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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까워지면 하루빨리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삽과 괭이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너무 욕심을 내다보면 골병이 들고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는...기대에 못미치는 하찮은 수확량에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마냥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나의 농사 체질(?) 때문일까? 아니면 농시일을 하는 순간 만큼은 그 누구로로부터도 간섭 받지않는 진정한 자유스러움을 느끼는 때문일 것이라는...ㅋㅋ
분위기를 돋울 겸하여 농가월령가를 옮겨다 보았다. 농가월령가는 조선 헌종때 정학유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각각의 월령과 절후에 따른 농사 일과 세시풍속을 노래한 것이라 하니 시간을 내어 그 의미를 알아두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젠 정말 봄이 다가오고 있다. 정녕 기다렸던...
농가월령가
천지 조판(肇判)하매 일월성진(日月星辰) 비최거다
일월은 도수(度數)있고 성진은 역차(逆次)있어
일년 삼백육십일에 제 도수 돌아오매
동지 하지 춘추분은 일행(日行)을 추측하고
상현하현망회삭은 월륜(月輪)의 영휴(盈虧)로다
대지상 동서남북 곳을 따라 틀리기로
북극을 보람하여 원근을 마련하니
이십사 절후(節候)를 십이삭에 분별하여
매삭에 두 절후가 일망(一望)이 사이로다
춘하추동 내왕(來往)하여 자영(自營)의 성세(成歲)하니
요순같은 착한 임금 역법(曆法)을 창계(創開)하사
천시(天時)를 밝혀내어 만민을 맡기시니
하우시 오백년은 인월(寅月)로 세수(歲 ?)하고
주나라 팔백년은 자월(子月)로 신정(新正)이라
당금(當今)에 쓰는 역법 하우씨와 한 법이라
한서온량(寒暑溫凉) 기후차례 사시에 맞갖으니
공부자의 취하심이 하령(夏令)을 행하도다
<정월령>
정월은 맹춘(孟春)이라 빙설우수(氷雪雨水) 절기로다
산중 간학(澗壑)에 빙설은 남았으나
평교(平郊) 광야에 운물이 변하도다
어와! 우리성상 애민중농(愛民重農) 하오시니
간측(懇惻)하신 권농륜 음방곡에 반포하니
술프다! 농부들아! 아무리 무지한들
네 몸 이해고사하고 성의를 어길소냐
산전 수답 상반(相伴)하여 힘대로 하오리라
일년 풍흉은 측량하지 못하여도
인력이 양진(揚塵)하면 천재(天災)를 면하나니
제 각각 근면하여 게을리 굴지마라
일년지계(一年之計)니 재춘하니 범사(凡事)를 미리 하라
봄에 만일 실시하면 종년(終年) 일이 낭패돠네
농기를 다스리고 농우(農牛)를 살펴 먹여
재거름 재워놓고 일변으로 실어내어
맥전(麥田)에 오줌치기 세전(稅錢)보다 힘써 하라
늙은이 근력(筋力)없어 힘든 일은 못하여도
낮이면 이엉 엮고 밤이면 새끼 꼬아
때마쳐 집 이으면 큰 근심 덜리로다
실과 나무 버곳 깍고 가지 사이 돌 끼우기
정조(正朝) 날 미명시에 시험조로 하여보라
며느리 잊지 말고 소국주(小麴酒) 밑하여라
삼춘 백화(百花)시에 화전(花煎) 알취하여 보자
상원(上元)날 달을 보아 수한(壽限)을 안다 하니
노농(老農)의 징험이라 대강은 짐작나니
정조에 세배(歲拜)함은 돈후(敦厚)한 풍속이다
새 의복 떨쳐 입고 친척 인리(隣里) 서로 찿아
