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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대장은 예전에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환갑 즈음에 14개 거봉을 완등할 계획”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산꾼이라면 어찌 14개 거봉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현실적으로 사회생활과 등반을 무난하게 겸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2007년 그가 고미영의 등반매니저가 된 것은 8,000m급 14개 봉을 모두 오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고미영이 사망하고 그는 그녀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산을 올랐다.
고미영씨를 대신해 8,000m급 14개봉을 올랐습니다. “그동안 부담감이 좀 있었습니다. 서둘렀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녀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빨리 등반을 마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미영씨에게 쏠렸던 시선이 저에게 돌아온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14개 거봉을 모두 끝냈다고 해서 고미영씨의 가족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기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빨리 마치고 싶었습니다.”
고미영씨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하십니까? “14좌가 목표였던 사람이라 그것을 누군가 대신한다고 해서 꿈이 이뤄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매니저였던 사람으로서 저라도 14개봉을 모두 올라 약속했던 부분을 어느 정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 초오유를 오르기로 했던 약속은 올 가을에 지키면 됩니다. 그녀와 계획했던 고산등산학교를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제가 속해 있는 코오롱등산학교에서 강좌를 개설할 수도 있습니다. 고산등산학교는 현장에서 교육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기술을 익히고 고소에 적응해 등반까지 연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산악단체에서 히말라야 등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히말라야를 오르고 싶고 고산등반이 꿈인 평범한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습니다. 비용을 지불하고 상업등반대를 따라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에 대해 ‘그게 무슨 등반이냐’고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요즘은 혼자 원정대를 꾸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등반대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참가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14개 거봉에 도전한 이유가 무엇인가요?“사실 저는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산밖에 몰랐습니다. 등산을 하다 보니 이게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즐거움과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등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습관처럼 산을 다녔습니다. 게다가 고미영씨의 14좌 등반매니저가 되는 순간부터 책임감과 의무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런 복합적인 상황이 저를 지금 이곳까지 달려오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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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차례 등정에 실패했습니다. 서둘러서 그런 건가요?
“초오유 두 번, 안나푸르나에서 한 번 실패했습니다. 전에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등정을 포기한 뒤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 아닌데’라는 푸념을 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지난해 봄 시즌에 동상이 걸려 발가락과 코도 좋지 않은 상태였고요. 그렇다고 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 초오유에서 돌아오며 고미영씨의 엽서가 떠올랐습니다. 그곳에 적혀 있는 등반스케줄에 2011년 봄 안나푸르나가 끝으로 되어 있더군요. 그때서야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엽서에 적힌 스케줄대로 14좌 등반이 모두 끝났습니다.”
14좌 완등의 가능성을 확신한 때가 있었습니까. “옛날부터 14좌는 마음만 먹으면 언젠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도 하고 아이들도 키워야 했기에 환갑 즈음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빨리 완등에 성공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에베레스트를 오른 2007년부터 지금까지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사실 그 기간 동안 등반 이외에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게다가 2008년과 2009년 사고로 심적인 갈등이 많았습니다. 이 짓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마무리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위 분들의 기대와 시선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고산등산학교와 상업등반이 연관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전문등반이 대중화되며 히말라야 등반을 원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히말라야 등반을 원하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등반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등로주의와 알파인스타일을 강요하는 풍토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잣대가 아닙니다. 또한 개인이 팀을 조직하거나 원정대에 참가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대신 어떤 한 사람이 주축이 되어 원정대를 꾸리고, 등반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과 고용인의 비용을 지불하고 참가하면 됩니다.
등반은 자신의 능력에 맞춰서 하고요. 얼마 전 82세의 일본인이 에베레스트를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고소에서 다섯 걸음을 걷기도 힘겨워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걸어서 에베레스트에 올랐습니다. 나이가 많거나, 체력이 딸려서, 혹은 여성이라서 힘에 부친다면 혼자서는 도저히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추구하는 등반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성취감을 얻는 게 가장 이상적인 등산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음 등반에 대한 주변의 궁금증과 기대가 많습니다. “등반가는 인터뷰를 많이 할수록 거짓말이 자꾸 늡니다. 그러다가 필요 이상의 계획을 발표해서 잘못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확실한 계획은 이번 여름 시즌을 파키스탄과 네팔에서 풍경사진 찍는 데 보내는 겁니다. 예전에 계획한 화보집을 만들기 위해섭니다. 그렇게 조금 여유를 가진 다음 가을에 초오유로 갑니다. 또한 소속사에서 진행 중인 올 겨울 남극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그 팀의 일원으로 빈슨매시프를 등반할 예정입니다.
가능하다면 귀국 길에 칼스텐츠까지 올라 7대륙 최고봉을 마치고 싶습니다. 이것이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다음 등반에 대한 청사진입니다. 그 이후는 사실 장담 못 하겠습니다. 알파인스타일이나 거벽등반을 할 나이와 시기는 지났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좋은 등반을 꾸리는 팀이 있다면 제가 지원하며 동행도 하고 싶습니다. 제가 후배들을 위해 팀을 직접 꾸릴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던 산동네에서 놀 것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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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봉우리를 오르는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곳은 어디였나요. “2008년 마나슬루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마지막 캠프에서 밤에 출발했는데 정상 근처에서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다가 아침에 다시 출발했지만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고소캠프에서 하루를 더 자고, 세 번째 도전 만에 정상에 섰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다가 또 바람이 심해져 고소캠프에서 또 하루를 더 머물렀습니다. 그 때 추위와 바람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미영씨 사고 직후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고 언론에 보도된 적 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라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연인 사이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연인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히말라야 원정을 경험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몇 달 동안 얼굴을 맞대고 있다 보면 평생 살아온 세월을 다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2년 6개월 동안 원정을 함께 다녔으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겠습니까. 그녀의 결혼생활과 좌절, 가족 간의 갈등까지, 가족들도 모르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세상에 밝힐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는 무척 좋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등반파트너로서, 다른 이들이 어떤 평가를 하든지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고미영씨 매니저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 일은 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소속사에 이야기했습니다. 제 사업체의 수익이 코오롱스포츠의 대표이사님 연봉보다 많을 겁니다. 그런데 등반매니저를 맡아 사업을 등한시하면 소속사에서 그에 해당하는 보수를 줄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아예 연봉 이야기는 서로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제 자존심에 관한 문제기도 했고요. 소속사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을 수용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돈 문제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더군요. 이상한 소문도 났습니다. 계약금 7억 원에, 한 봉우리 오를 때마다 1억 원씩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근거 없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한 번 원정에 3억 원 이상을 쓴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사실 2009년에 4개봉을 끝내고 가셔브룸 1, 2봉 등반허가를 받아둔 상태였습니다. 총 6개 봉우리에 사용한 비용이 바로 그 금액입니다. 그런데 그 돈이 대한산악연맹을 통해 한꺼번에 정산되어 제 앞으로 들어오다 보니 오해를 사게 된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원정경비를 남겨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혹 그렇게 알고 있는 산악인들이 계시다면 오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4좌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8,000m 등반은 한 번의 경험으로는 좀 부족하고, 두세 번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등반에 대한 경험도 어느 수준 쌓을 수 있고 적당한 인생 공부도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 14좌에 도전하겠다는 분들이 있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정말 많은 운이 따라줘야 하는, 목숨을 내놓고 다녀야 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약과 같이 강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중독은 약도 없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