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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청문회 임승국 (6-2) "대륙백제, 백제가 하북성 유역을 점유"
(중국 정사인 25사 기록마져도 부인한다면 차라리 역사를 논하지 말자)
사학은 중국의 정사인 25사를 토대로 하여 성립되고 있다 그래서 제가 주도하는 학회는 "한국정사힉회"이다
백제를 규명하는데 있어 제가 동원한 사료는 중국의 정사인 "25사"이다 중국의 정사인 25사는 여러분도 알겠지만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진서""송서""양서"......등등 이렇게 명나라의 역사책인 "명사"까지 25개왕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중국 25사 가운데 "백제전"이라고 하는 기록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사서는 사기, 전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다음의 "송서"이다 즉 25사중 6번째인 것이다
그 다음에 "양서, 남제서, 북제서, 주서...." 이렇게 해서 "명나라 역사"까지 이것이 중국25사의 체계인데 우선 송서의 기록부터 한번 소개하려 한다
"송서, 양서"의 기록은 꼭같다. 이런 정사의 기록을 가지고 얘기해야 하며 결코 야사나 비정규사료로는 들지 않겠다
중국역사의 기록도 부인한다면 학문하지 말자는 얘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중국정사 송서(宋書)에는 백제가 하북성 유역에 있다고 하였다)
(유성과 북평지간 : 진평이군 점유)
송서의 백제전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백제자 후점강대 겸제지국 百濟者 後漸强大 兼諸小國
기국 본여구려 재요동지동 진세 구려기략유요서
其國 本與句麗 在遼東之東 晋世 句麗旣略有遼東
백제전거유요서진평이군의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
금유성북평지간 今柳城北平之間
자치백제군" 自治百濟郡 (송서.백제전)
이렇게 원전을 읽어 봤자 잘 이해하지 못할(처음보니까 ?) 것이므로 간단하게 해설하겠다. 즉, "백제라고 하는 나라는 후에 점점 강하고 커져서 여러 작은 나라를 병합하고 그 나라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는데 진나라 때 (3세기 중엽)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역시 요서진평의 2군을 점령하니 지금의 유성과 북평 사이로다"
(유성과 북평지간 진평2군)
- 본 홈페이지에 소개한 "고 북평"은 북경 서남쪽에 있음을 밝혔다
- 어찌하였던 하북성 유역이다
여기서 '고구려'를 '구려'라고 적은 것을 좀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는 모르나 이는 중국사람들의 필법이다 어떤 사람은 '구려'와 '고구려'를 구별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똑같은 나라이다
"구려(句麗)"에는 "고(高)"자를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왜 안썼는가 하면 중국사필처럼 오만한 사필은 없다 "고"자가 높을 "고"자이기 때문에 안 쓴 것이다
왕망이란 자가 한을 멸망시키고 "신"이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그는 주변에 있는 나라이름 산의 이름과 지명들을 멋대로 고쳤는데 그는 '고구려'라는 나라의 이름을 "고"자가 보기 싫어 "하(下)"자로 고쳤다 그래서 '하구려"라고 불렀다 중국인들의 심뽀를 이만하면 충분히 알 것이다
(중국놈들 역사기록의 원칙 3가지)
그렇지 않아도 중국사필에 세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 중국을 위해 중국의 수치를 숨기고
둘째 "긍화하이누이적(矜華夏而陋夷狄)" - 중국을 높이고 외국을 깍으며
셋째 "상외략외(詳內略外) - 중국내국의 역사는 상세하게 외국의 역사는 간략하게 적는다
