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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관사일주문-삼천사-삼천리골-청수동암문-문수봉 코스
진관사 일주문 아래 계류를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자마자 [←사모바위2.9km, ↑비봉2.4km,향로봉2.4km]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앞에서 왼쪽 팬스가 쳐진 산길로 접어들어 두 기의 커다란 공덕비 옆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어 완만하게 3분 정도 오르면 길이 두갈래진다.
왼쪽길은 삼천사로 넘어가는 안부로 이어지고, 오른쪽길은 응봉능선으로 오르는 길이다.
왼쪽길로 2분 정도 더 오르면 응봉능선의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 [→사모바위2.9km, ↑삼천리골0.2km, ↓진관사0.1km] 이정표가 있다.
곧장 안부를 넘어 완만하게 4분 정도 내려서면 폭포수식당이 있는 계곡을 건넌다.
계곡을 건너 우측으로 올라서면 작은 주차장이 있고 <삼각산적멸보궁삼천사100m>표지석이 있다.
이곳에서 삼천사입구 도로에서 곧장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표지석을 지나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다리를 건너 3분을 오르면 우측으로 응봉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갈라져 나간다.
이 길은 응봉 정상 직전에 진관사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만난다.
[→비봉3.0km, →사모바위2.8km, ↑문수봉2.9km,부왕동암문2.1km,삼천사0.3km] 이정표가 있다.
계속 도로를 따라 4분을 더 오르면 삼천사에 닿는다.
입구에 샘이 있어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하면 된다.
<삼천사 경내의 마애불>
북한산 증취봉(甑炊峰) 서쪽자락에 넓게 자리했던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 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 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현재의 주지 평산 성운 화상이 부임하여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하여 보물로 지정받고 3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수많은 참배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그 밖에 사찰에서 2km 위쪽에 위치한 옛 삼천사 터에는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삼천사의 유물
□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호)
마애여래입상은 삼천사 경내 대웅전의 위쪽으로 30m 지점 계곡의 병풍바위에 각인되어 있다.
불상의 어깨 좌우에 큰 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 앞에 목조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3.02m, 불상 높이는 2.6m에 달한다.
고려시대 불상 중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된다.
얼굴과 윗몸은 돋을 새김을 하였으나 하반신과 광배 그리고 대좌는 볼록한 선새김으로 마치 강한 선묘화(線描畵) 같은 느낌을 준다.
머리광배[頭光]는 겹둥근 무늬로 소발(素髮)한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다.
살짝 뜬 눈은 눈꼬리가 귀 가까이 닿았으며, 두툼한 코와 연속된 양 눈썹 사이에는 작은 백호공(白毫孔)이 뚫려 있다.
신광(身光)은 한 줄로 새겼다.
신체는 비교적 장신이지만 비례가 자연스러우며, 옷차림을 보면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의이나 넓게 'U'자 모양으로 트인 가슴에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비스듬히 걸친 내의와 띠대들이 보인다.
법의는 다소 두껍게 나타내어 새로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수인을 살펴보면 오른손은 내려뜨려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있으며, 왼손은 배 앞쪽으로 무엇을 가볍게 받들어 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발 밑의 대좌는 연꽃잎이 위쪽으로 피어난 앙련의 연화좌이며, 꽃잎은 단판 중엽이고, 꽃잎 사이에는 간엽이 표현되어 있다.
조성된 바위 위에는 또 다른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어 마치 불상의 보개(寶蓋)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상호가 원만하고 신체도 균형을 이루었으며, 옷자락도 부드럽게 표현되었고, 양각과 음각의 조화를 잘 살린 매우 우수한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 대지국사탑비 귀부 및 이수
귀부의 크기는 높이 137.5㎝, 넓이 240㎝. 길이 270㎝, 이수의 크기는 가로 185㎝, 세로 55㎝, 폭 80㎝이다.
귀부는 용의 머리와 흡사하게 표현이 되어 있으며 背面에 육각형의 귀갑문이 베풀어져 있는데 그 안에 ‘王’자가 새겨져 있다.
또한 발부분을 ‘L’자형으로 처리하여 비늘문을 장식했고, 귀갑대를 주 름문으로 표현하여 돌리고 연주문을 장식한 점 등은 고려 전기 법상종 사찰 인 현화사비, 원주 법천사지 지광
국사비,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금산사 혜덕왕사비 귀부의 양식과 유사하다.
