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어장인 대학을 향한 전략을 공식적인 방식으로 할 수가 없기에, 제 개인소견으로 이렇게 적어봅니다. 참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그동안의 문제점
가. 교회의 인수의 증가를 유초등부를 통해서 가져오기를 기대했지만, 사실상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이유는
아이들과의 공작이 쉽지않습니다. 지속적으로 만나기도 쉽지않고, 아이들을 애 엄마들과 함께 집에 오게하기가 어려우며, 한적히 교통하기가 어렵고, 집에오더라도 많은 잔손이 가기때문에, 자매님들이 곧 지치게 됩니다. 이것을 부담만 있으면, 혹은 여러가정이 동역하면이라고 하기에는 자매님들에게 너무 벅찹니다.
엄마들의 견해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리고 엄마들이 피곤하고, 바쁘 고 점유되어 있고, 가정문제, 직장문제, 재정문제, 친지문제 등으로 시달리기에 여유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교회안에 있는 것은, 이것이 자매님들이 하기에 쉬워보이기 때문이고, 지적인 역량이나, 말씀의 장비나 등등이 비교적 덜해도 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매우 어렵고 피곤한 일입니다.
유초등부를 통해서 증가를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전 교회적인 역량을 사용해서 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원칙적으로 강조하고 자매님들이 생활 중에서 주님이 허락하시면 얻을 수가 있다는 관점이면 족할것입니다. 이것은 일로 접근하기보다는 일반가정의 생활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유초등부를 어찌해야 합니까? 증가를 가져오려는 기대로 무리하게 기획하기보다는 각 가정이 자신의 자녀들을 잘 키워서 교회안에 남아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정도면 될 것입니다.
(유초등부를 주된 일로 기획하시고 계시는 봉사자들에게 무지 죄송하구요. 그럴지라도 한번 솔직히 현실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개인의 소견임을 밝힙니다. 어떤 항변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런 항변을 누가 리플에 기록한다고 해도 저는 답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옳기때문이죠)
나. 교회의 인수의 증가를 중고등부를 통해서 가져오기를 기대했지만, 사실상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이유는
중고등 학생들은 바쁩니다. 이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인격이 주체적으로 성숙되지 못해서 주체적으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은 학부모들의 강한 영향아래에 있기때문에, 자신들이 교회생활을 하기를 원해도, 학부모들이 용인하려들지 않으면 별 수 없게됩니다. 이들은 교회의 진리를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교회생활에 견실하기가 쉽지않습니다.
이들을 사용해서 부모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어른인 우리도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살기가 쉽지 않은데, 남의 자식들을 사용해서 믿지 않는 그들의 부모님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매우 희박한 가능성을 가집니다.
그러면 중고등학생들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친구들이 연결되면 잘 관심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대로 말씀을 목양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전 교회적으로 여기에 집중되는 "일"을 하기보다는, 가정에서의 충실한 문제로 삼게하고, 교회로서는 우리의 자녀들이라도 잘 키워서 교회안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가 되게하면 대 성공입니다.
(중고등부를 주된 일로 기획하시고 계시는 봉사자들에게 무지 죄송하구요. 그럴지라도 한번 솔직히 현실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개인의 소견임을 밝힙니다. 어떤 항변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런 항변을 누가 리플에 기록한다고 해도 저는 답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옳기때문이죠.)
다. 왜 대학교를 공략해야 하는가?
우선, 그들은 부모의 영향력에서 독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결정을 할 때, 제 삼자 변수가 상당히 적습니다.
두번째로, 그들은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인격이 성숙되어있어서, 어떤 결정을 하면 상당히 확실하게 합니다.
세번째로, 그들은 생계문제, 가족문제, 질병문제, 이성문제 등으로 거의 점유되어 있지 않습니다. 장년들과는 달리 이들을 얻으면 이들이 교회안에 가지고 들어와서 우리가 들어주어야 할 짐가방이 거의 없습니다. 즉 양육하는데 힘이 훨씬 덜 듭니다.
네번째로, 그들은 기존 관념으로 점유되지 않아서, 회개하기가 빠릅니다. 그들은 지우고 써야할 것이 많지 않고, 넣으면 넣는대로 들어갑니다.
다섯번째로, 그들은 관념적이며, 철학적이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시기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진리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시기적으로도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럴때 우리의 진리는 놀라운 효과를 가집니다.
