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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와 경이로운 현실1)
알레호 카르펜티에르(Alejo Carpentier)/박병규 옮김 아테네오 잡지사의 부사장님 그리고 편집 위원 및 신사숙녀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주제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방금 아테네오 잡지사의 부사장님이 인사말에서 소개한 ‘바로크와 경이로운 현실’입니다. 내 생각으로, 이는 라틴아메리카 예술, 호세 마르티의 말을 빌면 혼혈 아메리카(América mestiza) 예술의 의미와 성격을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두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미 많이 논의되었던 주제이고, 또 여러분이 지루하지 않도록 적절한 시간 내에 다루어야 하는 주제이므로, 조금 딱딱합니다만, 거두절미하고 사전을 인용함으로써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바로크를 얘기하기 전에, ‘바로크란 무엇인가?’라는 입씨름부터 해소하겠습니다. 초현실주의와 유사한 일이 바로크에서도 일어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로크를 이야기하고, 바로크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또 바로크를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초현실주의도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이상한 것을 보면 누구나 ‘초현실적이군’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의 기본 교과서, 다시 말해서 1924년에 앙드레 브르통이 작성한 제1차 선언문을 읽어보면, 이 운동의 창시자가 내린 정의는 그 뒤에 일어난 일과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브르통은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정의할 능력은 없었습니다. 이제 사전을 보도록 합시다. 라루스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바로크: 신조어. 추리게라 양식과 같은 뜻.2) 괴상하다는 의미의 프랑스 어원 스페인어.” 여기서 바로크주의(barroquismo)를 찾아보면, “신조어. 터무니없음. 악취미”라고 나와있습니다.3) 그렇다면 바로크주의란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바로크는 추리게라라는 사람의 건축과 전적으로 동일시됩니다. 그런데 추리게라는 바로크를 대표하기보다는 오히려 매너리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의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바로크는 복잡하고 다양하고 광범위하므로 단 한 사람의 바로크 건축가나 예술가의 작품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한림원 사전을 보도록 합시다. 바로크라는 항목은 이렇습니다. “곡선 위주의 소용돌이 무늬, 당초문, 기타 꾸밈새가 많은 것이 특징인 장식 양식. 그리고 조상(彫像)의 동작과 화폭의 분할이 과도한 조각과 회화를 일컫는다.” 솔직히 말해서, 이와 같은 스페인 한림원 학자들의 정의보다 더 형편없는 정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동의어 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바로크적인’의 동의어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덕지덕지 붙은, 판에 박힌, 공고라적인(아니 공고라적이라는 게 부끄러운 일입니까), 과식주의적인, 기지(奇智)주의적인” 그리고 또다시 “추리게라적인, (이건 정말 가당치 않은 말인데) 퇴폐적인”,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4) 나는 ‘퇴폐적인’ 예술 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낍니다. 그 이유는, 퇴폐라는 단어는, 어떤 예술이 퇴폐적이라는 말은, 퇴폐는커녕 오히려 문화의 절정에 위치한 수많은 선구적 예술 운동에 어김없이 붙는 수식어이기 때문입니다. 세잔느, 마네를 비롯해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은 한동안 퇴폐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베토벤 시대에 작곡가들은 제자들이 베토벤 음악을 듣거나 공부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베토벤 작품이 퇴폐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무조음악가들을 퇴폐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리만 같은 20세기 초반의 음악사가를 붙잡고 물어본다면 바그너 이후의 음악은 모두 퇴폐적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20세기 초엽, 드뷔시는 자기 작품을 지휘하려고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이 때 거장 림스키코르사코프는-하지만 이 사람은 바보가 아닙니다-학생들이 이 프랑스 천재 개혁가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 듣고 싶으면 가서 들어라. 그러나 경고하지만, 그런 음악에 길들어지면 위험하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제자들에게 한 말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아편을 하고 싶으면 하게. 하지만 조심해. 중독 되니까.” 그리고 바로크 또한 퇴폐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바로크를 하나의 양식(style)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바로크를 특정한 범위 안에, 양식의 범위 안에 가두려고 했던 것이죠. 나는 에우헤니오 도르스(Eugenio d'Ors)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몇몇 평론은 비상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아무튼 도르스는 유명한 평론에서 말하기를, 사실 바로크에서 보아야 할 것은 일종의 창조적 맥박이며, 이는 모든 예술 운동사를 통해-문학뿐만 아니라 조형 예술, 건축, 음악을 포함해서-주기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정신이 존재하듯이, 바로크 정신(baroque spirit) 또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제국주의 정신은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알렉산더, 샤를마뉴, 나폴레옹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역사 속에서 제국주의 정신이 영겁회귀하듯이 바로크주의도 예술 운동 속에서 시대를 초월해 영겁회귀합니다. 이 바로크주의는 퇴폐를 의미하기는커녕 종종 특정 문화의 절정기, 전성기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일례를 들려고 합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인 프랑스 인문주의자 라블레입니다.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다섯 권으로 된 굉장한 작품인데, 그 표현이 너무 완전하고 기상천외하고 감칠맛 넘칩니다. 절정에 이른 프랑스어 최고의 작품입니다. 아무튼 라블레는 프랑스 바로크의 거두였으며, 프랑스 문학의 거봉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비교는 좀 위험합니다만,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프랑스 문학을 통틀어 돈키호테나 신곡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걸작입니다. 라블레는 프랑스 문화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정점에 위치한 사람이고, 철두철미한 바로크 작가이고,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어낸 사람이며, 불어를 풍부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작가로서 온갖 호사를 다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사가 없으면 동사를 만들어냈고 적당한 부사가 없으면 이 또한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도르스의 말처럼, 바로크주의는 “인간 정신의 상수(常數)”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이 점에서 그의 이론은 논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오류는 우리들 마음속에서 지워야만 합니다. 