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스트] 40 - 현무의 로켓 1
S#1. 캠퍼스 내 중앙로
넓게 뚫려있는 중앙로가 주욱 보이는데 비어있는 그 길에 멀리서부터 가까워져 오는 오토바이 소리.
보이기 시작하는 오토바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헬멧을 쓴 현무다. 달려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뒤에는 큼직한 네모 상자와 길다란 상자가 묶여져 있다.
S#2. 캠퍼스 내 도로 일각
요란한 오토바이의 굉음이 가까워져 오고 순찰차 옆에서 종이 커피를 마시던 백곰이 놀라서 달려나온다.
그러나 백곰이 팔을 휘두르는 것을 무시하고 달려 지나가는 현무의 오토바이.
백곰 : (화가 나서) 저저.. (수첩을 꺼내며) 과속에 과다 적재. 안전운행 위반, 정지 신호 무시, 이름은.. 이름은.. (하다가 보면
이미 저 멀리로 꺽어져 가버리고 있는 오토바이) 다음에 적자. 꼬옥...
S#3. 운동장
한쪽에 아까의 오토바이가 세워져있다.
넓은 운동장... 그 가운데에 현무가 주저앉아서 박스들을 풀고 있다.
// 가까이로..
발사대가 세워져 있고, 발사대에 로켓을 설치하고 있는 현무. 그 옆에는 점화장치가 있다.
연결된 점화선을 주욱 따라가보면 그 옆에 수신기와 노트북이 펼쳐져있다. 노트북 옆에는 일지가 펼쳐진 채 엎어져 있고.
다가온 현무가 퍼질러 앉더니 일지를 펴서 뭔가를 적어넣기 시작한다.
현무 : (E) 99년 10월 24일. 제 7차 발사실험. 목표는 고도 1킬로미터.
손을 멈춘, 현무가 저만치 세워져있는 로켓을 보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위로..
현무 : (E) 목표는 고도.. 1킬로미터...
현무, 심호흡 한 번 하고는 발사 스위치를 누른다. 동시에 점화 장치에서 울리는 사이렌. (전원이 들어 왔다는 신호임)
니크롬선을 따라 가열되기 시작하고. 노트북 화면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5,4,3,2,1
로켓에선 추진 연기가 힘차게 뿜어 나오고 0이 되는 것과 동시에 하늘로 날아 오르는 로켓.
현무, 날아오르는 로켓을 보다가 노트북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수신기를 통해 수신된 고도가 모니터에 디지털로 표시되고 있다.
200, 300, 350, 450..연속적으로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고도계.
현무, 긴장된다. 침을 꿀꺽 삼키는데 500...정도에서 점점 느려지는 고도..서서히 올라가다가 550 정도에서 멈추는,
그러다가 다시 급격히 떨어지는 숫자.
현무, 실망이다. 아예 눈을 감고 뒤로 쓰러지듯 누워 버리는데 잠시 후 눈을 번쩍 뜨고 하늘을 본다. 로켓이 보이지 않는다.
화급히 일어나 하늘을 훑듯이 살피고 주위를 급하게 살피지만. 로켓은.. 없다.
굳은 현무의 얼굴.
S#4. 학생 회관 전경
주위를 오가는 학생들. 그 위로.
대욱 : (E) 선배애. 이제 그만 진실을 받아들이지 그래.
S#5. 휴게실
대욱과 자현, 지민이 둘러앉아서..
자현 : 진실? 그래 진실 좋지. 뭐가 진실인지 오늘 끝까지 밝혀보자고. 지민아. 니 눈엔 이게 뭘로 보이냐.
자현, 손에 쥐고 있던 50원짜리 동전을 지민의 코 앞에 들이댄다. 인서트로 50원짜리 동전.
대욱 : (E) 벼지? 벼. 벼.
자현 : (E) 아이구 자식아. 이게 어떻게 벼냐. 니 눈엔 이게 벼루 보이냐?
지민 : (동전을 받아 꼼꼼이 보고 있다)
대욱 : 이보슈. 아무거나우기면 진실이 되냐? 이십년 넘게 살았으면 밥을 먹어도 수천끼는 먹었을텐데 벼하고 보리도 구별못하냐.
자현 : 내 말이 그 말이다. 넌 평생 보리밥이라곤 한그릇도 못 먹어봤지? 보리가 어떻게 생긴 줄이나 아냐?
대욱 : 어이구우. 선배 초등학교 졸업한 거 맞아? 초등학교때 배운 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봐봐. 이거 고개를 한쪽으로 팍 숙이고 있잖아.
자현 : 짜샤 익으면 보리두 고개 숙여. 무거워지면 그게 뭐든 고개가 숙여지는 게 당연 하지.
지민 : 내 생각엔 말이지.
자현 : 그래그래. 니 생각에두 보리 맞지?
대욱 : 아 좀 조용히 지민이 말을 들어봐.
지민 : 내 생각엔 이거.. 팥인 거 같애.
자현과 대욱 할말을 잃었다가..
대욱 : ..그러니까 니 말은 대한민국 50원짜리 동전에 팥이 새겨져 있다.. 이말이냐?
지민 : 응...(둘의 눈치를 보며) 팥. ...좁쌀인가..
S#6. 캠퍼스 일각
자현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씩씩거리며 오고 있고 지민과 대욱이 그 옆을 따르며.
대욱 : 조폐공사에 전화까지 해서 확인했으면 됐지. 뭘 더 알아보겠다는거야.
자현 : 그 조폐공사 사람도 정확히 모르는거 같았다니까. 그게 벼일 겁니다 그랬다구. 그게 벼다 그런 게 아니고.
대욱 : 인간이 그렇게 지기 싫어해서 어떻게 사냐.
자현 : 진실을 밝히자며. 그러니까 지금부터 생물학과로 가서 이 분야에 가장 권위자를 만나보고. 그리고...
지민 : (좀 뒤를 따라오다가 한곳을 보며) 언니.
자현 : (벌컥) 왜.
지민 : 저거 봐. 저거.
자현과 대욱이 돌아보면.. 저만치 잔디밭 가운데 떨어져 있는 로켓. 낙하산이 펴진 채로 거기 떨어져 있다.
S#7. 동아리방
자현, 손바닥을 비비며 맛난 음식을 앞에 놓은 사람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테이블에는 이미 로켓이 분해되어 있다. (동체, 엔진, 콘, 낙하산 등등)
걱정스레 보고 있던 지민.
지민 : 언니 진짜 빠르다. 2분 30초. 딱 2분 30초만에 멀쩡한 로켓 하나를 망가뜨려 놨네.
자현 : 마. 넌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이건 망가뜨린 게 아니고 분해했다고 하는거야.
지민 : 그래도 주인이 알면 화내지 않을까.
자현 : 걱정마셔. 후루룩 보고 금방 다시 조립해놓을거니까. 으흐흐 이거 진짜 귀엽게 생겼네.
대욱 : (옆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치고 있다가) 어이 들어봐. (써놓은 걸 읽는) 로켓을 보관하고 있음. 분실한 사람 찾아가시오.
지민 : 그게 다야?
대욱 : 어 왜.
지민 : 그거 쓴다고 10분씩 앉아있었던거야?
대욱 : (흘기며 엔터를 쳐서 올린다) 비비에스에 올렸으니까 그거 빨랑 조립해놔. 찾으러 오기 전에.
자현 : (이거저거 들여다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이건 용접을 한거야. 땜방을 한거야. 이런 식이면 가스가 엄청 샐텐데..
그리고 무슨 노즐목이 이렇게 작어?
대욱 : 지민아. 거기 침 닦아줘라. 아주 질질 흐른다. 흘러.
S#8. 지원/ 경진의 방
지원이 전화를 받고 있는 중이다.
지원 : 응 테잎 받았어. 그게 마지막 촬영분이니? 알았어. 프리뷰하고 나서 부족한 게 있으면 말할게. 그래 수고했어.
지원, 수화기를 놓고 돌아서다 보면, 책상 앞에 앉아있던 경진이 손에 책은 들고 있는데 전화를 엿듣느라고 애쓰고 있다가.
지원과 눈이 마주치자 헤헤 웃는다.
