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의 항해 93.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 (2) 고대 이집트, 그리이스
10장. 이집트 문명. 자연과 정신의 대립과 혼합.
이집트 문화에 대한 헤겔의 이해는. 바로 극단적인 대립과 긴장. 불충분한 통일. 이라는 사상입니다. 이를 수수께끼의 문화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를 쉽게 알기 위해서 헤겔은 이집트 구조물인 스핑크스를 봅니다. 헤겔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고대 이집트의 무대에서 구경하는 각종의 연출 중에서 특히 마음먹고 보지 않으면 안될 하나의 상(像)은 즉 스핑크스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이며 반수반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이다. 그러나 이 스핑크스야 말로 이집트의 상징이며 그의 간판이다. 야수의 몸에서 불쑥 돋아있는 인간의 머리는. 자연적인 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시작하여. 자연적인 것을 떨어버리고. 벌써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되어 주위를 바라보고 있는 정신을 표시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정신은 아직 완전하게 그 속박을 빠져나오기 까지는 되어 있지 않다. 또 많은 이집트의 건축도. 절반은 지하에 매몰되고 절반은 공중에 돌출하고 있다.” (역사철학 강의 1권 310쪽)
1) 이집트와 나일강
최고의 문명을 자랑한 고대 이집트의 문화는 나일강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문화와 전설 종교 역시 나일강과 연관이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자연 환경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일강 삼각주는 나일강의 진흙에 의해 쌓아 올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왕들은 나일강에 운하를 건설하여 물길을 잡고 농지를 건설했습니다. 따라서 정치가 잘못되면 경작지가 많아지고 반대로 정치가 나빠지면 황무지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또한 이집트인들은 당시 최고로 현명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헤겔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들은 역시 거기서 아프리카적인 우매(愚昧) 가운데서도 합리적인 지성. 경탄할만한 예술품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315쪽)
고대 그리이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은 태양력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한달을 30일로 하고 한 해의 끝에다가 5일을 더 넣었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는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토목공사를 할 때에도 국민들이 그 일로 힘들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이스인과 로마인들이 경탄해 마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대에 한 국가가 거대한 토목공사를 하면 국민들이 지는 희생과 피해가 어마어마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을 때 얼마나 큰 희생과 고통이 있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신화와 종교 현상을 보면 위의 나일강 문화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나일강과 태양은 이집트 종교와 신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신화의 중요 캐릭터들인 오시리스(Osiris)신과 이시스(Isis)신의 행적에 대해서 헤겔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합니다.
“나일강과 태양은 인간적으로 표상(表象)된 신(神)이다. 따라서 자연의 행정과 신의 역사는 하나의 것이다. 동지에는 태양의 힘이 가장 약하다. 거기서 다음에 태양은 새로이 되살아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이 의미에서 오시리스.(태양의 신)도 역시 탄생한 것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형제이면서도 적인 사막의 열풍 티폰에 의해서 살해되고 만다. 거기서 태양의 힘과 나일강의 힘.(다 같이 오시리스)을 빼앗긴 토지의 신 이시스는 오시리스를 연모한 나머지 그의 분쇄된 뼈를 모아 그를 위헤서 슬퍼한다. 또 온 이집트도 그 여인과 더불어 오시리스의 죽음을 슬퍼하여. 헤로도투스가 마네로스(Maneros)라고 불렀던 애가를 부르며 통곡한다”. (역사철학 강의 1권 320쪽)
2) 나일강, 태양, 오리시스 신화
오시리스 신화를 통해서 헤겔은 상징과 의미라는 예술철학적인 개념을 보여줍니다. 즉 태양과 나일강이 오시리스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또 이들은 동시에 인간 생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 각각은 의미인 동시에 상징이고, 상징은 또 의미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런 상징 예술, 상징 신화와 함께 이집트에는 동물 숭배라는 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동물 숭배 역시 위의 나일강 신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활에서 유추될 수 있습니다.
“현재 이집트는 동물의 세계 안에서 내적인 것, 신비적인 것을 보고 있다. 우리들이라도 동물의 생활과 동작을 관찰할 때, 그의 본능, 그의 합목적적인 활동, 쉴새없는 움직임, 감응의 신속성, 활발성이라는 점 따위에 기묘함을 느낀다. 실제로 동물은 먹을 것을 잡는데 있어서는 실로 민첩하고 실로 교묘하기는 하나, 그런가 하면, 잠자코 모르는 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축생(畜生) 속에 무엇이 잠겨 있는가는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것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터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324쪽)
이런 동물이 가진 생명력에 대한 지식이 결국 동물 숭배로 발전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인간은 약하지만 동물은 강하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특정한 장점을 보편화시키고 여기서 힘과 희망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는 사자, 황소, 매. 고양이 등 여러 동물에 대한 숭배가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기근(飢饉)시에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도 동물을 죽이거나 그 먹이를 뺏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살아 있는 동물들의 모습에서 구원의 희망을 본 것이었습니다.
