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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는 누구인가 원문보기 글쓴이: 비단금
인간아 너는 너의 의사에 반하여 죽는구나
죽음이 무엇인지를 배우지도 못하고서
죽음을 배울지니라
그러면 그대는 삶까지도 배우게 될 것 이니라
죽음을 배우지 못한 자는 삶까지도 아마 배울 수 없게 될 것이니라....
“죽음의 기술”에서
이제까지 소위 서구의 과학적인 죽음연구 성과를 소개하였다. 연구 대상은 가사체험, 호스피스기관의 말기환자,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이들이었다. 레이몬드 무디박사, 퀴블러 로스박사, 이안 스티븐슨 박사 등은 이런 분야의 선구자적인 연구자들이다. 모두 정신과의사들이다. 앞의 두 분의 주요 저서들은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심지어 퀴블러 로스박사의 말기의 저서가 “인생수업”이란 제목으로 류시화씨가 최근에 번역해 놓았다. 이안스티븐슨박사의 저서 중에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은 "childern who remember previous lives"이다. 아쉽게도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 않다. 죽음 때문에 머리빡을 쥐어 짜본 경험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의 뒤를 이어 전생기억하는 어린이들을 연구하고 있는 짐 튜커박사의 “Life before life”도 권하고 싶다. 이 두 책은 우리말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왜 번역가들은 이런 책을 번역하지 않을까? 잘 팔려 돈도 될 터인데....
죽음과 관련된 현상을 연구해본 분들은 동양의 지혜에 감탄한다고 한다. “티벳 사자의 서”를 말한다. 죽음연구 성과를 소개하기로 작정했으니 “티벳 사자의 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법... 왜 감탄하는지 소개해 드리겠다. 대한죽음학회회장이신 최준식교수님의 인터뷰 내용을 상기하면서 읽었으며 좋겠다.
-근사체험 연구가 국내에선 낯섭니다. 오히려 물질적 가치관이 주류인 서구에서 연구성과들이 많은 게 놀랍습니다.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과학이나 학문 영역으로 진입하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우선 질문에 두 가지 문제가 보이는군요. 제가 겪은 바로는, 서구는 우리 동양보다 물질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앞서 있습니다. 동양이 영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은 우리 동양인들의 환상이죠. 그리고 근사체험이 학문적 영역에 진입 못했다고 하는데, 서구에서는 이미 30여년 전부터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근사체험을 연구하고 그 성과도 놀랍습니다. 근사체험 연구의 의미는 인 류가 이 체험을 매개로 사후생에 대해 최초로 접근한 데에 있습 니다. 그전까지 인류는 죽음에 대해 종교의 도그마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근사체험을 분석해서 죽음 뒤의 세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바르도 쇠돌>(Bardo thdol)(중음천도밀법)이라고 하는 티베트의 ‘사자의 책’은 이전부터 비밀스럽게 구전되어 내려오던 것에 근거하여 책을 만든 것이 명백하긴 하지만, 서기 8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티베트에 처음 불교를 전래한 파드마 삼바하바에 의해 문자화 되었다. 이 책은 죽음과 재생 사이에 존재하는 바르도들, 즉 중간단계(초입중음, 중간중음, 만중음)들을 제대로 통과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안내서이다. 그 책이 제공해 주는 정보는 매우 구체적이어서 각기 다른 여러 바르도(중음)들에 머무르는 기간과 그때의 의식 상태 등을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결국 이 책의 목적은 사자로 하여금 그가 여태까지 지나쳐 오면서 이미 친숙해진 환경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게 해주어 해탈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깨달음을 아들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살아 있을 때 수행과 가르침을 통해 얻은 앎은 ‘아들의 지혜’라고 할 수 있으며, 죽은 후에야 비로소 진실로 명확하고 찬란한 ‘어머니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도 쇠돌>의 첫 번째 부분인 ‘치카이 바르도(초입중음)’에는 죽는 순간에 찾아오는 해체의 경험이 기술되어 있다. 사자는 그때 순수 실재의 첫 번째 청명한 빛이 현란하게 비치는 것을 보게된다. 바로 이 순간에 사자가 만약 엄청나게 강렬한 그 빛에 의해 압도되지 않고 그 빛을 알아 보게 될 경우,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직접 원문을 인용해 보겠다(중간중간 생략되어 있음)
“초입 중음의 첫째단계 - 죽음 순간에 원초의 투휘광체(위에서는 ‘청명한 빛’이라 해석했음, 영어는 clear light임), 즉 정수적 지혜를 보게됨.
