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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낙남정맥
멧돋 잡으려다 집돋까지 놓친 격?
당초엔 연말 연시 2주만 쉬고 낙남정맥으로 들어가려 했었다.
옛길 삼남대로를 걷기 위해 3월 한 달을 더 연장했다.
그러나 멧돋 잡으려다 집돋까지 놓친 건가.
스크린(screen)되지 않은 과욕에 대한 응징인가.
1개월 예정했던 옛길은 커녕 뒷동산도 오르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말았으며 벗어날 기약도 없으니까.
해동과 더불어 화사한 봄 꽃들에 이어 연두빛 새 잎들이 칙칙한
진록이 되도록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니까.
뜰 앞 길을 무시로 오가는 산객들을 선망(羨望)만 하고 있으니.
작으나마 갖가지 꽃과 나무가 빼곡하고 잔디가 깔린 앞마당이
소일거리가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 할까.
이런 상태로 벌써 3개월이 흘렀다.
글 쓰기 만이라도 재개함으로서 무력감을 떨쳐 버리려 하지만
이 일마저 어렵게 한다.
상체만은 무난한 듯 했는데 갑자기 우측 어깨에 찾아든 이상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고장이 잦아가고 있다.
내용연수(耐用年數)가 임박한 기계에 다름 아닌가 보다.
시시로 조금씩 수리해 쓰다가 빈도가 심하거나 고장이 커지면
폐기처분할 수 밖에 없는 기계 꼴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 일생에서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대체 얼마나 될까?
사람이 뜻은 세우나 결정권자는 따로 있다잖은가.
그래서 진인사 대천명한다(우리의 이야기들 304번 글 참조)는
거 아니겠는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지금 날 괴롭히기 시작한 또 하나의 문제가
자판(key-board) 두드리는 일을 끝내 막고 말 때까지는 낙남을
비롯하여 금남과 금남호남, 잔여 금북 등 이미 밟아온 정맥들을
지금껏 해온 것 처럼 도상(圖上)반추하며 추억에 잠겨 보리라.
"늙은 이는 추억 먹고 산다"잖은가.
진주라 천리 길이 김해라 천리 길로
금북을 중단하고 낙남정맥으로 가려는 까닭은 이미 말했다.
낙남(洛南)정맥은 이름 그대로 낙동강의 남쪽에 뻗은 정맥이다.
백두대간 지리산 영신봉에서 분기하여 행정구역상으로는 산청과
하동의 경계를 이루며 남하하다가 하동, 진주, 사천, 고성, 함안,
마산, 창원을 거쳐 김해로 동진, 낙동강으로 떨어지는 형국이다.
그러니까 남하하는 대간의 마지막 가지가 되지만 북상의 경우엔
첫 번이 되기도 한다.
분기점인 신령스런 봉, 1651m 영신봉(靈神)에서 출발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나 끝점이 있는 김해 길을 택했다.
대간을 처음 시작한 날(2001년 추석 전전날)로부터 꼭 3년 되는
날인 2004년 추석 전전날(9월 26일), 처음 영신봉을 통과한 그
시각에 그 봉에 다시 서려면 그래야만 한다.
대간 아닌 다른 루우트(root), 낙남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정맥을
통해 영신봉에 올라 서기 위해서는 이 길 밖에 없으니까.
만리장정의 대미를 이렇게 장식한다는 레이아웃(layout)에 따라
금북을 중단하고 가장 먼(서울 기준) 낙남으로 가는 것이다.
2004년 4월 2일(금) 16시 50분, 서울 터미널을 떠난 김해행 고속
버스가 21시 반경에 김해 터미널에 도착했다.
처음 대간에 들 때 탔던 진주행 열차는 6시간 반도 더 걸렸다.
고속버스도 별 차이 없던 '진주라 천리길'이 '대전~진주'간의 새
고속도로 개통(2001년 11월 21일?)으로 800리 길로 짧아졌으며
소요시간도 4시간 미만으로 단축되었다.
(이 즈음은 통영까지 연장됨으로서 더욱 편리하다)
김해 또한 진주를 경유함으로서 신 천리길에 4시간대가 되었다.
토인비(A. J. Toynbee :1889 ~1975. 영국의 역사학자)의 '공간
말살론'을 다시 음미하며 예의 첫 걸음 상념에 잠시 잠겨 있었을
뿐인데 다 왔단다.
멀게만 느껴졌던 낙남이 한결 가까이 다가온 듯도 했다.
초행인데도 한 밤의 김해가 덜 생소했다.
(실은 1957년에 입대한 논산훈련소에서 김해의 육군공병학교로
교육전출명을 받고 심야 열차편으로 가던중 특명 취소로 되돌아
온 적이 있긴 하나 그 땐 김해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다)
워낙 낯 선 곳이라 지도와 인터넷에서 터미널 주변과 교통망을
파악하고 익히느라 시간 많이 보낸 덕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간, 정맥들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사로잡혔던
긴장으로 부터도 다소 자유롭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낙남에 들다
내 생애 첫 김해의 밤을 안식하게 한 곳은 터미널에서 가까운 곳,
외동의 게르마늄 찜질방.
찜질방 순례가 금북에서 낙남으로 이어진 것이다.
터미널 인근 선호는 대간과 정맥들 종주를 통해 축적된 경험의
노우하우(know-how)다.
잠 설치는 전야(前夜)가 낙남이라고 예외일 리 있겠는가.
미지의 세계란 원래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인 걸...