경진 : 정태냐?
지원 : 응. (이제껏 한손에 들고 있던 화장품을 그제야 뚜껑을 열며) 마지막 촬영분 테잎 받았는데 프리뷰 같이 할래?
경진 : 그래.
지원이 로션을 바르는 동안 경진, 책을 읽어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책을 탕 놓더니 벌떡 일어나 지원의 침대에 와 다가 앉으며.
경진 : 어떻게 된거야?
지원 : 뭐가.
경진 : 너하고 정태. 그니까 어디까지 진도가 나간거냐고.
지원 : (한심해서 보다가 화장품을 제자리에 놓으러 간다)
경진 : 나 살려주는 셈치고 좀 가르쳐줘어. 나 궁금해서 말라죽을거 같어.
지원 : (어쩔수 없다는 듯 웃더니) 도대체 무슨 진도가 어떻게 나가야 된다는 거야?
경진 : 치사하게 굴지 말고 좀 말해봐아.
지원 : 정태는 좋은 친구야.
경진 : (비딱하게) 치인구우.. 애인이 아니고 친구다아..
지원 : (한숨 쉬어 보며) 애인이라는 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잖아.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니?
경진 : 음마야. 넌 연애를 할 때도 자격시험을 치룰 생각이냐? 그래서 연애 자격증 딴 담에 시작할거야?
지원 : 그런 게 있다면 그러고 싶어. 그럼 최소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않을 거 아냐. 지금의 난, 한참 모자라.
경진 : (김 샌 얼굴로 일어나며) 됐네. 너 말하는 거 보니까 최소한 한가진 알겠다. 느넨 멀어두 한참 멀었어.
(문쪽으로 나가며) 으이그. 이 지구상엔 왜 이렇게 재밌는 게 없나아..
S#9. 전자동 복도
정태가 어슬렁거리며 오다 보면 민재가 복도 가운데 서서 프린트물을 넘겨보고 있다.
정태 : 뭘봐.
민재 : 어. 오늘 저녁 브리핑할 건데.. 아무래도 이교수님께 엄청 깨지겠어.
정태 : 왜. 시물레이션 결과는 좋았잖아.
정태 민재의 옆에 붙어서 함께 보는데, 그 뒤에서 급하게 달려오던 현무, 둘 사이를 거칠게 지나쳐간다.
그 바람에 프린트물을 놓친 민재가 어이없어 본다.
정태 : 뭐야 저 인간은.
S#10. 동아리방
자현은 여전히 로켓의 부품들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없고.
대욱은 로봇의 부품들을 조립하는 중이고. 지민은 보던 책을 챙겨들며.
지민 : 나 수업 갔다올게.
자현 : 올 때 먹을 거 좀 사오면 더 좋지.
지민 : 으유 돈이나 주면서 그런 말하면 내가 기쁘게 심부름하지.
하면서 문으로 가는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현무와 부딪힐 뻔 한다.
현무 : 비비에스 보고 왔습니다. 여기 로켓이.. (하다가 테이블 위에 분해되어 있는 로켓을 본다. 굳는..)
자현 : (일어서며) 어이구 일찍도 달려오셨네. 이 로켓의 주인되십니까?
현무 : (자현이 들고 있는 콘 부분을 노려 본다)
자현 : (얼른 콘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아 하하 아주 개성있는 로켓이든데요. 동체는 FRP에 엔진은 스텐레스관을 썼고.
아.. 노즐은 듀랄루민으로 만든 거 맞죠? 연료는 뭘 쓰셨어요?
현무 : 누가 이래놓은거야?
자현 : 아.. 이거 분해해놓은거요. 전데요. 그것이 이렇게 일찍 오실 줄 모르고.. 에.. 5분만 주시면 제가 원래대로 깜쪽같이 다시..
(하면서 부품 하나를 집어드는데)
현무 : (낮게) 만지지 마.
자현 : 예?
현무 : (벌컥 다가서며 자현에게서 부품을 뺏어든다)
대욱, 심상치 않아서 일어나 보고 있다.
현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복사지가 든 박스를 보고는 들어서 내용물을 그대로 바닥에 쏟아버리고,
박스에 부품들을 주워넣기 시작한다.
자현, 미안해서 슬그머니 도와주려고 부품 하나를 집으려는데,
현무, 거칠게 자현의 팔을 잡더니 확 밀어버린다.
자현, 뒤로 밀려 넘어질 뻔하며 탁자에 부딪힌다.
대욱 벌컥 나서며 저도 모르게 현무의 가슴을 밀어버린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현무.
대욱 : 이거 너무하잖아. (바싹 앞으로 다가들며) 우리, 잃어버린 로켓 찾아준 사람들이야. 당신 태도가 뭐 이래.
자현 : (대욱을 밀치며) 너 빠져. 나하고 얘기 좀 합시다. 남의 꺼 내 맘대로 분해한 건 미안한데요.
근데. 이런 위험물 허가나 받고 발사한겁니까? 그리고..
현무 귀찮다는 듯 둘을 밀치고 테이블로 가려하고, 대욱 거칠게 막아서며.
대욱 : 어쭈우.. 사람 말이 말같지가 않은거야 뭐야.
분위기 험상맞게 되는데, 문이 열리며 민재와 정태가 들어선다.
민재 : 뭐야. 왜 그래?
대욱 : 아 글세. 이 인간이 고맙다고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사람을 패잖아요.
자현 : 야야 패진 않았지..
민재 그제야 현무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현무는 그 사이 부품들을 박스에 넣고 있다.
민재 : 어. 강현무 선배 아니세요?
대욱 : (찔끔해서) 형한테 선뱁니까? ..많이... 선밴가.. ?
모두 분위기가 일순 썰렁해지는데. 현무, 민재를 모른척하고 부품만 챙기고.
민재 뭔지는 모르지만 다가서 도우려고 부품을 집어드는데.
현무 : (버럭) 건드리지 마.
S#11. 이교수 랩 / 밤
중희가 작업을 하다가 돌아보며.
중희 : 강현무? 그 녀석, 아직 학교 다니고 있나?
민재, 정태, 만수가 테이블 주위에 모여 잡담중이었다.
민재 : 아세요?
중희 : 알지. 걔 실습시간에 내가 두 번이나 조교했잖아.
정태 : (민재에게) 우리 과야?
만수 : (보던 잡지를 내려놓으며) 너 몰라? 전자과 명물. 싸이코 로켓 강현무를 모른단 말야?
정태 : 난 그냥 내가 아는 사람만 잘 알고 지내기도 벅차서.
중희 : 야야 걔는 그냥 건드리지 않는 게 제일이야.
정태 : 어떤 사람인데요?
중희 : (만수에게) 만수 너하고 동기 아니냐?
만수 : 한때는 그랬죠. 근데 하아 자식. 남들 공부할 때 뭐하고 말이지. 작년에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먹었잖습니까.
이 천하의 정만수도 구경 못해본 학사경고장.
중희 : 너도 한번 먹었잖아.
만수 : 내가 언제요.
중희 : 마. 그때 너 오리연못에 빠져죽겠다고 설칠 때 누가 업고 왔는지 기억 안나?
만수 : 그게 선배였습니까?
중희 : 하여간 후회막급이다. 그때 널 그냥 두고 왔어야 하는건데.
만수 : 우씨.. (삐지는데)
정태 : (민재에게) 그렇게 유명한데 어째 내가 한번도 못봤지?
민재 : 우리하고 인공지능 강의 같이 듣잖아.
정태 : 난 한번도 못 봤는데?
민재 : 당연하지. 제일 늦게 들어와서 맨 뒤에 혼자 앉았다가 제일 먼저 나가곤 하니까.
중희 : 그리곤 나가서 로켓을 만든대매.
만수 : 아이구 말도 말아요. 로켓동아리에서 같이 만들자고 몇번 찾아왔었거든요. 마이동풍. 이건 뭐 탑시크리트 국가 기밀 무기를
만드는 것도 아니구 말이지. 하여간 친구도 없고, 선후배도 없고. 학교는 뭐하러 다니나 몰라.
그냥 절에 가서 혼자 도닦으면서 로켓을 만들든가 말든가.
