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점점 퇴색해지긴 해도 전통명절 설이 다시 찾아왔다. 올해 설은 사흘 연휴에 일요일까지 있어서 나흘을 쉬게 되는데, 자유당 정권
때에는 신정(新正)을 강요하고 음력설은 이중과세라며 설 폐지에 권력까지 내둘렀던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1960년대에도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국민의 소득수준은 높아졌지만, 개발경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창조적
파괴(the creative destruction)를 현대화의 지름길로 인식하여 우리의 전통문화까지 버려야 할 잔재로 여겼다. 하지만, 국민들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정서를 바꿀 수 없는 것을 알게 된 신군부는 1980년 설과 추석을 전통명절로 공인하는 이외에 나아가 사흘 연휴로까지
배려했다.
그러나 그렇게 반세기 이상 전통명절에 대한 정부정책이 오랫동안 오락가락하고, 그동안 서구문화의 범람으로 청소년은 물론 기성세대들조차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지 못하는 경향이 크게 늘어났다. 고향마을에는 이미 눈 덮인 초가지붕도, 저녁때면 밥 짓는 연기가 굴뚝위로 피어오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전통명절 설이 되어도 설빔 입고 조상에게 성묘하고 어른들에게 세배하기보다는 세뱃돈에 더 매달리고, 제기차기나 연날리기 같은
세시풍습보다 컴퓨터게임에 더 매달리는 아이들이 많다.
하긴, 공영방송의 아나운서나 사회자들조차 두루마기를 입지 않은 동저고리 차림으로
뉴스를 전하는 국적불명의 예절을 보이는 현실에서 연간 2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속박물관(전면은 불국사, 후면은 황룡사탑) |
국립민속박물관은 국내의 주요 유물을 소장·전시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임금 등 왕실가족의 생활물품과 자료를 보여주는 국립고궁박물관과 달리 서민들의 일상생활 모습과 서민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문화공간으로서 1945년 11월 한국민속학의 선구자인 민속학자 송석하(宋錫夏) 선생이 수집한 민속자료들을 중심으로 서울
남산에 민족박물관이 처음 문을 열었다.
하지만, 6·25 발발로 민족박물관이 폐쇄되자 그 소장품들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채 우리에게
잊혀져버렸다가 1966년 10월에야 경복궁 수정전에 소규모로 한국민속관이 다시 개관되었다. 1973년 6월 경복궁에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으로 옮겨가면서 1975년 4월 그 건물을 민속박물관으로 활용하면서 비로소 국립민속박물관이 출범하게 되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이나 안국역에서 지척인 경복궁 동쪽 구석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옛 국군통합병원) 건너편이 입구인데, 차를 타고
간다면 동십자각 앞에서 경복궁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주차장이나 박물관 입장은 무료이다.
박물관 건물의 앞부분은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를 뒷부분은 황룡사 9층탑을 형상화 했는데, 사실 이 건물은 오랫동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이 1982년 옛 중앙청 건물로 이전되면서 민속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
종래 자수나 노리개, 복주머니 베갯잇 등
소품들을 주로 전시하던 민속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상설전시실 3개, 특별전시실 1개 그리고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된 현재의 건물로
옮기면서 조씨 삼형제 초상(보물 제1478호), 신·구법천문도(보물 제1318호), 경진년 대통력(보물 제1319호) 등 지정문화재를 포함하여
민속 현장사진, 필름, 영상자료 뿐 아니라 민속학 전문서적, 다양한 멀티미디어 민속자료 등 총 9만 1457점을 소장하는 대규모 박물관으로
변신했는데, 2009년에는 어린이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만든 자료를 많이 비치한 어린이민속박물관을 따로 설치했다.
내부전시실에 전시된 절구와 지게(왼쪽), 설피와 짚신들. |
제1전시실 [한민족생활사]에는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주제로 원시시대부터
삼국시대의 생활상을, 그리고 백제와 신라시대의 공예 공방(工房)과 작업 광경, 삼국의 왕과 왕비의 모습을 미니어처와 마네킹 등으로 생동감 있게
관찰할 수 있고, 또 고려시대의 청자와 목판 인쇄술이며 조선시대의 한글 창제와 각종 과학 발명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실
[한국인의 일상]에는 우리 조상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의식주 생활과 수공예를 주제로 다양한 생활상을 볼 수 있는데, 의복의 원료인 옷감
짜기를 실물 크기로 전시하였을 뿐 아니라 옷감을 천연염료로 염색·전시하고, 한복의 변천을 시대별로 전시하여 우리 조상의 풍부한 의생활을 이해할
수 있게 했고, 식생활로 고유의 상차림은 물론 김치의 재료와 종류 등 식생활을 다양하게 소개하며, 주생활은 전통적인 주거생활 공간인 안방과
사랑방을 꾸미고, 각 방에 가구·마네킹을 적절히 배치하여 당시의 주거생활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농기구와 농사짓는 모습은 물론
어렵과 수렵 등도 볼 수 있다.
제3전시실은 [한국인의 일생]이라는 주제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다양한 의례를 소개하는데,
아기를 낳기 위한 기자(祈子)에서 탄생과 성장 및 사회생활을 놀이와 사회제도, 주술과 점복 등을 소개하고, 혼례·상례와 제사 등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중앙전시실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는데, 가령 우리의 전통생활에 대한 다양한 특별전은 물론 다른 나라의 민속전도 열면서 우리 민속과의 비교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밖에 상설 전시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곳곳에 많은 민속자료를 전시하고 있는데, 지금은 시골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장독대·원두막·연자방아·디딜방앗간·장승 등 조상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야외 전시장도 있다. 특히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사람의 몸에 12개 동물 얼굴을 한 12지신상을 시계처럼 둥근 공간에 세워둔 곳으로서 관람객들은 자신이 태어난 해를 상징하는 동물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곤 한다.
12지신상. |
한편,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매년 설과 추석에 전통 민속놀이 체험과 여러 가지 공연행사를 벌이는데, 관람객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세시풍속인 윷놀이·
팽이치기· 제기차기· 투호놀이 등 각종 민속놀이를 해볼 수 있고, 새해 복을 빌고 재앙을 막기 위한 세화(그림)로 연하장 제작, 액운을 날려
보내는 연이나 복주머니를 만들어볼 수 있다. 또, 어린이박물관에서도 설을 맞아서 설빔 입어보기, 세배하는 법 등을 배우는 설맞이 교육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특히 올해가 갑오년 말의 해인 것을 기념하여 지난 12월 18일부터 2월 17일까지 2개월간 [힘찬 질주, 말] 특별전을
열고 있는데, 특별전은 민속자료 등을 통하여 인간과 말의 관계, 말이 갖는 상징성 등 말을 주제로 총 63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제1부 사람을 태우기까지, 제2부 사람을 태운 말, 제3부 영혼, 신을 태운 말 등 3가지 주제로 나눠서 전시하고 있는 특별전에는 특히
전국에서 출토된 말의 머리뼈와 서울 마장동이란 이름의 유래가 된 조선시대 마장원의 '살곶이 목장지도', 부부금슬과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의미의
'곤마도' 등 말 특별전을 다양하게 꾸몄다. 또, 2월13일~2월15일까지는 정월대보름 한마당을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