도록 살아야 합니다.
1) 주의 두려움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여야 합니다(엡6:4)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라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그의 자연 출산보다도 그의 영적 출산을 위해서 더 산고를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그를 어릴 때부터 교훈 하였습니다(딤후3:15) 그녀는 그에게 모유를 먹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말씀의 순전한 젖'을 먹였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라고 하였습니다.
2) 자녀들에게 사랑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부모의 모든 권고와 명령에서 그들로 하여금 사랑을 알게 하여야 합니다. 부모 중심의 사랑이 아니라 자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완성하는 자녀 양육법입니다.
3)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신중하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들을 노엽도록 격동시키지 않는 것이 신중성의 큰 핵심점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라고 했습니다.부모가 어떻게 자녀들을 격노케하기 쉬운가? 그것은 자녀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함으로서 입니다. 사울은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패역부도의 계집 소생아'라고 말했습니다(삼상20:30) 어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저주와 악담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그들을 격노케 합니다. 사울은 아들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은 격노하였습니다. `요나단이...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고'(삼상20:23)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그들의 자녀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을 거부할 때입니다. 자녀들에게 주기를 싫어하고 너무나 부족 한대로 내버려두었을 때입니다.
4)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들을 위하여 분여재산을 저축할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기도의 재산을 저축하여야 합니다.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기도와 눈물의 아들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부모들의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 시대의 감염으로부터 보전되기를 위하여, 그들의 얼굴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와 그릇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5) 자녀들에게 선하고 칭찬할 만하다고 보는 바를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덕성은 칭찬을 받으면 늘어납니다'(Virtus laudata crescit) 즉 선은 칭찬을 받을 때 늘어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선한 일을 칭찬하면 그들이 덕있는 행동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5계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과 내 생활속에서 적용시켜야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제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지니라'(출20:13)
현대는 인명을 경시하는 시대입니다. 즉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 죽이듯 앗아가는 시대입니다. 가스가 폭발해 죽거나 돈 몇 푼 때문에 제자까지 죽이는 시대입니다.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을 볼 때마다 매일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대하고는 우리는 몸서리를 칩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에서는 휴머니즘이 판을 치고 있고 신학에서도 인본주의 신학이 활개를 치고 있지만 실제로 사람의 가치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로 슬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T. V나 라디오의 뉴스면의 시간을 지워 버
리고 싶은 많은 사건들을 우리는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 사람의 그 영혼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값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존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체 먹지 말라'(창9:4)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2.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창9:6)`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빚어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대표자입니다. 인간을 모독하고 살해함은 곧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어기는 것은 결과적으로 곧 하나님의 주권을 도전하는 것이 됩니다.
*살인이 아닌 것
`살인하지 말라'는 이 말씀, 히브리어는 이 단어의 뜻에 몇 가지 경우에 해석이 따릅니다. 살인이 무엇입니까? 살인이 참된 의미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살인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전쟁은 살인이 아닙니다.
다섯 나라의 연합군이 소돔 고모라를 쳐들어 와서 노략질하고 훼파하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붙잡아 갔습니다. 조카의 위급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 밑에 있던 부하 300명을 이끌고 다섯 왕의 연합군을 습격해서 그들을 쳐 승리하고 조카인 롯을 구출해 냈습니다. 이때 많은 다섯왕 연합 군사를 죽였는데 이것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 사무엘하 10장에 암몬족속이 못된 짓을 할 때 다윗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 전쟁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가라고 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허락하셨습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는 자기 재산과 국토를 보호하기 위해
서 전쟁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께서 살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2. 정당방위는 살인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2:2절에 보면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처 죽이면 피흘린 죄가 없으나'라고 분명히 말씀하였습니다. 여호수아 20장에 보면, 살인의 의도가 없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를 동기로 사람을 죽이게 된 이들을 위하여 그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도피성의 제도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침략하는 것을 살인이지만 쳐들어오는 적군에 대항하여 방어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으로 표시하지 않습니다.
3. 법의 집행을 위해서 실시되는 사형은 살인이 아닙니다.창세기9:6절에 보면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삶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말씀하심을 봅니다.
4. 동물 살생은 살인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죽이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령 식물은 동물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식물이나 동물을 죽여 음식을 만들어 먹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원래의 생활 방식입니다.