이수는 귀부 정면에 놓여 있는데,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두 마리 용을 운문과 더불어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앞뒷면에 각각 두 마리씩 배치하여 대칭적인 모양을 보여주고 있으며, 측면에도 운룡문이 베풀어져 있다.
□ 부도지대석과 하대석
귀부 정면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2m 떨어진 지점에 부도의 지대석으로 추정되는 장대석 4매가 ‘口’자 모양으로 놓여 있는데, 크기는 가로 190㎝, 세로 180㎝, 지대석 동쪽에 방형의 판석으로 만들어진 하대석이 상하가 뒤집혀 놓여 있는데 크기는 가로 130㎝, 세로 140㎝이다.
하대석의 각면에는 眼象이 3구씩 배치되어 있다.
□ 塔碑殿址
대지국사탑비의 귀부에서 동쪽으로 약 4m 지점에 위치.
건물지의 주향은 북동-남서방향. 산사태로 인한 토사 및 거석의 매몰과 민묘의 조성으로 인해 건물지의 1/4정도만 노출되어 건물지의 구체적인 규모를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대칭적인 구조를 감안하면 정면 3칸, 측면 2칸 정도의 규모로 추정된다.
어골문계열과 초화문계열의 기와와 귀목문 막새 등이 출토되었고, 석축기단하부, 문지하부, 축대하단에서 鎭壇具로 보이는 도기호와 水晶片(六角), 청동수저, 동전 등이 출토되었으며, 명문비편을 포함한 대지국사비편이 유구 전역에서 수습되었다.
□ 건물지
A지구 탑비전의 조성방식과 같이 능선의 일단을 정지하여 화강암괴석을 활용하여 축대를 쌓고 건물지를 축조했으며, 중앙건물지 가운데 불단으로 보이는 시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법당지로 추정된다.
건물지의 주향은 동-서방향이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계단부가 심하게 붕괴되어 있으나 다행히 여타 구조 물들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중심건물지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추정되며, 정면 주초간 거리는 270㎝이다.
4개의 주초 중 3개가 남아 있고 나머지 1개는 교란되어 있는 상태이다.
건물지 안쪽에 화강암 장대석으로 만든 불단이 있는데 잔존부 크기는 가로 190㎝×세로 170㎝이다.
건물지 하부에 온돌시설의 일부인 고래가 지나가는데 5열이 확인되며 화강암할석과 기와편을 사용했고 점토를 활용하여 마감하였다.
출토유물로는 유구 전역에 걸쳐 분청사기 인화문편과 도기편 등이 수습되었으며, 기와류로는 청해파문과 복합어골계의 와편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입구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절 뒤 철문을 지나면서 산길이 시작된다.
나무다리를 건너 계곡을 끼고 산길이 이어지는데 수량도 풍부하고 매우 수려한 계곡이다.
<삼천사를 지나 다리를 건너는 계곡의 돌탑지대>
나무다리를 건너 2분을 오르면 우측으로 작은 쏠이 떨어지는 멋진 소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5분 정도 더 오르면 경사진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폭과 담이 나온다.
와폭 위로 오르면 작은 비선대라 불러도 좋을만큼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폭포 위쪽은 암반 옆으로 밧줄을 설치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와폭 위의 암반지대>
와폭을 지나 2분을 오르면 산길이 갈라진다.
좌측 산길은 의상능선의 용출봉 방면으로 오르는데 [등산로없음]표시가 되어 있으며 이 길은 옛 절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암장과 운동장바위를 지나 용출봉 동자석으로 곧장 올라서는 길이다.
[비봉2.3km, 문수봉2.2km]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에서 계속해서 삼천리골 주계곡을 따라 비봉방면 산길로 4분을 더 오르면 또 한번 길이 갈라지는데, 역시 좌측으로는 [등산로없슴]표시가 있고, 우측으로 [비봉1.9km, 문수봉2.2km, 삼천탐방지원센터2.3km] 이정표가 있다.
좌측 샛길은 증취봉 강아지바위 방면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계속되는 주계곡길을 따라 2분을 더 오르면 문수봉방면과 사모바위 방면으로 산길이 두갈래진다.
좌측 길은 문수봉방면으로 [문수봉2.1km, 부왕동암문1.1km] 이정표가 있고,
우측길은 사모바위 방면으로 [비봉1.8km] 이정표가 있다. 삼천탐방지원센터까지는 2.4km 거리.
우측 계곡 바로 위에 병풍을 펼친듯한 바위벽에 멋진 폭포가 걸려 있다.
평소에는 수량이 적지만 우기시에는 제법 웅장한 폭포가 걸린다.