즉, 바로크는 17세기의 산물을 일컫는 말이라는 일반적인 개념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크 예술’하면, 이탈리아에 있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작품처럼 장식이 많은 17세기 건축물이나 베르니니의 작품처럼 형태가 이상하게 팽창된 조각품을 떠올립니다.5) 베르니니의 대표작이자 바로크를 가장 완벽하고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유명한 <성 테레사의 환희>인데 이 조각품은 세계적인 명품입니다. 그런데 바로크를 경멸하고 바로크를 이상한 현상으로, 매너리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왜냐하면 17세기에 일각에서는 바로크적 매너리즘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바로크에 반대되는 다른 개념을 내세웁니다. 무슨 개념이냐고요? 고전주의입니다. 자, 이제 일반적인 의미의 ‘바로크’와 브르통이 정의한 ‘초현실주의’라는 말로써 바로크가 무엇인지, 초현실주의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면 ‘고전주의’라는 단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가장 공허하고 가장 무의미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사전을 보도록 합시다. 라루스 사전에 따르면 고전주의는 이렇습니다. “아주 뛰어나고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어떤 문학이든지 전범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나 작가를 일컫는다.” 그리고 그 예로 칼데론과 로페를 듭니다. 이는 잘못입니다. 스페인어권에서 케베도와 공고라를 제외하고 바로크의 대표적인 작가를 든다면 바로 칼데론이기 때문입니다.6) 칼데론의 유명한 작품 명예 회복(El médico de su honra)을 읽은 사람은 말(馬)이 젊은 기사를 내동댕이친 사건을 멘시아 부인이 얘기하는 부분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는 아시는 바와 같이 인구에 회자되는 전형적인 바로크 시입니다. 이제 스페인 한림원 사전을 살펴보겠습니다. “고전주의: 그리스, 로마 전범의 모방에 근거한 문학 체계나 예술 체계. 낭만주의와 대립되는 말.” 이게 무슨 뜻이죠? 고전주의는 그리스와 로마 예술을 모방한 것이라는 얘깁니다. 다른 사전을 보면, 고전주의는 칼데론 작품을 모방한 것이라고 하는데, 칼데론은 바로크 작가입니다. 따라서 고전주의라는 단어는 아무런 비중도,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방이 아카데미즘적이라면, 모든 아카데미는 규칙과 규범과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전적인 것은 아카데미즘적이고, 모든 아카데미즘적인 것은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규칙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혁신을 적대시하고 규칙과 규범을 파괴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적대시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고전주의를 얘기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예를 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우리의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전형적인 예 말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세 건축물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건축물들은 전통을 수립했으며, 따라서 모방할 만한 규범을 창조했습니다. 지금 말하는 건물은 파르테논 신전과 엘에스코리알 궁전 그리고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이들 건축물의 특징은 중심축에 있는데, 이 축에 주변축들이 연결됩니다. 비뇰라 책을 공부한 건축학도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7) 파르테논 신전이나 에레크테이온 신전 같은 그리스 신전의 정면을 모사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작업은 중심축을 그리는 일입니다. 이 중심축은 건축물의 정면을 수직선상으로 이등분하며 이에 따라 중방(entablature)도 이등분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열주(列柱)가 주변축이 되며, 각 주변축은 피타고라스 삼각형의 밑면과 같은 정도의 거리를 두고 중심축에 연결됩니다. 따라서 중심축은 건축물을 두 부분으로 나뉘며, 이렇게 나뉜 두 부분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룹니다. 이런 유형의 건축물, 즉 베르사유 궁전이나 엘에스코리알 궁전이나 파르테논 신전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빈 공간, 헐벗은 공간, 아무런 장식도 없는 공간이 장식된 공간이나 홈이 파인 기둥만큼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베르사유 궁전에는 열주 사이에 거대하고 헐벗은 평면이 있습니다. 이 평면은 건물에 비례를 부여하며, 일종의 기하학적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빈 공간은 채워진 공간만큼 중요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열주 사이의 간격은 열주만큼 중요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열주는 허공에서 빈 공간을 테두리 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전이나 엘에스코리알 궁전의 구조에서 보면 건물은 빈 공간으로, 장식 없는 공간으로 채워집니다. 그 아름다움은 바로 에워싸여 있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군더더기가 배제된 엄정한 위엄과 더불어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아름답다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일종의 선형 기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 정신의 상수, 바로크는 빈 공간에 대한 공포, 헐벗은 표면에 대한 공포 그리고 조화로운 기하학적 선에 대한 공포가 특징입니다. 이 양식에도 중심축이 있습니다.(물론 중심축이 항상 명백하고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환희>에서 중심축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중심축을 중심으로, 이를테면 ‘증식하는 핵심들’(proliferating nuclei)이-건축물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과 벽면 그리고 건축학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빠짐없이 채우고 있는 장식적인 요소들이-증가됩니다. 이 요소들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으며, 중심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즉, 동적인 예술이고 충동의 예술이며, 원심력 때문에 자신의 경계를 얼마간 파괴하는 예술입니다. 우리가 바로크의 전형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건축물은 베르니니가 건축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나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폭발하는 형식, 폭발하는 소용돌이 무늬, 건물의 틀을 파괴할 듯이 바닥에서 쏘아 올리는 조명을 볼 때마다 키리코의 그림이 생각납니다. 몇 개의 태양이 감방 속에 있는 그림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바로 감방에 갇힌 태양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복합 열주를 팽창시키고 폭발시키는 태양입니다. 눈부신 폭발 속에서 복합 열주는 문자 그대로 사라져버립니다. 스페인 톨레도 성당의 대제단 뒤편 회랑에는 거대하고 복잡한 조각품이 있습니다. 꼭대기 채광창까지 뻗어있는 조형물이죠. 바로크 조각가는 이 작품에 인물들을 새겨놓았을 뿐만 아니라-이 인물들은 실물 크기의 천사이고 인간이고 성자인데, 멋들어지게 춤추는 동작으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옵니다-빛을 이용하여 이 형상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채광창을 통해 들어온 광선이 조각품과 근사하게 어우러져 인물들이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원형(原型)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제 우리가 앞서 얘기한 주제로 돌아갑시다. 