*`살인'이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살인의 동기까지도 미워하셨습니다.
1. 상대방의 이름을 손상시키는 것
자기 집에 중요한 물건을 도적 맞고 자살한 사람은 없어도 자기 이름이 모함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자살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인격적으로, 말로 손상을 입을 때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살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처럼 쉽게 하는지요! 다른 사람의 인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 가면서 이것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없이 이야기하고 헐뜯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타인의 이름을 손상시키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타인의 육체를 살해하는 것
생명은 신성불가침입니다. 창세기 9:6절에 보면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데는 3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분노입니다
사람이 분에 너무 복받치면 사람 죽이는 것쯤 쉽게할 수 있습니다. 분노는 살인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살인의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고 말했습니다.
2)시기와 질투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원흉입니다. 가인은 시기 끝에 자기 행동 아벨을 죽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을 시기해서 자기 동생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시조 아담의 무죄와 낙원의 영광을 시기했으며, 그래서 죄를 짖게 한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기를 살인과 동등시 하였습니다. `투기와 살인과'(갈5:21)라고 하였습니다.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27:4)
3)증오입니다.미움은 피를 먹고 사는 해충입니다. `네가 옛날부터 미움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피를 흘렸음
이라'(겔35:5) 하만은 모르드게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으므로 그를 증오하였고 유대인의 전 족속과 자손을 멸하고자 한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자신의 영혼과 육신이 먼저 죽습니다.우리의 감정을 극기하고 자제할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성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날 때 자제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물론 위대한 왕이었지만 술좌석에서 자기 부하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하였다고 화를 내고 그 자리에서 그 부하를 창으로 찔러 죽엿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는 기록하기를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는 다스릴줄 알았지만 자기 자신은 다스릴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물론 이것이 사람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은혜를 받아서 성령의 주시는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타인을 타락시키는 것
인간의 중심은 육신이 아닙니다. 영혼입니다. 죽음이란 분리를 뜻합니다. 육체와 영혼의 분리가 곧 죽음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일은 바로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영혼을 죽이는 데는 몆가지 구체적인 행위가 있습니다.
1) 다른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실이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하고자 하는 마음에 타격을 주어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이런 행위를 성경은 무서운 범죄라고 말합니다.`너희가 실족케 아니할 수도 없지만 행제중에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것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매고 강물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실족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과 단절시켜 버리는 이 타락시킴, 이것을 성경은 `영혼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유혹하는 것입니다.
잠언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타인이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떠나도록 하는 구체적인 유혹, 이것을 살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 속에 미혹의 영인 마귀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딤전4:1)라고 하였습니다.
3)복음을 전파하지 않아서 타인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조하는 것입니다.
이웃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못하여 죽을 때에 믿는 신자로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영혼을 방조한 책임이 있어 간접살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소크라테서는 `이 성안에 굻어 죽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사람의 책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것을 보고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불고지 죄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네 이웃이 지옥으로 가는 피에 대가를 네게서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1)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여야 합니다.
자기의 인격도 중요한것 처럼 남의 인격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매우 무리한 말을 던져서 상대편에게 상처를 주고는 `미안해!' 한마디로 끝내버리고 곧 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례가 있을 때는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못한 것을 갖고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2)용서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누구든지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는 자신을 판 형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용서는 주님의 명령인 동시에 성도의 의무입니다. 용서의 삶을 살 때 먼저 우리의 삶이 평안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없는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나니'(레19:17-18)고 하였습니다.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사랑하려고 노력하십시다. 성경은 `결단'을 요구합니다. 즉 사랑은 행동이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앞에 복종할 때 그 종이 비로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행동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0장에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가운데 사랑은 실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다함께 생각해봅시다.