상단부는 와폭을 이루고 하단부는 수직폭이다.(높이 약 20m)
<부왕동암문과 사모바위 갈림길 합수점에서 사모바위 방면인 우측 계곡에 걸린 폭포>
폭포 아래의 합수점에 있는 이정표 갈림길에서 왼쪽 부왕동암문 방향길로 접어든다.
계곡길은 바로 위에서 오른쪽으로 건넜다가 다시 왼쪽으로 건너 이어진다.
완만한 계곡길로 3~4분 더 오르면 또 하나의 합수점에 닿는다.
[→문수봉1.8km, ←부왕동암문0.8km, ↓삼천탐방지원센터2.7km]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13분 정도 오르면 계곡을 왼쪽으로 건너 이정표를 만난다.
[삼천탐방지원센터3.1km, 문수봉1.4km, 청수동암문1.2km]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4분을 더 들어서면 우측 계곡 건너편 위로 하단이 오버행을 이룬 커다란 바위가 보이고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난다.
[문수봉1.3km, 청수동암문1.1km,삼천탐방지원센터3.2km]라 표기되어 있고 산길이 두갈래지는데 초행자는 착각하기 쉬운 곳이다.
이정표에 표기된 청수동암문과 문수봉은 한 방향으로 오른쪽 계곡옆으로 내려섰다가 잠시 후 골을 우측으로 건너야 한다.
이정표에서 곧장 직진하는 왼쪽 사면길은 의상능선 상의 나월봉 횃불바위로 올라서는 나월능선길이다.
초행자들은 청수동암문을 목표로 하면서 무심결에 이 나월능선길로 접어들곤 한다.
나월능선 갈림길 이정표에서 우측 계곡으로 내려서서 잠시 오르면 오른쪽으로 계곡을 건너간다.
바로 위쪽에서 계곡이 두갈래진다.
왼쪽 협곡 초입에 월한폭포라 부르는 폭포가 걸려 있다.
이곳으로 접어들어 우측 지능선을 오르면 릿지구간을 거쳐 나한봉으로 이어진다.
계곡분기점에서 우측 계곡으로 7분 정도 오르면 마지막 합수점에서 다시 계곡이 두갈래진다.
우측 계곡은 승가봉 방면으로 패어들어가고, 청수동암문 방향은 왼쪽 계곡이다.
마지막 합수점에서는 일단 오른쪽 계곡으로 들어선다.
계곡으로 들어서자마자 길은 다시 두 계곡 사이를 따라 왼쪽 계곡으로 접어든다.
이후 연화봉 암벽을 우회하는 산길에 이르기까지 줄곧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계곡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문수봉을 올려다보며 20분 정도 오르면 오버행 천정을 이룬 바위 아래를 지나 119구조처 [현위치 북한산58-06] 표지목을 만난다.
표지목에서 2분 정도 더 오르면 [비봉1.5km, 삼천탐방지원센터4.0km, 문수봉0.2km] 이정표에 닿는다.
승가봉에서 연화봉 암벽 오름길 아래의 위험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청수동암문으로 우회하는 길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15분 정도 더 오르면 청수동암문에 닿는다.
靑水洞暗門은 문수봉과 나한봉 사이 해발 694m지점에 위치한 네모난 암문으로 문짝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다른 암문과는 달리 문 위쪽에 둥근 모양의 장식돌이 달려 있다.
* 청수동암문 이정표 : [해발694m/의상봉2.5km, 대남문0.3km, 비봉1.8km, 삼천탐반지원센터4.3km, 산성탐방지원센터5.6km]
청수동암문에서 길이 네갈래진다.
암문을 통과하여 왼쪽 능선으로 오르면 상원봉(일명 칠성봉,장군봉)에 닿는다.
암문에서 성벽 안쪽(우측)으로는 세갈래 길이 나 있다.
1. 제일 왼쪽 아래로 난 사면길은 대남문으로 곧장 이어지는 우회로다.
2. 우측 오르막길을 계속 따르면 문수봉 암릉을 오르지 않고 국기게양대가 있는 암봉으로 이어진다.
3. 우측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바로 위에서 고개로 올라서기 전 우측으로 빠지는 샛길로 접어들어 2분정도 오르면 암벽아래에 이른다.
이곳에서 소나무 바로 위의 덮개바위를 올라서서 짧은 슬랩을 오르면 문수봉정상부다.
바위 왼쪽으로 돌아 다시 바위를 타고 넘어 올라서면 북한산 남부의 최고봉인 문수봉 정상이다.