바로크는 인간 정신의 상수이기 때문에 17세기에 탄생한 건축 운동이나 미학 운동이나 회화 운동으로만 국한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바로크는 꽃을 피웠습니다. 산발적으로 나타났든, 아니면 한 문화의 특징을 이루었든 간에 말입니다. 여기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전형적이고 확실한 예를 들겠습니다. 바로크는 인도의 모든 조각에서 꽃피고 있습니다. 인도의 여러 사원과 동굴에는 수십 수백 미터에 달하는 다소 관능적인 얕은 돋을새김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들 작품은 형태로 보나, 에로틱하게 포개진 인물로 보나 바로크입니다. 또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보아도 그렇고, 조금 전에 우리가 무한정 뻗어나가는 일련의 증식하는 핵심들이라고 부른 것이(식물처럼 항상 서로 엉클어지고 결합되고 춤추는 개개의 인물이나 그룹들)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바로크입니다. 얕은 돋을새김이 끝나는 곳이 있으나, 만약 조각할 곳이 남았더라면 이제까지 해왔던 습관대로 계속 조각하여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긴 작품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인도의 조각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모스크바의 바실리 대성당은 배(梨)모양의 돔 지붕(cupola)과 다채로운 색채로 보아 어쩌면 대표적인 바로크 건축물이 아닐까요? 누구나 한번쯤은 사진을 통해 보았을 이 대성당의 중심축은 어디에 있을까요? 촘촘하게 박힌 돔 지붕들 가운데 어느 곳에 색채와 형태의 대칭성이 있을까요? 이 모스크바의 바실리 대성당은, 내 생각으로는, 러시아 바로크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입니다.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바로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를 다리(橋梁)의 수많은 조각품도 마찬가집니다. 무거운 청동상임에도 춤추는 듯하며, 육중한 무게를 떨쳐버리고 비상하는 교회의 박사, 성인, 주교들의 상도 바로크적입니다. 카를 다리 입구의 클레멘티눔에서는 진정한 신학적인 발레가 나무랄 데 없는 바로크 양식으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이것이 다음에 마리아 테레지아와 조셉 2세 치하의 비인 바로크가 되고, 또 어느 면으로 보나 바로크주의의 세계적 걸작인 모짜르트의 <마술 피리>에도 나타나게 됩니다. <마술 피리〉얘기를 하는 까닭은 음악과 오페라 줄거리 및 공연 장면에 바로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바로크를 빈 공간을 두려워하는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기하학적 배치에 어긋나는 예술이고, 이를테면, 몬드리안 풍의 양감(하얀 표면, 어두운 표면, 특히 소재의 질이 드러나는 밝은 표면)을 배격하는 예술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아마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러면 고딕 양식은 어떻게 된 것이죠? 결국 그것이 고딕 양식 아닙니까.” 사르트르 대성당의 정면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면을 예로 들어봅시다. 정면의 어떤 요소를 보아도, 다시 말해서 최후의 심판에 나타나는 악마의 형상, 성서의 장면, 뒤섞여 있는 상이한 성격의 인물들을 보아도 공간의 낭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르스는 고딕 양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도르스는 바로크와 같은 인간 정신의 상수와 역사적 양식간의 차이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낭만주의와 고딕 양식은 역사적 양식입니다. 고딕 양식은 특정 역사적 단계의 것으로 르네상스와 더불어 막을 내립니다. 이미 과거의 것이 된 것이죠. 따라서 1975년 오늘 최상의 본보기들을 모방하여 고딕 성당을 세우려는 시도는 어리석으며, 아무런 상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고 쓸모 없는 패스티쉬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바로크 정신은 어느 순간에라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으로, 오늘날 가장 현대적인 건축에서도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크는 일종의 정신이지, 역사적 양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르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한번 살펴보십시오. 문학에는 고딕 양식이 없습니다.” 이에 반하여, 바로크 양식은 문학에도 있습니다. 여기서 누구나 다 아는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어봅시다. 아에스킬로스, 소포클레스, 플라톤, 리비우스, 키케로, 보쉐, 라신느, 비극 작가로서 볼테르 말입니다.(볼테르 비극은 알렉산더격으로 쓰여졌는데 아주 지루하고 또 지금은 잊혀진 작품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일치 법칙에 따르고 있으며, 라신느의 신고전주의 비극의 아류작입니다. 단지 문학도와 학자만이 호기심으로 읽어보는 정도입니다). 방금 인용한 어느 작가의 작품도 바로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로크 양식과 관계가 없죠. 플라톤의 대화나 아에스킬로스의 비극에서도 바로크 정신과 본질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인도 문학은 모두 바로크입니다. 피르다우시의 기념비적 서사시 샤나미를 포함하여,8) 이란 문학도 모두가 바로크입니다. 그리고 몇 세기 뒤 스페인에서, 케베도의 꿈, 칼데론의 성찬극, 공고라의 시,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산문에서 문학적 바로크는 절정에 이릅니다. 이 스페인 문학에 바로크 정신이 있다는 증거는, 이들과 동시대인이었던 세르반테스는 바로크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모범소설이나 막간극의 일부는 바로크적이지만 돈키호테의 문체는 절대로 바로크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페의 작품에서도 바로크적인 요소가 가끔 나타날 뿐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바로크의 거장은 광란의 오를란도를 쓴 아리오스토입니다. 영국에서 바로크 정신을 찾는다면 셰익스피어입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혼란스럽고, 장황하고, 겉보기에는 무질서합니다. 빈 표면도, 죽은 시간도 없습니다. 희곡의 각 장면은 증식하는 세포이며, 이는 전체의 행동에 종속됩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짧은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장면들은 소단위로서 비극이라는 거대한 전체에 삽입됩니다. 줄리어스 시저나 애선스의 타이먼은 바로크적이 아니지만 한 여름밤의 꿈 5막은 완전히 바로크적입니다. 앞에서 라블레 얘기를 했습니다. 프랑스어를 아주 고상하고, 완전하고, 멋진 표현으로 끌어올린 그의 작품에는 바로크주의의 교훈이라고 할 만한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뫼동 주교는 라블레의 걸작을 거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무서운 모험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이 책 3권에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라블레가 완전히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마케도니아 왕 필립 2세는 코린트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코린트에는 디오게네스가 살고 있습니다. 회의주의자 디오게네스, 염세주의자 디오게네스, 통 속에 사는 디오게네스 말입니다. 이 사람의 철학으로 미루어 보아 필립 2세가 코린트를 점령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득 디오게네스는 애국심을 발동합니다. 여기서부터 라블레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군대가 코린트로 진군해오자 통속으로 들어가서 통을 굴리기 시작합니다. 