<이같은 여러 천도를 적용시킬 시기에 대하여>
날숨결이 끝났을 때 “생명력”이 몸담고 있는 “중추신경”속으로 내려가느니라. 그때에 “식심”은 자연적 상태의 마음인 눈부신 빛을 경험하고 있게 되느니라. 그리고 생명력은 후방으로 내던져져서 바른쪽과 왼쪽의 신경을 통하여 아래쪽으로 흐르게 되고 여기에서 중음이라고 불리우는 중간상태가 차츰 뚜렷이 보여 지게 되느니라. 이 천도는 생명력이 배꼽의 중추신경을 가로 질러 왼쪽 신경 속으로 달려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적용될지니라. 이 생명력이 움직이는데에 소요되는 필요한 시간이라면 영감(靈感)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또한 한식경(약 30분)동안으로 보면 되느니라.
<이 천도의 적용 방법에 대하여>
호흡이 막 멎으려고 할 때에 ‘전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가장 좋으니라.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다음과 같이 임종자에게 타이를지니라.
“ 오! 기품있게 태어난 아무개(임종자의 이름)여. 지금이야말로 그대로 하여금 <진실법계>의 길을 찾을 때가 닥쳐왔소. 그대의 호흡은 바야흐로 멎으려 하고 있소. 그대의 스님은 <투휘광체>와 더불어 그대 앞에 앉아 있소. 모든 사상(事象)은 진공(眞空)으로써 구름 없는 하늘의 허공과도 같으오. 깍지를 벗고 나온 알 모습의 티없이 깨끗한 지금 그대의 지성은 중음동안에서의 진실법계인 중심이 비어 있는 투명한 진공을 경험하려 하고 있소. 이 순간에 그대는 그대 자신을 알도록 하오. 그리고는 그 상태에 머물도록 하오. 나도 또 지금 그대와 함께 앉아 있소 ”
임종자는 마음에 인상심어주기 위하여 호흡이 아주 멎기 직전이라고 이 천도를 임종자의 귓전에서 몇 번이라도 좋으니 반복해서 읽도록 할지니라. 호흡이 멈추려 할 때에 임종자를 오른쪽으로 돌려 눕힐지니라. 이 자세는 <사자가 누워 있는 자세>라고 부르느니라.
목의 좌우에서 벌떡거리는 경동맥의 맥동을 압박할지니라. 그리고 또 임종자가 잠에 빠지려고 하거든 그건 반드시 방해 받아야 되느니라. 그리고 동맥은 기필코 힘세게 압박되어야만 되느니라. 이렇게 하므로서 생명력은 중추신경으로부터 되돌아 올 수가 없게 되어 머리에 있는 브라흐마의 개구(대천문을 말한다)를 통하여 떠날 것이 확실하니라.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천도가 적용되어야 할 때이니라.
이 순간에 달마가야(법신)의 절대적으로 확실한 심체인 진실법계의 투휘광체-중음길에서의 맨 첫 번째의 눈부신 섬광이 모든 임종자들로 하여금 경험되느니라.
호흡의 정지와 영감의 정지와의 간격은 생명이 중추신경 속에 머물고 있는 순간동안이니라. 이것을 일반적으로 의식원리, 즉 영혼이 떠나버린 상태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이 상태가 얼마동안 지속되느냐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니라. 그 이유는 그 임종자의 성질이 선했던가, 악했던가와 신경이나 생명력의 상태에 좌우되기 때문이니라. 안정상태에서의 정신 집중이나 깊은 명상상태에 대한 경험을 다소라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느니라.
누르께한 액체가 시신의 몇군덴가의 열려있는 구멍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까지 앞에서 말해둔 것과 같은 천도가 계속하여 반복 되풀이되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사악한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라거나, 건전하지 못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상태는 아주 잠시 동안밖에는 지속되지 못하느니라. 어쩌면 그 시간이라야 아마 한식경 정도나 지속될지 모르느니라.
이 기절 상태는 거의 3일반 동안 계속 되느니라. 그리고 투휘광체로의 천도는 이 온 기간동안에 걸쳐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이 여러 지시사항의 적용 방법에 대하여>
.....