이는 동물 우상의 숭배 및 예배 의식으로 나타납니다. 헤겔은 청년기에는 이런 우상 숭배를 사회적인 면에서 고찰했는데 노년기에는 종교적인 면에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의 생산력에 대한 숭배는 급기야 남근숭배 의식으로 발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헤겔은 이집트의 남근숭배의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그런데 이 점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단순한 생명의 숭배이상으로 점진되어 생산적 자연이 가지는 일반적인 생명력의 숭배가. 팔루스(음경)의 예배라는 방식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팔루스의 예배를 그리이스인은 또 디오니소스의 예배에 도입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디오니소스의 예배에는 일대 음란이 결부되어 있다. (역사철학 강의 1권 325쪽)
동물들의 강력한 힘을 숭상한 이집트인들은 이번에는 각종의 기형적인,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같은 조각 형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스핑크스 형상에서 보듯이 이집트의 조상들은 단일한 자연의 종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 다른 종들을 부분적으로 짜 맞춘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처녀의 목을 가진 사자의 몸, 수염이 있는 남자 스핑크스 등이 있습니다. 인간의 자태는 동물의 얼굴로 되어서 불구가 되어 있습니다. 또 이시스 신은 소의 뿔을 단 사자의 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형적인 이집트의 갖가지 우상들에 대한 헤겔의 설명은. 인간의 모습 부분은 정신을 나타내고 동물의 부분은 자연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연과 정신이 쥐죽 박죽 혼합되어 있는 것이 이집트의 기형적인 우상들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신이란 이성 혹은 로고스입니다. 혹은 사유의 원리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이 이성. 로고스를 가진 동물임을 최초로 밝혔고 파르메니데스는 인간의 사유 기능을 인간의 본질로 보았습니다. 이런 사유와 이성의 원리가 이집트에서 불완전하게나마 이제 출현되고 있다는 것이 헤겔의 이집트 우상 예술에 대한 해석입니다.
3) 사자(死者)의 나라
이집트는 거대한 건축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리이스와 로마에도 거대한 건축물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리이스와 로마의 건축물들 예를 들어서 아폴론 신전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등은 모두 인간의 생활. 즉 예배나 스포츠 혹은 공연 등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이집트의 거대한 구조물(피라미드)이나 분묘 그리고 동굴들이 모두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는데 대해서 헤겔은 주목합니다. 그래서 헤겔은 고대 이집트를 죽은 자들의 나라 라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헤겔은 말합니다. : “이 사자의 나라가 이집트인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가라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것에 의해서, 이집트인이 인간에 관하여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가라는 것이 알려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은 사람 안에 있어서 일체의 우연성이 벗겨진, 참으로 그의 본질적인 면으로 보여진 인간을 보기 때문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328쪽)
영혼의 불멸
이런 죽은 자들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존경은. 그들이 영혼의 존재, 즉 신체와 분리되는 어떤 실체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집트인들은 영혼의 불멸을 믿었기에 엄청난 건축물과 토목공사를 죽은 자들을 위해서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더라도 그 영혼은 죽지 않는다. 영혼은 일시적으로 육체를 떠나는 것이 죽음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다시 그 영혼이 육체로 돌아 온다. 그래서 그들은 혹시나 영혼이 자신이 살았던 육체를 가능한 그대로 보존하여 한번 떠난 영혼이 다시 몸으로 돌아오기를 바람에서 미이라를 만들었습니다. 만약 죽은 후에 신체가 너무 변해 있으면 영혼이 자신의 짝이었던 신체를 찾지 못할까봐 그렇게 시신이 썩지 않도록 처리하여 미이라를 만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헤겔은 헤로도투스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그것은 바로 이집트인이 인간의 영혼은 불멸이라고 말한. 최초의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혼이 불멸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자연과는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것. 정신이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 (역사철학 강의 1권328쪽)
정신의 불멸 혹은 영혼의 불멸 사상이 가지는 철학적인 의미를 헤겔은 이렇게 풀이합니다. “정신이 불멸이라고 하는 관념은 인간의 개성이 그 안에 무한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다. 단순한 자연물은 제각기 한계를 가지는 것고 , 반드시 타자에 의존하고, 자기의 존재를 타자 안에 가지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정신이 그 자신에 있어서 무한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불멸이라는 것에 의해서 표현된다.” (역사철학 강의 1권 328쪽)
이집트의 한 승려는 그리이스 인은 영원한 아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헤겔은 “이집트인들이야 말로 속에 여러 가지의 욕망을 품은 원기왕성한 아이”라고 한다. 위에서 말한 정신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추론할 수 있다. 즉 헤겔의 관점에서는 이집트의 예술과 신화는 물질과 자연으로부터 정신 혹은 영혼의 탄생이라는 관념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혼의 불멸 관념이 중요하다.