병사와 목책을 넘어뜨리고 바리케이드를 넘어뜨리고 갖가지 방어벽을 무너뜨려서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도망가게 만듭니다. 통으로 말입니다. 라블레는 두 쪽에 걸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70개의 명사, 70개의 단어(무기 목록)를 사용해서 필립 2세가 가져온 무기를 서술합니다. 그리고 디오게네스가 통으로 끼친 피해를 얘기할 때는 62개의 동사를 연속으로 사용합니다. 두 쪽에 걸쳐 ‘파괴하다’, ‘깨트리다’, ‘결단내다’, ‘무찌르다’, ‘끝장내다’, ‘불태우다’, ‘무너뜨리다’ 따위의 62단어로 디오게네스의 전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 후대로 내려오면 낭만주의가 있습니다. 한림원 사전에 따르면, 고전주의와 아카데미즘에 반대되는 것인데, 이 낭만주의는 전적으로 바로크입니다. 아니 바로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낭만주의자는 달빛 타령이나 하는 사람, 세상을 등지고 시나 짓는 사람, 다시 말해서 뜬구름 잡는 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낙인이 찍혀 있으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낭만주의자는 행동하는 사람이고,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고, 역동적인 사람이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고, 자기 주장을 명확하게 밝힌 사람이며, 격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연극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삼일치 법칙을 깨뜨렸고, 프랑스 신고전주의 비극을 배격했고(적어도 프랑스에서는 그랬습니다), 인간은 내면의 존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열정을 표출했으며, ‘질풍노도’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부르주아 계급은 낭만주의자들을 타락한 사람, ‘달나라에 사는 인간’, 논리적 사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낭만주의자들은 도덕적․윤리적․정치적으로 부르주아 계급과 상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행동하는 사람,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낭만주의자들은 대부분 초창기 유토피아 운동에 관계했습니다. 위대한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는 파리 혁명을 주제로 <파리의 바리케이드>라는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바그너는 무정부주의자라는 이유로 뮌헨에서 추방되었고, 바이런은 가시밭길 같은 그리스 해방 운동에 투신했다가 미솔롱기온에서 죽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만 합니다. 낭만주의 시대에 노발리스는 푸른 꽃이라는 완벽한 바로크 소설을 남겼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2부는 전 세계 문학을 통틀어 손꼽히는 바로크 작품입니다. 랭보의 일뤼미나시옹은 바로크 시의 걸작품입니다.(첫 번째 시 「홍수 후」 참고). 로트레아몽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칭 ‘몬테비데오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고, 또 아메리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도로르의 노래는 시적 바로크주의의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우리는 프루스트 작품에서 세계적인 바로크 산문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에우헤니오 도르스로 돌아갑니다. 도르스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도르스의 견해에 따르면, 프루스트 산문에는 몇 개의 ‘괄호’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들 괄호는 증식하는 세포, 다시 말해서 구절 속에 삽입된 구절들입니다. 또 자생력이 있으며, 다른 증식 요소인 여타 괄호와도 종종 연결됩니다. 내 생각에는 방대한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구절은 ‘여죄수’의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프루스트가 주인공이고 화자인데, 아침에 알베르티느의 침대에 누워서 거리를 지나가는 행상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문화를 통해 개념과 사상을 엮는 놀라운 능력으로 프루스트는 그 외침의 멜로디와 발성법이 중세의 예배 성가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 행상인뿐만 아니라 개 단장해주는 사람, 새 모이 판매상, 가위 가는 사람 등등 가정용품을 파는 모든 잡화상의 목소리를 듣고 그레고리오 성가뿐만 아니라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갑자기 프루스트는 새 모이를 파는 여자의 외침과 사탕과 빵 조각을 파는 여자의 외침을 중세의 위대한 찬송가와 암브로시오 성가와 연관시킴으로써 시간을 가지고 현란한 유희를 벌입니다. 초현실주의의 전개가 전적으로 바로크주의이듯 이 또한 바로크주의입니다. 아카데미즘은 안정된 시대, 확신과 충만의 시대에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반면에 바로크는 변화와 전환과 혁신이 있는 곳에서 표출됩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러시아 혁명 직전에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은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입니다. 마야코프스키의 작품은, 시뿐만 아니라 희곡을 포함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크주의의 걸작입니다. 그러므로 바로크주의는 항상 미래를 지향하며, 문화의 절정기나 새로운 사회질서가 탄생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확산되곤 합니다. 바로크주의는 절정일 수도 있고, 징조일 수도 있습니다. 공생의 대륙, 변화의 대륙, 역동적인 대륙, 혼혈의 대륙인 아메리카는 애초부터 바로크적이었습니다. 아메리카의 우주발생론부터가 그렇습니다. 포폴 부(Popol vuh)를 보거나 칠람 발람(Chilam balam)을 보거나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을 보거나 앙헬 가리바이나 아드리안 레시노스의 연구를 통해 최근 밝혀진 사실을 보더라도, 모든 시간 주기는 다섯 개 태양의 순환으로 결정됩니다.(고대 아스테카 신화에 의하면, 현재 우리는 케찰코아틀 태양의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언제나 위대합니다만, 이 대륙의 우주발생론과 관련된 것은 모두 바로크에 포함됩니다. 아스테카 조각은 결코 고전주의 조각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스테카 건축은 바로크적이기 때문입니다.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케찰코아틀의 거대한 머리와 신전의 장식을 생각해 보십시오.9) 곡선과 기하학적 모양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텅 빈 표면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바로크적입니다. 아스테카 신전에서는 단 1미터의 빈 공간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최근 2년에 걸친 발굴 작업 끝에 테오티우아칸에서 정복 이전 아스테카 귀족들이 살던 멋진 주거지를 발견했습니다. 주거지 벽마다 당시 일상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한 그림이 뒤덮고 있었으니 이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고고학자가 있었겠습니까. 수영장, 정원, 운동 경기, 연회, 아이들의 놀이, 여가, 여성들의 생활, 일상 생활, 이 모두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바로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바로크 정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포폴 부는 바로크주의의 걸작입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우아틀 어(語) 시 작품은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가리바이의 연구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는 정복 이전의 시인 11명의 작품을 모아서 두툼한 책 두 권으로 발간했습니다. 