6계명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과 내 생활속에서 적용시켜야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제 7계명: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지니라'(출20:14)
현대를 흔히 `3S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과학(Science), 스포츠(Sports), 성(Sex) 이 세가지는 확실히 현대인의 우상입니다. 그 중에서도 성(Sex)문화의 혁명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의 가장 강력한 종교는 성(Sex)의 종교라고 말한 어느 언론인의 말에 우리는 공감을 합니다. 이 종교는 가장 많은 숫자의 신도들을 거느리고 우리의 세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문학에도, 예술에도, 켐퍼스에도, 주점에도, 종교에도, 정치에도, 언론에도, 상업에도 성의 노골적인 유혹과 광기는 도처에서 현대인에게 `성을 숭배하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는 성의 홍수속에 살고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시대를 볻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음'의 뜻
간음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히브리인들은 `간음'(Nahab)이란 말은 불법성교(不法性交)를 말합니다. 즉 `기혼자가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 이외에 이성과 맺는 불법적인 성관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주로 기혼자들의 성법죄를 알컽을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미혼자들의 성적인 범죄를 일컽을 때 사용되던 `음행'이란 단어와는 그 뜻을 약간 달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모든 종류의 성범죄, 즉 강간, 남색, 수음, 동성연애, 매음행위, 혼전 성관계 등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특별히 현대는 성적으로 혼란하여 과연 간음이 죄인가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이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간음이 과거에는 죄였지만 현대는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영원히 사람이고 하나님도 영원히 같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변함없는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육체적인 간음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성욕이나 성적 생활을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에서는 성욕을 죄악시 합니다. 모든 죄는 성적 욕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것을 죄악히하고, 참다운 신앙생활을 할려면 성적 금욕생활으 하여야 한다고 주장힙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네 젊어서 얻은 아내와 즐기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성(Sex)는 하나님의 성스러운 축복이요,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많은 신자를 포함해서 성에 대한 이해가 비성서적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즉 성이 개방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혼전 성적 경험률이 급증했고, 미혼모의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혼휼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의 성도덕관이 이러한 세속주의에 영향을 받아 많이 저하디어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2)마음적인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5: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음욕을 품었다는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마치 암닭이 병아리를 품은 것 같다는 뜻입니. 시간이 가면 이미 결정된 그 결정으로 병아리가 되어 태어나듯 마음 속에 이미 간음하기로 작정해버린 그 마음이 바로 `음욕을 품었다'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잠언6:27절에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 하겠으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속 중심도 보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령님을 모시고 마씀을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3)영적인 간음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이외의 우상에게 마음이 매혹되어 신앙의 순결을 저버릴 때 이는 지체없이 간음의 범죄로 정죄되었습니다.`내가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다'(렘3:8)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배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선포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의 9절에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렵혔거늘'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신약성경에서는 `간음하는 여인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약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상을 섬기고 세속에 빠져서 살때 영적으로 간음한 것입니다.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약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상을 섬기고 세속에 빠져서 살때 영적으로 간음한 것입니다.
*`간음'의 결과
세상에 모든 죄가 형벌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간음죄에 형벌은 더욱 중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성경은 간음죄를 결코 가벼운 죄로 보지 않습니다. `언제 네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중죄(重罪)라 재판장에게 벌받을 악이요'(욥31:9-11)
1)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몸을 `하나님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 안에 가룩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십니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잘 이것을 행하는 자는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9잠6:3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기의 육체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파괴합니다.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18절에서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한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니라'고 했습니다. 순결한 영혼이 이 죄에 빠지자 말자 그의 눈은 빛을 잃어버립니다. 음행의 늪에 빠지자마자 그의 인격은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잠언 성경에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아니라'(잠6:26)고 했습니다. 이 처럼 음행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사냥하여 우리를 철저하게 파괴합니다.
2)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따럼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순결한 나라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6:9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주님의 나라는 깨끗하고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오염됨 성의 범죄를 정복하지 못하스스로의 마음속에 갈등과 더러힘을 당했던 영혼들은 이 나라에 참여할 수 없는 인격자입니다.범죄를 정복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마음속에 갈등과 더러힘을 당했던 영혼들은 이 나라에 참여수 없는 인
격자입니다.혼들은 이 나라에 참여할 수 없는 인격자입니다. 계시록에 둘째사망에 대가를 치뤄야 할 범죄를 열거하면서 `행음'기록하고 있습니다(계21:8)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3)가정과 사회를 파멸시킵니다.