이런 영혼 불멸의 사상은 이집트의 사이스(Sais)에 있는 여신 네이트의 신전의 유명한 비명(碑銘)을 그 증거로 볼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나는 현재 있는 바의 것이고, 과거 있었던 바의 것이고, 또 장래 있을 바의 것이다. 아무도 나의 베일을 벗긴 자는 없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역사철학 강의 1권340쪽)
헤겔은 영혼 불멸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단순한 개인의 영혼의 불멸을 넘어선다고 합니다. 즉 헤겔의 관념론은 개별적인 영혼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영혼 내지 정신을 지향합니다. 이는 또한 신(神)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요한복음 4장 24절). 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11. 고대 그리이스 문명의 본질 : 육체와 정신의 결합
청년 시절 헤겔은 고대 그리이스 문명을 최고의 것으로 찬양했었다. 그는 기독교를 귄위주의 정신으로 비판하고 그 대신 그리이스 문화를 자유로운 정신으로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성숙기의 헤겔은 이를 다시 역전 시킵니다. 그리이스의 문명이 기독교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논리가 아주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정치 (real politic)의 무게를 인식한 헤겔은 현실과의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헤겔은 그리이스의 세계를 청년기에 비유합니다. 이는 이집트를 유아시절에 비유한 것과 조화를 이룹니다. 이집트의 문화를 헤겔은 자연에서 정신이 막 출현하는 상태로 본 바있었습니다. 이는 동물의 몸에 사람의 얼굴이 붙은 스핑크스 상에서 나타납니다.
이에 비해서 그리이스의 문명은 육체와 정신의 결합으로 봅니다. 즉 “육체화된 정신이고 정신화된 감성이라고” 합니다. (역사철학 강의 1권346쪽)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헤겔이 보는 최고의 정신은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에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정신이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의문이 있지만 어쨌든 이것이 헤겔 역사철학의 기본 프레임입니다.
1) 지리적 요소와 민족성
대개의 그리이스 문명에 대한 서술들이 그렇듯이. 헤겔도 그리이스의 인본주의와 민주주의 문화를 그 지리적 특성과 연결을 짓습니다. “그리이스의 국토에는 많은 산, 좁은 평지, 작은 협곡. 많은 하천이 발견된다. 거기에는 큰 하천도 없을 뿐더러 협곡, 평야 일색인 것도 아니고. 토지는 산과 강에 의해서 각종의 형태로 형성되어 있어. 단일한 큰 모양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자연의 위력은 여기에서는 볼 수 없다.” 라고 합니다. (역사철학 강의 1권347쪽)
이런 지리적 토대 위에서 그리이스 민족은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로 성장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리이스인의 국민적 통일의 당초에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현상은 일반적으로 이분자의 할거, 서로가 남남인 끼리들이 잡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이 남남끼리라고 하는 관계의 현상과 그 극복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로소 아름답고 자유로운 그리이스 정신이 탄생한 것이었다” 라고 합니다. (역사철학 강의 1권349쪽)
이렇게 인종과 언어는 같지만 정치적인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해안가와 좁은 협곡과 산지에 흩어져 살던 그리이스 민족은 쉽게 어느 곳에 정착하지 못하여 이리 저리 방황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요, 불안하며 또 약탈 및 해적질을 하면서 살아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해적이라는 것은 그렇게 치욕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의 고고학적인 발전은 헤겔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헤겔이 보는 그리이스 문화가 오늘날에도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 고고학을 참고 하면서 헤겔의 역사를 보면 좋습니다.
