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mashita VS Saitou
야마시타 야스히로(일본어: 山下泰裕, 1957년 6월 1일 ~ )는 일본의 유도 선수이자, 최고 성공적 선수들 중의 하나로 알려졌다.
구마모토현 야마토 정 출신으로 초등학교 시절에 유도를 시작한 야마시타는 도카다이 사가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4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노쿠마 이사오와 1967년 세계 선수권 대회 챔피언 사토 노부유키의 지도 아래 지속적으로 활약하였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 9개의 국내 선수권을 우승하였고, 1979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95 kg 이상급을 우승하였다. 특히 1981년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선수권 대회에서 95 kg 이상급과 무제한급을 둘다 우승하였는 데, 이것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빔 뤼스카가 한 경기에서 두 무계급을 우승한 기록을 동등하게 하였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일본의 불참으로 기회를 놓친 야마시타는 4년 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참가하여 무제한급 결승전에서 이집트의 모하메드 알리 라슈안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의 경력 동안에 여러 부상을 겪은 후 1985년 6월 17일 28세의 나이로 은퇴하였고 은퇴 후에 유도 강사를 지내다가 2003년 9월 국제 유도 연맹의 교육 지배인이 되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일본올림픽위원회의 일원으로서 국가대표 부단장의 역할을 해냈다.
사이토 히토시(일본어: 斉藤仁 / さいとう ひとし / Saitō Hitoshi, 1961년 1월 2일 ~ 2015년 1월 20일)는 일본의
유도 선수이며, 1984년과 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95kg 이상급 2연속 금메달리스트이다.
아오모리 현 출신으로 중학교 때 유도를 시작하였으며, 도쿄 세타가야 구에 있는 고쿠시칸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쿠시칸 고등학교에서 계속 유도를
연습하고, 고교 유도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하였다. 1979년 고쿠시칸 대학에 입학하여 전 일본 유도 선수권 대회, 그랜드 슬램 등지에서 7번이나
야마시타 야스히로와 맞붙었다. 사이토는 1980년에 2월 미국 하와이 주의 호놀룰루에서 열린 환태평양 유도 선수권대회로 국가대표 데뷔를 했으며,
무제한급에 출전하여 미국의 미첼 산타마리아와 함께 3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9월에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열린 세계 대학생 유도 선수권대회에서는
+95kg급에
출전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알레산드르 샤바노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11월에 새너제이에서 열린 미국 오픈에서 95kg급과 무제한급에 출전하여
프랑스의 로랑 델 콜롱보를 누르고 우승했다. 이후 1981년 1월에 파리 투어에서 콜롱보를 누르고 우승하고, 2월에 나고야에서 열린 환태평양
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나미키리 쓰요시를 누르며 우승했고 7월에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중화 타이베이의
루원진을 꺾고 우승하였다. 그 해 11월에는 도쿄에서 열린 가노 지고로 컵에 출전하여 +95kg급에서는
야마시타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고, 무제한급에서는 소비에트 연방의 그리고리 베리체프를 누르고 우승했다. 이듬 해인 1982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트빌리시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유도 토너먼트에서 +95kg
부문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무제한급에서는 베리체프를 누르고 우승했다. 이후 그 해 8월에 핀란드 위배스퀼래에서 열린 세계 대학생 선수권대회
무제한급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블라디미르 코츠만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의 가노 지고로 컵에서는 야마시타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다.
1983년 대학 졸업 후에는 고쿠시칸 대학에서 계속 일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소비에트 연방의 모스크바에서 열린 1980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 일본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무제한급에 출전했다. 사이토는 첫 상대인 198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벨기에의 로버르트 반
더 발러를 꺾는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앙젤로 파리시, 스위스의 장 지니케르를 차례로 꺾으며 결승전에 도달했으며, 결승에서 위배스퀼래 세계 대학
선수권대회에서 만난 체코슬로바키아의 코츠만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여 1965년부터 1991년까지 일본의 세계 선수권대회 무제한급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이듬 해인 1984년에는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일본 유도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사이토는
+95kg급에
출전하여 카메룬의 이사도르 실라의 격파를 시작으로 유고슬라비아의 라도미르 코바체비치, 캐나다의 마크 버거를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 전 대회 우승자인 프랑스의 파리시를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1964년 올림픽의 이노쿠마 이사오 이후로 20년 만에 일본의 올림픽
유도 헤비급 우승에 기여했다.
이듬 해인 1985년 2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IJF 유도 단체전 컵에서는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바숑에게
밀려 2위를 했고, 같은 해 9월에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여 대한한국의 조용철과 맞붙었는데, 그의
팔이 조용철의 제자리 팔조르기에 의하여 부상을 입게된 후에 강제적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이후 1986년에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0월에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쑤궈칭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1월에 열린 가노 지고로 컵에서 무제한급에
출전해 바레체프를 누르고 우승했다. 이후 1987년 일본 선수권대회에서 오른쪽 무릎 부상을을 당하였으나, 이듬 해에 다시 복귀하여 1988년
일본 선수권대회에서 오가와 나오야를 누르고 우승하여 두 번째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후 1988년 10월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사이토는 올림픽 개막식 일본 선수단 기수로 참여했다. 첫 상대인 카메룬의 랑사나 콜리를
누르고 다음 상대인 불가리아의 모스크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디미타르 자프랴노프와 이집트의 무함마드 라슈완을 차례로 꺾었다. 이후 대한민국의
조용철과 준결승전에서 겨룰 때에는 대부분의 일본 유도 선수들이 서울 올림픽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는 압박 아래에서 싸웠다. 판정승으로 우승한 후,
결승전에서 동독의 헨리 슈퇴어를 꺾고 2연승을 하였다.
올림픽 이후에는 현역에서 은퇴를 하고 고쿠시칸 대학과 일본 유도 연맹의 강사가
되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일본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유도 7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 라이벌이었던 야마시타와 가까운 우정을
유지하였다.
2015년 1월 20일 13년간 투병하던 담관암으로 오사카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