이 범죄는 개인적인 범죄가 아니라 사회적인 범죄입니다. 성적인 범죄는 문화의 척도가 됩니다. 엘톤 트루물러드(Elton Trueblood)는 `문명의 부폐는 잘못된 도덕의 미화(美化)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시대가, 한 사회가 몰락하기 이전에 그 사회가 성의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원인은 바로 음행이였습니다. 폼페이의 최후의 로마의 멸망은 음란과 간음의 죄가 가져온 어둡고 무서운 최후였습니다. 부도덕을 정복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오래 살 수 없습니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 유혹을 이기는 길
1)유혹이 있는 자리를 피하여야 합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두가지 입니다. 대항하는 것과, 피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대항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물러갑니다. 그러나 성의 유혹은 피함으로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라고'(딤후2:22)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피함으로서 승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요셉입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디발 의 아내가 요셉에게 유혹할 때 그는 `네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가'(창39:9)라고 소리치며 그 옷을 버려두고 도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망이 이 문제에 대한 초대에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모든 음란의 방편을 거부하여야 합니다.2)부부의 사랑의 띠로 굳게하십시오.결혼은 육체만의 결합이 아니라 전인격의 결합입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니라'(고전7:3)고 했습니다. 이 처럼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기도와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우십시요.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생활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룩한 생활을 위한 두 수레바퀴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9-11)라고 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사람의 거룩한 인격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4)한가한 시간을 우리 생활에서 없앨 것입니다.이것은 음란하게 만들고, 범죄로 나아가게 하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왕도 왕궁을 배회하다가 그 한가한 눈에 목욕하는 한 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한가한 다윗왕으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제 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지니라'(출20:15)
도적질의 범죄는 살인, 간음과 함께 현대의 삼대 범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경제생활은 우리 삶의 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본 계명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생을 사는데 중요한 경제활동,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이 계명의 순종이 없이 우리 사회의 기초는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계명은 기독교 윤리의 근본이며 인간 공동생활의 필수적인 요건입니다.도적이란 말은 `옆으로 제처 놓는다'는 `가납(Ganaab)이란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도적질이란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잘못된 수단으로 재물을 다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적질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범죄는 도적질에서 시작합니다. 아담과 화와는 하나님이 금 것도 바로 이 범죄였습니다. 아니리아 삽비라는 지능적인 도직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헌을 약속하고되로 자신을 위하여 주님의 것을 빼돌리고 있었습니다.求. 그들은 하나님께 헌금을 약속하고되로 자신을 위하여 주님의 것을 빼돌리고 있었습니다.적질때문이요,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 유다는 신앙을 빙자해서 도적질을 하였습니다(요12:6) 또한 초대 교회의 부흥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바로 이 범죄였습니다. 아니리아 삽비라는 지능적인 도직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헌금을 약속하고되로 자신을
위하여 주님의 것을 빼돌리고 있었습니다.
`도적' 유형
1)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합니다.
하나님은 이 날, 하나님의 날로 드리도록 주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축복하신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귀한 날을 사사롭게 내 생각대로 이 날을 사용합니다. 이를 성경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말합니다.
2.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합니다(말3:8-9)
`너희가 도적이다' 이 말씀은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물질에 복을 받을려면 올 바른 물질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것이 하나님의 것이란 사실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는 어찌 잘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3. 하나님의 신령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신령의 도적질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사용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 맹세하는 것, 이런 것들이 신령한 도적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내가 받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도적이 되고 맙니다. 다니엘서 5장에 보면 그 좋은 예가 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단5:22, 23)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가 취하고자 하는 것도 도적입니다. 그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즉시로 왕위를 빼앗겼으며 들로 쫗겨나가 소처럼 풀을 먹는 비참한 최후를 맛이하게 됩니다
(단5:22, 23)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할 영광을 자기가 취하고자 하는 것도 도적입니다.
2) 이웃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정당하게 대하지 않는 모든것이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즉 부정직한 상거래도 도적질입니다. 레위기 19:35절에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호세아 선지자는 `손에 거짓저울을 가지고'(호12:7)라고 하였습니다. 빌리고난 후 갚지 않는 것도 또한 도적질로 간주합니다. 성경에는 사랑읩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햇습니다. 또한 고용인의 삯을 떼어 벗는 자본주의 행위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5:4)라고 하였습니다.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도 도적질입니다. 성경은 뇌물을 금합니다(출23:8) `불로소덕'의 정신, 일하지 않고 부를 획득하려는 시도는 도적질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의 생명, 이웃의 정조, 이웃의 명예를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자신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쓰는데 왜 도적질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것도 결국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청지기입니다(고전4:1) 청지기는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자들입니다. 청지기가 이 재산을 잘못 관리하는 것은 남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도적질의정신과 상통하는 것입니다.돛岵막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악한 병이로다'(전6:2) 재은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합니다.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악한 병이로다'(전6:2) 재산은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것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합니다.
