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과 서명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살던 수메르인들은 이미 기원전 3000년 무렵 원통형 인장을 만들어 썼다.
신분과 권위를 상징한 것은 물론소유권행사 수단으로도 사용했단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장은 기원전 11~14세기 은나라도읍 殷墟에서 출토된 殷璽다.
나무토막 書簡을 봉하는 진흙에 인장을 찍었다.
누가 열어보거나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진시황 때는 符節令이란 관직을 두고 각종 인장 관리를 맡겼다.
당시 인장 재료로 흙이나 도기가 아니라 玉을 쓰면서 玉璽로 부르기 시작했다.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옥새는 후대에 오르면서 피비린내 나는 암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인장의 역사도 오래됐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환인이 환웅에게 天符印 세 개를 주면서 다스리게 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사인, 즉 서명이 본격 등장한 건 15~16세기 무렵 서양에서다.
도난이나 위조로 인장이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 컸다.
문맹이 많았던 시절이라 서명을 모방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다보니 서명이 인장보다 세련됐다고 여기는 풍조가 생겼다.
조선시대에도 서명이 있었다.
'手決'이다.
관공서 문서 결재에 '一心'을 뜻하는 부호를 고안해 써넣었다.
'一'자를 길게 긋고 그 위 아래 점이나 원 같은 기호를 더해 자신의 수결로 결정하는 식이었다.
양반들은 계약 문서에 이름을 초서로 흘러 쓰거나 글자체를 뒤바꿔 인장을 대신했다.
이항복은 자신의 수결 양끝에 몰래 바늘구멍을 냈다고 한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문서에 가운데 손가락을 대고 윤곽을 그려넣은 '수촌'이란 서명을 했다.
印鑑이 쓰이기 시작한 건 1871년 일본에서다.
위,변조를 막기 위해 중요한 거래에 쓸 도장을 관청에 미리 등록하고 나중에 진짜인지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일제 영향으로 대만은 1906년, 우리는 1914년 도입했다.
현재 우리 국민의 60%가 넘는 3200여만명의 인감이 등록돼 있고, 2010년에만 4275만통의 인감증명이 발급됐을 만큼 일반화 됐다.
12월1일 인감과 함께 서명도 쓸 수 있게 된다.
필요할 때 군청이나 구청, 읍면, 동사무소를 찾아전자패드에 서명한 후 '본인서명사실확인서'를 발급받아 인감증명 대신
사용하는 제도다.
서명 보편화 추세에 맞추고, 인감 위,변조 사고를 막기 위한 조처란다.
서명은 주민등록과 동일한 본인의 성명을 제3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리발급도 안된다.
이제 인감 잘못 찍어줬다가 재산 날리는 일은 없어질까. 이정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