아무튼 이 나우아틀 시는 다채로운 이미지와 복잡하게 얽힌 요소들 그리고 풍부한 언어로 보아 가장 바로크적인 시입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바로크 시입니다.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된 <죽음의 여신>은 바로크주의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또아리를 튼 뱀이 뒤덮고 있는 양면(兩面) 여성상입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늘 예로 듭니다만, 아메리카 바로크의 정수는 미틀라 신전입니다. 멕시코 오아하카 주(州)에 소재한 미틀라 신전의 정면은 양감에 있어서 놀라울 만큼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이 신전 정면에는 같은 크기의 상자 모양 장식들이 죽 늘어져 있습니다. 각 상자는 옆 상자와는 상이한 추상 구성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대칭적인 구성이 아닙니다. 18개의 상자는 각각 증식하는 세포로 전체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미틀라 신전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에서 전개되는 33개의 웅장한 변주가 생각납니다. 이 곡은 평범한 최초의 테마에서 출발하여 33개의 거대한 변주를 옮아가는데, 어느 신세대 비평가가 최근에 말했듯이, 변주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33개의 음향체(音響體)입니다. 그리고 18개의 상자로 이루어진 미틀라 신전의 조형물을 보고 있으면 쇤베르크의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 생각이 납니다. 미틀라 신전과 쇤베르크의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이 유사하다는 내 얘기는 세월을 무시한 자의적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도르스의 이론을 인용하면 양자 사이에는 실제로 정신적 유사성이 존재합니다. 고딕 양식도 낭만주의도 아메리카에 상륙한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역사적 양식은 구대륙의 조형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우리 아메리카인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 이상한 취향을 가진 건축가가 어느 도시에 사이비 고딕 성당을 짓겠다고 했습니다만, 이것이 곧 아메리카에 고딕 양식이 들어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낭만주의든 고딕 양식이든 라틴아메리카에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물론 플라테레스코 양식은 들어왔으나 이는 바로크의 일종입니다.10) 추리게라 양식보다 분위기가 더 있다고나 할까요. 참, 스페인 플라테레스코 양식을 잘 알던 건축사가 정복자의 배를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고유의 바로크 정신으로 무장한 원주민 일손이었습니다. 이들은 스페인 플라테레스코 양식에 자신들의 바로크주의를 첨가했습니다. 즉 신세계의 동식물 모티브, 화훼 모티브 등 소재의 바로크주의를 첨가했습니다. 이리하여 열정적인 바로크 건축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메리카의 바로크입니다. 여기서 아메리카 바로크의 뛰어난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멕시코의 테포소틀란 성당 중앙 천장은 피라미드 형식이고 매우 높은데, 증식하는 세포의 거대한 집적을 보여주며 톨레도 성당과 마찬가지로 광선으로 유희를 벌입니다. 촐룰라의 산 프란시스코 성당 정면에는 바로크적 형식뿐만 아니라 색채와 타일과 모자이크의 바로크, 즉 바로크적 소재를 볼 수 있습니다. 황백색의 바로크 건축물인 유명한 푸에블라 성당에서는 천상의 협주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류트, 하프, 클라비코드 등 갖가지 르네상스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오아하카의 산토 도밍고 성당의 생명수(生命樹)는 궁륭(vault)을 덮고 있는 기념비적 바로크 작품으로, 가지를 뻗은 거대한 나무입니다. 나무 가지에는 천사, 성자, 인간, 여자들의 모습이 식물과 더불어 뒤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페루나 에콰도르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와 신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적 정면이라고 할 수 있는 쿠바의 아바나 대성당 정면과 같은 훨씬 온당한 형식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라틴아메리카가 선택받은 바로크 땅일까요? 공생, 혼혈이 바로크주의를 낳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바로크주의의 성장 요인은 크리오요 정신,11) 크리오요의 의미, 아메리카인이라는 의식입니다. 시몬 로드리게스가 잘 파악하고 있듯이,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의 자식이든 아프리카 흑인의 자식이든 인디오의 자식이든 상관없이 모두 라틴아메리카인이라고 느낍니다. 다른 것이라는 의식, 새로운 것이라는 의식, 더불어 산다는 의식 그리고 크리오요라는 의식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 바로크는 성장합니다. 크리오요 정신이 바로 바로크 정신입니다. 나는 시몬 로드리게스가 이러한 현실을 천재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에 감사하는 의미로 그의 글 일부를 인용하려고 합니다. 시몬 로드리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스페인 사람이 아니면서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크리오요 이외에도, “우리들 주변에는 와소, 치노, 바르바로, 가우초, 촐로, 과치낭고, 네그로, 프리에토 이 헨틸, 세라노, 칼렌타노, 모레노, 물라토, 삼보, 원주민, 유색인, 흰둥이, 노란둥이, 그리고 혼혈 3세, 4세, 5세, 이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혼혈인들이 있습니다.”12) 현존하는 이러한 요소들은 각자 나름대로 바로크주의에 기여를 하고 있으며, 내가 ‘경이로운 현실’이라고 부른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용어 문제가 제기됩니다. ‘경이로운’이라는 단어는 시간이 흐르고 용례가 바뀜에 따라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경이로운’ 또는 ‘경이로운 것’이라는 말은 ‘바로크’나 ‘고전주의’라는 단어만큼이나 커다란 개념적 혼란을 야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경이로운 것이란 놀랍고 비상하고 탁월하기 때문에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 현재는 경이로운 것은 모두 아름답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의 정의 가운데 기억해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비상한 것에 대한 설명 정도입니다. 비상한 것이란 반드시 예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름답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생소하기에 놀라울 뿐입니다. 생소한 것, 놀라운 것, 기존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경이로운 것입니다. 뱀 머리칼을 한 고르곤은 파도 속에서 솟아나는 비너스만큼이나 경이롭습니다. 기형적인 불카누스도 아폴로만큼이나 경이롭습니다. 독수리 때문에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도, 땅으로 추락한 이카루스도, 죽음의 여신도, 모두 개선장군 아킬레스만큼이나 경이롭고, 히드라를 퇴치한 헤라클레스만큼이나 경이롭고, 또 모든 전설이나 종교에서 죽음의 여신과 쌍을 이루며 등장하는 사랑의 여신만큼이나 경이롭습니다. 나아가 경이로운 것을 창조한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경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얘기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를르 페로보다 경이로운 것을 많이 창작한 사람이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슴속에 경이로운 세계에 속한 인물을 심어준 사람이 페로입니다. 「엄마 거위」, 「엄지 왕자」,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푸른 수염」, 「장화 신은 고양이」, 「빨간 모자」 등, 어릴 적부터 우리가 읽는 이야기의 작가입니다. 