* 도적질하지 않기 위해서 가져야 할 자세
1)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족하는 것을 배우고 현실에 만족하는 삶을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1절에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한국속담에 `올려다 보고 살지 말고 내려다 보고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정신과 통합니다. 주님은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롬12:16)라고 하셨습니다.`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라고 했습니다. 재물에 지나친 욕심은 화근을 만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사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고 했습니다.
남에 생활과 비교하여 생각해서도 않됩니다. 현대는 절대적인 빈곤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빈곤층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웃이 아파트를 넓은 평수로 이사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같은 평수로 이사 할려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교하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 입니다. 행복했던 아담과 이브에게 사탄은 찾아 `네가 하나님 처럼 되리라'고 갑자기 비교하여 하나님의 전능과,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비교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담의 행복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2)근면하게 일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일하기 싫기든 먹지도 말라'(살전3:10)고 했습니다. 주어진 삶에서 부지런하고 근면하여 사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게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3)이웃을 돌아보는 구제의 삶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주는 것을 배우기 전까지는 우리속에 있는 도적의 심리가 치료되지 않습니다. 것뿐만 아니라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는 것을 배우기 전까지는 우리속에 있는 도적의 심리가 치료되지 않습니다.
구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히13:16) 살아있는 신앙입니다(약2:14-170 개인이나 국가나 교회도 이웃을 향하여 주는 삶이 없이는 그 삶은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중세시대 교회가 인류의 걸작품이며 중요한 문화의 업적으로 남아 있는 성 씨스틴 성당이나 바티칸의 성 베드로 사원을 지은 후에 국가는 망하였습니다. 구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만을 치장할 때 중세의 암흑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고 하였습니다.옛날 히브리 사람들의 기도가운데 이러한 기도문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남을 구제할지언정 구제받지 말게하시고 우리 자손이 꾸어 주지만 꾸임을 받지 말게 하옵소서. 나와 우리 자손들이 남을 대접할지언정 대접받지 말게하시고 남을 주면서도 우리의 창고가 넘치게 하옵소서!'
제 9계명: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출20:16)
언어의 기능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언어에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전쟁을 승리로 이끌 때 그의 연설은 북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그 미약했던 영국이 그 거대한 제 3공화국 히틀러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처어칠의 연설 능력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게르마니아 사람들을 그처럼 단합되게 만든 것은 히틀러의 연설이였습니다. 말에는 이 처럼 힘이 큽니다.
우리의 인격을 밖으로 표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언어입니다. 그래서 니이체는 언어가 인생의 2/3를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언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축복입니다. `로고스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로고스라는 언어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표현으로 주셨지먄 타락한 사람의 혀가 저주와 참소와 악독과 거짓, 그런 것으로 그 기능이 바꾸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하교 어니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도적질하는 것과 거짖말하는 것과 어느 것이 더 나쁜 거예요?' 엄마는 이 아이에게 `그야 물론 조적질이 더 나브지'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에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니예요, 틀렸으요. 거짓말이 더 나빠요. 거짓말은 돌려 줄 수가 앖잖아요.'라고 했습니다.8계명은 이웃의 유형(有形)의 재산에 대한것, 9계명은 이웃의 무형에 재산인 명예에 관한 것입니다.
1. 거짓 증거의 특성
1)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죄이다.
모든 구약의 예언자들는 그 당시의 사회 부폐를 지적하면서, 사람들의 거짓됨을 공격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 아모서 선지자, 아사야 선지자, 예례미야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이 거짓의 본성을 지적했습니다.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장이라 하였도다'(시116:11) 그러므로 가장 고치기 어려운 영적질병이 거짓입니다.