이러한 불손(不遜)한 사필정신 밑에 역사를 적었으므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구려는 고구려의 낮춘말)
"여구려 재요동지동(本與句麗 在遼東之東)"이라고 '고'자 쓰지 않고 '구려'라 한 것이다
"기국 본여구려 재요동지동(其國 本與句麗 在遼東之東)"
이라는 대목의 '요동'도 현재의 '요동'이 아니고 상고시대의 '요동'이다
(요동은 만리장성 동쪽)
위에서 "갈석"의 사료를 말하자면 '요동의 개념'을 여기서는 알기쉽게 만리장성의 동쪽을 요동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현재의 한국사람보고 백제의 위치를 적으라고 한다면 "백제여신라재반도지서남지의" "百濟與新羅在半島之西南地矣"라고 적을 것이다
그런데 송서 백제전은 "기국 본여구려 재요동지동" "其國 本與句麗 在遼東之東"이라고 적었다
위의 송서 백제전을 계속해서 해석하면
(AD 3세기 진나라때 이미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
(AD 3세기 진나라때 백제가 하북성을 점령)
"진나라 때 (3세기 중엽)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역시 요서진평의 2군을 점령하니 지금의 유성과 북평 사이로다"
위의 진(晋)시의 진나라는 265년에 건국하는데 이때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점령했다 한다
또 위의 "백제전거유요서진평이군의(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라는 말의 '요서 진평 2군'이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 말이다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했는데 백제는 요서와 진평을 점령했다 했다
요서가 한국땅이 아니고 중국땅인 것은 확실하다 요서만이 아니라 진평군의 2군의 땅을 점령했다고 정식으로 적었다
"주(註)"에 적혀있는 것을 보면 "유성북평지간(今柳城北平之間)"이라고 했다 버들 "류(柳)"자와 재 성(城)자 ! 아마 좀 낯선 지명이지만 그러나 지도를 찾아 보면 황하남쪽에 유성이 있는데 하남성이다
북평은 아마 모르시는 분이 없을 거다 오늘날로 중국의 서울이고 "유성과 북평사이"에 요서군, 진평군이 있었는데 "자치 백제군(自治百濟郡)"이라 했다 즉, "백제가 백제군을 자치했다"고 한 것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정사의 기록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국사학계)
여러분 이는 정사의 기록이며 특히 동양정사의 기록이다 나는 여러 가지 수수께끼가 많이 있지만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이 글은 피해자인 중국측의 기록이다 그런데 국사당국은 어째서 이 기록을 못본체 하는 것인가~
중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백제에게 자기의 땅을 뺏기고 주권을 유린당하고 피해를 입은 나라이다 그런데 중국사 속에 백제가 요서 진평의 두 군을 점령했다
"자치백제군"을 했다고 적었는데 왜 우리 국사당국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다 여기다가 살을 붙이고 분칠을 하고 아름답게 꾸며서 적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왜곡된 우리의 중요한 역사적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사료(정사의 기록)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사료라고 하는 것은 역사사실이라고 할 때 당연하게 협상의 대상이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료를 있는 그대로 우리 국사교과서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자는 자료를 단편적인 기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 역사 왜곡은 멈추지 않고 있다
(백제의 대륙경영 기록은 송서뿐아니라 25사 전체에 걸쳐 나와...)