노소 남녀 아동까지 삼삼오오 다닐적에
와삭 버석 울긋 불긋 물색(物色)이 번화하다
사내아이 연 띄우고 계집아이 널 뛰기요
윷놀아 내기하기 소년들 놀이로다
사당에 세알(歲謁)하니 병탕(餠湯.떡국)에 주과(酒果)로다
엄파와 미나리를 두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신하여 오신채(五辛菜)를 부러하랴
보름날 약밥 제도 신라적 풍속이라
묵은 산채(山菜) 삶아내니 육미(肉味)을 바꿀소냐?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름 삭는 생률(生栗)이라
먼저 불러 더위팔기 달맞이 횃불 혀기
흘러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이월령>
이월은 중춘(仲春)이라 경칩(驚蟄) 춘분 절기로다
초육일 좀생이는 풍흉(豊兇)을 안다하며
스므날 음청(陰晴)으로 대강은 짐작나니
반갑다 봄바람이 의구히 문을여니
말랐던 풀 뿌리는 속잎이 맹동(孟冬)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 비둘기 소리나니 버들빛 새로와라
보장기 차려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살진밭 가리어서 춘모를 많이 갈고
면화 밭 되어두고 제 때를 기다리소
달뱃모와 잇 심으기 이를쑤록 좋으니라
원림을 장점하니 생리(生利)를 결(結)하도다
일분(一分)은 과목(果木)이요 이분은 뽕나무라
뿌리를 상히 말고 비오는 날 심으리라
솔가지 찍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색단도 수축하고 개도 천쳐 올리소
안팎에 쌓인 검불 정쇄히 쓸어내어
불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련니
육축(六畜)은 못다하나 우마개견(牛馬犬) 기르리라
씨암탉 두세마리 알안겨 깨어보자
산채(山菜)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달래 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낱낱이 기록하여 때미쳐 캐어두소
촌가에 기구없이 값진 약 쓰올쏘냐?
<삼월령>
삼월은 모춘(暮春)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춘일(春日)이 재양(再揚)하여 만물이 화창(和暢)하니
백화는 난만(爛漫)하고 새소리 각색이라
당전(堂前)의 쌍제비는 옛집을 찿아오고
화간(花間)의 범나비는 분분(紛紛)히 날고 기니
미물도 득시하여 자약(自若)함이 사랑홉다
한식(寒食)날 성묘하니 백양 나무 새 잎 난다
우로(雨露)에 감창함은 주과로나 펴 오리라
농부의 힘드는 일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풍비(豊備)하여 때 맞추어 배 불리소
일군의 처자권속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후한 풍속 두곡(斗穀)을 아낄소냐?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 하고 그나마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약한 싹 세워 낼제 어린 아이 보호하듯
백곡 중 논 농사가 범연(氾然)하고 못 하리라
포전(圃田)에 여속이요 산전에 두태(斗太)로다
들깻 모 일찍 붓고 삼농사도 하오리라
좋은 씨 가리어서 그루를 상환(相換)하소
보리밭 매어 놓고 못논을 되어두소
들농사 하는 틈에 대포를 아니할가?