페로 동화 서문은 경이로운 것의 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페로는 요정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요정들은 기분이 좋으면 입으로 다이아몬드를 토해내며, 화가 나면 파충류, 구렁이, 뱀, 두꺼비를 토해낸다고 합니다. 페로가 채록한 중세 이야기에서 가장 유명한 요정은 멜루시나 요정입니다. 이름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머리는 여자이고 몸통은 뱀입니다. 흉측한 괴물이지요. 우리가 명심할 것은 이 괴물 또한 경이로운 것의 일부라는 사실입니다. 페로는 「엄지 왕자」에서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동화에 나오는 괴물은 자기 집에 묵게 해달라고 찾아온 일곱 명의 난쟁이를 죽이려다가 실수로 자기 딸 일곱 명의 목을 자르고 태연하게 잠듭니다. 이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도 경이로운 것의 일부입니다. 페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근친상간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이로운 것을 정의할 때 경이로운 것은 아름답기 때문에 감탄스럽다는 관념을 배제해야 합니다. 추한 것, 보기 흉한 것, 무서운 것 또한 경이로울 수 있습니다. 생소한 것은 모두 경이롭습니다. 이제 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했던 몇 가지 사건, 풍경의 특징, 내 작품에 도움이 된 몇 가지 요소를 언급함으로써 경이로운 현실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내가 경이로운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졸작 지상의 왕국 초판본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게 있는데, 마술적 사실주의와 경이로운 현실은 어떻게 다릅니까?” 자, 이제 우리 한번 생각해 볼까요. 초현실주의와 경이로운 현실 사이에는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이것은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1924년인가 1925년 독일의 예술 비평가 프란츠 로라는 사람이 만든 용어입니다. 프란츠 로의 저서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제목으로 스페인 잡지사 <<레비스타 데 옥시덴테>>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여기서 프란츠 로가 말하는 사실주의는 표현주의 회화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정치적 태도가 명백히 나타나지 않은 표현주의 회화를 지칭할 따름입니다.13) 잊어서는 안될 점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독일에서 표현주의라는 예술 경향이 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 때는 궁핍과 고난의 시기이자, 빈번하게 은행이 파산한 시기이고 무질서한 시기였습니다. 진정으로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은 브레히트의 처녀작 바알 신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투쟁이 있고 풍자가 있으며 사회적 의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로봇이 등장하는 차페크의 희곡이나14) 카이저의 연극과15)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카이저의 작품에서 남자1, 남자2, 흑인 숙녀1, 초록 숙녀, 빨간 숙녀라는 이름의 등장 인물이 나오고 차페크의 작품에는 로봇1, 로봇2, 로봇3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물을 몰개성화시킴으로써 비판적이고 논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어느 면에서는 혁명적인 사고를 드러냅니다. 프란츠 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말한 마술적 사실주의는 현실적인 대상이 일상에서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림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관원 앙리 루소의 유명한 그림을 책표지로 사용했습니다.16) 이 작품을 보면 뒤로는 달이 보이고 사자가 고개를 갸웃이 내밀고 있는 가운데 아랍인이 사막에서 만돌린을 곁에 두고 평온하게 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술적 사실주의입니다. 왜냐하면 개연성도 없고, 또 불가능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로가 무척이나 애호한 화가이자 마술적 사실주의로 분류한 화가는 발튀스입니다.17) 이 화가는 완벽하게 사실주의적인 거리를 그렸으나 시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흥미로운 것도 하나 없습니다. 분위기도 없고 대기도 없어 인상파 기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길거리 한가운데 아무런 특징도 없는 집, 작은 지붕, 하얀 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수께끼같은 인물들이 말없이 지나가거나 아니면 서로에 상관 않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나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삭막한 거리입니다. 또한 프란츠 로는 마술적 사실주의가 샤갈의 작품에도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샤갈의 그림에서 암소는 하늘을 날고, 지붕 위에는 당나귀가 있고, 어떤 인물은 머리가 아래 달려 있고, 음악가는 구름 속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실적인 요소이지만 꿈의 분위기, 몽환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18) 초현실주의를 얘기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사항이 있습니다. 초현실주의는 책 속에서, 기성품 속에서 경이로운 것을 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경이로운 것은 모두 아름답다. 단지 경이로운 것만이 아름답다.” 그러나 브르통 또한 페로처럼 경이로운 것은 아름답기 때문에 감탄스러운 것이 아니라 생소하기 때문에 감탄스럽다고 생각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1차 선언문에서 인용하는 작품을 보면-이 작품들은 나중에 초현실주의의 고전이 되었습니다-에드워드 영(Edward Young)의 밤의 회상과 같은 괴기물로부터 시작해서 스위프트로 나아갑니다. 스위프트는 어린애 고기를 파는 저 유명한 푸줏간 이야기에서 짐작하듯이 18세기 영국 작가들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작가에 속합니다. 이어 브르통은 에드가 앨런 포우를 듭니다. 하지만 포우의 작품은 유쾌하기는커녕 시체나 괴이한 사건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또 보들레르도 인용하는데, 이 시인은 여자를 노래한 것 못지 않게 추악한 것을 노래했고 거대한 바다와 여행을 노래한 것 못지 않게 부패를 노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르통은 잔혹극의 원조 알프레드 자리와 루셀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초현실주의는 경이로운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경이로운 것을 찾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진열장, 광고, 간판, 사진, 시장에서 시적 힘을 최초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흔히 사전에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경이로운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는 화폭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생소한 요소를 사용하여 경이로운 비전을 창조하겠습니다.” 초현실주의 회화는, 여러분도 그림을 본적이 있으므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만, 경이롭게 완성된 그림입니다. 누가 이 점을 의심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그림은 독특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고 계산된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예는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입니다. 