송서 한군데만이 기록이 있는 것이라면 단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많은 자료에서 증명을 해준다 "송사, 영사, 북제사, 남제사, 주서........"심지어 "만주원류고"까지 이러한 기록으로 꽉 찼다
이렇게 분명한 기록을 왜 무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는 한국의 영광과 관계되는 기사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영광과 주체성이 가득한 책만 골라 못된책이라 배척하는 국사학계)
(만주원류고, 요사지리지)
그 증거로 이용범 교수는 한국의 영광이 강조되고 한국의 주체성이 뚜렸한 책 ! 예를 들면 "만주원류고"나 "요사지리지" 같은 책을 모조리 잘못된 책이라고 나무랬다 25사 중에서 "지리지" 가운데 가장 참고 할 것이 많은 "지리지"가 "요사지리지"인데 하필이면 이런 주체성 있는 책은 용케도 골라서 못된 책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현대판 숭명사대주의자 삼학사 들이 등장한 것 같아요)
이것은 지난날 숭명(崇明) 사대주의자들이 하는데 명나라가 제일이고 명나라가 미워하는 나라는 청나라이고 만주족이다
그런데 지금와서 과거에 명나라가 미워 했으니까 청나라에서 쓴 책이나 만주족이 쓴 책(요사도 마찬가지입니다)은 모조리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숭명사대주의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현대판 삼학사들이 다시 나왔다 이땅에 삼학사 전통을 이어 받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지금 소개한 "백제사료"는 "절대사료"이다 다시한번 여러분들한테 읽어보라고 다시 한번 살펴본다 절대사료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백제자 후점강대 겸제지국 百濟者 後漸强大 兼諸小國
기국 본여구려 재요동지동 其國 本與句麗 在遼東之東
진세 구려기략유요서 晋世 句麗旣略有遼東
백제전거유요서진평이군의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 라"
이렇게 중대한 기록을 왜 외면하며, 외면하는 이유가 어떤것인지 모르겠다
(계 속)
지난 가을 북경에서 상해까지 14시간의 기차여행을 하면서 본 것은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와 수없는 강과 호수였다 단 하나의 구릉지도 없는 북경과 상해까지의 1,200여키로의 땅이 중국 전체를 먹여 살리는 "화북평원"이었던 것이다 그 땅을 백제 동성왕 시절 백제가 7개군으로 나누어 백제장군 7명(태수)을 보내어 통치를 하였다 한반도 작은 호남, 충청지역의 백제가 열배가 넘는 대륙을 경영하였다는 것이 맞는 말인지, 백제의 본토가 대륙에 있었다는 것이 맞는 말인지 과연 무엇이 상식에 맞는 역사해석일까?
이하 참고바람 감사~~
(북경에서 상해까지 펼쳐진 화북평원)
▒ 국회청문회 임승국 (6-4) "대륙백제, 중국동해안 전체를 통치하다"
(중국대륙의 옥토 전체를 백제가 7개군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어떤 분이 백제나 상해 등지를 통치했다는데 대해서 말하는제 그것은 하나의 가공이 아닌 사실니다 이에 대해서 중국사가 이렇게 적고 있다
"동성왕의 국서"인데 오늘은 제가 그 윤곽만 말하고 다음 공청회때 좀 더 자세한 발언을 하겠다
"중국 25사의"의 "남제서백제전"을 보면 참 기가막힌 내용이 있다
(동성왕 재위기간 31년 = 남제 존속기간 31년(왕이 5번 바끰))
동성왕(東城王)은 중국의 남북조시대의 인물인데 묘하게도 "남제가" 건국하는 해에 동성왕이 임금이 되셨고 남제가 멸망하는 해에 동성왕도 승하(昇遐)하셨다
그러니까 동성왕 1대하고 남제라는 나라의 길이가 같다 남제와 같은 이런 "미니제국"이 또 어디 있었을까 ?