울 밑에 호박이요 처 맛가에 박심으고
담 근처에 동과(冬瓜) 심어 가자하여 올려보세
무우 배추 아욱 상치 고추 가지 파 마늘을
색색이 분별하여 빈 땅 없이 심어 놓고
갯 버들 베어다가 개바자 둘러 막어
계견(溪犬)을 방비하면 자연히 무성하리
외밭은 따로 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농가의 여름 반찬 이밖에 또 있는가
뽕눈을 살펴보니 누에 날 때 돠겟구나
어와! 부녀들아! 잠농(蠶農)을 전심하소
잠실을 새소하고 제구를 준비하니
다래끼 칼 도마며 채광주리 달발이라
각별히 조심하여 내음새 없이하소
한식 전후 삼사일에 과목을 접하나니
단행 인행 울릉도며 문배 찐배 능금 사과
엇접 피접 도마접에 행차접이 잘 사나니
청다대 정릉매는 고사에 접을 붙여
농사를 필한 후에 분에 올려 들여 놓고
천한백옥(天寒白玉) 풍설중에 춘색을 홀로 보니
실용은 아니로되 산중의 취미로다
인간의 요긴한 일 장담는 정사로다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
전산에 비가 개니 살진 향채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도 어아리를
일분은 엮어 팔고 이분은 무쳐 먹세
낙화를 쓸고 앉아 병술로 즐길 적에
산처의 준비함이 가효(佳肴)가 이뿐이라
<사월령>
사월이라 맹하(孟夏)되니 입하(立夏) 소만(小滿) 절기로다
비온 끝에 볕이 나니 일기도 청화(晴和)하다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로 울고
보리 이삭 패어나니 꾀꼬리 소리 난다
전사도 한창이요 잠전도 방장(方長)이라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면하를 많이 갈소 방적의 근본이라
수수 동부 녹두 참깨 부룩을 적게 하소
갈 꺽어 거름 할제 풀 베어 섞어 하소
무논을 써을이고 이른 모 내어 보세
전량이 부족하니 환자(還子)를 타 보태리라
한잠 자고 이는 느에 하루도 열두 밥을
밤낮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뽕따는 아이들아 훗 그루 보아하여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물 없을쏘냐
이때를 승시(乘時)하여 나 할일 생각하소
도랑 쳐 수도내고 우루 쳐 개와(蓋瓦)하여
음우(霪雨;장마)를 방비하면 훗근심 더 심없나니
봄나이 필무명을 이때에 마전하고
베 모시 형세대로 여름 옷 지어두소
벌통에 새끼 나니 새통에 받으리라
천만이 일심하여 봉왕(蜂王)을 옹위(擁衛)하니
꿀 먹기도 하려니와 군자 분의(分義) 깨닫도다
파일(파일) 형등함은 산촌에 부결(剖決)하니
느티떡 콩찐이는 제때의 별미로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川獵)을 하여보세
해길고 잔풍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겟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찿아가니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수기를 둘러치고 은린옥척 후려 내어
반석(盤石)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옥미 오후정을 이 맛과 바꿀소냐?
<오월령>
오월이라 중하(仲夏)되니 망종(亡種) 하지(夏至) 절기로다
남풍은 때 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빛이 밤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打麥場) 하로리라
드는 맛 베어다가 단단이 헤쳐놓고
도리깨 마주 서서 짓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 듯하던 집안 졸연히 흥성(興盛)하다
멍석에 남은 곡식 하마 거의 진(盡)하리니
중간에 이 곡식이 신구상계 하겠구나!
이 곡식 아니려면 여름 농사 어찌할꼬?
천심(天心)을 생각하니 은혜도 망극하다
목동은 놀지말고 농우(農牛)를 보살펴라
뜨물에 꼴 먹이고 이슬풀 자로 뜯겨
그루갈이 모심으기 제힘을 빌리로다
보릿집 말리우고 솔가지 많이 쌓아
장마 나무 준비하여 임시 걱정 없이 하세
잠농을 마칠 때에 사나이 힘을 빌어
누에 섶도 하려니와 고치나무 장만하소
고치를 따오리라 청명한 날 가리어서
발위에 엷게 널고 폭양(曝陽)에 마리우니
쌀고치 무리고치 누른 고치 흰고치를
색색이 분별하여 일이분 씨를 두고
