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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행 선 지 | 자세한 일정 | 참고 사항 |
10.17. 06:00 | 반포대교 남단 | 06:00 까지 집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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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 |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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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0 | 기흥휴게소 | 벨린다 자매님 픽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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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 | 단양팔경 휴게소 | 10분간 정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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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0 | 공단 주차장 | 행장정리와 준비체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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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 출발 | 걸음여행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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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 | 내방 탐방객이 많을 경우를 대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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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추 | 제 2 안으로. 외씨버선 길을 끊어서 걸음 여행 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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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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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 절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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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0-13:40 | 점심식사 |
주왕산면 부동로 1024 연락처 054-873-2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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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 14: 40 | 주산지 | 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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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리 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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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리 성지에 대하여 - 박스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
20:00 | 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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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일정(외씨 버선 길) | |||
09:50 | 청송 달기약수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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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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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 | 달기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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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 월외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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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 주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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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5-13:30 | 점심식사 | 청송읍 월막리 422-8 청송시장옆, 054- 873- 1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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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 15:00 | 주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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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6 - 16:10 | 노래리 성지 | 청송군 안덕면 노래리 615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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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 |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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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서울도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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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리 성지에 관하여 - 청송(靑松)은 7명의 복자를 탄생시킨 천주교 성지입니다. 청송군 안덕면에 위치한 노래산(老萊山)에는 박해 시대에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던 교우촌이었습니다. 청송 노래산은 743m의 깊은 산중이었던 관계로 박해를 피해 동진하여 숨어든 교우촌이 아름아름 형성되어 살았던 곳이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은 교우들이 살다간 흔적마저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안동 교구에서 이곳 노래산 성지조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성지개발에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는 중입니다. 1815년 (순종 15년) 을해년에 일어난 을해박해 사건은 경상도에서 가장 큰 종교탄압 박해사건으로 그 진원지가 바로 노래산 교우촌이 었습니다. 당시 노래산 교우촌에는 고성운(高聖云), 고성대(高聖大), 최봉한(崔奉漢) 등 35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고 경주 진영(慶州鎭營)으로 끌려가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14명은 다시 대구감영으로 이송됐되었습니다. 