“이제 바야흐로 땅이 물속으로 가라 앉아 들어가는 것과도 같은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오”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그대의 마음이 미혹되지 않도록 하오”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지금 그대에게 찾아온 것은 죽음이라고 이름하는 것이오. 다음과 같이 결심하오. ‘아! 이제야말로 죽음의 때로다. 나는 이 죽음을 이용하여 불,보살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결심하여 아누다라삼먁삼보리에게 나의 모든 힘을 기울임으로써 모든 인류의 선을 위하여 극락정도의 천상무한광대한 그곳으로 옮겨가 살면서 완전한 해탈을 얻도록 힘쓰련다!’ 이같이 결심을 굳히고서 특히 사후의 법신 투휘광체의 눈부신 빛이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실현될 때에 그대는 그 상태안에 있다는 것을 알으오. 그대는 그대가 지금 있는 무상상징상태, 즉 반야의 최고 은혜를 얻겠다고 다음과 같이 결심하오 ‘내가 설사 그 같은 실현을 해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중음만은 인식하도록 하련다. 나는 중음의 합일된 무상체를 익혀 배워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줄만한 불.보살의 모습, 형상으로 나타나도록 하련다. 나는 저 하늘의 허공처럼 끝없으면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련다!’.... ”
“스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지금 원초적인 투휘광체를 경험하고 계시오. 그대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그 상태에 머물도록 힘쓰시오”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들으오. 지금 그대는 진실법계의 정수적 지혜로부터 방사되는 눈부신 빛을 경험하고 있소. 그것을 인식하오.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본성이 空인데 태어나면서 부터도 역시 空이며, 그 어떤 특징이나 빛깔로나 형상지워 놓을 수 없는 그대 지금의 知性은 실로 진실법계, 바로 그것이며 全善이오.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그런 ‘비어있는 것’이라고 하는 뜻의 空이 아니라, 방해받지 않으며 맑게 빛나며, 희망에 차고 활기 넘치며 더없는 행복에 젖어있으며, 知性 바로 그대 자신이라고 간주되는 空인 지금의 그대 자신의 知性은 바로 참된 意識 그것이며, 전선한 불타 바로 그 모습이오. 본성이 空이고 그 어떤 것으로도 형상을 이뤄놓을 수 없는 그대 자신의 의식과 빛나며 더없는 행복에 찬 知性, 이 두가지 것은 서로 나누어지지 못하오. 이것들이 한데 뭉쳐 녹여진 것이 다름아닌 바로 완전계발된 상태의 지혜인 달마가야, 즉 法身상태요. 빛나고 空이며 눈부신 빛을 내뿜고 있는 無上體로부터 갈라낼 수 없는 자신의 의식은 바로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불변의 빛-불타,아미타불이오. 이것만 알면 충분하오. 부처님과 동등한 상태인 그대 자신의 지성의 空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기자신의 의식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불타인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 상태에 그대 자신을 있게 하는 것이오.”
여기서 묘사된 투휘광체가 가사체험자들이 표현하는 눈부신 빛과 유사하지 않은가? 서양사람들은 그 빛을 Christ, God이라 부른다고 퀴블러로스 박사는 말했으며(삶,죽음, 사후의 삶), 사자의 서에서는 그 빛을 자신의 본성인 空에서 방사되는 투휘광체로서 자신의 참된 지성이며 의식이라 하고 있다.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첫째 단계에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또 다른 기회가 찾아 온다. 바로 두 번째의 청명한 빛이 그들에게 비칠 때이다.
초입중음의 둘째단계 - 죽음 순간에 제 2의 투휘광체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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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숨이 멈춰진 때부터 약 30분 쯤 뒤에 망자의 위쪽으로 두 번째의 투휘광체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망자가 생전에 쌓은 선 또는 악의 카르마에 의하여 영혼은 바른편 또는 왼편의 어는 신경줄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서 육체에 나있는 여러 구멍들 중에 ... 떠나가느니라. ... 마음의 맑은 상태가 찾아드니라...
거의 30분동안 지속되는 원초투휘광체 상태의 시간은 신경의 기능력상태에 좌우되기도 하고, 생전에 망자가 이 천도의 實修를 쌓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갈 때, 그 영혼은 ‘이것이 죽은 건가, 안죽은 건가?’고 독백하리라. 그러나 망자는 결정할 수가 없느리라. 왜냐하면 그는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니라. 이들이 울며 슬퍼하는 목소리를 듣기까지 하느니라. 하지만 업력에 의해 만들어져 나오는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무서운 환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느니라. 또 ‘죽음의 신들’에 의하여 불러 일으켜진 무서운 요괴나 이것들에 의한 경험같은 것도 아직은 기미를 보이지 않느니라....
이때에 완전히 투휘광체속에 들어가 있는 영혼들도 있고, 때로는 불.보살과 신들의 환각을 보고 있는 영혼들도 없지 않느니라....
중음의 첫째 단계 그것이 최고이니라.
그렇지 못했을 경우이면 이번의 이 명료한 재차의 천도에 의하여 중음의 제 2단계에 있는 동안에 그의 지성은 일깨워져서 해탈을 얻게 될 것이니라.
중음의 두 번째 단계에 있는 동안 그 사람의 몸은 빛나는 환각적인 몸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성질로 변화된 모습이 되느니라. 이 영혼의 모습을 “思考體”라 하느니라. 자신이 죽었는지 여부를 알고 모르고와는 관계없이 빛나는 상태가 망자에게 찾아오게 되느니라....
중음길 두 번째 단계는 “思考體”에게 이상한 환각들이 차츰 뚜렷하게 보여지기 시작하느니라. 식심(識心, 영혼)은 그 활동이 제약된 굴레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방황하고 있느니라. 이때에 이 특별한 천도가 능률적으로 적용되기만 한다면 목적은 아마 성취될 것이니라.
