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미역국이 그랬고, 이번에는 시래기 된장국이 환장하게 맛있었다. 내 고향이 전북 남원이지만 남원 추어탕이니, 설악 추어탕이니 하여 음식점에서 먹어 본 그 어떤 추어탕에도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시래기 국에 김치 한가지의 소찬이었지만 게 눈 감추듯 아침을 해결하고 우리는 서둘러 용인 휴게소를 출발한 것이었다. 은하수 산악회 운영자님께서는 직접 운전을 하시며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 이런 음식들을 준비하고 했을까? 나는 뒤에서 돌봐 주는 이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다 한다는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는 또순이라 했지만 철 여인일 듯싶었는데 아무튼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산행을 위해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영동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갔다.
원주 시내에 이르자 치악산 봉우리들이 마치 병풍처럼 서서 우리를 부르며 손짓해 왔다. 국형사에서 비로봉을 거쳐 구룡사로 하산한다는 대장님의 설명이었다. 6시간 반 코스지만 7시간을 주겠다며 다섯 시까지 도착하라는 인심과 함께.... 매표소를 지나 보문사까지는 포장길이었지만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목구멍에서는 쇠소리가 났다. 공사 중인 보문사를 지나 하늘만 빼꼼이 올려다보며 그렇게 사십 여분을 오르자 고개에 오를 수 있었다. 선두 분들은 앞서 간지 오래였는데 그곳 갈림 길에서 나는 이왕에 향로봉을 거쳐 가자고 제의했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지만 도사리고 있는 욕심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대장님 왈! 꼴찌로 도착한 분은 안 된다며 단호하게 만류했고, 물 찬 제비 같던 라 여사님을 비롯하여 몇몇 분만 다녀오라며 30분의 시간을 더 감안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은 분들은 비로봉으로, 우리는 향로봉으로 서로 헤어졌다. 사실 향로봉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지만 멀리 보이는 산줄기와 원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욕심을 냈던 것은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보다 향로봉이 더 귀에 익었을 뿐만 아니라 대청봉과 함께 강원도 전방 고지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때문이었다. 사진 몇 방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 선두 그룹에 왔던 일행 한분을 만난 것이었다. 그곳이 비로봉 갈림 길이라며 우리와 헤어졌던 그분들이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꼴찌로 제재를 당한 분과는 직장 동료였는데 알바까지 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통화를 해본 결과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헬기장과 곧은치를 지나 기다린 끝에 합류할 수 있었는데 30분을 그렇게 허비한 것이라고 했다.
도움을 준다는 것이 피해가 될 수도 있고, 부자 집 나락이 먼저 팬다는 말이 생각났다. 향로봉까지 유유자적하며 다녀온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과일도 나눠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가 하면, 힘들어하던 그들은 죽어라 뒤쫓아 와야만 했던 것이다. 향로봉에서 비로봉까지는 간간이 오르기도 하며 능선 흙길이어서 크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비로봉 돌무더기로 쌓은 뾰쪽 탑을 눈앞에 두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홍일점이었던 라여사님이 준비한 여러 반찬 중에는 더덕 무침이 향기를 내며 동이 나기도 했고, 꼴찌 일행이 준비 해온 돼지 족발 안주, 그리고 복분자 술과 주홍빛 와인은 산행의 또 다른 기쁨이며 행복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산이 맺어 준 인연으로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구면 같은 서로의 격이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로봉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 있고, 주변 곳곳 숲 속에서는 점심을 먹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바라다 본 향로봉이며 남대봉을 비롯한 치악산의 줄기는 만리장성을 보는 듯 장엄했다. 어찌 그뿐이랴, 그 뒤로 겹겹이 펼쳐진 하늘만큼이나 파란 원경의 산들은 대자연의 그리움을 부르듯 가슴을 뛰게 하지 않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하는 곧 감동과 감격의 일색일 것이니 그 맛을 알고는 어찌 산을 찾지 않고 배길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벅찬 가슴, 왜 산을 찾느냐고 묻는다면 그 오묘함의 이치를 어찌 다 말할 것이며, 그래서 주저 없이 너는 바보! 바보라는 말밖에는 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만남도 추억할 날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사진 몇 장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다리 병창 길로 내려오기로 했다. 가야금 병창이 아닌 사다리 병창이라는 말이 좀 뜨악했지만 사다리가 하도 많다 보니 그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라도 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마지막 하산 길 일행은 넷뿐, 지치고 힘들 때 보약으로 마시려던 막걸리 한 병을 나눠 마신 뒤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행들의 남은 과일마저 모조리 털어 먹으며 내려오기도 했는데 그때 나는 라 여사님으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자신도 지금 무릎 보호대를 착용했다며 내게도 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꼭 탈이 났을 때만 아니라 예방으로 내리막길에서는 반드시 착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사다리를 내려오다 보니 마침 무릎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잘 됐다며 나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것을 즉석에서 착용할 수 있었다. 첫 발을 내려딛는 순간부터 그렇게 거짓말 같이 특효가 있을 줄이야 정말 몰랐다. 알려준 라 여사님이 고마운 것은 말할 것 없고, 그 좋은 것을 가방 속에 담고만 다녔으니 실로 나는 얼마나 미련스런 곰이었더란 말인가. 멍청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무릎 수축 작용으로 날아갈 듯 몸은 가볍게 느껴져 왔고, 지체하느라 떨어졌던 일행들을 나는 단숨에 따라잡고 말았으니 그것은 자신감과 함께 날개를 단것과 다를 바 없었다.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했는데 세렴폭포 아래 계곡에 발 담그며 땀을 씻는 여유도 한껏 싱그럽고 좋았다.
