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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 2:1-4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로, 선물로 주신 은혜와 믿음으로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권적 역사에는 인간의 책임이 따른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와 인간의 책임에 균형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거저 받으면 귀한 줄 모르고 등한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등한히”는, 무관심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그 반대는, 귀하게 여기고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은혜로 받은 이 큰 구원을 등한이 여기면 보응을 피할 수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 구원에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하신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을려면 세 가지를 유의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1.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을려면, 구원의 시작과 확증을 명심해야 한다.
히2:3-4)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구원은, 해방되고 구출되는 것이다. 어디로부터?
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사탄으로부터, 심판으로부터, 지옥으로부터 구출되고 해방되는 것이다.
구원은 죄와 사망의 권세와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한다.
죄의 노예로 굴종하며 살다가 이제는 죄를 이기고 극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구원이다.
구원은 공중 권세를 잡고 사람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영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하나님도 영이시니까 보이지 않지만, 사탄도 어둠의 영이니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과 권세로 사람에게 역사하여 죄를 짓게 하고 어둠과 혼란과 사망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구원은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구원은 율법의 준엄한 심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법을 어기면 형벌이 따르는 것은 이 땅의 나라에서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나 대원칙이다.
이 땅에서도 심판을 받지만, 정말 무서운 심판은 세상 마지막 날 보좌 앞에서 받는 심판이다.
예수님과 십자가의 구원을 믿지 않던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서 영벌을 받게 된다.
그 심판과 지옥의 형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보여주고 있다.
구원은 바로 이 지옥의 형벌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천국을 사는 것이다.
위대한 로마서는 구원은 사는 영역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아담의 영역에서
은혜와 의가 지배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롬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왕 노릇 하는 곳은 그 왕이 지배하는 영역이지요.
우리 조상 아담이 범죄하여 그 후손인 우리 모두가 사망이 왕 노릇 하던 영역에서 살았다.
그런데,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음으로써
생명이 왕 노릇 하는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이 구원이다.
이러한 구원은 결코 등한히 여길 수 있는 작은 것이 아니다.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고 죽으셨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여 은혜와 믿음을 선물로 주셔야 한다.
이 구원에 대하여 처음 말씀하신 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구원의 길과 방법에 대하여 그분의 직접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그 주님의 말씀이다.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아니라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했다.
(마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구원의 복음을 들고 나가 사도들이 두루 전파할 때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다.
(막16:20)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이 큰 구원의 시작과 확증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히2:3-4)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이 큰 구원은 처음에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들은 자들 곧 사도들이 우리에게 확증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으로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다.
성령께서도 자기의 뜻을 따라 나누어 주신 은사로써 그들과 함께 하셨다.
구원은 주님이 말씀하시고 사도들이 확증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은사가 증언하신 것이다.
2.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그 보응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히2:2-3)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의 말씀은 천사를 통하여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다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사들을 말씀하고 있다.
때로는 천사들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기도 하셨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난 천사는 대부분 성자 하나님이셨다.
신약 계시록에서도 천사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대언 대역하고 있다.
천사들의 존재를 믿으시기 바란다.
천사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구약의 말씀은 불변하고 견고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표준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다. 그것이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들이 섬기고 순종해야 할 법도요 계명이다.(딤후3:16-17)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케 해주고,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해준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고 불순종하였고,
책망과 경고를 받고도 이를 등한히 여기다가 공정한 보응을 받고 멸망하고 말았다.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도 이 큰 구원을 등한이 여기면,
공정한 보응이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구약은 우리의 교훈과 경계와 거울로 쓰여졌다.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이스라엘이 간 길로 갈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을 읽을 때, ‘이스라엘’에다 우리 ‘교회’와 ‘성도’인 나를 대입하여 읽고 교훈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제사장들, 장로들, 서기관들, 율법사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백성들이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능히 그런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율법의 심판보다 아버지의 사랑의 채찍과 징계를 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버릇없고 의무와 책임을 다할 줄 모르는 자식과 손자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
율법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없어졌지만,
우리에게는 상급의 심판이 이 땅에서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이루어진다.
꼭 상급이 욕심 나고 징계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 큰 구원을 거져 은혜로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보답으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고 생명이 왕 노릇 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성품과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온전하시니 우리도 온전한 성품과 삶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성품과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큰 구원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고
그분의 법도를 나의 재물보다 나의 일보다 더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3.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을려면,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
히2:1)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우리의 구원의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그리고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무엇을 듣는냐가 우리의 환경과 미래와 운명을 좌우한다.
세상의 말들을 많이 들으면 세상으로 가게 된다.
사탄의 속삭임들을 많이 들으면 사단의 노예가 되어 어둠과 무질서을 낳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으면 구원을 받고 상급을 받고 영광의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으로 사망으로 지옥의 저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된다.
들은 것도 더욱 유념치 않으면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한 쪽 귀로 흘러 떠내려가고 만다.
유념은 ‘마음에 두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 유념한다는 것은 마음에 새겨지도록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억하기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인가?
세상 일과 재물과 성공에만 더욱 유념하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다.
세상이 날로 악해지고, 인생이 그 말로를 비참하게 맞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세상으로부터 들은 것에만 더욱 유념한 때문이 아닌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함을 알고, 심판을 두려워해 봐야 소용없다.
다윗도,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간다고 했다.
여호수아는, ‘온 세상이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도 언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갈지 모른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가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지금 명확히 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순전한 말씀만을 전한다.
교회가 타락하면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을 들려주지 않고 세상 지혜만을 들려주게 된다.
구약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타락하여 세상과 한 통속으로 돌아갔다.
(렘27:15)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설교)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설교)하는 선지자들(목사들)이 멸망하리라.
(렘23:15-17)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목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서울) 선지자들(목사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설교)하는 선지자(목사)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고 선을 행할 능력을 주는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들려주지 않고,
백성들이 원하는 축복과 평안만을 들려주고 위로로 아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무섭고 놀라운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렘5:30-31)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교회가 다 교회가 아니고, 목사가 다 목사가 아니고, 설교가 다 설교가 아니다.
그 분별의 기준은 그들이 순전한 말씀을 전하는가,
세상 지혜로 혼잡한 말씀을 전하는가에 달려 있다.
예수님은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무엇을 들을 것인가에 더욱 유념하고 참으로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시기 바란다.
순전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자주 듣고 그 들은 것을 더욱 유념하면 흘러 떠내려갈 일이 없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김으로 받는 공정한 보응을 피할 수가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듣고 그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면 얻는 것이 많이 있다.
믿음에 굳게 서게 되고,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된다.
어디로 가든 무슨 일을 하든 형통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있게 된다는 하나님의 보장이 있다.
영혼을 소성시키며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해준다.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고 나를 모든 스승보다 노인보다 명철함이 더 낫게 해준다.
우리 주님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우리 인생의 성패와 영원한 운명의 성패가 이 큰 구원에 있다는 것을 다시 명심해야 한다,
이 큰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셨고,
이 큰 구원을 처음으로 말씀하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으로부터 이 큰 구원의 소식을 직접 듣고 그 들은 것을 확증한 사람들이 바로 사도들이고,
하나님도 기적과 능력으로 성령의 은사들로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면, 공정한 보응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하신다.
항상 순전한 말씀만을 듣고, 그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