여섯번째로, 그들은 주님의 손에서 빚어지고 사용될 충분한 시간을 가집니다. 20년을 배우고, 20년을 체험하고, 20년을 적용하고, 나머지 20년에 참된 사역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우리가 어떤 연령에 집중해야 하겠습니까?
일곱번째로, 이들은 오늘날과 같은 철통 보안 주거지들에 칩거하지 않고, 열린 공간, 제한된 공간에 수천 수만씩 밀집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신문 홍보지를 사용하지 않고는 아파드에 들어갈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은 너무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가도 열린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찾아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보십시오. 대학은 현 새대에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교회는 현 세대에 대학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덟번째로, 대학생들은 모든 연령층과 융합할 수 있고, 교회와 사역의 각종 일들에 유용합니다. 이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즉시로 각종 교회의 힘든 일의 방면들, 예를들면, 유초등부, 중고등부, 문서, 실무, 기획, 교회의 각종 집회들 등등에 즉시 활력이 생깁니다.
아홉번째로, 중 장년들의 기능을 활성화 시킵니다. 이들은 수용력이 빠르고 반응이 빨라서 오랜 기간 열매가 없거나, 열매를 남기지 못해서 자괴심에 시달리는 중장년 성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이들은 무한정 수고만 하고 돌려 받지 못하는 밑빠진 독과 같은 느낌을 갖게하기 보다는, 누린 것을 다양한 방면으로 되갚을 수 있는 기능과 본능이 있습니다.
열번째로, 대학생들과 사귀다보면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젊음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낡아지지 않고 계속 신선할 것입니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입맛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적 수준이 업그레이드 될 것입니다.
열 한번째로, 대학생들을 돌보면, 양질의 인력을 훈련에 보낼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순전히 새롭게 얻어서 전시간 훈련에 들여보낸, 성도들이 몇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수고하였지만, 우리의 돌봄으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아서 훈련에 간 사람까지 계산하면... 정말 이들은 제 영광의 면류관이요, 제 기쁨입니다. 대학생봉사를 하지 않으면 이런 기쁨을 맛보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제 꿈은 매년 제가 수고하는 그 어장에서 수 십명이 훈련에 가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사정이 이러할 진대, 어찌 대학생들에 매혹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정말 갈 수록 젊은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그동안은 대학생봉사를 한 지역이나 한 소그룹으로 "떼주고", 한 둘의 전시간을 세워서, 자연발생적으로 있는, 교회 내부의 젊은이들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일반적 성도관리이지, 제가 말하고자하는 "대학의 일"이 거의 아닙니다. 그동안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이런 방식은 절절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 내려놔야 합니다.
대학의 일은, 교회의 주류에 부착된 "부가적 일"이 되게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반드시 "전 교회적인 일"이되어야 합니다.
전교회적인 일이란, 교회의 장로들, 동역자들이 다 이 일에 중심을 두는 것입니다. 매주 모여서 장로들, 동역자들이 다 함께 이 문제를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될대까지, 두드려야합니다.
시간있는 자매님들과 전시간자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오전에 모여서, 주님이 길을 얻으시도록 기도하고, 전단지 배포, 동아리 등록, 성경공부 홍보, 직접 접촉하기, 등등의 길을 연구하고 실행해야합니다.
교회의 기도집회때 이 문제가 온 교회가 강력히 기도하는 주된 기도제목이어야 합니다. 집회때는 수시로 이 부담을 강조하고, 장로들, 동역자들, 전시간 자들이 앞장서서 대학에 나가야합니다.
교회 안의 성도들은 가정을 열어서 교회 안에 있는 젊은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들에게 친구들의 상황을 묻고, 중보해야 합니다.
교회 헌금의 거의 대부분을 대학 전시간자들을 일으키는데 사용해야합니다. 이 일에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헌신해야할것입니다.
부담있고 여유가 있는 가정을 전 교회적으로 대학 주변에 이주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서 장로들, 동역자들이 솔선해야 합니다.
미국의 오스틴 등을 전교회적인 지원으로 성도들이 방문하도록 권장하고 이를 실행합니다. 권역이 협동해서 전시간의 팀을 일으키되 이번에는 모 도시 소대 모 대학에, 다음에는 모 도시 소재 모 대학에 식으로 협력해서 일궈야합니다.