정태 : (민재에게) 어디서 만드는데?
민재 : 뭐?
정태 : 만드는 데가 있을 거 아냐. 동아리도 아니고. 학부생한테 로켓같이 위험한 거 만들 장소를 학교에서 내줬을 리도 없고.
민재 : 그러게. (중희를 돌아본다)
중희 : (만수에게) 넌 아냐?
만수 : 내가 어디 남의 일에 신경쓰고 살 시간이 있어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거 안 보여요?
중희 : 어쭈..
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명환. 모여서 노닥거리는 아이들을 본다.
모두 별로 긴장하지 않은 채 명환을 돌아본다.
만수 : 명환선배 강현무라고 알죠? 전자과에 괴물인데..
명환 : (아주 신경 날카로와져 있다) 뭣들 하는거야? 시간이 남아돌아? 맡은거 다 끝내고 더 할 일이 없어? 다음 일거리 받아갈래?
서슬퍼런 명환 때문에 모두 우물쭈물 자기 자리로 간다.
만수, 중얼중얼 비죽거리며 자기 자리로 가다가 헤에 웃으며 돌아보며.
만수 : 선배님. 저녁 먹은 지 두시간도 넘었는데 야식 사올까요? 민재하고 정태는 그냥 일해. 이 선배가 후딱 가서..
명환 : 정만수,
만수 : 네 메뉴는 뭘로..
명환 : 너 조심해. 다시한번 헛소리해대고 연구 분위기 흐리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 여기서 내쫓는다.
만수, 찔끔해서 얼른 자리에 앉는다.
명환 자기자리로 가서 거칠게 의자를 빼어 앉는다.
명환이 등을 돌리자 나머지 아이들, 슬그머니 명환 쪽의 눈치를 본다.
S# 12캠퍼스 전경 / 밤
S#13. 복도 / 밤
백곰이 손전등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며 순찰을 돌고 있다. 문들이 잠겨있는지 확인도 하며 걸어오는 중.
그 중에 부품실의 팻말이 걸린 방이 있다.
백곰, 잠겨있는지 확인차 손잡이를 돌려보고 지나가려는데, 안에서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백곰, 긴장해서 다시 돌아와 문에 귀를 대고 들어본다. 조용하다. 갸웃하고 그냥 가려다가 허리춤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낸다.
S#14. 부품실 내부
문이 절컥 열린다. 내부는 불이 꺼져서 어두운 상태.
백곰 벽을 더듬어서 불을 켠다. 그러다 꿈쩍 놀란다.
부품실의 내부, 구석에 주저앉아있던 현무가 단념한 듯 백곰을 돌아본다. 현무의 앞에는 작업을 하던 부품들이 늘어져있다.
백곰 :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현무 : (무뚝뚝한 얼굴로 보기만)
백곰 : 여기는 부품실입니다. 부품실. 누구 허락받고 여기서 작업을 하는 거에요? (수첩 꺼내며) 학번 학과 이름. 차례대로 대세요.
현무 : (물끄러미 보다가) 그냥 모른척 해주면 안되겠습니까?
백곰 : 뭐요?
현무 : (귀찮다는 듯) 여기서 쫓아내면 또 어딘가 숨어들어가야 된다구요. 귀찮아서 그래요. 그냥 냅두면 안되겠어요?
백곰 어이가 없어서 뭐라 말하려는데 말도 안나온다.
S#15. 인공위성 센터 외경 / 밤
그 위로 들리는 박교수의 소리.
박교수 : (E) 에잉? 300억? 300억이면 얼마야?
S#16. 센터 내 실험실
서교수 박교수가 얘기중. 경진과 다른 두어학생이 각자 작업중이고.
서교수 : 300억이 300억이지 얼마야.
박교수 : 아이구머니나. 그러니까 위성 하나 발사할 때마다 외국에다가 로켓 사용료로 그 돈을 줘야된단 말이야?
서교수 : 무궁화 위성의 경우는 그렇지. 우리별 같이 소형위성은 그 정도는 안돼.
박교수 : 하여간.. 우리별 만드는 데 얼마 들었지?
서교수 : 3호의 경우는 80억정도 들었어.
박교수 : 이게 바로 배보다 배꼽이구나. 무궁화 위성 하나 올리려고 외국에 줄 돈이면 우리별 세 개하고도 삼분의 이개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잖아.
서교수 : 이럴 때마다 70년대 우리 선배 과학자들이 생각나.
박교수 : 어느 선배 과학자.
서교수 : 그 때 우리나라에서도 로켓 연구를 시작했었거든. 외국에 있는 우수한 우리 과학자들을 불러들여서 말야.
경진 : (작업을 하다가 손을 멈춘다, 귀를 기울여 듣는)
박교수 : 아아아 그거. 하다가 중단했지?
서교수 : 중단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지. 80년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강제로 해체시킨거야.
박교수 : 왜애? 미국 눈치 보느라구?
서교수 : 뭐 정치적인 거야 별로 말하고 싶지 않고. 참. 우리학교에 그 때 과학자 중의 한사람 아들이 다니고 있어.
그 아들도 로켓을 만든다고 하든데.
박교수 : 오호. 눈물겨운 스토리. 누군데? 무슨 과야?
서교수 : 전자과라고 했지 아마. 그애 이름이 현무야.
경진 : (역시 숨죽여 듣고 있다)
박교수 : 현무? 청룡 백호 주작 현무할 때 그거?
서교수 : 그 때 개발하던 로켓의 이름이 현무거든.
박교수 : 아하.. 크아.. 웬지 술 먹고 싶어진다.
서교수 : 박교수도 강재호 박사 알지 않나? MIT에서 화공을 전공하셨는데.
박교수 : (생각해보더니) 이잉? 그래? 몰랐는데..
서교수 : 하긴 한참 선배시니까..
두교수가 얘기하는데 경진.. 컴퓨터에 뭔가를 자기도 모르게 낙서처럼 쳐넣고 있다.
모니터에 비쳐진 화면에는 강현무..강현무..라고 몇번이나 적혀져있다.
S#17. 박교수 강의실
여전히 편한 자세로 얘기를 하고 있는 박교수.
박교수 : 때는 1972년,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세계에 있던 박사들이 자기가 갖고 있던 좋은 조건을 다 팽개치고 모여든거에요.
그리고는 거의 독자적으로 미사일개발을 하기 시작한거라 이말이지. 왜 독자적으로 했나. 아무도 그 기술을 안가르쳐
주니까. 현재 세계에서 인공위성을 쏘아올릴만한 로켓을 가진 나라는 여덟 개 나라밖에 안된대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이스라엘.. (손가락으로 꼽아가다가..) 그리고.. 나머진 어디드라..
현무 : (E) 인도하고 일본입니다.
나란히 앉아있던 민재와 정태가 뒤를 돌아본다. 맨 뒷자리에 떨어져 앉은 현무가 보인다.
박교수 : 역시. 우리 학생들은 모르는 거 빼곤 다 알어. 이 여덟 개 나라에 우리나라는 끼어있질 않아요. 그러나 사실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로켓을 개발한 나라다.. 이말이지. 그것도 완전 백지 상태에서. 돈도 없는데. 한다면 한거야.
내가 무슨 얘길하려다가 여기까지 왔나. 아 그렇지. 우리 머리의 우수함. 이걸 얘기하려고 했지. 우린 기본적으로
머리가 우수한 민족이에요. 그러니까 그 좋은 머리들로 나리지베이스 (knowledge-base)에 대해서 생각들을 좀 해보자
이 얘기였지. 자아. 나리지베이스에는 이런 장점들이 있다.. 그럼 장점만 있느냐? 그럴 수는 없지. 어떤 단점이 있을까?
(학생들 둘러보는데)
학생 : 그 자체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줘야 되는 게 단점 아닐까요.
박교수 : 바로 그거야. 그럼 좀 더 생각해봅시다. 한때 만능처럼 여겨지던 전문가 시스템의 경우 지금은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관심을 못 끌고 있어요. 왜일까.
학생들 : (조용....)
박교수 : 머리들을 좀 더 굴려봐. 우린 한다면 할 수 있어.
침묵이 흐르는데..