이때 청송군 진보 머루산 에서도 김시우(金時佑) 등 30여명이 체포돼 안동진영에서 22명이 배교하고 나머지 13명은 역시 대구감영으로 이송되는 등 모두 71명이 체포돼 33명이 대구감영에 갇히게 됩니다. 옥에 갇힌 천주교 신자 중 26명은 옥사를 당하고 이듬해인 1816년 12월 16일 7명의 신자들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방문을 하시어 광화문 시복미사 중에 노래산 교우촌 신자 중 7명이 복자반열에 올랐습니다. 이러한 영광은 한 교우촌에서 유래가 없는 복자반열의 오르는 경우는 특히 드물었습니다. 복자반열에 한 두 사람만 올라도 순교자가 살던 교우촌은 벌써 유명세를 타는 성지화 기념사업이 이뤄졌지만 청송 노래산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복자들께서 살다간 교우촌 흔적마저도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이곳 노래산은 산의 형세가 네 신선이 걸어가는 발모양 같이 생겨 늙은 보래(神仙)들이 오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반 도의 동해안 쪽으로 치우쳐서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1801년 신유박해가 종결된 뒤 조정에서는 척사윤음(斥邪綸音)을 반포해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몰아 신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충청도 충주, 청양, 덕산 고을과 전라도, 경상도(상주) 등지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이곳 노래산에 새로운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던 곳입니다. 증언자 윤순종(63)씨에 따르면 그때 30여호(100여명) 신자들이 높은 산꼭대기의 분화구처럼 생긴 이곳에서 16만평의 넓은 산지 를 개간해 화전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면서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임진왜란(1592년) 때 피난지로 재상 유성룡의 형인 겸암 유운룡이 새로운 전술로 왜군을 물리쳐 유명한 ‘겸암비결’이 일어났던 곳 이기도 합니다. 유운룡은 노래산 뿔각전에서 새로운 병법을 익혀 임진왜란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이곳 노래산이 임진왜란 때의 피난지였던 것을 알고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교우 촌에 박해가 시작된 연유는 1814년 전국에 혹심한 기근이 들어 굶어 죽은 사람들이 많을 때 노래산 교우촌을 드나들면서 돈과 옷가지와 양식을 구걸하던 전지수 란 사람이 청송현에 밀고해 그해 부활축일인 2월 22일(금) 포졸들이 들이닥쳐 미사 중이던 교우들을 모조리 체포하게 되면서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많은 교우들이 순교하고 재산을 약탈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힌 을해박해는 교인들의 재산을 노린 일부 몰지각한 백성들의 탐욕과 조정의 박해령과 상관없이 지방관아 실적을 위하여 스스로 박해를 일으킨 사건입니다. 숨어 든 신자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15년 동안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살았던 교우촌이었습니다 만 1814년 전국적인 큰 흉년을 만나 어려운 처지에 이곳을 드나들며 신자들의 도움을 받던 박물장수 전지수가 도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활대축일 인 1815년 2월 22일에 청송현의 관장에게 밀고를 하여 첨례를 드리고 있던 신자들을 모조리 체포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청송의 상부 관청인 경주 진영과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끌려 다니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옥중에서 순교하였 고 고성대(베드로) ․ 고성운(요셉) ․ 김화춘(야고보) ․ 구성열(발바라) 등은 옥살이를 하다가 1816년(병자) 11월 1일(음)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하였습니다. 현재는 신흥종교(엘리야재림선교회 혹은 한농복구회)가 이 일대를 차지하고 있어서 순례가 쉽지 않은 사항입니다. 그러나 순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신청하신 형제님들~~~^&^ 09,29 現 | |||||
김종식 파스칼 | 유영재 마틸다 | 남순자 마가렛 | 김애경 벨린다. | 강로사 | 장은기 데레사 |
김순분 프란치스카 | 박건순 가브리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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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severi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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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월 초순 가을 여행 계획을 공고합니다.~~~
준비 머리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역질, 인류사회의 큰 난제인 것 만은 사실입니다. 지금의 방법으로는 백신을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예방에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마스크 착용, 손 자주 씻기, 다중이 모이는 실내 공간 피하기, 그리고 밀착은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 아래 이동 수단인 차량을 탑승 전 소독을 실시하고 숙소 또한 철저한 방역과 소독을 실시하는 곳을 지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또한 외식일 경우 혼잡한 곳 혼잡한 시간을 피하고 철저한 예방수칙이 지켜지는 곳을 선정할 것입니다. 손 소독제를 여행내내 비치하여 일상적으로 사용토록 할 것이며 비상용 마스크와 체온 체크 의료기를 상비하여 만전을 다하는 예방 메뉴얼을 준수할 예정입니다.
가을 여행 지역선택에 대한 견해
우리들이 지명으로 부르는 전라도(全羅道)의 명칭은 全州와 羅州의 머리글자를 조합하여 만든 명칭입니다. 그 시작은 고려 현종 때 전라 주도(全羅州道)라 부르면서 시작됩니다. 또한 전라도의 다른 이름인 호남지방이란 이름은 의림지(義林池) 서쪽에 있는 지방이라 하여 충청도를 호서지방(湖西地으로 부르는 것처럼 벽골제 아래 지방이란 뜻으로 호남(湖南)이라 불렀다 합니다. 벽골제(碧骨堤)의 뜻은 푸른 뼈 제방이란 뜻으로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김제평야는 우리나라에 제일 큰 평야에 속하는 지방입니다. 너른 평야를 이용하여 곡식을 얻으려면 충분한 물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홉 번의 제방을 쌓지만 실패로 끝나 낙담하던 차 어느 고승이 해결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말의 뼈 가루를 흙과 섞어 제방을 쌓으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그 방법으로 제방 쌓자 대성공이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벽골제 아래 마을이라 하여 호남지방이라 불렀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설로 전해 지는 것은 금강(錦江)의 옛 이름이 호강(湖江)이었는데 호강의 남쪽 마을이라 호남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아무튼 전라남북도 지방은 늦가을 정취가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입니다. 특히 11월 초순경 변산, 고창, 정읍 지방의 단풍은 가을의 정취를 가득히 머금고 있고 옛 역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이기도 합니다. 평화~~~^&^ 순례와 걸음 여행에서는 과거 늦가을 정취를 마음껏 즐겼던 선운사 자락과 질마재 가을국화 정취는 지금까지 빛과 향기가 마음에 잔흔으로 남아 가을이 오면 떠 오르는 좋은 추억이지요.
이러한 마음에 남아 있는 마음 풍경을 기초로 삼아 3곳을 순례, 걸음 여행, 향토문화 탐방, 산사의 아름다운 풍경의 재해석, 등을 테마로 가을빛과 동반하는 가을빛 여행을 기획해 보았습니다. 개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자는 주말을 환경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현재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환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변산국립공원 일대 정경.