카르마가 빚어 만들어 내놓은 환각이 나타나기에는 아직은 이른 때 인만큼 망자는 해탈을 성취하겠다고 하는 그의 목적을 벗어나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니라....
이번 기회도 놓치게 되면 다음에 찾아 올 바르도 기간에 그들은 여러 가지로 계속되는 경험을 해나가야 하는데, 이들 단계에서 그들의 의식은 점차 해탈의 진리와는 멀어져 가고 다시 환생하는 길로 접어든다.
‘쵸니드 바르도(중간중음)’, 즉 ‘실재(진실법계)를 경험하는 바르도’의 단계에서 사자는 계속해서 여러 신들과 만나게 된다.
중간중음이라는 이름의 중음길 제3단계 - 카르마의 환각이 나타나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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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단계에서는 생전에 쌓은 업에서 빚어나오는 환각이 빛을 내기 시작하느니라.
이때쯤에는 망자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기곁에는 제물이 차려져 있고, 의복은 수의로 갈아 입혀졌으며, 침상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을 아마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니라.
그의 가족친지들이 울며 애통하는 모습을 보고 듣고 할 것이니라. 망자의 혼령은 이들을 볼 것이며, 자기더러 왜 갔느냐고 목이 터져라 애통해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니라. 망자의 혼령 역시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너무 그렇게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가족 친지들을 불러댈 것이니라. 그러나 유족들이나 친지들은 혼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느니라. 그탓으로 망자는 화를 내기 시작할지 모르느니라.....
“오! 기품있게 태어난 이여 ... 십분 정신차려서 들으오. 중음에는 여섯가지 상태가 있소. 자궁안에 있는 동안의 자연스러운 상태의 중음과 꿈속같은 상태의 중음과 깊은 명상속에 있는 사이의 안정되고 황홀스러운 느긋한 중음과 죽음순간의 중음과 진실법계의 눈부신 빛을 경험하는 동안의 중음과 윤회적 존재와는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절차의 중음, 이 여섯가지요. ... 그대는 이중에 3가지의 중음을 아마 경험하게 될 것이오. 죽음순간의 중음, 진실법계를 경험하는 동안의 중음과 다시 태어날 자리를 찾고 있는 동안의 중음이 그것이오. 이 3가지 중에 그대는 어제까지 죽음순간의 중음을 경험했던 것이오. 진실법계의 투휘광체가 차츰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지만 그대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오. 그래서 그대는 여기까지 떠돌아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오.
그대는 지금부터 중간중음과 만중음, 이 두가지 중음을 경험하려고 하고 있소, 부디 이 순간만이라도 미혹되지 말고 내가 그대를 인도해 주려고 하는 일에 대하여 계속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오.....
이 중간중음에 들어서 있는 그대에게 그 어떤 두려움이나 겁을 주는 것들이 닥칠지라도 다음 언구를 잊지마오....
‘정신차릴지어다! 나에게 진실법계의 불확실한 경험이 차츰 그 모습을 나타낼 때 요괴와 같은 환각에 대한 외포와 두려움과 겁스러워지는 생각을 떨어버리고 비록 그 어떤 환상이 나타날지라도 그 모두를 내 자신의 의식이 그 같은 환각의 모습으로나 또는 내 자신의 의식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로서 인식하게 되어지이다. 이런 것들 모두를 나는 중음길에 있어서의 요괴의 성질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어지이다. 내가 더 없이 완전한 자신을 성취하려는 이 중요한 순간에 내 자신의 사고형태가 모습으로나 그림자로서 나타난 평화의 신이라거나 분노의 신이라거나 하는 그 집단의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지이다!’
그대의 육체와 마음이 따로따로 갈라져 있는 이때, 마치 봄철에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여 가고 있는 신기루와도 같은 식으로 나타나서는 예민하고 섬광을 뿜으며 빛나며 눈부시며 빛을 뿜고 그런 광경으로 된 휘황한 무서운 순수한 진실의 빛을 아마 경험하고 있을 것이오. 이같은 환경속에 있다고 해서 그 모습에 외포당하거나 무서움을 느끼거나 겁먹거나 하지마오. 이건 그대 자신의 참된 바닥 성질에서 내뿜어지는 빛이니 이걸 올바로 인식하시오.....
지금 그대의 몸은 자신의 성벽, 즉 선천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정욕의 만족을 위하여 달렸던 그 소질에 의하여 형성된 “思考體”라고 불리워지는 심령체요. 그대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몸을 벗어난 이후부터 지금의 그 몸은 그 어떤 것이 덤벼들건간에 소리나 빛이나 방사선같은 것으로서는 도저히 그대의 몸에 상처를 내게 할 수는 없소. 그대는 죽어지지 아니하오.
