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병 앓는 응급실
병원이 앓고 있다. 환자를 치료해야 할 병원이 앓고 있는 것이다.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외래 대기와 입원대기,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의료진의 불친절, 환자를 안타깝게 하는 응급 및 휴일진료, 과잉진료와 부당 진료, 일부 지역에 편중된 의료 시설 등 환자들은 병원이 중병을 앓고 있다면서 환자진료에 앞서 병원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의 여러 곳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각한 곳이 응급실이다. 병원 응급실은 전쟁터이다. 웽웽거리는 앰뷸런스에 실려오는 환자들, 아프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환자, 치료가 늦어진다며 의료진과 옥신각신하는 보호자, 입원시켜 주지 않는다며 행패를 부리는 사람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병원 응급실은 항상 위기감 속에서 환자를 맞이하고 있다. 어떤 환자가 실려올지 모르고 오늘은 어떻게 조용히 넘어갈 수 있나하는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병원 직원들에 있어서 가장 인기 없는 부서가 응급실이다.
병원 응급실은 온갖 환자들이 모두 몰려온다. 싸움을 하다가 다친 사람, 교통사고로 몸이 망가진 사람, 자살을 하려고 약을 먹었다가 미수에 그친 사람, 손님과 술값 시비를 하다가 싸움이 붙어 맞아서 실려온 여자 종업원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류의 환자가 실려온다.
이로 인해 응급실은 아수라장이다. 공간이 항상 부족하고 병상은 빽빽이 차 있다. 보호자는 들어올 수 없는데도 서너 명씩 환자 곁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한다. 보호자들은 응급실의 아무 곳에나 신문을 깔고 환자를 누일 장소를 마련하면 커다란 행운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응급실 의료의 질이 부실하다는 것도 우리 나라 응급실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몇몇 대학병원을 제외하고는 응급의학 전문의는 물론 전공의를 배치하는 곳이 거의 없다. 수련의가 모든 걸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복잡함 때문에 아주 기막힌 에피소드도 많이 생긴다.
일반외과 전문의가 오래 전에 들려준 이야기이다. 당직 근무 중이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두 명의 남자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왔다. 승용차끼리 정면충돌했는데 한 사람은 사망했고 다른 사람은 다행히 경상이었다고 한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한 환자를 다시 확인하고 경상인 환자는 촬영을 위해 방사선과로 보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보호자들이 나타났다. 30대 중반의 한 여인이 사망한 남자 앞에 놓인 구두를 보더니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보호자들은 촬영을 위해 방사선과에 가 있는 환자 쪽으로 달려갔다. 보호자들이 병원을 샅샅이 뒤져도 환자가 보이지 않았다. 보호자가 지 원장을 찾아와 환자를 다시 확인해 달라고 했다. 원장이 확인한 결과 환자가 바뀐 사실을 알아냈다. 대성통곡을 하며 울던 여인의 남편은 방사선과에서 촬영 중이었고 환자를 찾아 헤매던 보호자들의 환자는 사망해 병상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사고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여인은 남편의 신발만을 보고 사람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대성통곡을 했던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또 치료를 받고 치료비도 내지 않은 채 도망가는 환자가 많이 있다. 도망간 환자들의 치료비만도 연간 1억원이 넘는 병원도 많이 있다. 이러한 도주환자들로 인해 병원측은 처치가 늦어지더라도 환자의 신상파악을 먼저 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게 될 경우 화살은 당연히 병원 측으로 돌려진다고 병원계에서는 볼멘소리를 한다.
복도에 대기하던 중 사망하기도…
응급의료에 관한 불만은 어제나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우리 나라 응급의료체계. 대학병원 야간 응급실은 그야말로 그 현주소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모 대학병원. 1백여 평 남짓한 응급실에는 환자와 보호자 1백여 명이 뒤엉켜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이들 가운데는 오늘 응급실로 실려온 신환(新患)도 있었고 입원실이 나기를 기다리며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대기환자도 상당수가 있었다.