헤겔의 시대에는 그리이스가 통합된 계기를 이렇게 봅니다. “암피크티온도 역시 헬라스(Hellas, 그리이스)의 건설자의 한 사람으로 헤아려진다. 그는 테르모필레(Thermopyla)에 헬라스 본토와 텟살리아(Thessalia)와의 소종족들 사이의 동맹. 인보동맹(鄰保同盟)을 만들었다고 일컬어지고 그것이 근원이 되어 대암피크티온동맹이 되었다고 한다”(역사철학 강의 1권355쪽)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를 번역한 김종호씨의 역주에 의하면 암피크티온 동맹은 인보동맹(鄰保同盟)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이스에서 상이한 많은 종족들이 일정한 신을 공동으로 모시도록 하자고 맺은 동맹이다. 그 신의 제일(祭日)을 정하여 그 날에 그 신전에 서로 모여, 공통적인 사건이나 사무에 관하여 서로 협의를 하고. 또 동맹원들간의 불화나 분쟁사를 조정하고 처리하였다 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이스가 이런 남남끼리의 느슨한 통합 상태에서 단일한 통합으로 이행하는 과정에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시대의 획을 긋는 민족의 대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통해서 민족의 정체성을 구축하게 됩니다. 특히 일리아드의 주인공인 영웅 아킬레우스는 그리이스 민족의 지도 이념이 되었다고 헤겔은 해석합니다.
“온 그리이스는 거족적으로 트로이전쟁이라고 하는 일대 국민적 사업으로 향해서 단결하게 되었다. 또 여기에 그리이스인에 대해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저 아시아와의 깊은 관계가 열린 것이다. (...) 이와같이 온 그리이스가 연합하여 원정을 기도하게 된 사건의 원인으로서는 한 사람의 아시아인 왕자 파리스가 손님이 되어 환대받고 있었던 왕가의 주인공 스파르타 왕 메네라오스의 처 헬레네(Helene)를 유괴해 가버림으로써 주인의 호의를 배반한 것에 있었다고 되어 있다. 아가멤논은 그가 가지는 권력과 신망에 의해서 그리이스의 국왕들을 집합시켰다.” (...) 그러나 시인 호메로스는 그리이스 민족의 관념 앞에 그 청춘과 그 정신의 영원한 상(像)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인간의 영웅적인 상은. 그로부터 그리이스 민족의 온 발전과 온 문화의 지도 이념으로서. 언제든지 그 눈 앞에 계시된 것이었다.“ (역사철학 강의 1권357쪽)
2) 그리이스인들의 자연과 정신
위에서 헤겔은 그리이스의 지리와 정치의 관련을 말했습니다. 이와 연관되어 이제 헤겔은 자연과 정신의 문제를 거론합니다. 이는 주로 신화의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헤겔은 신화에는 근본적으로 자연 개념이 깔려 있다고 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연의 일부이고 또 우리의 생존 역시 자연으로부터 공급을 받으니까요. 그런데 이와 관련된 신의 모습이 그리이스와 아시아적인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이스적인 자연은 일반화된 모습이 아니라 개별화된 모습에서 표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에페소스의 디아나. 시리아의 키벨레와 아스타르테와 같은 일반적인 표상은. 어디까지나 아시아적인 것으로 보여져서. 그리이스에는 수입되지 않았다” 라고 합니다. 이들 아시아 계통의 신들은 자연과 생산력 혹은 풍요 등을 상징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이스인들은 자연의 생산력을 주술적으로 숭배하지 않았고 대신 자연의 의미를 내면적으로 물으면서 그 의미를 경청하고 자연을 감독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은 경이(驚異)에서 시작한다고 했는데 그리이스 인들의 자연관 역시 이 경이(驚異)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리이스의 정신은 자연을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만큼 둔감하지는 아니하였다. 그 반대로 그것은 자연이 정신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인연도 없고. 외적인 것이지만 원래는 정신에 친밀한 것이고. 정신이 그것에 적극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무엇을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는 예감적 신뢰와 신념을 가지고. 자연에 대하는 것이다. 이 경이와 감동이야말로 그 근본적인 카테고리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366쪽)
헤겔이 자연에 대한 예감 운운 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그리이스 신화의 중요한 요소인 예견 혹은 해석의 문제입니다. 이를 흔히 만티스(Mantis)라고 합니다. 예언자(Prophet)라고 번역하기도 하는 만티스의 존재는 그리이스 신화의 한 특징입니다. 이는 또 신탁(Oracle)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이는 각종 신전의 신탁을 말하기도 하고 아니면 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해석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자연이나 자연변화의 해석과 설명, 그 속에 있는 의미와 의미의 지적. 이것은 주관적인 정신의 활동인 것인데, 그리이스인은 이것에 만테이아(Manteia)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 플라톤은 이것을 꿈이나 병들었을 때 빠지는 정신착란과의 관계에서 설명하여, 이 꿈이나 정신착란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해석자 즉 만티스(Mantis)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티마니오스 717)” (역사철학 강의 1권367쪽)
자연에 대한 주관적인 이해의 다른 예는 흔히 숲의 신이라고 부르는 판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목축과 수렵의 신이며 동시에 수렵인의 음악을 관장한다. 판은 또 숲에서 느끼는 이유없는 공포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헤겔은 판의 두가지 의미를 분석합니다. “한 면에서 말하면 그것은 막막한 것인 자기를 사람들의 귀에 듣게 해주는 것이지만, 그러나 딴 면에서 말하면 그 들리는 바. 바로 그것이야 말로 듣는 사람의 주관적인 상상과 설명인 것이다”. (같은 곳)
이처럼 그리이스 신화는 전달과 해석 그리고 파송 혹은 사자(使者) 등의 해석학적 관념이 신의 형상을 띠고 나타난다. 극히 이례적인 신화입니다. 이런 면에서 자연의 생산력이나 동물 등의 민첩성 혹은 용맹을 숭배하던 아시아, 아프리카 계열의 신화와는 많이 다릅니다.