(암벽아래에서 3분소요)
청수동암문에서 제일 아래쪽 길을 따라 완만하게 사면을 돌아들어 내려서는 길로 6분 정도 진행하면 대남문에 닿는다.
대남문을 빠져나가면 문수사와 구기동으로 내려가게 된다.
대남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산성계곡으로 하산하게 된다.
대남문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웠다.
해발 715m 의 보현봉(普賢峯)과 해발 727m 의 문수봉(文殊峯)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에 위치한다.
서울시가 정도 600주년을 계기로 북한산성 복원계획을 세워 1991년에 첫 번째로 문루 등 성문을 복원했다.
대남문의 복원된 문루에 걸린 현판의 '대남문'이라는 커다란 액자는 서예가 조재호라는 분의 글씨다.
성 안쪽, 대남문 뒷 편 공터에는 두 개의 문루주춧돌이 놓여 있다.
* 대남문 이정표 : 대성암0.4km, 산성탐방지원센터5.4km, 비봉2.2km, 대성문0.3km, 구기분소2.5km
대남문에서 대성문까지는 성벽을 따라 넘어가도 되고 왼쪽 사면으로 난 우회로(2곳)를 이용할 수도 있다.
대성문까지는 약 6~7분 정도가 소요된다.
대성문을 우측으로 빠져나가면 일선사를 경유 형제봉능선으로 평창동이나 정릉으로 하산할 수 있다.
* 대성문 이정표 : [→산성탐방지원센터55km, ↑대남문0.3km, ↑비봉2.5km, ←형제봉1.8km, ↓보국문0.6km, ↓대동문1.2km, ←평창공원지킴터2.5km]
대성문은 보현봉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능선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이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우는 작은 암문(暗門)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 행궁(行宮)이 있는 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과 보토현(輔土峴-현재 북악터널 위쪽)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편리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 문을 출입하게 됨으로써 뒤에 성문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 이름도 대성문(大城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대남문에 이어 1992년에 복원되었고 현판의 글씨도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임금의 친필을 집자해서 새로 걸었다.
높이 13척(4m)에 폭 14척(4.5m)으로 대남문(11척/11척)과 대서문(11척/13척)에 비해 월등히 규모가 크다.
대성문에서 성벽을 따라 잠시 올라서면 둔덕같은 공터에 거북 형상을 한 바위가 땅에 묻혀 있다.
앞쪽을 일부러 다듬어 놓은 듯 판판한 모습을 한 2단의 바위로, 어느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고인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선돌이라고 한다.
선돌을 지나 한차례 내려섰다가 올라서며 6분 정도 진행하면 가운데 바위가 솟은 치성이 있다.
치성 안쪽의 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조망이 시원하다.
치성에서 잠시 내려서면 [산성주능선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사진안내판이 있는 전망 공터가 나온다.
북한산 정상부와 노적봉, 도봉산, 수락산과 불암산 등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계속해서 2~3분 더 내려오면 정릉 방면 하산로와 산성마을 방면 하산로가 갈라지는 보국문에 닿는다.
* 보국문 이정표 : [대성문0.6km, 대남문1.0km, 대동문0.6km, 산성탐방지원센터5.3km, 정릉탐방지원센터2.5km]
보국문의 원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 해발 567m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 있었다고 하여 지금은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다.
1993년 완전 해체된 후 복원되었는데, 성문 안쪽 성돌에는 북한산성을 축조 할 당시인 1711년에 공사책임자와 기간 그리고 구간을 표시한 글이 새겨져 있다.
보국문에서 2분 정도 오르면 헬기장을 지나 또 하나의 치성이 나온다.
치성을 지나면 곧이어 성벽이 열린 곳인 칼바위능선 분기점에 닿는다.
[→칼바위능선,북한산시티APT3.5km, ↑대동문0.41km, ↓보국문0.16km] 이정표가 있다.
치성이란 성벽이 툭 튀어나와 있는 곳을 말하는데, 이는 성벽에 달라붙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다.
계속해서 성벽을 따라 8~9분 정도 완만하게 진행하면 대동문에 도착한다.
대동문 안쪽은 너른 공터를 이루고 있어 중식을 하며 쉬어가는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한쪽으로 콘테이너박스와 공사자재 등을 팬스로 흉물스럽게 막아놓아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어영청유지를 지나 중흥사로 내려서는 길이다.