새벽의 외동 종합터미널은 간 밤에 내렸던 곳이라 낯이 익었다.
6시발 상동면 매리행 첫 시내버스는 내 전용인가?
학생 등하교길 노선이며 내가 탄 버스는 등교시간에 맞추기 위해
간다는데 승객이 혼자라는 이유로 지름길 고속 직행이었다.
평소에는 80~90분이 걸린다는 매리에 불과 30분 만에 도착했다.
이거야 말로 내겐 더 없는 다행이며 길조라 볼 만 하겠지만 지방
버스 운영의 애로가 읽히는 현상이기도.
뒷산 매화가 땅에 떨어지는 듯 한 모양의 명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낙동강 하구 매리(梅里).
이 낙남정맥 들머리는 먼 동 터오는 아침인데도 아직 잠결인 듯
말 걸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다른 들며리인 고암나루터(대동면 덕산리) 쪽 역시 그러했다.
2004년 4월 3일의 07시.
매리2교 앞 삼거리에서 낙남의 첫 발을 막 디디려 할 때 강 저편
양산 물금쪽에서는 경부선 상하 열차가 나보다 더 바쁜 듯 했다.
시작부터 암벽타기를 강요해서 긴장하기도 했으나 잠시였을 뿐
동신어산에 이르기 까지 1시간여는 어렵잖은 암릉, 아기자기한
오름과 굽어보이는 낙동강 등 빼어난 전망에 힘드는 줄 몰랐다.
강가의 이른 아침인데도 시계가 어찌나 좋았던지 동편의 금정산
괴암(고당봉)이 지근처럼 다가왔다.
강 건너 약간 반시계 방향의 오봉산, 토곡산도 지척이었다.
줄기는 염수봉, 시살등을 타고 영축산에 이르러 정족산에서 올라
온 낙동정맥과 합류한다.
이후 신불산, 간월산, 능동산과 가지산으로 달려가는 낙동정맥,
일명 영남 알프스의 장쾌한 용트림은 파노라마였다.
동신어산 정상/뒤로 금정산이 보여야 하는데....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 이라는 459.6m 동신어산 표주석 이후
너무 거침 없이 잘 나아갔기 때문이었을까.
하마터면 353m백두산 까지 내달을 뻔 했다.
478m봉에서 우로 사정 없이 꺾어야 하는데 무심코 직진해 버림
으로서 낙남 첫날에 첫 알바를 잠시나마 했다.(요즈음엔 친절한
이정표들 덕에 그런 일이 없겠지만)
신어산 지기 정인태 옹
상동면과 대동면 경계를 이루며 남하하다가 신어산을 향해 서진
하는 정맥의 특징은 좌우 방향을 틀 때마다 과격하다는 것.
간단히 나마 알바를 한 후라 신중해진 탓일까.
지도를 꺼내는 일이 잦아 속도감이 떨어지는 듯 했다.
481m봉과 522m봉, 453m봉을 확인하며 나아가다 내려선 임도.
이 포장도로는 405m봉을 거치는 정맥길을 포기하라고 유혹한다.
왜냐하면 이 임도가 생명고개에서 분기했으므로 길 따라 가도 곧
고개 마루에서 정맥에 합류하게 되니까.
민가가 있으며 대동면 주중천 독지곡(주동리)과 상동면 절터골
(묵방리)을 잇는 이 고개가 지역민들에게는 새명고개란다.
신어산 남봉 또는 제2봉이라 할 수 있는 605m봉에서 북서향으로
목전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신어산 정상이 나타났다.
정상에 오르는 늙은 이를 반기려는 것인가.
초소 안에서 한 노인이 나왔다.
대간, 정맥을 통 틀어 호남정맥 순천 고동산의 김학동(백두대간
59번 글 참조) 이후 처음이라 그랬는지 무척 반가웠다.
첫 날, 첫 알바도 이미 했지만 역시 첫 날, 첫 초소에서 감시원과
상면했으니 긍정이 부정과 상계하고도 남았다 할까.
신어산 정상
신어산지기 정인태.
통성명에서 그는 정축생이라 했다.
그의 언사가 그의 품위를 말해주는 듯도 했다.
정년 퇴직후 건강 유지에 보탬이 되리라 판단되어 이 일을 하고
있다는데 오랜 세월 교직에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었다.
나 보다 2살 연하지만 연배지정에서 였을까.
이 늙은 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모두 진정이라 느껴져
나 또한 사사(謝辭)를 표했다.
630m 신어산(神魚)은 김해의 진산이다.
산 이름에 물고기가 포함된 것이 기이하지만 '신어'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한단다.
20평 남짓한, 사방이 탁 트인 민둥 정상의 전망은 일품이다.
지나온 정맥을 따라서 동북으로 가면 낙동강을 건너 금정산에서
낙동정맥이 꿈틀대며 북상한다.
영남알프스까지 아른거린다.
남으로는 몸통 키워가느라 몹시 바쁜 듯한 김해 시가가 한 눈에
들어오고 광활한 김해평야가 장관이다. <계속>
첫댓글 다시 읽게되니 좋습니다. 떠나지는 못하시더라도 옛 기억을 더듬어 글로 옮겨 봄으로서 이미지 산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제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조만간 족발 가지고 방문할까 합니다.
거두 절미하고 환가(returning home)를 축하합니다. 그리고 환영하겠습니다.
큰형님 저 대성 입니다 올리신 글 다 읽 고요 사진 감상 잘했 습니다 형님 덕에 여행 한번 신바람나 게 햇답니다 형님 건강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