이같은 현상들이 그대 자신의 사고형태라는 것을 안다는 것쯤이야 그대에게 있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오. 이것이 바로 중음이라는 것을 아시오....
그대가 만일 지금 그대의 몸이 사고형태, 즉 육신이 없는 의식의 덩어리이며, 앞에 나타나는 이 모든 환상은 바로 나의 사고체에서 뿜어나오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또 만일 그대가 이 천도를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그대가 인간계에 살던 동안에 그 어떤 명상이나 삼보께 귀의를 했다할지라도 이 뿜어나오는 빛은 그대를 떨게 해 놓을 것이고 메아리치는 음향은 그대를 아마 주눅들게 할 만하오.
이천도의 중요한 열쇠를 그대가 알고 있지 못한다면 뿜어나오는 빛과 소리와 방사선을 인식할 수가 없게 되어 그대는 윤회라는 고통스런 굴레 속을 떠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오색 빛에 둘러싸여 있는 평화이 신들, 분노의 신들, 문을 지키는 신들의 강력한 모습을 보는 것과 동시에 사자들은 여러 색깔의 몽롱한 빛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빛은 각자의 개인적인 구역, 즉 자기네들이 태어날 수 있는 곳을 직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의 영역, 굶주린 귀신의 영역, 또는 지옥의 영역 중 어는 곳으로 배정된다.
평화제신의 여명
첫째날부터 일곱째날까지
... 누차 거듭되는 천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가 업장 때문에 중음기간 49일간을 모두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할때, 우선적으로 평화의 여러신들의 여명이 차츰 뚜렷해지기 시작.....
첫째날이란 망자가 죽어서 다시 탄생길로 역행하고 있는 도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죽은 뒤 3일반부터 4일째까지 이니라...
“... 그대는 이 사흘 반 동안을 기절하고 있었소. 그대는 아마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하는 생각을 품게 될 것이오. 그대는 지금 중음길을 맞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오. 그때 그대 앞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아마 전혀 서로 다른 현상으로 경험하게 될것이오. 거기에서 그대가 보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방식은 發光과 神들이오. .... ..
분노제신의 여명
여덟째날부터 열네째날까지
.....
평화의 신과 분노의 신들은 각 그 파트너로 한그룹을 이루며 대 만다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빛에 이끌리다 보면 정신의 해탈은 얻지 못하고 환생하는 쪽으로 빠지게 되기가 십상이다. 사자가 처음 두 단계의 바르도에서 주어진 해탈의 기회를 놓쳐 버렸을 경우에는 ‘환생을 찾는 바르도’라는 뜻의 ‘시드파 바르도(만중음)’에 들어가게 된다. 이 단계에 서 사자는 자기가 바르도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신체는 커다란 물질로 되어 있지는 않으나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운동력과 견고한 물체도 통과해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자가 생시에 쌓은 업보(도덕적 선과 악의 총계)는 그가 이 바르도에서 행복하게 지낼 것인가 아니면 비참한 지경에 떨어질 것인가를 결정한다. 나쁜업을 많이 쌓아 놓은 이는 지독히 굶주린 짐승이나 사납게 몰아치는 자연의 힘에 휘말려 심한 고통을 당할 것이며, 반대로 좋은 업을 많이 쌓은 이는 즐거운 안락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 나쁜 업도 남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좋은 업도 쌓지 못한 이들은 이 단계에서 별 특색이 없는 우둔함과 무관심의 상태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이 바르도에서 찾아 볼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사자들의 왕이자 판관인 다르마 라쟈가 업의 거울로 사자의 지난 행적을 조사한 후에 내리는 심판이다. 이 거울에는 살아 있을 동안 행한 모든 선행과 악행이 모조리 다 나타나는데, 흰색과 검은색 조약돌의 형태로 그 행위의 경중을 가늠한다. 심판대 뒤에는 여섯 갈래의 길이 뻗어 있으며, 사르도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받드시 깨달아야 할 점은 이런 모든 존재와 사건이 다름아닌 바로 그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며, 그래서 본질적으로 공허한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이런 깨달음의 기회를 놓쳐 버린다면 어쩔 도리 없이 다시 세상에 환생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바르도 쇠돌>이 제공해 줄수 있는 최선의 가르침은 어떻게 하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자궁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 주고 그나마 제일 조건이 좋은 환생을 선택하도록 도와 주는 일이다.
중유신. 그탄생과 비범한 기능
..
