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찰, ‘나주 흥룡사(興龍寺) 터’ 600년 만에 발견"
지난해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고나서 한번 다녀오겠다고 생각하다가 해를 넘겼다.
이동 반경이 생각보다 멀기도 했지만 주변에 물어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자동차로 이곳저곳을 동행 할 수 있는 지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남 나주에 있는 '흥룡사 터'는 그렇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려시대 사찰이다.
각종 문헌에 등장하는 '흥룡사'는 고려 2대왕 혜종의 어머니이자 태조 왕건의 비인 정화왕후 집터에 조성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흥룡사'에 대한 것들은 모두 구전에 의한 추정이었을 뿐 정확한 위치나 규모에 대해서는 구체적 문헌이나 기록에 의한 고증이 없었다.
그런데 나주지역 사학계가 그동안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흥룡사'에 대한 각종 자료등을 발표하면서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 문화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
서울 수서역에서 1시간 51분 걸려 도착하는 나주역에 내려서 시청방향으로 길을 건너 걸어가면 5분도 안돼 가냘픈 여인네가 말 위에 앉은 장수에게 물을 건내는 커다란 동상을 만나게된다.
둥근 아치를 두른 동상 주변에는 많은 조형물도 함께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눈에 잘 띈다.
나주시가 고려 태조 왕건과 정화왕후가 만난 '완사천'을 조성하면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다.
동상말고도 정화왕후가 물을 길렀다는 완사천은 지금도 맑은 물이 고여있고 마실수 있다.
2.
'완사천' 앞 도로를 따라 구 영산포역 방향으로 30여분 내려오면 전남운전면허시험장이 나온다.
안내표시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면허시험장 왼쪽 좁은 길로 올라가면 인가가 끊기고 산길이 이어진다.
세개의 타원형을 맞붙힌 조형물이 보이는데 동네 사람들은 누군가 울타리를치고 제각을 지었다는데 아무래도 납골당 같았다.
시멘트로 포장된 오르막 길은 이내 끊기고 정상에서 동쪽으로 보면 광주 무등산과 영산강 상류가 한눈에 들어온다.
최근 이 지역 사학계에서 지목한 정화왕후 집터이자 그곳에 지었다는 '흥룡사'가 있었던 곳이다.
3.
'흥룡사터'는 폐사지에 하나쯤은 있을 석탑이나 주춧돌 하나도 없는 그냥 동네 한 가운데 방치된 임야같은 곳으로 변해있다.
동네에서도 나이든 토박이 외에는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지역 사학계가
동네 주민들은 고려 태조 왕비 장화왕후 오씨를 기리는 나주 '흥룡사터'를 밝히는 각종 사료와 문헌들이 공개됐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4.
이번에 지역 사학계가 발굴한 자료에 의하면 정화왕후 집터는 그동안 구전으로 내려온 영산포역 앞 언덕 부근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헌속에는 흥룡사가 영산강 가야산이 내려다보이는
앙암의 동쪽이라는 말이 나오는 데 이는 흥룡사에서 바라본 가야산(게산)을 의미한다.
그동안 흥룡사에 대한 기록은 지리지, 시인묵객 등이 쓴 기록에도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나주목 불우조), 금성읍지(사찰조), 금성일기, 이색, 김종직, 이원익 등이 쓴 자료에 공통적으로 '금강진 북쪽', '영산포역 인근 언덕'으로 나와 있어 결국 같은 지역을 말하고 있었다.
5.
사료와 문헌의 고증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가 첫 인연을 맺었다고 알려진 나주 시청앞 완사천의 위치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주 시청앞 완사천에서 흥룡사터라는 곳까지 여인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기에는 거리도 멀고 길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동차 도로가 아닌 당시에 있었을 산길로 걸어가 봐도 20분이 넘게 걸렸고 오르막이 심해 숨이 차서 우리 답사팀은 몇 번을 쉬어가야 될 정도였다.
6.
나주역을 경유하는 나주교통 107번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하는 나주 반남고분군에 있는 국립나주박물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주 서성문안 석등'을 보게된다.
이 석등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일본인에 의해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2017년, 88년 만에 고향 나주로 돌아온 고려시대 석등이다.
석등의 팔각 기둥(竿柱石)에는 나주읍성의 안정과 부귀를 얻고자 석등을 1093년(고려 선종 10년)에 조성한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석등은 나주읍성 서문 근처 몇 군데를 옮겨 다녔는데 일제강점기인 1929년 서울 경복궁을 거쳐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겨졌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 온 것이다.
7.
최근 '황룡사'터가 밝혀지면서 나주박물관에 있는 이 석등의 이름이 또 다시 바뀌게 될지도 모르게됐다.
나주 지역 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나주 서성문안 석등’의 원래 위치가 '흥룡사'이고 그 이름을 따서 '흥룡사 석등'이라 불러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8.
정화왕후의 후손인 나주 오씨 종친회는 오래전부터 흥룡사 옛 터를 매입해 관리하고 있고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흥룡사터'의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진다면 지역 문화계나 자치단체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어 문화재청등의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다.
9.붙임자료
https://www.jnilbo.com/m/view/media/view?code=2021022415204313030
첫댓글 정성이 깃든 답사기를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졸고를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