이런 면에서 헤겔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 “그리이스정신은 자연에서 출발하지만 자연을 정신 자체에 의해서 세워진 존재로 바꾼다. 그러므로 정신은 아직 절대적으로 자유인 것은 아니고, 아직 완전히 자기 자신을 근원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인 것도 아니다. 그리이스 정신은 호기심과 경이에서 출발하여, 점차적으로 의미의 정립으로 나아간다.” (역사철학 강의 1권370쪽)
이런 측면에서 헤겔은 위대한 그리스의 조각 예술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우선 그는 이집트의 조각 예술을 먼저 거론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집트는 자연과 정신의 불완전한 결합이었습니다. 정신이란 불멸의 영혼이며 자립적인 존재입니다. 이집트에서 영혼 불멸의 관념이 역사상 처음으로 나왔지만 아직 그것은 유한한 존재 즉 자연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헤겔의 해석에 의하면 이집트 조각상에서 인간과 동물의 합성으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정신을 표상하고 동물은 자연을 표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헤겔은 이집트의 예술을 자연과 정신의 전투라고 표현합니다.
이에 비해서 그리이스의 조각은 자연을 이용하여 정신을 표현합니다. 정신의 독립성과 자유성이 자연 안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소외(疏外)와 외화(外化) 등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외화 역시 이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정신이 자신을 물질로 만드는 것을 외화(外化)라고 합니다. 예술은 정신의 소외 혹은 외화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이집트의 정신도 또한 소재의 가공자였지만 그러나 거기에서는 아직 자연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과 격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자연적인 것은 아직 독립을 유지하여 스핑크스의 신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형상의 중요한 일면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리이스의 미에 있어서는 감성적인 것은 다만 정신이 자기를 계시하기 위해서의 기호. 표현. 덮개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하나 더 여기에 덧붙여 두어야만 할 것은 그리이스 정신은 이와같은 사물을 바꿔 만드는 조각가라는 바로 그 까닭으로, 그 작품 안에서 자기를 자유로운 것으로서 의식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말인즉 정신은 이들 작품의 창조자이며, 따라서 그 작품은 이른바 인공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371쪽)
헤겔의 관점에서는 예술의 창조는 정신 혹은 영혼의 활동과 직결됩니다. 관년론적인 기반위에서는 정신이 물질보다 더 실재적(real)합니다. 개별적인 정신 곧 인간의 정신은 세계정신 내지 절대정신의 한 부분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리이스의 미학적인 예술은 인간과 신이 만나는 장소가 됩니다. 이를 미학적 플라톤주의 라고도 합니다. 청년기에 헤겔과 그의 친구들. 즉 셸링과 횔덜린 등은 쉴러의 영향하에서 그리이스 문학과 예술에 경도된 바 있었습니다. 특히 횔덜린은 아름다운 것을 신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소설 히페리온에서 횔덜린은 “인간이 인간이 된다면, 그는 신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신의 하나라면 그는 아름다운 존재일 것입니다” 라고 서술합니다. 신과 인간이 미(美) 안에서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인간적인 것의 영예는 신적인 것의 영예와 얽혀 있다. 인간은 신적인 것을 그 자체로서 존경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자기의 사업, 자기의 소산(所産), 자기의 존재를 존경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 의미에서 신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의 영예를 매개로 해서 그 영예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이스적 성격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미적 개성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372쪽)
여기서 헤겔은 그리이스 미술을 상당히 기독교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이 하는 일이나 사업이 단순히 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신적인 것입니다. 이는 루터의 직업소명설을 상기시킵니다. 종교 개혁가들 즉 루터와 칼빈은 모두 직업 소명설을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직업이란 신이 인간을 부르는 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직업은 독일어로 Beruf 즉 소명(召命)입니다. 영어로는 calling 라고 역시 신이 우리를 부른다, 명(命)을 내린다 곧 소명의 뜻입니다.