“... 그대는 잘 들으오. 지옥계, 천상계, 그리고 이 중음계에서의 탄생은 비범한 탄생이라고 불리워지는 종류임을 유의하오. 중간중음동안에 있어서 평화의 신들과 분노의 신들에게서 나오는 빛을 경험하고 있을 때, 그대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죽은 뒤 약 3일 반동안을 깜빡하고 기절해 있었오. 그리고 지금 그대가 이 기절로부터 깨어났을 때 그때의 식심(識心.영혼)은 다시 그 원모습의 상태가 되어 육신을 떠나 떠올라가서 자기가 육신을 취하여 그안으로 들어가기 이전의 본래의 자신의 영혼 모습과 닮아 있는 발광체가 앞쪽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경전은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고 있소. ‘전자와 창출되는 자와의 모습은 서로 비슷해서 외견상으로는 인간의 몸체를 가지고 모든 지각과 기능과 거침세없는 움직이는 힘을 부여받아 카르마의 절대한 힘을 소유하고 같은 성질의-중유신으로서의 존재의-순수한 천안에게만 보이느니라’ .... 망자는 여기에서는 마치 생전에 피와 살이 있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성벽을 지닌 육체와 비슷한 몸체를 갖게 될 것이고 이 몸뚱이에는 고귀한 운명이라는 것을 타고난 자만이 갖출 수 있다고 볼수 있는 모종의 상징이라거나 완전한 미를 제수받게 될 것이오. 욕망에서 생겨난 그대의 몸은 중음동안에 지성구조에서 만들어내진 환각이오. 그래서 이를 가리켜 욕망체라고 불리워지오. 이때에 만약 그대가 천상계로 점지받아 태어날 운명을 지녔다면, 천상계의 비젼이 아마 그대에게 나타나 보일 것이오. 마찬가지로 그대가 만약 아수라계, 또는 인간계, 또는 축생계... 지옥계로 태어날 운명을 지녔다면 그 세상의 비젼이 그대에게 나타나 보일 것이오.
따라서 이 경전의 인용문구중의 ‘전자’라는 말은 3일반전까지 살아있던 그 동안의 성벽 때문에 생전에 가지고 있던 혈육으로 이루어진 그 육체와 꼭 같은 성질의 물질적인 육체를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대는 착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 뜻이오. ‘창출되는 자’란 말이 이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것은 드디어는 그대가 재탄생할 미래장소의 비젼이 그대에게 나타나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오.
따라서 ‘전자와 창출되는 자’란 표현은 지금 그대로부터 버려진 이승의 육체와 재탄생에서 떠맡게 될 미래의 육체를 가리키는 말이오.
이때에 그대앞에 나타나 보이는 비젼에 따르지 마오. 매혹당하지 마오. 겁약되지 마오, 만약 우매성 탓으로 그대가 이 환상들에게 호의를 품게 된다면, 그대는 윤회육도의 굴레속을 헤매게되어 고통을 참아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버리오......
“... 다시 잘 들으오. ‘모든 지각과 기능과 거침새없이 움직이는 힘을 부여받아’란 그대가 설혹 생전에 소경, 귀머거리, 또는 절름발이였었더라도 이 사후계에서는 그대의 눈은 형태를 볼 수 있겠고, 그대의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오. 모든 감각기관은 손상되어 있지 않고 정상적이며 더구나 매우 예민하고 완전하오. 그 때문에 바르도체, 즉 중유신은 ‘모든 지각과 기능을 부여받아’라는 말이 붙게 된 것이오.
이같은 상태는 다름아닌 그대가 죽어서 중음을 방황하고 있다고 하는 징후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도록 노력하시오. 자신은 지금 중음이라고 하는 죽음으로부터 재탄생 사이의 중유신이라고 하는 생명적인 몸, 영혼의 상태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시오. 배웠던 바를 생각해 내시오. 부디 배웠던 생각을 기억해 내시오.
‘거침새 없는 움직임’이란 방해받지 않는 활동이란, 욕망체인 그대의 지금의 몸체, 즉 그대의 지성은 생전의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서 물질적인 육체가 아니기 때문에 거침새 없이 바위라거나 언덕, 자갈이라거나 대지, 집이라거나 수미산 그자체가지도 곧장 관통해서 빠져나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오. ..
이건 다름아닌 그대가 지금 중음길을 방황하고 있다고 하는 징표요. ...
그대는 정말로 기적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고 있소. 그러나 이건 그 어떤 삼마디에서 얻어진 소산도 아니고 그 힘은 자연적으로 그대에게 저절로 딸려오게 되어 있는 것이오. 이건 카르마의 힘이라고 하는 것의 성질이오.
그대는 순식간에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사대륙을 가로질러 나갈 수가 있소. 그대가 가고자 하는 곳이면 우주 공간의 어디든지 순식간에 도착할 수가 있소. 그대는 어느 누가 허리를 굽히거나 손을 앞으로 뻗든지 할 아주 짤막한 시간사이에 자기가 가고 싶은 어느 곳으로도 갈 수가 있소. 하지만 이같은 환각이나 변형의 능력을 바라지 마시오. 부디 욕심 부리지 마시오...
'같은 성질의 순수한 천안에게만 보인다‘는 뜻은 이러하오.