그나마 켜오리라 자애를 차려놓고
왕채에 올려내니 빙설 같은 실오리라
사랑홉다 자애소리 금실을 고루는듯
부녀들 적공(積功)들여 이 재미 보는구나!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 볕에 비최도다
목매격 영계(軟鷄)소리 익임벌로 자로 운다
향촌(鄕村)의 아녀들아 추천(鞦韆)은 말려니와
청홍상 창포비녀 가절(佳節)을 허송마라
노는 틈에 하올 일이 약쑥이나 베오 두소
상천이 지인하사 표연이 작운(作雲)하니
때미쳐 오는 비를 뉘능히 막을소냐
처음에 부슬부슬 먼지를 적신 후에
밤들어 오는 소리 표연(飄然)히 드리운다
관솔불 둘러앉아 내일일 마연할 제
뒷논은 뉘 심으고 앞밭은 뉘가 갈꼬
도롱이 접사리며 삿갓은 몇 벌인고
모 찌기는 자네 하소 논 심기는 내가 함세
들깨모 담배모는 머슴아이 맡아내고
가지모 고추모는 아기 딸이 하려니와
맨드라미 봉승아는 네 사천 너무마라
아기 어멈 방아 찧어 들 바라지 점심하소
보리밥과 찬국에 고치장 상치쌍을
식구를 헤아리되 넉넉히 능을 두소
샐 때에 문에 나니 개울에 물 넘는다
메나리 화답하니 격양가(擊壤歌;태평가) 아니던가
<육월령>
유월이라 계하(季夏)되니 소서(小署) 대서(大暑) 절기로다
대우(大雨)도 시행(時行)하고 더위도 극심하다
초목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에 물이 괴니 악머구리 소리난다
봄보리 밀 귀리 차례로 베어내고
늦은 콩 팥 조 기장을 베기 전 대우 들여
지력(地力)을 쉬지 말고 극진히 다스리소
젊은이 하는 일이 갈매기뿐이로다
논밭을 갈마들여 삼사차 돌려 맬 제
그중에 면화밭은 인공이 더 드나니
틈틈이 나물밭도 북돋아 매 가꾸소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때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힐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 나무 그늘 밑에 좌차(座次)를 정한 후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 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메인 후에
청풍에 취포(醉飽)하니 잠시간 낙이로다
농부야 근심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오조 이삭 청대콩이 어느 사이 익었구나!
일로 보아 짐작하면 양식 걱정 오랠쏘냐?
해진 후 돌아올 제 노래 끝에 웃음이라
애애(靄靄)한 저녁내는 산촌에 잠겨 있고
월색은 몽롱하여 밭길에 비최거다
늙은이 하는 일도 마이야 없다 하랴?
이슬아침 외 따기와 뙤약볕에 보리 널기
그늘 걑에 누역 치기 창문 앞에 노꼬기라
하다가 고달프면 목침 베고 허리쉬움
북창풍에 잠을 드니 희왕씨 적 백생이라
잠 깨어 바라보니 급한 비 지나가고
먼 나무에 쓰르라미 석양을 재촉한다
노파의 하는일을 여러가지 못하여도
묵은 솜 들고 앉아 알뜰히 피워내니
장마 속의 소일(消日)이요 낮잠자기 잊었도다
삼복(三伏)은 속절(俗節)이요 유두(流頭)는 가일(佳日)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여
가묘(家廟)에 천신하고 한때 음식 즐겨보세
부녀는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누룩을 디디어라 유두국을 혀느리라
호박 나물 가지 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옥수수 새맛으고 일없는 이 먹어보소
장독을 살펴보아 제 맛을 잃지 말소
맑은 장 따로 모아 익은 쭉쭉 떠내어라
비오면 덮겠은즉 독전을 정히 하소
남북촌 합력하여 삼구덩이 하여보세
삼대를 베어 묶어 익게 쩌 벗기리라
고운 삼 길쌈하고 굵은 삼 바 드리소
농거에 요긴기로 곡식과 같이 치네
산전(山田) 메밀 먼저 갈고 포전(圃田)은 나중 갈소
<칠월령>
칠월이라 맹추(孟秋)되니 입추(立秋) 처서(處暑) 절기로다
화성(火星)은 서류(徐流)하고 미성(尾星)은 중천(中天)이라
늦더위 있다 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쏘냐
비밑도 가비 업고 바람끝도 다르도다
가지 위의 저 매아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
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는고
칠석에 견우 직녀 이별루(離別淚)가 비가 되어