* 대동문 이정표 : [↖백운대3.1km, 용암문1.5km, 북한산대피소1.3km/ ↓대남문1.6km, 대성문1.2km, 보국문0.6km / ←산성탐방지원센터5.2km,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1.9km]
대동문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 진달래능선이 끝나는 해발 5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다.
대성문과 마찬가지로 1993년에 복원 당시 현판의 글씨도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임금의 어필을 집자해서 걸었다.
보국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안쪽 성돌에 축조 당시인 1711년에 사 책임기관과 구간을 기록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대동문 위의 성벽을 따라 계단길로 잠시 오르면 제단이 설치된 제법 너른 공터를 이룬 덕장봉 정상이다.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많이 지내는 곳이다.
덕장봉에서 성벽을 따라 6분 정도 진행하면 북한산성의 최고 지휘본부로 쓰였던 동장대가 선 시단봉(610m)에 이른다.
장대란 장수의 지휘소로 사용하기 위하여 성내 지형중 높고 지휘, 관축이 용이한 곳에 설치한 건물을 말한다.
북한산성에는 각 군문별로 관할 구역내에 적정한 장소를 1개소씩 선정하여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 등 3개의 장대를 두었는데, 그 중 동장대의 규모가 제일 크고 공역 시에도 많은 자재와 인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동장대에서 내려서면 산길이 성벽을 떠나 왼쪽 사면으로 이어진다.
성벽은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툭 튀어나와 돌아드는데 성벽 복원공사 때문에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동장대에서 6분 정도 진행하면 성벽 복원공사용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에 닿는다.
이곳에서 산길은 왼쪽 평탄하고 너른 사면길로 이어져 용암사지-북한산대피소를 거쳐 용암문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면 다시 성벽으로 붙는다.
다시 성벽으로 붙는 길을 따라 완만하게 6분 정도 오르면 둔덕같은 615m봉(용암문 직전 봉우리)에 올라서기 직전 우측으로 성벽이 터진 곳에 닿는다.
이곳이 도선사 입구 할렐루야 기도원으로 내려서는 일명 할렐루야 능선 초입이다.
성벽을 내려서서 4~5분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산길이 휘어져내리는 지점 바로 위에 전망바위가 있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전망바위에 서면 만경대에서 흘러내린 곰바위능선 너머로 인수봉이 미끈한 자태를 자랑하며 우람하게 치솟아 있는 전경이 멋지다.
전망바위 아래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4분 정도 내려서면 소나무군락 속에 능선상의 좁은 공터에 닿는다.
능선길은 공터에서 왼쪽으로 휘며 할렐루야 기도원으로 이어진다.
이 공터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선다.
공터에서 이 길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서면 가느다란 밧줄이 설치된 짧은 급경사구간이 나오고 이어서 골을 건너 사면을 가로질러 커다란 바위 옆을 지나 돌아들면 수성천(守城泉) 샘터에 도착한다.
마을 주민들이 잘 다듬어 놓은 약수터로 찾는 이 드문 깨끗한 곳이다.
쉬어가기 좋은 쉼터로 조성되어 있다.
할렐루야 능선 공터에서 7~8분 정도가 소요된다.
수성천에서 왼쪽으로 계곡길을 따라 3~4분 내려오면 5~6명 앉아 쉬기 좋은 평탄한 식탁같은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지나 5~6분 더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계류 건너 세심천(洗心泉) 약수터가 나온다.
역시 쉬어가기 좋게 공터가 조성되어 있고, 시계와 온도계 등이 설치되어 있는 깨끗한 샘터다.
세심천을 지나 6분 정도 더 내려오면 소귀천 계곡 갈림길에 닿는다.
[대동문1.3km, 소귀천공원지킴터1.0km] 이정표가 선 곳이다.
오른쪽길을 따르면 대동문으로 오른다.
왼쪽 완만한 계곡길을 따라 3~4분 내려오면 용담수(龍潭水) 샘터를 지나고,
3~4분 더 내려오면 운동시설이 있는 소귀산악회 쉼터가 나온다.
표석에는 [常樂我淨], [소귀산악회修樂之處]라 새겨져 있다.
쉼터를 지나 3~4분 더 내려오면 오른쪽에 용천수(龍泉水) 샘터가 잘 닦여져 있고,
8분 정도 더 걸어나오면 소귀천통제소를 지나 옥류교에 닿는다.
옥류교를 건너면 [대동문2.3km] 이정표가 있다.
옥류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할렐루야기도원과 주차장을 경유, 5분 정도 걸어나오면 도선사입구 백운제2통제소 아래의 백운교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우이동 버스종점까지는 13분 정도가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