중음기간의 중유신으로서 머무는 동안에는 동질적인 구조(또는 같은 지식수준)를 가진 영혼들끼리는 서로 볼 수 있다는 뜻이오.
예를 들면 천상계에 태어나기로 점지된 사람끼리는 서로를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애착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비깊은 신인 관세음보살게 명상하시오.
‘순수한 천안에게만 보인다’는 뜻은 공덕을 쌓아 순수하게 태어나는 천상계는 깊은 명상을 實修한 사람들의 천안에게만 보인다는 뜻도 의미하오. 그렇다고해서 깊은 명상을 실수하는 사람들이면 항상 서로를 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오.
의식이 이들 위로 정신적으로 집중될 때에 한해서 이들을 볼 수 있는 것이오. 깊은 명상을 실수하고 있는 때마저도 사람들은 미혹되기 쉽고 이들을 볼 수 없는 것이오”
“.... 지금 그대처럼 중유신이란 성질의 몸체를 가지고 있는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다른 사람을 보듯이 지상계의 낯익은 장소라거나 친족들을 볼 수가 있을 것이오.
그대는 그대의 친족들이라거나 친구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볼 것이오. 하지만 대답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그대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그대는 ‘나는 죽은 사람이구나. 아! 어찌하면 좋을까?’하고 생각을 하고는 아마 대단한 불행을 느낄는지 모르오.....
그대가 영원히 계속해서 불어대는 카르마의 바람결에 따라 여기 저기로 떠밀려 다니고 있을때, 그대이 지성(영혼)은 어디 쉬어갈 물체하나 없는 바람결에 휘둘려 날리는 깃털 모양일 것이오.
그대는 아마 하염없이 부지불식간에 방황을 계속하고 있게 될지도 모르오...
하지만 그렇게 비애하지만 마시오. 아마 어슴프레한 잿빛 광선이 밤낮없이 비춰주고 있을 것으로 보오. 이같은 중음이라고 하는 중간상태 속에 그대는 1주일간, 또는 2,3,4,5,6,7주일간, 49일째까지 이를지 모르오. 일반적으로는 이 만중음의 불행을 22일간 경험하게 된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소. 하지만 카르마의 결정력 때문에 일정한 기간이 정해져 있지는 아니하오.
이때쯤 되면 도저히 견디어낼 수 없는 카르마의 세찬바람이 그대를 무서운 돌풍 속으로 내몰 것이오. 이걸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건 그대 자신의 환각이오. 끔찍스런 어둠이 줄곧 그대앞에 나타나올 것이오. 그리고 ‘매우쳐라! 쳐죽여라!’하는 등의 무서운 으름장이 들려올 것이오. 하지만 두려워하지마오..... ..
이 모든 것들은 그대 자신의 분노와 욕망과 우매성의 환상이오. 이때에 그대는 이야말로 중음의 막다른 시기인 만중음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하시오. ....
그대는 그대의 집이나 안면있는 자나 친족 등 그리고 자신의 시체까지도 보게 될지 모르오. 그리고는 ‘정말로 나는 죽은 자로구나. 어쩌면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될지 모르오. 격렬한 슬픔으로 앞뒤가 막혀져서 이같은 생각만이 그대에게 우러나질도 모르오.‘오 어쩌면 좋으랴. 나는 육신을 부여받지 못한 신세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고 그대는 자신이 가질 육신을 구하러 여기저기로 방황할지 모르오...
중음기간 동안에 그대가 재탄생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 이같은 불행의 경험이 생기게 되오. 그대가 아무리 자신이 가질만한 육체를 찾아보려 할지라도....
.........이정도로 인용을 마친다.
가사체험과 임종을 맞는 사람들에서 얻은 자료들과 너무도 유사하지 않는가? 가사체험과 임종을 맞는 사람들에서 얻은 자료는 반쪽짜리다. 다른 반쪽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이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이들에서 얻는 자료다.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이들은 단지 이전생을 기억하고, 전생과 관련된 몸의 상처, 행동 양식 등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전문적인 학술잡지에는 기술할 수 없는 것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전생과 현생 사이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종류로 분류가 된다. 이곳 지구에 메여 돌아다닌 경우와 천상계에 머문 경우다. 그 예를 소개하겠다.