2)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범죄입니다.거짓말을 하기전에 거짓말장이의 품성을 지닌 것이 더 문제입니다. 거짓이라는 우리의 본성 때문에 거짓말은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과 증거와 훼방'(마15:19)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이 부폐되괴 거짓된 성품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유발시킵니다. 이 죄의 근원은 궁극적으로 마귀입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가리켜 `거짓의 아비'라고, `저는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마'라는 말은 핼라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중상자, 비방자, 입이 험한자란 뜻입니다. 사단은 이 모든 거짓의 배후 조정자입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시며, 마귀는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미워하십니다(잠6:16) 따라서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6)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6)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의 유형
1) `참소'
참소란 말은 이웃과 벗에 대하여 고의적이고 파괴적인 거짓말을 뜻합니다.보디발의 아내가 자기 욕심대로 안되니까 요셉에 대하여 앙심을 품고 그 남편에게 참소를해서 요셉이 무고히 감옥에서 고생을 했습니다.또한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대단히 내성적이고 말이 없으셔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심방가면 가민히 않아 있지 말고 그 집에 대해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라고 권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심방 가서 눈에 띠는 것 중에 마음에 들기만 하면 칭찬을 합니다. 그 중에 한 집에 갔는데 참 가나한 집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칭찬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 하나가 바로 예쁘게 수놓은 책상보였습니다. 사모님은 수를 참 잘놓았다고 한참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그 집에 선물이 왔는데 그 책상보를 잘 개어서 다리고 포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목사님 사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겠습니까? 그것까지는 참 아럼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돌기를 목사 사모가 얼마나 탐심이 많아서 그 가난한 집의 책상보를 빼았아 왔느냐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어서 거동을 못하고 말을 잘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을 이웃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없이 함부로 합니다. 참소는 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참소를 버려야 합니다.
2) `헛소문의 유포'
소문이라는 것은 정확한 것이 못됩니다. 요사이도 그런 놀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람의 말이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나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놀이입니다.수 있는 놀이입니다.사람이 삼사십명 둘러 앉아서 첫사람이 그 옆 사람에게 `저 사람이 너를 좋아한대'하고 귓속말로 하면 그 다음 사람엑 그 말을 전합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듣는데로 전하지 않고 자기 감정을 섞어서 전합니다. 그래서 이말이 마지막 사람이 귀에 전할 때는 처음 말과는 아주 다른 말로 전해질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너를 좋아한대'하고 전했는데 마지말 사람에게는 `저 사람이 너를 족일 놈이라고 해'라고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전하는 말, 소문이란 정확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정확하다고 해도 좋지 않는 말은 아예 뭇어 버리고 잊어버리고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더 좋은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두루 다니며 험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20:19)고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 1장에서는 `수근수근'하는 것도 죄라고 했습닏. 3)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것.
예수님께서 ` 이 성전을 흘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죽어야 할 그 몸과 부활을 의미하시면서 하신 말씀인데 중상자는 그것을 문자적으로 고자질 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 조심하여야 합니다.말에는 다리가 없다고 합니다. 다리가 없기 때문에, 가교밑에 세우는 밑받침이 없기 때문에 한번 거짓말을 하면 계속해서 밑받임을 세워야 합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그리고그 중심을 살펴야 합니다.
#거짓에서 승리하는 비결
1. 거짓을 죄로 여기십시다.
어쩔 수 없으니까 하며 합리화시키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정하십시요. 죄로 여겨지기 전까지는 해결이 안됩니다.`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2.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마십시요.
많은 거짓말이 남의 일을 간섭하는 데서 유발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남에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 일에 충실하고 이웃에 일은 하나님께 맡기도록 하십시다. 우리는 사실을 다 알지도 못한체 남을 비난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타인이 깊은 사정, 아픈사정, 슬픈사정을 잘 모릅니다. 그들이 잘 될 때는 말을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못 될 때만 고라가면서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중에 더 발로 밟고 있습니다.
오빠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견디가 못한 가난한 누이가 몸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작 오빠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이야기를 하고 떠블었던지 그 사실이 오바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오빠는 그 충격으로 그만 자실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여동생도 자기가 몸을 팔아서 살려놓은 오빠가 목숨을 끊어버리자 따라서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장례식날, 그 교회 목사님은 울면서 설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날 `너 아무게 목사야! 네가 네 양때를 얼마나 돌아보았느냐'고 물으신다면 `예, 저는 양이 한마리도 없고 이리떼만데리고 있다가 여기 왔
습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우리가 남의 일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해버리는, 쉽게 입으로 뱉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 생활을 위해서 진지히게 기도하십시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옵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잠언 기자도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잠30:8)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4. 날마다 주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누구와 만나서 어떤 말씨를 배우느냐에 따라서 내 말의 습관이 달라지지맙시다.“어떤 모습으로 말을 배웠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우린 주님과 날마다 교제해야 합니다. 기와 찬송을 중심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는 생활을 살기를 바랍니다.