현무 : (E)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정태, 민재 다시 뒤를 돌아본다. 현무가 싸늘한 얼굴로 박교수를 보고 있다.
박교수 : 우리가 우수한 머리로 조금만 더 생각을 한다면..
현무 : 뭐가 우수한 머립니까? 나라에서 부르면 충성스런 개처럼 달려와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다가
버림받아도 암말 못하는 게 우수한 겁니까?
박교수 : (좀 당황하다가) 잠깐.. 우리 지금 나리지베이스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현무 : 그럼 나리지베이스에 대해서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민족주의니 과학자의 애국심 같은 얘기는 안해주셨으면 합니다.
박교수 : (보다가) 왜애?
현무 : ...허상만 심어주니까요. 그런 건 일종의 사기라고 봅니다.
학생들 모두 현무를 돌아보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뒷문이 열리며 다음 수업에 들어올 학생들이 안을 기웃거린다.
박교수 : 아이구. 막 얘기가 재미있어지는데 이 교실에서 다음 수업이 있는 거 같으니까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 시간에 계속 토론해보죠. 자아 오늘 질문한 사람. 앞에 이름 적고 나가요. 안그러면 출석점수가 없는 거 알지요?
학생들 분분이 일어나는데 민재는 현무를 자꾸 돌아보고 있다.
정태 : 과연 정상은 아닌 거 같은데.
민재 : 처음 봐.
정태 : 뭘?
민재 : 저 선배가 저렇게 길게 얘기하는 거. 역시 로켓 얘기가 나와서 그런가?
정태도 민재를 따라 돌아보면, 현무는 어느새 뒷문으로 나가고 있다.
S#18. 박교수 랩 / 낮
마이클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앉아있다. 그러다 힐끗 보는 곳.
경진이 마이클을 빤히 보고 있다가 얼른 웃어보인다. 방에는 둘만 있는 상태.
마이클 : 진짜 괜찮은거지?
경진 : 으째 그리 의심이 많냐. 너 매사를 긍정적으로 봐야지 자꾸 그렇게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의처증 환자된다.
마이클 : (못 알아들었다) 무슨 환자? 왓?
경진 : 아아. 넘어가 패스. 글세. 딱 하나만 볼거야. 이번 학기에 어느 어느 수업을 듣나.. 그것만 보면 된다니까.
마이클 : 그래도 이거 해킹이야. 몰래 남의 꺼 보는 거 나빠.
경진 : 야야. 내가 지금 무슨 산업기밀을 알아달랬냐. 국가안전정보를 훔쳐본댔냐. 뭐가 나빠.
마이클 : 누나 말은 너무 어려워. 쉬운 말 써.
경진 : 알았어. 좋아. 이렇게 설명을 하지. 내가 관심을 가진 남자가 있어.
마이클 : 오우 남자.
경진 : 그래서 그 남자의 시간표를 좀 알고 싶은거야. 됐냐?
마이클 : 왜?
경진 : 왜긴 뭐가 왜야. 그 남자를 따라다닐려고 그러지.
마이클 : 오우 오우.
괜히 자기가 부끄러운 듯이 경진을 치며 히히 웃는.
경진 : 봐줄 수 있지?
마이클 : 그런거면 일찍 말하지. 아임 큐피트 오예. (신이 나서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시간표만 알면 돼?
가족이 누구누구 있는지 그런 것도 알고 싶어? 말만 해. (문득 손을 멈추더니) 이름이 뭐라고?
S#19. 석학의 집
자현과 병석이 나란히 앉아서.. 자현이 떠들고 있는 중.
자현 : 내가 봤을 때는 노즐목에 비해서 노즐 팽창 부분이 너무 긴거 같드라구.
병석 : 노즐목이 너무 작단 얘기야?
자현 : 그렇지. 거기다가 모터 윗부분을 고무판으로 막았는데 그 노즐목 크기로 봐선 도저히 버텨낼 거 같지가 않더란 말이지.
병석 : 얘기해주지 그랬어.
자현 : 하이구 그 인간한테?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드라고. 내가 지 로켓 좀 분해해봤다고
도끼눈을 해가지고 말이지. 것다 대고 니 로켓이 한심하드라.. 이 얘길 해봐라. 아주 칼 들고 덤빌거다.
병석 : 넌 그게 문제야. 아무거나 모터 달린거만 보면 일단 분해 먼저 하려구 들잖아.
자현 : 그건 그래. 그치? (히히 웃다가) 가만 있어봐. 그럼 팔다리 달린 것만 보면 분해하고 싶어진다.. 그럼 의대로 가는건가?
병석 : 으이그.. (웃는데)
민재와 정태가 들어서며 미순에게 인사를 하고, 미순, 어서와 받아주고..
자현 : 어이. 오랜만이다. 일루 와. (발로 옆의 의자를 밀어주는)
민재 : 느네 자동차 대회 준비는 잘 되가?
자현 : 야야 우린 어디까지나 참가에 의의를 두고 있는거야. 올림픽 정신도 모르냐?
정태 : 야아 너 많이 성숙했네.
자현 : 인간이 날마다 성숙을 해야지 그럼. 여긴 우리과 양병석. 이쪽은 미스터에 이민재 김정태. 다같은 4학년.
병석 : 전에 얼굴은 봤었지? (악수들 하고..)
정태 : 자현이랑 한팀 하느라고 고생이 심하겠다.
자현 : 뭐임마.
정태의 의자를 발로 차고 정태 피하고 웃는데. 마이클이 오며.
마이클 : 주문해. 주문.
민재 : 난 커피.
정태 : 난 찬물 한잔 주면 안되나?
마이클 : 안돼안돼. 비싼 거 시켜. 민재형도 쥬스 마셔. 그게 더 비싸.
민재 : 차암나..
자현 : 아참. 느네 강현무란 사람 작업하는 데가 어딘지 모르냐?
민재 : 강현무 선배? 몰라. 왜.
마이클 :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자현 : 저번에 부품 갖구 가면서 뭐 하나 빼놓구 갔거든. 다시 찾으러 올까해서 기다렸는데 안오네.
마이클 : (드디어 생각났다) 아아 강현무. 생각났다.
다들 : (쳐다보는데)
마이클 : 그 남자. 전자과 5학년. 맞지? 오우 나 마이클 천재.
정태 : 너두 알어? 그 선배 진짜 유명한가보네.
마이클 : 난 몰라. 경진이 누나가 알어. 그 사람, 경진이 누나의 이거야. (하트를 그려보이며 히히덕대는)
자현 : 경진이의 뭐라고?
마이클 : (하트 그려대며) 이거 이거. 더 이상은 말 못해. 프라이버시야.
이히히 웃어대며 즐거워서 안으로 가며.
마이클 : 진영씨 쥬스 두잔. 비싼 걸로 두잔.
민재와 정태, 놀라서 마주본다.
자현 여전히 감이 안잡혀서.
자현 : 뭐가? 쟤 지금 손가락으로 뭐 그리고 간거야?
병석 : 으유.. (자현을 밀어버리는)
S#20. 전자동 건물 계단
민재가 우편물 뭉치를 한아름 안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보면 계단 아래쪽에서 경진이 어떤 남학생에게 뭔가를 묻고 있다.
남학생이 경진에게 한쪽을 가르켜보이고 있다.
민재, 우편물을 떨어뜨릴 뻔해서 잘 잡으며 경진을 부르려다가 멈칫.
저 아래의 경진이 후다닥 계단 쪽으로 도망오더니 고개만 슬쩍 내밀어서 아까 남학생이 가르켜준 쪽을 숨어보고 있다.
민재, 수상쩍어서 자기도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경진이 갑자기 벽을 향해 고개를 박다시피 숨는다.
그 앞을 혼자 지나쳐가는 현무.
잠시 후 경진이 빼꼼이 고개를 돌리더니 현무가 간 쪽을 살펴본다.
민재, 아주 수상해서 보고 있다.
S#21. 캠퍼스 일각
저만치 앞에 현무가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만치 뒤에서 경진이 미행을 하듯 그 뒤를 따라간다. 현무가 문득 멈춰선다.
경진, 우왕좌왕하다가 후다닥 옆의 게시판에 코를 박고 뭔가 읽는 척.