정말 "미니왕국"이다 이 남제라고 하는 나라가 31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백제 동성왕 역시 31년 동안 재위하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31년 동안에 남제의 왕은 다섯사람이나 등락을 한다 그러니까 한 임금의 평균 재위기간이 6년 되는 셈이다
(백제 동성왕은 남제의 소란왕에게 국서(國書)를 보내여 중국 동해안을 7개 구역으로 나누어 7명의 백제장군이 통치하게 하였다)
그어나 백제의 동성왕은 남제(南薺)의 소란(簫蘭)이라는 왕한테 국서를 보냈다 "레트 어브 스테이트"(Latter of state) "국서(國書)" 이다
이 국서의 내용이 "남제서" 백제전 속에 꽉 들어 차 있다 현대인이 이 "남제서"의 백제전을 보고서 놀라지 않는다면 우리 한국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동성왕은 중국의 산동반도에 남쪽으로 상해까지 중국의 북경에서 동해안을 "7개지역"으로 분할하여 백제의 장군 7명에게 그 통치권을 위임한다는 글을 전기(前記)의 남제 "소란"왕에게 국서로 보냈다
자 ! 여기를 보세요
(중국지도)
(동해안 지역 옥토는 전부 동이의 땅)
중국의 지리적인 여건은 동해안에 평야지대가 밀집되어 있다 "북경에서 상해까지"는 지도만 봐도 파란 색깔로 칠해진 평야지대이다
여러분들에게 참고적으로 말씀드릴 것이 있다 중국 역대왕조가 가지고 있던 수도가 어딘지 알아야 한다 이 평야지대 살기 좋은 이 곳에 있는 줄 아는가 산서성 서쪽으로 여기 태행산맥이라고 하는 산맥이 흐릅니다 지도상으로 이렇게 벌겋게 표시되어 있다
(중국 역대왕조는 황무지 고원지대 섬서성에 도읍하고 동쪽의 옥토 "동이의 땅"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이 섬서성(陝西省)에
- 주(周)나라 은(殷)나라 때의 장안(長安), 호경(鎬京)
- 진(秦)나라때의 함양(咸陽)
- 심지어 당(唐)나라때 서안(西安)도
모두 이 곳에 있다 지금의 지도에도 호경, 장안, 서안, 함양은 모두 섬서성에 표시되어 있으며 이 섬서성은 흉악한 산골짜기다 여기에 역대 중국의 수도가 있었다
이런 산골짜기에 사는 중국 사람들이 그 동쪽의 살기 좋은 평야지대에 살고 있는 우리 "동이족"을 얼마나 부러운 눈으로 선망(羨望)의 눈으로 보았을까 ?
(동이(東夷)는 오랑케가 아닌 어질"인(仁)"자와 같은 뜻)
그래서 저들은 우리를 "동이(東夷)"라고 했다 "이(夷)"라는 글자를 오랑케 "이"라고 읽어서는 안된다 "설문"이라는 책에서는 "이"자를 "여고문인동(與古文仁同)"이라고 했다 즉 고문의 어질 '인"자와 같은 글자라 한다 뿐만아니라 중국고전은 이 "이(夷)"자를 굉장히 선망하는 찬사(讚辭)를 써서 적고 있다 어제 "동이 가운데서도 예맥........만이 한국족"이라고 김철준 박사가 말씀 했는데 그런 단정적인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난 동이 뿐만이 아니라 서이(西夷)도 우리 계통이라고 본다
"순동이지인야(舜東夷之人也)" "주문왕서이지인야(周文王西夷之人也)"라
이는 맹자의 기록이다 그러니 "夷"자는 마찬가지이다 어찌 달리 볼 수 있을까 ?
(중국 동해안의 사람이 살수 있는 옥토는 전부 백제가 통치하였다
그런데 "북경에서 상해까지" 중국의 실질적인 가주지역(可住區域 : 사람이 살수 있는 대륙) 그 전부를 7개로 나누어서 백제장군 일곱사람에게 통치권을 맡기는 글을 남제의 소란이라고 하는 왕한테 보냈다 그 당시 남제는 백제와 우호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협조공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중국사필은 예(例)의 그 오만불손(傲慢不遜)한 사필로서 이 남제서에 손질을 했다
(계 속)
▒ 국회청문회 임승국 (6-5) "대륙백제, 7태수 관할지역 및 8대성씨는 대륙"
(중국놈들이 사서에 가필을 하였다)
가령 동성왕이 목간나(木干那), 찬수류(贊首流)... 등 7장군을 태수로 임명했는데 그 국서의 서두에 동성왕이 "신(臣)......가임(假任) 목간나......위광위장군 운운(爲廣威將軍 云云)"이라 하고 끝머리에는 "복원(伏願)......청제 운운(聽除 云云)"으로 기록한 것처럼 조작 했다