교제해야 합니다. 기도와 찬송을 중심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는 생활을 살를 바랍니다.배워가지고 오는 것이라곤 욕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듣기 싫은 욕을 하든지 제가 매를 들었더니 `이 도독놈아!' 그러는 겁니다. 누구에게 이떤 모습으로 말을 배웠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우린 주님과 날마다 교제해야 합니다. 기도와 찬송을 중심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는 생활을 살기를 바랍니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은 손이 없지만 손이 하는 일을 한다.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손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손은 가까이 있는 사람만 죽이지만 말은 멀리 있는 사람도 죽인다. 화살처럼, 그렇지만 화살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화살은 손으로 막을 수 있지만 말의 쏘아대는 무서운 살상력은 피할 세력이 없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참이신 하나님, 거룩하신 진리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정결하고 아름다운, 그분께서 기대하시는 언어생활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니와 삽비라(행5:3), 그들은 거짓말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언어로 하나님께 영왕을 돌리십시다.
제 10계명: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20:17)
지금까지 계명들은 다 우리 죄악의 행위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 범죄 행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젼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열째 계명은 볼 수 없는 죄입니다. 탐심은 죄의 욕망이며, 죄악의 동기이며,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하고 있는 죄입니다. 이것은 행동과 관계이기 보다는 내적인 정서와 더관련이 깊은 죄입니다..-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사 성경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쳐라'(눅12:15)고 하십니다. 아간의 탐심은 은을 숨겨 놓았습니다. 이 범죄로 아이성에서 패배했습니다. 사울왕은 황소 몇마리를 탐하다가 그의 왕관을 잃었습니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몇마리를 탐하다가 그의 왕관을 잃었습니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입성했는데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진멸하고 아무것도 갖지 말라라고 그랬을 때, 아간은 외투와 은을 숨겨 놓았습니다. 이 범죄로 아이성에서 패배했습니다. 사울왕은 황소 몇마리를 탐하다가 그의 왕관을 잃었습니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1. 탐심의 성격
1) 모든 죄에 뿌리가 됩니다.
앞에 있는 모든 계명이 바로 이 탐심의 결과로 옵니다. 그래서 탐심은 `모든 죄의 어머니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욕심(탐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1:15)고 말합니다. 탐심 때문에 도적질도 합니다. 간음도 합니다. 싸움도 합니다. 심지어 살인까지도 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탐하여 간음죄와 살인죄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2)이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탐심이란 뜻은 `더 움켜쥔다'라는 것입니다. `탐심은 곧 우상 숭배니라'(골3:5)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탐심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쾌락을 탐하던 사람들의 신(神)은 배'(빌3:19)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은 탐심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고있기 때문입니다.
. 탐심의 결과
1)신앙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영적인 욕망과 육적인 욕망이 동시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욕망이 커지면 다른 욕망은 좌절되고 맙니다. 탐심이 내 영혼을 물들게 하면 영적인 식용, 곧 말씀의 맛이 없어져서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2) 육적인 건강을 파괴합니다.
잠언 성경은 `탐심을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잠28:16)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탐욕은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는 말입니다. 사람중에도 이런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루 동안에 밟고 걸어다니는 땅을 다 네 으로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농부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있는 힘을 다해서 전력으로 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 늦게까지 전력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대한의 많은 따을 차지하고 나서 그가 떠났던 출발점에 도착했을 때 기진맥진한 나머지 쓰려져 죽고 말았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보다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3. 탐심의 죄를 극복하는 방법
1) 이 세상의 모든것은 무가치하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잠언 성경은 말하기를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돈가지고 만족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없습니다.
2)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욕심을 갖고 탐심의 죄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진정 만족은 행복의 면류관입니다(빌4:12,13)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13:5)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
3)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하느니라'(잠21:26)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배우기 전에는 욕망으로부터 자유할 수가 없습니다.
*십계명의 결론
십계명은 하나님을 하는 삶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매
사에 이 계명을 중심해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주님께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