섞인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질 제
아미 같은 초승달은 서천(西天)에 걸리거다
슬프다 농부들아 우리일 거의로다
언마나 남았으며 어떻게 되다 하노
마음을 놓지 마소 아직도 멀고 멀다
골 거두어 김매기 벼 포기에 피 고르기
낫 버려 두렁 깎기 선산에 대초하기
거름 풀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넣고
자채논에 새보기와 오조밭에 정의아비
밭가에 길도 닦고 이사도 쳐올리소
살지고 연한 밭에 거름하고 익게 갈아
김장할 무우 배추 남 먼저 심어놓고
가시울 진작 막아 허실함이 없게 하소
부녀들도 헴이 있어 앞일을 생각하소
베짱이 우는 소리 자네를 위함이라
저 소리 깨쳐 듣고 놀라쳐 다스리소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폭쇄하소
명주 오리 어서 몽져 생량전 짜아내소
늙으신네 기쇠(氣衰)하매 환절때를 조심하여
추량(秋凉)이 가까우니 의복을 유의하소
빨래하여 바래이고 풀먹여 다듬을 제
월하(月下)의 방추소리 소리마다 바쁜 마음
실가(室家)의 역몰함이 일변은 재미로다
소채 과실 흔할 적에 저축을 생각하여
박 호박고지 켜고 외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보소 귀물(貴物)이 아니될까
면화밭 자로 살펴 올다래 피었는가
가꾸기도 하려니와 거두기에 달렸느니
<팔월령>
팔월이라 중추(中秋)되니 백로(白露) 추분(秋分) 절기로다
북두성 자(左)루 들아 서천(西天)을 가리키니
선선한 조석(朝夕) 기운 추의(秋意)가 완연하다
귀뜨라미 맑은 소리 벽간에 들리구나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백곡(百穀)을 성실(成實)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들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일 공생(功生)하니
백곡의 이삭 패고 여물 들어 고개 숙어
서풍에 익는 빛은 황운(黃雲)이 일어난다
백운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다래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볕 명랑하다
안팎 마당 닦아 놓고 발채 망구 장만하소
면화 따는 다래끼에 수수 이삭 콩가지요
나뭇군 돌아올 제 머루 다래 산과로다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세상이라
알암도 마리어라 철대어 쓰게 하소
명주를 끊어내어 추양(秋陽)에 마전하고
쪽 들이고 잇들이니 청홍이 색색이라
부모님 연말(年末)하니 수의(禭衣)를 유의하고
그나마 마르재어 자녀의 혼수라세
집위에 굳은 박은 요긴(要緊)한 기물(器物)이라
댑싸리 비를 매어 마당질에 쓰오리라
참께 들께 거둔 후에 중올여 타작하고
담뱃줄 녹두말을 아쉬워 작전(作錢)하랴
장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 쾌 젓 조기로 추석 명일 쉬어보세
신도주 올여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近親) 갈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 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 반물치마 장속(裝束)하고 다시보니
여름(農事)지어 지친 얼굴 소복(蘇復)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오소
금년 할 일 못다하여 명년 계교(明年計較) 하오리라
밀대 베어 더운갈이 포맥을 추경(秋耕)하세
끝끝이 못 익어도 급한대로 걷고 갈소
인공(人工)만 그러할까 천시(天時)도 이러하니
반각도 쉴 때 없이 마치며 시작느니
<구월령>
구월이라 계추(季秋)되니 한로(寒露) 상강(霜降)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언제왔노
벽공(碧空)에 우는 소리 찬이슬 재촉는다
만산에 풍엽(楓葉)은 연지(臙脂)를 물들이고
울밑에 황국화는 추광(秋光)을 자랑한다
구월구일 가절이라 화전 노신하세
절서를 따라가며 추원보본 잊지마소
물색은 좋거니와 추수가 시급하다
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무논은 베어 깔고 건답은 베 두드려