슬쩍 뒤를 보면, 현무는 운동화끈을 다시 매더니 계속 걸어간다.
S#22. 천막 앞
이만치 거리에서 보이는 천막. 이쪽에서 경진이 숨어 보고 있다.
천막에서 현무가 나오더니 밖에 쌓아두었던 재료봉지 하나를 들고 다시 들어간다.
경진 좀 더 잘 보려고 기웃거리는데.. 누군가 경진의 어깨를 턱 짚는다.
경진, 소스라쳐 돌아보면 백곰이다.
백곰 : 뭐하냐.
경진 : 아이구 깜짝 놀랐잖아요.
백곰 : 놀라는 거 보니 수상해지는군.
경진 : 그러는 아저씬 여기 웬일이세요?
백곰 : 나, 책임감과 사명감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중.
경진 : 에?
백곰 : 저 학생을 아나?
경진 : 뭐.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르고..
백곰 : 저 학생이 연구하고 있는 로켓. 그거 아무래도 위험한거겠지?
경진 : 아무래도 그렇겠죠.
백곰 : 상식적으로 따지면 내가 저 학생한테 이 장소를 알려줘서는 안됐겠지.
경진 : 아저씨가 저 천막을 알려준 거에요?
백곰 : 뭐.. 그냥 놀고 있는 천막이라서.. 우리 학생이 연구를 하고 싶어도 장소가 없어서 못한다면 말이 안되니까..
그래서 소개는 했는데.. (울쌍이 되며) 뭔 일이 나면 어뜩하지?
경진 : 에이 설마요..
백곰 : 저기.. 저 학생 지도교수님이 누군지 알어? 알면 가서 지도 좀 해달라고 해주면 안될까? 나 있지. 저 천막 빌려주고 난 담에
잠이 안와. 잠이. 나 마른 거 보이지?
S#23. 천막 내부
별로 크지 않은 천막. 창고로 쓰이고 있었던 듯 지저분하게 상자니 낡은 기구들이 쌓여있는 가운데 현무의 작업대가 있다.
현무가 산화제와 연료를 혼합하고 있는 중이다. (막자사발에 갈고 있는 모습 정도)
주위에는 분량을 재는데 이용되는 저울 등이 보이고, 나중에 가열하기 위한 전기곤로도 보이고.
현무 피곤한 듯 잠시 멈춘다. 그러다 문득 테이블 한쪽 끝을 본다. 거기 낡고 두툼한 노트가 한권 있다.
현무 천천이 다가가 일기장을 들더니 아무데나 쓰러지듯 앉는다. 후루룩펼쳐 보다가 앞부분을 다시 들춘다. 조용히 읽기시작한다.
강재호 : (E) 미사일은 비행하는 종합과학이다. 유도조정, 구조해석, 풍동시험, 추진제 등 각 분야의 고도기술이 농축된
무기체계의 정화다.
현무 : (몇장을 들추고 읽는다)
강재호 : (E) 한강변 맨션에서 마스터 플랜 작성을 위한 비밀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들은 24시간 숙식을 같이하며
조금씩 미사일에 대한 눈이 떠가고 있다. 보안사 요원들이 늘 우리와 같이 있다. 경호 겸 감시를 하는 거겠지.
아내와는 언제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현무, 문득 고개를 들더니 먼 곳을 본다.
S#24. 도서관 앞 / 밤
학생들 도서관을 드나들고 있고.
이만치의 벤치에 앉은 민재와 경진. 민재, 경진이 건네주는 종이커피를 수상쩍게 받아든다.
민재 : 아무래도 지구의 종말이 올래나보다야.
경진 : 왜.
민재 : 니가 니 돈으로 커피를 사주다니. 지구가 뒤집어지기 전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거든.
경진 : 남이 들으면 내가 왕빈댄줄 알겠네.
민재 : 그럼 아니었냐?
경진 : 아아 시꺼. 아까 물어본 거나 대답해줘. 강현무란 사람 안대매.
민재 : 알지.
경진 : 지도교수님이 누구야?
민재 : 우리 이교수님.
경진 : 그래애? (곰곰 생각해보는)
민재 : (그런 경진의 눈치를 보다가) 나도 하나 물어보자.
경진 : (건성으로) 그려.
민재 : 너.. (말을 고르느라 언뜻 말을 못하는)
경진 : (그제야 보며) 뭔데.
민재 : 너 말야. 좋아하는 사람 있었다구 했잖아.
경진 : 근데.
민재 : 혹시 우리 학교 학생이냐?
경진 : (얼레..해서 보다가) 알아서 뭐하게.
민재 : 어..뭐 그냥.
경진 : 이민재군.
민재 : 아 질문 없었던 걸로 하자. (얼른 커피 마시는)
경진 : 아무리 자네가 나 알기를 다리 두 개밖에 없는 빈대로 알지만 그래도 나도 여자야. 여자에겐 결코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란 게 있는 법이야.
민재 : 알았어. 미안해. 실례되는 질문이었어.
경진 : 흠.. (턱을 세우더니) 미안하다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민재 : (...어이없어 웃는)
경진 : 니 주위에 로켓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없냐? 내가 자꾸 귀찮게 해도 즐겁게 가르쳐줄만한 사람으로.
민재 : (보다가) 있어. 너도 아는 사람.
S#25. 지원 경진의 방
자현이 컵라면을 꾸역꾸역 먹으며 보고 있다. 지원은 책상 앞에서 작업중.
경진이 자현의 앞에 마주 앉아서.
경진 : 너 로켓에 대해서 잘 안다면서. 우리 학교에 소문이 짜아하든데.
자현 : (먹어가며) 잘 아는 건 아니고..
경진 : 얼마나 아는데?
자현 : (겨우 삼키고) 지난 학기에 연소공학 들었고. 항공과에서 제트추진기관을 듣기도 했고.
경진 : 제트추진기관까지.
자현 : 로켓 땜에 들은 건 아냐. 이게 말이지. (또 신이 나서) 미래의 자동차에는 제트엔진이 응용되고야 말거거든.
옛날 미국 드라마에 자동차 키트라고 있잖어. 거기 제트엔진이 달려있는거야. 이렇게 피융..하고 속도를 내는 거 있잖아.
그게 현재는 로켓이나 우주선에 쓰이고 있는데..
경진 : (얼른 잘라서) 그러니까 로켓에 대해서 좀 아는거네.
자현 : 직접 만들어보진 못했지만 좀 아는 거 보단 좀 많이 알걸.
경진 : 그럼 됐어. 아아 안심이다.
침대로 가더니 털썩 뒤로 쓰러져 눕는다.
자현 : 뭐야. 뭔데 자기 혼자 얘기하고 끝이야?
지원 : (좀 전부터 돌아앉아 둘의 이야기를 듣다가) 경진이 너 이번엔 로켓에 흥미가 생긴거야?
경진 : 정확하게 로켓이 아니라 로켓을 만드는 사람에게 흥미가 있는 거지.
자현 : 그게 누군데.
경진 : (일어나 앉더니) 자현아 우선 우리나라 로켓 개발 역사부터 좀 가르쳐 줄래. 니가 아는대로. 응?
자현 : 차라리 그냥 만들라고 해. 난 가르치고 그딴 건 취미없어. (라면 먹는)
경진 : (헤헤 웃으며 목운동을 하다가 지원을 보면)
지원 : (빤히 경진을 보고 있다)
경진 : 왜?
지원 : 신기해서
경진 : 뭐가.
지원 : 니가 니 돈으로 남한테 라면 사주는 건 처음 보잖아.
경진, 입이 비죽 나와서 다시 뒤로 벌렁 눕는다.
S#26. 이교수 연구실 / 낮
경진이 부지런히 차를 한잔 만들어서 가져와 이교수 앞에 놓아준다.
경진 : 녹차 드세요. 물의 온도를 적당하게 맞춰서 맛이 좋을 겁니다.
이교수 : 고맙구나. 근데 무슨 일이니? 갑자기 찾아와서 차까지 대접해 주고.
경진 : 그게요.. (의자를 질질 끌어다 앞에 앉으며) 얘기가 좀 긴데요. 교수님 강현무라는 학생 아시지요?