구룡사를 지나 매표소 아래 주차장에 당도 했지만 은하수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찻길이 좁은 까닭에 목재 인도가 설치된 도로를 타박타박 걸어서 내려오는데 라 여사님과 같은 미인과의 동행이어서 그런지 도모지 지루하지가 않았다. 굽이굽이 길가에는 단풍나무가 줄져 서 있고, 더 가을이 짙어질 때면 가슴을 붉게 물들일 것을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더 즐거운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더 내려오니 길가 한적한 곳에 은하수와 함께 일행들이 보였고, 그때가 다섯 시 반이었는데 산행 일곱 시간 반만의 해후였다.
함께 참석했던 어느 사장님께서 특별히 마려해 주신 시원한 더덕 막걸리와 은하수님께서 정성껏 준비한 삼계탕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아침에는 시래기 된장국으로, 산행 후 또 삼계탕으로 사로잡는 그는 맛의 승부사였을까. 아니! 일꾼들을 많이 부리는 시골 사대부 집 마님 같기도 했다. 일터에서 돌아온 일꾼들에게 많이들 먹으라며 일일이 챙겨 주던, 모성애가 넘쳐 보이는 그런 따뜻하고 다정한 여인의 모습 같기에 하는 말이다. 남은 김치를 어느 분께 싸 주는가 하면, 길이 엇갈려 삼계탕을 함께 들지 못한 분께는 따로 남겨 두었다가 들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은 더욱 그랬다. 산과 사람과 음식이 삼합을 이룬 가운데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어 좋았고, 나는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첫댓글 ㅋㅋㅋ 함께 산행해서 넘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벌써 어제의 추억이 되어버렸군요.... 아쉽게도... 생각을 하면서 이쁜 미소 고이게 하는 이 아침 입니다. 늘 .... 힘있고 건장한 청년같은 늑대 이시기를... 어..흥.... 근데... 나 라여사 맞아요? ㅋㅋㅋ
도저히 어울리지 않은 잔인한 이름 같아서 많이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릎이 무엇보다 "너 산에 갔다 왔어?"하는 것을 보니 신통 방통하고요. 넘 고맙답니다.
아이구무섭은 왕늑대님 아주맛갈스런 산행기 잘읽어습니다 라여사님이 누신지요 ㅎㅎㅎ 항상즐산안산하십시요
그러시는 김대감님은 누구신지요? 개기는 좀 알듯한데.....ㅋㅋㅋㅋ 누구지? 이슬이 눈물이신가?ㅋㅋㅋ
왕늑대님 과찬은 친찬을 해주셔서 재가 몸돌바를 모을겠습니다~*~산행 일찌 감사하고요 가끔 들여주세요~~감사합니다~~~
제가 알바의 원흉아닙니까. 정말 죄송하구요. 화요일 향로봉을 가지만 않았더라도 자신있는 알바를 하지 않았을텐네. 앞으로 그런실수 다시는 하지않을래요. 그나저나 즐거운 산행이었어요. 가족같은 분위기 너무나 정다웠읍니다 감사합니다.
꼴찌님이 비통해하시고 계시답니다. 부끄럽어서 은하수 못가겠답니다.. 어찌 보호를 해주신다고 놓고 가라하시곤 알바를 시키셨나요? 그분 그래도 설악공룡 거뜬히 접수하신분인데... 꼴찌에 .. 알바에... 두번 죽었답니다.. 소식이 없습니다.혹시(?) ......내짝꿍 살려주세요.... 산사랑내사랑 님....ㅋㅋㅋ
ㅎㅎㅎ 꼴찌 살아 있으유 그런디 몸을 잘 못가눈다나...저두 궁금 하구만유..
라일락님 꼴찌님은 꼴찌가 아니고 위장 꼴찌인것 같아요. 헌신적인 동료애 정말 눈물 겨웠습니다. 동료들과 같이갈려고 뛰기시작하는데 준마같았어요. 짝꿍이 나타나야 살려드릴텐데 소식이 없다니 내죄가 크네요. 한번더 만나야 대포 한잔하면서 용서를 구할테데^^^
헌신적인 동료애? .... 이것도 위장인거 같은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