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 대추벼와 동트기 경상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근처 콩팥 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 나거든 두드리세
비단차조 이부꾸리 매눈이 콩 황부대를
이삭으로 먼저 갈라 후씨로 따로 두소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 사람 낫질이라
아이는 소 몰리고 늙은이는 섬 욱이기
이웃집 울력하여 제 일하듯 하는 것이
뒷목 추기 짚 널기와 마당끝에 키질차기
일변으로 면화 틀기 씨앗소리 우란하다
틀 차려 기름짜기 이웃끼리 합력하세
등유도 하려니와 음식도 맛이 나네
밤에는 방아 찧어 밥쌀을 장만할 제
찬서리 긴긴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타작 점심 하오리라 황계(黃鷄) 백주(白酒) 부족할가
새우젓 계란 찌개 상으로 차려놓고
배추국 무나물에 고춧잎 장아찌라
큰 가마에 안친 밥 태반이나 부족하다
한가을 흔할 적에 과객(過客)도 정하나니
한동네 이웃하여 한들에 농사하니
수고도 나눠 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이 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아무리 다사(多事)하나 농우를 보살펴라
핏대에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라
<시월령>
시월은 맹동(孟冬)이라 입동(立冬) 소설(小雪) 절기로다
나뭇입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공을 필(畢)하도다
남은일 생각하여 집안일 마저 하세
무우 배추 캐어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鹽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묻고
바기무우 알암말도 얼잖게 간수하소
방고래 구두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도 더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깍지 동 묵어 세고 과동시(過冬柴) 쌓아두소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옷 지었느냐
술빚고 떡하여라 강신(降神)날 가까왔다
꿀꺾어 단자하고 메밀앗아 국수하소
소잡고 돝잡으니 음식이 풍비하다
들마당에 차일(遮日) 치고 동네모아 자리포진
조소처례 틀릴쎄라 남녀분별 명명하소
삼현 한패 얻어오니 화랑이 줌모지라
북 치고 피리 부니 여민락이 제법이라
이풍헌 김첨지는 잔말끝에 취도(醉倒)하고
최권동 강약정은 체괄이 춤을 춘다
잔진지 하올 적에 동장님 상좌하여
잔 받고 하는 말씀 자세히 들어 보소
어와 오늘 놀음 이 놀음이 뉘 덕인고
천은도 그지없고 국은도 망극하다
다행히 풍년 만나 기한(飢寒)을 면하도다
향약(鄕約)은 못하여도 동헌(東軒)이야 없을소냐
효제충신 대강 알아 도리를 잃지 마소
사람의 자식 되어 부모은혜 모를쏘냐
자식을 길러보면 그제야 깨달으리
천신만고(千辛萬苦) 길러내어 남혼녀가 필하오면
부모봉양 잊을소냐? 기운이 쇄패(衰敗)하면
바라느니 젊은이라 의복 음식 잠자리를
각별히 살펴드려 행여나 병나실까
밤낮으로 잊지 마소 고까우신 마음으로
걱정을 하실 적에 중중거려 대답 말고
화기(和氣)로 풀어내소 들어온 지어미는
남편의 거동 보아 그대로 본을 뜨니
보는 데 조심 하소 형제는 한기운이
두몸에 나눴으니 귀중하고 사랑함이
부모의 다음이라 간격없이 한통치고
네것 내것 계교마소 남남끼리 모인 동서
틈나서 하는 말을 귀에 듣지 마소
자연히 귀순(歸順)하리 행신(行身)에 먼저 할 일
공순(恭順)이 제일이라 내 늙은이 공경할 제
남의 어른 다를쏘냐 말씀을 조심하여
인사를 잃지마소 하물며 상하분의(上下分義)
존비가 현격(懸隔)하다 내 도리 극진하면
죄책(罪責)을 아니 보리 임금의 백성되어
은덕으로 살아가니 거미같은 우리백성
무엇으로 갚아볼까 일년 환자 신역(身役)
그 무엇 많다 할꼬? 한전에 필납함이
분의에 마땅하다 하물며 전답구실
토지로 분등하니 소출을 생각하면
계일세도 못되나니 그러나 못 먹으면
재주어 탕감하니 이런일 자세 알면
왕세를 거납(拒納)하랴 한동네 몇 홋수에
각성이 거생하여 신의를 아니하면
화목을 어찌할꼬 혼인대사 부조하고
상장우환(喪葬憂患) 보살피며 수화부적 구원하고
유무칭대 서로하여 날보다 요부(饒富)한 이
용심내어 시비(是非) 말고 그중에 환과고독(鰥寡孤獨)