이교수 : 알지.
경진 : 그 선배가 혼자서 로켓을 만드는 것도 아시지요?
이교수 : 그럼. 왜 문제가 있니?
경진 : 아이 (두손까지 저어대며)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흥미가 생겨서 그러는데요. 좀 자세히 알 수 없을까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현재 어려운 게 뭔지. 기타 등등이요.
이교수 : 가만있자. 니가 인공위성 센터에서 연구하지? 그쪽에서 뭐 필요한 일이 있는거니?
경진 : 아..뭐. 그렇다고 해두겠습니다. 하하.
이교수 : (의심스러운 듯 보다가 웃더니) 교수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곤란한 학생이지. 우선 수강과목의 반이 F였으니까.
경진 : 에구.
이교수 : 그리고 어려운 게 있어도 도무지 교수한테 상의를 해오질 않으니까.
경진 : 저런..
이교수 : 내가 알기론 그 애, 로켓 재료비 구하느라고 학기 중에도 막노동일까지 하는 모양이야.
지난 학기에는 한달이나 수업에 안들어왔드라구. 서울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하고 왔대나.
경진 : 세상에..
이교수 : 너도 알겠지만 로켓 개발이라는 건 위험한 연구야. 그런 연구일수록 여러사람이 모여서 서로 점검해주고, 다잡아주는 게
필요하지. 현대과학일수록 T자형 인간이 필요해.
경진 : T자형 인간이요?
이교수 : 한분야에서 깊게 아는 거 뿐이 아니고 넓게 주변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지.
(손으로 T를 그려보이며) 넓게.. 그리고 깊게.
경진 : 아아.. 네.
이교수 : 한우물만 파는 과학자, 주변을 보지 않고 혼자만 몰입하는 연구는 자칫 위험하게 흘러갈 수 있어. 내 말 알겠지.
경진 : 이해했습니다.
이교수 : 경진이가 로켓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현무가 연구하는데 같이 참여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까지 여러 학생한테 이 부탁을
했었는데 말야. 다 실패했거든. 경진이라면 할수 있을 거 같은데.
경진 : 제가요?
이교수 : 경진인 별로 겁나는 게 없잖아.
경진 : 제가.. 그런가요? 하하.. (어설프게 웃는)
S#27. 박교수 강의실
박교수 신이 나서 오락가락하며..
박교수 : 지난 주에 강현무군이 아주 흥미있는 제안을 했었지요? 민족주의니 과학자의 애국심이니 그런 말은 허상이다. 사기다.
(뒤쪽을 보며)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가?
학생들 분분이 뒤쪽을 돌아본다. 그 중에는 민재와 정태도 있다.
역시 가장 뒤에 앉아있던 현무가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불퉁하게.
현무 : 별로 토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박교수 : 무슨 소리야. 이건 아주 중요한 얘기에요. 난 교수로서.. (괜히 앞 학생에게) 나 교수 맞지? 하여간 교수로서 여러분에게
언제나 말하고 있어요. 열심히 연구해라. 그래서 외국에 비싼 로열티 지불하지 않게, 어서어서 우리 것을 개발하자.
그게 애국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나라를 빼버리면 어떻게 되죠? 뭐 그렇게 애쓰고 밤샐 필요없다.
우리보다 돈 많고 실력좋은 나라에서 지금 다 연구하고 있을거다. 우린 편안히 앉아있다가 나중에 편안히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되는 거 아닌가?
학생들 : (현무를 돌아보지만)
현무 : (아무 말이 없다)
박교수 : 응? 어떻게 생각해. (이번엔 학생들을 둘러본다)
민재 : (주저하다가) 과학자가 정치가나 기업가에게 이용된다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해온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결국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거 아닌가요. 과학자에겐 자기의 연구를 밀어주는 정책도 필요하고
연구비도 필요한 거니까요.
박교수 : (현무를 본다)
현무 : (여전히 책상을 내려다본 채 비웃음을 흘리고 있다)
박교수 : 강현무군. 우리에겐 아직 텔레파시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입밖에 내어 말해줘야만 서로의 생각을 알수가 있다구.
현무 : (할수없다는듯 박교수 보더니) 지난시간에 로켓 개발에 대해 말씀하셨죠?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서 우리 힘으로
로켓을 개발했다구요. 그 우수한 인재들이란게 바로 70년대의 유치과학자들입니다. 국가재건이니 자주국방이니
내세우면서 전세계에서 잘 연구하고 잘 살고 있던 이들을 다 끌어모은거죠. 그 과학자들. 모든 거 다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애국하겠다고 모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박교수 : (진지해져서) 아니 잘 몰라. 어떻게 됐지?
현무 : 국운이 걸린 사업이라고 시작해놓고, 어느날 갑자기 국익을 위해서라고 중단해버렸습니다. 그 우수한 인재들이 하루아침에
국제 떠돌이가 되버린 겁니다.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그게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애국의 결괍니다.
민재 : 저.. 말하는 의도를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나라를 위한 연구라는 건 쓸데없다는 얘긴가요? 언제 중단될지 모르기 때문에
시작도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현무 : (민재를 똑바로 보며) 나는 현실에 대해 말한 겁니다. 필요할 때는 과학기술자라고 추켜세워지다가. 정책이 바뀌거나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폐기처분이 될 수 있는 게 과학기술자의 현실이라구요. 그러니까 환상같은 건 갖지 않는 게
좋다는 얘깁니다.
민재, 납득이 안되서 찌푸려 보며 뭔가 또 한마디 하려는데. 정태가 툭툭 쳐서 말린다.
박교수 :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의견 없나? 없어?
S#28. 캠퍼스 저녁 무렵
길고 넓은 중앙로... 그래서 좀 더 외로와보이는 길을 현무가 걸어오고 있다. 언제나처럼 혼자. 주위는 보지 않고 땅만 보면서.
그 위로 들리는.
강재호 : (E) 73년 1월.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지 9개월만에 항공공업 육성계획이 만들어졌다. 74년말까지 중거리 무유도 로켓.
76년말까지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 79년 말까지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S#29. 천막 앞
현무가 걸어오고 있다. 그 위로 계속.
강재호 : (E) 우리는 모두 흥분을 감추고 있다. 우리 중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성공만 한다면 이 땅에 육이오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천막으로 들어가는 현무.
S#30. 천막 내부
들어서던 현무. 굳어서 선다.
거기 안에 현무의 노트(아버지의 일기)를 들춰보고 있던 경진이 화들짝 놀라서 도로 내려놓는다.
현무 : (후다닥 다가와 일기를 잡아채 쥐고) 뭐야.
경진 : 아 저 안녕하세요. 전 물리과 4학년 민경진이라고 하는데요. 실은..
현무 : 나가.
경진 : 예?
현무 : 나가라고. 너 도둑이야? 왜 남의 작업실에 와서 함부로 남의 물건에 손대.
경진 : (굳었다가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가며)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난 그저 내부가 지저분하길래 정리나 좀 해줄까하고..
현무 : 안 나갈래? 끌어내 줄까?
경진 : (결코 기죽지 않으며) 끌어내면 다시 들어오죠. 또 쫓아내면 또 들어오고..
현무 : 뭐야?
경진 : 내 말 끝나기 전에는 못 가겠는데요. 도둑 소리까지 들었는데 억울해서라도 그냥은 못 가죠.
현무 : (잠시 어쩔바를 몰라 보는)
S#31. 이교수 랩 / 밤
랩식구들이 다 있는 상황.
명환 여전히 신경질적으로 랩식구들을 다구치고 있다.
명환 : 집중을 해. 집중을. 허구헌날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뭐하냐. 머리속으론 딴 생각이나 하고. (만수 보며) 먹을 거나 밝히고.
그러니 무슨 진도가 나가. 정만수.
만수 : 예. 말씀하십쇼.
명환 : 너 아까부터 뭘 혼자 중얼대고 있는거야. 내 말이 같잖아?
만수 : 아닙니다. 그냥 분석을 해보고 있었슴다.
명환 : 뭔 분석. 니 머리로 무슨 분석을 해.