이런 신적 소명으로서의 활동은 또한 인간의 개성을 이룹니다. 예술 작품에서도 그리이스적인 것은 어느 하나라도 획일화되지 않고 하나 하나 모두 다릅니다. 즉 그리이스 예술은 개성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리이스의 조각이나 그림이나 신화의 캐릭터들은 주술적인 상징성을 넘어서서 인간과 그 정신이 표현되고 더 나아가서 이들이 신을 나타내기 때문에 인간의 영예와 신의 영예가 작품 안에서 하나가 된다고 헤겔은 서술했습니다.
3) 제우스 족과 거인족의 싸움
이는 그리이스 신화의 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거인들과 신들의 싸움을 철학적으로 처음 언급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소피스트”에서 이를 처음 언급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神)족과 거인(巨人)족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신족(神族)이란 거기서 관념론을 의미하고 거인족이란 유물론을 의미합니다. 이를 헤겔은 정신과 자연에 대한 비유로 사용합니다. 자연을 정신이 극복한다고 하는 사실을 헤겔은 제우스 족이 거인족을 몰락시킨다는 신화에 적용합니다. 이는 동시에 동양정신에서 서양정신으로의 추이를 말합니다.
“그 말인즉 거인족은 자연적인 것, 자연존재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그 자연적인 것의 지배력이 이제야 박탈되기 때문이다. 물론 거인족은 그 뒤에도 여전히 숭배되지만, 벌써 통치자, 지배자로서 숭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인족은 지구의 변두리로 추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인족은 우라노스(Uranos. 하늘), 게아(Gea. 땅), 오케아노스(Okeanos. 바다), 셀레네(Selene. 달), 헬리오스(Helios. 해) 등의 자연력이다. 크로노스(Kronos)는 추상적인 시간의 지배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는 자식을 먹어버린다. 거기서 이 야만적인 생식력이 억제당하게 되어, 여기에 정신적인 의미를 가지고 그 자신의 정신인 신들의 두목으로서 제우스가 등장한다. (역사철학 강의 1권381쪽)
헤겔은 거인족과 신족의 싸움을 자연과 정신의 싸움으로 해석한 뒤 이번에는 같은 신 내에서도 이런 의미의 변화를 찾아 냅니다. 즉 제우스는 번개와 구름의 신인데 동시에 정치의 신이고 도덕과 우애의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포세이돈은 자연력(바다)의 신이자
성벽을 구축하고 말을 창조한 신이다 라고 합니다.
“헬리오스는 자연요소로서의 태양이다. 그러나 이 빛은 정신적인 것과의 유비(類比)에서 자의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게끔 변용되어서 아폴론이 헬리오스에서 나온다. (...) 이 의미에서 아폴론은 예언자이고, 지자이고 일체를 조명하는 빛이다. 그 위에 또 그는 병을 고쳐주는 자이고, 원기를 돋아주는 자인 동시에 또 파멸시키는 자이기도 하다. 그 말인즉, 그는 인간들을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속죄자이고, 순화의 신이기도 하며. 이를테면 가혹하고 염격한 재판을 하는 고대의 명부의 신 에우메니데스를 유화시킨다.” (역사철학 강의 1권382쪽)
여기에서 보면 아폴론의 역할이 거의 기독교의 신과 비슷합니다. 그는 병을 고쳐주는 자이고, 속죄자이고. 중보자이고 동시에 죽이는 자입니다. 그는 인간이며 신인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이런 그리이스의 신들은 전능자는 아니고 각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결국 이들은 운명과 필연성이라는 한계에 부딛힙니다. 이 운명은 정신과 자유와 대립됩니다. 운명의 신은 모이라 혹은 모이라이 라고 하는데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 (Moirai)입니다. 이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운명을 관장하는 세 명의 여신들입니다.
