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워스(worth)
1. 비극적인 사고나 재해가 끝난 후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이다. 대한민국 사회를 오랫동안 우울함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사건’도 ‘피해자 보상’ 문제는 가장 큰 논쟁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보상의 원칙을 잡는데 특별한 이견이 없었음에도 또 다른 희생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보상의 적절성 문제 등으로 한동안 한국 사회에 커다란 갈등을 야기시켰다. 희생자 보상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은 2001년 미국 9.11사태의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었다. 영화 <워스(worth)>는 9.11 사태 이후 미국 정부가 시행한 <피해자 보상>과 관련하여 인간의 생명이 지닌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만약 할 수 있다면 어떤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또한 돈을 통해 사람들의 생명을 차등하는 것이 정당한가?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2. 미국정부와 특별 위원회는 2003년 12월까지 25개월 안에 보상 원칙에 대한 희생자 가족 중 80% 이상의 서명동의를 받으면 그대로 보상을 시행할 것을 결정한다. <피해자 보상 특별 위원회>의 위원장이 된 유명 변호사 켄은 희생자들의 소득을 바탕으로 적절한 수학적 공식을 활용한다면 피해자 보상은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라고 낙관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보상’에 대한 기본적 원칙과 보상 액수를 본 사람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직업에 따라 다른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수용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의 목숨값을 차등할 수 있는냐는 이유였다. 고소득층도 불만에 가세했다. ‘소득’으로만 보상금을 책정할 수없다는 것이다. 고소득층의 주식, 기타 다른 소득 등에 대한 보상도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켄의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태도도 문제를 악화시켰다. 사람들의 생명을 오직 돈의 가치로 평가하려는 접근은 희생자 가족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희생자 모두 각각의 소중함과 의미를 지닌 특별한 존재들이었음에도 형식적인 기준을 통해 가격을 매기는 방식은 인간의 존엄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태도로 가족들은 받아들인 것이다. 서명 마감일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았지만 서명율은 10%로 저조했다. 캔은 보상을 거부하고 재판을 하게 되면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설득했지만 희생자 가족들의 비난은 더욱 커져갈 뿐이었다.
4. 그러던 중, 희생자 가족과의 면담을 통해 캔의 태도는 변화한다. 희생자 가족들과의 면담은 대부분 실무자들이 맡았던 일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희생자들의 사연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접하면서 희생자 가족들이 갖고 있는 아픔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단순히 보상액을 더 많이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고, 미국 사회에 대한 헌신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의 희생을 통하여 미국 사회의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받길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희생자 가족들의 감정이 단지 ‘돈’이라는 숫자에 의해 매몰되었을 때 그들은 좌절했다.
5. 캔이 좀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자 문제의 해결 가능성도 높아져 갔다. 그는 자신의 권한을 활용하여 최대한도로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갔다.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을 반영하려고 노력했으며, 고소득층의 과도한 요구에는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문제의 복잡함을 해결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공정’의 문제와 ‘인간’의 가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두 가지 사례에 주목한다. 하나는 ‘동성애’ 커플에 대한 보상 문제이며, 또 다른 하나는 비록 혼외 관계이지만 남아있는 자녀들의 문제였다. 보수적이고 법적인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대상이었지만 캔은 다양한 노력을 통하여 동성커플에 대한 보상과 혼외자식에 대한 보상을 성취한다.
6. 영화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인지 모르지만, 캔과 직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감 3일전까지만 해도 서명율은 50%에 불과했다. 그때 물밀 듯이 몰려오는 ‘서명’ 우편물들과 사람들의 방문은 캔의 절망을 극적으로 전환시켰다. 영화는 최종 서명율이 97%라고 알린다. 냉소적이고 부정적이었던 사람들의 태도가 마지막 단계에서 폭발적으로 바뀐 것이다. 보상에 대한 현실적인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희생자들의 고통에 대한 진실한 소통과 수용에 있었다. 희생자들을 단순한 ‘돈’으로 환산된 추상물로 본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삶을 살았던 인간으로 인정하였기에 가능하였던 기적이었다. 영화의 제목이 <워스(worth)>라고 한 이유일 것이다.
7. 인간의 문제를 단지 법의 절차와 합리성에 의해 해결하려는 태도는 결코 사람들의 마음과 동의를 얻지 못한다. 상처입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상처에 대한 공감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정한 연대일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분노했고, 9.11 희생자들이 반발했던 것은 냉정하고 계산적인 규칙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였다. <9.11 보상> 문제의 극적인 타결은 법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노력했던 담당자들의 헌신에 대한 반응이었다.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할지라도 수용한 것은 ‘보상’의 적절성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진정성이었다. 캔은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건들의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로 활동했다. 법적인 지식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는 전문가로 변모한 것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성품을 영화는 알려준다.
첫댓글 삶과 죽음에 대한 평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