응급실 밖 복도에는 침대를 차지하지 못한 몇 명의 환자가 긴 의자에 누워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당직의사들은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분주한 몸놀림을 보였다. 이들 가운데 한 의사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을 응급실 밖 복도에 머물게 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응급실로 들일 환자와 타 병원으로 보낼 환자를 선별하고 있었다.
이날 야간 응급실 책임자인 레지던트 2년 차는“응급실에는 하루평균 1백50여 명의 환자가 들어온다”며“이들을 모두 수용할만한 공간이 없어 비교적 가벼운 환자는 인근 중소병원으로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거부하는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지만 공간이 비좁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응급실이 이처럼 비좁아지고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는 30여 명에 달하는 입원대기환자들 때문이다. 입원실이 나지 않아 일주일 이상 대기하고 있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정작 침대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응급환자는 침대를 차지하지 못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대학병원인 이 병원 야간 응급실에는 5명의 레지던트를 비롯해 인턴, 간호사 등 20여 명이 환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들은 응급전문의사와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다른 병원에 비하면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극심한 피로감과 인력부족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 레지던트는 하룻밤을 꼬박 새는 동안 밀려드는 환자를 맞이하다 보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되고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친절이란 부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평일에도 외래에서 소화하지 못한 환자를 응급실로 내려보내는 경우도 있어 매일 한 두 차례씩 홍역을 앓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 응급실에 인력과 시설을 투자할 계획이 없다.
이 병원 응급실에는 현재 간단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실과 흉부촬영을 할 수 있는 촬영실이 한 개씩 있다.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는 의료진들은 CT를 촬영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CT 촬영을 위해서는 본관의 방사선과를 이용하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응급조치가 안 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도 있다는 것. 최근에는 CT 촬영실로 이동 중에 환자가 사망한 사실을 모르고 죽은 사람에게 CT를 찍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한다.
또 경험 많은 의료진의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응급실의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주간에는 응급의료 전문의가 있으나 야간에는 레지던트들만이 근무하고 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짜증스럽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남녀노소와 질환의 경중을 막론하고 응급실 밖 복도에서 1차로 검진을 받은 다음 2차로 응급실 안에 있는 간이 의자에 대기하고 있다가 빈 침대가 나면 그 때서야 아픈 몸을 누일 수 있다.
지방에서 앰뷸런스에 실려 밤새 달려온 78세의 한 노인은 환자후송용 이동 침대가 없어 들것에 누운 채 응급실 복도 맨바닥에서 진료를 받았다. 이 노인은 워낙 상태가 위급했는데도 10여분이 지나서야 응급실 안으로 옮겨졌다. 꽉 들어찬 환자들로 인해 공간이 비좁아 이동침대 사용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실려온 한 여인도 침대가 부족해 30여분간을 복도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통증을 이겨내야 했다. 이를 지켜 본 남편이 의료진에게 ‘침대로 옮겨줄 것’을 요구했으나 침대가 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사무적인 대답뿐이었다.
보호자들은 응급실을 가득 메운 침대 사이사이로 긴 의자에 간신히 몸을 의지한 채 하룻밤을 꼬박 세워야 했다. 응급실 복도에 마련되어 있는 10여 평 남짓한 보호자 대기실도 새우잠을 청하는 보호자들로 빈틈이 없다.
그러나 자리를 차지한 보호자는 행복한 편이다. 엉덩이를 붙일 자리조차 차지하지 못한 보호자들은 응급실 밖으로 밀려나와야 했다. 그나마 겨울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병원이 환자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응급실만큼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지적이다.
응급실에서도 빽은 통하는 실정이었다. 유력 인사가 응급실로 실려올 경우 병원 고위 인사가 한밤중에도 직접 챙기고 있다. 연줄을 동원할 경우 입원도 빨리 할 수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일은 응급환자가 복도에서 대기하던 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의료진에 따르면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망할 경우 의사와 병원이 책임을 져야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한 환자는“응급실을 찾아와 아무리 통증을 호소해도 상태의 경중에 관계없이 차례대로 진료를 받도록 한다”며“하루 이상을 응급실 밖에서 대기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호소했다.