만수 : 너무 그러지 마십쇼. 그래도 전 선배님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명환 : 관둬. 넌 아무 것도 생각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시키는거나 좀 제대로 해. 알았어?
만수 : 아이구. 진짜 너무하시네. 아무리 형수님하고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해도 그렇지.
사내가 되서 그걸 그렇게 티내고 그럽니까? 아 인간이 살면서 실연도 당하고 파혼도 당하고 다 그렇게 사는거죠.
명환 우욱해서 보다가 그대로 만수의 뒷덜미를 끌어 문으로 밀고 나간다.
중희와 민재 등이 벌떡 일어서기는 하지만 차마 말리지는 못하고.
명환 : 너 나가. 나가서 다신 들어오지 마.
만수 : 아이구. 이거 좀 놔요. 놓구 말로 해요. 말로.
문을 막 열려는데 밖에서 이교수가 들어선다.
이교수 :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명환 할수없이 만수를 놓아주고는 옆으로 비켜선다.
명환 : 아닙니다.
이교수 : (만수와 명환 등을 둘러보고..)
아이들 : (인사를 하고)
이교수 : 니들 아직 저녁 전이지? 뭐 맛있는 거 시켜. 이번달에 보너스 나왔으니까 비싼 거 시켜도 돼.
중희 : 회식이 아니고 시켜먹는 겁니까?
이교수 : 니들 나갔다 올 시간 없잖아. 나도 그렇고. 보쌈이나 족발이나 취향대로 해. 피자도 좋고.
명환 : (침울하다가) 주문하겠습니다.
전화번호를 찾으러 책상쪽으로..
이교수 : (만수를 돌아본다)
만수 : (입이 댓발 나와서 서있다)
이교수 : 너 또 뭘 잘못했어.
만수 : 제가 하는 것 중에 잘한게 있어야 말이죠.
이교수 : (어이없어 보는) 너 반항하니?
만수 : 아닙니다.
민재, 정태 쿡쿡 웃는데.
이교수 : (E) 참 정만수 너 강현무 알지?
민재 : (이교수를 보는)
이교수 : 걔 나한테 좀 오라고 해줄래? 할말이 있는데.
만수 : 지금요? 그 녀석은 호출기같은 거 없는데.
이교수 : 지금 어디 있는지 알어?
만수 : 새로 작업실 구했다는 얘기 들었는데요.
민재 : (슬그머니 일어선다) 어딘데. 형.
S#32. 천막 내부
현무 찌푸린 얼굴로 앉아서 보고 있고. 그 앞에 경진이 두 손을 모으고 서서.
경진 : 지난 1976년 우리나라는 미국과 한가지 협정을 맺었습니다. 미국이 일부 기술을 넘겨주면서 미사일 사거리가 180킬로를
넘지 않도록 요구한거죠. 근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린 그 협정에 매여있는 겁니다.
아직도 우린, 기술이 있어도 180킬로 이상 날아가는 미사일을 만들 수가 없는 거에요. 계속할까요?
현무 : (말없이 보기만 하는)
경진 : 근데 얼마 전에 북한에서 무슨 미사일을 개발했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었던 겁니다.
현무 : (무뚝뚝하게) 작년도 북한이 개발한 건 대포동1호.
경진 : 바로 그거죠. 거기다 그거 2호 3호를 개발하고 있다면서요. 그거 사정거리는 엄청나다면서요.
현무 : 사거리 5천5백 킬로미터 이상. 대륙간 탄도 미사일 수준일거라고 하지.
경진 : 그게 개발되면 북한에서 쏘면 미국 본토에 기냥 떨어진대매요.
현무 : (좀 짜증이 나고 있다) 얘기하고 싶은 요지가 뭐야?
S#33. 천막 밖 / 밤
민재가 다가서다가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춘다. 귀를 기울이면..
경진 : (E) 난 뭐 남북한 무기 경쟁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요.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왜 우리가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궁화 위성 하나를 쏘아 올리는데 남의 나라에 돈 갖다 바치며 굽신거려야 되느냐.
그래서! 로켓 연구를 좀 해보고 싶다 이거죠.
S#34. 천막 내부
경진 : 그래서! 선배 하는 로켓 연구에 좀 끼어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왔습니다. 이상입니다.
현무 : (보다가) 우리 학교에 로켓 동아리 있잖아. 그리로 가.
말 다했다는 듯이 일어나 작업대로 가는.
경진 : 난 선배하고 같이 하고 싶은데요.
현무 : (확 짜증나서) 너 왜 그렇게 질기냐. 난 같은 말 두 번 세번하는 거 딱 질색이야. 알어?
난 무궁화 위성이고 북한 미사일이고 관심없어. 그따위 헛소리 할려거든 니 방 가서 혼자 떠들라고.
경진 : 그럼 그런 헛소리 안하면 같이 껴줄래요?
현무 : 이봐. 넌 니 자신이 꽤나 귀여운 줄 아는데 말야. 난 누구든지 내 옆에서 얼쩡대는 거 못 참아. 그러니까 나가.
제발 좀 나가달라고.
경진 : .... (다시 밝게) 알겠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안좋은 거 같으니까 내일 다시 오죠. 그럼 내일 봐요.
경진, 입구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칫. 거기 민재가 어정쩡하게 서있다.
경진 : 어라. 니가 웬일이야?
민재 : (현무에게) 강현무 선배. 이희정 교수님께서 좀 보자고 하시는 데요. 지금 랩에 계십니다.
S#35. 캠퍼스 / 밤
민재와 경진이 함께 걸어오고 있다.
경진은 뭔가 혼자 열심히 생각하고 있고. 민재는 어색하게 경진을 힐끗거리다가..
민재 : 너하고 그 선배 하는 얘기. 천막 밖에서 들리든데..
경진 : 그랬어?
민재 : 너 갑자기 로켓 연구가 하고 싶어진거야?
경진 : 아니 별로.
민재 : 근데 그게 뭐야.
경진 : 뭐가 뭐야.
민재 : 너.. 너무 저자세로 굴고 있든데. 너 그런 애 아니잖어.
경진 : 내가 그랬나.. (건성으로 대꾸하다가 멈추더니) 지금 진수 랩에 있을까?
민재 : 진수는 왜.
경진 : 그애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민재의 팔짱을 끼며) 야 같이 가자. 진수가 그래도 너는 하늘같이 모시잖아.
그러니까 니가 얘길 거들어주면 좀 쉬워질거라구. 응? 응?
민재 : (못마땅해서 본다)
S#36. 박교수 랩 / 밤
진수가 돌아본다.
진수 : 뭘해달라구요?
경진 : (말짱한 얼굴로) 스폰서. 느네 아버지 회사 무지하게 부자잖아.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과학기술자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연구비 좀 대줘.
진수 : (어이없다) 그런거라면 정식으로 회사에 프로젝트 신청을 해보는게 순서 아니에요?
민재는 저만치에서 팔짱을 끼고 둘이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 옆에서 남희도 어이없어하며 보고 있고.
경진 : 야야 빽 좀 쓰자. 빽. 친구 좋다는 게 뭐야. 부잣집 아들하고 친구하면 뭔가 황홀한 게 있어야 되잖아.
진수 : 누나하고 나하고 친구였어요?
경진 : 얘 좀 봐. 너 그렇게 섭하게 말할래. (민재를 돌아보며) 민재야. 얘가 이렇게 냉정하게 군다. 선배로서 뭐 해줄 말 없냐.
민재 : 좀 더 들어보고.
남희 : 옆에서 듣긴 그러네. 경진이 너, 니가 하는 말이 억지라는 건 알지?
경진 : 뭐가 억지에요? 진수 아버지 회사에는 돈이 넘쳐흐르고 엇다 써야 잘 쓰는 건지 모를테니까 그 정보를 주고 있는건데.
남희 : 아이구 궤변 늘어놓지 말고. 진수는 학생이야. 그 회사의 경리부장이 아니고.
경진 : 오너 아들이잖아요. 그것도 외아들.
남희 : 그럼 더 말이 안되지. 회장 아들이 돈 달라 그러면 회사에서 척척 내주면 그게 더 큰일이지.