대학생들은 중장년들을 싫어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마귀적인 관념일 뿐입니다. 저는 그런 경우를 혹가다 당했지만, 90% 이상의 경우는 대학생들은 중장년들을 사랑하고, 기꺼이 이들의 도움을 받고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쓸데없는 권위"를 부리지 않는 한 말입니다.
어제 우리집에 연결된지 두달쯤 되는 고려대학교 자매가 왔습니다. 저는 빨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음료수를 따라주고, 제가 작업하는 컴퓨터상에서의 일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과일을 갖다주고...흘낏 보니 저를 존경한다는(?) 암시를 지닌 빙긋웃음이 자매의 얼굴에 있었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연락이 안되서 얼마나 맘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다시 보니 울음이 나올뻔 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진리로 "한 말씀"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타향 생활에서 힘들때, 공부로 힘들때, 신성한 인성을 가진 기댈 어깨를 필요로합니다. 가정의 따스함이 필요합니다. "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못하겠습니까?
저는 이글을 읽는 각지의 성도들이, 이 시대에 대한민국과 교회의 장래요 희망인, 우리의 젊은 이들을 위해서, 가정을 열고, 이 열린 둥지에 대학생이라는 알들을 데려와서, 3-4년 그 위에 앉아 품음으로 "전시간 훈련"을 보내고, 교회 안에서 "기둥같은 지체들"로 서게하는 일에서 참된 부담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러나 알을 잡아오려면 한 대학 당, 최소 4, 좋기로는 6명의 전시간 팀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장로는 반드시 이 팀원이어야합니다.
대학생만 사람이냐 라고 오해하실까봐 노파심에서 말씀을 추가합니다. 대학생들을 위해 수고하려면 온 교회의 모든 계층이 다 필요합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개나 젖먹이 아이도 대학생들이 집에 오는 것을 유인할 좋은 동역자들이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이 일을 다시한번 말하지만, "국지적", "부차적"으로 하지 않고, 전교회적으로 수행할 때 대학생만 사람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몸 안에서 "참되게 기능을 발휘하는 하나님-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안산교회를 방문하시거나, 저희가 있는 서울 교회와도 교통이 있으면 상호 격려가 될 것입니다.
파이프라인의 일에서 대학이하의 모든 파이프의 부분은 중점이 성을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증가를 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중점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 이하를 잘 돌봐야하지만 증가는 어디서 가져옵니까? 바로 대학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중점은 수성을 바탕으로한 대대적인 공격입니다.
우리가 파이프라인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할 때, 그리고 강조하는 사람마다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으나, 대학에서 대대적인 증가를 구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잘 지키고 (혹시 증가가 있으면 더 좋고), 이 일을 위해서 온 교회가 일심전진하는 것입니다. 50%의 증가를 가져오는 최고의 어장이 대학임!
조그만한 버터를 가지고(제한된 교회의 역량을 가지고), 큰 바게트 빵에 온통 바르면(균등의 원칙을 살리려고), 버터의 맛이 전혀 나지 않고 생빵을 먹는 것과 동일합니다(효과가 어디에도 나지 않습니다). 그럴땐 우선 한 곳에(대학을 권함) 확실하게 발라서 맛있게 먹고(효과를 봄으로), 기력을 찾는(대학생을 얻음) 것
을 우선한 후에, 이 대학생들로 하여금 교회의 기타 봉사분야에서 투입되게해서, 온 교회를 바르는 버터들이 되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버터를 먹는 방식은 '안해본 것'이라서, 우리의 손이 마구 떨리고 무겁습니다. 잘 안발라지는 것이 아니라 안바르려고 하는 것입니다.확실히 발라서드시면 허다증거효과만점
형제님의 강한부담이 팍팍 전달됩니다 그날도 부담을 받고 몇자매님과 기도하기 시작했고 가정 (둥지)도 준비중입니다 알을 가져오시면 잘 품겠습니다 먼저 섬세하게 충분한 기도로 준비하시고 교회의 인도와 협력가운데서 조화가 이루어 진다면 주님이 축복 하실것 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전략은 Focus & Deep입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차별화 입니다. 보편적인 것은 전략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업도 전략적이여야 합니다.교회안의 제한된 자원으로 높은 효과를 얻으려면 다분히전략적 선택이 필요합니다. 누림에는 전략이 필요없지만 싸움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얻는 문제는 누임의 문제가 아니라
싸움에 관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상대를 알아야 하고 나의 역량을 안후에 전략을 선택하는 법입니다. 일괄적인 획일적인 방법은 전략이 아닙니다. 원칙은 집중화와 차별화와 자원의 한계의 극복이여야 합니다. 그런의미에서 대학생을 공격대상으로 한다는 말에는 절대적으로 아멘입니다. 전략이 문제지요?