즉, 동성왕이 31년간 겨우 존속한 남제의 왕한테 "신칭(臣稱)"하고 "신자석수봉운운(臣自昔受封云云)"했을 ?� 있습니까 ? (신이 옛날부터 封을 받자옵고....운운)
또 "臣이 목간 나를 임시로 임명 하였사오니.....원컨대 제수(除授)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을리는 없다 정말이지 이는 "갓뎀 !"이요 "네버 하픈"의 헛소리이다
따라서 이러한 가필만 빼고보면 이것은 백제의 뚜렷한 영광이다 중국의 동해안을 "원 사이드"하게 지배했다는 말이다
(백제 일곱장군의 성씨는 중국에 존재한다)
또 백제 7장군의 성씨만 훑어봐도 사학을 아는 사람은 깜짝 놀랄일이 있다 왜냐하면 백제에는 본래 8대 성씨가 있는데 중국 25사와 우리 삼국사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혹 묘씨) 협씨"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卯氏(或 苗氏) 協氏"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백제 8대성씨가 현재 남북한을 통틀어 단 한 가구도 남지 않았는데 남제서 백제전의 7장군 성씨들은 대부분 유서깊은 8대성씨들이라는 사실이다
(백제 일곱장군의 통치지역은 중국 동해안 전체)
동성왕은 그 장군들에게 중국의 동해안을 지배하는 통치권을 위임하는 글을 적었다 아무 장군은 여러모로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청하태수(산동성)로 임명한다는 등의 기록을 남겼다
때문에 그 당시 북조가 위나라인데"위나라의 군대를 무찔러서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붉게 물들였다"(강시단야( 屍丹野))라고 적힌 글을 보면 정말 피가 끓는다
백제 장군들이 임명된 지명들만 흝어봐도 이는 순수한 중국대륙의 지명들이지 한국의 동국여지승람 등 지리서나 사서에 나오지 않는 이름들이다(조선, 낙랑, 대방 만을 제외하면) 즉, 광양태수, 광릉태수, 청하태수, 성양태수, 낙랑태수(북평태수), 대방태수(북평태수), 조선태수(역사 북경지방) 등 이다
(참고)
<조선성재금영평부(북경) 경내 (대명통일지)>
<朝鮮城在今永平府(北京) 境內 (大明一統志)>
상기 지명들은 모두 중국땅에 있는 지명들입니다
(지명위치)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조 부분을 없애버렸다)
그런데 묘한 것은 중국사가들이 남제서 백제전을 보다가 자존심에 걸렸던 모양이다 당나라 때의 사가의 짓으로 봅다마는 남제서백제전 서두부분을 "북!" 뜯어냈다 백제의 영광이 하늘을 찌르고 중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니까 그게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아마 문교부에서 갖고 계신 25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도 두 질이 있는데 두질(帙) 다 그런다 그리고 그 공간에다 글자 네 개를 박아 놓았다 이것은 중국사가의 양심을 표(表)한 것이다
"이하결문(以下缺文)"이라고 하는 공란 다음에 계속되는 글의 내용이다 사실이 뜯겨 나간 자리에 있었던 백제의 영광 동성왕의 영광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을 거다
(남제서 삭제 부분)
여러분들 빨리 남북통일 해야 한다 그래서 옛날처럼 자유중국 중국대륙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면 나부터 먼저 중국땅에 가겠다
이 "이하결문"의 공란속에 들어 있던 글을 찾으러 가겠다 중국땅에 가면 찾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중국말을 할 줄 안다 거기서 중학교 4학년까지 다녔으니까 저기 송지영 교수께서 계신데 아마 중국말 썩 잘 하시는 줄 안다 우리 모두 총동원해서 중국에 가서 이를 찾아오야한다 이것도 국사 바로 잡는 작업의 하나이다 이러한 백제의 기록을 외면하고 있는 현 사단의 아리송한 태도나 그 이유를 모르겠다
"대륙백제를 외면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