이들이 정하는 운명은 절대적이어서 제우스조차 이들이 정한 죽음은 바꾸지 못하며, 그렇기에 신들조차도 모이라이가 정한 운명은 거스를 수가 없었던, 사실상 그리스 로마 신화 세계관 내에서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유일무이하게 제우스의 영향권 밖에 있는 대단히 독보적인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나무위키)
4) 그리이스 신들과 그리스도교 신의 상봉(相逢)
헤겔에 의하면 그리이스의 신들보다 그리스도교의 신이 더 인간적이라고 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도라면 금방 수긍을 하겠지만 일반적 이성의 관점에서는 쉽게 납득이 안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는(예수)는 살고, 죽어 십자가에 위의 죽음을 수행했었는데. 이것은 그리이스적인 미적 인간보다도 훨씬 인간적이다. 그런데 첫째 그리이스의 종교와 그리스도교의 공통점에 관해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양자 다같이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만일 신이 그의 모습을 이 세계에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자연성은 정신의 자연성이라는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고 . 그것은 감성적 표상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인간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이외의 어떠한 형태도 정신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389쪽)
신(神) 외에는 인간만이 사고하는 이성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헤겔은 “인간 이외의 어떠한 형태도 정신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진술했습니다.
더욱이 기독교의 경전에 의하면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하니 우리는 헤겔의 말에 신빙성을 둘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을 자연물로 표상하는 각종의 종교나 신화는 통찰력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헤겔은 한 발자국 더 나아 갑니다. 신이 꼭 자연으로. -물론 여기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필연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에서는 신은 결코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시(可視)적으로 나타나는 신(神)을 흔히 우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10계명에는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합니다. 즉 그 제2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런 유대교의 원칙에서 보면 사람으로 온 신의 아들 예수의 관념은 잘못입니다.
헤겔은 이 문제에 대해서 교리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에 의해서 이를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즉 “그러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신은 어떻게 해서도 그 모습을 나타내서 현상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라고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그렇다 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상으로 되지 않는 것은 본질적인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역사철학 강의 1권389쪽)
여기서 헤겔은 본질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거론합니다. 즉 “본질은 필연적으로 현현(顯顯)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헤겔은 “현상으로 되지 않는 것은 본질적인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종교란 정신의 나타남. 곧 현현(顯顯)입니다. 그런대 이런 정신의 나타남으로서의 종교 개념에 있어서 그리이스 종교와 그리스도 종교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즉 그리이스 종교는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남이 끝인데 비해서 그리스도 종교는 그런 나타남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 죽은 뒤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부활 사건을 말합니다.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그리이스 종교보다 높은 단계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를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는 현상으로 된다는 것은 신적인 것의 한 계기에 지나지 않는데 대해서, 그리이스 종교에 있어서는 현상으로 된다는 것은 최고의 존재방식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신적인 것의 전체를 이룬다고 하는 점에 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는 숭상하는 신은 이 현실에서 죽어, 자기를 영광으로까지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는 육체의 죽음을 한 뒤에 비로소 신의 오른쪽에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된다. 이에 반해서 그리이스의 신은 그리이스인들에게는 현상 안에 언제까지나 있는 것이며. 다만 대리석이든가, 금속이든가, 나무 안에 존재하는 것이고. 혹은 관념 안에 상상의 상(像)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390쪽)
이런 면에서 헤겔은 그리스도교의 성육신 혹은 화육(化肉)의 교리를 무척 중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성육신 (成肉身 incarnation)이란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다. (요1:1) 라는 사상입니다.
헤겔은 자기의 사상에 근거하여 성육신 사건을 자유 개념으로 풀이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헤겔은 정신의 본질을 자유로 파악한 바 있습니다. 또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서 자유 개념을 타자 속에 머무름 이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타자란 물질과 자연을 뜻합니다. 신의 개념이 육체 안에 머무르는 것 곧 성육신의 개념이 정신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여 정신의 현현 현상을 여러 종교와 철학 등을 통해서 설명한 헤겔은 그리이스의 아름다운 신 관념에서 기독교의 고난받는 신의 관념으로 이행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고 다시 그 육신이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영광을 받는 사건에서 헤겔은 유한과 무한의 합일 이라는 관념에 도달합니다.
“자유로운 사상이 외적인 존재를 사유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외적 존재의 형태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사상은 여기에서 유한과 무한의 합일을 사유하고. 이것을 우연적인 합일로서가 아니고. 절대자, 즉 영원한 이념 그자체로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주관성의 참다운 깊이는 아직 그리이스 정신에서는 파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이스 정신 안에는 아직 참다운 유화는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정신은 아직 절대적으로 시인되는 것으로는 되어 있지 않다. 이 결함은 신들 위에 순수한 주관성으로서 운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역사철학 강의 1권390쪽)
헤겔은 예수 안에서의 신인합일(神人合一)을 절대자 라고 표상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절대적으로 시인된다 혹은 인정된다는 것은 결국 내가 하는 사고와 생각이 신의 뜻에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나의 생각이나 계획이 단순한 나의 생각일 뿐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계획과 부합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표상의 체계 내에서는 우연이나 운명이 없습니다. 이런 관념을 아직 가지지 못한 그리이스적인 사유는 잘 나가다가도 결국 운명이나 우연에 부딪힙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운명의 여신들은 그리이스 모든 신들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운명의 신은 모이라 혹은 모이라이 라고 하는데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 (Moirai)입니다. 이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운명을 관장하는 세 명의 여신들입니다. 이들이 정하는 운명은 절대적이어서 제우스조차 이들이 정한 죽음은 바꾸지 못하며, 그렇기에 신들조차도 모이라이가 정한 운명은 거스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육신 안에서의 합일을 통해서 유한하고 우연적인 존재는 무한하고 필연적인 존재와 만납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운명과의 화해(reconciliation)입니다. “헤겔 역사철학 강의” 번역본 안에서 “유화”(宥和)라고 번역한 관념입니다.