2, 선운산 도립공원 일대 정경
3. 내장산 국립공원 내장산, 백양산 일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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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행 선 지 | 세부적인 일정 | 참고 사항 |
첫째 날 2020.09. |
변산 국립공원- 변산반도국립공원은 1971년 12월에 전북 부안군 변산 면 일대 구릉지를 중심으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 다가 수려한 자연경관, 다양한 (육상․해상) 자연자원 및 역사문화자원의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6월 11일에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육상의 대자연과 해상의 청정함을 아우르는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형 국립공원입니다. 내변산의 직소폭포, 의상봉, 쇠뿔바위와 외변산의 채석강, 적벽강, 고사포 해변 등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변산 바람꽃은 유명하고 섬 주변으로 피는 동백 또한 아름다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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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06:00 | 반포대교남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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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0 | 기흥휴게소 | 도시락 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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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0 |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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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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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 내변산 | 변산 내변산 탐방 안내 센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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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소폭포 길 | 걸음여행, 왕복. 2시간 소요 | 4,8km |
| 자연보호 헌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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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소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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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 탐방 안내센타 | 회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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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 | 내소사 탐방 센타 | 차량으로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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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 12:30 | 점심식사 | 산촌식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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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소사 | 전나무 숲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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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 관음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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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 | 주차장 | 회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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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5 - 14:30 | 변산 국립수목원 | 차량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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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 | 격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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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 | 숙소체크인 | 여장풀고 잠시 휴식 후 | 대명리조트 |
16:30 | 채석강 | 집합 후 채석강 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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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 | 수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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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 | 격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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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19:00 | 저녁 만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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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이후 | 숙소 | 자유시간. | 대명 리조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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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2020.09. |
선운 산 도립공원-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로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립니다. 선운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이라는 뜻입니다. 즉, 선운산과 도솔산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지요. 곳곳에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며, 숲이 울창한 가운데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운사는 조계종 24교구의 본사로 검단선사가 창건하고 대참사(참당사)는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도솔암, 석상암, 동운암과 함께 참당암이 있지만, 옛날에는 89암자가 골짜기마다 들어섰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화재 중 금동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 선운사 대웅전, 참당암 대웅전, 도솔암 마애불 등이 보물이고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 등이 천연기념물이며 석씨원류 경판,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약사여래불상, 만세루, 백파율사비, 참당암 동종, 선운사 사적기 등이 지방문화재입니다. 그 중 백파 율사비는 추사의 글씨 중에서도 대표작입니다. 꼭 챙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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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06:30 | 기상 | 30분간 격포 해변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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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 아침식사 | 리조트 식 | 대명리조트 |
07:40 | 숙소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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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0 | 선운산 도립공원 | 걸음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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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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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0 | 도솔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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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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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 | 주차장 | 회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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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 개갑성지 | 공음 개갑성지는 2004년 6월 고창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후 고창군과 천주교의 협의 하에 순교지 개발계획을 수립 2011년부터 시작했으며, 고창군은 부지매입과 주차장, 화장실 등 기반시설을 건립했고, 고창성당은 현양탑, 야외제대, 14처, 조경사업 등을 추진하여 이날 순교자 축성식을 개최했다. 최여겸(마티아) 순교자는 1763년 고창군 공음면 갑촌마을에서 태어나 전라도 진산 땅의 첫 순교자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우고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됐다. 신유년(1801) 천주교 박해시 4월 13일(음) 처가인 충청도 한산에서 체포되어 무장현으로 압송됐으며, 전주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증거했다. 이때 형조는 중죄인은 고향에서 처벌하여 본보기로 삼는 해읍정법(該邑正法)의 명을 내려 이곳 개갑장터에서 그해 7월 19일(음) 참수형을 받아 38세에 순교했다. 그는 현재 ‘하느님의 종 윤지충(바오로)과 동료 순교자 124위’에 포함되어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하여시복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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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 | 개갑성지 | 순례 순교자를 위한 기도,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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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 점심식사 | 조양관, 점심특선 | 063-564-2026 |
| 고창 성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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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성 |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외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총화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 졌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 145호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면적은 165,858㎡ (50,172평)로 동‧서‧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雉城)을 비롯하여 성밖의 해자(垓字)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축성 당시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성곽과 건물 14동을 복원·정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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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성 | 탐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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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 걸어서 이동 또는 차량이동 녹두실3인/ 구술실4인/ | 한옥마을 |
| 숙소 | 방 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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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주변 | 저녁 산책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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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만찬 | 픙천 장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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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 자유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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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2020.09 |
내장산 국립공원- 호남 5대의 명산 중 하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1971년 우리나라 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면적은 80.708k㎡ 로서. 신선봉(763m) 을 주봉으로 하는 내장산은 봉우리들의 높이가 700m 내외지만 봉우리 정상이 저마다 독특한 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 이라 불렸습니다. 내장산은 원래 본사인 영은사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靈隱山) 으로 불리다가 산 안에 감춰진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하여 안 내(內), 감출 장(藏) 자의 내장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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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 | 숙소 | 기상, 30분간 산책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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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0 - 08:10 | 아침식사 | 바지락 죽, 약선명가 | 063-561-0683 |
08:10 | 고창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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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 장성새재 | 남창탐방 지원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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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 출발 | 걸음여행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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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 10:30 | 새재 | 왕복 2시간소요 약 4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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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 회귀 | 남창탐방 지원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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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 13:00 | 점심식사 | 남원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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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 15:30 | 백양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다. 632년(백제 무왕 33) 여환이 창건하여 백암산백양사라고 했으며, 1034년(덕종 3) 중연이 중창하면서 정토사라고 개명했다. 1350년(충정왕 2) 각진국사가 3창하고, 1574년(선조 7) 환양이 현재의 백양사라고 개칭했는데 이것은 환양의 〈법화경〉 독성소리에 백학봉에 있는 흰 양떼가 자주 몰려온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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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 백양사 | 탐방 종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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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 16:30 | 장성 성당 | 김익진 프란치스코을 기억하기 | 061-394-9110 광주대교구 광주광산 장성성당 |
16:30 | 귀경 | 귀경 준비및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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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서울도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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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일정은 현지 사정에 의하여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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