이 한희 형제님을 보면, 모 정당의 책사가 생각납니다. 형제님의 경륜과 배움을 이제 주님을 위해서 사용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 한 번 최종적인 배팅을 하심이 어떨지요...삼고초려하는 맘으로!!! 저는 정말 한 번 싸우고 싶답니다. 이런 지지부진은 견딜 수 없습니다. 제 야심인가요?!
첫댓글 구구절절이 너무나 요긴한 내용들입니다. 청주교회 홈페이지로 퍼갑니다. 봉사형제들과 함께 이 부담을 나누겠습니다.
파이프라인의 일에서 대학이하의 모든 파이프의 부분은 중점이 성을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증가를 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중점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 이하를 잘 돌봐야하지만 증가는 어디서 가져옵니까? 바로 대학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중점은 수성을 바탕으로한 대대적인 공격입니다.
우리가 파이프라인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할 때, 그리고 강조하는 사람마다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으나, 대학에서 대대적인 증가를 구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잘 지키고 (혹시 증가가 있으면 더 좋고), 이 일을 위해서 온 교회가 일심전진하는 것입니다. 50%의 증가를 가져오는 최고의 어장이 대학임!
조그만한 버터를 가지고(제한된 교회의 역량을 가지고), 큰 바게트 빵에 온통 바르면(균등의 원칙을 살리려고), 버터의 맛이 전혀 나지 않고 생빵을 먹는 것과 동일합니다(효과가 어디에도 나지 않습니다). 그럴땐 우선 한 곳에(대학을 권함) 확실하게 발라서 맛있게 먹고(효과를 봄으로), 기력을 찾는(대학생을 얻음) 것
을 우선한 후에, 이 대학생들로 하여금 교회의 기타 봉사분야에서 투입되게해서, 온 교회를 바르는 버터들이 되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버터를 먹는 방식은 '안해본 것'이라서, 우리의 손이 마구 떨리고 무겁습니다. 잘 안발라지는 것이 아니라 안바르려고 하는 것입니다.확실히 발라서드시면 허다증거효과만점
형제님의 강한부담이 팍팍 전달됩니다 그날도 부담을 받고 몇자매님과 기도하기 시작했고 가정 (둥지)도 준비중입니다 알을 가져오시면 잘 품겠습니다 먼저 섬세하게 충분한 기도로 준비하시고 교회의 인도와 협력가운데서 조화가 이루어 진다면 주님이 축복 하실것 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전략은 Focus & Deep입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차별화 입니다. 보편적인 것은 전략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업도 전략적이여야 합니다.교회안의 제한된 자원으로 높은 효과를 얻으려면 다분히전략적 선택이 필요합니다. 누림에는 전략이 필요없지만 싸움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얻는 문제는 누임의 문제가 아니라
싸움에 관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상대를 알아야 하고 나의 역량을 안후에 전략을 선택하는 법입니다. 일괄적인 획일적인 방법은 전략이 아닙니다. 원칙은 집중화와 차별화와 자원의 한계의 극복이여야 합니다. 그런의미에서 대학생을 공격대상으로 한다는 말에는 절대적으로 아멘입니다. 전략이 문제지요?
나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주님과 그영과 진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우리들의 자원과 인력과 열정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숙제입니다. 주여! 당신이 가고자하는 길을 여시옵시고 할수 있는 사람을 얻으소서! 아멘!
이 한희 형제님을 보면, 모 정당의 책사가 생각납니다. 형제님의 경륜과 배움을 이제 주님을 위해서 사용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 한 번 최종적인 배팅을 하심이 어떨지요...삼고초려하는 맘으로!!! 저는 정말 한 번 싸우고 싶답니다. 이런 지지부진은 견딜 수 없습니다. 제 야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