한 응급실 근무자는 응급실이 현재의 모습에서 벗어나 제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응급의료 수가를 대폭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응급실을 둘러싼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태의 환자들이 실려오는 응급실. 매우 공정하고 신속하게 환자진료가 이루어져야 할 이 곳에서조차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야 할 때
정부는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를 설립해 권역 내 응급환자의 최종 의료기관으로 중증 응급환자가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응급환자 정보센터의 운영, 응급의료 관련 인력의 양성과 훈련, 국가적인 대규모 재해 시 의료지원 중심기관 역할을 수행하여 응급의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전국적으로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하고 재정융자특별회계자금을 지원, 완공예정으로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완공되었다. 그러나 현재 건립되었거나 건립 중인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들의 응급의료체계 내에서의 역할과 기능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지 않고 환자 의뢰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완공 후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로서의 기능 수행이 원활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권역별 응급의료센터의 효율적인 운영과 기능 활성화를 위해서는 권역별 응급의료센터의 역할 및 기능 설정, 권역별 응급센터를 중심으로 한 응급환자진료체계의 정립, 권역 내의 응급의료기관간의 환자후송체계 및 후송지침 등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권역별 응급의료센터의 운영을 위한 법적 제도적 문제점을 선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응급의료센터의 운영자금을 정부가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운영자금의 50%, 일본의 경우 구명구급센터 내원 응급환자 진료비의 80%를 국가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응급의료기관 평가 및 모니터링체계 구축’이란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 내원환자 가운데 예방 가능한 사망환자의 비율이 50.4%로, 사고로 인한 사망환자의 절반이 예방 가능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살 가능성이 75% 이상인 실질적 예방가능 사망률인 것으로 밝혀졌다.
예방 가능한 사망 가운데에서 병원 전(前) 단계의 요인에 의한 것이 20% 정도 된다고 할 수 있으므로 병원 전(前) 단계의 개선 즉 응급의료체계의 확립보다는 병원 내의 외상치료체계를 완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대상인 총 1백31명 환자에서 총 7백53개의 미비점이 발견되어 한 환자 당 5.75건의 미비사항이 발견되었으며 이 가운데 3백94개(52.3%)가 응급실에서 발생했다. 다음으로 병원간 이송에서 1백38개(18.3%0, 병원전 단계에서 1백5개(13.9%)가 발생하여 85% 정도가 응급실 전에서 발생하고 있다.
병원 전(前) 단계에서의 미비점을 보면 57.1%가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실제 우리 나라의 응급의료체계가 많이 부족함을 반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연락이 늦는 것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어 응급의료체계의 개선에 있어서 다른 점보다 신고, 출동 체계가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번 연구보고서에서 나타난 응급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로는 병원 전(前) 단계에서의 이송시간 지연이 심각한 문제로 나타났다. 이 문제점이 환자의 사망과 연관된 경우로 판단된 경우가 60%에나 달해 전문의 부재나 연락이 늦는 경우에 대한 대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재 국내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배출되어 있다.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로서 보다 많은 능력 있는 응급의학 전문의의 배출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정부가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 주어 응급실 근무자가 소신 있게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진료거부니 강제퇴원이니 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응급실 담당의사에게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모든 책임을 의료인에게 떠넘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와 함께 비현실적인 응급의료수가를 대폭 인상하여 응급실 근무자와 병원 근무자들이 환자를 가슴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효율적인 응급의료체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간접의료제도와 직접의료제도가 완벽하게 조화되고 조정되어야 하며 의료관리의 권위가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 응급의료의 현 주소는 한마디로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가뜩이나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의료기관들로서는 수익성이 없는 응급실에 투자 할 이유가 없다. 이제는 정부가 적극 나서서 특단(特段)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다.
응급실이 변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무튼 정부와 의료기관이 현실문제를 직시하고 아까운 생명이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사라져 가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 진료가 이루어져야 할 병원 응급실이 시장바닥에 비유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일부 환자에게 응급실은 입원실을 차지하기 위한 대기실로 이용되고 있다. 정작 응급환자는 들것에 누운 채 진료를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