단 헤겔의 기독교 해석에 있어서 전통적인 교리와 다른 점은 이른바 십자가의 대속(代贖), 죄의 용서 같은 요소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믿음의 강조도 없습니다. 유화 혹은 화해 개념도 전통적인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인데 이런 부분은 헤겔의 기독교 관념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5) 그리이스 민주주의에 대한 헤겔의 평가
헤겔의 그리이스 민주정치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입니다. 이 역시 당시의 독일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프러이센 같은 전근대적인 군주국에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 바로 투옥됩니다. 민주주의의 전단계인 공화주의 조차도 제대로 부르짖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로 언론의 자유가 억압당했습니다. 우선 헤겔은 계몽주의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를 가져와서 그리이스 민주정치를 옹호합니다. 이는 그가 현실을 도외시하고 가장 바람직한 정치제도로 민주주의를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민주정치의 가장 중요한 계기는 인륜적인 절조에 있다. 덕(德)이 민주정치의 기초라고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을 보통 사람들이 민주정치에 대해서 품고있는 견해에 관련지워 볼 때, 대단히 중요한 동시에 또 진리이다. 원래 이 정체에 있어서는 개인에 대해서 본질적인 것은 정의의 실체 국가의 번영, 국민 일반의 복지에 있다.” (역사철학 강의 1권394쪽)
그런데 플라톤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쉽게 중우정치나 금권정치로 타락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헤겔은 그리이스의 민주정치에 대해서 비판적입니다. 이를 헤겔은 “주관적인 자유야 말로 그리이스에 대해서는 타락일 뿐이었다”. 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헤겔은 그리이스인들의 단순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은 헤겔의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수 있으나 어쨌든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요컨대 그들을 지배한 것은. 지나친 반성을 가지는 일 없이 오직 조국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습관이었다. 우리들의 오성에 대해서는 본질적인 것인 국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추상체는 그들의 아는 바가 아니었다. 그들에 있어서 목적은 살아있는 조국이며, 이 실제의 아테네고 스파르타이며, 또 자기의 신전이고 자기의 제단이고, 자기의 사회생활의 형식이고, 동료시민의 융합이면서 제각기 풍속과 습관이었다.” (역사철학 강의 1권396쪽)
위의 헤겔의 말이 문제인 것은, 그리이스인들의 오류가 그들이 오성적이고 추상적인 국가의 관념이 없었다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도의 국가관념은 헤겔의 시대나 아니 우리의 시대라고 해도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리이스인들의 애국심과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후대인들이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애국심을 헤겔이 비판한 것은 역시 현실 정치의 반영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수십개의 영방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애국심 운운하면
현실 정치의 견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의 지식인들 예를 들어 괴테 같은 사람도
독일 통일이나 독일 국가 같은 이상은 가볍게 여겼습니다.
청년기의 헤겔은 애국심과 민족 국가의 이념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독일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라는 사실에 절망을 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년기의 헤겔은 그의 선배들과 같이 현실을 인정하고 분열된 영방 군주국의, 예를 들면 프로이센,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헤겔의 그리이스 민주주의 평가에 있어서 또한 중요한 것은 이들 민주주의가 도시 국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세째로 주의할 점은 이와 같은 민주정체가 작은 국가에 있어서만 가능하다는 것, 즉 도시의 테두리를 거의 넘는 일이 없는 국가에 있어서만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403쪽)
이런 면에서 헤겔은 프랑스 혁명기의 공화정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큰 국가에 있어서도 프랑스의 국민회의 경우처럼 인민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각 지방마다 투표를 행하여 그 결과를 산정한다고 하는 방법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계적인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 그러므로 프랑스 혁명에 있어서는 공화정치는 민주정치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폭정과 전제주의가 자유와 평등의 가면 밑에 창궐하고 있었다.“ (역사철학 강의 1권40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