마치 늘어진 엿가락처럼 테라스 가장자리에 걸쳐져있는 시계 말입니다. 또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에서는 진부한 계단과 복도 위에 열려진 문이 보이는데, 계단에는 생소한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물론 방문객이지요. 한가하게 계단을 오르는 뱀 말입니다. 이 뱀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일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미스터리는 미스터리인데 조작된 미스터리입니다. 반면에, 내가 주장하는 경이로운 현실이란 우리 라틴아메리카인의 경이로운 현실입니다. 온갖 라틴아메리카적인 것에 두루 깃들어있는 본래 그대로의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 곧 경이로운 현실입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소한 것은 일상적입니다. 늘 그랬죠. 기사 로망스는 유럽에서 쓰여졌지만 아메리카에서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아마디스 데 가울라의 모험은 유럽에서 쓰여졌으나, 멕시코 정복이야기라는 최초의 진짜 기사 로망스를 쓴 사람은 베르날 디아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복자들은 끊임없이 아메리카에서 현실의 경이로운 측면을 너무도 명확하게 보았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베르날 디아스 작품 한 구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멕시코 시티를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감탄하는데, 이는 완벽하게 바로크적인 산문으로 쓰여진 구절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저 땅과 신전과 호수는 아마디스가 말한 환술(幻術)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아메리카의 경이로운 현실과 접촉한 유럽인을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참고해야 할 아주 흥미 있는 몇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면, 아메리카적인 것은 경이로운 현실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정복한 때는 1521년인데, 당시 프랑수와 1세가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프랑수와 1세 때의 파리의 면적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13㎢㎢입니다. 고작 백년도 되기 전인 1889년에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발간한 세계 지도에 따르면 마드리드의 면적은 20㎢㎢이고, 수도 중의 수도 파리의 면적은 80㎢㎢입니다. 그런데 베르날 디아스가 목테수마 제국의 수도, 즉 멕시코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장대한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이 도시의 면적은 100㎢㎢이었습니다. 그 당시 파리의 면적은 13㎢㎢이었습니다. 눈앞의 장관에 경탄한 정복자들은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는데, 이는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오늘날, 우리 아메리카 작가들이 당면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 모두를 번역할 수 있는 어휘를 찾는 문제입니다. 나는 에르난 코르테스가 카를로스 1세(카알 대제)에게 보낸 보고서 어느 구절에서 비극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코르테스는 멕시코에서 본 것을 이야기한 뒤에 스페인어로는 수많은 새로운 사물을 지칭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카를로스 1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사물들을 무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주민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원주민 문화의 특이함과 장려함을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신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새로운 어휘가 필요하며, 또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한쪽이 없이는 다른 쪽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메리카는 바로크입니다. 건축물로 보거나-이는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복잡하게 뒤얽힌 자연과 식생(植生)으로 보거나, 아메리카인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색깔로 보거나, 아메리카인들을 아직도 얽매고 있는 이 땅의 여러 가지 현상으로 보아도 바로크입니다. 괴테가 만년에 친구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자신이 집을 짓기로 한 바이마르 근처의 어느 곳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영원히 자연이 길들여진 이런 나라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아마 아메리카에서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아메리카의 자연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카는 생소한 것과 경이로운 것의 역사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예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티 황제 앙리 크리스토프는 요리사 출신의 황제입니다. 어느 날, 나폴레옹이 이 섬을 정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요새를 구축했습니다. 포위 공격을 받아도 측근, 장관, 군인, 군대를 비롯해서 모두가 10년은 견딜 수 있는 요새입니다. 외부의 도움 없이도 10년은 지탱할 수 있는 많은 물자와 식량을 비축했습니다. 지금 내가 얘기하는 요새가 바로 라페리에르입니다. 그리고 유럽인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견고한 성벽을 쌓으려고 시멘트 반죽에 수백 마리 황소의 피를 섞도록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경이로운 것입니다. 막캉달의 반란을 봅시다. 수많은 아이티 노예는 막캉달이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막캉달은 새, 말, 나비, 곤충 등으로 마음대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막캉달은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진정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베니토 후아레스의 검은 색 마차가 있습니다.19) 베니토 후아레스는 이 작은 사륜 마차를 타고 멕시코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사무실도 없었고 서재도 없었고 궁전도 없었고 휴식처도 없었습니다. 이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당시 가장 강대한 세 제국주의(프랑스, 영국, 스페인) 세력을 물리쳤습니다. 볼리비아의 전설적인 여자 게릴라 후아나 데 아수르두이를 봅시다. 이 여인은 라틴아메리카 독립 전쟁의 선구자입니다. 어느 날 후아나는 한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이유는 긴 창에 꽂혀 중앙 광장에 효수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되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후아나는 안데스 산맥의 어느 동굴에서 이 사람의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브라질에는 실증주의 철학의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를 모시는 신전이 있습니다. 루소의 에밀을 실천하고자 유럽에서 학교를 설립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몬 로드리게스는 이 유명한 책의 가르침을 실현하려고 추키사카에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루소를 존경하는 유럽인들도 실현하지 못한 일이 아메리카에서 실현됐습니다. 