2005년까지 전산화한 1100예 중에서 25예에서 이전인격의 장례식이나 시체 처리를 기억한 것이 정확한 것이 확인되었다(69예중 25예에서 정확함이 확인되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유언으로 화장한 후 어떤 나무아래에 묻어달라고 하였는데, 그 딸이 뿌리가 너무 깊어 묻지 못하고 뿌렸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현생에서 꼬마가 언급한 경우이다. 한 예는 죽은 후 여러 날 동안 공중에 떠 다니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우는 모습과 자신의 시신을 보았음을 말하고, 자신처럼 많은 사람들이 떠 다녔다 했고, 그러다 빛을 보고 빛한테 가니 새로운 가정에 오게 됐다고 말한다. 몇 예에서는 장례식 후 오랫 기간동안 머무는 경우를 있다 한다. 인도의 한 예에서는 전생과 현생의 기간이 11년이 차이가 있었는데, 전생의 집주위에서 머물렸고, 나무에서 살았다고 하였고, 전생의 동생의 결혼식에도 갔었다고 하고, 그때 벌어진 상황을 이야기 한 것이 사실로 확인된 경우였다. 전생이 죽은 지역 근처에서 머문 경우도 있는데, 살해된 곳 근처의 대나무위에서 7년 동안 머물었다고 말했고, 7년 후에 전생의 엄마를 보기 위해 비오는 날 찾아나섰다가 시장에서 길을 잃고 미래의 아버지를 보고 그 남자와 같이 버스를 타고 태어날 집으로 갔었다고 말한 경우인데, 이 애를 임신할 쯤에 비오는 날 그 지역에 모임이 있어 갔었다고 애 아버지는 기억하고 있었던 예였다.
위 예들은 중간기간을 지구에 머물던 경우들이고, 다른 곳에서 머문 경우도 있다. . 한 예에서는 another realm에서 다시 태어날 것을 결정했던 일을 기억했는데, 다른 존재가 지구로 내려오는 그의 결정을 도와주었다고 하였다. 이 아이는 죽은 후에 위로 떠 올라갔고, 천국에 대해 이야기 했고, 천국에서 신과 동물을 보았다고 했다. 또한 여러 생을 기억했고, 동물도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에서도 천국에서 신을 만났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돌아 올때 신이 녹색화살이 있는 명함 같은 카드를 주었다고 했다. 이 아기는 하늘나라에서 그의 할아버지의 친구 분을 만나 할아버지와 놀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예에서도 하늘나라에서 먼 친척을 만나 가까운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친척이 총에 맞아 죽었음을 확인한 경우였다.
또 어떤 예에서는 죽은 후 자신이 위로 들려 올라갔고, 새처럼 날았다고 했고, 왕혹은 통치자를 만나 그의 궁에서 놀았다고 했고 배고프면 음식을 생각만 하면 나타났다고 했고, 먹지 않고 음식을 보기만 해도 포만감을 느껴 실제로 먹을 필요가 없었다고 했고, 왕이 새로 태어날 집으로 가라고 한 후에 그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했다. 다른 예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말했는데, “위로 올라가니 수염이 기른 신성한 남자가 있었고, 그들이 나의 기록을 조사했고, 다시 돌려보내라 말했다. 그곳에는 방들이 있었고, 신(God)의 집을 보았다. 그 집은 매우 좋다. 당신은 그곳에 있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자 보시라. 만중음단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예들의 자료가 지금 미국의 한 연구소에 쌓여 있다. 버지니아 의과대학 정신과 산하 인격연구소이다. 그 연구소에는 가사체험 연구의 대가인 브루스 그레이슨박사, 전생연구인 대가인 이안스티븐슨 박사가 계시다. 책이나 저널에 다 기술하지 않은 내용이 얼마나 많이 있지 않겠는가! 이연구소에서는 분명히 죽음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은 그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도 생각해 보자. 칼융은 만다라를 마음의 전체성으로서 자아의 상징으로 통찰했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도 중간중음에서 나타나는 여러 신들을 대만다라로 표현한다. 그 신들의 환상들에 의하여 표상된 각기의 눈부시게 밝은 신비적인 발광은 원초적 투휘광체와 동격이며 이들은 원진을 이루는 대만다라를 이루어 가지고 망자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칼융의 만다라에 대한 통찰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난 죽음에 대한 고심을 많이 했다. 죽음을 생각했을 때 글로 표현하기 곤란한 그 느낌, 그 막막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사유하시고 계시는 분들께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슴에 품으며 이글을 마친다.
첫댓글 저도 티벳 사자의 서를 읽어 보았는데요...그런데 거기서 말하는 49일이라는 중음의 기간에 대해서는 확실한 해석이 없는 것 같아서요....달라이 라마도 49일라는게 지구상의 시간일 수 도 있고 다른 세계(아마 저승을 말하는 듯)의 시간일 수 도 있다고 하시던데요....티벳 사자의 서에서도 문언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을 적절히 해야 이 책의 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나와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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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법은 윤회법이며 불자는 연기법과 삼법인을 깨쳐 무생법인은 증득하는 것이 목표아닌 목표 대열반이겠지요~ 49일도 날자개념 보다는 49界의 개념으로 이해하는게 근접된 접근이라고 보며 경험하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 시간은 전적으로 주간적이 된다고 봅니다.
끝까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생사윤회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하네요. 모두들 해탈 성불 하사이다.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불자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석가모니 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지장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