경진 : 그러지 말고.. (진수에게) 좀 방법을 생각해봐. 그 선배는 재료비 구하느라고 막노동까지 하고 있단 말야.
작년엔 수업 빼먹고 서울에 지하철 공사장까지 갔었다구.
진수 : (일어서며) 모처럼 부탁을 하는데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남희에게) 나머지 내일 계속할게요. 오늘 밤엔 리포트 쓸 게
있어서요.
남희 : 그래 수고했어.
진수 : (민재에게) 먼저 가요.
민재 : 그래.
진수 : (나가고)
경진 : 야. 말하다 말고 가면 어뜩해. (민재에게) 넌 왜 가만있어. 도와준다고 했잖아.
민재 : 너 여러 가지로 알고 있는 게 많네.
경진 : 뭘.
민재 : 그 선배에 대해서 말야.
경진 : ...뭐 좀 그런 편이지. 왜?
민재 : 아니야.
S#37. 기숙사 외경 / 밤
정태 : (E) 안잘거야? 불 안꺼?
S#38. 정태/ 민재의 방
정태 침대의 이불을 젖히며 돌아보는 곳. 가운데에 민재가 앉아서 몇권의 책을 쌓아 놓고 보고 있다.
민재 : 먼저 자.
정태 : (다가와 책 하나를 들어 표지를 본다) 로켓?
인서트. (ROCKET PROPLUSION AND GAS DYNAMICS 라는 책이 있습니다)
정태 : 갑자기 웬 로켓이야?
민재 : (자세를 바꿔 앉더니) 너 말야.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말이지.
정태 : (허 웃어 보다가 옆에 자리잡으며) 니가 누구를? 여자를?
민재 : 가정법이야. 그렇다면 내가 그 여자를 잘 사귈 수 있게 도와주겠지?
정태 : 두말하면 잔소리지. 아예 둘이를 묶어서 한방에 넣어줄까?
민재 : 친구라면 그렇게 해줘야겠지? (생각해보는)
정태 :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민재 : 도와줘야 될 거 같은 놈이 하나 있어서 그래.
정태 : (경계해서) 누구 얘긴데?
민재 : 넌 아니니까 긴장할 거 없어.
정태 : 누가 짝사랑이라도 하고 있냐?
민재 : 그런 거 같아. 옆에서 보기 아주 안타깝다. 처절해.
정태 : 가만 있자. 니가 아는 놈은 대충 내가 다 아는데. 누구지?
민재 : 글세 나도 확 말해버리고 니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데. 그게 여자의 자존심이 어쩌구 나오면 겁나서 말야.
정태 : 에? 여자야?
민재 : ....음.
정태 : 야야 그거 조심해라. 여자 친구의 연애사에는 함부로 끼어들면 안돼. 괜히 오해산다.
민재 : 그럴까?
정태 : 그러엄. 근데 누구냐? 여자 누구?
민재 흘기고 다시 책을 보는데 정태가 책과 민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어 민재의 얼굴을 살핀다.
민재, 밀어버리며 약간의 웃음 섞인 실갱이.
S#39. 밤 천막 앞
사방에 불이 꺼져 있어서 어둑하고 음침한 분위기 속에 천막이 세워져 있다.
S#40. 천막 내부
불이 꺼진 상태에서 작은 손전등 불빛이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다. 경진이 잔뜩 긴장해서 이곳저곳을 뒤지는 중이다.
조심스럽게. 자칫 떨어뜨릴 뻔 한 것을 휴우...해서 제자리에 잘 모셔놓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돌아보는 곳.
노트북 가방 하나가 한곳에 잘 모셔져 있다.
경진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본다. 손전등으로 비춘다. 그 안에는 노트북 대신에 몇가지 연구자료들이 가득 들어있다.
뒤적이다가 옆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강재호박사의 낡은 일지다.
S#41. 학생회관 외경 / 밤
그 위로 경진의 다급한 소리.
경진 : (E) 빨리요. 예. 빨리 좀 해주세요.
S#42. 복사실
복사기 옆에서 작업을 하는 직원 옆에 붙어서서 경진 거의 발을 구르고 있다.
경진 : 이거 빨리 안해주면 나 죽어요. 제발 부탁해요. 네?
직원 전혀 미동없이 차근차근 복사를 하고 있다.
경진 : 그리고 그 노트 절대로 손상되면 안되요. 찢어지거나 접혀지거나 안그러게 조심해주세요. 네?
경진 보다가 지레 속이 터져서 밖으로 나간다.
S#43. 복사실 밖
경진 초조해서 오락가락하는데.
처장 : (E) 민경진군?
경진 돌아보면 책을 몇권 손에 든 처장이 다가오고 있다.
경진 : (꾸벅 절하며) 안녕하세요. 늦게까지 계시네요.
처장 : 책 좀 찾다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됐구만. 누구기다려요?
경진 : 아뇨. 아.. 예 복사 기다립니다. (속으로 초조한 중이라 버벅댄다)
처장 : 며칠 전에 민박사하고 통화했어요.
경진 : 우리.. 아버지하구요?
처장 : 경진군 안부를 묻더구만. 아주 활약이 대단하다고 해줬지요.
경진 : 고맙습니다.
처장 : 홍보비디오는 거의 완성되간다구요.
경진 : 예. 거의..
처장 : 그럼 기대하고 있겠어요. (가려는)
경진 : 안녕히 주무세요.
처장 : 아.. (멈추더니) 혹시 강재호 박사 알아요? 경진군 아버지하고는 아주 절친한 친구였는데.
경진 : (좀 굳더니) 압니다.
처장 : 강박사 아들도 우리 학교에 있는데 알았어요?
경진 : .... 예.
처장 : 민박사가 그 얘길 하길래. 그 학생을 한번 만나보고 아버지께 전화드려봐요. 궁금해하시더라고.
경진 : 알겠습니다.
처장 가고. 경진 고개 숙여 보내고 그리고 고개를 드는데 얼굴이 아주 굳어있다.
S#44. 박교수 강의실 앞
강의를 끝낸 학생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민재와 정태가 찌뿌드해서 몸을 펴며 나오고 있다.
정태 : 야아 삭신이 다 쑤신다. 이럴 땐 산에나 며칠 갔다 와야 되는데 이번 주말에 우리 어디 안갈래? (하며 돌아보면)
민재, 멈춰서서 한곳을 보고 있다.
거기 경진이 기다리고 섰다가 나오는 현무에게 아는척하고 다가서고 있다.
정태도 민재의 옆으로 붙으며 경진을 본다.
대사가 들리지 않을만한 거리에서 경진이 밝게 웃으며 현무에게 뭐라고 말하는 게 들리고..
현무가 귀찮은 듯 경진을 피해서 가려는 게 보인다.
경진 재빨리 현무를 막아서며 뭐라 말한다. 그러자 현무는 거의 경진을 떠밀어 제쳐버리고 가버린다.
경진 비틀해서 서더니 가는 현무를 보고 있다.
정태 : (그쪽을 보고 민재를 보고 하다가) 어이 혹시 짝사랑 어쩌구의 주인공이 경진이냐?
민재, 불쾌한 얼굴이 되서 뚜벅뚜벅 경진 쪽으로 간다.
경진, 현무가 가는 걸 보고 있다가 한숨쉬고 어깨 으쓱하고 돌아서는데 바로 앞으로 와서 서는 민재.
경진 : 어 너도 이 수업 들어?
민재 : 대충 해라.
경진 : 뭐?
민재 : 니가 그렇게 떠들어대는 여자의 자존심은 엇다가 박아둔거야? 그리고 너, 아이큐 두자리냐? 싫다는 사람한테 그렇게
매달리면 점점 더 질리지 않겠어? 그 정도 머리도 안 돌아가? 넌 작전이란 것도 없냐? 연애소설 같은 건 안 읽어봤어?
경진 어리둥절해서 민재를 본다.
민재 : 왜. 나하고 이런 말 하는 거 또 자존심 상하냐? 그럼 가서 여자친구 아무나 붙잡고 좀 물어봐. 물어보고 정신 좀 차리라고.
어? 민 경 진!
경진 어이없어 보다가 그만 허 웃는 얼굴에서....
첫댓글 현무 - 김명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