자별(自別)히 구출하소 제 명명 정한 분복
억지로 못하나니 자네들 헤어보아
내 말을 잊지 마소 이대로 하여가면
잡생각 아니 나리 주색잡기(酒色雜技) 하는 사람
초두(初頭)부터 그러할까? 우연히 그릇 들어
한 번 하고 두 번 하면 마음이 방탕하여
그칠 줄 모르나니 자네들 조심하여
적은 허물 짓지 마소
<십일월령>
십일월은 중동(仲冬)이라 대설(大雪) 동지(冬至)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언마나 하였던고
몇섬은 환하고 몇섬은 왕세하고
언마는 제반미요 언마는 씨앗이며
도지도 되어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계돈 장리벼를 낱낱이 수쇄(愁殺)하니
엄부렁 하던 것이 남저치 바이 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농량(農糧)이나 여투리라
콩길음 우거지로 조반 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쓸일 남았구나
익게 쌂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동지(冬至)는 명일(名日)이다 일양(日陽)이 생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 쑤어 인리(隣里)와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公債) 사채(私債) 궁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에 조명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 불 긴긴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잡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소리
여러 소리 지꺼리니 실가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 없으니 기직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 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깃지어 받은 거름 자로 쳐야 모아나니
<십이월령>
십이월은 계동(季冬)이라 대한(大寒) 소한(小寒) 절기로다
설중(雪中)의 봉만(峰蠻)들은 해저문 빛이로다
세정에 남은 날이 언마나 걸렸는고
집안의 여인들은 세시의복 장만하고
무명 명주 끊어내어 온갖 무색 들여내니
자주 보라 송화색에 청화 갈매 옥색이다
일변으로 다듬어며 일변으로 지어내니
상자에도 가득하고 횃대에도 걸었도다
입을 것 그만 하고 음식장만 하오리라
떡살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콩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세육(歲肉)은 계를 믿고 북어는 장에 사서
납평날(臘日) 창애 묻어 잡은 꿩 몇 마린고
아이들 그물쳐서 참새도 지져먹세
깨강정 콩강정에 곶감 대추 생율이라
주준(酒樽)에 술 들으니 돌틈에 새암소리
앞뒷집 타병성은 예도 나고 제도 나네
새등잔 세발심지 장등하여 새울적에
윗방 봉당 부엌까지 곳곳이 명랑하다
초롱 불 오락가락 묵은 세배 하는구나
어와 내 말 듣소 농업이 어떠한고
종년근고(終年勤苦) 한다 하나 그중에 낙이 있네
위으로 국가 봉용 사계로 제선 봉친
형제 처자 혼상 대사 먹고 입고 쓰는 것이
도지 소출 아니러면 돈 지당을 어이할꼬
예로 부터 이른 말이 농업이 근본이라
배부려 선업(船業)하고 말부려 장사하기
전당 잡고 빚주기와 장판에 체계놓기
술장사 떡장사며 술막질 가게 보기
아직은 혼전하나 한번을 뒤뚝하면
파락호 빚구러기 사던 곳 터도 없다
농사는 믿는 것이 내 몸에 달렸느니
절기도 진퇴 있고 연사도 풍흉있어
수한 풍화 수시 재앙 없다야 하랴마는
극진이 힘을 들여 가솔이 일심하면
아무리 살년에도 아사(餓死)를 면하느니
제시골 제 지키어 소동할 뜻 두지마소
황천(皇天)이 지인(知人)하사 노하심도 일시로다
자네도 헤어보아 십년을 가령하면
칠분은 풍년이요 삼분은 흉년이라
천만가지 생각말고 농업을 전심하소
하소정 유풍시를 성인(聖人)이 지었느니
이 뜻을 본 받아서 대강을 기록하니
이 글을 자세히 보아 힘쓰기를 바라노라
길기도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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