어느날 밤, 나는 바를로벤토에서 대중 시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름은 라이슬라오 몬테롤라입니다. 이 사람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내가 자작시를 낭송해보라고 부탁했더니 롤랑의 노래-프랑스 사를마뉴 대제와 신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를 자신이 만든 10음절 정형시로 노래했습니다. 그 밖에도, 19세기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 있는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맥베스와 같은 초라한 스코틀랜드 왕들하고는 도무지 비교가 안될 정도의 인물들입니다. 19세기 중엽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독재자는 출발은 좋았습니다만, 배신에 대한 공포증과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충성스러운 각료, 훌륭한 장군, 친척, 형제, 친어머니까지 제거해버렸습니다. 마침내 자신은 불구자와 늙은이와 어린애들로 구성된 부대에 둘러싸인 채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내 생각에 이 이야기는 맥베스 이야기보다 더 기상천외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아메리카 대륙에는 피오 바로하의 소설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아비라네타 같은, 그 어떤 음모자의 얘기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음모자들의 일생이 있습니다. 이들에 관한 소설은 아직 나온 적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의무가 아메리카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것을 보여주고 해석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들 눈에 전혀 새로운 것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묘사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크 세계에 대한 묘사는 필연적으로 바로크적이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로크적 현실에 맞게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나는 오아하카의 생명수(生命樹)를, 이를테면 고전적이거나 아카데믹한 형태로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언어는 열대지방 풍경의 바로크주의에 상응하는 바로크주의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메리카 문학에서 자연스럽게 바로크주의가 나타날 수 있는 논리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데르니스모는 우리 아메리카인이 최초로 세계에 내놓은 위대한 문학 운동입니다. 왜냐하면 모데르니스모는 스페인의 시를 변화시켰고, 바예 인클란의 작품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데니르스모, 특히 초기 모데르니스모는 철저하게 바로크 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루벤 다리오의 초기 작품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미 부조리가 되어버린 바로크, 이미 낙서가 되어버린 바로크, 에레라 이 레이식의 시처럼 무절제한 바로크가 있습니다. 호세 마르티의 정치 연설은 아주 직설적이고 감동적이고 명쾌하지만, 찰스 다윈 추모 논총에 실린 글처럼 자유분방하게 글을 쓸 때에는 바로크 산문의 경이로운 기교를 보여줍니다. 아메리카의 모든 문제를 몇 페이지로 정의한 마르티의 대표적인 에세이 「우리 아메리카」(Nuestra América)는 바로크 문체의 경이로운 예입니다. 우리의 대가들, 내 세대의 대가들 그리고 소용돌이는-여러분도 이 소설은 읽어보셨을 것입니다-바로크 속에서 영속하고 있습니다.20) 밀림이 바로크적인데 소용돌이를 어떻게 다른 문체로 쓸 수 있겠습니까? 로물로 가예고스의 작품 카나이마(Canaima)가 바로크 소설이라고 굳이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까요?21) 카나이마에는 물을 묘사한 곳이 있습니다. 이 폭포 저 폭포, 이 웅덩이 저 웅덩이를 지나면서 튀어 오르기도 하고, 역류하기도 하고, 뒤섞여지기도 하는 물을 묘사한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움직이는 수로, 즉 강물을 얘기하고 있는 뛰어난 대목도 있습니다. 이 강물은 영원히 흐르고, 끊임없이 분노하고 요동치고 솟구치고 전율하는데, 이는 베네수엘라의 위대한 작가의 붓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가장 경탄할 만한 바로크적 대목입니다. 여러분, 가예고스의 물과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물을 비교해보십시오. 발레리 작품의 물은 고요하고 조화롭고 분노하지 않는 물, 다시 말해서, 길들여진 물입니다. 가예고스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때문에 바로크적입니다. 내가 보기에 가예고스 소설 가운데 가장 바로크적인 작품은 카나이마입니다. 왜냐하면 바로크 세계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는 어느 면에서 가예고스 세대와 우리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입니다.22) 왜냐하면 30년대에서 대략 50년대 무렵까지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아스투리아스 작품에서는 포폴 부, 칠람 발람, 카치켈레스(Cakchiqueles)의 영향이 드러납니다. 아스투리아스의 산문은 신대륙의 위대한 신화, 우주발생론에서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바로크인 라틴아메리카 현대 소설,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붐(boom)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소설은-그런데 ‘붐’이라는 말은, 언젠가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구체적이지도 못하며 아무 것도 정의하지 못합니다-지금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세대의 산물인데, 이 소설가들은 작품에서 아메리카의 환경, 즉 도시는 물론 밀림이나 농촌을 전적으로 바로크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경이로운 현실은 우리가 손을 내밀어 붙잡아야만 합니다. 아메리카 현대사에서는 매일같이 생소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메리카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열악한 상태의 국가에서-‘열악한 상태’라고 했는데, 이는 지리적 의미입니다-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현대사에서 생소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정복 이후 지금까지 아메리카 역사에서 일어난 수많은 훌륭한 일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의 영광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미래에 펼쳐질 생소한 사건에 직면하더라도 그 옛날 에르난 코르테스가 스페인 군주에게 말한 것처럼, “나는 이 사물들을 무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표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라틴아메리카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으며, 사물의 형태를 알고 있으며, 사물의 결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주조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 사건은 우리들이 아메리카의 소설가가 되고 위대한 라틴아메리카 현실의 해석자가 되고 기록자가 되고 증인이 되어 다룰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들은 준비해왔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고전, 작가, 역사를 연구해왔습니다. 우리 시대의 라틴아메리카를 표현하려고 우리는 모색해왔고 마침내 무르익은 표현을 찾아냈습니다. 우리와 전 세계 사람에게는 커다란 놀라움을 예고하고 있는 거대한 바로크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계의 고전 작가가 될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