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교장의 러브레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겨울 특강-금요 수필반 )김덕남
마른 들꽃이 부서질까 봐 대 봉투 속에 곱게 펼쳐진 채 배달된 B교장 의 편지는 남편에게 온 것이었다. 연 보라색, 살구 색, 그리고 분홍과 연두색 등 은은한 한복의 빛깔을 닮은 고운 한지에는 깨알 같은 꽃 수술과 작은 열매를 단 꽃잎들이 단아한 여인의 자태로 들바람을 타고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톱날 가위로 한지 둘레를 예쁘게 처리한 열네 장의 들꽃 장식 편지는, 그리운 님께 보내는 여인네의 연서 같았다.
B교장의 독특한 필체의 한자가 빼곡한 편지의 서두에는 어김없이 ‘귀부인 김 교장님’이라는 내 안부를 빼놓지 않았다. 여섯 살이나 수하인 남편에게 항상 그렇게 장문의 안부 편지를 먼저 보내시는 분이다.
12년 전 이리 모 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B교장은, 한때 뇌혈관계질환으로 위험한 순간을 겪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곳 ‘미륵산과’ ‘배산’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천 번을 넘게 오르내리며 불굴의 투지로 건강을 다시 찾으셨다.
정성들여 펴 말린 들꽃의 한지는, 아마도 가정과 교사 출신인 사모님의 솜씨가 아닐까 싶었다.
10여 년 전 내가 정읍 지역 시골 초등학교 교감으로 있을 때, B교장 의 고향 선산 가까운 ‘초강’ 마을에 학교가 있었다. 가끔 익산에서 벌초를 하러 오시는 날은 일부러 나의 근무처를 찾아 주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사모님은 정성이 담긴 음식들을 내게 보내 주셨다. 맛깔스런 단자와 강정 등 이바지처럼 정갈한 음식은 그 모양새가 너무도 아름다워 함부로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찹쌀가루 옷을 살포시 입은 햇쑥이 파릇파릇 살아있듯 엷은 속살을 내보이던 바삭한 쑥 튀김은 정말 예술이었다.
B교장 내외분의 지극하고 고우신 마음이 들꽃 한지의 서신으로 또 한 번 감동을 주었다. B교장은 박정희 대통령시절 산업 근대화 계획에 따라 익산에 세워졌던, 대규모의 실업계 국립 고등학교 교감으로서 내 남편의 상사이셨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질 줄 모르고 하늘을 찌르던 그 분의 자존심은 남편과 너무도 닮아 오히려 서로 잘 통했던 것 같다. 능력을 인정해 주고 신뢰를 쌓던 관계는 남편의 진로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 뒤 공과 실적을 쌓는 일에 피나는 노력을 했던 남편은 승진시험제도가 사라지던 마지막 해, 가까스로 응시자격을 얻어 절박한 심정으로 시험을 치렀다.
전국 국립학교 응시자 중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남편의 소식은, 능력을 인정해 준 그분의 신뢰가 이룬 쾌거였다. 그렇게 인간적 교류는 더욱 끈끈한 유대로 이어졌고. 남편이 어려운 조건에서 교육감 선거에 나섰을 때도, 소리 없이 진심으로 도왔던 분이다.
B교장이 보내주신 열네 장의 편지에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 벌판의 고산준령에서 활동하던 독립투사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었다.
공출로 빼앗기던 농민들의 심정, 소나무 껍질을 벗겨 생키를 먹던 일, 흥남 군수공장에서 콩으로 기름을 짜고 난, 부패한 깻묵으로 죽을 먹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피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의 고난 사는 나도 이야기로만 듣던 것들이었다.
자유당 정권, 6‧25 동족상잔, 4‧19 의거, 5‧16군사쿠데타, 근대화과정 그리고 오늘날까지 시대의 울분과 정치의 난맥상 등 한 편의 한국사를 펼치셨다.
배곯고 지내오신 어릴 적, 제대로 밥을 먹어 봤어야 밥맛을 알지 않겠느냐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밥맛없다는 요즘 아이들을 강하게 꾸짖는 대목이기도 했다. 대하드라마 같은 편지글 속에서 그분은 그렇게 한 결 같이 그 시대의 주인공으로 서 계셨다.
보내준 편지마다 늘 그랬듯이, 교육계의 한탄과 정치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공감대의 논제였다. 빨리 빨리 문화가 우리 한국인의 성정이 되어버려 양반의 걸음이 사라졌다는 지각 론,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무례한 옷차림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등, 얼굴 없는 대화는 끝이 없었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진심이 담기지 않은 잘못된 악수의 모습을 꼬집는 수필 형식의 글도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정년을 맞이하던 당시의 심정과 토로하고 싶은 그동안의 속내의 갈증은, 고운 한지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남편을 향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동안의 무심을 뉘우치기라도 하듯, 회포를 풀 약주 한 잔 대접에 소홀했던 형편이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일상의 감정 변화가 이제는 산천초목과 공원의 철쭉 장미에도 아름답고 정겨워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하셨다. 80을 바라보는 인생 황혼 길에서 갖는 처연한 심정 같아, 비슷한 세월을 따라가는 내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그동안 온갖 변화와 격동의 세월을 살아오시면서 깊고 넓은 이해와 식견으로 여러 인생을 만났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자연인, 신 의장을 만난 인연론’에서는 남편을 당신의 인생 역사 속에 가장 귀한 행운의 인연 자리에 두고 계신다 했다.
본받고 배울 점 많은 사람이라며 나이 어린 사람에게 과분한 극찬을 해 주신 B교장께 참으로 고맙고 황송했다. 그렇게 편지 속에서 솔직하고 진솔한 당신의 고백으로 믿음과 사랑의 만리장성을 쌓고 계셨다.
원불교 신자이신 B교장은 우리 가정을 위해 하느님의 평화로 기도를 올리셨고, 만해 ‘한용운’님의 시구로 장문의 편지를 마무리하셨다.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없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 태운다고 원망 말고, 애처롭기까지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가슴에 남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
(2014.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